최근 수정 시각 : 2019-05-22 10:06:34

안동시/문화


1. 유교적 전통의 문중들2. 관광3. 음식4. 방언5. 종교6.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1. 유교적 전통의 문중들

안동은 역사가 장구한 고장인만큼 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중요도도 높았지만 가장 유명해진 것은 아마도 유교의 고장이 된 조선시대때부터일 것이다. 종가, 가문, 족보, 색목(色目) 같은 것을 중시하는 경향이 현재 여전히 강하다. 성씨에 신경쓰지 않는 사람은 상당히 빡치는 사실이다. (안동에 양반 자손들만 있는 게 아니라 그 양반들의 노비 자손들도 있다. 이 사람들에게 가문이란...) 주의, 요즘 젊은 사람들은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현재 50~60대 어른들 어렸을 적만 해도 머슴 살던집 자식, 반가 자손, 마름집 등등 대놓고 전근대적인 구습이 가시지 않았던 시절이었다.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다. 시내는 좀 덜하지만[1] 도산면이나 풍천면 같은 곳으로 나가면 아직도 종갓집, XX김씨 XX세손, 족보 같은 것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풍조가 있다. 집성촌 또한 다른 도시에 비해 상당히 많이 남아 있는 편이며, 심지어는 집성촌이 아니더라도 시내에서라면 어느 동 무슨 씨 할머니 혹은 할아버지라고 하면 누군지 금방 알 정도다. 사실 어떻게 보면 이런 유색(儒色)이 강한 것은 영남남인 색목이었고, 이들이 갑술환국 이후 몇몇 가문을 제외하면 중앙정계에서 사실상 밀려났기에 향전(鄕戰)에 힘쓰면서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극도로 보존해왔기 때문인 것으로도 생각된다. 이 때문인지 안동은 전국 반촌 중 종가 고택이 가장 많아 남아 있는 지역으로도 거론된다. 양반 가문이라면 어디 가도 빠지지 않을 기라성 같은 인물이 배출된 기호 지방이나 호남 어딜 가도 이만큼 종가와 종택이 이어지고 고택이 많이 남은 곳이 없다. 심지어 퇴계 고택은 있지만 율곡 고택은 없다. 종부도 계시지만 종택은 2009년 기준 일산의 한 아파트였다. 남명 조식도 남명학파라는 하나의 학통을 만들 정도였지만 남명 종택도, 종부도 실전하지 않는다는 걸 생각하면 독특하면서 대단한 지점.

안동에서 가장 유명한 가문은 진성 이씨고, 다음이 풍산 류씨, 의성 김씨 등으로 여겨진다.[2] 이하 순위 부터는 타 문중에서 논란이 많거나, 혹은 큰 관심이 없다.[3]

두 가지 이유인즉, 첫 번째, 조선 조 최고 양반가문의 기준을 민가(民家)에서는 으레 세도정치를 해야 하느니 문과 합격자 수가 많느니 정승 판서나 당상관 내지 대제학 왕비를 많이 배출하느니 등을 기준으로 삼는다지만, 본디 나라를 대표하는 국반(國班)의 기준이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왕조국가인 조선의 도통(道通)을 잇는 대유(大儒)로서 성균관 문묘에 그 신주가 모셔진 국불천위(國不遷位)를 배출했는지가 으뜸이며, 다음이 조선의 왕통(王通)을 상징하는 종묘에 각 왕 시대를 대표하는 최고 정치가(내지 권세가)인 배향공신을 배출했는지 여부이다. 아무리 문형(文衡)이니 대제학을 많이 배출한다한들 문묘 종사 대현(大賢) 배출 가문에 비할 바 아니었으며, 보국숭록대부 이상의 정승들이 많이 난다한들 종묘 배향공신이 되지 못하면 색이 바랬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묘 종사에 종묘 배향을 동시에 이룬 이는 조선 조 최고 영예를 안은 사람으로서, 학문적으로 성리학의 대가이자 정치적으로는 과거에 급제해 고관대작을 지내면서 훈구파사림 내지는 각 붕당이나 세도가문을 영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영수라고 할 수 있다.[4] 조선조 이 최고 영예를 안은 사람은 단 6명 뿐인데, 우리나라 성리학 중 가장 먼저 본격적인 저술을 남기면서 주리론 및 영남학파의 선구자로 추앙된 회재 이언적(여강 이씨), 주기론 및 기호학파의 태두이자 서인의 영수였던 율곡 이이(덕수 이씨), 노론의 영수로서 '송자'로 칭송되는 우암 송시열(은진 송씨), 기호학파의 종장이었던 김장생의 아들 신독재 김집(광산 김씨), 소론의 당수 격이었던 현석 박세채(반남 박씨), 그리고 영남학파의 종장이자 남인의 정신적 지주였던 퇴계 이황으로 이들 6명은 그 네임밸류가 사실상 조선시대사를 거의 대표하는 키워드들이라 할 수 있을 정도인 셈이다. 영남 지방에서 이 6대 국반에 드는 가문은 두 가문인데, 회재 이언적의 가문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양동마을을 중심으로 하는 경주시여강 이씨, 그리고 안동시진성 이씨인 것이다.

두 번째, 어차피 안동에서 유명한 집안은 대부분 남인 색목이자 이언적의 학설을 지지하고 이황의 가르침을 받은 가문들인데, 앞서 언급한 진성 이씨 외의 풍산 류씨와 의성 김씨는 퇴계의 3대 고제(高弟)들이면서 선조 대의 명신들인 유성룡김성일의 가문이며,[5] 갑술환국 이후에도 영남 남인에서 두드러지는 과거 합격자(문과나 사마시 포함) 수는 물론 상당수 당상관을 배출한, 당대 영남을 대표하는 격조 높은 도반(道班)인지라, 혼인을 많이 맺어 건너 건너다 보면 이들과 사돈 지간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좀 더 이야기하자면, 풍산 류씨의 집성촌인 하회마을양동마을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고, 서애 류성룡이 조선 5대 재상의 한명이었으며, 정경세 등 그의 제자들이 영남학파의 한 맥을 이었음은 물론, 그의 사후 영남에서 재상이 배출된 것은 고종흥선대원군이 밀어준 서애 후손 좌의정 류후조가 유일하다.(물론 류후조는 사실 안동 하회마을 쪽은 아니고 상주시의 우천파이다.) 의성김씨는 학봉 김성일이 퇴계의 적통으로 인정받아 그의 제자들이 사실상 영남사림을 주도하였고, 이 가문에서 상당히 많은 당상관을 배출하였다. 그리고 의성김씨는 안동 천전파[6] 외에 상주시의 김우굉 계열, 인종 배향공신인 김안국 등으로도 원래 유명했다. 명문 가문들은 끼리끼리 혼인해서 사실상 한 집안이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를 혼반(婚班)이라 하는데, 이들 세 가문이 안동이나 영남 지방에서 혼반이 '가장 높은 편'에 속한다고 표현되며, 이들 가문 중에서도 (파)종가이거나, 천석지기거나, 사마시 이상에 합격해 관직을 지내거나, 학덕이 높으면 영남에서 역시 '가장 높은 편'인 다른 가문의 그러한 가정과 혼인을 할 수 있었다.

사실 안동시에는 안동을 본관으로 하는 가문이 제일 많다. 현재 안동 권씨, 안동 김씨, 안동 장씨가 국회의원 및 지방 선거제도 인하여 이들 3성이 득세한다. 시장, 국회의원 등을 두고 안동 김, 권이 연합해서 그렇다. [7] 안동 김, 권 보다 인구는 작지만 이들 세 가문의 선거 외 영향력은 그에 동등 하거나 오히려 더 세다.[8] 다만 이들 이, 류, 김 문중은 일제 강점기 유독 독립 운동을 많이 해서 멸절하거나 가문 전체가 와해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현대에 와서 정치 세가 약해진 게 사실이다. [9][10]

추가로 전주 류씨[11], 재령 이씨[12], 봉화 금씨, 영천 이씨, 광산 김씨, 풍산 김씨 등은 인구수와 문중세는 작지만 안동 지방의 전통의 명문가인 향반(鄕班)으로 통한다. 광산 김씨는 유일재 김언기가 학문을 펼치며 당대 퇴계 선생 못지않은 제자군을 거느리고 당대 유향들의 존경과 흠모를 벋았다. 유일재 고택 또한 남아 있다. 다만 전란 등으로 유일재의 저작 등이 죄다 소실됐고, 유일재 또한 방계로 퇴계의 제자라고 주장하며(유일재는 실제로는 퇴계 문하에서수학한 적이 없다.) 퇴계 후손이나 그 학맥에서 견제를 많이 했기에 훌륭한 업적에도 이분은 왠지 주목을 못 받고계신다. 또한 일제 강점기 독립 운동과 3.1운동을 주도한 가문이라 존경 받는 문중이다. 하지만 해방 후 댐 건설 등으로 집성촌이 사라져 세가 많이 약해졌다. 특히 전주 류씨[13], 광산 김씨[14] 집성촌은 하회마을 만큼 규모가 컸다. 광산 김씨 집성촌은 기와집이 200여 채나 있을 정도로 규모가 대단 했지만, 지금은 안동댐 때문에 수몰되고 말았다.[15] 전주 류씨 집성촌도 임하댐 때문에 수몰되어 선산군(현재 구미시로 통합) 해평면으로 옮겨졌다.
그 외 향불천위[16]를 지내는 명문 향반 종가로 한산 이씨, 흥해 배씨, 원주 변씨, 광산 김씨, 풍산 김씨, 능성 구씨, 고성 이씨, 청주 정씨, 횡성 조씨, 진주 하씨 등이 있고, 불천위를 지내지 않는 명문 향반 종가로 순천 김씨, 예안 이씨, 연안 이씨, 청송 심씨, 순흥 안씨, 진주 강씨, 영양 남씨, 단양 우씨, 반남 박씨, 동래 정씨, 예천 임씨, 예천 권씨[17][18] 등등이 있는 것에서 보듯 매우 많은 종가가 존재하거나 했다. 조선 시대 경상 좌도, 우도로 나누던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당시 안동이라는 지명은 지금의 안동시을 이야기 하는게 아니라, 영주시, 예천군, 봉화군, 영양군, 청송군, 의성군, 영덕군 일대를 관할하는 안동대도호부를 말한다.[19] 안동시에도 수 십개의 종가가 있는데 다른 행정 구역까지 포함하면 대략 백 개는 넘는다.

안동 토박이들의 말에 의하면 안동 김씨, 안동 권씨, 안동 장씨, 진성 이씨, 풍산 류씨가 아니면 은근히 안동 안에서는 관청이든 사기업이든 인사고과에서 마이너스가 된다는 소리도 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성씨 등에 딱히 신경 안쓰는 안동사람은 상당히 불편한 사항이다. 이런 사람에게 양반도시니 뭐니 말해봤자 오히려 화를 낼 수 있으니 주의 그만큼 문중에 큰 힘이 있는 도시라는 이야기다.[20][21] 그렇다고 무조건 성씨만을 고집하지는 않는다. 한때 특정 고교 출신을 더 우대했었다. 안동고, 농림고 [22]

안동에 있는 대형병원이나 시장, 미장원, 미용실 같은 곳에서 가만히 있어보면 어느 병원에 어느 의사가 우리 종씨고 종파고 하는 말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의사와 같은 종씨종파라고 하는 노인분들은 의사들한테는 가장 피곤한 환자다. 가끔 병원에서 노인분들이 드나드실때 열리고 닫히는 진료실 문 너머로 보이는 의사의 얼굴이 유난히 피곤해 보일때가 있는데 이때가 그때일 확률이 높고 심지어는 학원 원장과 원생이 종씨관계일 경우 대놓고 강사들에게 종씨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다. 더 심한 건 이걸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고 의사와 종씨관계의 경우 의사에게 필요이상으로 매달려서 병원비 깎아달라거나 더 좋은 약 달라고 소란피우는 노인분들이 많이 계신다.

다른 한편으로 안동에 있는 대부분의 문중이 의병, 독립운동을 전개하였다. 독립운동 관련해서 밝혀진 포상자만 1,000명을 넘는다. 그야 말로 독립운동의 성지. 한국 정신 문화의 수도 하는 타이틀이 절대 무색하지 않다. 또한 언론에 조명이 안되어서 그렇지 경주 이씨우당 이회영 집안 만큼 형제, 자손들까지 독립 운동을 한 가문이 여럿 있다. 대표적으로 진성 이씨, 고성 이씨[23], 의성 김씨 문중은 몇 개의 문중 세파가 아예 사라질 정도였다.

2006년, 공자의 직계후손이자 마지막 연성공을 지낸 전 중화민국 고시원장 쿵더청이 타계하였을때 안동시장 김휘동이 유교 예복을 입고 직접 조문하는 등 안동의 유교문화는 정치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2. 관광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하회마을 (풍천면)을 필두로 도산서원 (도산면), 봉정사 (서후면) 등이 유명한 관광지이다. 매년 9월 하순부터 열흘 가량 개최하는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이 유명하다. 다만 도시의 인지도나 관광수요에 비해 숙박시설이나 레저시설 같은 인프라가 부족한 편이어서 성곡동에 안동문화관광단지를 조성 중이다. 비즈니스 호텔, 골프장, 식물원 등이 건설되었다.

그 외 유명한 관광명소로 구시장 (찜닭골목), 갈비골목(음식의 거리), 월영교, 안동댐, 병산서원, 학가산(+온천), 청원루 등이 있다.

2.1. 하회마을

안동의 명물로는 하회마을이 있다. 시내에서 약 40분 거리로 꽤 먼 편. 시내에서 국도 제34호선을 타고 예천 방면으로 가다가 보며 하회마을 이정표가 보인다. 중요한 것은 풍산읍내로 들어가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하회마을에는 풍산류씨인 서애 류성룡과 그 형 겸암 류운룡의 후손들이 살고 있으며(다들 알지만 연예인 류시원이 직계후손이다. 류시원은 류성룡의 형 류운룡의 후손이다.) 그 주변, 즉 마을 또한 조선후기 이후로 개축하지 않아 겉모습은 조선시대와 같다. 즉 주민이 사는 민속촌으로 주변에 다른 집들에서 민박도 가능하지만 민박집 주인들이 괴로워 하기도 한다(인즉 집이 문화재로 등록되어 전기선 하나만 수리하려고 해도 시청에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 덕분에 여기 사는 주민들은 겉보기와는 달리 불편하게 생활한다. 특히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기간이 다가오면 그 기간동안은 아주 난리난다.

남희석하회탈로 유명하기 때문에 탈 관련 컨텐츠도 다양한편 각종 하회탈을 구입할 수 있고 기타 민속 물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물론 한국에서 만들지 않은 것도 많이 판다

2.2. 도산서원

천원권 지폐의 인물이기도 한 퇴계 이황 선생이 세운 서원이다. 참고로 도산서원도 예전의 천원권에 그려져 있었다. 조선 말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때도 폐서원 되지 않은 47개 서원 가운데 하나로,(하회마을 근처의 병산서원도 살아남음) 서원의 대표로 꼽아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시내에서 국도 제35호선을 타고 춘양/태백 방면으로 가다 보면 도착할 수 있다. 시내로부터는 생각보다 먼 편.
안동시내에서 들어갈때는 67번 버스를 탈 수 있는데, 같은 67번도 도산서원 들어가는 버스는 약 1시간 ~ 1시간 30분 간격으로 버스가 있기 때문에 타기전에 기사님께 물어보아야 한다. 이때, 출발시간은 안동역을 기준으로 하기때문에 본인의 위치에 따라 유동적인 시간표라고 보면 된다. 오전 9:40, 10:50 정도, 이후는 직접 확인할 것.
도산서원을 둘러보면 경치로나 내부 구조가 아름답고, 소박함을 알 수 있는데, 국가에서 지원하는 서원으로 도산서원 현판은 한석봉선생이 제작했다고 한다. 실제 도산서원의 진품들은 대부분 국학진흥원에 보존되어 있고, 도산서원에는 그 구조물 외에는 대부분 재현되어 있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2.3. 봉정사

한국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되었다는 봉정사 극락전으로 유명한 사찰. 자세한 것은 해당 항목 참고.

2.4. 전탑

흙으로 벽돌을 만들어 쌓아올린 형태의 . 국내에서는 거의 접할 수 없는 전탑은 절대다수가 안동에 모여있다. 안동 지역에 이렇게 전탑이 밀집한 이유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학설이 있으며 최근에는 안동 주변의 토질이 전탑의 재료인 벽돌을 만들기에 적절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한 안동에 전탑이 많은 이유 중 또다른 한 가지 이유는 바로 풍수. 낙동강을 타고 빠져나가는 안동의 기운을 모으기 위해 이곳저곳 세워두었던 것을 마을에서 보수해가며 보존하여 쭉 이어져온 것이다. 결국은 자연환경과 사회의 결속력이 한데 어우러져 내려온 것.

2.4.1. 목록

  • 국보 제16호 안동 법흥사지 칠층전탑 : 안동시 법흥동 (임청각 앞)
  • 보물 제56호 안동 운흥동 5층 전탑 : 안동시 운흥동 (안동역전)
  • 보물 제57호 안동 조탑리 5층 전탑 :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안동시내에서 의성방면으로 가다 남안동IC 방향)


3. 음식

간고등어안동찜닭으로 유명한 고장. 21세기 마케팅의 승리 실제로 안동 구시장 찜닭골목에는 20개 가까운 점포가 영업 중이다. 이 구시장 찜닭골목에서 먹는 찜닭 맛은 타고장에 가면 결코 맛볼 수 없으니 필미. 이 가운데 학생을 비롯한 방문객들이 선호하는 가게는 따로 있다고 한다. 안동소주도 유명. 찜닭의 경우 1박 2일에서 다녀간 후 가격이 많이 올라 안동시민들의 분노를 사기도 했다. 강호동 네이놈! 이게 다 강호동 때문이다

그 외엔 헛제사밥, 안동건진국수, 안동식혜 등이 있다. 안동식혜는 생강, 무, 고춧가루 때문에 뻑뻑하고 매운맛이 나서, 타지 사람들과 젊은 안동 사람들에게는 영국 요리급의 임팩트를 선사한다. 덕분에 안동사람 중에서도 싫어하는 사람이 상당수가 된다. 상당수의 요즘 아이들은 싫어하지만 '맛없는데 은근히 끌린다'라는 아이들도 있는듯. 만드는 게 복잡하고 손이 많이 가서, 안동 사람들도 원래 특별한 날에만 먹는 음식이었던 듯.

참고로 2010년 미슐렝 가이드가 선정한 한국 맛있는 빵집 2곳 중 하나인 맘모스 베이커리가 안동 시내에 있다.[24] 맘모스 베이커리가 얼마나 유명하냐면 안동에 던킨도너츠가 들어왔다가 폐점할 정도였다.[25] 분점도 있으며 송현동 송현오거리 부근에 위치하고 있다. 다만 이곳은 최근 리모델링했는데 그 후 빵의 종류가 많이 줄어들었다. 빨리 매진되므로 6시 이전에 방문을 추천.[26] 송현동에 있는 빵집은 본점 빵과는 다르게 호밀빵류의 건강빵을 주로 취급하는데 보통 한국사람들이 생각하는 간식으로서의 ‘맛있는’ 빵이라고 하기에는 어렵다.[27] 물론 이전에 팔던 빵도 취급하지만, 타지 분들에게는 시내의 본점을 권하고 싶다. 추천하는 메뉴는 시그니쳐인 크림치즈빵과 앙금이 진하고 촉촉한 팥빵, 블루베리빵. 다만 안동시민들은 맘모스제과를 동네빵집 정도로 생각하는 경향이 짙으며 그렇게 유명한곳인줄 몰랐다는 반응도(...)
실제 안동에서 주말시즌 길목에 손님이 줄을 서는 거의 몇 안되는 집이다. 것보다 살면서도 진짜 유명한지 몰랐다...

시내에 있는 갈비골목과 풍산 한우불고기, 안동댐 뒷편 동악골의 매운탕이 유명하다. 동악골에는 매운탕집이 밀집해있는데, 잘 알려지지 않아 그렇지 매운탕이 상당히 맛있다. 일부 식당은 매운탕 외에 닭도리탕을 하기도 하는데, 닭도리탕 역시 수준급의 맛을 자랑한다. 풍산에서는 저렴하게 한우를 맛볼 수 있다. 시청 앞의 물고기식당에서는 독특한 은어 조림을 맛볼 수 있다. 하지만 주인 할머니가 욕쟁이로 유명하시니 독촉 등의 행동은 삼가자. 신시장 골목 내의 옥야식당은 소고기(+선지) 국밥으로 유명하다. 역 앞의 중식점인 대흥원은 화교 부부가 운영하는데, 멀리서도 찾아오는 듯.[28]
그외, 찜닭 골목을 끼고 안동초등학교 방면 금방거리 면으로 접어들면 막창골목이 들어서는데 그 중 서울막창집이 1등집인건 비밀이다.
이처럼 안동찜닭, 간고등어 이외에도 곳곳에 맛집들이 빼곡하게 숨어있다.맛집 오브 더 시티

4. 방언

안동 사람들은 사투리를 많이 사용하는 편인데, 기본적으로 동남 방언(경상도 사투리)에 속하지만 안동권[29]의 언어는 대구부산 사투리와 많이 달라서 가끔 안동에 온 대구 사람이 외계인 취급받는 경우도 자주 있다.

대구부산 같은 경상도 남쪽 지역에 사는 사람이 안동으로 올라오면, 안동말이 꼭 강원도 영동지방 말 같이 들릴 정도라고 한다. 극단적으로 앞에 있는 성조와 억양 탓이다. 의문형의 경우 대구 사투리가 /~능교/(-ㅂ니까)인것에 비해 안동은 /~니껴/, 평서형은 /~니더/(-ㅂ니다)라고 한다.(물론 나이드신 분들. 젊은 세대는 거의 사용하지 않는...건 아니고 안동 사람들은 동향사람들끼리 있으면 방언으로 이야기한다) 어미도 다른 경상도 사투리와는 차이가 있다. ~고? ~가? 형태의 여타 경상도 사투리와는 달리 안동은 ~로? ~라? 형태를 사용한다.[30] 비슷하게 경상도 사투리의 부정 표현인 아이다~(아니다~)는 안동에서는 아이래~라고 표현된다. 이거 니꺼라? 아이래요

5. 종교

유교의 본향 중 한 곳. 유교, 불교, 민속문화가 어우러진 고장 답게 개신교가 여타 지역에 비해 세를 떨치지 못하는 지역이다. 오오 원융회통 물론 나름대로 규모 있는 교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안동의 개신교 역사도 꽤 오래 되었고 경북 북부에서는 그래도 개신교인이 많은 편이다.

안동에 온 개신교인이 놀라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교회 주변에 무당집이 많다는 점이라고...[31] 한때는 분쟁도 있었지만 지금은 서로 의식하지 않고 지낸다. 또한 대도시 지역처럼 무개념한 전도나 사찰 테러, 땅밟기 같은 무개념한 행위는 하지는 않는다. 안동에서 개신교가 나름 자리를 잡은 것은 개신교 인사들의 신식교육기관 설립도 있었으나 가장 큰 것은 항일독립운동의 노선이 같아서 지역 사회에서 쉽게 녹아들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저런 좋은 이야기 같은거 없다... 요즈음 갈수록 교회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강제 전도하는 모습이 많이 목격된다 요즘은 대도시랑 다를게 없다

불교의 세가 상당히 강하며, 서울의 조계사, 대구의 동화사, 부산의 범어사 같은 신도가 많으면서 유명한 대형 사찰은 없지만 봉정사처럼 작지만 이름난 절들이 있다. 유달리 잘 무너져서 꾸준한 보수공사 없이는 존재하기 힘든 전탑이 안동에 많이 남아있는 이유도 이러한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천주교 교세도 나름대로 있는 편이며 천주교 안동교구라는 경상북도 북부 지역을 관할하는 독립된 교구도 존재한다. (단위 교구의 신자 수는 한국 천주교에서 제주교구를 제외하고 가장 적지만) 1970년대말 한때 정치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안동교구 가톨릭농민회 사건의 주무대이기도 하다.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께서 초대 교구장으로 부임셨다. 당시 유교문화와 융화문제로 꽤나 진땀 흘리셨다는 후문이...

안동교회, 천주교 안동교구 목성동주교좌성당, 대한불교 조계종 대원사, 경상북도 유교문화회관, 성덕도 안동교화원이 한곳에 붙어있다. 종교전쟁?! 이에 대한 기념으로 각 종교의 상징의 새겨진 5개의 돌기둥과 상징물을 세운 종교타운 이라는 장소가 만들어져 있다.

6.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

공식홈페이지

안동에서 열리는 축제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대표적인 축제로 매년 국·내외 탈춤단체들이 참가하고 있다. 1997년 10월 처음 열렸으며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에 의해 대한민국 '명예' 대표축제로 지정되어 있다.

주로 9월 말~10월초 사이에 개최되며 개최장소는 안동 운흥동 낙동강변과 하회마을이다. 하회 별신굿 탈놀이를 포함한 한국에 전승되는 전통탈춤 공연과 등 세계 각지의 탈춤 또는 민속공연을 볼 수 있으며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 등이 주요한 행사이다.

축제기간 동안 행사장 주변에는 약 50개의 행사부스가 설치되며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행사가 많은 편이다. 이 글을 보고 계시는 학부모 위키러들은 한번쯤 가봐도 괜찮을 행사.

탈춤 공연장에서는 시간별로 다양한 국가의 댄서들이 춤을 추는데 동남아와 러시아 댄서들 공연이 백미인데 동남아 공연팀은 의상과 가끔 보여주는 가벼운 칼춤이나 밸리 댄스, 러시아 댄서들은 남녀 번갈아추다 함께 출 때가 있는데 여성댄서들의 공연이 가장 보기 좋다. 미모도 그렇고 남성댄서들보다 옷빨이 잘서기도 해서 그렇다. 러시아팀 공연때 잘 보면 젊은 남자들이 관객으로 많이 보이고 특히 할아버님분들의 눈이 가장 빛나기도 한다. 또 차전놀이도 하는데 차전놀이는 적어도 젊거나 어린 관객들에겐 별로 관심거리가 되지 못한다. 외국인 관광객들은 저게 뭐시여?!하고 촬영하기 바쁘지만 애들은 투정부리거나 첨봐서 호기심으로 보지만 학부모들은 저게 애들한테 재미있을 것 같다면 매년 보여주기도 하지만 차전놀이는 운동회때 질리기 해서 미취학아동이면 모를까 큰 반응을 기대하기 어렵다.

특이하게도 차전놀이는 언제나 10월 3일에 한다. 들러리로 동원되는 안동공고 1, 2학년들은 죽을 맛 심지어 바로 다음 주가 시험이다!

축제 즐기기에 작은 팁을 주자면 강변쪽의 공연장이 아니라 주택가쪽으로 도로를 따라 늘어선 노점상은 바가지가 심하고 그쪽에 늘어선 식당이나 포장마차들도 조심해야하는데 구석구석을 통해서 쥐들이 돌아다닌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한가?쥐 2/3크기의 바퀴벌레가 돌아다니는 경우도 종종있다

[1] 원래 양반은 시내에 살지 않고 변두리 집성촌에 살았다. 물론 지금은 시내에도 많이 살고 있다.[2] 각각 퇴계 이황, 서애 류성룡, 학봉 김성일의 집안이다.[3] 사실 일반인의 기준으로 보면 '안동'을 본관으로하는 안동권씨나 안동김씨가 전국적으로도 훨씬 더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양반사회의 등급(class)을 기준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4] 박병호: 韓國傳統社會에 있어서의 同族結合의 類型, 법사학연구 6, 1981, 72쪽; 이순형: 한국의 명문 종가, 서울대학교출판부 2001 등 다수 논저 참조.[5] 나머지 한 명은 월천 조목(趙穆)으로 횡성 조씨지만 가세가 이들만큼은 번성하지 못했다. 다만 역시 안동에서 명망 높은 향반으로 통한다.[6] 김성일은 청계 김진의 사남이며, 김진의 오남들을 안동 천전파, 내앞김씨니 지례김씨니라고 한다.[7] 전국적으로도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안동 권씨, 안동 김씨와는 다르게 안동 장씨는 이 지역에서 그나마 많이 볼 수 있다. 전국 씨들 중에서 대부분은 인동 장씨이다.[8] 몇 해 전 퇴계 종손께서 돌아가셨을 때 대통령을 비롯한 공직자 및 재벌 총수들이 조화를 보냈다. 이는 타 문중과는 비교 불허 수준. 그리고 진성 이씨 여자들은 시집 잘 가기로 소문나 있다.[9] 대표적인 예로 퇴계 이황 종가가 일제에 의해 불타버린 사건이 있는데, 독립운동을 해서 일제 헌병이 불을 냈다고 한다. 이후 1929년에 전국 유림의 도움을 받아 새로 지었다. 퇴계 종가도 이정도 대접인데 다른 문중은...[10] 의성 김씨 문중은 집이 헐리고, 학봉 김성일 묘소도 파헤쳐질 뻔했다. 고성 이씨 또한 종가 절반이 헐리고 철도가 놓여졌다. 안동 권씨 문중도 마찬가지. 이런 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다. 대부분의 독립 운동가를 배출한 동네는 일제에 의해 허물리거나 허물린 다음 그 자리에 신식 건물이 세워졌다.[11] 의성김씨의 가장 큰 사위집안이라고도 하겠다.[12] 숙종시대 남인의 거두 갈암 이현일의 가문. 한국의 대표작가 이문열과 보수정치인 이재오가 후손이다.[13] 류안진 서울대 교수, 이인화(본명 류철균) 이화여대 교수가 유명인물. 이인화 교수는 정유라 입학비리로 구속되어 그 명성이 추락되었다.[14] 지금의 광주광역시를 본관으로 하는 성씨다. 인구 기준 전국 8위에 들 정도로 김해 김씨, 경주 김씨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자랑하는 김씨지만 본관인 광주/전남을 비롯한 호남 지방과 수도권에 집중적으로 많이 살고 있기 때문에 경상도에서는 의외로 보기 드문 성씨인데, 그 경상도에서 광산 김씨를 그나마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경북 안동이다. 안동의 광산 김씨는 광산 김씨 예안파가 대부분이다. 노론 색목의 광산 김씨는 국반이다.[15] 종가나 사당이 있는 기와집들은 안동시 도산면에 옮겨왔다. 군자리 또는 군자마을이라고 한다.[16] 본래 사대부는 4대까지만 제사를 지내는데, 예외적으로 대대로 제사를 지내는 경우 불천위라 한다. 예를 들어 진성 이씨의 경우 퇴계 이황같이 대단한 위인을 배출한 집안은 4대 제사 외 퇴계 이황의 제사를 지낸다. 이황같은 인물은 나라에서 직접 제사를 지내라고 명령을 내렸다. 이를 국불천위라고도 한다. 이는 나라에서 직접 인정한 가문이란 이야기다. 그 외 유림불천위(향불천위)라고 지역 유림들이 모여 지내기로 한 불천위가 있다. 이 역시 당대 그 지역에서 유림들끼리 최고라고 인정했다는 뜻이다.[17] 흔히 맛질 권씨라고도 한다.[18] 예천군 지보면에 있는 동래 정씨, 예천 임씨, 예천 권씨, 안동 장씨 집성촌은 일제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안동군의 행정구역이였다.[19] 봉화 정씨인 정도전은 역사서에서 안동시 봉화군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20] 참고로 안동의 5대 성씨가 아닌 가문에서 국회의원이 나온 예는 제헌국회의 정현모·임영신 의원과 안동(을) 5선의 박해충 의원의 3명 밖에 없다. 시장의 경우도 관선 시절에는 다양한 인물들이 배정되었었지만, 민선에 와서는 안동성씨들이 강세. 정현모, 박해충, 임영신은 안동 5성은 아니나 동래 정씨, 예천 임씨 등 명문가 출신이다.[21] 최근의 예만 들어도, 18대 총선에서 안동 문중이 아닌 김해 허씨 출신 허용범 후보가 한나라당을 달고 나왔는데, 이에 안동 문중들은 안동 김씨의 김광림 의원을 문중공천했고, 결국 한나라당 후보는 문중표에 밀려 떨어졌다. 그 뒤로는 얌전하게 새누리당도 19대 총선과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얌전히 안동 성씨를 공천했다.[22] 근래 특정 고등학교보다 특정 성씨가 더 진급이 잘된다고 카더라[23] 안동 임청각[24] 다른 하나는 대전 성심당[25] 2014년에 재개점했다가 화재로 인해 다시 폐업하고 리모델링중.[26] 맘모스제과 사장님 말씀에 의하면 시내에 있는 본점에서 빵을 가져다 놓는 방식이다. 여기에서 굽는 것이 아니다![27] 이십여 년 전과는 달리 빵을 주식으로 삼는 한국사람들도 많아지고 있어서 식사빵으로서 맛있는 기준(질감, 염도와 구수함 등)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확실히 많아졌다.[28] 2016년 상반기 때 문을 닫았다. 소문에 의하면 주인 어르신이 힘드셔서 더는 못 하신다고 하는 모양.[29] 경상북도 북부 지역의 안동시, 영주시, 의성군, 영양군, 청송군, 봉화군, 예천군[30] 예시 /이 뭐꼬?/(이거 뭐냐?) 는 이 뭐로?, /가가 가가?/ 는 가가 가라? 가 된다 또 /~라?/를 많이 쓰기 때문에 예로 이거 니꺼라?(이거 네 것이야?) 등이 흔하다.[31] 그나마 안동에서 가장 개신교인의 수가 많은 동네가 안동대학교 주변 대학가인데 이 곳 또한 예외는 아니여서, 교회에서 멀지 않은 곳에 무당집이 있다(...)

분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