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 문서: 제주국제공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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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뜨르 비행장 Altteureu Airfield | |
공항코드 | |
ICAO | RKPM |
IATA / K-Site | K-40 |
주소 | |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1670 | |
활주로 | |
15/33 (1,200m × 30m) | |
소유기관 | |
대한민국 국방부 |
[clearfix]
1. 개요
제주특별자치도의 서귀포시[1] 대정읍 상모리일대에 자리하던 옛 비행장. 현지 지명을 따서 모슬포 비행장이라고도 불린다.'아랫쪽'을 뜻하는 제주 방언 '알'과 '넓은 들판'을 뜻하는 제주 방언 '드르'가 합쳐진 말이다. 즉, 제주도 아랫쪽에 있는 넓은 들판이라는 뜻이다.[2]
마이크로소프트 플라이트 시뮬레이터(2020)에 제주국제공항, 정석비행장과 같이 제주도의 세 공항 중 한곳으로 등장한다.
2. 연혁
1933년에 일본 제국 해군이 임시활주로 형식으로 최초 조성했으며 당시 규모는 6만242평이었고 활주로는 1400m x 70m 였다.
1937년 14만7258평을 추가 매입하여 확장.[3] 1차 완공 당시 규모가 약 20만 평에 이를 정도로 넓어졌다.
1937년 중일전쟁 상하이 전투 당시 일본 제국 해군의 95식 육상공격기(G2H1) 6대와 96식 육상공격기(G3M) 6대가 폭격거점으로 사용했다.[4] 즉 중일전쟁 당시 중화민국으로 향하던 전투기와 폭격기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한 곳이 바로 이 알뜨르 비행장이다. 덕분에 알뜨르 비행장은 중화민국이 가장 치를 떠는 난징 대학살의 배후거점이었다.
1945년부터 일본 해군 901 항공대가 전진기지로 사용했다.[5]
1944년 11월 19일 일본 해군 931 항공대 파견대도 오로쿠 비행장(현 나하 공항)에서 이동, 1945년 4월 10일까지 동중국해 대잠작전 거점으로 사용했다. 당시 운영기체는 97식 함상공격기.
일본 제국 해군 제주도분견대가 1944년 5월 15일~1945년 2월 10일 주둔했다가 김해비행장으로 이동, 부산해군항공대로 재편되기도 한다.
확장을 거듭해서 해방 시점엔 약 80만평에 달했으나 땅만 넓을 뿐이었지 전쟁 말기의 모자란 자원과 지역 주민 강제 동원이란 비효율적 방식으로 비행장은 물론 지하갱도 공사까지 하였고, 나중엔 그 모자라는 자재나 인력도 결전기지 공사에 쓰다보니 완공도 못한 채 패망하게 된다.
한편, 대부분 일본 측 자료라 100% 확신하긴 어렵지만 카미카제 기지로 쓰이기 위한 결전기지 공사를 비행장 부근 해안가에 하긴 했는데 알려진 것과 달리 신요 보트 기지로 쓰였다. 제주도에는 리타 중폭격기를 포함해 비교적 정상적인 항공 병력이 주둔중이었고 항공 자폭 기지는 김해공항같은 육지공항이었다고 한다. 대신 만약 결전작전이 진행되는 최악의 상황이 왔다면 거점기지로 쓰였을 가능성은 높다.
해방 후 미군이 시설을 인수받은 뒤 다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엔 대한민국 국군이 사용하게 됐고, 한때는 육군제1훈련소(강병대)로 운영되기도 했다.[6] 이를 현재는 국방부가 예비시설로서 확보하고 있다.
알뜨르비행장 활주로와 대정초등학교 일대도 6.25 전쟁 중 공군사관학교 건물과 비행훈련장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현재 대부분의 땅을 농지화하는 등 규모가 축소되고 길이 약 1200m, 폭 250~260m의 착륙대와 주기장 등 일부 시설 잔해와 이십여개의 콘크리트 격납고가 남아있다. 격납고들은 한때 농민들이 자연스럽게 창고처럼 사용했고 지금은 대개 그 안이 비어 있다. 그 중 하나에는 평화를 기원하는 조형물로 철근으로 제작한 제로센의 모형이 들어가 있다.
3. 현지 안내문
알뜨르비행장은 일본 해군이 1931년부터 건설하기 시작하였고, 1937년 중일전쟁 초기 폭격기지로 사용하면서 1945년 일본 본토결전 작전준비 비행장으로 이용되었다.
이 시설물은 당시 일본군들이 제주도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건설한 전투기 격납고이다. 현재 19기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1기는 잔재만 남아 있으며, 이 가운데 10기가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이 유적의 길이는 11.19m, 전면 너비 15.78m, 중심 높이 4.45m, 후면너비 6.85m로서 콘크리트 구조물이며, 2013년에 정비되었다.
이 시설물은 당시 일본군들이 제주도민들을 강제 동원하여 건설한 전투기 격납고이다. 현재 19기가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1기는 잔재만 남아 있으며, 이 가운데 10기가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되었다.
이 유적의 길이는 11.19m, 전면 너비 15.78m, 중심 높이 4.45m, 후면너비 6.85m로서 콘크리트 구조물이며, 2013년에 정비되었다.
[1] 건설 당시에는 일본령 조선 전라남도의 제주도(島)였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에는 제주도(道)의 남제주군이 되었고, 2006년 7월 1일 서귀포시와 통합됐다.[2] 제주에는 '드르'라고 표현된 곳이 이 곳 외에도 두 군데 더 있다. 하나는 '우물이 있는 넓은 들판'이라는 의미의 정뜨르이고 또 하나는 '길고 넓은 들판'이라는 의미의 진드르. 벌판 한가운데에 우물(井) 하나가 있었다고 전해지는 정뜨르 지역에는 제주국제공항이 지어졌고 들판이 길게 형성됐다는 진드르 지역(조천읍 신촌리)에는 왕복 4차선 도로(일주동로)가 뚫려 있다. 과거 일본군은 정뜨르 비행장을 서부비행장, 진드르 비행장을 동부비행장, 알뜨르 비행장을 남부비행장으로 활용했다고 한다.[3] 일본 제국 해군 공문에선 매입이라 표현하고 있으나 고작 100일만에 약 15만평의 거대한 땅을 매입하는건 강제 몰수가 아니고서는 불가능하다.[4] 일본측 자료라 축소됐을 가능성은 높다. 한편 일본측 주장으론 나가사키 오무라비행장(현 나가사키 공항 중 해상자위대 주둔지 쪽)을 출발한 폭격기들이 나가사키까지 돌아갈 연료가 없으니까 알뜨르 비행장에 착륙하는 식으로 회항기지로 사용했다고 하며 악천후로 몇 대 추락했다.[5] 901 항공대의 사령부는 45년 5월 15일부터 진해에 주둔.[6] 현재 비행장에서 가까운 서귀포시 대정읍 상모리 일대에는 그 흔적들이 지금도 남아있는데,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정문 기둥의 흔적과 그 근처에 자리한 강병대 교회는 물론 사격장도 남아있으며 인근 대정여자고등학교는 6.25 전쟁 당시 '제98육군병원'이 자리했었다. 현재 강병대 교회와 문기둥, 대정여고 내 옛 육군병원 병동 건물 1동은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로 지정, 보호하고 있으며, 강병대 교회는 지금도 주변 해병부대와 공군부대의 종교활동을 담당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