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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제53조(국가등록문화유산의 등록) ① 국가유산청장은 문화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지정문화유산이 아닌 유형문화유산, 기념물 및 민속문화유산 중에서 보존과 활용을 위한 조치가 특별히 필요한 것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할 수 있다. <개정 2017.3.21, 2018.12.24> ② 국가등록문화유산의 등록기준, 절차 및 등록 사항 등은 문화체육관광부령으로 정한다. <개정 2018.12.24> |
조선 고종 갑오개혁 이후 현재까지 남아있는 건축물, 교량, 물품, 시설, 기록, 장비 등을 보존을 위해 국가유산청장이 지정하는 문화재를 말한다. 원칙적으로는 50년 이상이 되어야 하지만, 요즘은 굳이 그렇지도 않다.
2021년 11월 19일 기준으로 819건이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고, 후술되는 내용처럼 지정번호제가 폐지되고 나서 44건이 추가 지정되어 현재 863건이 지정되었고, 이 중 일부는 보물처럼 일련번호가 매겨져 있다.[1]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에서 〈문화재보호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이후 새로 지정 및 재지정한 문화재에 대해서 번호를 부여하지 않게 되면서 국가등록문화재뿐만 아니라 국보, 보물, 사적, 천연기념물 등 국가지정문화재들은 물론 각 시·도에서 지정한 문화재들까지 지정번호가 사라졌다.
한편, 2019년 12월 25일 문화재보호법이 개정되면서 기존 '등록문화재'라는 명칭을 국가등록문화재와 시도등록문화재로 나누었고, 현재 전국적으로 시도등록문화재 지정이 나오고 있다.
어떻게 보면 고물에다 관심도 없는 오래된 물건, 건물들이
자료 출처: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국가문화유산포털 홈페이지
2. 수난
등록문화유산은 국보, 보물 등 다른 문화유산과는 달리 등록문화원으로 지정되기 전이나 지정 이후에 없애 버리거나, 일부만 남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등록문화유산에는 보존, 관리에 대한 법적 강제성이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카라 극장이라든가, 경매에 넘어간 뒤 아무런 제재도 못하고 철거되어 버린 명동 구 한국증권거래소 건물, 그리고 구 유한양행 소사공장 건물 등이 대표적인 사례이다.충북 제천에서는 제천역 구내에 1930년대에 지어진 기관차 검수고가 2003년 등록문화유산 57호로 지정 예고되기 무섭게 제천기관차 승무사업소에서 잽싸게 헐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또한 대구광역시에 있는 반야월역은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후 역사 자리에 도로 깐다고 밀어버린 후 원 위치서 500m 정도 떨어진 곳에 역사를 이전 복원했는데 이전 과정서 역명판이 없어지고 지붕이 새로 씌워지는 등을 해서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었다. 경기도 시흥시 장곡동에 1934년 세워진 소래염전의 목재 소금창고도 2007년 등록문화유산으로 심사가 시작되자마자 건물주인 (주)성담 측의 기습 철거로 40동 중 38동이 사라져 2014년 그 자리에 솔트베이 골프클럽이 들어섰고, 남은 2동은 현재 시흥갯골생태공원 염전체험장 내에 있다.
그런가 하면 서울특별시청 본관이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도 서울시가 기습 해체 하던 도중 문화재청에 딱 걸려서 둘이서 법적 대응까지 거론하며 한참동안 싸우다가 결국은 서울시가 "안전등급이 낮다며 중앙과 외관만 남기고 해체 후 다시 짓는다."
경의선 신촌역의 경우는 민자역사를 건설하느라고 좌우를 바꾸는 센스를 보여주었다. 청량리역 구내에 있는 기관차 검수고는 원형으로 제작되어 있다는 특성 때문에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나 민자역사를 건설하면서 그나마 남아 있던 17칸 중 3칸만 현재 남아있다. 등록문화유산 294호인 경의선 일산역의 경우 2006년 12월에 문화유산으로 지정됐음에도 불구하고 2009년 경의선 전철이 개통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철거 예정으로 알고 있거나 이미 헐린 줄로 알고 있는 사람까지 있었다.
이 문서가 리그베다 위키에 등록된 후 이미 국가등록문화유산 제377호로 지정된 대전 대흥동 소재 뾰족집이 무단 철거되었는데, 알고 보니 대흥1지구 재개발조합이 이 건물을 매입한 후 2010년 10월 초부터 철거에 들어갔다고 한다. 문화유산인데도 재개발이랍시고 철거했으니 말 다한 셈이다. 물론 관할 구청인 대전 중구청이 2014년 대흥동 37-5번지에 이를 복원했지만 활용 방안을 찾지 못해 빈 집 신세고, 2011년 6월 25일에는 경상북도 칠곡군 왜관읍에 있는 낙동강 철교가 태풍 메아리의 북상에 의한 집중 호우로 부분 붕괴되는 일도 있었다.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대안책이나 보완책도 나왔는데, 서울특별시는 2013년부터 '미래유산 보전사업'을 시행중이다. 다만 미래유산 역시 등록문화유산 비슷한 문제점이 있다.
2.1. 원인
등록문화유산이 이렇게 다른 문화유산에 비해 수모를 많이 겪는 이유는 보통 아래와 같다.- 지정문화유산과 등록문화유산을 가르는 기준이, 최소 100년 이상 원형을 보존해야 지정문화유산으로 인정받는다. 따라서 지정문화유산이 되지 못한 대다수의 등록문화유산, 특히 건물은 100년이 안된 일제강점기 시절 만들어진 건물이고, 그중에서도 일제에 의해 조선 통치의 기반으로 삼기 위해 건립된 공공건물이거나 남아있는 적산가옥들이다. 이 과정에서 경부선 등 일부 철도는 일본이 남긴 정식 문서에서도 주변 주민들을 강제노역에 동원하였다고 기록되어 감정이 좋지 못하다. 일단 당장 돈이 없고, 실사용에 문제는 없으니까 쓰는 것이지 좋아서 쓰는 것이 아닌 그냥 오래된 건물이지 문화유산이라는 합의가 없다.
- 등록문화유산 수준의 대다수의 건축물이 20세기 초 건축물인데 당시 세계적인 건축학 조류와는 동떨어졌거나, 조잡한편이다. 간혹 옛 흑백사진을 보고 단순히 서양풍의 건물에 멋을 느끼는 이들도 있지만 사진빨인 경우가 많으며, 아무리 리모델링을 하고 가꾼다고 해도 직접가서 보면 어쩔수 없는 한계가 보여진다. 그리고 적산가옥처럼 일본식 양식이라는 이유, 목조건물 특성상 내구성문제 등으로 역사적 가치 외의 다른 가치는 떨어진다.
- 등록문화유산이 되면 지원에 비해 의무만 많아진다. 일단 등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될 경우 유지와 관리를 위한 수리비용을 정부로부터 지원받을 수 있고, 건축물이 있는 대지의 건폐율과 용적률 규제를 당해 기준 150% 이내에서 완화를 적용받는 한편 재산세 50% 감면 등 세금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다만 건축물 규제나 지원금 혜택을 받을 경우 동국사의 경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일단 증개축이나 사소한 개조도 허가가 필요해지며, 원형을 유지하기 위한 수리임에도 일제 부품이 필요한 상황에[3] 국가유산청이 자재는 무조건 국산을 써야 한다며 수입을 거부하는 막장사태까지 일어나서 일개 개인이나 회사의 입장에서는 애물단지로 전락해버린다. 덤으로 문화유산 관리실태를 본다고 공무원이 뻔질나게 드나드니 장사를 하는 입장에서는 그냥 꽝.
- 돈이 안 된다.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될 경우 위와 같이 지원이 들어오긴 하지만 의무가 더 많을 뿐더러, 등록문화유산이 있을 만한 곳은 오래 전부터 도시였던 곳, 즉 변두리나 주택가보다는 번화가인 경우가 많아 건물주들은 언제나 재건축의 유혹에 노출되어 있다.[4] 물론 해당 건물을 남겨둠으로서 관광 자원으로 써먹으면 되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겠지만 관광자원이 되려면, 외관이 멋지고 세월이 흐른만큼 고풍스러운맛이 있어야 겠지만, 애초에 식민지에 지은 건물이라 몇몇을 제외하면 매우 조잡하고 대충 흉내만 낸 수준. 그래서 비교적 대충 사진빨은 잘 받지만 실제로는 내/외장도 싸구려틱하다. 옛 흑백사진만 보고 갔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많다.[5] 설령 그런다고 해도 그런 돈은 관리도 힘든 구식 건물을 헐고 새로 건물을 지음으로써 얻는 개발 이익에 비해서는 조족지혈이다.
2.2. 문화유산 보존 대안
물론 일제강점기도 역사고, 근대문화의 산 증인이 될 등록문화유서이 개발 이익 때문에 등록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정도로 문화유산이 훼손되고, 근대 건축물로 오래토록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건물들이 헐리거나 일부 잔존되는 등 혹은 오랜 기간 보이지 않는 곳에 들어가 은둔 아닌 은둔을 해야 하는 상황은 바람직하다고 하기 어렵다.해외에서도 비슷한 문제점이 있어서 문화유산 보존은 생각보다 어렵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진국들이 주로 쓰는 방법이 다른 곳에 법에서 허용하는 것보다 더 크게 건물을 지을 수 있는 권리를 반대급부로 주는 것. 예를 들어 종로에 있는 등록문화유산 소유주가 이 권리를 가지고 강남에 있는 법적으로 5층밖에 못 짓는 땅에 10층을 지을 수 있다. 이 권리는 매매도 가능하여 자기 소유의 다른 땅이 없는 경우는 팔면 된다. 그린벨트 이축권을 생각하면 된다. 한국에서도 이명박 정부 때 서울특별시청 본관 보존 문제로 이런 안을 논의한 바 있다. 그러나 이는 채택되지 않았는데, 한국의 건축 개발은 대부분 개인의 수준을 벗어나서 수 조 원 단위로 올라가는 엄청난 규모의 프로젝트 파이낸싱으로 굴러가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한국에 있는 알파돔시티같은 경우는 PF가 5조짜리고, 수백 세대 아파트 단지가 최소 PF가 5천억 원 정도 들어가는 엄청난 대규모 개발사업이니 개인이나 법인 한 곳에서 할 수 있는 규모가 아니다. 이러다 보니 다른 곳에 개발 유인을 제시한다는 게 전혀 실효성이 없어서 그냥 폐기되었다. 또한 대규모 PF라는 얘기는 부동산 사업 하나에 엮인 이해당사자가 한 둘이 아니라는 뜻이다. PF에 자금을 대는 금융회사, 재개발/재건축 조합 관계자, 세입자, 인허가를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등을 감안하면 고작 아파트 하나 짓는 데에도 거의 수십여가지의 이해당사자가 있으며 이들 이해당사자는 전부 이해관계가 다르다.
좀 심하게 말하자면, 아예 등록문화유서으로 지정할 거면 등록문화유산 건물들을 정부가 인수해서 다 뽑아버린 뒤에 특정 섬(무인도)이나 아니면 정부 소유의 땅으로 옮겨서 이식하는게 훨씬 더 경제적인 해결책이 될 거다. 그 자리에서 보존하는게 아니라 아예 등록문화유산 보존용 공간을 정부가 따로 만들자는 것이다. 이렇게 해놓으면 나중에는 이런 등록문화유산 전용 관광코스도 따로 개발해서 여행 컨텐츠로 써먹을 수도 있다. 이는 곧 한국민속촌같은 일종의 세트장을 만들자는 것이다. 일견 터무니없어 보일 수 있지만 비슷한 사례로 일본 아이치현에 있는 메이지무라 박물관[6]이 있다. 국내에서도 댐을 만들어 수몰지구가 생길 때, 물에 잠길 범위에 있는 문화유산들을 뽑아서 한 곳에 모아두는 경우가 있는데 울산광역시의 대곡박물관, 제천시의 청풍문화재단지가 그런 케이스다. 물론 규모가 작은거면은 몰라도, 좀 규모가 있거나 혹은 부지가 없기에 힘들수가 있다. 만약에 전부 다 그럴려면은 엄청난 천문학적인 금액이 들수가 있고, 그걸 부담해줄수 있는지는 사실상 미지수다.
문화와 역사에 관심있는 전문가들은 이 등록문화유서을 지키는 일은 국가와 공공기관을 기대할 수 없고 오직 사서 재산권을 행사해 보존하는 알박기만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사람 외엔 대한민국 아무도 문화유산으로 인정하지 않으니까. 그나마 한국내셔널트러스트 정도만이 이것을 대신 하는 상황이다.
3. 등록문화유산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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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등재되지 못했으나 등록 가치가 있는 건물
세워진 지 최소 50년 이상 되는 오래된 대학교와 일제강점기 때 발전한 도시(부산, 인천, 목포, 군산, 진해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4.1. 현존하는 건물
4.1.1. 수도권
- 신세계백화점 본점 본관(명품관): 1930년에 미쓰코시 백화점 경성점으로 건설되었다. 이상이 소설 날개에서 "날자, 날자꾸나."라고 한 대목이 있는 곳도 이곳이다. 6.25때는 미군 PX였던 역사가 있고,이후 설립된 동화백화점을 삼성이 인수하여 신세계백화점이 되었다. 이후 4층 ㄱ자형 건물을 5층 ㅁ자형으로 증축했다. 등록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있어 2000년경 문화재청에서 등록 건의를 했으나 신세계측에서 거부했다고. 이게 성사되었으면 남대문 한국전력공사 사옥 대신 신세계 본관이 등록문화유산 1호가 되었을 것이다. 2007년 2월 리모델링으로 외장재가 또 다시 교체되었는데 이게 본래 타일에 가까운 소재라고 한다. 덧붙여 신세계 측에서는 비록 등록문화유산은 아니지만 역사가 있는 곳이니만큼 등록문화유산만큼 잘 유지하겠다고 한다. 참고
- 한국은행 소공별관: 한국은행 항목을 참고하기 바란다. 참고로 한국은행 앞 사거리에 있는 건물들은 묘하게도 용도나 건축 둘 중 하나는 옛날의 그것을 유지하고 있다. 위의 신세계가 가장 대표적이다. 그리고 해당 건물은 원래는 상업은행(우리은행의 전신 중 하나)의 본점이었다. 참고로 국가유산청이 밝힌 바로는 골조는 그대로일지 모르나 밑의 구 미도파백화점과 마찬가지로 외형이 상당히 많이 변형되어 등록 검토를 꺼리는 상황이라고 한다.
- 명동 롯데백화점 영플라자: 1939년 9월 조지야(丁字屋)백화점[7]으로 건설되어 해방 후인 1946년 중앙백화점, 1954년 미도파백화점으로 바뀌어 운영되었으나 1977년과 1994년의 개보수와 중축으로 이미 옛 모습은 찾기 어렵게 되었고 설상가상으로 2003년 이 건물을 대대적으로 개보수해 롯데백화점 영플라자가 되었다. 그래도 철거된 화신백화점이나 신신백화점 등 다른 건물들에 비하면 건물이라도 남아 있어 나은 편이다.
- 소공동 한식당 '아리랑'[8]: 중구 소공동 72-2 소재. <대경성도시대관(大京城都市大觀)>의 기록에 따르면, 이 빌딩은 1923년에 미야바야시(宮林) 상점으로 지어졌으며# 원형을 대체로 보존하고 있다.
- 소공동 한일빌딩 외 5동(棟)[9]: 위 3개의 건물에서 멀지 않은 위치에 있는 건물들로 구 한국은행 본관에서 시청 가는 길에 있다. 한일빌딩은 1937년 조선토지경영회사로 지어졌으며, 그 외 건물들도 1932~1969년 지어진 유서깊은 고층건물로 한때 양복점 거리로 알려지기도 했고, 근대 도시경관의 자취를 보여주는 건축물로 보존가치가 있어 서울시가 근현대 건축자산으로 지정하기도 했다. 바로 옆 소공동 112-9번지에 부영그룹이 호텔을 짓겠다고 하자 보존 논의가 본격화되었다. 이 6개동의 건물 중 보존가치가 적다고 판단된 다가·경기빌딩은 2020년 이미 철거된 상태다. 2021년 공사 과정에서 외벽 마감재로 추정되는 물체가 떨어져 차량 파손 사고가 발생하는 등 안전 문제가 불거져 정밀안전진단 결과 최하위 등급인 E등급을 받아, 철거 후 외벽을 보존하는 형태로 재복원하게 됐다. 보행로 확보를 위해 1층은 필로티 형태로 변경될 것으로 보인다.##
- 서대문 충정아파트: 1937년에 지어진, 한국에 현존하는 아파트 중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다. 건축주는 일본인인 도요타 다네오였고,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에는 도요타 아파트, 풍전아파트 등으로 불렸다. 원래 4층이었으나 한국전쟁 후 5층으로 증축[10], 코리아관광호텔로 사용되다가 다시 아파트가 되었다. 1979년 충정로 확장 공사 때 아파트 일부가 잘려나가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보존 논의는 별로 없는 상황이다. 충정아파트는 2003년 안전점검 때 '즉시 철거가 필요한' E등급 붕괴위험 매우높음 판정을 받고[11] 어떻게 보존도 어려운 상황이다. 국가유산청 측에서 안전등급 E등급 소식에 문화유산 검토를 포기했다. 소유권이 복잡한데다 주변 건물들의 보상문제까지 엮여서 재개발도 못하는 상태였지만 2022년 철거가 확정되었다.
- 구 하자마구미(間組) 경성지점: 용산구 한강로2가 112-2에 소재한다. 하자마구미는 한강철교와 한강인도교를 공사한 바 있다.
- CJ제일제당 영등포공장: 구로역에서 고척 스카이돔쪽으로 가다보면 왼쪽에 있는 커다란 건물. 제분 회사였던 동림산업의 공장으로 1960년경에 완공되었으며 1985년 제일제당이 동림산업을 인수 합병하면서 공장도 같이 넘어왔다.
- 인천역: 경인선에 일반열차가 다니던 시절인 1960년에 지어진 건물을 아직까지 쓰고 있어서, 전철역답지 않게 간이역 분위기가 나는 몇 안 되는 역. 2015년에 종합 편의 시설화를 목표로 재개발할 예정이라 어수선했던 가운데, 2016년 현재는 다행히 철거 소문은 쏙 들어간 상황.
-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촬영 한옥: 국내의 대표적 고전 영화 중 하나인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촬영했던 한옥. 주소는 경기도 수원시 팔달구 정조로801번길 30 (남창동). 50여년 전의 작품이지만 수원화성 내 마을에 있는 곳이라 그런지 아직 남아있다. 현 소유주가 등록문화유산 지정과 관련해서는 다소 소극적이라 시간이 걸리겠지만 등록문화유산 지정 예고에 올라올 가능성이 있다.
- 에버랜드 우주관람차: 용인자연농원 시절이던 1982년에 세워졌으며, 국내에 현존하는 관람차 중 제일 오래된 관람차다. 노후화로 2010년 가동을 중지했으나 계속 보존되어 있으며 2016년 12월부터는 일부 시설을 활용해 우주관람차 VR이라는 이름으로 운영을 재개했다.
4.1.2. 부산광역시
- 구 좌천역사: 같은 동해선 선상에 있고 둘 다 일제강점기에 화양절충으로 지어진 남창역은 등록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는데 정작 좌천역은 등록되지 않은 상태라서 동해선이 이설되는 와중에도 역사를 보존할 의무가 없다. 단 국가철도공단 민원 답변에 따르면 (등록문화유산 등록과 상관없이) 일단 자체적으로 존치 예정이라고 한다. (참고)
- 동래별장: 동래온천에 일제강점기 1929년 8월에 건설된 저택. 200여 평 규모의 목조 2층 일본식 건물로 일본 왕족의 숙소, 미군 휴양소, 한국전쟁 당시 대한민국 부통령 관저로 쓰였고 지금은 식당으로 쓰인다.
4.1.3. 대구광역시
- 화본역, 우보역: 1930년대식 역사를 보존하고 있다.
- 구 대구시청 청사: 1955년에 신청사 건립때 미국의 원조를 받으면서 건립을 했다고 한다. 현재는 옆에 신청사를 건립하면서 대구광역시 시의회로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4.1.4. 그 외 지역
- 제주 동양여관: 1938년 개업한 제주 최초의 호텔로, 몇 안 남은 일제강점기 한일(韓日)절충식 건축물이다. 도로 확장으로 건물 일부가 철거되고 태풍으로 파손되면서 옛 모습이 상당히 변형됐다.#
- 전주 전주시외버스터미널: 1974년 완공된 건물로, 내부는 리모델링되어 약간 변형되었으나 외부는 아직 완공 당시의 모습이 남아있다.
- 대전 대전부청사: 대전 중앙로사거리에 있는 1938년 건립된 옛 대전부의 청사로 1935년 대전이 읍에서 부로 승격한 뒤 지어졌다. 1949년 부에서 시로 변경된 뒤 1959년 청사를 대흥동으로 옮기기 전까지 은행동 청사를 시청사로 사용했다. 이후 민간에 매각 되어 소유주가 바뀌다가 오피스텔신축을 이유로 철거위기에 몰렸다. 보존해야한다는 여론이 일어 2023년 9월 300억원에 시에 매입되어 향후 문화공간으로 단장될 예정이다. 아울러 등록문화재 등재도 추진 중이다.
4.2. 사라진 건물
- 舊 국립중앙도서관 소공동 건물: 1923년 일제가 남별궁 터에 '조선총독부도서관'을 세웠으며, 해방 뒤 국립중앙도서관으로 개편됐다가 1973년 남산 어린이회관 건물로 이전 후 반도호텔과 함께 신규법인 호텔롯데에 넘어가 철거됐고, 그 자리에 롯데호텔 서울이 들어섰다.
- 반도호텔: 1938년 일본인 사업가 노구치 시타가후가 조선호텔 뒷편에 세웠다. 해방 후 운영주체가 교통부, 국제관광공사로 각각 바뀌다가 1973년 국립중앙도서관 건물과 함께 호텔롯데에 매각된 후 철거되어 롯데호텔 서울이 들어섰다.
- 화신백화점: 1937년 11월 건설된 당시 경성부에서 제일 큰 백화점. 해방 후에도 계속 운영되다가 1967년 (주)신생에 건물 소유권이 넘어갔다. 1980년 화신그룹 부도 후 1985년에 문을 닫았고, 1986년에 한보주택이 부지를 인수해 백화점을 새로 지으려다 1987년 부지가 동방생명에 넘어간 후 철거되었으며, 2000년부터 삼성그룹 소유의 종로타워가 들어서 있다.
- 내자호텔: 1935년 일본 산고쿠(三國)석탄회사가 직원 숙소로 지은 건물. 광복 이후 미군에 접수되어 한동안 장교 숙소 등으로 이용되다 1972년 대대적인 보수로 "내자호텔"이란 이름의 호텔로 개조되었다. 1990년 4월 서울시가 미군으로부터 양도받아 사직로 확장을 명목으로 그해 8월에 철거되었다.
- 소원(素園):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 5-1 소재. 1939년 건립 후 시인 육당 최남선이 1941년부터 11년간 거주해왔다. 한동안 최남선 가족 소유였으나 2002년 차남 최한웅이 사망하면서 고택이 두온종합건설에 매각되었고, 보존 여론도 있었으나 서울시는 원형 훼손 및 육당의 친일행적 등을 이유로 거부했다. 결국 2003년 1월 철거되어 저층 아파트가 들어섰다. 철거 후 잔존 유품들은 연구가나 소장가들 손에 넘어갔고, 표지석은 개천에 버려졌다가 2007년에야 옛터로 돌아왔다.
- 동양극장: 1935년 충정로에 건립된 극장이며 이 극장을 배경으로 한 동명의 KBS2 주말연속극도 있다.[12] 1980년대 후반에 현대건설이 소유하면서 서울시와 협상을 벌였다가 1990년 2월 28일에 현대측이 기습 철거하는 바람에 한동안 연극인들이 현대측에 찾아가 항의하는 등의 일을 벌였으나 현대 측은 묵살해버렸으며, 현재는 문화일보 사옥이 들어서 있다.
- 舊 경기도청사: 지금의 서울 광화문 시민마당 자리에 있던 건물로, 원래는 조선시대 의정부 터다. 대한제국 내부(內部: 내무부) 청사로 쓰려고 계획되어 1910년 9월에 완공 예정이었으나, 완공 한 달 전에 국권 피탈(경술국치)되어 경기도청이 되어버린 흑역사가 있다. 1967년에 경기도청이 수원시로 이전한 이후에는 치안본부 청사, 서울시경 별관 등으로 쓰이다가 1990년경 해당 건물부지를 주차장으로 쓴다고 철거했다. 2016~2019년 들어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의정부 때 유구와 도청의 본관은 물론 별관 기초부도 발견되었다.
- 조선호텔 구관: 1914년 일본 만주철도가 환구단 터에 호텔 건물을 지은 게 시초이다. 1920년부터 조선총독부 철도국이 관할했다가 해방 후 교통부, 주한미군을 거쳐 1961년 교통부로 환원됐다가, 1963년 국제관광공사로 운영권이 넘어갔다. 1967년 신관이 건립됨에 따라 철거됨.
- 명동 구 한국증권거래소 본사: 1922년 경성현물취인소로 건설되어 1945년 해방 후 영업을 중단했다. 1950년부터 국방부 정훈국이 입주했다가 1956년 대한증권거래소 설립 후 본사로 사용되어왔다. 1979년 여의도 신사옥으로 이전한 뒤 1980년부터 제일투자금융 본점이 됐으나, 1998년 후신인 제일종합금융이 퇴출되면서 일반 상가로 사용되었다. 이후 2005년 초에 경매로 넘어간 뒤 그 해 10월에 철거되어 현재 명동아르누보센텀이 들어섰다.
- 동대문운동장: 1985년 잠실에 종합운동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서울을 대표하는 운동장이었다. 축구장과 야구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축구장이 1926년,야구장이 1925년에 개장했다. 운동경기와 함께 대규모 집회 등 현대사에 큰 일들이 있었던 곳이었는데... 역사가 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 부지에 디자인플라자와 공원을 짓기 위해 2007년 12월부터 철거, 2008년 3월에 완전 철거되었다. 다행히(?) 조명탑과 봉화대는 그 자리를 여전히 지키고 있다. 철거 반대론은 당연히 있었지만 그 자리에 성곽 흔적 등등의 유적이 나오면서 바로 묻혀버렸다. 여담으로 저 건물이 해체되고 나서 동대문운동장역도 당연히 이름이 바뀌었는데, 그 결과로 서울 지하철 역사 중 가장 긴 이름을 가진 역사가 되었다.
- 구 유한양행 소사공장: 경기도 부천시 소사구 성주로 222 (심곡본동) 소재. 1936년에 우리 손으로 처음 건립된 근대적 제약공장으로, 제약실험연구소 및 초자공장 등으로 구성됐다. 거기에 사택/집회소용 건물 목조평옥 2동, 공장용 목조평옥 1동이 각각 더 건립되기도 했다. 1939년 증축 당시에 데이빗 바렛 기사장이 참여하기도 했다. 1950년 6.25 전쟁 때 북한군과 UN군 막사로 쓰였는데, 전쟁으로 화를 입긴 했으나 내화벽돌 건물이라 골격을 보존했다. 1959년 시설 낙후로 점차 방치되다 1967년 초자공장 시설이 한국펄벅재단에 팔려 '소사희망원'이 차려졌다가 1975년 이후 여러 사람들에게 분할 매각되었다. 이중 금형공장이 된 내화벽돌 건물은 2001년 1월 16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01호로 지정됐으나 2003년 소유주가 재산권 침해를 이유로 해제를 신청해 문화재 지정이 해제됐다. 이후 건물 일부를 제철업소에 내주다가 2011년에 절반을 헐었고, 2015년 2월 완전 철거되었다. 반면 구 사택 건물은 2005년 부천시가 매입하여 이듬해에 '펄벅기념관'으로 고쳤다.
- 스카라극장: 한때 유명한 극장이었으나 문화재 등록이 예고되자 건물주에 의해 철거되었다. (...) 항목 참고.
-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구)다빈치관: 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 철거 직전에는 서울과기대 조형대학에서 사용했다. 조형대가 창학관 등 다른 건물에서도 수업하는 등 장소 부족에 시달리자 뒤쪽에 (신)다빈치관을 완공했고, 기존 다빈치관은 주차장과 공원으로 활용하고자 철거했다. 함께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다른 건물들과는 달리 문화유산 보전에 관해 별 논의가 없었다는 점에서 매우 아쉬움을 주는 건물이다. 전쟁 때 국군병원으로 쓰여서인지 귀신 목격담이 잦았던 탓에, 문화유산으로 지정되기 전에 일부러 얼른 철거하고 새로 지은 게 아니냐는 썰도 있지만...
- 국세청 별관: 원래 해당 건물 일대는 1901년 대한제국 때 고종 황제가 도시개조사업을 실시하면서 조성한 잔디밭으로, 1919년 3.1 운동 때 시위 대열이 도착한 지점이었다. 1937년 일제가 '조선체신사무회관' 건물을 세웠다가 해방 뒤 국세청이 별관으로 썼고, 1960년 4.19 혁명과 1987년 6월 항쟁 때 주요 집회장소이기도 했다. 2015년 '역사문화광장'을 만들기 위해 철거됨.
조선총독부 청사: 1926년 건설되어 해방 후 1982년까지 중앙청(정부청사), 1986년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쓰이다가 1995년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김영삼정부에 의해 그 해 광복절부터 철거가 시작되어 대회의실 해체를 마지막으로 1996년 11월 13일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며, 그 자리에는 경복궁 흥례문이 복원되었다. 이에 고고학계 사이에선 "통일 전까지 새 국립중앙박물관 건물 짓고 철거하자"는 온건적인 의견도 있었고, 해체 후 이전 계획도 있었으나 시간 문제도 있고, 2000억원으로 예상되는 비용 문제로 인해[13] 마침내 철거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당시 이전을 위해 마련한 부지가 바로 지금의 독립기념관 내 총독부 철거부재 전시공원. 당시 일본이 총독부 건물을 자국으로 이전하겠다고 요청했으나 김영삼 대통령이 이를 묵살함과 동시에 건물을 폭파해버렸다는 루머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
- 가좌역 구 역사(지상역사): 위의 인천역과 같은 사유. 1970년대 초반에 지어졌다고 한다. 서울내에서 보기 드문 70년대 이전 양식의 중규모 역사. 그리고 경의선 전철 2단계 개통 이전까지만 해도, 전국에서 유일하게 건널목을 건너 승강장으로 통하는 전철역이었다.[14] 2단계 개통 이후에는 역사를 지하화하여 지상역사는 버려진 상황. 현재 생사(?)가 그야말로 위태로운 상황이었다가 결국 2013년 3월에 철거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못미
- 오천역: 국내에서 딱 두 곳만 남아있는 협궤철도 역사 중에 가장 원형 그대로 남아있는 역사였다. 민간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간지 30년째라고. 이천 마장택지지구 개발에 의해, 역사가 아예 철거될 위기에 놓여있는데, 구 청평역, 수색역처럼 빨간벽돌의 건물로서, 한국전쟁 이후로 꽤 오랫동안 보존되어 있는 듯 하다. 오천리에 거주하는 주민 분 말씀에 따르면, 이천시에게 지속적으로 건의를 하면 보존이 가능하다고 해서 건의를 넣었으나 토지보상이 이미 완료된 지역이라 2015년 안으로 철거 할 예정이고 보존계획은 없다라고 못박았다. 결국 오천역은 재개발로 인해 2015년 11월 30일을 끝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 구 경성성서학원: 1921년 경성성서학원(현 서울신학대학교)이 지금의 서울 북아현동(아현성결교회 자리)에 자리를 잡으면서 지었던 5층짜리 벽돌 건물. 1974년 서울신학대학교가 부천으로 이전한 후 명지병원에 매각되었다가 1997년 인근의 아현성결교회가 매입해서 부속 건물로 사용했다가 2010년 예배당을 신축하면서 보존을 위해 건물 안전 진단을 실시한 결과 심한 노후화로 안전대책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으면서 건물 이전 및 복원에 드는 막대한 비용 때문에 결국 2010년 10월 20일에 철거되었다. 사실 아현성결교회가 사용할 당시에 이미 바닥이 기우는 등의 문제로 4~5층은 사용하지 못하고 비워둔 상태였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이전복원이 가능한 수준이었고, 아현성결교회 측도 서울신대에 이 건물의 이전복원을 제안한 바 있었기에 성결교단 내에서도 이 건물의 철거는 뜨거운 논쟁거리였다고 한다.
- 회덕역: 1940년에 준공되어 대전에 마지막으로 남아있던 일제강점기 역사.[15] 화물 수송의 비중이 크고 정차하는 여객열차가 몇 안되어서였는지 지역 주민들의 관심조차 받지 못한 채 2004년경 소리소문없이 철거되었다. 현재 화물역으로서의 기능을 감안해도 현재의 회덕역사는 너무 크고 화려한데다, 가뜩이나 근대문화유산 보존에 소극적인 대전시의 행정과 관련하여 중도일보에서도 대표적인 근대문화유산 말살 사례로 지목할 정도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사례이다.
- 경성제국대학예과 교사: 1923년 겨울에 건축을 시작하여 1924년에 준공된 한반도 최초의 대학교사. 일본의 대학 예과제도(예과2년, 본과 4년)를 따르던 경성제국대학의 대학생들은 이곳에서 예과 2년을 지내며 교양을 쌓고(말이 교양이지 지금 기준으로도 상당한 노력을 요구했다) 본과(동숭동 법문학부, 의학부, 공릉동 이공학부)로 진학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예과로 쓰이다가 한국 전쟁 당시 불타서 외벽만 남았으나 재건해서 70년대까지 서울대학교가 사용하였다. 이후 병원건물, 상가건물로 쓰이다 마지막으로 한림대학교 의대가 2010년대까지 사용했고 2015년 4월 조용히 철거되었다. 외벽은 1924년 지어질 당시 모습을 상당수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치가 높은데다 한국의 대학 역사에도 중요한 유산이기도 했기에 상당히 아쉬운 부분.
- 대구시민운동장 주경기장: 1948년 개장한 종합운동장으로, 세월이 흐르며 노후화가 심각하여 DGB대구은행파크로 재건축되어 사라졌다. 본래 역사성을 고려해 조명탑과 본부석 일부 시설을 남겨놓으려 했지만, 설계 과정에서 안전, 공간 활용 등 이유로 시설 대부분을 철거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결론으로 인해 철거되고 말았다.
- 구 부산세관: 1911년에 완공됐으며 한국전쟁때는 미군 탄약 창고였다가 1970년대까지 쓰인 르네상스 양식의 세관 건물이었다. 1970년대에 지방문화재 제22호로 지정되었으나 도로 확장으로 철거되었다. 단 북항 재개발에 복원 계획이 있다.
- 구 종로구청 청사: 과거 수송초등학교 건물로 이전해서 86년동안 썼었다. 이후 이전하면서 신청사 건립때 일부만 남겨놓으려고 했으나, 종로구의 현상유지와 안전문제 때문에 보존이 어렵다는 이유로 결국 완전 철거를 했다.
- 대전 대흥동 '좋은부동산' 건물: 중구 대흥동 사거리에 있던 점포병용주택 건물이다. 1955년 건축되어 '일양절충식' 주택 형식과 구조로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한국전쟁, 재건시대로 이어지는 근현대 주거 양식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어 보존 가치를 지닌 건축물로 평가받았다. 해당 건물은 2012년 문화재청이, 2013년과 2020년 대전시가 문화재 등록을 추진했으나, 소유주의 건물 매각 의사가 없어 중단된 바 있다. 현재 문화재 보호법상 보존가치가 있는 근대 건축물이라도 소유주의 동의 없이는 문화재 등록이 불가하다. 이에 2021년 대전시는 철거 우려에 해당 건물을 기록화 사업에 포함해 건물 도면 등 기록을 남기도 했다. 그러나 끝내 2023년 7월 철거되었다. 관련기사, 로드뷰
5. 일본의 등록유형문화재 제도
일본에 '등록유형문화재'라는, 한국의 국가등록문화유산과 매우 유사한 제도가 있다. 1996년에 도입되었다. 근대문화유산을 취급한다는 점에서 한국의 국가등록문화유산과 같으며, 메이지 시대를 시작으로 다이쇼 · 쇼와 시대에 조성된 문화유산이 등록유형문화재의 등록 대상이다. 도입 배경 또한 한국과 유사하다. 급격한 도시화에 휩쓸려 근대에 조성된 수많은 건축물들이 손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우수수 헐려 나가자 이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규제 정도가 일반 지정문화재보다 느슨하며, 문화재에다가 등록 사실을 알리는 동판을 부착한다.2019년 4월 기준 12,121개의 등록유형문화재가 있다. 일본의 등록유형문화재 등재 기준은 한국의 국가등록문화유산 등재 기준에 비해 기준이 상당히 널널한 편이다.
등록 번호는 나라 전체가 아닌 도도부현별로 구분해서 부여한다. 예를 들어 도도부현 번호 '1'이 부여되어 있는 홋카이도의 등록유형문화재들에는 제01-0001호, 제01-0002호, 제01-0003호 식의 번호가, 도도부현 번호 '40'이 부여되어 있는 후쿠오카 현의 등록유형문화재들에는 제40-0001호, 제40-0002호, 제40-0003호 식의 번호가 부여되어 있다. 한국처럼 지자체 구분 없이 총괄해서 제1호, 제2호, 제3호 식으로 부여하면 '등록유형문화재 제9923호' · '등록유형문화재 제10211호'처럼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커져 버리기 때문에, 이렇게 도도부현별로 구분해서 번호를 매기는 것이다.
등록유형문화재의 하위 분류로 산업1차 · 산업2차 · 산업3차 · 교통 · 정부청사 · 학교 · 생활 관련 · 문화복지 · 주택 · 종교 · 치산/치수 · 기타가 있다. 이 중 '교통' 분류에 속한 등록유형문화재들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철도 관련 문화재. 19세기 말 ~ 20세기 초중반에 조성된 역사, 플랫폼, 기관차 차고지, 급수탑, 철교, 터널 등이 현재 등록유형문화재 목록에 올라 있으며, 조모 전기철도의 조모선, 텐류하마나코 철도의 텐류하마나코선, 와카사 철도의 와카사선, 쿠마가와 철도의 유노마에선 등 노선 전체가 등록유형문화재로 가득한 로컬 철도도 존재한다. 해당 노선을 가진 철도 회사들은 이를 미끼로 관광객들을 적극 끌어모으고 있는 중이다.
6. 기타
불교계 관련 등록문화유산은 이상하리만치 그 숫자가 매우 적었다. 한때 불교계 등록문화유산은 고작 4건에 불과했다. 그러다가 2014년 불교 유산 21건이 한꺼번에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종교 관련 문화유산은 총 80건이 되었다. 이 중 불교와 개신교가 각각 30건으로 가장 많고, 가톨릭 24건, 유교·토속신앙 등 기타종교 17건이었다.#[1] 이 중 약 15건이 해제된 상황인데, 이는 화재로 인한 소실, 재조사 과정에서 지정 당시와 차이가 나는 이유, 기존 국가지정문화재와의 중첩, 국가지정문화재(보물)나 시·도 지정문화재로의 승격 등 여러 이유가 있다. 해제된 등록문화재들은 각 항목에서 확인.[2] 파사드란 건물의 앞부분(전면)만 남기고 안쪽은 새롭게 건설하는 방식. 구 대법원 청사인 서울시립미술관이 대표적이다. 그런데...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서울특별시청 항목 참조.[3] 동국사는 일본 승려가 창건한 일본식 사찰이다.[4] 지원금을 받지 않았다면 30일 전 신고로 철거하고 재건축할 순 있다.[5] 서울특별시청 본관이나 임시수도 정부청사처럼 나름 규모가 큰 건축물도 종종 있지만 대부분의 등록문화유산은 간이역사 같이 규모가 작은 곳이 대부분이다.[6] 1965년 설립, 1㎢ 부지 면적에 2007년 기준으로 67동의 근대건축물을 이축했다.[7] 모기업은 1867년 고바야시 겐로쿠가 미에현 츠시에 세운 유서깊은 옷가게였다. 1945년 패전 이후인 1956년 '유한회사 조지야'로 재출범했다.[8] 여담으로 업주가 노사연의 언니 노사봉 씨다.[9] 남쪽에서부터 삼보한우빌딩(1969), 칠성빌딩(1964), 부원빌딩(1965), 한일빌딩, 다가빌딩(1969), 경기빌딩(1932)[10] 5층을 올린 것이 불법증축이었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게다가 5층을 올리면서 구조 보강도 하지 않았던 터라 아래쪽의 대들보가 크게 손상된 상태다. 안전진단에서 문제가 되는 이유가 바로 이 대들보 파손 때문.[11] 건물에 균열이 많이 가 있고 스톱홀을 뚫어서 임시방편만 해놓은 상황이다. 언제 붕괴할 지 모른다. 다만 E등급이라고 해서 보존이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며, 다른 건축물 문화유산 중에서도 E등급, 심지어 F등급(...)을 받고 보수한 사례도 있다.[12] 그 드라마에 등장하는 인물이 그 유명한 심영.[13] 차라리 똑같은 모습으로 새로 짓는 비용이 더 쌌으며, 정부는 그 정도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복원할 가치는 없다고 결론내렸으며, 설사 새 박물관을 짓고 철거한다 해도 정부와 국민들은 그럴 만한 인내심이 없었다. 다른 건물과 달리 취소선이 그어진 이유. 참고로 철거에 들어간 비용은 총 117억원.[14] 일반 여객철도에는 이런역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물론, 지금은 한국 전철역중에 저런역은 없다. 가좌역을 지하화하면서 지상역으로 통하는 통로를 폐쇄했기 때문. 현재 지상 승강장으로 가려면 지하역을 거쳐가야 한다.[15] 호남선상의 간이역사들은 1977년 복선화 당시 모두 凸자 역사로 재건축되었고, 같은 시기에 지어진 신탄진역도 정차열차가 늘어나면서 역사를 재건축했기 때문에 회덕역사가 대전에서는 마지막 일제강점기 역사였다. 참고로 폐역 후에도 현존하는 원정역 건물은 1970년 보통역 승격 당시 건축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