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5-15 02:44:43

반기독교


1. 개요2. 기독교 비판의 초점
2.1. 기독교 신도의 문제2.2. 기독교 교회 시스템의 문제2.3. 기독교 교리 혹은 야훼 그 자체의 문제2.4. 기독교권에서 형성된 사회문화적 관점과 타 문화권과의 충돌2.5. 종교자유 해석에 대한 문제.2.6. 지엽적 정치성향과 결부된 문제
3. 문화적 반기독교주의
3.1. 대중음악의 기독교 배격3.2. 다른 무브먼트들과의 비교3.3. 영향3.4. 문화적 한계
4. 한국에서의 반기독교5. 역사6. 비판7. 반기독교주의자 목록8. 관련 문서

1. 개요

反基督敎. 기독교에 대해 반대 혹은 적대하는 태도.[1] 분류만으로 보자면 반종교의 한 종류이나, 그 활동 양상이나 배경 논리, 동기의 측면에서는 사뭇 다르다. 원래는 반기독교주의라고 표기하는 것이 맞으나, 편의상 이쪽으로 한다.

넓게 보면 반기독교는 기독교에 반대/적대하는 경우를 모두 포함하므로, 무신론자불가지론자 혹은 이신론자나 범신론자 중에도 반기독교인이 존재할 수 있다. 심지어 다른 종교인, 예를 들어 유대교인이나 무슬림들도 반기독교인일 수 있다는 것. 무신론자이면서 기독교를 사회악으로 보는 경우나 유대인인데 기독교를 이단/사이비로 적대하는 경우 등등. 쉽게 말해 반기독교라는 것은 무신론이나 불가지론 혹은 특정 종교 같은 것들과는 조금 다른 형태의 분류이기 때문에 다른 것들과 겹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기독교 내부에서도 기독교의 부패한 점을 보고 반기독교적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다.

기독교에 대한 반감이 사회적으로 크게 드러난 경우는 기독교 문화권이 타 문화권과 충돌할 때라고 볼 수 있겠지만,[2] 이를 근대 이후의 반 기독교 운동과 동일 선상에 놓는 것은 어폐가 있다. 반 기독교 운동의 기원은 근대 이후 범신론, 무신론 등 유일신 사상에 대한 비판이 본격화되던 시기로 잡아야 할 것이다. 스피노자, 프리드리히 니체[3] 등이 이러한 사상의 선구자로 꼽히며,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이 확대되면서 서양에서도 국가 단위 반 기독교 운동이 벌어지기도 하였다.

기독교가 중세 시대 동안 유럽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자랑했고 이는 근현대의 사상과 철학에도 여러모로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유럽과 미국이 전 세계적으로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현대이니만큼 이들이 가장 많이 믿는 종교인 기독교의 영향력 또한 엄청나다. 그 때문에 기독교에 대항하는 반기독교 또한 반종교 사상 중에서 가장 커다란 규모를 자랑한다. 아예 반종교=반기독교라고 인식을 가지는 경우도 많을 정도. 국내 반종교 운동도 반기독교를 중심으로 일어나고 있다. 물론 키보드워리어들은 반이슬람교까지 사실상 반 아브라함 계통의 종교를 병행한다

한국의 경우는 약간 특이한 방향으로 발전한 경향이기도 하며, 주로 반기독교라기 보다는 반개신교적인 개념인데 양상이 생각보다 복잡하며 복합적인 편이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정치권의 각 지지세력중 두가지 성향을 가진 측의 물밑싸움과 비슷한 경향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는 주로 경제권을 가진 대형교회들이 보수성향이 큰 쪽이 다수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종의 산업구조적 딜레마와도 연관이 있다. 결론적으로 이들이 지지한 정치권 인사들이 의석을 차지하고 대권까지 차지하게 되는 등의 상황이 벌어지곤 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이며, 실제로 과거 이명박 대선후보가 당선될 당시의 상황과도 무관하지 않고 종교편향 논란이 계속적으로 점화되는 성향이었던 것은 별로 이상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즉, 대한민국 사회전반에 있는 진보보수 논란의 좌우 패싸움은 결국 종교 문제에도 부합하고 있는 셈이 된다. 때문에 이 반기독교, 아니 사실은 반개신교적 관점의 개념은 외려 종교신도들이 생각하는 단순 교리적 문제와는 전혀 다른 지역구와 종교의 상관관계 및 종교와 정치권의 상호관계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을수 밖에 없는 성격이고, 더군다나 정교유착 등의 이런 저런 문제가 결부되어 있어서 사실상 유럽권이나 미국의 반기독교, 반종교나 무신론 운동과는 궤를 달리하는 편이다. [4]

이는 문화상대주의적인 요소로도 설명될수 있긴 한데, 이유인즉 기독교는 과거 서구 사회에서는 이데올로기적인 역할로 정치기관의 하나로서 작용하거나 그 위계가 낮아진 근현대 이후에도, 즉 세속권위가 강화된 이후에도 상당기간 법류이나 사회인습적 환경에 많은 영향을 줬지만, 한국이나 일본과 같은 아시아 국가들에는 그런 영향이 없었던 셈이므로 반대 성향과 이유에 있어서도 차별화되는 셈이 된다. 이쪽의 경우는 기독교가 굴러온 돌의 성향이 되고 친미 반미, 좌우 대립 및 공산주의에 대한 포비아 등이 결합되어 매우 괴랄한 상황을 보이고, 운동권 좌파등과의 과거사와 결부하여 이후에 나타난 우익적 성향의 기독교의 대두 등이 상당한 문제가 되는 것도 사실인 관계로 이런 저런 복합적인 성향을 가질수 밖에 없는 필연성을 내포하는데, 이것은 사실상 반기독교계 혹은 반종교계의 문제가 되며, 내부적으로도 유신론과 무신론의 대립을 야기하는 등의 이런 저런 딜레마가 생길수 밖에 없게 된다.

국내의 상황이 반기독교 정서를 중심으로 한 반종교 활동이 된 이유도 사실은 이와 비슷한데, 종교단체 자체의 문제도 심각하거니와 그 종교단체와 정권의 조합이 빛어낸 결과도 참으로 아스트랄하기 때문. 윗단락에 있는 것과 같이 원래 생각보다 다원적, 즉 불교와 유교, 도교사상등이 혼재되어 있던 아시아스러운 문화적 토대에 기독교가 굴러온 다음에 생긴 반발 역시도 반기독교 정서와 결부되기 때문에[5] 외려 서구적 입장의 무신론이나 반종교적 상황을 전제한 반기독교적 정서와는 실질적으로 거리가 있는 편이다.

2. 기독교 비판의 초점

기본적으로 기독교 비판에 세 가지 포인트를 잡고 있다.

1. 기독교 신도의 문제
2. 기독교 교회 시스템의 문제
3. 기독교 교리 자체의 오류(문제)

1번은 사실 기독교를 개인적으로 싫어할 이유로는 충분하나, 기독교의 존재 자체를 사회악으로 볼 근거로는 약하다. 그러나 1번과 2번, 2번과 3번은 각각 밀접한 연결고리가 있는 문제인데다 3번의 경우 본질적인 문제들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 역시 기독교의 존재 자체를 비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시 기독교 자체를 비판하기 위한 핵심 문제는 3번이라고 할 수 있으며, 반기독교 측에서 가장 문제삼는 것도 3번이다. 1, 2번을 문제 삼을 때도 근본적인 바탕은 3번에 있다는 식이다. 대체로 3번의 경우 교리에서 나타나는 문제도 있겠지만 기독교 교리 자체가 가진 불합리함, 논리적으로 서로 충돌해 모순이 생기는 구절들, 오늘날까지도 종파마다 서로 해석이 달라 긴가민가한 구절들 등을 문제삼는 경우도 많다.

이외에도 현대에 와서는 단순히 기독교 비판이라고 기독교 자체를 비판하는 것으로 여겨지진 않는 상황이다. 2000년대 이후에 이슬람권과 기독교권의 심각한 충돌이 지속되고 중동이 난황을 겪고 있는 이래, 근본주의 기독교인들과 이슬람권의 충돌, 그리고 이를 해석하는 문화 다원주의적 관점등이 엮이면서 생각보다 상당히 복잡한 양상을 보이게 되는데, 대략적으로 추가해 볼 내용을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4. 기독교권에서 형성된 사회문화적 관점과 타 문화권과의 충돌
5. 종교자유 해석에 대한 문제
6. 지역적 정치성향과 결부된 문제

즉, 사실은 반기독교라는 것이 의미하는 바는 지역편차가 꽤 심하다. 러시아에서 가톨릭 교회를 비판해도 큰 의미가 없고, 미국에서 정교회를 비판하더라도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키지 않는 것과 같다. 반대로 미국에서 기독교를 비판할 경우는 그것이 반기독교적인 성향으로 전제될수 있고, 이 문제가 이슬람이나 아시아권의 상대시각에서는 기독교권으로 보이는 문화권에서 보장하는 헌법상의 종교자유에 대한 문제와 충돌하면서 생기는 문제가 이런 저런 심각성을 더해가는 셈이 된다.

2.1. 기독교 신도의 문제

개개 신도의 성향, 혹은 목사신부를 비롯한 교회 지도층의 비행에 초점을 둔다. 반기독교측에서는 이런 문제들이 기독교의 근본교리 상의 문제에서 비롯된다고 비판하고, 반면에 기독교측에서는 대체로 '잘못 믿는 사람이 잘못'이라고 반론하는 편이다. 다만 저런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대부분 수만에서 수십만의 신도들을 거느리는 대형교회의 수뇌부들이고, 그 신도들을 합치면 국내 기독교인의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게 문제.[6]

한마디로 신도의 집단화에 대한 문제라는 점을 지적하는 편이라고 할수 있다. 기본적으로 종교는 이데올로기 집단인데다가 사회화를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 사회화된 집단 자체의 성향이 문제가 된다. 어떤 의미에서는 신도 개개인의 문제가 아닌 신도가 집단성을 가지게 되는 상황 자체가 문제가 되는 셈이 된다. 즉, 엄밀히 말하면 잘못 믿는 사람들의 문제가 되는데, 성모상 배변사건, 훼불 사건 등과 같이 일부 교역자들, 혹은 종교 신도들의 문제만 있는 것이라면 신도 개개인이 잘못된 교리교육의 피해를 본다고 정의되겠지만, 이것이 다분히 집단적이고 선동적인 방향으로 이뤄지는 아젠다의 문제를 가진다는 것은 지적될 수밖에 없다. 이는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부분의 근본주의 기독교 계통에서 자주 보이는 악폐습이다. 멀리는 우간다의 동성애 금지법 또한 이러한 양상을 보인다고 할 수 있는데, 집단화하여 정치 의사까지 작용되는 상황이 되면 어떻게 되는가에 대한 예시이다. 이외에도 남미의 낙태금지법에 대한 개념에는 이런 요소들이 적지 않다. 법률은 세습법이지만, 종교법이 관습법처럼 남아서 다수 대중이 지지하는 종교의 윤리를 실제 법령에 적용하는 케이스가 되는 셈.

미시적 시각으로 보면 이는 잘못 믿는다는 일부 신도의 문제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거시적인 시각으로 보면 이것은 분명히 집단화된 문화의 문제이므로 기독교 교리의 전파 유형에 따라서 문제를 지적할 수밖에 없게 된다. 큰 종파별로 보자면 가톨릭이 현재 한국에서 개신교보다 이미지가 좋은 것은 근본주의자 비율이 덜하기 때문이고, 가톨릭 자체가 현실수긍적인 개념(유신론적 진화론의 채용 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개신교만 유독 반기독교의 초점이 되는 것은 결국 이런 문제 때문이다. 단순히 보면 신도 개개인의 문제로 생각할 수도 있으나, 좀 더 상위적인 개념인 집단의식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는 딜레마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2.2. 기독교 교회 시스템의 문제

이것은 1에서 언급된 신도들의 문제가 사실은 기독교 신도 개인의 문제 만이 아니라, 기독교의 교회 시스템이 비행이나 비리를 조장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목사가 강력한 권위를 가질 수 있는 교회라는 시스템이 이러한 비리와 부도덕이 일어나는 토양이 된다는 주장으로, 교회라는 것이 하나의 '사회생활'이자 신도수를 유치하는 사실상의 '서비스업' 같은 상황이 되면서 돈과 권력이 몰리고 이에 따라 부정부패가 생겨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기독교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으면서도 교회를 불신하는 사람들은 '탈 교회주의'로 흘러가서 속칭 '가나안 성도'[7]가 되기도 한다. 다만 이러한 사람들은 주류 기독교에서는 배척당한다.

기독교 내부에서 자기종파 내 기독교 교회 체계에 회의를 느낀 사람들이 가톨릭이나 개신교의 다른 종파 등지로 이동하기도 한다.

한국 교회의 경우는 그보다는 좀더 실질적인 문제가 더 많은 상황인데, 먼저 교회개혁실천 연대의 주장을 근거로 해 보면 교계의 부채규모가 약 4~5조 정도라고 집계되는 상황이다. 그만큼 중소형에서 대형에 이르기까지 무리한 사업확장을 통해서 딜레마가 생긴 셈. 여기에 사업구조적 문제가 실질적으로 발생해 있는 상태라서 부조리가 상당히 많을 수밖에 없다.

중대형교회의 자체 신도수 집계를 통한 주장을 반추해 보면 이들 교회의 신도수는 실질적으로 전체 종교인구의 반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고, 당연히 헌금 수입의 문제가 생긴다. 즉, 사실상 소득세 문제가 불거진 상황에서 나온 가난한 목사가 다수인 이유는 이 시장형성의 문제와 결부된 셈으로, 이들은 수적으로는 다수인데 경제적으로는 약자이다. 다수의 목사들은 7만개를 훌쩍 넘어 8만에 육박한다는 그 중소형 교회들을 운영하는 업주의 형태라고 한다면 이미 신도수는 한정이 되어 있는 상황에 작은 시장을 두고 서로 나눠먹기를 하려는 형태가 되면서 양극화가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딜레마. 교계 내에서도 교회세습이 문제가 되는 이유들은 이런 것 때문이고 그나마 가톨릭이 개신교보다 교회 체계에서 비판을 덜 받을 수 있던 이유도 이런 점에서 기인한다. 즉, 가톨릭은 아예 중앙집권적 교구제 운용 형태라서 이런 딜레마가 없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그 교회의 기득권을 두고 서로 싸울 이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며, 신도와 성직자간, 신도와 신도 간 알력이 작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

즉, 결론적으로...개신교회 자체가 개교회시장경제 원리를 아주 충실히 이행하는 집단이다 보니 생기는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이 문제는 자율해석과 만인 제사장설에서 기인한 문제에서 시장경제 원리와 만나면서 생긴 무분별한 창업의 결과라는 답으로 요약할 수 있을 수준.

2.3. 기독교 교리 혹은 야훼 그 자체의 문제

이것은 '기독교의 교리'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에, 잘못된 교회 시스템이 태어나고, 개개 신도나 교회 지도층의 비리에 근거가 된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어 위에 언급된 여러 사건사고들이 벌어지는 이유가, 종교의 근본적이고 핵심적인 문제들에 대해 합리적인 증명 없이 믿으라고 말하는 교조주의적 태도로 인해 개인의 사리사욕이나 집단의 광기에 쉽게 이용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경우는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모든 기독교회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8]

또한 기독교 교리, 성경 구절의 논리적 오류나 모순점 이런 것들만 콕 짚어 내기도 한다. 가령 성경에 ~한 구절이 있는데 다른 구절과 비교해서 ~한 내용이 서로 아귀가 안맞는다거나 해석이 확실치 않아 현 신학계와 종파마다 서로 해석이 상이한 경우 그런 것들을 물고 늘어지며 성경도 완전무결한, 틀리지 않는 신의 말씀만 있는 것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성스러움이나 권위성을 낮추려고 드는 경우. 한마디로 "성경도 아주 틀린 게 없이 완전 논리정연하고 성스럽기만 한 책은 아냐" 뭐 이런 식.

교리 뿐만 아니라 기독교의 신인 야훼(여호와) 자체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성경에 묘사된 야훼의 행위 중에서 영아 살해, 대량 학살(전염병을 이용한 것 포함)/인종청소, 권위주의 등이 주요 비판 대상이 된다.

이것이 민족주의, 민족종교환빠 등과 결합되면 "왜 우리 민족은 한민족인데 전통적인 이스라엘 유대인들의 신인 야훼(여호와)를 믿어야 되는가? 진정한 한민족의 정체성을 갖고 있다면 종교를 믿어도 우리 종교를 믿자!"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즉, 신을 믿고 싶어하는 심리는 이해하나 그럴 거라면 우리 고유 민족 종교가 없는 것도 아닌데 왜 타 민족의 종교를 그리 믿느냐는 것이 주요 논지. 기독교인들 입장에서 보면 "집 근처 지방대가 있는데 뭐하러 인서울, 의대 가려 하냐?" 보다도 비교가 안될정도로 뒷목 잡을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한국인은 기독교 신자는 물론이요, 불교 신자들도 전부 천도교, 대종교로 개종해야 된다는 말이 된다. 그리고 저런 소리를 하는 사람 중 천도교, 대종교, 원불교 신자는 거의 없고 절대다수가 무교다. 전형적인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경우 옥시덴탈리즘이 포함된) 배외사상의 폐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교나 유교보다 기독교에 대해 이러한 논리가 발생하는 까닭은, 기독교의 배타성때문에 반발한것이다. 즉, 기독교인들이 기존에 있던 타종교를 무시하거나 비하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기독교는 역시 보편종교가 아니라 타문화 타민족의 특수한 믿음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보통 1번과 2번에 해당하는 사람이 그 정도가 심해지면 3번까지 도달하는 경우가 많은 편이며 그보다는 적지만 적지 않은 경우 1번과 2번은 의외로 크게 문제삼지 않는데 반해 3번으로 곧바로 넘어가는 사람도 존재한다. 물론 이 경우 1번과 2번이 진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해서 그런 것이라기보다는 1번, 2번은 어차피 내가 안 까도(욕 안해도) 다른 反기독교인들이 알아서 까줄 것이며 개인적으론 3번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어서 그런 경우이다.

사실 이 문제는 과거로부터 쭉 이어져온 전통적인 논쟁이다. 이유인즉, 종교개혁 시기를 포함해서 근대 이전의 근세와 근대 초기의 종교적 양상을 보면 대부분 종교비판이 신분 계층이 높은 쪽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즉, 평민이나 하층민들이 그걸 할 수 있을 여력과 사회적 입지가 없던 사회이다 보니까 기독교에 대한 접근각이 다분히 인문학적, 정치적인 입장이었고, 이는 실제로 19세기 이후 20세기 초까지 계속된 관계로, 외려 다른 항목보다도 더 근본적인 문제이지만, 다른 두가지 전통적 문제 제기에 비해서는 생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의 예시를 들어 보면, 첫번째 문제가 대두되게 된 상황은 붉은악마 응원단 명칭 논란이나 의정부 단군상 참수사건을 비롯한 단군상에 대한 테러 및 초파일 연등행진 저지 행동 등의 다소 중세적인 반달리즘들이 노출되었기 때문이고, 이외에 훼불이나 성모상 배변사건, 약현동 성당 방화사건[9] 등이 언론에 노출되면서 생겨난 교인들의 행동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면서 생긴 딜레마들이 비판의 선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아프간 피랍사태등의 사회적 이슈, 혹은 종교인 소득세 과세 문제와 같은 사회현안들이 제시된 문제도 있을 뿐더러...작게는 매주 대형교회 인근 주민들이 주차난 때문에 참다참다 폭발해서 대형교회 입주 반대 시위를 하는 경우까지 발생하는 등의 실생활과의 관련성이 큰 경우라서 직접적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고, 이는 두번째 문제와도 연관성을 가지게 되는 상황이 생기면서 주된 비판 사유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경우가 되는 편이다.

현대에서 3번의 경우가 지적되는 것은 주로 창조주의 논쟁에 입각한 문제라든가, 현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와 연관된 이슈[10] 등에 있어서이다. 또한 역사 논쟁에 있어서도 꽤 많이 등장하곤 하는 문제인데... 대표적으로 신구교 분쟁기 칼뱅주의의 잔혹한 구금 및 투옥이나 처형 등에 대한 문제와 그 계승 형태인 올리버 크롬웰 당시의 아일랜드 학살 등에 의한 교리적 문제, 즉 이데올로기로서의 문제 등이 대두되거나 중동 고대사에 있어서 양측 비교를 통해서 하레디같은 유대교 원리주의자들, 이스라엘 극우파들이 주장하는 영토에 대한 역사적 권리에 대한 회의주의적 시각 등이 전제되다 보면 생기는 기록의 신빙성 문제에 대한 제기 등이 이와 같은 경우이다.

알다시피 기독교의 구약은 사실상 유대교 신화, 즉 토라(모세오경)가 포함된 타나크에서 유래하였다. 문제는 이것을 신격화하려는 것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면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딜레마들인 건데, 당장에 환빠들이 왜 비판을 당하는가에 대해서 생각해 보면 답이 생각보다 명확하게 나온다. 어차피 상고사라는 것들 대부분은 실증적 역사 기록이 아닌 신화적 뻥튀기를 담보로 할 수밖에 없으며, 실제로 유대교의 종교사적 문헌들 역시 이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것이 현실인데, 문제는 이것을 애초부터 진리라고 주장해온 시간이 너무 길었던 것인 셈. 결국 창조론자들이 이걸 두고 실제 역사로 우기다 보니 생기는 딜레마고... 환빠들과 이들이 오랜 논쟁 역시도(...) 사실 노아의 홍수드립에 발끈한 환빠들과 서로 들이받는 구도로 시작된 것일 뿐 그닥 새로운 문제는 아니었다.

따라서 사실 첫번째 두번째 영역이 사회전반성을 통해 나타나는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면 세번째는 보다 심층적인 내용인 것은 맞지만, 소재에 따라서 결론적으로 직접적인 문제가 제기될 수밖에 없는 계통이 존재하기 때문에 두 단계를 건너 뛰고 바로 세번째에서 서로 논쟁이 불거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닌 것이다. 허나, 자주 지적되는 대로, 사실은 유대인들도 역사성을 인정하지 않는 내용들을 혼자만 역사라고 주장하는 개념문제는 기독교 근본주의의 실질적인 폐해인 셈. 비근본주의 교회의 경우는 약간 다른데, 정치적 입지도 있고 실제로 이쪽이 현재 이스라엘 내에 조성된 기독교 성지의 많은 부분을 관리하거나 관리 교회들과 연관되어 개입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또한 창조주의를 무조건적으로 신봉하는 경우가 아니다 보니까 다소 유연성이 있지만, 근본주의측은 답이 없다.

2.4. 기독교권에서 형성된 사회문화적 관점과 타 문화권과의 충돌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요즘 일어나고 있는 이슬람권과의 충돌이다. 물론 이 문제는 기독교권 이외에도 세속주의와 이슬람의 충돌이라는 시각으로 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 그 세속화된 법 자체를 만든 쪽이 기독교 문화권이기 때문에 생기는 종교적 편린이 전혀 없을 수가 없고, 실제로 이슬람에 대한 혐오나 공포심리의 저변에 있는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에 생기는 딜레마가 그리 간단치는 않은 셈.

예컨대, 샤를리 엡도 테러 당시 미국측의 이슬람 비난 여론의 경우 상당수 보수 기독교계 성향의 정치성을 가진 쪽에서 이슬람을 비난했던 것을 들 수 있다. 즉, 기독교가 문화적 관점에서 이미 사회인습적 기틀을 이룬지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이런 문화적 토대에 대한 이해에는 종교적 심리가 완전히 배제될 수 없고, 인권이나 정치에 대한 해석 자체가 이미 기독교적 세속주의화 된 국가들의 기준에서 의거하는 바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문화적 충돌이라고 할수 있다.

그러나 그 면면을 보면 사실은 생각보다 훨씬 더 뿌리깊은 역사적 민족적 기원을 가지고 있는 셈이 되는데, 바로 그 기독교 문화적 관점의 국가들이 19세기 제국주의 식민지의 지배자들이었고, 이슬람권 국가들 대부분은 그들 국가의 식민지였다가 독립한 셈이 되다 보니 생기는 일종의 반발심리가 저변에 깔려 있고, 이는 사실 대다수 아시아 국가들에서 벌어지는 기독교에 대한 배타성과도 그대로 연관된다. 외려 그 현지의 종교 문화적 관점 역시도 기독교와 비슷하게 토착화되어 있기 때문에, 그리고 역사적 문제들이 겹치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가치관 vs 가치관의 구도가 되는 셈이다.

다른 문단에 서술된 환빠나 혹은 국수주의자들이 반기독교적 정서를 내포하는 경우도 이에 해당하는 셈이다. 단지 이런 쪽은 좀더 극단적으로 그것이 표출되는 것이지만, 사실상 종교랑 문화 충돌문제 때문에 생기는 딜레마가 제일 심한 종교도 기독교이긴 하고, 그중에서 가장 심하게 표출된 사례를 가진 경우가 한국의 경우 개신교도들이었기 때문에 생기는 반기독교 정서 역시도 비판의 원인이 된다.

이 경우, 대부분의 논지가 전통과 타인의 종교자유에 대한 존중(한국 및 유럽이나 미국, 기타 종교자유가 보장되는 헌법을 가진 국가들), 혹은 전통에 대한 존중(주로 이슬람 국가)으로 귀결된다. 다른 고전적인 종교비판 논쟁과의 차이점은 이 논지들이 문화상대주의의 대두와 함께 비교적 새로 등장한 가치관 vs 가치관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며, 이것이 비교적 현대에 대두되게 된 이유는[8] 신흥국들의 성장세가 눈에 띄면서 생긴 현상이라 할 수 있다.

2.5. 종교자유 해석에 대한 문제.

현대 서구사회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반기독교적/반종교적 논쟁이자 기독교 vs 무신론 논쟁의 가장 큰 원인이자 최전선.

이 문제는 한국사회에서는 아직 크게 부각되어 있진 않지만, 외국에서는 상당히 흔하게 벌어지는 논란점이다. 뭐 한마디로 요약하면 헌법에 쓰여진 그 종교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할 것인가? 라는 기준선을 두고 벌어지는 세속주의 vs 근본주의간의 논쟁임과 동시에 무신론 vs 유신론의 논쟁이기도 하다.

이는 사실 교리 문제와는 살포시 다른 양상을 보이는 딜레마인데, 일종의 권리 해석의 문제이다. 즉, 외국에서 노방전도를 하는 종교인들을 당국에 고발하곤 하는 사태가 벌어지는 경우, 그리고 종교 상징물의 공공장소 철거 탄원이 이어지거나 하는 경우들도 이에 해당하는데, 생각보다 더 골이 깊고 실질적인 문제인 셈이며 양쪽 모두 나름의 근거가 있다.

사실 종교의 자유라는 것은 결론적으로 그 교리가 옳든가 옳지 않든가 자신이 믿을 수 있는 사실을 선택할 권리를 의미한다. 쉽게 말하자면, 샨테리아 등의 일부 종교에서 산 제물 이식을 치른다고 해서 그 의식 자체가 현실의 여러 법령에 문제가 된다지만 샨테리아라는 종교 자체를 금지하진 않는 것, 혹은 여호와의 증인이나 몰몬교 등에 대해서 기독교계에서는 이들을 이단으로 규정하지만, 이 종교 자체를 금지하진 못하는 것도 이와 비슷한 상황인 셈이다. 문제는 이것이 공공의 영역에 어떻게 드러나는가에 따라서 생기는 딜레마인데, 대표적으로 남미에서 현재진행중인 낙태 금지법 철폐 혹은 완화운동(보수 가톨릭 윤리와 관련)[11]이나 창조주의 교과서 등재 내용이 이와 부합하는 내용이 된다.

이 문제 역시도 비교적 최근에 발생하기 시작한 문제이기도 하며, 특히 2000년대 이후에 많은 논란이 있어 왔는데, 꼭 기독교 종파마다 하나씩은 걸리는 문제가 있다는 특징이 있다. 가톨릭의 경우는 다른 문제는 차치하고 낙태와 피임 문제에 있어서 직격탄을 맞는 경우가 꽤 있고, 이쪽도 근본주의자들의 문제가 있다 보니 정치적 논란으로 점화되는 경우도 꽤 있다.[12]

문제는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이나 미국 등의 서구 국가들의 보수 윤리 기준이란게 기독교 윤리적 관점에서 제시되어 있고 때문에 꼭 이런 문제가 발생하면 반기독교적 정서에 입각한, 그러니까 무신론이나 세속주의적 관점의 여러 논란이 한번에 재점화될 수밖에 없다는 딜레마가 언제나 존재한다는 점.

대한민국에서 여태까지는 이 문제가 그렇게 크게 다뤄지진 않았다. 이유인즉, 현재 대한민국은 종교 자유에 대한 문제에 대해서 심각할 정도로 관대하고 정교분리 원칙에 대해서도 그렇게 엄격한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단지, 개신교인들이 주로 일으키는 포교행위에 대한 민원이나 신고를 종교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꼴불견(...) 때문에 종종 이런저런 문제가 제시되곤 하지만, 주로 개신교에 대한 혐오정서만 더 부채질하고 있는 결론만 계속될 뿐, 아직 본격화되진 않은 문제인 셈이다.[13] 그러나 이미 외국에서는 상당히 많은 논점들이 이 문제를 따라서 제기되고 있고, 이 역시도 다분히 현대적인 관점의 종교 윤리에 대한 비판의 하나로서 존재하는셈. [14]

2.6. 지엽적 정치성향과 결부된 문제

게다가...이는 국가 단위 혹은 지역 단위로 생길 수밖에 없는 다수 vs 소수의 문제로 요약이 가능한데, 애초에 종교라는 것은 하나의 문화적 소양이며, 결론적으로 이는 그 자신이 어떤 문화적 그룹에 속하는지에 대한 일종의 지표로 사용되는 사회적 그룹의 분기점이기도 하다.

이게 미국처럼 기독교 이외 종교가 소수인 국가라면 모를까나, 한국처럼 기독교 인구수가 30%가 채 안 되는 국가에서는 종교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데, 특히나 이런 문제로 인해서 가장 심각한 상황이 전제된 것이 바로 유고슬라비아 내전이었다.

아프간에서도 비슷한 문제가 있어서 한국인 선교사들에 대해서 이슬람 전통을 무시한다는 개념을 가진 이들 덕분에 아시아인들의 위험도가 높아지고 또한 한국인들이 중국인이나 일본인 행세를 하곤 했다는 증언 역시도 별로 드문 이야기가 아닌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 된다. 이것이 지엽적 정치성향의 문제가 되는 이유는 결론적으로 이들 갈등이 발생하는 국가들의 경우 전통적으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살다가 기독교가 유입되고 그 유입된 종교의 행동이 상당한 문제를 가져왔기 때문에 생기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허나 그보다 근본적으로 결국 그 지역의 정치성향과 시스템은 그 지역의 전통과 밀접한 관련사항을 가질 수밖에 없고, 때문에 기독교가 주로 유입문화인 국가들의 경우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딜레마이기도 하다.

사실 이 문제는 상당히 뿌리가 깊기도 한데, 현대사에서 그 예를 찾아 보라고 하면 남베트남이 그 한 예시로 꼽힐수 있고, 먼저 열거한 유고 내전 외에도 체첸 사태 등이 이와 유사한 면모를 보인다. 단지, 먼저 서술한 바와 같이 현재의 인권이나 정치체제에 대한 기준 성향 자체가 원래 기독교권 문화에서 세속화된 국가들을 기준하는 경우라는 점 때문에 생기는 반목이 계속될 수밖에 없고, 때문에 그 해당 지역의 종교를 기반하는 정치권에서는 이에 대해서 외교적, 문화적 항의를 계속하게 되는 딜레마는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셈.

한국 개신교의 정치적 성향은, 보수반공 성향의 목사, 실향민 출신[15] 그리고 강남 대형교회 재력가 교인들 덕분에 전체 개신교인의 투표 성향이 왜곡되어 비추어진 점이 크다. 즉 '침묵하는 다수'와 대비되는 시끄러운 소수란 면모가 지나치게 강하게 나타나는 면모라고 할 수 있다. 조용한 다수의 일반 신도들보다는 과격한 행보를 걷는 소수의 대형교회 목사 및 재력가 신도들에게 언론에서 더욱 관심을 가지게 되고, 이것이 개신교 신자들 전체의 여론인 것처럼 왜곡되기 쉬운 것.

실제로 한국의 기독교(개신교)인의 성향을 보여주는 자료를 보면 87년 대선에서도 불교도는 55%가 보수성향 노태우 후보와 김종필 후보[16]를 지지했고, 천주교와 개신교 신자들은 70% 이상이 김영삼 후보와 김대중 후보[17]를 지지했다.(무종교는 보수후보 56% 김영삼+김대중 43%) 한국 통계학회 논문집 제 3권 3호 1996.12 (다운 가능)

2002년 대선에서도 이런 성향은 마찬가지였다. 개신교인들의 33%가 이회창 후보를 지지한 반면 46%가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다. 불교인의 경우 44%가 이회창 후보를, 34%가 노무현 후보를 선택해 개신교인과 다른 투표 행태를 나타냈다. 천주교 신자는 이 후보 42%, 노 후보 40%로 거의 대등한 분포를 보였다. 양자대결 구도로[18] 볼 경우 개신교인은 불교인에 비하여 23%, 천주교인들보다 15% 노무현 후보를 더 찍었다.

2012년 5월 당시 대선주자 선호율도 오히려 개신교도들이 상대적으로 야당성향이 강했다.
  •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의 경우 불교 신자의 지지율은 54.5%였고, 천주교 및 개신교 신자들로부터는 각각 39.5%,와 37.8%의 지지를 얻었다.
  • 안철수 무소속 후보의 경우는 거꾸로 불교 신자의 지지율은 18.5%로 평균 지지율에 밑돌았지만, 천주교 신자의 지지율은 27.9%로 평균을 웃돌았다. 개신교 신자의 경우 안 후보에 대한 지지율이 24.3%로 평균지지율에 근접했다.
  •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천주교 신자의 지지율이 7.0%에 그쳤지만, 개신교(11.2%)와 불교(10.0%) 신자의 지지율은 불교보다 상대적으로 높았다.

실제 12월 치뤄진 18대 대선에서도 종교는 주된 변수가 아니었다.

그러므로 개신교 자체가 딱히 타 종교에 비해 보수라고 보기도 어렵다. 오히려 상대적으론 약간 진보로 나온다. # #

아, 물론 개독+박사모라는 끔찍한 혼종도 없지는 않다.

3. 문화적 반기독교주의

위와 같이 기독교의 종교적 관점에 대한 인문학적 접근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이에서 파생한 문화적 반기독교 성향이라는 것도 존재한다. 사실 이건 하나의 무브먼트와 비슷하게 이뤄진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다른 성향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이는 특징이 있다. 특히나 음악 분야에서 많은 역할을 했다고 할수 있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이런 문화적 영역에서 종교 자체에 대한 비판성을 전제로 시작된 문화가 사실은 없다. 물론 문학적 분야에서는 어느정도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실질적으로 한국의 경우는 이런 문화들을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는 형태였기 때문에, 외려 반종교적 형태의 음악이나 서브컬쳐들이 자생할수 있는 환경이 매우 부족했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공백인 셈.

즉, 이런 문화적 반기독교주의가 존재할수 있던 이유는 애초에 이들이 발생한 외국의 선례에서 기독교 자체가 보수적 입장이었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종의 특이성 때문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한국에서 취합하게 된 반기독교문화의 요소들은 대부분 장르화된 문화들이며 실제로 이 무브먼트의 성격보다는 정제된 다음의 것을 받아들여서 하나의 장르로 인식하게 된 성향이 더 크다. 더군다나 이들 무브먼트들이 현지에서 한창 진행중일 시절 우리는 독재시대였기 때문에 언론이나 매체 검열이 심했고, 결국 1990년대에 들어서 이미 한번더 재해석된 문화들을 받아들인 것이 시작점이기 때문에 한국의 성향과 외국의 경우는 같지 않다고 하겠다.

3.1. 대중음악의 기독교 배격

1960년대와 70년대 히피나 대안사상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미국을 중심축으로 한 영미권에서 주로 기독교 사상에 대한 한계점을 자각하고 이를 다른 사상적 조류에서의 차용에 의한 보완이나 대안을 취하는 형태로 노선이 바뀌게 되는 여러 무브먼트들이 생기면서, 이것이 음악이나 다른 대중예술 분화에 영향을 주게 되어 발생한 것이 이 반기독교, 혹은 비기독교적 관점의 문화와 예술이며, 주로 서브컬쳐(하위문화)중에서도 특히 장르문화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이게 좀더 심화 발전되면서 생겨난 것이 기독교를 배격하는 경향인데, 1970년대의 펑크 및 하드코어 무브먼트 등에서 기인한 좌익/무신론적 성향외에도 유럽 지역에서 발생한 사타니즘이나 이교도적 컨셉을 차용한 익스트림 메탈계열의 음악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인문학적인 반기독교 정서와 다른 점은 이들 문화권에서 기독교가 작용한 방식인데, 이쪽에서는 기독교 자체가 보수주의적 관점으로 대두되면서 새로운 시도나 진보를 위한 가치관으로 기독교를 부정하면서 그 예술적 가치를 다른 것에서 찾는다는 개념이 적용된 것이 특징이라고 할수 있다.

때문에 처음에는 펑크나 하드코어 무브먼트 성격의 종교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무신론적 관점에서 이적한 단계가 바로 사타니즘이었고, 그러다가 이쪽에서 분할된 것이 바로 신비주의적 혹은 민족주의적 신화의 차용을 매개로 한 문화예술적 동향인데, 이것이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이유는 특정 장르문화, 그러니까 메탈이나 락음악 계통의 매니아 시장에서 주로 시작되어 다른 분야에도 영향을 준 경우이기 때문이다.

21세기 현재에는 외려 이것들이 하나의 기믹으로 작용하는 형태로 발전되었다. 즉, 1990년대의 민속음악이나 전통음악의 메탈과의 접합 등의 경우는 마이너 시장에서의 순수성을 내포하고 있었지만, 나름 이 시장성이 형성되고 밴드들의 판매고들이 보장되면서 이 자체, 즉 사타니즘이나 이교도적 컨셉이 하나의 컨셉으로 작용하면서 외려 종교적 부정의 의미는 옅어졌다.

하나 1980~90년대의 경우는 이게 하나의 트렌드처럼 자리하면서 실제로 교회에 방화를 하는 등[19]의 헤프닝도 벌어진 바가 있었고 이런 컨셉들을 들고 나오는 밴드들도 이런 저런 루머 성향이 많았던, 그러니까 네오나치라든가, 실제로 사탄숭배를 하는 쪽이라든가 하는 이야기도 꽤 많았었다.

3.2. 다른 무브먼트들과의 비교

사실 대중예술 분화에서 이런 성향은 외려 서구사회에서는 인종주의적 성향과도 연관성이 꽤 많은데, 특히나 가장 대조적인 것이 바로 흑인음악과 흑인 대중예술과의 대비성이다. 즉, 주로 백인들의 문화적 그룹 내에서 행해진 성향이라고 할수 있다.

이는 그만큼 백인들의 문화적 사회적 성향이 개인화된 반면 흑인들의 경우는 인종차별적 관점하에 있어서 교회문화적 관점을 계속 유지했기 때문에 생겨난 간극이라고 할수 있는데, 실제로 흑인음악의 경우는 퇴폐적이라고 까이는 경우는 있더라도 이 종교부정에 대한 개념을 내포하진 않는 특징이 있다.

이는 사실 그보다 더 오래전의 민족주의적 관점의, 그러니까 19세기 쯤의 민족주의적 성향을 가진 음악이나 예술과도 다른데, 적어도 이 시기엔 과거의 가치관, 그러니까 민족별 종파주의적 관점이 그대로 적용되어서 기독교의 종파 자체를 하나의 민족정체성으로 인정하는 성향이 있었다고 한다면, 1980년대 이후의 반기독교적, 반종교적 음악 성향은 애초에 종교 자체를 완전히 부정하는 컨셉으로 시작하는 특징이 있다. 즉, 그것을 부정하고 정 반대의 이미지를 취함으로서 표현양식을 정하거나(사타니즘), 반대로 그 종교 이전의 기원으로의 회귀(주로 이교도적 컨셉을 가진 밴드들)하는 형태를 취하게 됨으로서 기독교 외적 가치를 발굴한다는 개념, 혹은 동양적 컨셉의 차용(1960~70년대의 아트락이나 프로그레시브 락)으로 인해서 기존 음악이 가진 한계를 갱신해 보겠다는 성향 등이 나타난 셈.

이외에도 진보적 성향(Liberal)을 가진 정치적 의사가 섞인 예술적 성향 등등이 이와 같은 경우에 속한다. [20]

인문학적 의미에서의 반기독교주의와 다른 점이야 어차피 분야가 다르니 상당히 많지만, 기독교가 적대시한 심상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크다. 특히나 사타니즘 계열의 음악에서 자주 드러나는 경우인데, 사실상 이 컬트들은 15~18세기쯤 마녀사냥 전설에서 나올 법한 그 사타니즘에 대한 컬트를 그대로 인용해서 상품화한 셈이 된다. 외려 형태로 보면 퀴어 퍼레이드와 같은, 그러니까 일부 윤리에서 죄악시한 편견 자체를 그대로 재현함으로서 그 논리를 비꼬는 형태와 같은 구성을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3.3. 영향

사실 상당히 많은 분야에 영향을 주긴 했다. 특히나 먼저 서술한 바와 같이 흑인음악이나 흑인들의 대중문화와는 달리 기독교에 대해서 부정적 시선을 전제로 깔고 시작된 무브먼트였기 때문에 외려 기독교 윤리적 관점의 오류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구성된 문화급부에 의해서 많은 역할을 한 것이 사실이다.

단지, 먼저 말한바와 같이 프로그레시브 메탈 밴드들이 아닌 바에는 대부분 이것을 일종의 컨셉으로 이해하고 그 컨셉을 통해서 예술성을 주장하는 형태로 발전해서 아티스트 본인과 종교와의 역학관계는 반드시 반기독교와 합치하진 않는다. 예시로, 작고한 신해철씨도 가톨릭교도 였고, 얼마전 근본주의 개신교계에서 극성을 부린 레이디가가 역시 가톨릭교도이다. 고딕스러운 이미지를 가진 에반에센스의 경우 사실은 크리스챤 락 시장에 음반을 내려고 했고, 현재 알터브릿지라는 이름으로 활동중인 구 크리드의 경우도 지금과는 전혀 이미지가 다른 크리스챤 그런지 밴드였다. 물론 이 밴드의 기타리스트가 밝힌 가장 존경하는 밴드중 하나가 켈틱프로스트(사타니즘)였다는 건 충격과 공포.

때문에 1990년대와는 달리 이는 정치와 사상에 결합된 개념보다는 외려 현대에 와서는 컨셉의 다양성을 충족시키는 세속주의에 대한 개념으로 이해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러나 돌이켜 보면 결국 예전의 그 기독교적 보수관에 입각한 예술성에 대한 반발이 가져온 효과가 문화예술 분야에서의 다양성을 충족시켰다는 점에 있어서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다.

또한 이미 서술한 바와 같이 주로 백인들의 서브컬쳐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이유인즉, 흑인음악이 주로 교회음악을 매개로 해서 발전해 온 형식이 대중화 되면서 세속화된것과 비교하면 이쪽은 그 흑인음악과 구별되는 특징으로 주로 백인들에 의해서 만들어지고[21] 구매된 음악이었던 점도 한 몫 하는 셈.

따라서 외려 긍정적 영향을 보자면 대중음악의 세속화와 표현의 한계를 갱신하는데 한 몫을 했다는 것이 아마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쉽게 말해서 아무리 사타니즘을 통해서 부정적 관점을 표출하는 비판적 시각을 제시해도 그 자체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청자들의 관점이란게 어느정도 이해의 한계가 있고, 공감의 한계가 있기 때문에(타고난 문화적 정서적 문제로 인한) 그 하나로 모든 것을 이룰수는 없지만, 적어도 기독교적 정서가 묶어 놓은 표현의 한계를 넘기는 것에 있어서는 상당한 진전을 보게 한 것이 이쪽이라고 할수 있다.

3.4. 문화적 한계

허나, 생각보다 한계도 극명한 경우이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 것으로 보인다.

먼저, 애초에 이 음악적/문화적 무브먼트가 시작된 장르 자체가 소수시장을 대상하는 장르음악이었다. 장르음악이란게, 어차피 듣는 사람들은 듣고 안 듣는 사람들은 안 듣는 경우이기 때문에 이것이 대중화되지 않는 이상은 파급효과가 상당히 적은데, 락이나 메탈음악, 혹은 일렉트로닉 계열의 음악들은 듣는쪽만 듣고 안 듣는쪽은 안 듣는 경우라서 일부 문화 그룹의 사상이나 문화적 형태로 존재할 수 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가 존재하긴 한다.

물론 미래의 유행이란게 어찌될지 모른다는 건 함정. 커트 코베인의 예에서 보다시피 어쩌다가 밴드가 뜨는 경우가 생기면 확실히 전세계적으로 이름을 알리는 경우가 될수도 있지만, 이는 말그대로 시기와 때와 장소가 확실히 일치해야 생기는 일이므로 아직은 그런 일이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듯 하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쪽은 외려 기독교가 문제가 있어서 깐다기 보다는 자신들의 장르가 원하는 표현요소를 달성하기 위해서 기독교적 관점을 거부 한 셈이 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 역시도 지적될수 밖에 없다. 즉, 인문학적인 반기독교주의적 정서보다는 그 폭이 좁을수 밖에...왜냐하면 음악 장르가 표현하는 바는 결국 장르의 정체성에 따라서 학문적 비판보다는 한정적일수 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노래하느라 바쁜데 기독교 깔 시간 따윈 없다는 뜻이다.

4. 한국에서의 반기독교

반기독교/한국 참조.

5. 역사

반기독교/한국 역사 문단 참조.

6. 비판

반기독교/한국 문단 참조.

7. 반기독교주의자 목록

8. 관련 문서



[1] 정상적인 기독교인 중에도 기독교 교리의 문제점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있다. 반기독교는 기독교란 종교 자체를 반대 혹은 적대하는 것이다.[2] 기독교 문화권 내부에서 생기는 반감도 있었겠지만, 보통 크게 드러나지는 않고 개개인 수준에 머무르거나, 드러난다 해도 '현재의 기독교'를 개혁해서 '새로운 기독교'로 바꿔야 한다는 방향으로 흘러 본격적인 반기독교에 이르지는 못했다.[3] 단, 많이 응용되는 니체의 신은 죽었다라는 말은 인간 사상의 전환에 관한 내용이다.[4] 실제로 과거 모 의원들이 종교인소득세법과 관련하여 던진 망언을 주의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의 경우는 목회자가 자영세를 납부하고 있으며 한국과 같은 종교정당을 창설할 경우 면세혜택이 거부된다. 즉, 이미 선진국에서는 정교분리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소득세법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의 정치권의 반응이 부정적인 것 자체가 이미 이 문제가 단순히 종교의 교리비판 문제 이상의 내막을 지니고 있다고 볼수 있는 확정적 근거인 셈이다.[5] 이는 오히려 옥시덴탈리즘에 가깝다.[6] 진중권백지연끝장토론에서 레이디 가가 내한 반대 사건에 대해 논할 당시 이 점을 지적한 적이 있다.[7] '가나안'을 거꾸로 읽으면 그 뜻이 된다.(교회) 안 나가[8] 실제로 가톨릭의 공식적인 교리 입장만 놓고 보면 세속 정부에 대한 내정간섭을 하려고 한다는 비판(예를 들면 사형 폐지 요구, 낙태 및 줄기세포 실험 전면 금지, 동성결혼 합법화 금지에 관한 가톨릭 교회의 압력)을 제기할 수도 있다. 물론 가톨릭도 어디까지나 사회의 구성원 입장에서 하나의 '입장'이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긴 하지만 세속 정부에 대한 내정간섭 혹은 헌법상의 정교분리 원칙에 대한 도전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9] 이 둘은 극단적으로 천주교를 배척하는 개신교 원리주의에서 나온 소행이다.[10] 단, 성경시대의 히브리 제족과 현대 이스라엘 유대인, 그리고 블레셋(을 포함한 가나안에 상주했던 여러 민족)과 현대 팔레스타인 지역에 상주하는 아랍인의 역사적 혈연성은 현저히 떨어진다.[11] 남미 국가들은 낙태 기준이 다르긴 하지만, 어떤 경우는 심각하게 엄격해서 산모의 생명이 위험하지 않으면 낙태가 허용되지 않는 경우도 다수 있다. 때문에 성폭행 피해자가 낙태를 요구했을 때 법원이 기각한 문제로 말미암아 현재까지도 많은 논란이 있고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12] 사라 페일린도 비슷한 딸의 임신문제 등으로 인해서 곤욕을 치룬 바가 있으며 미국 일부 주에서는 낙태에 대한 보험급여 적용을 빼려다가 여성계의 심각한 반발을 당한 사례도 있었다.[13] 한국의 경우는 기독교 윤리를 주장하는 종교정당이 생겨도 아직 문제가 없다. 실제론 헌법 원리를 따지면 이것이 불허되어야 하지만, 상당히 관대한 편이란 것. 반대로 미국의 경우는 만일 교회나 종교단체가 이 정당 창립등에 개입하게 될 경우 면세특권으로 인정되는 재산세 취득세 등이 포기되고 세금폭탄을 맞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외려 세속법적 문제가 정교분리의 적정선을 그어 놓게 되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14] 실제로 외국에서 샤리아 등에 의한 여성인권 침해를 비판할 때는 무신론자와 기독교인들이 위아더월드를 외치지만, 반대로 다른 문제가 점화되면 서로 종합격투기 시합 수준의 썰전을 벌이는 경우가 많다. 이는 그만큼 개인가치관에 따른 편차가 있기 때문이며, 세속주의 교인 비율이 다수 이상인 외국의 경우는 외려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에 반대한 무신론자들에 세속주의자들이 동조하는 경향도 많이 보이곤 한다.[15] 특히 평양이 남북분단 이전까지만해도 북한에서 가장 개신교세가 강력했던 지역이기에 실향민 교계의 북한정부에 대한 적개심은 이러한 측면에도 기인하고 있다.[16] 노태우와 김종필은 나란히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의 실세들이였다.[17] 김영삼은 훗날 대통령을 민자당에서 했지만 여당 입당 전엔 대표적인 야당 지도자[18]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는 3.9% 득표로 무시.[19] 블랙메탈 밴드 메이헴 베이시스트였던 바르그 비케르네스의 경우, 항목참조.[20] 대중음악에서 Progressive는 특정 장르를 의미한다. 주로 프로그레시브 락이나 메탈. 따라서, 정치적 의미의 진보주의는 따로 리버럴로 표현하는 경우가 아직도 많다.[21] 물론 인종적 개념보다는 지역적 개념이다. 사실 이 무브먼트는 주로 미국보다는 유럽에서 미국으로 건너가서 다시 유럽으로 건너가는 형식으로 발전했기 때문. 본문에서 설명한 컨셉으로서의 반기독교적 성향의 차용의 경우가 그러한 예시로 유럽에 비해서 미국의 해당 밴드들은 정치색이나 문화색보다는 완성도 자체를 기준으로 해서 컨셉을 다듬은 셈이라고 할수 있다. 즉, 컨셉의 의도보다는 컨셉 자체에 충실한 것[22] 놀랍게도 과거에는 기독교인(재림교회)이었다!![23] 자신의 뜻에 맞지 않는 신부와 목사들을 탄압했으나 자신에게 거스르지 않으면 오히려 보호했다. 또 자신의 모든 행위를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이라고 칭하고 다녔다. 이슬람 옹호 발언과 그의 발언들을 보면 이렇다 할 사상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고 그냥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면 보호하고 아니면 탄압하는 것에 가깝지 딱히 반기독교적인 성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마찬가지로 친기독교라고 볼 수도 없다.[24] 좀 에메한 대장하고 달리, 이쪽은 확실히 반기독교적인 성향이 보인다.[25] 기독교에서도 이어져나간 타나크가 기본적으로는 유대계 제족들의 서사이기 때문에 특히 아시아발 옥시덴탈리즘이나 이슬람 극단주의에서 반기독교와 반유대주의는 연계될 여지를 갖고 있는 셈이다. 다만 의외로 골수 기독교 우파가 반유대주의인 경우도 있다.(이쪽은 신약에서 예수를 못박아 죽이는데에 한몫한...등의 감정이 복합되어있다.)[26] 반기독교 성향을 보인 사람이 기독교인만 골라 죽인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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