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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군부 청헌당

파일:서울특별시 휘장_White.svg 서울특별시의 유형문화재
12호[1] 16호 18호[2]
효령대군 이보 묘역 삼군부 청헌당 수표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6호
삼군부 청헌당
三軍府 淸憲堂
소재지 <colbgcolor=#fff,#191919>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574
(공릉동)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관아
수량 / 면적 건물 1棟, 토지 283㎡
지정연도 1973년 6월 18일
관리자
(관리단체)
육군사관학교
파일:삼군부청헌당.jpg
파일:Samgunbu_Cheongheondang.jpg
<colbgcolor=#ae1932> 삼군부 청헌당[3]
1. 개요2. 역사3. 구조

[clearfix]

1. 개요

삼군부의 청사 중 하나였던 건물이다.

2. 역사

삼군부는 조선 초기에 군정과 군령을 총괄하던 관서로, 정식 명칭은 '의흥삼군부(義興三軍府)'였다. 삼군부는 태종 이후 군정 기능은 병조로, 군령 기능은 오위로 분할 및 귀속되며 사라졌다가, 1865년(고종 2년)에 흥선대원군이 재설치했다. 자세한 내용은 삼군부 문서 참조.

청헌당은 재설치 3년 뒤인 1868년(고종 5년) 주당(主堂)인 중앙의 총무당(總武堂), 건너편의 덕의당(德義堂)과 함께 건립되었다. 위치는 예조가 있던 곳으로 원래 예조가 들어오기 전에는 조선 건국 초 삼군부 관청 부지였으며, 지금의 정부서울청사 자리이다. 1880년(고종 17년)에 조정에서 삼군부를 폐지하고 통리기무아문을 설치하면서 청헌당은 통리기무아문의 청사가 되었고, 1894년(고종 31년) 이후에는 시위대에서 청사로 이용했다.

1910년(융희 4년)부터 1926년 순종이 승하할 때까지는 조선 보병대에서 사령부로 사용했다. 이후 일제총무당성북구 돈암동으로 옮기고 덕의당을 헐었으나 청헌당만큼은 그대로 두었다.

1967년에 청헌당 일대에 정부서울청사(당시 정부종합청사)를 짓자, 대한민국 정부에서는 청헌당 건물을 육군사관학교 경내로 옮겼다. 1977년에 보수하면서 모습이 다소 달라졌다.

3. 구조


파일:삼군부청헌당 (1).jpg}}} ||
<colbgcolor=#ae1932> 삼군부 청헌당 현판[4]
건물 전면에 '청헌당'이라 쓴 현판이 걸려있다. 조선 후기 무신이자 강화도 조약 당시 조선 측 대표였던 신헌(초명 신관호)의 글씨라 전해진다.
  • 정면 5칸, 측면 3칸, 총 15칸 건물이다. 기단석 3벌 위에 4각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건물을 올렸다.
  • 지붕은 팔작지붕, 처마는 겹처마이며 공포는 초익공으로, 새 날개 모양이다. 지붕 위에는 용두를 올렸으며 지붕마루는 기와로 마감했다.
  • 건물 전면의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있다.
  • 조선 시대에는 총무당이 가운데에 있었고, 양 옆에 청헌당과 덕의당이 있었으며 두 건물 다 총무당과 복도로 이어져있었다고 한다.

[1] 13호부터 15호까지는 각각 해제되어 사적, 보물로 승격, 포함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1~100호 문서 참조.[2] 17호 옥천암 마애좌상은 2014년 3월 11일에 보물로 승격하면서 해지되었다.[3] 첫 번째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두 번째 사진 출처 – 위키백과.
[4]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