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6-21 15:13:51

자유만세

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영화
청춘의 십자로 미몽 자유만세 검사와 여선생
마음의 고향 피아골 자유부인 시집가는 날

자유만세 (1946)
自由萬歲 | Hurrah! For Freedom
파일:자유만세 포스터.jpg
<colbgcolor=#622918><colcolor=#fff> 감독 최인규
각본 전창근
촬영대본 최인규
제작/기획 최완규[1]
제작사 고려영화협회
촬영 한형모
조명 김성춘
편집 양주남
효과 심재훈
음악 조백봉
미술 정경준
녹음 조종국
출연 전창근, 독은기, 유계선, 황려희, 김승호, 한은진, 복혜숙, 윤봉춘, 강계식, 전택이, 하연남, 송억, 독우영, 김복자
장르 로맨스, 멜로, 액션
개봉일 1946년 10월 22일
개봉관 국제극장
관람인원 71,556명[2]

1. 개요2. 설명3. 등장인물4. 줄거리5.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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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인규 감독의 1946년 개봉 영화.

2. 설명

광복 이후 제작되어 상영된 3번째 한국 극영화다. 한동안 '해방 후 최초의 영화'로 알려져 있었는데 최근 연구에 의해 《의사 안중근》이 최초이고 두 번째는 《똘똘이의 모험》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 두 작품은 필름이 남아 있지 않다.

'최초로 항일투쟁을 소재로 한 영화'라고도 알려졌었지만 《의사 안중근》도 항일운동을 하는 내용이므로 더 이상 해당되지 않는다. 독립운동을 하는 청년을 주인공으로, 그를 사랑하는 두 여자와의 관계는 멜로드라마 플롯을, 일본 헌병대와의 추격전과 총격전은 액션영화의 시각적 특성을 보인다. 해방의 감격에 들떠 있던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으로 흥행에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1990년대 이전까지 필름이 현존하는 영화들 중 가장 오래된 영화였으나, 이보다 더한 옛날 필름들이 점차 발굴/복원되면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영화 타이틀은 《청춘의 십자로》가 가져갔으나 2023년 기준 그 타이틀은 근로의 끝에는 가난이 없다가 가져갔다.

개봉 당시 러닝타임은 100분이었는데, 6.25 전쟁의 참화 속에서도 제작자였던 고려영화사 사장 최완규가 보관해왔다가 1975년 7월 영화진흥공사가 광복 30주년을 기념해 연 '흘러간 영화 감상회'에서 공개했지만, 출연진들 중에 박학과 독은기 등 월북자가 있다는 이유로 반토막이 나 현존하는 필름은 51분에 불과하다. 특히 한중이 혜자의 도움으로 탈출한 이후의 후반부가 망실되었으며 대사들 중 '조선'을 '한국'으로 바꿔가며 재녹음했다.(서울신문 <서울En> 기사)

중국으로 수출, 1948년 1월 상하이에서 상영되어 호평을 받았으며 장개석이 이 영화를 보고 나서 "자유만세 한국만세"라는 휘호를 썼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미국에도 수출되어 1950년 5월 11일부터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상영되었다.

3. 등장인물

  • 전창근 - 최한중 역
  • 독은기 - 남부훈(헌병 소위) 역
  • 유계선 - 신미향 역
  • 황려희 - 이혜자(간호부) 역

4. 줄거리

혁명투사 최한중은 탈옥을 감행하여 前 동지를 만나 지하조직으로 해방 직전 최후의 민족항쟁을 하자고 역설하였으나 대부분의 전 동지들은 입을 다물고 한중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다. 그러나 한중은 실망하지 아니하고 꿋꿋하고 열렬한 애국지사와 손을 잡고 극비밀에 일을 착수했다. 이것을 탐지한 경기도 경찰부 고등과 사찰계 주임 남부훈은 한중과 중학 동창인 것도 돌보지 아니하고 한중을 체포코저 혈안이었다. 자기와 부하의 힘만으로도 부족하였는던지 정부(情婦) 미향에게까지 한중 체포에 협력을 구해 두었다. 어느날 한중은 동지를 구하려다 형사대에게 쫓겨 몸을 숨긴 곳은 공교롭게도 미향의 방이다.
독립신보 1946년 10월 16일
젊은 혁명가 최한중(전창근 扮)의 지하조직을 통해서 강력적으로 민족항쟁의 혈투를 다해가는 도정에서 그의 동창이었던 헌병에게 쫓기어 다니다못해 정부 미향(유계선 扮)을 싸고 미묘한 사건과 애정의 교착을 보게 된다. 그러나 한중은 마침내 헌병들과의 교사(交射) 끝에 한중은 일탄(一彈)을 맞아 쓰러지게 되었고 다시 병원에서 간호부 혜자(황려희 扮)와의 새로운 애정을 느껴 그의 도움을 받아 산으로 도망을 간다. 헌병은 이것을 알고 산을 포위하여 마침매 한중을 사살한다. 동창인 헌병도 쓰러져 더러운 일생의 막을 덮는다. 밝으면 8월 15일 조선해방의 깃발이 대공(大空)에 번번(飜飜)한다.
경향신문 1946년 10월 20일

5. 기타



[1] 최인규 감독의 형이다.[2] 개봉 10일간 기록. 1일 7,810명, 2일 6,950명, 3일 7,838명, 4일 7,509명, 5일 7,237명, 6일 11,033명, 7일 7,751명, 8일 5,179명, 9일 5,031명 10일 5,218명. 출처: 예술통신 1946년 11월 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