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3 15:29:11

충정아파트

파일:230331_충정아파트.jpg
▲ 2023년 현재의 충정아파트 모습
파일:충정아파트 _1950.jpg
▲ 맥스 데스퍼 기자[1]가 찍은 사진에 담긴 6.25 전쟁 당시 충정아파트(멀리 굴뚝이 보이는 건물이 충정아파트이다)
대한뉴스 제361호 - 김병조 씨 이야기[2][3][4]

1. 개요2. 역사3. 교통4.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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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충정로 30(충정로3가, 완공 당시에는 경성부 죽첨정)에 위치한 아파트. 지하 1층에서 지상 5층 높이에 60세대 규모의 아파트로, 일본인 토요다 타네오(豊田種雄)가 지었다. 1938년 7월 12일에 준공되었다.[5]

흔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로 알려져 있으나, 최초의 아파트 여부에 관해서는 논란이 있다. 1930년에 준공된 남산동1가 미쿠니 아파트(三國商會アパート)[6]를 최초의 아파트로 보기도 하고, 미쿠니 아파트는 5층 미만으로 사실 한국 건축법상 아파트로 적합하지 않은 데다가 공동화장실과 식당이 건물 내부에 있어 아파트보다는 관사에 가깝다고 보아 충정아파트를 최초로 보기도 하지만 이 역시 4층짜리 건물을 억지로 5층으로 수직증축한거라 거기서 거기다. 또한 충정아파트 이전에 지어졌으며 충정아파트와 비슷하거나 더 큰 규모인 내자동 미쿠니아파트와 채운장아파트를 최초로 보기도 한다.

2. 역사

상당히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던 건축물이다.

1930년대 당시 조선의 주택난을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해결 방안이 제시되었는데, 이 중 하나가 아파트였다. 이후 일본인 건축가 토요타 타네오의 설계 하에 충정아파트가 건설되었다. 당시 명칭은 설계자의 성씨를 본뜬 '도요타 아파트'였다.

그러나 광복 직전에 이 아파트가 한 기업에 의해 인수되어 호텔로 용도가 변경되었고, 광복 후에는 어떤 귀국 해외동포에 의해 무단 점거되기도 했으며, 6.25 전쟁 당시에는 조선인민군이 인민재판소 건물로 사용하면서 건물 지하에서 양민들을 학살하기도 했다.

휴전 이후에는 트래머 호텔이라고 불리는 유엔 전용 호텔[7]이 되었는데, 아들 6형제를 6.25 전쟁에 바쳤다는 이유로 이승만에게 공로훈장을 받은 김병조[8]라는 자가 박정희의 눈에 띄어 1962년 3월 1일자로 이 건물의 관리권을 받게 되었다. 당시 신문기사에 따르면 호텔로 사용하던 미군 측에서 6형제를 잃었다는 사연을 듣고 흔쾌히 양도에 동의하고 수리까지 싹 해서 넘겨주었다고 하는데, 건물의 가치가 그 당시의 시가로 무려 5억 환[9]이었다고 한다.

김병조는 이 건물의 5층에 가건물을 증축하고, 건물의 이름도 '코리아관광호텔'로 바꿔 호텔 영업을 시작한다. 그러나 아들 6형제를 전쟁에서 잃었다는 김병조의 안타까운 사연은 얼마 안 가서 거짓말로 판명되었고, 희대의 사기꾼 김병조가 1962년 8월 16일에 구속과 동시에 정부는 김병조에게 임대했던 이 건물의 계약을 취소한다.# 이후 1962년 11월 23일에 호텔이 폐쇄되었다. 시설공사를 진행한 업자들과 임금을 받지 못한 종업원들은 난리가 났으나, 보상이 제대로 되었는지는 미상이다.

한동안 폐쇄 상태에 있다가 1963년에 한 의사에게 임대계약이 낙찰되어 병원으로 바뀔 뻔했으나 공사비용 문제로 보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여 의사의 부인을 거쳐 다시 다른 사람을 거친 뒤에 1975년에 서울은행[10] 소유가 됐다. 그런데 이 3번째 주인이 1967년에 유림아파트라는 이름으로 분양을 해버렸기 때문에 소유권 문제가 생겼고, 입주자들과 서울은행 간의 협상이 1976년에 타결되어 입주자들이 은행에 매입 대금을 갚아나가게 된다.

그러나 1979년에 충정로 왕복 8차선 확장 공사로 아파트의 3분의 1 정도가 잘려 나가는 수난을 겪게 된다.(...) 당시 입주해 있던 52가구 중 19가구가 헐렸는데, 통째로 철거할 수도 있었지만 입주자들과의 분쟁 때문에 도시계획에 확실히 걸리는 19가구만 철거하고 만 것. 한동안은 건물이 잘려나간 상태로 방치되기까지 했고, 잘려 나간 부분에 살던 주민 중 3가구가 중앙계단 자리에 집을 증축하는 등 공용공간을 점유하자 복도와 계단을 다시 만들면서 현재의 독특한 형태가 되었다.

그리고 세월은 흐르고 흘러 2008년, 마침내 이 건물은 도시환경 정비구역으로 지정되어 재개발 대상이 되었으나, 입주자들에게 지급해야 할 보상금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결국 재개발은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원래 주거지역에 거주하고 있는 세대와, 1979년 이후 공용공간을 무단 점유하며 살던 세대, 그리고 사기꾼 김병조가 불법으로 증축한 5층에 살고 있던 세대, 이렇게 세대 간의 갈등이 있었고, 4층 이하의 세대들은 5층 세대에는 토지 지분이 없음으로 이들이 보상 대상이 될 법적 근거가 없다고 주장하였던 것이다. 이 때문인지 직방, 네이버 부동산 등 부동산 앱 건축대장엔 4층이라고만 나와 있다.

재개발이 흐지부지되자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인 이 아파트를 등록문화재로 지정해야 된단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실제로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진 않았다. 하지만 서울특별시가 2013년에 충정아파트를 우리나라 최초의 아파트로 공인하여 '100년 후의 보물, 서울 속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적은 있다.

등록문화재로 지정을 문화재청에서 검토한 바 있는데, 5층이 불법 증축되면서 건물 구조에 무리를 줬기 때문에 안전진단에서 E등급(즉시철거) 판정이 이미 나와있는 상태여서 문화재 지정을 포기했다. 어떻게든 재개발을 하거나 철거를 하거나 심하게 말하면 삼풍백화점처럼 알아서 무너져버리거나 해야 한다.(...)

2019년에는 서울특별시가 마포로 도시정비형 재개발 정비계획 변경안에 의거해 충정아파트를 철거하지 않기로 하고 이를 문화시설로 이용하겠다는 방안을 제기했는데, 주민들과 세간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유는 이를 주민들의 의사 없이 무작정 정한 점과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보존한다는 의견을 발표하여 훗날 재건축까지 불가능하게 만든데다 전술한 방안을 제시한 이후 거주 중인 주민들을 위한 보수 없이 사실상 손을 놓고 있어 악취, 외벽 일부 붕괴, 침수 등의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어 주민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준공 당시에는 엘리베이터까지 존재했다는 설도 있었으나 1979년 충정로 확장 공사로 인해 잘려나간 구역에 살던 주민들이 엘리베이터를 뜯어내고 주거공간을 만들어서 현재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11]
2020년에 KBS에서 취재를 갔는데, 노후화 특히 생활하수 배출 문제로 고통을 겪고 있다고 한다.

2021년 국민일보기사에서 다시 언급되었다. 5층이 불법 증축된 탓에 개보수나 재개발 관련해서 세대원들끼리 갈등을 겪는 중.

이런 아파트이다 보니 거래도 거의 없으나 그나마 가장 최근 거래된 가격은 2020년에 한 건 있었는데, 약 21평(69.75m2)에 5억 9천만 원이라고. 월세의 경우 40~50만원 선.

충정아파트에서 약 500m 떨어진 미근동에 있는, 1972년에 준공된 서소문아파트[12]2021년 재개발 계획이 확정돼 철거 예정이며, 충정아파트도 안전 문제와 주민 갈등으로 인하여 결국 철거한다고 한다. 대신 서울특별시는 같은 위치에 충정아파트의 역사성을 담은 공개공지를 조성하기로 했다.

일본의 사건사고와 협소주택을 다루는 안협소도 이례적으로 이 아파트를 영상으로 다룬 적이 있다.

2022년 6월 16일 철거가 확정되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28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이 들어설 예정이다.

3. 교통

서울 지하철 2호선, 5호선 충정로역 9번 출구에 내리면 된다. 혹은 160번, 171번, 260번, 270번, 271번, 273번, 370번, 600번, 602번, 700번, 721번, 742번, 1002번, 1004번, 8600번, 8601번, G6005번, 서대문02번(대), 서대문06번 버스를 타고 충정로역5호선 정류장에서 내리면 된다.

4. 여담

지붕재와 각 층에 설치된 텍스가 석면이다. 현재 거주하는 입주민들의 건강안전을 위해 철거가 필요하다.


[1] 6.25 전쟁 중에 사진 '무너진 다리를 건너 탈출하는 피난민들'을 찍어 퓰리처상을 수상한 그 기자이다.[2] 김병조가 누구인가에 대한 이야기는 본문에 서술되어 있다.[3] 아직 충정로 8차로 확장공사가 덜 된 상태라서 잘려나가기 전의 상태인 충정아파트를 확인할 수 있다.[4] 여기서 충정아파트의 이름이 영상에서는 풍전아파트라 불리우는데 그 이유는 아파트를 지은 일본인의 이름이 토요다()를 한국어로 직역하면 '풍성할 풍, 밭 전'이기 때문에 풍전아파트라 불리는 것이다.[5] #[6] 현재도 남아 있는 아파트로, 남산3호터널쌍용남산플래티넘아파트 뒤쪽으로 있다. 남산동1가 16-23에 위치. 미쿠니 아파트에 대하여 다룬 블로그 참고. 이 외에 남아있는 일제강점기 때 건설된 아파트로는 취산아파트(회현동2가 49-4에 있으며, 현재의 이름은 '아일빌딩'이다. 한때 수산청과 대한통운 본사도 입주해 있었다고 한다.참고), 청운장아파트(회현동1가 99-6으로 추정.# #) 등이 있다.[7] CIA 서울지부가 있었다고 한다.[8] 함경남도 출신 피난민으로, 박정희의 눈에 띄었을 때는 제주도에서 이발사로 살고 있었다.[9] 3개월 뒤인 6월 18일부터 대한민국 환에서 대한민국 원으로 10:1로 화폐개혁이 이루어져 5천만 원이 된다.[10] 이듬해 한국신탁은행을 인수한 후 서울신탁은행으로 행명을 변경하였다가 1995년 서울은행으로 환원. 2002년 하나은행에 인수되었다.[11] 영상 내 충정아파트 다음으로 나오는 아파트는 대전 제일아파트로 충청남도 관할이었던 1971년에 완공되었다.[12] 복개천 바로 위에 올라갔다. 그래서 서소문아파트에는 대지권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