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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여자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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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ungshin Girls’ High Sch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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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b0082><colcolor=#fff> 개교 1887년
유형 일반계 고등학교
성별 여학교
운영형태 사립
교장 조영호
교훈 굳건한 믿음, 고결한 인격, 희생적 봉사
상징 교목: 회화나무, 교화: 난초
관할 교육청 서울특별시교육청
소재지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4길 16 (잠실동)
홈페이지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학교 알리미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
1. 개요2. 역사
2.1. 학교 연혁
3. 교훈 및 상징
3.1. 교육목표 및 교훈3.2. 학교 상징3.3. 교가3.4. 교칙
4. 학교 특징
4.1. 장학금4.2. 주님의 교회와의 관계
5. 학교 시설
5.1. 중학교 건물(신마리아관)5.2. 고등학교 건물(세브란스관)5.3. 본관(루이스관)5.4. 강당(김마리아회관)5.5. 급식실(도티관)5.6. 체육관5.7. 김필례 기념관5.8. 운동장
6. 학교 생활
6.1. 주요 행사6.2. 운동부
7. 교통편8. 출신 인물
8.1. 기타

1. 개요

서울특별시 송파구 잠실동에 위치한 일반계 여자고등학교.

개신교 미션스쿨으로,[1] 대한예수교장로회 서울노회 관할의 새문안교회에서 운영하고 있다.

2. 역사

1886년 미국장로회 소속 선교사인 애니 앨러스(Annie J. Ellers)가 서울 중구 정동에 정동여학당을 만든 것이 시작이었다. 이희천 교장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처음 세워진 교사 부지는 현재의 덕수궁 중명전 자리. 1895년 종로구 연지동으로 이사 가면서 연동여학당으로 교명을 바꿔 1907년 제1회 졸업생을 배출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꽤 고난의 역사를 겪었다. 1911년에 학제개정으로 중등교육기관이 여자고등보통학교로 개편될 때, 일제 학무국이 정신여학교를 여자고등보통학교로 인가 해주지 않고 탄압했다. 그 와중에 1919년 고종황제의 국상 때 복상[2]하며 일제에 항거한 것은 덤. 동문(同門) 등에서 구명운동을 벌인 끝에 1928년 지정학교로 지정받았다. 당시 지하조직을 통하여 3.1 운동을 전개하였던 애국부인회 회장에 정신여학교 4회 졸업생인 김마리아가 선출되고, 그 본부가 정신여학교에 설치되기도 했다.

1939년 국어말살정책과 신사참배에 대한 거부로 1945년 3월 폐교됐다.
1947년 졸업생인 김필례가 교장이 되어 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 1951년 한국전쟁 때는 부산에 피난 학교도 임시로 세웠으며. 1978년 현재의 위치인 송파구 잠실동으로 이사왔다.

2.1. 학교 연혁

링크 참조.

2023년 2월 9일에 제110회 졸업식이 있었다.

3. 교훈 및 상징

3.1. 교육목표 및 교훈

교훈: 굳건한 믿음, 고결한 인격, 희생적 봉사

3.2. 학교 상징

  • 교표

3.3. 교가

교가는 박목월이 작사했다. 한때 정신여학교 국어 교사였다고 한다. 작곡은 김성태 씨가 했다.
가사는 아래와 같다
1절
하나님의 뜻이 펴신 너른 터전에
진리의 높은 탑을 이루세
배움에 목마른 어린 넋에
줄기차게 솟아나는 지혜의 샘물

2절
어두움과 거짓을 물리친 곳에
찬란한 빛은 솟아오리라
고난과 역경에 닦은 옥은
온누리에 참됨을 밝히는 샛별

3절
배달 겨례 한결 같은 깊은 축복을
무궁화 가지에 꽃이 펴나네
닦아서 갈아서 이룬 날에
이 겨례를 받들어서 성실한 일꾼

후렴
아아, 정신 정신 정절과 신앙의 월계관 위에 (월계관)
마음의 등불을 높이 들어라

3.4. 교칙

동복은 네이비 색의 재킷에 회색 주름치마. 하복은 여밈 부분에 색동띠 같은 게 대어져 있다. 교복 디자인 자체는 무난하나 치마길이 규정이 빡세기 때문에 교복을 마음에 안 들어하는 학생들이 있다.

슬리퍼 등교는 불가능하며 체육복이나 교복을 입어야 한다.

화장때문에 지적받거나 벌점을 받는 일은 거의 없다.

2024년도부터 하복 디자인이 변경되었다.[3] 이때문에 2,3학년 학생들이 불만을 토로했다.

4. 학교 특징

잠실 일대에 사는 여학생들 위주로 배정이 되고, 가락동, 삼전동과 석촌동에서 오기도 한다.

강남3구에 위치해있고, 잠실의 좋은 학군과, 탄천 건너 바로 대치동 학원가가 있어서 꽤 우수한 학교로 알려져 있다.

2018년도 입시 실적에 따르면 의치한 포함,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최상위권 학교에만 45명이 합격했고, 200명 가까이 서울 중위권 대학 이상에 합격한 것으로 알려져서, 송파구에서는 단연 최고, 강남의 학교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입시실적을 기록했다.

4.1. 장학금

고1 1학기때는 고등학교 입학 전에 본 배치고사와 고1 3월 모의고사 성적을 기반으로 전교 20등까지 100만원 상당의 장학금을 수여한다.

고1 2학기부터 고3 1학기까지는 각 학기마다 전교5등까지 방학식 또는 애국주회라고 불리는 시간에 장학증서와 장학금을 받는다.

내신이 치열한 학교이기에 매번 장학금 받는 학생들이 조금씩 바뀐다.

4.2. 주님의 교회와의 관계

강당 항목에도 작성했듯이 강당 건물이 일요일에는 교회 건물로 사용된다. 어떤 교회 사람들은 이 곳을 자신들의 교회로만 인식을 해서 민폐짓을 하기도 하는데 엄밀히 강당 땅과 건물은 학교 소유이고 교회는 50년 계약으로 빌려쓰고 있는 것 뿐이다.

민폐짓의 예는 이러하다. 주중에도 본관 문 앞에 차를 세워서 출입구를 막는다거나, 일요일에 운동장에 세워놓은 차를 안 뺀다던가... 또 학생들이 겪는 불편함으로는, 강당을 관리하는 사람들이 주님의 교회 쪽인데 정신여중고 학생들에게 굉장히 불친절하다는 것. 분명 10시까지 공부하는 공간인데 와서 왜 공부하고 있냐고 무작정 혼낸다던가, 교회 교인이기도 한 학생이 교복을 입고 교회 일 때문에 사무실에 가면 평소보다 불친절하다던가...

사실 학생들이 라면 같은 걸 먹고 잘 안 치우고, 시끄럽게 떠들면서 교회의 부서지기 쉬운 기물들을 파손한 적도 좀 있어서, 학생들을 안 좋아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교회 건물을 짓는 것은 교회의 돈으로 하고 학교에 기증한 것이며, 교인들의 말에 의하면 교회의 헌금 중 30%정도는 학교에 기부한다. 학교 선생님들에 의하면 그 중 많은 부분이 겨울에 학교 난방비로 사용된다고 한다.

5. 학교 시설

정문이 지하철 2호선 종합운동장역 3번출구에서 2분 거리에 있다. 급식실 뒤의 문과 체육관 옆의 쪽문도 존재하는데, 급식실 문은 열리지 않으며 쪽문은 일요일에만 교회 신자들을 위해 잠시 열어둔다.

종합운동장역에서 내려 지상으로 올라오면 바로 정신여중고 건물이 보인다. 교통편이 편하다는 이유로 시험장 사용에 관한 문의가 자주 들어온다고 한다.

한 학년에 13학급이 있도록 건물이 지어졌으나 80년대에 학급수 부족으로 건물 북쪽에 꺾어지는 부분을 증축하여 15학급이 되었는데, 2012년 이후 입학생부터는 13학급이 되었다. 2020년 현재는 한 학년에 12학급이다.

교정이 크기 때문에 방문객(혹은 배달원)들이 건물을 찾기가 쉽지 않다. 정문에서 오른쪽에 있는 건물이 강당인 김마리아 회관, 왼쪽의 건물은 중학교 건물, 정면에 보이는 중학교와 연결통로로 연결된 건물이 본관이다. 고등학교 건물은 가려져서 안 보이지만 중학교처럼 본관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외부 수리는 자주하나 내부는 항상 어딘가 망가져 있다.

5.1. 중학교 건물(신마리아관)

1층부터 4층까지 있으며 동쪽으로 2014년에 증축한 김필례 회관과 연결되어 있고, 서쪽으로는 급식실과 본관과 연결되어 있다. 2층 서쪽 끝에 생활지도부실이 있다. 2014년 교과교실제 시행으로 학교 시스템이 바뀌면서 동편 김필례관이 증축되었으며 교사동 일부 교실은 휴게실로 개조되었다. 본관보다 미묘하게 층 높이가 낮다.[4] 2015년 여름에 외벽을 바꿨다.

중학교 교정에는 벚나무가 많으며, 벚꽃이 만개했을 때 4층 연결복도에서 내려다보는 봄풍경은 그야말로 장관. 선생님들이 추천하는 벚꽃구경 포인트다. 벚꽃이 만개한 주에는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이 교정 앞에서 학급 사진을 많이 찍는다.

5.2. 고등학교 건물(세브란스관)

4층으로 되어있으며 1~2층은 1학년이, 2~3층은 2학년이, 3~4층은 3학년이 사용한다. 신기한 게 층마다 교실과 복도 바닥 색깔이 다르다. 2011년 겨울에 외벽공사를 해서 바뀌었다. 모르는 학생도 많은데 4층 꺾인 복도에 컴퓨터실과 기도실이 있다.

고등학교 교정에 많은 나무는 목련.

5.3. 본관(루이스관)

지하1층부터 5층까지 있다. 중학교와 공유하는 건물이기도 해서 처음에는 교실 찾기가 쉽지 않다. 예를 들어 과학실을 찾아가려면 3층에 과학실이 4개, 과학교사실이 2개 있는데 이중 일부는 중학교 꺼, 일부는 고등학교 꺼. 게다가 4층에도 과학실과 작은 과학교사실이 있다.
  • 1층에 운동장과 연결된 문이 있는데 상당히 번쩍번쩍하다. 원래는 좁은 공간에 구리구리했었는데 2009년에 문 옆의 예랑실을 없애고 문 밖의 베란다같은 부분을 건물로 만들고, 2010년에 바닥 타일과 벽을 바꿔서 지금과 같은 모습이 되었다. 당시 학교 화장실은 구리면서 이런 데는 대리석을 쳐바르냐고 학생들의 불만이 있었다.
  • 2층에는 중고등학교 각각 교무실, 교장실과 교목실이 있다.
  • 3층에는 고3 교무실이 있다. 생물실과 과학교사실도 있는데 과학교사실은 사실상 이과 학생들의 소파이자 정수기이자 얼음 공급원.
  • 몇 년 전까지만 해도 4층에 2학년 교실이 하나 있었다. 보통 2-11이었는데 거기 있는 이유는 노선단이 쉬는시간에도 합창 연습을 하기 때문에 주변 교실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현재 노선단 반은 고등학교 교사동 꺾인 복도 1층으로 갔다.(2016년에는 다시 4층으로 옮겼다) 본관의 이 과거 노선단 교실은 잠시 1,2학년 야자실이 되었다가 다목적실로 변했다. 교실의 이중문과 방음벽에서 노선 교실이었다는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현재 대강당이 세워지기 전에는 4층에 작은 강당이 하나 있었는데, 간신히 한 학년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였다고 한다.
  • 5층에는 도서실과 고3 야자실이 있었는데, 김필례 회관을 만들면서 도서실이 그쪽으로 이사가고, 예전 도서실 자리에는 1,2학년 야자실에 들어섰다. 야자를 시작할 시간이 야구가 시작되는 시간이기도 해서(!!) 야구장 함성소리를 맨날 듣고 살게 된다. 고3야자실 창문은 방음 창문이기는 하나, 닫아놔도 야구장 소리가 다 들리고, 창문을 열면 그냥 시끄럽던 것이 엄청 시끄러워진다. 고1, 고2, 고3 야자실로 나누어져 있는데 고1 2 석은 2015년부터 자율석이 생겼다. 고3 야자실은 자율석/지정석으로 나누어져 있으나 시험기간을 제외한 기간에는 자리가 거의 비기 때문에 원하는 곳에 앉을 수 있다. 고1,2 야자실도 3월,4월만 붐비지 나머지 기간은 붐비지 않는다. 허술한 야자실 관리(물론 청결 상태는 좋다, 야자 결석을 많이 해도 영향이 거의 없다!!!) 와 공부를 강조하지 않는 학교 분위기(....)가 한 몫한 듯 싶다.
    2023년에는 다독다독과 로뎀 이라는 공간이 생겨서 학생들이 자습실로 이용하고 있다. 다독다독과 로뎀은 고1,2 학생들이 주로 이용하고, 고3은 동일한 야자실에서 공부한다.
  • 과거에 6층에 상담실이 있던 흔적이 있지만 출입이 금지된지 오래.

5.4. 강당(김마리아회관)

정신학교 강당이기도 하지만 일요일에는 주님의 교회 예배장소로 사용된다. 주중에도 주님의 교회에서 수요예배 등을 할 때도 사용된다.

원래는 테니스장이 있던 휑한 곳이었지만 1990년 대에 강당이 들어섰다. 학교는 강당이 필요했고, 교회는 건물이 필요했으니 윈-윈. 이 문서에 김마리아 회관이라고 적긴 했지만 사실은 남쪽(정문쪽)은 김마리아회관이고 북쪽은 김필례관이다. 김마리아쪽에 대강당, 중강당, 소강당이 있고 김필례 쪽이 엘리베이터와 연결되는 수련관쪽이다. [5]

매우 넓기도 하고, 계단도 많고 구조도 복잡해서 처음에는 길을 찾기가 어렵다. 정문으로 들어가서 바로 양쪽에 있는 계단을 올라가면 입학식이나 예배를 하는 대강당이 나온다. 왼쪽의 계단으로 내려가면 중강당(루이스 홀)이, 정면에 보이는 문으로 소강당(애니앨러스 홀)이 있다. 오른쪽에 카페가 있는데 사실상 교인 전용이고 정신학교 학생처럼 보이면 보통 쫓아낸다. 학생들이 장난치다가 문이 깨진 적도 있으니 그럴만 하다. 소강당 문을 지나 양쪽으로 통로가 있는데, 왼쪽에는 자습실로 사용되는 제3집회실이 있고, 정신 역사관도 있다. 역사관은 수련회 때나 한번 볼 기회가 있다.

통로를 지나면 엘리베이터와 계단이 있다. 원래는 엘리베이터와 운동장 쪽 문 사이에 김필례 흉상이 있었는데(김필례관이니까) 중학교 건물 앞으로 이사를 갔고, 있던 자리에는 색깔이 다른 타일만 남아 있다. 2층에는 중학교 나눔과 섬김 수련회, 고등학교 밀알수련회의 숙소이자 기도어머니 교실로 사용되는 수련관들이 있고 대강당 무대와 이어지는 문이 있다. 3층에는 밀알실이, 4층에는 주로 주님의 교회 목회자들 사무실이 있어 이용할 일이 많지 않고, 5층에는 정신여중고 학생도 이용이 가능한 주님의 교회 도서관이 있다. 지하에는 식당이 있어서 밀알 수련회를 하면 거기서 밥을 먹는다.

5.5. 급식실(도티관)

2010년 2학기부터 급식실 공사를 시작해서 2011년 9월에 완공되었다. 그 전에는 밥차가 급식을 가져다 줬다. 중고등학교 각 층마다 연결되어있는데, 좁하서 한번에 학생들을 다 수용할 수 없다. 현재의 급식실이 생기고 나서부터 고등학교 급식시간이 4교시 후에서 3교시 후로 조정이 되었다. 원래는 중학교와 3교시 후 급식시간을 학기마다 번갈아가면서 하려고 했으나 운영상의 편리함과 밥을 일찍 먹는게 좋다는 고등학생들 의견도 있어서 3교시 후로 고정이 되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많은 학생들이 일찍 점심을 먹는다는 불만이 있고 특히 고3은 수능 점심시간은 4교시 후 점심시간이랑 비슷한데 적응하기에 좋지 않다는 평이 많다.)

사실 현재의 급식실이 있기 전, 같은 자리에 급식실(!)이 있었다. 1층짜리 작은 건물이었는데 급식소이기도 했다고. 여기서 밥을 먹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이 건물 앞에 고등학생들이 자전거를 세웠는데 이제는 불편하게도 교사동 앞에 세워야 한다. 세브란스관 앞에도 자전거를 세우는 곳이 있다.

급식실은 화이트 인테리어가 인상적이고 양옆 모두 통창이어서 햇살이 잘 들어오는 날 여기서 밥을 먹으면 기분이 좋다.

5.6. 체육관

학교 옆의 우성아파트에서 지어줬다. 예전에는 입학식, 전교생 예배, 부흥회 등의 행사를 여기서 했는데 김마리아 회관이 세워지면서 체육관에 갈 일이 드믈게 되었다, 보통은 핸드볼부가 사용하는데, 체육시간에 비가 오면 가끔 체육관에서 수업을 한다. 아무도 모르지만 체육관 구석에 신문부실이 있다. 2015년 하반기부터 신문부실은 옮겨졌다.

현재는 오래되어 쥐가 자주 발견되어 체육관 공사가 예정되어 있다. 공사 자체에 비용이 많이 들었으나 주님의 교회와 동문들 등으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아 현재 공사에 착수 중이라고 한다.(사실상 국가에서 체육관 공사를 위해 준 돈이 교회와 동문분들이 선뜻 기부해주신 발전기금보다 적지만, 국가?인지 교육청인지 학교에서 이 지원금을 받는 대신 주일에는 체육관을 외부인에게 개방하라는 요청을 했다고 한다. 허나, 이 체육관은 주말에 교회 측에서 사용하기도 해 요청 수락이 가능할지는 모르겠다.)

5.7. 김필례 기념관

원래는 등나무가 얽혀있는 경비실과 풀밭[6]이 있던 곳이지만 2012년 말에 새로 짓기 시작해서 2013년에 완공. 1, 2층은 중고등학교가 반반씩 쓰는 도서관, 3,4층은 중학교 교실, 5층은 체육관 겸 강당이 있다. 5층에 골대가 있어서 농구코트로도 이용할 수 있다.

5.8. 운동장

평소 점심시간에 축구를 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고, 수행평가 (혹은 체육대회..!) 로 구기경기를 하는 기간이면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연습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운동장이 굉장히 넓은데 서쪽은 고등학교가, 동쪽은 중학교가 주로 사용한다. 과거에는 100m 달리기를 할 정도로 운동장이 넓은 학교가 많지 않아서 예전에는 주변 학교들에서 체력장을 하러 왔다고도 한다(대각선으로 하면 간신히 100m가 나온다).

일요일에는 주님의 교회 주차장으로 쓰는게 이것 때문에 주님의 교회와 정신여중고 체육교사들 사이가 좋지 않다고 한다. 주차장으로 쓰면 운동장 모래가 패이기도 하고 모래가 줄어들기도 해서. 때문에 주님의 교회에서 매년 모래를 사준다고 한다.

운동장 서쪽에 컨테이너가 있다. 열쇠는 고등학교 체육 선생님들이 소지하고 있으며, 농구공, 후프, 배구공 등 창고로 쓰인다. 먼지 많음.

한 쪽에는 테니스장이 있다. 코트는 하나밖에 없고 학생들이 들어갈 수 없게 대부분 문이 잠겨있는데, 주말이 되면 그 문이 열린다. (중학교에 테니스부가 있었는데(지금은 모르겠다) 그 때 처음 들어가봤다.) 학생들이 운동을 하다가 테니스공을 발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팔 힘 좋은 친구가 테니스장에 다시 던져 놓기도.

2017년, 테니스장 입구에 새로 농구 코트가 깔렸다. 규격에 1도 맞지 않는 농구 코트이지만, 수행평가를 위해 열심히 연습했다. 운동장에 농구대는 이곳에 설치된 2개와 운동장 한가운데 있는 하나까지, 총 3대가 있다.

구석에 골프장도 있다. 중학교에서 스포츠 시간에 사용한다.

골프장 반대편 농구대 옆에는 멀리뛰기용 모래밭과 평행봉이 있다. 중학생들은 더운 날 그곳에서 쉬곤 한다.

6. 학교 생활

6.1. 주요 행사

예랑제:여름방학 이후
정신여고의 축제 이름인 예랑제는'예수사랑축제'를 줄여 말하는 것이다. 여름방학 동안 다양한 동아리들이 부스 운영을 계획하여 축제를 준비하기 때문에 각 동아리 부장들과 학생회는 여름방학에 일이 꽤 많은 편이다. 예랑제는 보통 찬조공연을 보고 난 이후 각 동아리별로 부스를 운영한다. 찬조는 교내 학생들이 준비하는 내부찬조와 타 학교 학생들이 준비하는 외부찬조가 있다. 내부찬조는 공연하고 싶은 학생들끼리 모여 댄스 팀 등을 만들고, 오디션을 통해 최종 공연할 팀들을 선발한다. 외부찬조는 코로나 때 집단감염 우려 이유로 금지되었다.
추가하시려면 "행사명: 개최시기"로 추가해주시고 부가적인 설명을 적어주세요.

6.2. 운동부

운동부로는 농구부와 수영부, 배구부, 핸드볼부가 있으며 그 중 핸드볼부가 유명하다. 핸드볼부와 수영부는 체육특기생만 뽑는다.

7. 교통편

종합운동장역 서울 지하철 2호선
서울 지하철 9호선
잠실종합운동장(24144·24154·24710)
서울특별시 시내버스
간선
지선
심야
공항
경기도 시내버스
직행
일반

8. 출신 인물

가나다순으로 정렬합니다.
나무위키에 등재될 정도의 저명성 있는 인물만 기록 가능합니다.

8.1. 기타

  • 감리회 학교인 이화학당보다 1년 늦게 세워졌다. 정신여중과 정신여고는 있는지만 정신여대는 없다.[8][9] 같은 장로회 계통의 여대로는 서울여자대학교가 있다.
  • 중고등학교 모두 교실마다 김마리아의 사진이 걸려 있다. 본관 1층 중앙 계단 옆에 커다란 김마리아의 초상화가 걸려있는데 무섭게 생겨서 아무도 안 쳐다볼 때 눈이 움직인다는 소문도 있다. 개신교 학교라 과학실에는 찰스 로버트 다윈의 사진 대신 멘델 같은 사람들이 액자에 걸려있다.
  • 독립운동단체 대한민국애국부인회는 1919년 만들어졌는데, 정신여고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정신여고 출신이 아닌 사람은 이화학당 출신 황애덕 한 명뿐이다.) 초대회장은 오현주였으나, 김마리아가 감옥에서 나온 후, 그녀를 중심으로 단체가 재구성되고 김마리아가 회장을 맡아서 일제강점기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여성독립운동단체가 된다.
  • 현진건B사감과 러브레터의 C여학교가 정신여중고라 카더라. 학교가 구교정에 있을 당시 사감과 학생 사이의 트러블이 신문에 난 적이 있는데 그걸 모티브로 썼을 거라고.
  • 종소리가 찬송가이다.
  • 여교사들 중 상당수가 동문 선배들이다. 그리고 이들 중 상당수는 이화여대[10] 를 졸업했다. 교생들도 거의 대부분 동문 선배 출신이다.
  • 입지조건이 좋다는 평이 있다. 바로 맞은편이 잠실종합운동장이며 걸어서 5~10분쯤 거리에는 COEX가 있다. 게다가 롯데월드도 그리 멀지 않다. 공부하다 지쳐서 여가활동을 하기엔 최상의 입지조건을 갖췄다. 그래서인지 평일 방과 후 시간대가 되면 COEX와 롯데월드에서 정신여중고 학생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 종로구 연지동의 대호빌딩이 구 교사이며 대호빌딩 지상주차장 부지가 운동장이었다. 연지동에는 동국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가 있었으나 동대문구로 이전하였다.
  • 현재 강남 코엑스 맞은편에 현대에서 건설 중인 건물이 사실 정신여중고 위치에 짓고자 문의가 들어왔었다고 한다.(현대 측에서) 그러나 학교에서 거절해 COEX 앞에 건설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 위에서 설명한 것과 같이,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이 있는데, 정신여중고의 야자를 포함한 다양한 사유 때문에 10시 이후부터 경기 중 앰프 사용을 안한다.

[1] 장로회 계열.[2] 상복을 입음[3] 흰색 셔츠에 남색 리본넥타이,그리고 남색치마.[4] 본관과 별관을 연결하는 연결복도에 계단이 2~3개 있어 양쪽 높이를 맞추는 식.[5] 독립운동가 김마리아와 정신여고 교장을 역임한 김필례는 정신여고 동문이기도 하지만, 그에 앞서 조카와 고모 사이이다. (나이는 고모인 김필례가 1891년생으로 한 살 많다.) 김필례의 아버지인 김성섬이 김마리아의 할아버지이다. 사실, 이 집안 엄청난 집안이다. 김마리아를 포함해서, 김필례의 오빠인 김필순, 언니 김순애, 그의 남편 김규식 등 거의 온 집안이 독립운동, 민족계몽운동에 헌신한 존경받을 집안이다.[6] 무궁화동산이라 쓰고 눈썰매장이라 읽는다...(...) 쌓이면 박스 구해서 여기서 썰매 타고 노는 아이들이 많았다.[7] 2.8 독립 선언 선언문을 국내 반입하는데 성공했고 대한애국부인회를 이끄는 활동 등을 펼친 대표적인 여성 독립운동가이다. 팟캐스트 이이제이의 김철수 편을 들어보면 이 분이 얼마나 훌륭한 분이셨는지 알 수 있다. 김마리아는 5만원권이 처음 제작될 때 들어가야 할 인물로 후보에 올랐던 사람이다. 인지도에서는 신사임당, 유관순보다 떨어지지만, 우리나라 여성독립운동을 대표하는 인물이다. 가장 대표적인 여성독립운동가로서 김마리아보다 유관순의 이름이 더 많이 알려진 것은, 친일파이자, 이화학당 재학시절 유관순의 스승이었던 박인덕의 역할이 크다. 그의 친일행적을 덮기 위해서, 자신의 제자를 띄웠던 것이다. (물론, 유관순 열사의 업적을 비하하는 것은 아니다. 유관순 열사도 훌륭한 분이고, 김마리아도 훌륭한 분이지만, 독립운동에서의 역할을 보면 비교가 안 될 정도로 김마리아 큰 역할을 한다.)[8] 정신여학교가 정신여대가 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서는 역사 문단 참조.[9] 정신여자고등학교 - 이화여자대학교 진학자는 상당히 많으며, 대학 내 동문회도 있는 모양.[10] 외고자사고가 없어 공부 잘하는 학생들도 일반계고에 다녔고, 여학생은 공부를 잘해도 스카이보다는 여자대학교에 진학하는 분위기가 있던 시절에는 이대 합격생이 100명씩 있기도 했었다. 그래서 이대 출신 선생님이 많을 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