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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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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상세
2.1. 예수천국 불신지옥2.2. 기복신앙적 성격2.3. 신학적 특성
2.3.1. 근본주의2.3.2. 자기계발 신학
3. 역사
3.1. 미국 개신교의 발전과 몰락3.2. 복음주의의 퇴조와 세대주의
3.2.1. 신복음주의(Neo Evangelicalism)의 출현3.2.2.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대결, 그리고 몰락3.2.3. 근본주의와 초기 한국 교회3.2.4. 자유주의 신학 논쟁과 근본주의화3.2.5. 박형룡과 박윤선
3.3. 일제강점기와 개신교3.4. 해방 이후3.5. 신복음주의와 군사정권과의 밀월
3.5.1. 신복음주의
3.5.1.1. 빌리 그레이엄3.5.1.2. 로버트 슐러3.5.1.3. 신학적 경향
3.5.2. 군사정권과 개독교3.5.3. 개독교의 유신 찬양3.5.4. 전두환의 대두 이후3.5.5. 개독교의 기복신앙
3.6. 군사정권 이후3.7. 2000년대 이후
4. 문제점
4.1. 논란 및 사건사고
4.1.1. 먹사들의 노골적인 정치 개입4.1.2. 하나님 믿는 나라는 다 잘 산다4.1.3. 개신교 교육 강요4.1.4. 천상천하 유아독존4.1.5. 목사들의 독재정권 찬양
4.2. 공공의 적
4.2.1. 탄압
4.2.1.1. 과학 탄압4.2.1.2. 문학 탄압4.2.1.3. 음악 탄압4.2.1.4. 게임 탄압4.2.1.5. 영화 탄압4.2.1.6. 성문화 탄압4.2.1.7. 성소수자 탄압
4.3. 대내적
4.3.1. 비상식적인 전도 방식4.3.2. 자질 없는 목사4.3.3. 권력 다툼4.3.4. 성차별4.3.5. 횡령과 부패4.3.6. 봉사 강요4.3.7. 목사간 사례금 나눠먹기4.3.8. 사이비 종교의 온상
5. 어록6. 기타7. 대중매체에서의 개독교8. 같이보기

1. 개요

기독교 중에서도 개신교, 특히 극단주의 개신교를 비하하는 멸칭으로, 비하의 뜻을 담은 접두사 '' 가 기독교의 '기' 를 대체해서 " 같은 기독교"의 의미로 부른다. 더 줄여서 개독이라고도 한다.[1] 간단히 말해 기독교가 극단성, 선민의식, 편협함(=자기 중심적 사고), 내로남불에 머물러 있어서 생겨난 단어다.

예수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랐다면 개독이라는 말이 생길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신교인들이 성경의 가르침을 왜곡하여 '예수를 믿으면 복 받아서 천국 간다'[2]는 것에만 꽂혀서, 예수가 가르친 정의와 자비에는 별 관심을 갖지 않고, 현생과 사후에 더 큰 상을 받고자 이웃에게 온갖 민폐를 끼치며 하느님/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되었다. 이에 대한민국에서 개신교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은 '모순으로 범벅된 믿음에 빠져서 여기저기 민폐를 끼치며 이웃을 괴롭게 하는 사람들'일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정통 그리스도교 교리로만 따져보면, 이들은 사실상 이단이나 사이비 종교로 규정되어도 이상할 게 없는 족속들이다. 개독이란 멸칭은 이러한 이유에서 생겨나게 되었다.

물론, 개독이라는 멸칭이 있다고 해서 모든 개신교인이 개독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당연히 개신교인 중에서도 진심으로 예수를 본받아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이 있기 때문이다.[3] 다만 종교 이름 자체를 욕과 같은 뉘앙스로 쓰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의 개신교에 대한 인식이 매우 안 좋다는 것은, 개신교도들이 현 상황을 곱씹고 반성하여 자정의 노력[4]을 기울여야만 한다.

이 문서가 서술하는 대상은 스스로 개신교도임을 자처함에도 불구하고 예수가 말한 사랑의 실천은 뒷전으로 하고 오히려 가정과 사회에 해악을 끼치는 사람들이다. 사실 거의 대부분 한국 극단주의 계열 개신교에 대한 내용이다. 천주교는 해방 이후 딱히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킨 적이 없고, 크고 작은 사회적 기여 및 6.10 민주 항쟁에서의 희생으로 일반적으로 개신교보다 상대적으로 인식이 좋은 편이나, 조선시대까지 거슬러올러가면 황사영 백서 사건이나 신축민란 등 흑역사가 없진 않다. 성공회[5]정교회 등의 종파는 한국에서 교세가 너무 작아 논의될만한 내용이 거의 없다.

해외에서는 (한국 개독교의 모체격인) 미국에 꽤 많은데, 웨스트보로 침례교회는 그 덩치와 해악이 커서 특히 유명하며, 팻 로버트슨 같은 사례도 있다. 아프리카의 경우 은사주의 성향 근본주의가 한국의 개독교와 비슷한 문제를 일으키곤 한다.

개독들은 다른 극단주의 세력들처럼 흔히 반지성주의적 행태를 보인다. 근본주의적 주장을 하면서 성경과 배치되는 모든 주장을 배격하고 종교극단주의에 빠지거나,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서 사이비 종교 수준의 음모론이나 괴담을 퍼뜨리기도 하며,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창조설 같은 유사과학을 끌어오기도 한다. 그리고 과학, 이성, 합리주의, 세속주의에 대해 반대 입장에 선다.

2. 상세

2.1. 예수천국 불신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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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독교+개병대[6] 하느님 맙소사, 누가 이런 끔찍한 혼종을..!

예수는 단 한번도, 자기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보낸다고 한적없다.


개독들은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이 목숨보다 중요한 일이라고 믿으며, 그 논리를 다른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적용하기 때문에, 자기 인생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의 인생보다도 포교활동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7] 상대의 인생보다도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믿기 때문에 자연스레 상대에 대한 배려가 없어지고,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많다.[8][9]

사실 무조건 예수만 따르고 예수를 숭배한답시고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면 기독교는 악행을 묵인하는 종교가 되는 꼴이며 결과적으로는 기독교의 근간을 흔들게 된다. 진정한 기독교인이라면 예수 얼굴에 먹칠하는 행동은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물론 성경에는 예수 믿고 구원받아 천국 가는 이야기도 있고, 생업을 내던지고 예수를 따라나선 사람 이야기도 나온다. 하지만 모든 기독교도가 위와 같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치며 주위에 민폐를 끼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같은 성경책을 보고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계명을 가장 중요한 계명으로 받아들이고 항상 바르게 살아감으로써 하늘 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 없이 '나와 내 주위 사람이 복 받아서 천국 가는 게 세상에서 제일 중요하다' 하는 이기적인 생각을 갖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개신교 근본주의적 관점에서는 이러한 생각이 교리적으로 틀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수는 성경에서 사랑을 실천하지 않고 예수를 따랐다고 자처하는 자들은 천국에 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직접 못박아 이야기했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거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고 말할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7:21~23
그러면 그 의인들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신 것을 보고 먹을 것을 드렸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습니까? 언제 주님께서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찾아가 뵈었습니까?’ 그러면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그때에 임금은 왼쪽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저주받은 자들아, 나에게서 떠나 악마와 그 부하들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이지 않았다. 또 내가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었을 때와 감옥에 있을 때에 돌보아 주지 않았다.’ 그러면 그들도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굶주리시거나 목마르시거나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또 헐벗으시거나 병드시거나 감옥에 계신 것을 보고 시중 들지 않았다는 말씀입니까?’ 그때에 임금이 대답할 것이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하여 그들은 영원한 벌을 받는 곳으로 가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곳으로 갈 것이다.”
마태오 복음서 25:37~46
기독교도로서 바른 전도방식은 '사랑의 실천과 하늘나라의 실현을 위해 선하게 살아감으로써 자기 자신과 주위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행복해지는 방법으로써 종교를 권유하는 것'이다.[10] 그냥 무턱대고 '예수님 믿어야 합니다'라며 교회에 오라고 끈덕지게 권하는 것은 오히려 비 기독교 신자들이 개신교를 기피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11] 일반적인 개신교 교인들은 위와 같은 극성적인 전도 활동에 관하여 의도는 교리적으로 맞는데 전달 방법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남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은 기독교 근본 정신인 사랑에 반하는 폭력적 행위이므로 잘못된 일이다. 예수는 한 뺨을 맞으면 맞은 뺨도 돌려대라고 했고, 속옷을 달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겉옷까지 벗어주라[12]고 말씀하실 정도로 자기 의지를 타인에게 강요하는 행위, 즉 폭력을 경계했다.[13]

가톨릭이나 정교회에서는 예수천국은 맞지만 불신지옥이라고 가르치지는 않는다. 구원의 확실한 길은 예수를 믿고 그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라고 가르치지만[14], 비신자들의 구원 여부를 함부로 판단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구원은 야훼께서 판단하고 주시는 것이지, 인간이 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이쪽 종파는 단순히 천국/지옥이 아닌 연옥도 인정하고 있다. 꼭 지옥이 아니라 연옥에서 세월을 보내고 구원받을 수도 있다[15].

연옥을 인정하지 않는 기독교 교파라 하더라도, 성공회기독교장로회 같이 근본주의를 지양하는 교단들에서는 불신지옥을 말하지 않는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 거야 주께서 해주신 약속이니 당연한 것이지만, 예수를 믿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구원 여부는 하느님의 전권이므로 인간이 헤아릴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께서 하셨던 말씀과 약속을 믿고 의지하면 되는 것이지, 다른 사람이 구원을 받을 지 아닐 지에 대해 논하는 것은 인간으로서 선을 넘은 오지랖이라는 것. 그런 오지랖으로 이웃들에게 누가 되는 것보다, 삶 안에서 주의 정의와 자비를 보여줌으로서 이웃들이 가슴으로 복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에게 비춰라. 그래서 사람들이 너희의 선한 행동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마태오복음서 5장 16절

이런 소극적인 복음 전파에 불만인 기독교인들도 있겠지만, 현재 한국에서 복음에 대해서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다시 오신다는 그 복음에 대해서)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있을까? 현재 우리는 정보의 공해 시대에 살고 있으며, 복음도 그 수많은 정보들 속에 섞여 있다. 그런 복음을 단순히 또 다시 들려주기보다는, 삶으로 보여주어 가슴으로 느끼게 해주는 것이 이 시대의 복음 전파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이, 분명 성경에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했지, 하나님만 사랑하라고는 안 했다. 맨위에서 두번째에 언급된 말씀에서처럼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자 이웃[16]을 사랑하는 것이다. 사실, 사랑하라고 한 문장을 보면 알겠지만 천국은 예수님을 믿는 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을 사랑해야 들어갈 수 있다.[17]

아무리 착하게 살아도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불신지옥, 즉 지옥에 간다고 하는데 '예수님을 믿고는 있지만 사랑하고 있지는 않다'와, '예수님을 (몰랐다든가 해서) 믿지는 않지만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사랑한다' 중 어느 쪽을 더 기뻐하실까? 성경 고린도전서에 보면 사랑장이라고 해서 사랑에 관해 설명하는 장이 나오는데,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소용이 없다고 나와 있다. 사랑 없는 겉치레용 믿음이 정말 진실한 믿음일까?

이 것은 자기중심적 사고를 안믿으면 지옥에 간다는 이상한 소리를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더욱이 성경에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얻어진 것이라고 분명히 나와 있다. 물론, 자기 자신이 해야 할 일은 해야 하지만 최종적으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감사드리면서 겸손함을 유지해야 하는 것이다. 당장 누가 신앙심이 겉보기에 분명 좋았는데 막상 지옥에 갔다든가 하는 지옥 경험담이 수두룩하게 널려 있다. 예수님이 '비판하지 말라'고 하신 이유도 이해가 되는게 이러한 식의 설레발이 당사자에 대한 정죄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자기 자신이 교만해지는 막장까지 이르게 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최선을 다해야 하지만,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려 있는 만큼 상대에 대해서 관대하게,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엄격해 져야 할 것이다. 수박이 아무리 겉보기에 예쁘게 생겼어도 막상 까봐서 속이 다 썩어있으면 그런 수박은 아무도 안 먹는 법과 마찬가지이다.

2.2. 기복신앙적 성격

한국의 개신교는 기복신앙적 성질이 매우 강하다. 복음에 대해 제대로 깨달음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예수를 믿으면 가정이 화평해지고 사업이 번창하고 만사가 형통하다고 믿으며 예수 믿기를 주변에 권한다. 이는 개신교 교리를 그들이 처한 불행한 삶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미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인데, 사실 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랑을 실천하고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산다고 해서 무조건 행복이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몇몇 목사들은 예수를 믿고 교회를 다니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병이 낫고 돈 문제가 해결된다고 대놓고 설교하며, 그걸 믿고 따른다. 물론 성경에서 베드로가 물고기 입에서 돈을 찾은 것처럼 실제로 예수를 믿어서 물질의 복이 생긴 경우도 간혹 있지만 그러한 세상의 복은 전부 영원한 것을 위한 하나님의 수단일 뿐이지 결코 목적이 아니다. 어차피 천국에 들어간 후 그것들은 섭종한 게임의 아이템처럼 전혀 쓸모없는 것들이 되어버린다.

앞서 서술했듯이, 저런 믿음을 갖는다고 복이 오지도 않고, 더 행복해지지도 않는다. 성경을 보면 자살로 생을 마감한 이스카리옷 유다를 제외하고도, 예수의 제자들 중에서 현세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다 간 사람은 없다. 곱게 죽은사람은 사도 요한 하나밖에 없으며, 나머지는 모두 잔인하고 고통스럽게 죽었다. 특히 베드로는 말로 형용할 수 없을 만큼 고통을 당하다 죽었다.[18] 이는 성경 속 이야기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며, 현세에서도 예수를 제대로 믿는다는 것은 온갖 시련과 시험에 부딪히는 각오가 돼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히려 물질의 복을 바라고 하나님을 믿게 된다면, 그것은 물질의 복을 내려주시는 것에 대한 축복(우상 숭배, 물질에 대한 믿음)이 된다!! 성공하려면 현실을 직시하고 잘못된 점을 반성하면서 방향을 고쳐나가야 하는데, 일의 성패를 하늘의 뜻이 정한다고 믿어버리게 되면 그만큼 발전의 가능성을 잃게 된다. 또한, 인간의 행복은 주변 사람과의 건강한 관계에서 오는데, 저런 믿음을 주변에 강요하는 사람은 대부분 기피하기 때문에, 보통 사람들과의 인간관계가 완전히 파탄난다. 주위에는 같은 믿음을 공유하는 사람들만 남게 되는데, 교육 수준이 떨어지거나, 종교 외의 다른 목적(금전적 이득 등)으로 접근하는 사람들밖에 남지 않기 때문에 삶의 질이 그만큼 낮아지게 된다.
그러므로 기뻐하십시오. 눈앞에 있는 여러 가지 어려움으로 인하여 지금 당장은 힘들고 괴롭겠지만, 이 시험들은 여러분의 믿음이 얼마나 강하고 순수한지 알아보기 위한 것일 뿐입니다. 순수한 믿음은 금보다도 훨씬 귀합니다. 금은 불에 의해 단련되기는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닳아 없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의 순수한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그 날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가져다 줄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1장 6, 7절
형제 여러분, 여러 가지 시험을 겪을 때 기쁘게 여기십시오. 여러분은 믿음의 시련을 통하여 인내심이 성장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는 모든 일을 참고 견디어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완전하고 성숙한 사람이 되십시오.
야고보서 1장 2~4절

개신교기복신앙이 결합하여 지금같이 성공적으로 큰 세력을 형성한 것은 전세계적으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미국은 2위. 미국의 목사가 한국의 교회 크기를 부러워하고, 신자 다루는 법 공부를 하고 갈 정도이다. 이는 한반도에 유행하던 도교가 서구에서 들어온 개신교를 흡수하여 '한낱 미신'에서 '주류 종교'로 진화했기 때문이다.

'미신'이 '개신교'가 되면서 겉으로 보기에 믿어도 부끄럽지 않은 것으로 포장되었으나, 실제로는 예수가 제1계명으로 강조하는 사랑의 실천은 뒷전으로 하고, 실제로 선한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하나님에게 하염없이 복만 빌다가 죽으면 천국 가는 것을 인생 최우선 목표로 하는 한심한 사람들의 모임이 되었다. 냉정히 말해서 그런 종교가 '나를 믿어라 그럼 복받는다' 식의 세상 종교들과 다를 것이 뭐겠는가?[19]

2.3. 신학적 특성

한국 개신교는 주로 장로회 신학을 따른다. 즉, 예정설[20], 성서무오설[21], 직업소명설[22] 등을 믿는다. 문제는 이러한 장로회 신학이 단순화되어 사람들에게 왜곡된 의미로 전달되면서 본질적인 개신교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주기도문을 통하여 가르쳤듯이 하늘나라가 이 땅에 임하게 하는 것, 즉 더 나은 사회를 온 힘을 다해 만들어가는 것이 기독교도의 본분일진데, 이들은 과학적 사실을 부정하며 사회 개혁을 반대하는 등 극도로 수구적인 모습을 보인다. 또한, 예수께서 가르치신대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과 그러한 삶의 방식을 되찾아 본질적인 영혼 구원을 얻기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고, 무조건 하나님께 빌어서 그 자비를 얻어 살아있을 때에는 복 받아서 잘 먹고 잘 사는 것과, 죽어서는 천국에 가서 행복을 누리는 것만을 바라는 기복신앙적 사고방식이 팽배하여 그 해악이 매우 크다.

한국 개신교에 본격적인 물량주의, 기복주의를 가져온 교단은 오순절계통의 여의도 순복음교회(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이다. 처음에 장로회에서는 신비주의, 기복주의를 근거로 삼아 이 교회를 이단으로 처리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80년대 전후 이단 지정을 받은 것은 조용기 목사가 ‘방언하지 못하면 구원 받지 못한 것이다.’라는 발언 때문이었지 물량주의, 기복주의 때문이 아니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서대문에 있었던 시절 교회를 출석한 이들의 증언을 들어보면 통성기도를 하고 방언을 강조하여서 다른 교회로부터 눈총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물량주의나 기복신앙 때문에 이단 지정을 받은 적은 없다. 오히려 당시에는 오순절 성령운동이 처음 전파되면서 장로교에서 순복음으로 옮기는 등 교인 간의 수평이동이 더 문제가 되었다고.

'예수 믿으면 복 받고 천국 간다'는 단순한 논리에 매료된 신도들이 그쪽으로 더 몰려들었다. 양쪽 교회를 다 오가는 신도들이 반발한 것도 컸다. 하지만 장로회 신학을 봤을 때에도 물질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바라보는 특성은 별반 다를 것이 없다.[23] 지금은 이단이라고 부르는 것은 취소되었고, 장로회 교회들이 오히려 순복음교회와 비슷한 전략을 취해 신도를 모은다.

개신교 내부에서도 교파가 나뉘어 의견 다툼이 크다. 일례로 장로회와 감리회는 사실 서로 입장에서 '이단' 이라고 보는 의견이 있다. 실제로 장로회에서는 감리회의 기반이 되는 알미니안주의를 엄청 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현실에서 장로회와 감리회 두 교단이 사실 이야기하는 틀은 거의 다르지 않은 편이라고 보는 의견이다. 다만 존 웨슬리가 아르미니우스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나 알미니안 주의자라고 보기는 어렵다는 의견이 있다. 왜냐하면 알미니안주의의 신앙개조 중 전적 타락을 비판하는 부분적 타락, 그리고 구원의 상실 가능성처럼 명백한 자력구원론적 발상은 존 웨슬리의 설교에서 모두 부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존 웨슬리는 선행 은총이라는 개념을 통해 세상의 정욕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이기 선행되어 주어진 구원의 은혜를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온전히 회복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극단적인 칼뱅주의와 알미니안주의 간의 이단 논쟁이 장로회와 감리회의 관계에 투영된 오류로 밖에 볼 수 없다.

장로회와 감리회가 서로 입장에서 이단이라고 보는 것은 오류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칼빈 주의와 알미니안 주의가 논리적으로 모순에 가깝고 이게 진짜로 모순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결정론vs자유의지라는 주제로 철학계에서도 논의되고 있다는 것이다. 칼빈 주의와 알미니안 주의는 복음주의에서 모두 인정되는 견해라고 한다. 웨인 그루뎀이 칼빈주의자라서 서술이 공정하지는 않지만 그가 쓴 '조직신학' 의 16장 G.를 참조할 것. 또 장로회와 감리회 두 교단은 많이 다르다고 보는 견해도 있다. 칼빈주의자는 칼빈 주의를 채택할 시 얻는 장점을 취하고 단점을 극복하는 논변을 제시하고 알미니안 주의의 경우 반대로 돌아간다고 한다.[24]

2.3.1. 근본주의

쉽게 말해 '지금 니들 하는 건 다 잘못되었다, 옛날에 잘 하던 것, 원래 있던 것을 지켜야 한다,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상이다. 진짜로 옛날에 좋았던 것을 회복하기만 하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안 좋은 것도 회복하겠다고 난리를 치는 데다가, 기본적으로 깔린 생각부터가 '니들은 틀렸고 우리가 옳다'는 것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을 보여줘도 도무지 받아들이지를 못하는 심각한 배타성을 띄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특히 현대에 문제가 되는 것은 '이슬람 근본주의'와 '개신교 근본주의' 두 가지이다.

개신교의 근본주의에서 말하는 '근본'이란 다음 다섯 가지를 말한다.
  1. 성서무오설(성서에는 오류가 없다), 축자영감설(성서를 기록하는 사람에게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직접 영감을 내리신 것이다)
  2. 성경에 기록된 모든 기적은 진실임
  3.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심[25]
  4. 예수께서 사망하셨다가 다시 부활하심
  5. 예수께서 인류의 원죄를 대속하여 사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심

개신교계에 '근본주의'라는 단어가 언급되기 시작한 것은 1910년쯤인데, 이들이 지키자고 강조하는 내용들을 가만 살펴보면 예수께서 제1계명으로 강조하신 사랑과 실천[26]에 관련된 이야기는 하나도 없고, '구원받는 것'에만 초점을 맞춘 내용 뿐이다. 이것들은 물론 성경에서 언급한 내용들이지만, 한쪽에만 치우쳐진 나머지 다른 중요한 것은 보지 못하는 원인이 된다. 그 결과중 한 예를 들자면 막무가내식 복음 들이밀기.

2.3.2. 자기계발 신학

속칭 '번영신학'[27]. 2000년대 이후 대학 진학률이 올라가 시간과 금전적 여유가 있는 청년 신도들의 조직화가 가능해진 것과 동시에 청년들의 진로 문제가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대두함에 따라 일부 대형 교회 역시 선진적 트렌드에 발맞추어 새로운 설교 레퍼토리를 도입하였다. 성폭행 사건으로 유명한 삼일교회의 전임 모 목사가 이 분야의 대표라 할 수 있는데 속류적으로 해석된 소명으로서의 직업론에 한국적 기복신앙을 결합하여 자기계발 신학이라고 할 만한 물건을 만들어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진정한 개신교인은 신의 영광을 위해 간지나는 스펙을 갖추어 성공하는 인생을 사는 것이 믿음의 증거라는 것이다. 뭔가 90년대 운동권의 진보적 사회진출론이 생각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이들은 성공 자체가 목적이라는 점에서 기독교 가르침과 안드로메다만큼 거리가 멀다. 따라서 저들의 설교를 들어보면 자기계발서 소개인지 성경 소개인지 도무지 모를 지경이다.

물론 개인의 성공을 위해 노력을 권장하는 것이 결코 나쁜 일은 아니지만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대형 교회의 설교는 오히려 자기계발서보다 훨씬 더 저질이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최소한 꿈과 희망을 이야기하고 수단으로서의 노력을 강조하는 자기계발서와 달리 최근 대형 교회들은 세상에 교인들의 위세와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스펙과 노력을 강조하는 데다가 심한 경우는 사회의 패배자들에 대한 도덕적 멸시까지 정당화하기 때문에 해악이 심각하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은 귓등으로도 듣지 않은 모양이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변변한 스펙도 없는 12사도는 노력을 하지 않은 잉여들이며, 헬레니즘 철학을 공부하고 로마 시민권까지 가졌지만 유대교인퀴지터에서 반체제 인사가 된 사도 바울은 이단이자 인생의 패배자가 된다. 아니 당장 그 이전에 예수가 직업이나 스펙을 내세웠던가? 예수도 공생애 이전에는 그저 목수였다.[28]

취업난이 심각해지고 단군 이래 최고 스펙을 가진 청년들이 비정규직을 전전하게 되면서 이러한 소위 '고지론'은 교회 내의 청년들에게도 비판을 받기에 이르렀다.

3. 역사

파일:나무위키+유도.png   개괄적인 차원에서 한국 개신교의 역사에 대한 내용은 개신교/대한민국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 예수의 고난과 부활, 그리고 그리스도교의 탄생: 약 2천년 전, 예수는 모든 사람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치시고, 당시 부패한 신전과 제삿상을 뒤엎으시며 그 잘못됨을 설파하셨다. 이에 많은 민중이 예수를 좇았으나, 위와 같은 예수의 가르침이 당시 기득권층의 이익에 크게 반하는 일이었기 때문에+스스로 유대인들에게 있어 유일신인 하나님의 아들(신적 존재)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에 십자가에 달려 고난을 받고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였다. 예수는 약 40일간 제자들과 함께 지내시며 마지막으로 그간의 가르침을 총 정리 특강으로 해주시고 자기를 보내신 아버지께로 올라가셨다. 예수 승천 후, 그 가르침은 이 땅에 남아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이것이 기독교이다.
  • 가톨릭 교회의 부패: 인쇄술이 보급되지 않고 문맹률이 높던 때에, 가톨릭교회가 성경을 왜곡하여 권력 및 재물 얻는 데에 활용하였다. 면죄부가 그 대표적 예이다.
  • 마르틴 루터와 장 칼뱅의 종교 개혁, 개신교 및 복음주의 발생: 루터와 칼뱅은 교회의 권위를 부정하고, 성경은 교회가 아닌 개인이 읽고 해석해야 함과 면죄부의 무의미함을 주장하였다. 교회에 뭔가 갖다바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고 진실되게 따름으로써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믿음이 널리 퍼지게 되었다. 이를 기쁘고 복된 소식이라 하여 복음이라 부르고, 이러한 소식을 널리 전하여 다 함께 구원받기를 추구하는 사상을 복음주의라고 한다.
  • 미국 복음주의 개신교 발전: 유럽에서 박해받은 개신교인들이 미대륙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이들은 '직업적, 물질적 성공 또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므로 죄가 아니다'라는 장 칼뱅의 주장을 바탕으로 다양한 직업 활동을 하여 부를 축적하였으며, 미 대륙의 주요 세력으로 자리잡았다. 또한, 이들은 흑인 인권 운동, 여성 인권 운동 등 사회 개혁 활동의 주체로서 활동하였다.
  • 자유주의 신학 발전: 이성을 중시하는 계몽주의의 확산에 의해, 성경을 교리적으로 받아들이기 보다 경험적 증거, 이성을 포함한 계몽주의 과학의 방법론을 통해 성경과 신학을 해석하고자 하는 움직임이 발생하였다. 이를 자유주의 신학이라고 한다.
  • 복음주의 왜곡, 근본주의 발생(성서무오설, 축자영감설 등 주장), 자유주의 신학과 대립하다: 모든 사람이 자유주의 신학을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에 대한 반발로 성서의 모든 내용이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겨났으니, 이들이 개신교 근본주의자들이다. 이들은 자유주의 신학과 대립하였으나, 여러 신학교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이 대세를 차지하게 되었고, 근본주의자들은 독립하여 따로 그룹을 형성하게 된다. 근본주의-현대주의 논쟁 이후, 미국 교회에서는 해외 선교를 강조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고,[29] 특히 근본주의 해외 선교사들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한반도의 개신교 전파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하였으므로, 한국의 개신교도 주로 근본주의적 성향을 띄게 되었다.
  • 개신교의 한반도 상륙 및 토속신앙 영향에 따른 기복신앙화: 19세기 말, 20세기초, 하술된 드와이트 라이먼 무디[30]의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이 한반도를 비롯한 소위 제3세계로 퍼져나갔다. 한반도의 초기 개신교 전파는 평양 및 한반도 서북 지역에서 이뤄졌는데, 이들은 기존에 갖고있던 기복신앙과 도교적 사상을 개신교 교리와 결합하였다. 여기서 파생된 것이 통성기도, 새벽기도, 기복신앙이다. 이들은 한국전쟁 당시 북한의 종교 탄압을 피해 월남하였으며, 북의 공산주의로부터 피난온 이들은 생존을 위해 반공을 기치로 삼아, 국가적 지원을 받아 크게 성장하였다. 이들은 군에 적극 지원하여 장교가 되었는데, 이들이 훗날 박정희를 도와 쿠데타를 일으키는 주역이 되어 제정의 분리마저 모호하게 만드는 결과적폐를 낳았다. 한편, 전쟁이 끝나고 생활고를 겪던 한국인들에게 이들의 사상이 급속히 확산되어 개신교 주류의 자리로 들어가게 되어, 흔히 생각하는 한국 개신교의 주요 특성이 나타나게 되었다.

이하 내용은 '근본주의 개신교'가 어떤 과정으로 생성되어 한국으로 넘어오게 되었는가 하는 것이다. 한국의 개신교가 어떤 역사를 가졌는지는 개신교/대한민국 항목 참조.

3.1. 미국 개신교의 발전과 몰락

한국의 개신교는 미국을 통해 들어왔다. 미국 개신교의 역사는 18세기 아메리카 식민지의 대각성운동(Great Awakening)[31]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이들은 복음주의[32]를 믿고 전하며 큰 세력을 형성하였다.

3.2. 복음주의의 퇴조와 세대주의

미국의 개신교는 초기에 노예 해방, 교도소 개선과 같이 사회개혁과 봉사를 지향하였다. 하지만 19세기 중반 이후 산업화에 따른 급격한 사회 변동으로 인해 교회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내부의 자발적인 개혁은 사실상 실행이 불가능해졌다. 교회를 배경으로 한 개신교 문화와 개념은 더 이상 개인과 사회를 지배할 수 없었다.

이에 따라 사회 개혁에 대한 관심은 점차 퇴조하였고 그리스도에 대한 개인적인 헌신과 개인의 성결만을 강조하는, 사회와는 단절된 순수 종교 차원의 운동만이 전개될 수 있었다.

이러한 복음주의의 변질은 개인의 도덕적 성결을 강조하기 위한 천년왕국 운동을 탄생시켰다. 이 당시 많은 종파들이 창립되었다. 몰몬교로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 교회', '제7일안식일 예수재림교', '여호와의 증인' 들이 이 시기에 설립된 종파들이다.

이러한 세대주의적(Dispinsationalism) 전천년설에 기반한 천년왕국 운동은 당시 유행했던 성서대회(Bible conference)와 사이러스 I. 스코필드(Cyrus I. Scofield)의 관주성서(Scofield Reference Bible)[33]를 통해 미국 근본주의 개신교의 맹아가 되었다. 이 관주성서는 매우 평이해서 당시 200만부 이상 팔렸는데 당시 보수주의자들이 경계했던 인본주의적 자유주의 신학으로부터 보수 신학을 방어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여기에 나와 있는 세대주의자들은 바로 휴거 드립을 치는 인간들이다. 이들은 인간의 자유주의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입장을 취하며 그리스도의 왕국은 이 시대에 혹은 인류사에서는 결코 실현되지 않으며 인류 역사가 끝난 후에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세대주의자들은 창조 이후의 세계를 일곱 세대로 구분하여 마지막 세대인 7년에 걸친 전쟁과 대환난이 있은 후 예수 그리스도가 성서에 있는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에 왕국을 세우고 천 년 동안 다스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이 좀 더 심화 발전된 형태가 바로 신사도 운동이다.[34]

또한 당시 가장 유명한 부흥사였던 드와이트 무디(Dwight L. Moody) 역시 세대주의 운동에 힘을 실어주었다. 유명 목사들에 의해 힘을 받은 세대주의 운동은 19세기 말 미국의 제국주의적 대외 팽창 정책에 호응해 해외 선교 사업을 적극 지원하였고 이러한 선교 활동은 자발적인 학생 선교 운동을 촉발시켰다.

복음주의 학생 운동 쪽에서도 이 때문에 두 쪽이 나는 경우가 많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사회 참여를 가지고 논쟁을 벌였던 한국기독학생회(IVF)의 6개대 지부 탈퇴 사건. IVF에서는 사회 참여 운동을 주장하며 떨어져 나간 한기연을 완전히 흑역사화 하고 있고 한기연은 자신들이 진짜 복음주의 운동이라고 주장한다. 그런데 한기연은 간통 사건 때문에 또 두 쪽이 나버렸다.

세대주의자들은 나이아가라 대회에서 프린스턴 신학교 신학자들을 초빙하여 입장을 발표하게 했는데 당시 프린스턴 신학교는 성서의 권위와 영감을 옹호하는 보수 신학의 메카였다. 이들은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에 일부 찬동하지 않는 부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공동의 적이었던 찰스 다윈진화론자유주의 신학의 공세에 맞서기 위해 근본주의 5개 신조를 수용하는 동맹을 기꺼이 맺었다. 신학자들의 궤변술과 세대주의자들의 몸빵이 결합된 근본주의 세력은 더욱 확장되었다.

태동 과정을 보면 어째 와하비즘과 비슷한 경향을 보이는데...문제점 역시 비슷하다.

3.2.1. 신복음주의(Neo Evangelicalism)의 출현

미국에서 근본주의가 확산됨에 따라 교회 내 반지성적 풍토가 생기자 이에 대한 자성 및 반발로 신복음주의가 등장하였다. 자유주의를 사탄의 궤계로 믿었던 근본주의자들한국 극우 교회들은 아직도 그러고 있다과 달리 쌍방간의 인격적인 소통을 중시하였으며, 이들의 생각은 칼뱅의 적응론과도 상통하는 면이 있다. 기치는 보수적인 신학과 개방적 태도 함양.[35]

3.2.2. 근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대결, 그리고 몰락

근본주의자들은 '포스딕 사건' 을 통해 자유주의자와 본격적으로 맞붙게 된다. 침례회 출신의 자유주의 신학자이자 저명한 설교가인 해리 포스딕(Harry E. Fosdick)은 뉴욕 제일 장로교회 초청 목사로 활동하면서 1922년 6월 '근본주의자들이 승리할 것인가' 라는 설교를 통해 근본주의자들을 자극했다. 그는 자유주의자들도 기독교인임을 강조하는 한편 근본주의자들의 편협과 불관용을 비판했다.

하지만 당연히 개독 먹사들이 기독교자유주의는 양립할 수 없다면서 자유주의 신학의 주관성과 비성서적 이론전개를 비난하고 나섰고 보수파들은 장로회 총회를 통해 포스딕에게 장로교회 교리에 맞는 설교를 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결국 포스딕은 그렇게 할 수 없다며 목사직을 사임하였다.

이 당시 자유주의와의 대결의 시대에 근본주의자들을 대표하는 신학자는 존 그레셤 메이첸(John Gresham Machen)이었다. 그는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신약과 해석학을 가르쳤는데 보수 신학과 신이 성서 저자의 손을 붙잡고 직접 성서를 썼다고 보는 축자영감설의 본거지였던 프린스턴 신학교는 1914년 J. 스티븐슨이 학장으로 취임한 후 상황이 바뀌기 시작하였다.

당시 교단에서는 교단이 정한 근본주의 5대 신조를 목사 안수의 필수적인 고백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신학사상과 교리 해석에 관용을 베풀 것을 요청하는 '어빈 선언' 이라는 운동이 일어났는데 스티븐슨 학장은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이를 수용하였다. 이에 메이첸은 보수적 교수들을 규합해 반대 투쟁을 전개했지만 결국 밀리게 되었고, 이에 메이첸은 프린스턴에 사표를 내고 웨스터민스터 신학교를 개설, 강의를 시작했다. 메이첸은 북장로교회마저 자유주의자들이 지배하게 되자 지지자들과 교회들을 규합하여 1936년 정통 장로교회를 설립함으로써 교단 분열을 감행했으며 이후 이탈과 분리근본주의 운동의 특징으로 인식되었다. 이 운동을 주도한 메이첸은 당시 한국에서 유학 온 박형룡과 박윤선[36]을 가르쳤고 두 사람은 귀국 후 한국 보수신학의 거물로 성장했다.

그리고 근본주의자들은 자유주의 신학 뿐만 아니라 다윈의 진화론과도 논쟁을 벌임으로서 화려한 자폭의 대망을 장식하게 된다. 이들은 다른 진화론 반대 그룹들을 모아 반진화론 연대체를 만들었고 공립학교에서 진화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막는 입법 활동을 전개했다. 이후의 전개 과정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버틀러 법스코프스 재판을 참조.

이 재판의 결과로 근본주의는 사회적으로 논란만 일으키는 사람들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스코프스 재판에서 처절하게 발린 근본주의자들은 이후 자유주의자들과의 정면 대결을 피하고 부흥회 개최, 성서 학교 설립, 해외 선교사 파송 등을 벌이면서 개척 교회 성장에 주력하거나 새로운 교파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들의 근본주의 수출로 인해 한국개독이 탄생하게 되는 비극적 사태가 벌어진다. 하필이면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 중 일부가 이 근본주의 성향이 강한 선교사들이었던 것. 하지만 한국 인구의 절반 정도가 종교를 딱히 믿지 않는다는 점과, 불교 신자들도 적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볼때 한국에서도 기독교 근본주의가 사회를 장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당장 이들은 상당수의 무신론자들이나 불교신자들한테 개독이라고 거센 비난을 받고 있으며 그나마 세속주의적인 기독교인들만 어느정도 받아주는 편이다. 사실 최소한 어려서부터 기독교를 믿는 가정에서 자라거나 아니면 뭔가의 계기로 갑자기 기독교에 심취 된 경우가 아닌이상 근본주의는 커녕 보수적인 기독교 골수분자를 이해하기도 상당히 어려운 편이다.

한국뿐이 아니라 서양에서도 대략 1985년 이후에 태어난 밀레니엄 세대로 오면서 종교를 가지지 않는 젊은이들도 점차 늘어나고 있고, 또 기독교를 믿더라도 세속주의에 근거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으므로 앞으로 근본주의가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과거보다도 더더욱 희박하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성격이 한번 자유의 맛을 제대로 알게되면 더 이상 어느 특정한 사회적 틀에 너무 구속 당하려고 하기 싫어하는 본심이 있어서 앞으로도 근본주의나 골수분자들이 획기적으로 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꼭 근본주의가 아니더라도 서양에서 기독교 보수주의 노선이 강한 집안의 경우 자녀들이 성인이 되어 기독교적 가치관이 완벽히 굳어 질 때까지 인기있는 대중음악이나 영화, 일본만화도 시청하지 못하게 하며 오직 기독교와 관련된 내용만 보도록 철처하게 지시하는 어른들도 있다. 그리고 사춘기가 되어 자녀들이 이성에 눈을 뜰 시기가 오면 특히 남자들의 경우 철처하게 운동을 많이 시키는 방향으로 나가며 성인물이나 감정적인 연애에는 절대 손 대지 못하게 통제한다. 물론 기독교를 믿더라도 좀 세속적인 집안은 의외로 음악이나 영상매체는 물론이고 자녀들의 연애에 대해서도 더 관대한 편.

3.2.3. 근본주의와 초기 한국 교회

1930년대 미국에서 쇠퇴하기 시작한 근본주의적극적인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해 한국에서 화려하게 부활하였으며 이는 선교사들과 미국에서 유학한 신학자들의 역할이 컸다. 해외 선교에 가장 적극적인 세력은 앞서 설명한 학생자원운동이었으며, 구한말 선교사들의 상당수가 이 학생자원운동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37] 특히 새뮤얼 오스틴 모펫(Samuel Austin Moffet, 한국명 마포삼열)으로 대표되는 장로회 선교사들은 거의 모두가 근본주의 또는 복음주의 신학의 세례를 받았다. 모펫은 평양신학교숭의여학교를 설립했고, 숭실학교 교장도 지냈다.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 학교는 이미 자유주의자들이 접수한 프린스턴이 아니라 매코믹 신학교였다. 매일 찬송가를 부르고 성서를 읽고 기도로 수업을 시작했으며, 학장과 교수들이 주일학교의 교사가 되어 오후 예배를 진행하는 전형적인 미션스쿨이었다. 이 신학교는 철저한 보수주의와 청교도적 엄격성, 경건성이 특징이었다. 이들은 초기 한국의 개신교의 성격을 결정하는데 지배적 역할을 하였다.

새뮤얼 오스틴 모펫은 1901년 평양신학교를 설립해 1907년 평양 대부흥운동을 이끈 많은 교역자들을 양성하였다. 이 외에도 초기 한국에 파견된 다양한 교파의 선교사들이 있지만 근본주의 신학교 출신들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대체적으로 근본주의와 경건주의, 성결주의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당시 조선에서 미국계 선교사들의 통제는 매우 철저했으며 종교 엘리트 집단인 목회자 양성 과정에 대한 절대적인 권한이 선교사들에게 위임되어 있는 상황이었다.

여기까지는 특별한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다. 저들의 의도는 어찌되었건 배재학당, 경신학교, 연희전문학교, 숭실학교, 이화학당, 배화학당, 숭의여학교, 정신여학교 등등 수많은 학교들을 설립한 건 분명한 공로로 인정해줘야 할 것이다. 문제는 1930년대 한국에서도 감리회를 통해 유입된 자유주의 신학 논쟁이 벌어진 이후였다.

3.2.4. 자유주의 신학 논쟁과 근본주의화

논쟁으로 인한 선교사들의 분열은 해방 후 한국 교회의 분열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당시 교파별 과다 경쟁을 막기 위해 지역별 분할 선교를 하였는데 지역에 따라 교파가 갈린 것이다. 함경도 출신들은 자유주의 신학 논쟁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에서 갈라져 나와 기독교장로회(기장)를 설립하게 된다.

한편 근본주의 적인 선교사였던 새뮤얼 오스틴 모펫은 1934년 장로회 선교 50주년 기념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한국 교회의 신앙 수호를 호소하였다.
조선 모든 선교사가 다 죽고, 다 가고, 모든 것을 축소한다 할지라도 형제여! 40년 전에 전한 그 복음 그대로 전파하자. 변경치 말고 그대로 전파하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 새뮤얼 오스틴 모펫의 연설 내용 중 발췌

이후 활발하게 추진된 기도 모임과 성경 공부는 19세기 말 근본주의 신학을 정립했던 미국의 나이아가라 성서 대회를 본뜬 것으로 초기의 부흥운동을 촉발시키며 이후 한국 교회의 보수 신앙을 형성하는 데 밑바탕이 되었다. 이같은 경건주의 신앙운동은 감정적이고 주관적인 체험 중심의 반이성적 경험주의와 반지성주의로 흘렀으며 그대로 한국 교회의 신앙 형태로 고착화되었다.

3.2.5. 박형룡과 박윤선

하지만 이들의 현대 한국 교회에 대한 영향력이 간접적인 것이라면 오늘날 한국 개독들의 광신적 근본주의 신학과 배타적 전투성을 형성하는 데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미국의 근본주의 항목에서 잠시 등장하였던 박형룡박윤선이다.

메이첸이나 반 틸과 같은 근본주의 신학자를 사사한 박형룡은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하나님의 주권과 성서의 권위에 대한 강조, 인간의 전적 타락, 하나님의 무조건적 예정, 제한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등을 준수하면서 영국의 청교도적 신학의 특성과 경건이 어우러진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한편 박윤선은 박형룡의 제자이며 1934년부터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유학하였다. 그는 주석학자로 유명했으며 설교 예화 등이 포함된 알기 쉬운 주석으로 인해 난해한 교의 신학을 가진 박형룡보다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특히 박형룡은 자신의 스승과 마찬가지로 평생 자유주의 신학과 투쟁을 하였으며 한국 개신교의 개독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다.

박형룡은 1934년 열린 제23차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때 제소된 창세기 모세 저작 부인 사건여성의 권리 재판을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 사건은 김영주와 김춘배 두 명의 목사가 각각 설교와 기고문을 통해 "창세기는 모세의 저작이 아니며 교회에서 여자는 조용히 해야 하고 여자를 가르치지 말라는 것은 2000년 전의 일개 지방교회의 교훈과 풍습이요 만고불변의 진리는 아니다" 라고 주장한 것에서 촉발되었다. 여기서 박형룡은 이 주장을 자유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아 해석된 것이므로 성서무오설축자영감설에 근거해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결국 재판정은 박형룡의 의견을 수용하여 두 사람을 소환해 주장을 철회하게 하였다. 교회에서 여성의 권리와 같은 근대적 상식 또한 치죄와 배제의 대상이 된 것은 박형룡이 주축이 된 한국 개신교 주류교단의 광적인 복고적 순수주의에 대한 선망과 모방의 산물을 증명해준다.

다만 박형룡과 달리 박윤선은 근본주의라고까지 보기 힘들다. SFC 문서에서 알 수 있듯 반 틸이나 클라스 스킬더 등을 통해서 직, 간접적으로 네덜란드 교회의 영향도 받았기 때문이다.

3.3. 일제강점기와 개신교

일제 식민치하의 한국의 개신교의 역사는 박해와 고난 그리고 흑역사로 취급되는 신사참배와 친일반민족행위자 양면으로 볼수 있다. 구한말 인구 1%의 불과한 개신교세였지만, 일제강점기 초기 1911년 105인 사건 체포자 120여명 중 98명이 개신교인이었고, 1919년 3.1 운동 때는 민족대표 33인 중 개신교 대표가 16인이었다. 독립운동가를 보더라도 안창호, 김구, 김규식, 조만식, 여운형 등 독립운동가들 중에는 개신교인이 많았다.

그러나 1930년대 다수의 독립운동가들이 변절하면서 개신교인들 역시 결국 그러했다. 처음엔 신학교 폐쇄 등의 소극적인 저항에서 자발적 친일반민족행위자 목사들과 현실주의에 타협한 대다수의 변절 목사들이 1938년 신사 참배를 찬성하는 결의를 한 것이었다. 천황을 현인신으로 섬기는 것은 교리상 명백한 우상숭배요 식민 강점기 하의 반역이었으나, 대부분의 변절자들은 해방 후에도 회개했다며 별다른 비판 없이 그 지위를 유지했다.[38]

신사 참배는 근본주의 일색인 조선 개신교에서 엄청난 사건이었다. 전시 동원 체제로 치닫던 1930년대 후반 정세에서 식민지 당국과 조선 개신교는 충돌할 수밖에 없었으며, 이 일로 인해 조선 개신교의 절대적 지주였던 서양인 선교사들이 강제 추방되고, 적지 않은 조선의 엘리트들이 실형에 처해졌다. 물론 주기철 목사처럼 끝까지 저항하다 끝내 순교한 사람들도 있었고, 일부 근본주의라 해도 정말로 양심을 가진 교회들은 대놓고 맞서기도 했다.

하지만 대다수의 개신교인들이 이러한 신사 참배에 굴복하였고, 근본주의 신앙은 타협한 자들에게 교훈으로 남았다. 통렬한 반성을 했다 하는 목사들은 신자들 앞에서 눈물을 짜고 주님 앞에 회개한다고만 했지, 스스로 사임하거나 한 사람은 거의 없다.

한편 이 당시 신사 참배를 거부했던 극소수의 목사들과 성도들이 기존 교단을 나오거나 옥살이 이후 억울하게 제명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주기철 목사의 순교 정신을 이어받아 고려신학교를 기반으로 한 예장고신 교단을 만들게 된다.

그리고 본격적인 문제는 해방 이후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3.4. 해방 이후

신사 참배 거부 건으로 투옥되었다가 해방 직후 출옥하게 된 이른바 '출옥 성도' 계열 인물들이 교계 정화를 부르짖으며 기성 교단에 회개할 것을 요구했는데, 이로 인해 그 동안 은폐되어 왔던 트라우마가 해방과 거의 동시에 터질 위기가 도래하게 되었다.

기성 교단에서 이에 대해 선택한 방식은 두 가지였는데, 우선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을 위시한 '출옥성도파'[39]를 철저하게 탄압하고 신학교 교육 과정에서도 조직적으로 은폐 및 왜곡[40]하면서 스스로의 치부를 덮는 데 급급했다.[41] 이 때문에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스스로 평가하는 것조차 '해방과 동시에 본격적인 타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고 논한다. 그렇다고 고신 교단 쪽에서도 순수하게 신앙의 힘으로 저항한 건 아니어서, 계속되는 박해에 견디기 위해서라는 명목 아래 근본주의로 재무장하면서 시대상의 발전을 따라가지 못하는 등[42] 제대로 된 대체제로서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이미 이 때부터 개독교라는 멸칭을 얻게 될 씨앗이 심어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다음으로는 새로운 타겟, 다시 말해 '물리쳐야 할 외부의 악마'를 재설정했다. 자신들의 타락을 얼치기 악마의 모습으로 규정하고, 그것과는 비할 수 없는 진정한 악의 축을 만들어냈던 것인데, 그것이 바로 공산주의김일성 휘하 세력들이었다. 개신교/대한민국 문서에도 나와 있듯이 북한은 정말 철저하게 종교를 탄압했고, 한국 개신교는 김일성에 의해 탄압받은 서북 출신 개신교인들의 체험을 집단기억화하여 건국 이념을 '기독교 정신으로 세워진 민주주의공화국'으로 잡는 데 성공한다.이때 월남한 서북 출신 개신교인들은 영락교회를 중심으로 뭉첬고 서북청년단등 개신교 극우 조직들을 만들어 제주 4.3사건때 무자비한 학살을 자행했다. 또 그리고 일제시대 아래 공산주의를 말세의 징조로 해석해 왔던 이데올로기 이론[43]을 체계적으로 발전시켜 공산주의를 물리치기 위해서라면 조선을 침략한 일본과의 협력도 무방하다는 논리를 완성하기에 이른다. 덧붙여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손양원 같은 온건파 지도자들이 죽자 개신교계의 주도권은 온전히 근분주의자들이 장악하게 되었고, 이 시점부터는 공산주의와의 전쟁을 십자군 전쟁과 거의 동일선상의 '거룩한 영적 전쟁'으로 규정하게 된다. 그렇게 50년대 반공주의를 통해 이승만에 협조하고 교회 분열에 큰 역할을 했던 근본주의자들은 독재정권과 손을 잡는 데 전혀 주저함이 없었고, 아래쪽에 언급할 내용과 같이 박정희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정권에도 어렵지 않게 협조했다. 이는 김수환 추기경을 필두로 해 군사정권에 저항해 왔던 가톨릭과 반대되는 행보였다.

또한 박형룡의 악행은 해방 이후에도 쭈욱 지속된다. 대표적 사건으로는 예장과 기장의 분리가 있다. 1947년 장로회 총회 때 조선 신학교 학생 51명이 김재준이 교장으로 있는 조선 신학교가 성서무오설을 비판하고 성서의 권위를 파괴했다고 주장하면서 서울에 정통 신학교를 세워달라고 탄원했다. 이에 박형룡을 비롯한 평안도 출신 근본주의 목사들은 1948년 6월 새로운 신학교를 설립하였고 직영 신학교 승인을 받았다. 이후 이들은 대구에 새 신학교를 세우는 과정에서 날치기 총회와 불법적 설립을 통해 조선 신학교 출신들을 배제하였고 1952년 김재준을 면직 처분하고 조선 신학교 출신 교약자의 채용 금지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반발한 김재준과 김재준을 지지하는 인사들은 장로회 총회로부터 분리되어 나왔고, 이들이 1954년 따로 설립한 교단이 바로 대한기독교장로회다. 현재는 한국기독교장로회로 명칭을 바꿨다. 이 교단이 모체가 된 학교가 바로 조선신학교(한국신학대학교)인데 이것은 오늘날 종합대학으로 존재하고 있는 한신대학교다. 현재 한신대에 진보적 학자들이 포진해있는 역사적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반독재민주화 운동에 헌신했던 故 문익환, 문동환 목사 형제나 민중신학자 안병무, 서남동, 진보적 경제학자이자 언론인으로 명성이 높았던 故 정운영 교수 등이 모두 한신대 교수 출신이다. 게다가 한신대 신학과 학생회는 각종 진보집회에 '민족한신 통일신학' 이라는 깃발을 들고 나타나곤 한다. 그런데 근본주의자들은 이러한 자유주의자들이야말로 일제시대 신사 참배에 적극적이었다는 말을 하기도 한다.[44]

3.5. 신복음주의와 군사정권과의 밀월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이 구절로 설명 가능하다. 실제로 군사정권 시절에는 이 구절을 인용해서 독재에도 순응해야 한다는 성명서를 낸 적도 있다.
그러므로 복종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진노 때문에 할 것이 아니라 양심을 따라 할 것이라. [중략]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

로마서 13장 5절(중략 이전 부분) 및 13장 7절 일부

사실 위의 구절들은 모든 권력을 하느님께서 세우셨기 때문에 그들에게 순종하여야 하지만, 그 뜻에서 벗어나 잘못된 행동으로 나라를 그르치는 권세에는 항거해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달하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45]

이 때 한국의 개신교는 급속한 기독교 파시즘 현상을 겪었고, 이것이 21세기에까지 계속 이어지는 본격적인 개독교화의 출발점이 된다. 근데 웃긴 점은 정작 그렇게 박정희, 전두환, 박근혜 정권의 독재를 정당화했던 사람들이 자기와 성향이 안 맞는다는 이유로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등에 대한 비방과 막말은 오히려 정당화하고 있다. 정작 박근혜의 비선실세인 최모씨는 사이비를 믿고 있다

3.5.1. 신복음주의

2차 세계대전 이후 근본주의의 영향권에서 성장한 미국의 젊은 학자들이 주류에서 밀려난 근본주의의 영향력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 만든 신 복음주의 세계 복음화를 추구하였다.

신복음주의는 기존의 근본주의적 복음주의가 교육받은 대중의 흥미를 끌지 못한다는 점에 주목하여 세속에서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사회 문화를 어느 정도 포용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였지만 결국 기독청년학생 활동이나 도덕 재무장, 세계 복음화 등의 표현을 보면 옷을 갈아입은 개독으로 비쳐질 수 있다. 오늘날 미국 사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 신복음주의의 보수적 계파이다.

50년대 이후 신 복음주의는 한국에도 영향을 끼치기 시작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준 인물은 전도사로 유명한 빌리 그레이엄과 로버트 슐러이다.
3.5.1.1. 빌리 그레이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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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리 그레이엄은 근본주의자들의 성지인 사우스캐롤라이나의 밥 존스 대학[46]과 플로리다 성서학원, 휫튼대학을 졸업한 후 미국 사회의 가치관 혼란은 복음적인 원칙으로 돌아갈 때만이 해결될 수 있다고 강조하며 열광적인 부흥 집회를 주도하였다. 그리고 젊은 시절의 조지 워커 부시와 면담하여 그를 회심시킨 것으로 알려져있다.

물론 빌리 그레이엄은 개독교와는 거리가 먼 인물로 볼 수 있다. 오히려 근본주의자들에게 에큐메니즘으로 비난을 받았다. 거기다 보수적, 진보적 할 것 없이 여러 성격의 교회들이 모였던 로잔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보아 근본주의자로 보기는 어렵다. 근본주의자들의 비난의 대상이었던 존 스토트 같은 성공회 신부들도 참석했으니. 굳이 말하자면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로 분류해야 할 것이다. 물론 파쇼다 사건에 나오듯이 고든을 칭송하다가 고든의 후손들에게 비난받았던 적도 있다. 그레이엄은 고든이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칭송했는데 여기까진 그럴듯해도 그의 믿음이 수단 선교에 도움이 되었다는 말이 문제가 되었던 것. 파쇼다 사건 항목에 나오듯이 고든이야 독실한 성공회 기독교인이지만 무슬림 부하들을 배려했고 선교를 강요하지 않은 사람이다. 그가 마흐디 신국군과 마지막 전투를 치룰때 무슬림이 대부분인 7천여명 부하들은 그를 따라 싸우다가 전멸했듯이 적어도 무슬림 선교같은 면으로 엉뚱한 예시를 들먹였다.

단 빌리 그레이엄의 아들인 프랭클린 그레이엄은 상당한 근본주의자다. 무슬림의 입국을 금지시켜야 한다고 말하는 등 상당히 과격한 행보를 걷고 있다. 신정주의 성향까지 가진 건 덤.
3.5.1.2. 로버트 슐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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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교회라는 상징적 교회 건물을 거점으로 개독교이던 아니던 한국 개신교에 꽤나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를 참조할 것.
3.5.1.3. 신학적 경향
6~70년대 한국 목회자들의 미국의 전통 개신교 성향이 많은 부흥 빌리 그레이엄의 방식을 모방하였고 수정교회를 자신들의 교회의 역할 모델로 삼았다.

50-60년대 풀러 신학교는 철저하게 실용주의적이고 현실 타협적인 입장에서 교회의 양적 성장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였다. 풀러 학파의 교회 성장학은 내용보다는 방법과 프로그램을 강조하고 숫자에 치우치는 실용주의의 산물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이 풀러 신학교마저 예일 신학교, 유니온 신학교, 프린스턴 등과 학문적 교류를 더 많이 진행하고 3개 대학 공동토론을 진행하는 등 많이 변했다. 유독 한국 신학계가 폐쇄적인 것이다. 이런 신학이 한국 교회에 영향을 줬다는 일부 의견도 있으나 특정 신학교의 영향이라고 보긴 어렵다. 미국 보수 개신교 에서도 6~70년 사회 변혁에서 수많은 목소리들을 전통 질서를 수호하고 반공주의 국가주의를 주장하며 시대에 동떨어진 시각을 드러냈다. 이에 영향 받은 한국 목사들은 급속한 경제 발전과 서구화를 개신교화로 이해하여 미국 개신교 근본주의 성향을 그대로 받아들인 이들은 교회 성장을 위해 통계 숫자와 통계표를 중시했고 성장을 위한 목표 설정, 효과적인 전도 이론 및 전도 원리와 방법을 개발했다.

3.5.2. 군사정권과 개독교

그리고 대학생선교회(CCC)를 설립한 김준곤, 소망교회 곽선희, 광림교회 김선도 등 많은 목사들이 풀러 신학교에서 유학하였다.

김준곤은 박형룡에게 사사받은 사람이다. 그는 풀러 신학교에서 CCC 운동을 접하고 1958년 귀국하여 한국 CCC를 창립했다. 당시 이화여대(감리회) 제7대[47] 총장이던 김활란서울여대(장로회) 제1대 학장이던 고황경 등의 후원으로 학원 전도에 성공한 그는, 한국 개신교회의 지도적 위치를 확보하게 되었다. 참고로 김활란, 고황경 모두 1930년대부터 노골적인 친일 활동을 펼쳤으며 이에 대해 한 번도 반성한 적이 없다. 최근 친일인명사전에 수록되었다.

한편 이 시기 미국제 복음주의를 도입하고 확산하는데 앞장섰던 김준곤과 김장환조용기와 함께 60년대 말부터 80년대까지 반공과 안보를 내세워 민주화 운동을 용공 세력의 준동이라고 비난하면서 군사독재를 옹호하는 역할을 했다.

김장환은 빌리 그레이엄이 졸업한 밥 존스 대학 신학과 출신이며 한국 교회의 지도적 인물 중에서 가장 극우적이면서 가장 친미적 성향의 인물로 평가된다. 하지만 김장환 목사는 밥 존스 대학과 결별했다. 그가 사장으로 있는 극동 방송은 2004년 5월에 가정의 달 특집으로 고문 기술자였던 이근안을 옹호하는 휴먼 다큐멘터리를 내보내거나 2006년 극동 방송 창립 50주년 행사 때 전두환 전 대통령을 공식 초청하는 등의 짓을 저질렀다.

또 김준곤은 1966년 미국 조찬 기도회를 모방해 '밤낮 없이 일하시는 대통령' 을 위해서 기도한다는 명분으로 '대통령 조찬 기도회' 를 주관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이룩하려는 나라가 속히 임하길 빈다" 라고 기도했고 이듬해인 67년에는 "우리나라의 군사 혁명이 성공한 것은 하나님이 혁명을 성공시켰기 때문"이라며 노골적으로 독재정권을 찬양했다. 하지만 CCC 소속 중에서도 이런 흑역사를 모르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김준곤과 조용기는 1969년 8월 15일 김재준, 박형규 목사, 함석헌 등 개신교 진보인사들이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을 반대 운동을 하는 성명을 내자 9월 2일 박형룡, 김유찬 등 242명의 개신교 보수인사들과 함께 '개헌 문제와 양심 자유 선언' 을 발표하면서 진보인사들의 선언을 "순진한 성도들의 양심에 혼란을 일으키는 선동적 행위" 라고 비난하고 교회는 정치적 문제에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들은 9월 5일 '대한 기독교 연합회' 라는 단체 명의로 발표된 '개헌에 대한 우리의 소신' 이라는 성명에 서명하면서 3선 개헌을 지지해 자신들의 정치적 중립 입장을 뒤집기도 했다.

1972년 발표된 10월 유신으로 박정희 정권과 기독교 진보 세력과의 갈등이 커지고 1973년 남산 부활절 예배 때 반정부 유인물 배포 사건이 발생하자 김준곤은 교계 보수인사들을 규합해 유신의 앞날을 축복하는 열린 제 6회 국가조찬기도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김준곤은 "유신은 실로 세계 정신사적 새 물결을 만들고 신명기 28장[48]에 약속된 성서적 축복을 받은 것" 이라고 설교했다.

반정부 유인물 배포 사건은 위수령과 10월 유신 이후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도전한 최초의 행동이었다. 현직 목사 등 다수의 성직자와 기독 학생들이 내란 예비 음모 혐의로 구속 된 이 사건은 교회에 큰 충격을 던졌다. 사건이 발생한 이후 기독교 장로회와 NCC는 즉각 모임을 갖고 성명을 내는 등 대책 활동에 들어갔는데 이 활동은 단순히 이들의 구명 운동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가 정치적 상황에 대한 교회의 인식을 재고시키면서 민주화 인권운동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3.5.3. 개독교의 유신 찬양

그런데 1975년 김장환은 박정희 정권이 인민혁명당 사건, 긴급조치 9호 선포, 미국인 조지 오글 목사와 시노트 신부 강제 추방 등으로 국제 여론, 특히 미국 내 여론이 악화되자 미국을 방문해 "목사 중에 구속된 사람은 그 사람이 순수 복음을 전하는 목사가 아닌 정치 목사" 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허나 자기도 유신을 지지하니 이 자도 정치 목사인 셈.

이에 질세라 김준곤도 1975년 5월 서울 정동 CCC 대강당에 학생 1,000여 명을 동원해 반공 구국 기독 학생운동 특별 기도회를 열어 "나라를 위해서는 순국을, 주님을 위해서는 순교를, 공산주의자들의 무력 도발에는 육탄으로 맞서는 의지를 가지고 반공의 면역체가 되고 전도의 새 종족이 될 것" 을 다짐했다.

조용기도 같은 해 6월 장충제육관에서 '민족복음화와 국가안보' 라는 제목으로 대중 집회를 열어 유신 지지 집회를 개최했다. 이처럼 조용기, 김준곤, 김장환 등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활용해 민주화 운동을 용공 세력으로 비난하는 대규모 부흥 집회를 개최하면서 박정희 정권의 유신 체제를 옹호했다.

어떤 사람은 그 당시 시대가 반공주의를 당연하게 여겼다며 옹호해 주지만 이런 일들을 정상적인 행위였다고 납득시키기에는 부족하다.

3.5.4. 전두환의 대두 이후

5.18 직후 전두환 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열었다.

8월 6일. 전두환이 최규하의 손을 빌어 스스로 대장 계급장을 단 바로 다음날이다. 이날 롯데호텔 에메랄드룸에 교단의 총회장급 목사 23명이 자리를 함께 했다. 기독교를 대표하는 목사들이 한자리에 모인 셈이다. 조찬예배가 열렸고, 방송사들도 현장 중계에 나섰다. 제목은 ‘전두환 국보위상임위원장을 위한 조찬기도회’. 청와대 입성의 길목에서 대민선전을 목적으로 준비한 일종의 ‘기획행사’였던 것이다.

참석한 목사들은 전두환을 위해 기도했다. 유대민족을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으로 인도하는데 최선봉에 섰던 “여호수아 같은 인물이 되게 해달라”고 입을 모았다. 또 전두환을 향해 “이 어려운 시기에 막중한 직책을 맡아서 사회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악을 제거하고 정화할 수 있게 해준 데에 감사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내란과 살인을 저지른 범죄자를[49] ‘사회악 제거하는 의인’이라고 추켜세우다니. 한국 사람도 아닌 오대원(David E. Ross) 선교사[50]가 민주화 시위 중 쫓기던 학생들을 자주 숨겨주다 전두환 정권에 의해 강제 추방된 것과 대조적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기독교 원로들이 내란죄의 수괴에게 보란 듯이 ‘면죄부’를 준 셈이다.

3.5.5. 개독교의 기복신앙

이러한 개독들은 자신들의 행태를 정당화하고 독재정권의 구미에 맞추기 위해 내면적 믿음을 강조하며 기복신앙을 강조하였다. 사회적 현실을 변화시키기 위한 행동에 나섬으로써 따를 수 있는 불편함과 고통에 대해서는 쉽게 외면하고 그러한 일을 비신앙적인 것으로 간주하지만 개인의 성공과 명예를 획득하는 일에는 적극 나서며 그러한 것을 곧바로 '하나님의 축복' 으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신앙의 세계에서는 고통의 문제 역시 취사선택될 수밖에 없다. 개인의 성공을 추구하는 '하나님의 축복' 을 얻기 위한 과정에서의 걸림돌만이 '불가피한' 고통일 뿐 사회적 빈곤과 정치적 박해 등은 '피할 수 있는' 고통이 된다. 이러한 내면적 복음화의 신학이 내면의 도덕성을 강조함에도, 현실을 지배하는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무소유의 삶으로 귀착되지 않고, 현세적 성공을 축복으로 받아들이는 삶을 선망하게 되는 것은 개인의 성공을 추구하는 성향 때문이다.

하지만 성경에서도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항상 만사 형통한다는 보장 같은 건 없다고 못박아놨다. 하나님을 믿으면 만날 고통이 있다는 것도 아니지만 반대로 하나님을 믿는다고 100% 성공하는 삶이라는 말 같은 건 없다는 말이다. 당장 욥과 12사도가 어떤 수난을 겪었는지 생각해보자.

오히려 성경에서는 대표적으로 욥기, 바울의 서신서 등등으로 대표되는 고난의 시기에 믿음을 더욱 굳세게 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하자라는 내용이 핵심 내용이다. 개독교가 지껄이는 것처럼 자기 이익이나 챙기라고 말하지 않았다. 설사 기복신앙의 논리에 따라 하나님을 잘 믿으면 만사형통한다 해도 악행을 저지르고 반성도 안하는 개독교들이 하나님을 잘 믿는 사람들일 리가 없다. 즉, 이미 자폭을 실컷 한 셈이다.

개독교의 행태는 흔히 말하는 샤머니즘에 속하는 무당굿 같은 기복적 민간 신앙 및 복을 바라는 우리나라 사람의 심리가 결합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바르게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눈앞의 이익을 좇으면서 살지 않는다. 물론 성경에도 복에 대해서 나와 있지만 기복신앙에서 생각하는 물질적인 복은 성경에서 말하는 복의 극히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복은 모두에게 주어지지도 않는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솔로몬이나 같은 부자들도 있지만, 예레미야엘리야처럼 가난한 사람들도 많았다. 세례 요한메뚜기나 구워 먹는 야인이었고, 심지어 예수는 이스라엘 전국을 떠돌다 제자들 다 흩어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3.6. 군사정권 이후

1990년대 이후 충현 교회의 장로였던 김영삼이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노골적으로 친여를 표방하였다. 여기서 여당이란 민자당-신한국당-한나라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 으로 이어지는 세력을 말한다.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 당시 여의도 순복음 교회 담임 목사였던 조용기는 설교 시간에 "김영삼 장로를 지지하여 청와대에 찬송가가 울려퍼지게 하자. 그동안 청와대에서 너무 오랫동안 목탁 소리가 들려왔다. (가톨릭 신자였던) 김대중 후보가 당선되면 청와대에 김수환 추기경이 자주 들어온다" 고 말했다가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개소리 집어쳐!

그런데 정작 김영삼 이전의 대통령들 가운데 불교신자인 대통령은 노태우 뿐이었으며, 그렇게 목사들이 돌아가며 찬양하던 박정희는 아이러니하게도 무교(無敎)였다. 다만 육영수 여사가 불교 신자여서 불교에 우호적인 편이긴 했다.[51] 한때 가톨릭 신자였던 전두환은 퇴임 후에 불교에 귀의했다. 즉 한 마디로 조용기 먹사개소리를 한 것이다.

실제로 김영삼과 이명박[52]은 재임 시절 공개적인 친 개신교적 행보로 여러 구설에 올랐다. 1997년 대통령 선거 때는 유력 후보였던 김대중, 이회창 모두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노골적으로 한쪽을 지지하지는 않았다. 대신 김한식이라는 목사가 출마했지만 개신교 측에서는 별다른 관심조차 갖지 않았다.

3.7. 2000년대 이후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2000년대 이후 김대중-노무현의 개혁 정권을 거치면서 이들은 더더욱 우편향적인 노선을 띤다. 특히 노무현 정권에서 이런 보수 개신교의 세력 기반의 하나인 사립학교를 개혁하려고 했기 때문에 더욱 이들은 민주당 정권에 적대적이었다.

기독교 우파를 표방하는 보수적인 개신교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은 민주당 정권과 대립하였으며 이는 2007년 소망 교회 장로였던 이명박에 대한 노골적인 지지로 나타난다. 김홍도 같은 막장적인 목사 뿐만 아니라 비교적 정치적 발언을 삼갔던 하용조 같은 목사까지도 노골적으로 설교 시간에 이명박 지지를 외쳤다.

이들의 우편향적 행보는 계속되고 있으며 수도 이전 문제, 4대강 문제, 주5일 근무, 무상급식, 박근혜 탄핵 반대 집회 등과 같이 비종교적 이슈에도 이들은 적극 개입하고 있다. 기독교에서 정교분리는 꽤 엄중하게 지켜져야 하는데 이게 무슨... 어찌 보면 교회의 성숙함과 사회의 성숙함은 비례하는 걸지도 모른다. 당장 영국 복음주의와 미국의 복음주의의 주류가 성격이 다른 것을 보자.

종교인 과세 문제를 두고 정부에 격렬히 반발하고 있다. 세금도 안 내겠다는 태도에 격분하는 일반시민들이 많다. 결국은 코로나19 집단감염의 원인으로 주목받으면서 신천지와 도매금으로 까이고 있다.

4. 문제점

4.1. 논란 및 사건사고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개독교/사건사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1.1. 먹사들의 노골적인 정치 개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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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래? 그럼 너한테도 기회를 줄테니까 저기 한강물 수온이나 좀 재고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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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칭 기독교 우파를 들먹이는 사람들에 의해[53] 아주 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대표적인 사람으로는 청교도 영성 훈련원의 목사 전광훈을 들 수 있다. "이명박을 찍지 않을 시 생명책에서 지워버리겠다!" 는 망발을 한 바 있다. 참고로 저 발언은 기독교 교리상 엄청난 신성모독이자 중죄로 인간이 예수의 권리를 자신의 권리로 선언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생명책에서 지워진 사람은 누구일까? 특정 정치인을 찍지 않은 사람일까? 인간인 주제에 자기 마음대로 생명책에서 이름을 지워버리겠다는 놈인가? 이정도면 가히 살모네우스[54]의 개신교 버전이라 할 수 있다.

어느 쪽 발언이건 욕설 인증 발언으로 볼 수 있다. 이런 망언을 내지를 수 있을 정도로 미치기도 힘들 것이다. 목사란 본디 양떼를 돌보도록 위임받은 신자 대표 즉, 신자에 불과한데 그 목사가 무슨 권한으로 하나님의 권한인 심판에 대한 권위를 가진다는 말인가? 이것은 단순한 기독교 신학 차원을 넘어 전체 기독교 사에서 절대 있어서는 안될 발언이다.

가톨릭의 가장 강력한 처벌인 파문은 그때나 지금이나 어디까지나 교정을 목적으로 공동체에서 추방하는 것이지 지옥으로 보내버린다는 소리가 절대 아니다. 파문 문서에서 찾아볼 수 있듯이 중세시대에 파문이란 사형선고나 다를 바 없기는 했으나 아무리 극악무도한 죄인이라고 하더라도 구원의 여부는 예수만이 판단할 수 있지 인간이 판단할 수 있는게 아니다.

그리고 본의 아니게 종교 개혁에 큰 역할을 한 마르틴 루터도 "하느님의 말씀은 성경에서 나오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게 아니다" 라고 했다. 목사가 설교를 하지 말라는 말은 절대 아니지만 위의 사례처럼 저런 정신 나간 경우를 경계한 말이다.

굳이 종교가 아니더라도 사회에는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다 직책에 걸맞는 임무가 명백히 존재한다. 대통령의 권한과 국회의원의 권한이 다르고 같은 군인이라 하더라도 대장대위중사병장의 권한은 모두 다르다. 연예인이라고 안 그럴 거 같은가? 아니다. 연예계에도 배우의 경우 주연과 조연이 명확하며 가수의 경우도 보컬과 댄서의 구분이 명확하다. 걸그룹이라고 안 그럴 거 같은가? 아니다. 걸그룹 내에서도 메인 보컬은 뚜렷하게 정해져 있다.[55] 마찬가지로 개신교라고 예외가 없다. 하나님의 권한과 일개 목사의 권한이 같다고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위의 전 목사는 그러한 세상의 이치따위 개무시한 채 일개 목사 주제에 하나님의 권한을 행사하려 들고 있다. 이는 아주 훌륭한 이단의 표본이다.

2011년 9월 18일 시사매거진 2580에서 전광훈 목사가 정당 건설을 주장하면서 변명을 했는데 참 가관이다.
"듣는 사람이 한정되어 있고 그 청중과 말하는 사람이 어느 정도 유대 관계가 쌓이면 표현 수위는 조금 넘을 수 있다!"
다시 말해, 자기는 그냥 유머로 말했다는 뉘앙스다. 그런데 세상에 유머거리로 만들 게 없어서 그것도 자신이 흠숭해야만 하는 신성의 영역과 인간의 가장 소중한 권리들 중 하나인 성을 비하거리로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참고로 전광훈은 이후 '기독교 사랑실천당' 이라는 정당을 만들어 지방 총선에 나섰다가 당당하게 제로의 영역에 도달했다. 정당 창단식에 한나라당 의원이 하나도 참가하지 않는다며 투덜거리고 중놈은 교도소에 넣어야 한다는 찌질이 발언이나 하더니만 교회에 이자 0.1%로 돈 빌려주게 하겠다는 얼토당토 않은 헛소리만 공약으로 내세우니 누가 찍어줄까?

안 그래도 목사이든 승려이든 암튼 대선에 성직자만 나왔다 하면 거의 밑바닥급으로 득표하고 낙선하는 게 대한민국의 정치판이다. 1997년 대선에는 김 모 목사가 고작 4만 8717표(0.2%)를 득표하여 7명의 후보 중에서 7위(꼴찌)로 낙선했으며 2002년 대선에서는 김 모 승려 역시 고작 5만 1,104표(0.2%)를 득표하여 6명의 후보 중 5등으로불심으로 대동단결! 낙선했다. 차라리 군 장성 출신(박정희, 전두환, 노태우)이나 무당 출신(최순실) 재벌 출신(이명박)은 대통령에 당선될 지언정 성직자는 절대로 당선되지 못하는 게 대한민국 정치계의 판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종교를 안 믿는 사람이 그 성직자 후보를 피해서 몰표를 퍼붓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목사가 출마하면 불교 믿는 사람들이 목사 후보를 절대 안 찍고 승려가 출마하면 개신교 믿는 사람들이 승려 후보를 절대 안 찍는다. 거기에다 무신론자들은 덤.

다른 종교를 존중하는 분위기를 가진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오히려 성직자가 대통령이나 총리가 될 가능성이 있지만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분위기가 강한 대한민국에서는 어림없다. 그런 상황 속에서 중놈은 다 교도소에 처박겠다고 해대는 등 타 종교에 대한 인신공격을 서슴치 않으니 누가 이런 당을 지지할지 생각해 보자.

어쩌면 종교인이 정치에 뛰어들면 100% 실패하는 이유로 이 개독교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개신교 성직자가 선거에 나오면 개독교의 행태에 진절머리가 난 비 개신교인들이 절대로 뽑아주지 않으며 반대로 타 종교 성직자가 선거에 나오면 개독교도들이 그 성직자를 절대로 뽑아주지 않는다. 결국 성직자의 정계 진출을 막은 개독교는 사실상 스스로의 무덤을 판 셈이다. 아니면 승려의 정계 진출을 막으려는 일종의 자폭이든가. 이런 게 없는 독일의 경우 요아힘 가우크 독일 대통령이 동독 출신 + 목사 신분으로 독일의 대통령이 되기까지 했다.

2016년 3월 지치지도 않고 또 기독자유당이 탄생했다. 주도하는 인물들이나 공약을 보면 그 이전의 기독사랑실천당이나 기독자유민주당과 같은 곳에서 이름만 바꾼 개신교 극우정당이다.

2011 무상급식 주민투표까지 끼어들어 불륜 6걸로 유명한 김홍도 목사는 "종북주의자들이 무상 의료, 무상 급식을 걸고 나와 나라 경제를 말아먹는다!" 라고 공식 설교 시간에 발언했다. 자신의 정치 성향과 신념이 어떠하든 간에 그것이 옳든 혹은 그르든간에 그런 식의 정치떡밥 예배는 선관위에서 막고 있는데 그것을 했다는 것이 문제.

이에 질세라 전광훈 목사도 "이번 무상급식 투표로 곽노현 못 막으면 학생 인권조례 통과로 청소년 동성애가 확산되는 것을 막지 못한다!" 는 훨씬 더한 발언을 했다. 이것 역시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옳든 그르든을 떠나서 별개의 문제를 끼워맞추며 자기들의 사고방식만을 강요하는 전형적인 개독교적 사고방식이다. 이런 거 많이 봤는데

더 무서운 건 이들의 설교에 일사불란하게 "아멘!" 하면서 응답하는 신자들. 그야말로 사이비 교주와 신도들의 전형적인 모습. 아니, 과장 하나 안 보태고 히틀러 연설에 '하일 히틀러!!' 라고 외치며 손 올리는 나치당 당원과 정말로 다를 게 없다. 타 종교, 타 교파를 보고 우상 숭배라고 비난하지만, 정작 개신교야말로 목사를 우상 숭배하며, 목사를 신격화하고 있다.

더 기가 막힌 것은 이 목사들이 하는 행위는 불법이다. 이들은 선관위의 경고를 받았음에도 거리낌 없이 이런 말을 했다. 국가의 권위를 인정하라고 한(로마서 13장 1절) 성경도 무시한다. 관련 기사.

정교분리 항목을 참고하면 알겠지만 종교인이 정치를 하면 안된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주의해야 하는 것은 종교를 이용하여 특정 정치인의 신격화가 되는 과정이다. 불과 얼마전에 탄핵되었던 박근혜가 목사들의 외침속에 범죄자에서 피해자로 바뀌어져가고 있는지. 아멘하며 자기 주관없이 목사님 말대로 투표하면 되겠지 하고 하는 이들이 수가 늘어가고 국가 대통령, 상원과 하원을 투표하는 시기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지는 암울하게 훤하다. 미국 바이블벨트지역에선 대형목사들의 열렬한 지원사격으로 기독교인들의 투표가 공화당 대선후보였던 트럼프에게 향했다 이렇게 국가의 중요한 사항들이 결정되어야 할 시기에 다수의 목소리가 아닌 특정 종교인이나 교리의 개소리가목소리가 나라를 좌지우지 하게될지도 모르는 것이다.

4.1.2. 하나님 믿는 나라는 다 잘 산다

정치 개입으로 대중에게 공개적으로 망신당하지는 않았지만 어그로를 끈 목사 중에서는 땡중 발언으로 유명한 신일수 목사가 있다. 이 사람은 "불교를 믿는 나라는 다 못 살고일본이 화나요를 눌렀습니다. 하나님 믿는 나라는 다 잘 산다!" 고 하며 "기독교 국가 중에서 못 사는 나라 있으면 한 나라라도 찾으면 10만원을 주겠다!기독교 국가 중에서 못 사는 나라가 아예 대륙째로 존재한다." 고 공언까지 하였다. 그런데 이 설교 동영상을 자세히 보면 초반에 이 양반이 손가락으로 2를 하면서 "내가 선거 기간에 이런 거 많이 했어요. 선거에 누구 찍으라는 말은 못하고" 이러면서 엄청 강조하는 부분이 있다. 명백한 선거법 위반이다.

그리고 외교부 홈페이지를 뒤져서 기독교가 대다수인 후진국을 무려 44개국이나 찾아낸 사람들이 440만원 달라고 전화를 하자 신일수는 황급히 전화를 끊고 입을 다무는 추태로 개소리의 대미를 장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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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으로 칠해진 나라가 (개신교의 동의어가 아닌)기독교 인구가 50% 이상인 국가이다.

여담으로, 아시아중 가장 먼저 선진국이 된 일본의 기독교인구는 1%미만이며[56] 국민소득이 5만불이 넘어가는 싱가포르의 경우 불교 인구가 60%를 넘어간다. 한국도 가톨릭+개신교를 합쳐도 개신교 단독으로도 최대 집단이지만 불교가 개신교 다음으로 신자가 많음은 물론 개신교보다 더 많은 건 무종교인 사람들로 전체의 반을 넘는다. 더 구체적으로는 개신교 20% 불교 16% 천주교 8% 무종교 56%. 보다시피 최대집단인 개신교와 성향이 가장 비슷한 천주교를 합쳐도 무종교의 반밖에 안되고 2위인 불교의 2배도 되지 않는다.

4.1.3. 개신교 교육 강요

최근 보수적인 목사들은 입맛에 맞는 정권을 옹호하는 입장으로 많이 나가지만 2007년 이전만 해도 정권에 대해서 머리를 밀고 바퀴 달린 십자가를 지며 반대했던 사람들이 바로 이들이라는 걸 생각해보면 이중잣대가 얼마나 뇌리에 깊숙히 박혔는지를 알 수 있다. 이들은 사학법을 개신교 교육을 시킬 수 없다며 반대했고 나아가서는 고등학교 평준화 제도까지 공격하였다. 한국 개신교의 수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물론 중세 가톨릭 교회도 막장스런 모습을 많이 보여주긴 했지만 그래도 행정기구로서 국가 통치를 어느 정도 담당하기도 했으며 수도원 같은 곳에서 신진농법같은 적절한 기술을 개발해 실생활에 도움이 많이 되었고 교육과 같은 사회 유지에 필요한 것들을 책임지는 등 사회적 책임을 졌다. 정작 개독교는 그런 거 없다. 까마득한 중세 시대의 가톨릭만도 못한 수준이다.

4.1.4. 천상천하 유아독존

2011년 중반 이후로는 서울 예수 비전 교회 안희환 목사가 주축이 된 한국인터넷선교네트워크라는 단체가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어○ 유족들의 위임을 받아서 인터넷상에서 개독교들의 잘못을 비판하는 글들을 하나하나 찾아서 블라인드 시키고 있다. 하지만 정작 본인들은 잘못한 것이 없다는 식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예수는 이리 가르치지 않았다. 답이 없다.

심지어는 소망교회에 다녔던 사람조차 글이 블라인드 당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해당 인사는 변호사를 선임해서 싸울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세에 마귀가 멀쩡한 얼굴로 다닌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심지어는 2011년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현재의 미래통합당+미래한국당)이 미덥지 못하다면서 개신교 극우 정당인 기독자유민주당을 만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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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 6걸로 명망 높은 목사들이 보이며 교회가 민족의 희망이라는 주장을 했다. 뭐 여기까지는 그러려니 한데 그말을 한 당사자들이 하필이면... 익숙한 얼굴이 요기잉네?

애초에 성경에서 복음의 적용 대상이 유대인에서 유대인 이외의 사람들까지로 확장되었다고 언급된 것 자체가 선민의식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지 보여주는 사례다. 성경에서 선택받았다고 하는 유대인들도 하도 깽판을 쳐대자 야훼는 그들을 멸하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복음의 우선적 수혜 대상이라는 개념을 지워버린 전개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정확히는 자신에게 순종하는 사람들 전부로 수혜 대상을 확장한 것으로 실제로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들 중에는 유대인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창세기에서는 멜기세덱으로 예표되었으며 모세장인 이드로는 이방인이였고 결정적으로 나아만은 유대인의 적군 장수였다.

그리고 개독교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라면 지금 있는 국가는 필요 없다!" 는 생각이다. 정확히는 바울이 기록한 것으로 성경에 엄연히 다음과 같이 못 박아놨다.
(롬 13:1)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

웃기게도 이 구절은 여러 정권을 지나면서 자신들과 뜻이 맞는 자가 집권하면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한편, 맞지 않는 자가 집권하면 철저히 무시하면서 개독교는 성경과는 어긋난 일만 저지르고 있다는 결론만이 나온다.

물론 성경 해석과는 별개의 문제로 종교적 가치를 추구하여 대안적인 정치 체제를 모색하는 것 자체가 무턱대고 비난받을 일은 아니다. 정치 철학의 발전은 아우구스티누스, 토마스 아퀴나스, 마르틴 루터, 장 칼뱅과 같은 인물들이 현실의 정치 체제에 대한 대안을 모색한 데에도 큰 빚을 지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자. 백 번 까여도 마땅한 것은 성시화(聖市化) 운동과 같이 정치 체제의 변동 없이 기존의 권력만 접수하여 종교적 가치를 강요하려고 하는 시도에 대해서만이다.

문제는 한국의 개독교라 할 만한 보수적 주류 교단은 극도로 국가주의적이고 파시스트적인 행태를 보인다는 점이다. 이들이 개인의 권리나 자유주의에 대한 설교를 주로 하는지, 국가에 대한 충성과 희생을 강조하는 설교를 주로 하는지 상기해보자. 기독교 우파를 추구하는 정치 먹사들의 주장은 권위주의적 국가를 통해 종교적 가치를 강제하고 종교에 대한 위협을 차단하는 것을 추구한다. 이런 주장은 개신교로의 종교 국가화와 별다를 게 없다.

최근에는 정교유착으로 보이는 일부 현상까지 벌어져 더더욱 욕을 많이 먹고 있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권위주의 정부에서 기독교적 가치를 완전히 짓밟았는데도 찬양하는 경우도 있다.

밑에 서술된 성소수자 탄압과 더불어 "누구라고 말은 안하겠지만 서울 광장 열어준...이런 사람이 대통령 나가려는데"라는 식으로 한큐에 둘을 가고 있다. 퀴어퍼레이드에 대해서도 "더럽다" 등의 표현을 하며 혐오를 매우 표출하고 있다. [57]

4.1.5. 목사들의 독재정권 찬양

대형 교회의 보수 목사들은 독재정권을 찬양하고 있다. 이승만, 박정희가 주로 찬양의 대상이 되는데 심지어 박정희 추모 예배를 열면서 한국은 독재를 해야 된다는 정신 나간 발언을 내뱉는 목사도 있다.

성경적인 원인이 있을 수도 있는데, 세속 정부의 권세도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그 권세에도 순종하라는 구절이 성경에 있는데[58] , 보수적인 성향의 교단이나 교인일수록 권위(그것이 신이든, 세속 정부이든, 직장 상사이든, 부모님이든)에 대한 순종을 강조하기 때문. 순종을 강조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독재에 대한 순종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59]

그러나 기독교도로 비교적 기독교에 유화적인 정책을 편 이승만과 달리 박정희는 기독교적 가치관에 완전히 어긋나는 정책을 폈다. 그는 유전병이나 전염병이 있다며 강제 불임 수술을 시키는 제도를 만들고 낙태를 국가에서 자행하기 위하여 일부 합법화시키고 국가에서 월경조절술이라는 이름으로 초기 임산부에 대한 흡입식 낙태를 보급하였고 인구 감소 운동 등의 행동을 했다.

그런데 기독교 목사들이 박정희를 찬양하는 것은 매우 비정상적이다. 다섯 명의 아이를 낳지 않으면 감옥에 가야 한다는 발언까지 한 전광훈 목사가 박정희 정권을 박정희 덕분에 대한민국이 일으켜졌다고 찬양하였으며 조용기 목사도 박정희를 찬양한 바 있다. 세월호 참사 후 김삼환 목사가 박근혜(당시 현직 대통령이었음)를 명성교회에 초청한 적이 있다.

낙태와 인구정책 문제는 기독교 이외에서 볼 때 논쟁이 되는 사안이므로 제친다 치더라도 강제 불임 수술은 기독교 이외에서 보아도 나치와 다를 바 없는 반인륜적인 정책이라는 것을 보면 어처구니가 없다. 한편 목사들은 박정희 정권 당시 유착되었으며 박정희 시대에 기독교 가치에 어긋나는 잘못된 정책에 반대하는 운동을 벌인 적이 없다. 앞서 예를 든 강제 불임 수술은 종교 외적으로도 반인륜적인 정책이며 인구 정책의 경우도 결과적으로는 실패로 드러났다.

반면 천주교는 낙태 합법화 시도, 강제 불임이라는 인권 침해 등에 대해 여러 차례 반대 운동을 폈다. 그리고 대부분의 종교들이 낙태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불살생을 기본으로 하는 불교는 물론 신흥 종교인 증산도까지 낙태에 부정적이며 이슬람도 낙태를 용납하지 않는다.

4.2. 공공의 적

위에도 이미 조금씩 언급하였으니 짐작했겠지만 이런 식이다 보니 개독교는 온라인, 오프라인을 막론하고 한국의 공론장에서 문자 그대로 공공의 적이요, 악의 축 취급을 받는다. 심지어 그 적 중에는 일반 개신교인마저 있으니 그야말로 일단 패고 보는 공공의 적.

4.2.1.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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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항목: 개독교/전도

일반적으론 타 종교에 대한 공격성을 드러내어 관련 문화재를 훼손시킨다. 그리고 공격 대상은 같은 그리스도교인 천주교도 포함되기도 한다. 천주교에 관한 공격에 큰 부분은 천주교 수도회 중 하나인 예수회인데, 그 예를 보면 이런 개소리 이야기가 있다.
-예수회임진왜란의 배후이다
-예수회=프리메이슨=일루미나티[60]
-바티칸=바빌론, 교황=탕녀교황은 남자인데?
4.2.1.1. 과학 탄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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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mg/cmu_yu02/975/974249_2.jpg[61][62]

과학자들에게도 개독교는 적이다. 두번째 짤에서 왜 원숭이가 동사무소로 안 오냐면서 비아냥거리는데, 사람은 원숭이가 진화한 것이 아니라 현재 원숭이들과 사람의 공통 조상이 되는 영장류가 진화한 것이다. 이처럼 진화론을 아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한 채 되려 반박한답시고 이상한 궤변만 늘어놓는 경우가 많아 과학자들은 피곤하다.[63]. 즉, 진화론의 입장에서 볼 때 원숭이가 사람이 된다는 말은 도마뱀이 상어가 되거나 거꾸로 인간이 원숭이가 된다는 말 만큼이나 허무맹랑하다는 것. 그리고 저 목사가 만일 '원숭이'가 아니라 '인간의 조상'이라고 말했어도 틀린 말이다. 진화는 단시간에 이루어지지 않고 수십~수천만 년 이상에 걸쳐 아주 천천히 진행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양한 종파의 성직자들은 과학의 발전을 한 낮에 등장한 마녀처럼 두려워하며, 그들이 일종의 사기로 먹고 산다고 선언하는 그 치명적인 전령을 노려본다.
토마스 제퍼슨
믿음을 통한 보는 방법은 이성의 눈을 닫는 것이다. 차라리 등대교회보다 훨씬 더 인생에 도움이 된다.
벤자민 프랭클린
삼위일체의 신, 6일 간의 천지창조, 천사악마들과 그 밖의 모든 것들은 미치지 않고서는 믿을 수 없다. 내 입장은 엄중하기만 하다.
레프 톨스토이[출처필요]
신이라는 개념과는 달리 천지창조노아의 홍수허구라는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리고 과학은 인류의 기원과 지구의 지질학적 역사를 탐구할 수 있기에 창세기가 전적으로 신화라는 사실을 논쟁의 여지 없이 증명했습니다. 그래서 내밀한 철학에 근거해서는 신이 없다는 확고한 증거를 내세우기 힘들다 하더라도 과학이 성서의 내용 중 많은 것이 허구라는 것을 밝혀냈다는 것이 바로 성서가 신의 말씀이 아니라는 증거라고 주장합니다.
데이비드 밀스(과학 저술가)

특히 천문학을 심히 배격한다. 터무니없는 소설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예로, "빅뱅 우주론, 블랙홀, 중성자별은 관측이 안 됐는데 어떻게 증명할 거야?"이다.[65] 빅뱅 우주론은 실제로 관측된 다양한 학술적 근거를 통해 현재 정설로 간주되고, 블랙홀은 중력렌즈와 X선을 통하여 관측되었고, 중성자별은 그냥 가시광선 대역으로 관측되었다. 본인들 스스로가 매일 어두운 밤하늘을 보면서 이조차 믿지 않는다. 밤하늘이 어두운 이유는 오랜 세월 동안 팽창한 우주로 인해 먼 곳에서 오는 별들의 파장이 길어져 가시광선 대역을 넘어가 눈으로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초등학생용 천체 망원경으로도 수억 광년 이상 떨어진 수많은 별들의 별빛을 관측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우주의 역사가 천년에서 만년 단위라고 주장하는 이들 주장으로 택도 없다.[66] 자세한 것은 올베르스의 역설 문서 참조.

지질학생물학은 천문학보다 더 배격한다.[67] 마찬가지로 터무니없는 소설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도 계속 발견되고 있는 공룡화석에 대해서는 공룡이 마귀 사탄이며 독사라는 허무맹랑한 소리를 한다.
개독의 논리에서 바라본 공룡은 창세기에 나와서 이브에게 여호와가 먹지 말라고 한 금단의 열매를 먹으라고 꼬드긴 존재로 일축하며, 그 때문에 대멸종을 당하거나 다리를 잃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여튼 성경을 핑계삼아서 파충류(특히 )를 그렇게나 미워한다.[68] 아래 '마녀사냥' 문단에 있는 초딩 물건 압수하고 개고생 시킨 스레딕 썰에 적혀있는 먹사도 이런 부류였다. 일부(주로 창조설자)는 사실 공룡은 홍수로 멸망한 동물이라거나 욥기에 나오는 레비아탄이나 베히모스라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게다가 지질학은 진화론의 근거가 되기도 하기 때문에[69] 지질학은 천문학보다 더 미워한다. 거기다 생물학의 내용 중 진화론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생물학은 지질학이나 천문학보다 더 심하게 공격한다.

한국창조과학회와 같은 극성 창조론자들에 의한 면이 큰 편이라 이들 때문이라고만 알기 쉬우나 좀 더 엄밀하게 말하면 NOMA를 무시하는 일부 종교인 때문이다. 물론 창조설이 그 중 대표적인 사례인 건 사실이다. 최근에 진화론을 교과서에서 빼버리는 짓을 해서 이러한 반감은 더욱 증폭. 물론 빠지게 된 내용은 일부 잘못된 것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은 교과서의 내용이 학계의 새 정보를 제때 받아들이지 못하여 그렇게 된 것이었다. 즉, 학계의 최신 흐름을 반영해서 수정하면 되었을 문제인데 고의적으로 빼려고 했으니...

개독이 진화론 가지고 싸움을 걸면 성경의 다른 기적들 가지고 그냥 덮어버리는 게 가장 빠르고 편하다. 가령 "여호수아가 손을 드니까 태양이 하늘에 멈췄다" 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게 가능하려면 지구의 자전 주기와 공전 주기가 일치해야 한다. 그리고 이 현상이 아주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날 경우 땅 위에 있는 거의 모든 것이 지구 밖으로 탈출한다. 그리고 태양은 은하를 공전한다. 이게 멈춘다면 어떻게 될까? 이렇게 될 경우 태양을 구성하고 있는 기체가 우주 공간으로 흩뿌려져 태양은 죽고 지구는 태양궤도를 이탈한다.

그리고 어떤 개독은 이걸 가지고 시공간이 잠깐 멈췄다고 하는데 DIO수아: 더 월드! 시간이여 멈춰라!, 이러면 더 무시무시한 깽판이 벌어진다. 시간이 멈췄는데 한나절 동안 전투하였다 하니 이스라엘 사람들과 가나안 민족은 광속을 넘는 움직임을 구사하며 전투를 치렀을 테고, 이게 실제로 발생하면 시공간 전체가 일그러지고 만다. 게다가 상대성이론을 적용하면 이것은 불가능하다고 나온다. 그래서 이를 보완한다고 하는 게 평행우주론을 도입한 것이였는데, 애당초 이건 타임 패러독스를 피해가기 위해 도입한 이론이지 이것과는 연관이 없다. 그리고 평행우주론이 도입되어도 결과는 폭망인 게, 성서에서 주장하는 모든 세대를 거쳐서 하나님의 말씀은 옳다라는 기독교의 명제가 다른 우주에서는 틀릴 수 있다는 명제가 튀어나옴으로써 성서무오설이 완벽하게 뒤집히기 때문이다.

한 창조과학회 소속 간사가 '태양이 멈췄다'는 표현을 문자 그대로 믿고 천동설을 지지한 경우도 있었다. "과학적 증거는 지동설을 말하지만 성경에서 '태양이 멈췄다'고 분명히 명시하므로 천동설을 지지할 수밖에 없다"는데...이 간사는 메이저 기독교 출판사를 통해 어린이용 창조과학 서적을 낸 사람이었다.[70]

아울러 "이스라엘 무슨 왕(히스기야)의 목숨이 연장되었다는 증거로 태양의 각도를 변화시켜줄게" 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이 실제로 일어나는 시나리오는 3개가 있다.
  • 1. 지구 자전축의 기울기가 급변한다. 이러면 대규모 기후 변화 및 그로 인한 대멸종을 피할 수 없다.
  • 2. 지구의 공전 궤도 자체가 급변한다. 이래도 대멸종은 기본이다.
  • 3. 태양이 순식간에 움직여야 한다. 이러면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의 모든 행성이 공전 궤도를 이탈할 수 있다.

이런 기적도 믿는 놈이 그까짓 창조를 기적으로 처리 못하고 과학이 어쩌네 저쩌네 하면 되겠는가?

창조론을 보면 그냥 헬게이트 오픈. 창조에 대한 복음주의의 학설은 크게 소지구설, 노지구설, 문학적 구성설로 나뉜다. 창조론자들의 주장은 일단 소지구설을 전제하는데 소지구설이 성경적으로 맞는지 틀리는지 신학자들 사이에서 합의가 전혀 안 되어있다. 실제로 조직신학 교과서에서도 노지구설, 문학적 구성설과 진화론은 양립 가능한 것으로 서술한다.

그리고 창조론은 단 한번도 입증되지 않았다.
4.2.1.2. 문학 탄압
개독교도들 중에서는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를 보고 '마술을 장려하려는 음모다' 라고 까는 사람들이 있었다! 흑발(=악마)해리 포터금발(=천사)드레이코 말포이를 까고 이겨먹는 내용이니 "이건 사탄의 책이다!"라는, 시리즈의 아무 편이나 한 번이라도 읽어본 사람의 입에서 나왔다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 단세포적 주장도 있어서 전세계적으로 욕과 비웃음을 실컷 얻어먹은 드립들이다.

정작 천사에 관한 묘사가 나오면 "악마도 자신을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니까 이것도 악마다!"라고 멋대로 주장해 버린다. 리처드 도킨스의 말마따나 사람이 종교에 미치면 어디까지 퇴보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
한국의 웹툰 신과 함께가 연재될 당시에도 댓글에 개독들이 몰려들어 깽판을 쳤다. 한국 신화마저 이단이란다. 그리고 S라인에서 어느 종교의 추악한 부분을 그려내자 역시 댓글로 온갖 난장을 피웠다.

이말년씨리즈 2화를 본 개독교 신도들이 이말년 작가에게 항의메일을 보냈는데 [71] 이말년의 답변은 당사자에게 기도해서 해결되었습니다

2019년에는 만화 소설 등은 사탄이 인간을 홀리기 위해 만든 요물이리는 망언을 하여 비난받고 있다.[72]
4.2.1.3. 음악 탄압
개독교도들은 툭하면 록밴드들을 사탄 숭배자로 몰며 록 음악 매니아들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다. 사탄 숭배자를 숭배하는 자들
개독교라 불리는 종교를 다니는 사람들은 록을 듣는 사람들을 보고 사탄이라고 말하거나 사탄에 물들었다고 말하며 배척한다. 심지어 뉴에이지 음악 전체를 사탄의 음악이라고 디스한다. 초창기 뉴에이지 음악가들이 모종의 영적인 의미를 담아 작곡했다고 이후로 계속 까는데 뉴에이지 음악의 발전사를 보면 그냥 헛소리. 심지어 기독교인 뉴에이지 음악가도 있다![73] 다행히 요즘은 뉴에이지 까는 이야기 잘 안하기는 한다. 거기에 한 술 더 떠서 록이 아닌 웬 팝 가수들까지 까고 있다.

레이디 가가마릴린 맨슨 같은 가수들도 싫어한다. 문제는 지들만 싫어하면 될 일이지 남들이 보는 것도 막으려 한다는 것.

2010년대 이후 한국 대중음악계의 주류인 아이돌 그룹도 그들에게는 예외가 없다. 일단 아이돌이라는 단어가 "우상" 이라는 뜻을 걸고 넘어지며, 그들의 음악을 사탄의 음악으로 여긴다. 교회 수련회를 가면 빠짐없이 등장하는 코너가 대중 문화를 사탄의 문화라고 주장하며 까내리는 특강이 있으며, 이 외에도 청소년부에서 종종 설교 레퍼토리로 나오기도 한다.
4.2.1.4. 게임 탄압
우선 80년대 미국에서는 등장하는 몬스터 중에 '악마(Devil, Daemon)' 가 있다는 등의 이유로 던전 앤 드래곤과 그것을 하는 게이머들을 사탄 숭배자라고 까기도 했다. 이런 홍역을 치른 후 AD&D 2nd부터는 '바테주'나 '타나리' 같은 고유 종족명을 쓰게 되었다. 생각보다 역사가 유구한 탄압. 그 전에 악마를 때려잡는데 왜 틀린걸까

최근에는 농담 삼아서 개독교에서 게임을 심의하면 게등위를 능가하는 검열 능력으로 게임을 검열삭제할 거라 카더라. 처럼 악마가 나오는 게임이야 더 말할 것도 없고 스포어는 급속 진화를 통해서 단속 평행론을 배우고 심의 등급이 낮아 어린이들도 진화를 배울 수 있어서, 심시티 시리즈는 신처럼 지형을 자유자재로 수정하고 자연재해를 남발할 수 있어 자기가 신이라는 착각을 들게 해서 삭제할 것이라고 카더라. UFO도 신이 보내든? 그런데 어찌 농담 같지가 않다. 참조.

심지어 게임 중독법을 발의한 새누리당의 신의진 의원이 개신교 단체와 손을 잡고 1000만 서명 운동을 한다고 하니 그것이 실제로 일어나려고 하고 있다. 물론 이 법은 성경도 중독물질이라 규정하는 법이니 화려한 자폭.

더 충격적인 것은 기독교인이 비기독교인을 대놓고 죽이는 게임이 나왔다는 것이다. 제목은 휴거를 소재로 다룬 소설 '레프트 비하인드'가 원작인[74] 'Left Behind : Eternal Force'다. # 스토리상 여기서는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는 '적그리스도'의 세력으로부터 기독교 주인공들이 피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이런 전투씬들은 불가피하지만, 게임이 아이들 교육에 나쁘다는 것들이 이런 짓하면서 자기들이 죽이면 정당한 짓이라고 하는 건 나치 같은 놈들을 스승으로 받드는 짓 아닌가?

그렇다고 게임을 잘 만드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실존하는 성경 소재 게임들이 다 이 모양 이 꼴이다. AVGN영상. 라이센스도 안 받고 개발 및 생산, 유통한 불법 제품인 건 둘째치더라도 게임성은 아예 없지 않나, 중간중간에 성경 관련 문제를 끼워넣지를 않나, 성경을 읽어야만 문제를 풀 수 있지를 않나... 삼국지코에이가 있다면 성경에는 위즈덤 트리가 있다 근데 위즈덤 트리는 성경 게임만 만들었던 게 함정 그나마 코나미에서 만든 노아의 방주가 그나마 할 만한 성경 게임. 그동안 경쟁자 없다고 성경 게임 개판으로 만들었던 위즈덤 트리는 코나미한테 철퇴를 쳐맞았다. 그런데도 헌금으로 살아남은 게 또 함정 심지어 스팀에 내놓은 게임이 호평까지 받았다!

최근에는 포켓몬 GO의 진화가 진화론을 연상시킨다며 하지 말라고 일부 극렬 근본주의자들이 주장하기도 한다.기사

현재는 강서구 PC방 살인사건을 발판삼고 여가부랑 손잡았는데 심지어 신앙으로 게임중독 해결하자라는 망언을 하여 논란이 되어 가고 있다.김성회: 엑소시스트야? 컴퓨터에 성수뿌려?![75]
4.2.1.5. 영화 탄압
기독교에 대해 뭔가 비판적인 영화라던가 기독교를 주제로 픽션적인 영화를 만드는 것도 결사 반대하며 영화사에 압력을 가하거나 평점 테러를 가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마틴 스코세이지의 그리스도의 최후의 유혹[76], 론 하워드 감독의 다빈치 코드 같은 픽션적인 영화도 기독교를 모욕한다며 상영금지가처분 신청을 할 정도다. 자기들이 보기 싫으면 안 보면 되지 왜 다른 사람들의 선택권까지 간섭하면서 못보게 하려는 건지 도저히 이해 못할 검열 행위이다.

특히 오컬트 분야의 영화 및 TV 시리즈에 관해서는 더욱 심각하다. 데이비드 셀처의 오멘 시리즈 및 루시퍼(영화명 eighteenth angel),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악마의 씨, 사탄의 인형 등은 악마(사탄)의 등장 및 승리한다는 이유로 기독교 신자들 사이에는 관람이 금기시 된다. 이건 결말이 배드 엔딩이라 반길 리가 없을테니 뭐

TV 시리즈에서는 트윈픽스엑스파일 등이 기독교가 가르치는 사상에 반한다는 이유로 까인다.
4.2.1.6. 성문화 탄압
개방적인 성문화를 극단적으로 거부하고 비난한다. 물론 자유로운 성문화에 대해선 여러 호불호의 이견이 있겠으나 대중문화에서 조금의 노출이나 자신들의 기준에 안 맞는 성문화가 나오면 방통위, 게등위, 방심위 등에게 득달처럼 몰려가서 신도를 이용해 압박을 하는 행위를 서슴치 않는다. 한국 사회 전반의 성적 보수성과 맞물려서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고 검열의 강화를 더욱 부추기는 셈.

이렇게 겉으로는 성적으로 엄숙한 척이나 하면서 목사들이나 교인들이 뒤로는 온갖 성범죄를 저지르기도 한다는 사실은 비단 말해봤자 입아플 뿐이다.[77] 저런 만행들은 자기네들이 일부 이단보다 극도로 혐오하는 이슬람교에서 저지르는 추태와 똑같다. 아니 이슬람교의 행보를 답습하고 있다.[78]
4.2.1.7. 성소수자 탄압
성소수자는 지옥에 떨어질 거라고 하는 기독교인, 특히 개신교인들이 상당히 많다. 이들은 탈동성애 운동을 주도하는 가장 큰 세력이며, 신앙으로 동성애를 극복할 수 있다고 속이지만 이는 또 하나의 수입원이 될 뿐이다. 퀴어문화축제에 나와 반대시위, 폭력을 행사하는 이들의 대부분이 개신교이며, 이들은 퀴어문화축제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가장 오랜 시간동안, 가장 끈질기게 방해해왔다.[79] 인상적인 점은 이들과 언쟁을 시작하려 하면 그저 하나님 탓만 한다는 것이다. 동성 결혼 문제가 화두에 오른 이래로 개독의 반대로 상황이 진전되지 않는데 원칙상 종교는 정치, 법과 분리되어야 한다. -그러나 개독교는 신경쓰지 않는다-

개신교계 목사 가운데 몇 안 되게 성소수자 문제에 대해서 전향적인 의견을 표한 인물이 바로 높은뜻연합선교회 김동호 목사인데, 그는 2015년 7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내 아들이 동성애를 해도 내 아들이고, 내 교인이 동성애를 해도 내 교인이다."라 언급한 글을 올린 적이 있다. 인터넷에서는 이 한 마디만 와전이 되어 전해져서 인터넷상에서 김동호 목사의 이름을 검색하면 연관 검색어로 '김동호 목사 동성애' 혹은 '김동호 목사 동성애 찬성' 이렇게 뜨는가 하면 크리스천투데이 같은 개신교 언론은 물론 개신교 색채를 강하게 드러내는 개인 블로거들의 블로그를 봐도 김동호 목사의 이 발언을 지적하고 비난하는 글들이 가득하다. 당장 해당 글을 올렸던 김동호 목사의 페이스북에도 개신교 신자들이 몰려와 온갖 비난을 댓글로 달았다.

하지만 김동호 목사의 페이스북 글 캡처를 보면 그는 서두와 끝에서 개신교 목사로써 "동성애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로 볼 수 없다"고, "성경적인 관점에서 동성애를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계획하신 건강하고 자연스러운 성생활이라고 볼 수는 없다"고 분명하게 선을 긋고 있다. 그런 한편으로 그는 "그렇다고 동성애자를 정죄할 수는 없다"고 선을 긋고,[80] "한국교회가 여성 교인들을 성적으로 유린하고도 떳떳하게 목회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손 놓고 있으면서, 동성애자들에게만 돌을 던질 수 있을까?"라는 개신교계의 자신들 내부의 성추문에 대해 부정하거나 일부 이단의 문제라며 선을 긋기 바쁜 비겁한 행태들을 지적하기 위한 취지에 가깝다. 또한 소위 퀴어문화축제에 대해서도 김 목사는 성경 레위기를 언급하면서 성경에서 언급한 '성적 순결'이라는 것은 이성애나 동성애를 나누어 볼 것이 아니라 보다 포괄적인 개념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며, 모든 동성애자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닐 것이라고 하면서도 "퀴어문화축제를 보면 소수 성애자들의 인권문제보다는 성적 문란함이 좀 더 부각되어 보이는데, 소수 성애자들의 인권과 합법을 주장하다가 동성애자들의 성적 문란까지 인권과 합법으로 인정되어서는 안 된다"고 언급하고 있는데, 이 부분은 사실 퀴어문화축제/노출 부정론 항목에서도 똑같이 지적하고 있는 것으로 소수 성애자들의 인권도 중요한데 다들 그걸 강조한답시고 막 대놓고 노출을 너무 심하게 해서 보기 민망하다는 지적도 존재하고 있기에 이를 언급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김동호 목사 정도로 "동성애자들이 분명 성경에 안 맞게 사는 것도 맞고 죄 짓는 것도 맞는데, 저 사람들 욕하기 전에 우리부터 좀 성적인 부분에서 잘못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한 번 좀 돌아보면 어떨까", "쟤네들 마음에는 안 드는데 그냥 저렇게 살든지 말든지 '그런가 보다' 하고 내버려두자" 정도의 온건한 반응을 주장하는 것조차 그들은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개신교 시민단체인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2019년 6월 17일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청어람홀에서 '한국 개신교의 혐오를 분석하다'를 주제로 연 발표회에서 공개한 ‘성소수자 혐오 시민 인식조사’[81]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개신교도의 성소수자 혐오 정도는 5점 만점에 3.1점으로 다른 종교 집단과 비교해 가장 높았으며[82] 무종교자는 2.52점으로 성소수자 혐오 정도가 가장 낮다는 결과가 나왔으며, 종교인 가운데 성소수자 혐오에 비판적 인식이나 ‘성소수자 차별금지법’ 같은 성소수자 혐오방지 정책 지지 정도를 보면 의외로 가톨릭 신자가 각각 3.63점과 3.54점으로 가장 높았으며[83] 개신교는 3.37점과 3.54점으로 상반된 동시에 가장 낮아서 성소수자 혐오 문제에서 타종교 집단에 비해 문제에 대한 감수성과 해결에 대한 관심 · 의지가 상대적으로 낮을 뿐 아니라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적 사고의 정도도 타종교 집단보다 훨씬 높은 결과를 나타냈으며[84] 종교 종류나 성별에 따른 성소수자 혐오 정도에서 개신교는 다른 종교 집단과 달리 여성(3.14점)이 남성(3.03점)보다 혐오 정도가 높았고, 종교 종류나 정치 성향에 따라서는 보통 보수 성향 응답자보다 진보 성향 응답자보다 성소수자 혐오 정도가 더 높은 반면 개신교는 보수, 진보, 중도를 막론하고 모든 정치성향에서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 정도가 다른 종교보다 훨씬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 조사에서 고무적인 부분은 개신교인들이 종교적 가르침 즉 '복음'을 배운 곳이 어디냐에 따라서 성소수자 혐오 정도가 갈린다는 것인데, 대부분의 개신교인들은 교회 예배(37%)를 통해 개신교의 종교적 가르침을 접하였다는 응답이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성경 21%, 성직자 17%, 가족 12% 등의 순서였으며, 예배에서 복음을 배웠다는 응답자(3.31점)의 혐오 정도가 가장 높았던 반면 가족에게서 기독교 복음을 배웠다는 응답자(2.78점)는 그 정도가 가장 낮았다는 점은 주목할 만한 지점이기도 하다. 조사 결과를 발표한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 김혜령 교수는 "성소수자 혐오 문제에 있어 ‘어떤 종교를 가졌는가’보다는 종교 유무가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오직 성경으로’라는 모토로 탄생한 개신교 신앙의 특성상 한국 개신교인들이 종교적 가르침을 성경이 아니라 예배에서 배운다고 답한 점은 한국교회가 '예전의 종교'로 후퇴하는 것은 아닌지 반성할 점을 남긴다.”라고 지적하였다.##

또한 이보다 앞선 6월 13일 한국교회탐구센터(송인규 소장) 주최로 서울 종로 청어람홀에서 '혐오의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주제로 열린 포럼에서는 앞서 한국교회탐구센터가 지앤컴리서치에 의뢰했던 '혐오 표현에 대한 국민·개신교인 인식 조사'[85] 결과를 발표했는데, 전체 응답자 중 '혐오 표현을 접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69.4% 가운데 23.2%는 종교 기관 혹은 모임에서 혐오 표현을 접했다고 응답했으며, 특히 60대 이상 노년층 종교 모임에서 혐오 표현이 상대적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었다고 한다. 혐오 표현을 직접 해 본 경험을 묻는 설문에는 비개신교인 가운데 49%, 개신교인 중 43.9%가 그렇다는 의사를 표시했으며, 비개신교인들이 정치적 반대자, 외국인, 노년층, 여성 등을 향한 혐오 표현이 개신교인보다 2~7% 높았던 반면 성소수자를 향한 혐오 표현은 개신교인 응답자 중 35.8%가 성소수자 혐오 표현을 한 적이 있다고 답해서(비개신교인은 14.7%가 그렇다고 답했다) 두 배 더 많았으며, 이슬람을 향한 혐오 표현도 22.8%가 이슬람 혐오 표현을 한 경험이 있다고 답해서 13.2%가 '그렇다'고 응답한 비개신교인보다 더 높은 수치를 보였다.

혐오 표현 경험이 있다고 답한 개신교인들의 경우 이러한 혐오 표현의 근거, 즉 성소수자가 혐오 표현을 받을 만한 근거에 대해 묻는 질문에 대해 신의 섭리에 어긋나기 때문(53.1%)이라고 답한 이들이 가장 많았으며, 에이즈와 같은 치명적 질병을 퍼뜨리기 때문(25.2%), 사회적 제도 관습에 어긋나기 때문(19.7%) 순으로 이어졌고, 개신교에 입문한 사람(78명) 가운데 37.2%만 성소수자를 혐오하는 이유가 있다고 답한 반면 '하나님은 삶의 전부이며, 모든 일은 그리스도를 드러낸다'는 데 동의한 '그리스도 중심층'(35명)은 73.2%가 "성소수자는 혐오 표현을 들을 만한 이유가 있다"고 답해, 개신교인의 성소수자 혐오는 신앙이 깊어질수록 강해지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이 날 포럼 발제자로 나선 한국교회탐구센터 송인규 소장은 "신학적으로 성경이 동성애를 죄라고 하느냐 안 하느냐는 해석의 문제도 무시할 수 없지만, 동성애자들을 어떤 태도로 대해야 하는지는 차원이 다른 문제"라며 "교인이나 동성애자나 똑같이 한국 사회를 구성하는 존재들인데, 기독교 방침을 사회에 동일하게 적용하거나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라고 지적하였고, 포럼에 참여한 공익법센터 어필 소속 이일 변호사도 한국 개신교 교회의 각 교단에서 동성애·난민 '대책위원회' 등을 만든 것을 "한국교회가 소수자 집단을 대상화해 왔다. 이들은 교단 차원에서 대책 기구를 만들 대상이 아니"라며, "교회는 이들이 누구인지 잘 알지도 못한 채 이들을 악의 실체처럼 묘사해 왔는데, (혐오) 행동을 멈추고 먼저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4.3. 대내적

벌거벗은 골고다 예수의 희생을 본받지 않으면 이 나라의 기독교는 사회에 해악만 될 뿐이다.
몽양(夢陽) 여운형 선생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행동보다도 우리의 믿음을 가지고 우리를 심판한다."
허브 실버맨
이론적으로 수백 명의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고, 수십 군데의 은행을 털고 온갖 악질적인 일을 벌여도 단지 죽기 몇초 전에 진심으로 회개하면서 '예수를 가슴 속에 받아들입니다'하면서 그의 죄를 반복해서 고하는 남자가 있다고 하자. 그는 예수야훼를 받아들였으니 곧 천국에 가서 보상받을 것이다.
반면에 평생을 가난한 약자인 전 세계 어린이들을 위해 헌신한 여자가 있다. 그러나 그 여자가 기독교에 기반한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해 인식하는 것을 거부한다면 영원히 지옥불에서 바비큐가 되어야 하는가?
데이비드 밀스(과학저술가)

여운형이 세상을 떠난 지 60년이 넘었건만 그의 경고가 그대로 실현된다는 것이 놀라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플 뿐이다.

개독이라고 불리는 행동을 하는 신도들은 무지해서 그게 잘못이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한다. 민폐적 선교 행위들도 정작 본인들의 입장에서는 신성한 사명의 일부. 이들은 그들의 한 행위에 대한 문제점에 대해서 생각하지 못한다. 철저하게 세뇌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순수한 믿음이 비뚤어진 방법에 의존하면 답이 없다. 그리고 순진하다는 명목으로 그릇된 행위를 저지른 것에 대한 면죄부를 주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의 생각이 없고 그저 누군가의 말을 그대로 맹신할 뿐이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나치스에 동조한 독일인들과 똑같은 위치인 셈.

많은 개신교인들이 그들에 대해 순진하다, 순수하다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은 전형적인 자기 편 미화일 뿐 순진이랑은 거리가 멀다. 사실대로 말하자면 지성이 떨어지거나 해당 부분에 대한 현실을 받아들이기 싫어 자기합리화를 하는것일 뿐.

이런 행동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가장 근본적인 것은 본인의 무지와 성경 왜곡 해석이다. 쉽게 말해 하나는 아는데 둘 이상은 모른다.

십계명에 "나 이외의 다른 을 두지 말라" 라는 내용을 왜곡하여 타 종교 유적지를 훼손한다든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종교를 모욕하는 행위를 하게 하는 등 타 종교를 공격하는 것을 합리화 시킨다거나[86] 신학 공부 없이(또는 신학 공부를 해도) 예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는 등등 이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적그리스도+이단=지옥으로 떨어질 놈들이 집합한 것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성경 상으로도 역사 상으로도 우상을 섬기거나 세운 민족이나 국가는 철저하게 벌을 받긴 했지만 지금은 그 시대가 아니다. 당장 구약의 말라기나 신약의 요한계시록에서 괜히 "훗날 때가 되면 모두 심판받게 될 것이다"라고 하겠는가?

자신의 생각을 앞세우는 행위는 성경에서도 경고한 행위로 개신교와 개독교를 나누는 중요한 척도가 된다. 신약성경에 예수의 제자 베드로가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는 일은 제가 앞장서서 막겠습니다" 라고 하자 예수는 "사탄아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 라고 일갈하시는 내용이 있다.[87] 그 구절의 핵심이 바로 "예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이 앞서선 안 된다" 이다. 예수의 십자가에 달리심을 부정하는 베드로의 말은 예수의 구속사역을 방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해석이 나오는 것이다.

광신도와는 거리가 먼 평범한 개신교인들의 입장에서 이 막장스런 개독교 광신도들을 개신교 망신시킨다고 개독이라고 그들을 욕하기도 한다. 그러나 어찌됐건 그들도 신앙의 대상을 공유하는 같은 종교인이며 절대 원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비기독교인들과 함께 서서 개독 타령을 하기보단 자신도 잘못하고 있는 게 있는지 생각해보고 반성해야 할 것이며 나아가 이런 개독들이 더 이상 생기지 않도록 공동체 내부에서 변화의 목소리를 높여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개독교가 하는 짓거리를 요약하면 십자가를 진 예수의 희생을 본받는 건 개뿔, 그냥 사이비 종교의 단면을 보여줄 뿐이다. 그냥 예수를 바지신으로 모시고 목사가 교주인 신흥 종교라고 보는 편이 더 빠를 정도.

개독교도의 정신세계를 요약한 동영상

그들의 정신세계에서는 이순신 장군도 사탄. 다만 이건 조작 논란이 있다.

4.3.1. 비상식적인 전도 방식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개독교/전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이 영상에 달린 외국 댓글들이 정말로 가관이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다. "이 영상 제작 후 저 남자 교회에 끌려가서 먹혔을 거야"라든지... 최고 댓글은 흔히 안티 기독교 사이트에서 볼 수 있는 비유인 "종교과 같다. 공공장소에서 휘두르면 안 되고, 애들 입에 넣으면 안 되고, 숭배하라고 사람들한테 가르치면 안 되니까!" 이다.

가끔은 이런 경우처럼 댓글란에서 성경의 모순에 대해 갑론을박을 하기도 한다.

국제적인 동영상 업로드 사이트인 유튜브에서도 한국 개독에 관한 좋지 않은 영상들이 다수 올라와 있어 전세계인들의 어그로를 끌고 있기도 하다. 결국 나라망신인 셈이다.

마케팅적으로 봐도 어떤 정신 나간 소비자가 저질 제품을 사라고 강요만 한다면 누가 그것을 살까? 마케팅적 관점에서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 합리적인 유통방식을 통해 단가를 최대한 낮추고 좋은 면을 보여줘야 팔릴까 말까 한 게 현 시대인데 온갖 더럽고 저질스러운 장면만 보여주면서 억지로 믿어라고 강조만 하면 오만 정이 다 떨어진다.

기독교인들이 분명하게 명심해야 할 것은 "절대로 교리를 강요하지 말 것"이라는 것이다. 결정적인 예로 이단에 대해서를 들자면 "잘못된 교리를 버리고 돌아올 것을 권면하되 끝까지 돌아오지 않는다면 더이상 관여하지 말고 관계되지도 말라"라고 성경에 명시된다.
4.3.1.1. 이렇게 된 이상 해외로 간다!
더 큰 비극은 한국에서처럼 겨우 몇십 년 동안의 선교만으로도 다른 이슬람, 불교, 천주교, 정교회 국가들에서 다수의 개신교도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이들이 있다는 것. 니네 그러다가 IS 만나면 큰일나 큰일나면 좋겠다 사람들이 훨씬 더 무지한 시절에 아예 창칼 들고 목에다 들이밀대고 마구 죽여도 실패했던 마당에 지금 시점에서 뭔 재주로 성공하겠다는 건지...[88]

그런데 웃기는 것은 해외 개신교 광신도 선교사들도 한국의 개독교도들처럼 단기간에 전도하면 개종에 성공한다고 엉뚱한 믿음을 얻기도 했다. 문제는 이게 한국 개신교의 행태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이런 식의 선교가 통하는 나라는 아이러니하게도 중국밖에 없다. 그 외 다른 나라에서 현실은 시궁창.

전도사들의 최종 던전으로 회자되는 인도에서 20여 년 동안 복음을 전했다던 어느 미국개신교 선교사는 개종자 제로에 얼마나 열을 받았는지 "전쟁으로 인도 XX 다 죽어라" 는 식으로 발악을 하다가 추방된 바 있다.[89]

종교에 대해 아무 생각 없이 중립적이었던 교포 2세가 한인 교회에 처음 나가보고는 "난 교회 가기 전까진 종교에 대해서 뭔가 신성하고 대단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막상 가보니까 신성한 느낌보다는 숭배와 인맥 쌓기 모임 정도밖에 안 되더라" 라는 감상을 남긴 적도 있다.

한 교회에 처음 나가보곤 다신 안 나가고 있다는 경험자의 말로는 처음 교회에 나가자마자 멀쩡해 보이는 한 학생이 자신에게 "맨 앞자리에 앉으세요, 앞자리에 앉아야 우리 목사님 기운을 잘 받으세요" 라는 샤머니즘 뺨치는 말을 해서 단박에 교회에 대한 정나미가 떨어졌다고 한다. 교회에 처음 와 뒷자리에서 뻘줌해 하는 신도들을 뒷자리는 목사님 목소리가 잘 안 들린다고 앞으로 앉히는 경우가 있긴 하지만.

개독교에서는 한국은 글렀으니 해외에서 한국처럼 굴어야 신도가 늘어난다는 개드립을 치며 해외 선교를 부르짖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리고 해외에서 한인이나 유학생들을 붙잡고 안 놓아줘서 한국인들 사이에 개미지옥이라는 별명이 붙은 해외 한인 교회들도 있다.살려줘

우스개로 중국인은 해외 이민 가서 식당을 차리고 일본인은 옷 가게를 열며 한국인교회부터 짓고 현지인 개종에 미친다는 이야기까지 있다. 실제로 미국 다음으로 개신교 해외 선교사 파견 2위 국가가 한국이며 조용기는 월간 중앙에서 한국은 전 세계 191개 나라에 3만 명이 넘는 선교사를 보냈다고 자랑하고 있다. 그래봤자 돌아오는 건... 현실은 시궁창이다. 이것이 크게 터진 사건이 바로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예멘 한국인 선교사 살해 사건이다.

다른 예로 스리랑카에 한국인 교회가 물건이나 던져주고 봉사라는 말로 왜곡하며 한국어찬송가를 부르게 하자 아이들은 울면서 찬송가를 부르고 먹을 것이나 공책을 얻어왔다. 그러나 아이들은 교회를 나오자마자 "멍청한 외국 놈들은 이렇게 따라 해주면 좋아라 하며 물자를 나눠줄 뿐. 그놈들의 종교를 따라 할 마음 없다!" 고 비웃기 일쑤였다. 남아시아 지역의 아이 부모들도 대다수의 힌두교신자와 소수의 이슬람, 불교, 시크교신자들이 대부분인데 이렇게 대충 분위기 맞춰주고 물건 얻어오는 걸 좋아할 뿐 종교적으로는 비웃을 뿐이었다. 이 사례는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90]에서 한 선교사가 겪은 일이라고 적은 건데 이 선교사는 "진정한 마음으로 현지인을 아껴주지 않고 무슨 동물원 동물 먹이 주듯 하는 게 뭐가 선교냐" 며 비판하고 있다.

굳이 이런 게 아니라도 총칼로 식민 지배를 당하고도 종교를 바꾸지 않은 이들이 겨우 물건 몇 개 받고 종교를 바꾼다는 건 터무니 없는 망상이다.아무리 가난해도 대대로 믿던 종교를 갑자기 바꾸는 건 매우 드물며[91] 저런 선교사들이 주는 물건만 좋아라 받고 속으로 비웃는 경우도 허다하다. 필리핀만 해도 개신교 다수 국가인 미국의 식민 지배를 수십 년간 받았지만 개신교도가 늘어나기는 커녕 여전히 가톨릭이 절대 다수다. 우습게도 저런 선교를 하는 이들은 선물 받아가는 이들을 개종시켰다고 통계로 집어넣고 억지 정신승리를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 역사도 전혀 모르는 거다. 무수한 나라들이 피범벅으로 침략 당해 종교를 강요하며 단시간에 달라진 경우는 좀처럼 없다. 기독교도 이슬람도 각자 유럽과 아랍으로 쳐들어와 학살하고 지배하며 강요했지만 결국 서로 깊게 뿌리를 내린 건 적다.[92] 그리고 독립하면서 언제 그랬냐듯이 원래 믿던 종교로 돌아가는 게 흔하다. 하물며 선물 몇 개 받고 종교를 바꾼다?

이러한 해외 선교가 자꾸만 극성을 부리는 이유는 후원금 때문인 것도 있다. 기독교 채널이나 기독교 잡지의 광고를 보면 항상 해외 선교를 위해 지원금을 바라는 경우가 많다. 결국 어디를 가도 돈 문제가 빠지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 지역에 선교를 한다며 미국 선교 단체들에게 후원금을 받고 삥땅쳐먹은 사례도 존재한다. 주인공은 그 유명한 불륜 6걸의 한 사람. 기사.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래도 앞까지는 민폐임이 틀림없으나 그래도 이는 약한 수준.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와 같은 사건을 일으키면 그때가 제일 골치다.

4.3.2. 자질 없는 목사

아울러 목사의 공급이 지나치게 많아서 문제가 된다. 목사 문서 참조. 이는 교회 정치의 문제와도 관련된다. 가톨릭의 경우 오직 교황청에서 신부를 임명할 권한을 지니지만 개신교의 경우 이런 통제가 불가능해서 신학교가 난립하는 문제를 막기가 어렵다.

아울러 신부가 되려면 정말 고생해야 하고 중도 탈락자도 많이 나오지만[93] 개신교 목사의 경우 그런 거 없다. 유명한 신학교의 경우 들어가기도 힘들고 특히 공부 좀 하는 친구들이 돈 안 벌고 목사하겠다고 뛰어들어서 커트라인도 올려놓지만 난립하는 듣보잡 신학교의 경우 들어가기도 쉽고 졸업하기도 쉽기 때문. 어느 신학교 졸업해도 목사 타이틀 다는 건 똑같다.

교단마다 다르겠지만 일반적으로 대형 교단이 더 어려운 편. 대학 신학과 자체는 들어가기가 쉬운 편이지만 문제는 신학대학원이다. 좀 큰 교단 신학대학원들은 진학하기도 어렵고, 신학대학원 졸업 이후에도 장로회의 경우 강도사 고시, 감리회는 수련목 과정을 통과해야 한다. 그 상태로 몇 년을 보낸 이후[94] 최종적으로 목사고시에 통과해야 한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목사가 되려면 30대 초, 중반에 접어들어야 한다. 본격 목사도 고시쳐서 하는 세상.
목사의 과잉 공급은 심각한 문제다. 목사도 종교인이기 이전에 사람이며, 처자식이 있다. 평소에는 착하고 개념 있는 사람이라도 정말 밥 걱정을 할 처지가 되면 눈이 뒤집히는 경우가 있는데 목사라고 크게 다를 게 없다. 목사의 수입원은 성도의 헌금이며 사실상 한정된 성도를 다수의 목사가 갈라먹는 구조이다.

그나마 대형 교회가 성도를 다 집어먹어서 개척교회 듣보잡 목사의 월급은 그야말로 안습. 사역자들이 농담 삼아 사XX교회, 명X교회 등 대형 교회를 삼성그룹, 현대그룹에 빗대는데 이게 괜히 나오는 이야기가 아니다. 결국 목사도 직업의 일종으로 봐야 한다. 흔한 수요공급노예이다.[95]

더 웃긴 건, 신학생들 사이에는 서열까지 나눠져 있다. 유명 목사 아들, 큰 교회 장로 아들은 성골, 일반 목사, 장로 자녀는 진골, 일반 성도나 집사 자녀는 6두품, 비신자 집안 자녀는 평민 이하, 교회 이탈자 가정[96]에서 나온 신학생은 역적의 자식 취급 받는다.

양산형 목사 생산+목사 과잉 공급은 개신교의 질적 열화에 엄청난 시너지를 낸다. 애당초 찍어내는 게 능력과 개념을 안드로메다에 보낸 목사들인데 그 목사들이 밥줄이 간당간당하게 되면 이후 하는 행동이 뻔해지기 때문.

게다가 덤으로 신학을 공부하려는 학생들을 자기가 나온 신학교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이것의 이유는 신학을 깊이 공부해도, 자기가 저지른 잘못을 지적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학교 선후배 관계로 묶어버리려는 속셈. 이쯤 되면 자기가 저지른 실수를 덮기 위해서 유능한 인재마저 판에 찍는 바보로 만들겠다는 심산이다.

실제 미국에 거주 중인 어떤 한인 신학생은 한인 교회 목사에게 "예일과 유니온[97] 둘 중 하나를 생각하고 있다"고 하자 "그곳은 자유주의니까 리버티로 오세요"란 말을 들었다. 혹시나 해서 그 신학생이 다 찾아보고 나서 비교를 위해 물어보니 그 목사는 "보수주의가 아니면 다 자유주의에요"[98]라고 답했다. 결국 그 신학생은 한인 교회를 떠나 현지인 미국 교회로 갔다 카더라.

4.3.3. 권력 다툼

개신교에서는 일반 교인 중에서 최고위까지 직분이 올라간 사람을 장로라 하는데 이 장로들의 전횡도 만만치 않다. 각종 비리권력을 향한 암투목사 뺨치는 수준을 떠나 목사를 능가하고 있다.

2000년 5월에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답십리 모처의 교회에서 장로들끼리 작당해서 당회에는 알리지도 않은 채 자기들 마음대로 목사를 해직시켜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목사가 잘했거나 못했거나 인사적 조치가 필요하다면 당회에 알려서 당회장 목사 이하 당회에서 결정하는 내용에 따라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 작자들은 그런 것도 없이 그냥 자기들 마음대로 목사를 해직시켜버리고 당회에는 목사가 급작스러운 일로 공석이 되었으니 보내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이런 짓거리는 가톨릭 같으면 명백한 파문 대상이다. 가톨릭으로 환산하자면 평신도끼리 작당해서 감히 성당의 주임신부를 해직시킨 것과 같기 때문이다. 가톨릭의 입장에서 이걸 내버려둔다면 교황의 위치를 크게 위협받는다.

현재는 해직된 목사는 다른 교회를 차려서 안정적으로 교회를 운영하고 있고 그 목사를 해직시킨 장로들은 그 교회에서 새로운 목사를 불러서 교회를 잘 운영하고 있다. 다만 장로들이 목사를 해직시킨 그 교회는 S교회에서 H교회로 이름을 변경하는 진통을 겪기도 했다.

이와 같이 교회 내부에서 목사와 장로의 권력의 암투는 끊이지 않고 간간히 일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사유로 목사들이 갑자기 쫓겨나기도 한다.

참고로 이 교회의 내부 사정에 대해 파고들면 권력 다툼이 정점에 달했다는 걸 알 수 있는데 장로들이 목사를 해임한 이유는 원래 다음과 같다. 이 교회 전임 목사는 교회를 세운 목사로 흔히 개척자 포지션에 있는 양반이었는데 이런 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교회에 대한 애착이 컸고 이런저런 교회 일을 '자진'해서 하는 타입이었다. 예를 들어 일주일에 대부분의 새벽기도회를 본인이 주도하고[99] 이런저런 봉사일에 적극 나섰는데, 오랜 세월 담임 목사가 이런 일을 하다보니 성도들 사이에서 이러한 행위가 당연하게 되어버렸다.

그러나 나이가 많아 목사가 은퇴한 이후 새로운 목사가 파견되었는데, 이 목사는 새로 파견된 사람이다 보니 전임 목사처럼 애착을 가지고 교회 일을 할 수 없었다. 이에 장로들이 당당하게 "전임 목사님은 이런 걸 해줬는데 왜 당신은 못 하냐"고 따졌고, 새로온 목사는 "만약 내가 일주일 내내 기도회를 주도하길 바란다면 사례금을 늘려달라"라는 요구를 했고, 이에 반발해서 내쫓아버린 것. 읽어보면 알겠지만 병림픽으로 점철되어 있다.

더 가관인 것은 신도들의 반응인데 일부 신도들은 "장로들이 교회에서 더 오래 있었으니 장로 말이 옳다"라는 주장을 하며 교회에 남았고 일부 신도들은 "목사님은 곧 하나님과 같은데 인간이 어찌 쫓아낸단 말이냐"라며 떠난 목사를 따라갔다.

그런데 이것이 굳이 이 교회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라 교회에서 아주 흔한 사례다! 교회가 갈라지는 경우 이렇게 (비교적) 짬밥이 오래된 장로나 목사가 다른 목사를 쫓아내는 판국인데 그에 따르는 사람들 논리는 대부분 나랑 더 친해서, 목사님의 말은 무조건 옳으니까, 장로씩이나 되는 분이 틀릴 리가 없으므로 라는 병맛같은 논리로 점철되어 있다.

물론 모든 사람이 저랬던 건 아니고 일부는 "목사도 신도인데 그 정도는 사례금 없이 해줄 수 있는 거 아니냐. 대다수의 신도들은 교회로부터 아무런 지원도 받지 않고 봉사를 하고 있다"라던지 반대로 "교회에서 일을 하는 것을 강요하는 게 어떻게 당연한 거란 말인가. 본인이 싫다고 하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할지라도 강요할 순 없다"라는 그럭저럭 납득 가능한 논리를 들고오는 경우는 있지만 이런 사람들은 묻히고 정작 전자의 주장이 더 크게 나온다. 현실에서라면 오히려 후자의 주장이 강하게 어필해야 할 터인데 어째 교회에서는 정 반대인 모양새.

결론적으로 교회에 목사가 오래 되었으면 목사파가 더 많고, 목사가 온 지 얼마 안 되었으면 장로파가 많은 편이나, 어느 쪽이든 파벌이 생긴다. 물론 집단 내에서 파벌이 생기는 게 당연한 거 아니냐는 소리를 할 수도 있지만, 여긴 교회다. 지들 나름대로 믿음을 가지고 모였다는 양반들이 권력 다툼이나 하고 있으니 좋게 보일 리가 없는 건 당연하다.[100]

몇몇 대형 교회에서 욕을 감수하고 세습제를 감행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다. 외부에서 온 후임자보다는 아들을 책봉하는 것이 장로와의 갈등을 덜 빚기 때문이다. 당연하지만 이건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고 오히려 목회 권력 강화라는 더 나쁜 문제를 낳는다.

4.3.4. 성차별

성차별도 있다. 지금은 여자도 장로가 될 수 있도록 교리법안이 수정되었으나 불과 2005년까지만 해도 여자는 장로가 되는 것이 절대 불가능하고 권사까지밖에 올라갈 수가 없었다. 또한 지금도 대부분의 여자 교인들은 권사까지만 올라가는 것이 일반적이고 장로나 목사는 거의 보기 드물다. 간혹 보이는 여자 목사들 또한 찬양목사로 불리는 집회 인도자의 역할이 보통.

더 심각한 것은 일반적인 여성 개신교도들이 대부분 이러한 자신들의 대우에 자연스럽게 순응한다는 것이다. 애초에 성경 구절 자체가 현대 사회에 그대로 적용할 경우 얄짤없이 성차별 문제를 일으킬 수 있는데 근본주의자적 개독들이 그걸 고려하고 성경 구절을 놓고 설교할 리가 없다.

이러다 보니 성경을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교회, 남성-여성을 머리-지체(몸)에 비유하며 '질서' 가 있어야 할 것을 강조하는 개독들에 의해 여성 개신교도 스스로가 그러한 교회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순응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었다.

여담으로, 이러한 근본주의 계통의 사람들은 최근 영어 역본에서 정치적 올바름이 적용되는 것을 매우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일반적인 한 사람을 가리킬때, a man 대신에 a person으로 바꾸고, 그 대명사를 his 대신에 his or her 또는 their라는 식으로 바꾸는 식. 따라서 이들은 정치적 올바름이 적용된 NRSV, CEB, TNIV, 2011년판 NIV 성경 등을 거부하고, 정치적 올바름이 적용되지 않은 KJV, NASB, NKJV, ESV, 1984년판 NIV 성경 등을 찾는다.

4.3.5. 횡령과 부패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돈이니라
교회는 건축 비용으로 인해 빚을 지고 있는 경우도 많다. 극성스런 전도와 헌금 문제는 바로 이 때문에 시작된다는 지적을 한 책도 있다. '주님께서 찾으시는 16번째 교회' 가 그 책.

이 때문에 많은 교회가 문을 열고 닫는다고 하는데 이는 다닥다닥 붙어있는 치킨집에 비유되기도 한다. 치킨집이 단순 생업 문제라면 교회는 대형 교회의 담임목사가 되리라는 꿈을 품고 여는 경우도 많아서 더 심각한 사회 문제로 볼 수도 있다. 이렇게 난립하는 교회는 신도 숫자가 사실상 고착화된 현재 한국 사회에서 수요는 부족한데 공급은 과잉되는 현상을 낳고 있다. 매년 신학대학 졸업한 목사들은 많아지고 안정적인 교회는 부족하니 생활고에 시달리는 월급쟁이 목사들이 점점 더 돈에 집착하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정도 담임목사나 어느정도 정착한 교회의 지도자가 되면 이러한 돈 문제 때문에 횡령과 부패를 버젓이 저지르는 뻔뻔한 무리들이 계속 속출하고 있다.

뿐만아니라 교회 재정 부족을 충당하기 위해 온갖 종류의 핑계를 대서 헌금의 종류가 자그마치 30종류를 넘는데, 이거 다 내려면 종류당 1주일에 1만원씩만 쳐도 한달에 100만원 정도는 가볍게 넘어간다. 헌금, 직분 헌금 문서도 참조해볼 것.

4.3.6. 봉사 강요

사실 기타 항목으로 들어가 있지만, 따로 문서가 있어도 될만큼 고질적인 문제이다. 교회라는 곳이 기본적으로 꽤 큰 단체다보니 일손이 여러 모로 필요한데, 대다수의 교회에서는 사례금을 주지 않고 봉사를 요구한다. 물론 이 봉사에 대한 댓가는 "나중에 주님이 갚아 주신다"며 얼버무린다.

심지어 좀 큰 교회라도 할지라도 성가대, 음식 준비, 교회 청소, 대표기도, 주일학교[101] 교사 등을 봉사라는 이름으로 써먹는 경우가 많은데, 본인이 자진해서 하는 거라고 하지만 실상은 강요가 심하다. 예컨대 성가대만 하더라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빠져 나가는 사람이 많다 보니 음악 전공자를 색출해서 의무적으로 시키고, 청소 같은 경우 부서별로 돌아가면서 하거나 교회에서 정한 목장[102]이 나눠가면서 한다. 주일학교 교사 같은 경우, 청년부에서 믿음이 좋아보이는 청년을 목사나 전도사가 따로 불러 교사를 하라고 시키는 식이다. 물론 본인이 끝까지 싫다고 하면 강제로 시킬 순 없지만, 교회란 공간에서 이를 거부하는 게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심지어 전도사 맘대로 중고등부 교사로 등록시켜 놓고 나중에 본인에게 통보하는 일까지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아무런 댓가를 주지 않고 "주님이 갚아주실 거"란 말로 퉁친다.

심지어 댓가를 안 줄 뿐 아니라, 최소한의 활동비도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는 각 목장을 나누어 목장 활동(소모임)을 의무적으로 할당하는데[103] 문제는 활동비를 안 준다! 그럼 활동비는 어떻게 해결하느냐 하면, 각 목장에서 개인이 따로 각출하고 있다.

교인들끼리 자진해서 모인 모임이면 안 주는 게 당연하지만, 교회에서 하라고 해놓고 안 주는 건 도저히 납득이 안 되는 처사이다. 물론 교회 규모가 큰 경우엔 활동비를 지급하는 경우도 있고, 장거리 이동시 차량 제공이나 유류비 정도는 지원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 원래 해야할 일보다 훨씬 적게 주기 때문에 따로 모아야 되는 건 마찬가지다. 활동비를 지급해 주더라도 이미 목장 일에 참석해서 교회에 봉사하는 셈인데, 돈까지 걷어서 하게 한다는 건 봉사를 떠나서 사실상 갈취나 다름 없다.

위키러 중에서 일부는 아마 미성년자일 때 주일학교를 다녔거나 혹은 지금 주일학교 소속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을텐데, 주일학교 교사에게 가끔 간식을 사달라고 조르기도 하고, 그런 말이 없었는데도 사주는 경우가 있었을 것이다. 당연하지만 어쩌다가 성경 퀴즈 대회나 담합회 같은 공식적인 이벤트가 선포되지 않는 이상, 해당 부서에서는 절대로 회식비를 지급해주지 않는다. 즉 그건 죄다 교사의 개인 돈으로 나가는 것이다.[104]

식당 봉사도 마찬가지. 기본적인 반찬 재료는 당연히 교회에서 사주지만, 쟁여놓은 김치가 모자랄 경우 봉사자가 채워넣는 경우가 많고, 누군가가 생일이라거나 좋은 일이 있어서 특별한 반찬을 추가하고 싶을 때는 자기네들 돈을 각출해서 해야 한다. 물론 이건 자기네들이 그렇게 하고 싶어서 그런 거니 당연한 거라고 볼 수도 있지만... 물론 보통은 좋은 일이 생긴 당사자가 교회에 재료를 투척해준다. 예외적으로 목사 생일이라서 특별 반찬이 나오는 건 교회에서 따로 재료비를 대준다. 절대로 목사 개인 자금으로 사주는 게 아니다!

또 외부 활동으로 반찬 나누기, 안 쓰는 물건 바자회 등을 주기적으로 여는데, 당연히 재원은 각자 집에서 차출해서 쓰는 것이다. 절대로 교회에서 재료값을 대주고 인력으로 반찬만 만들어서 나눠 주는 게 아니다! 물론 바자회 같은 경우 이렇게 생긴 수익은 교회가 갖는다. 성도들이 잘 인식을 못해서 그렇지, 엄밀히 따지면 이건 봉사라기보단 갈취에 가깝다.

물론 활동비를 아예 안 주는 건 아니고 어쩌다가 한번, 비정기적으로 회식비나 우수봉사자 장려금 같은 명목으로 주기도 하는데, 나가는 돈에 비해 정말 개미 눈꼽만큼 준다. 그나마 큰 교회 같은 경우 활동비 범위를 넓게 잡아서 비품 구매를 하고, 관련 서류를 첨부하면 환급해주는 등, 봉사자 본인에게 금전 피해가 적게 가도록 하는 경우는 있지만. 여담으로 성가대 지휘자가 교회를 옮기자 지휘할 사람이 없어서 교회를 샅샅이 뒤졌으나, 결국 지휘 봉사할 사람을 찾지 못해 외부에서 지휘자를 월 100~200만원씩 사례금을 주고 데려오는 웃지 못할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런데 아이러니한 것은 만인사제설에 따르면 목회자도 분명히 평신도이고, 교회에 대한 봉사가 일반 교인들에게만 국한된 게 아닐 터인데, 목사, 전도사, 강도사 등이 하는 활동은 죄다 교회에서 지원해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위와 같이 평신도들은 교회에서 정한 목장 활동에서 전도를 하건 친목질을 위해 회식을 하건 뭘 하던 간에 활동비를 주지는 않지만, 반대로 목사는 엥간한 건 다 경비로 취급해준다. 심지어는 친목 도모를 위해 다른 교회 목사와 밥을 먹어도 죄다 교회에서 대준다!

물론 다른 종교도 봉사에 의존하지 않느냐? 하고 반문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특히 개신교가 이런 봉사 강요가 심하기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적어도 대승 불교인 한국의 에서는 청소를 신자들에게 강요하진 않는다. 밥 짓는 것도 청소하는 것도 울력이라고 해서 수행의 일부로서 승려들이 하는 게 원칙이며, 상황에 따라 거사나 공양주 보살 등이 보조적으로 돕는 정도다. 천주교도 평소 본당 신부수녀들이 이런 저런 일을 처리하고, 봉사자를 쓰더라도 해당 봉사자에게 금전적 피해가 가게 하진 않을 뿐더러, 신앙적 만족감이나 신앙에 대한 정진과는 별개라며 사례금을 지급해주는 경우도 많다![105] 반대로 사제, 수도자, 승려들이 추가적 업무를 했다고 그거에 대한 사례금을 꼬박꼬박 추가 지불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즉, 다른 종교에서는 오히려 성직자/수도자에게 하느님/부처님에 대한 봉사와 의무를 강조하고 일반 신자에게는 상대적으로 해당 종교에 대한 공로를 보상해준다면, 개신교만 유독 정 반대로 목회자 계급에게 꼬박꼬박 보상을 해주고 일반 신자에게는 봉사와 의무를 강요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말 웃긴 점이 하나 있는데 개신교는 각 교회가 하나의 왕국인 셈이고 목사태수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아주 천차만별다. 정말 별의 별 교회가 다 존재한다. 교황천자라서 철저하게 중앙 집권제로 통제하는 가톨릭과는 엄청나게 대조된다.

이러한 문제점에 학을 뗀 일부 개신교도들은 가나안 성도가 되거나, 성공회[106]천주교[107]로 옮기기도 하며, 심하면 아예 교파에 상관없이 기독교 자체에 등을 돌리기도 한다.
4.3.6.1. 헌신 페이
국민일보 - 시선-‘헌신페이’ 봉사만 있고 배려는 없다@
SBS - 최저임금 대신 '헌신 페이'? 수당 떼어먹는 대형 교회@

결국 이로 인해 헌신 페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개신교계에서는 이미 2015년부터 유행하고 있었으나, 개신교를 싫어하는 네티즌들에게는 2018년 8월 갑자기 주목받고 있다.

4.3.7. 목사간 사례금 나눠먹기

이쯤 되면 예수님이 쪽팔려서 숨겠다교회 자산은 기본적으로 목사 개인의 자산이 아니기 때문에 따로 차출해서 쓸 수가 없다. 당연하지만 만약 이걸 차출해서 쓰면 횡령이다. 그런데 이것을 합법적으로 빼먹을 수 있는 방법이 있으니 바로 사례금 나눠먹기.

특히 교회에서 중요한 행사, 예를 들어 직분식이나 부흥회와 같은 것들이 생기면 꼭 외부에서 목사를 초청하는데 이 목사가 이미 본인 교회에서 사례금을 받으니 좋은 마음에서 남의 교회에 와서 좋은 말씀 해드리고 간다고 생각하면 천만에 말씀. 대다수 이렇게 와서 하다못해 안수기도 5분이라도 해주면 사례금으로 백만원 가까이 받는다. 설교를 하면 더 많이 받는데 이게 문제가 되는 건 목사 초청 권한이 교회에만 있는 게 아니라 목사한테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목사 단독으로 할 순 없고 당연히 보고를 해야 하지만 목사가 요구하는 게 거절하는 경우는 없다. 특히 교회에 따라 일정이 다르지만 오후에 열리는 외부초청 예배/찬양 예배/오후 예배라 불리는 곳에는 항상 외부에서 목사가 오곤 하는데 이 사람들한테 100만 원씩만 준다고 쳐도 한달이면 400~500 정도가 외부 목사 사례비로 나간다.

그런데 그렇게 초청되어 온 목사 중에 아주 극소수 자기 교회가 없는 경우가 아니면 보통 자기가 소속된 교회가 있는 게 보통이다. 그럼 이쯤에서 머리가 좋은 사람은 예상했겠지만 다음에는 그 교회 목사가 자기를 초청한 교회 목사를 자기네 교회로 초청해줄 가능성이 아주 높다. 그렇다면? 그렇다. 서로 교회를 바꿔서 다니면서 교회 자금을 합법적으로 받아가는 게 가능한 것이다![108]

그러나 이런 외부 목사 초청 예배는 그래도 고정 출석하는 신도가 300명은 돼야하기 때문에 그 미만인 작은 규모의 목사는 다른 목사를 부를 수도 없고 자기를 불러주는 사람도 없다. 가끔 영세한 자기 친구 목사가 불쌍해서 큰 교회 목사가 별로 유명하지도 않은데 불러주거나 이미 은퇴한 양반들을 부르는 경우가 아니면 말이다. 그런데 이것은 또 이것 나름대로 과도한 친목질 수단이자 큰 교회 목사에게 작은 교회 목사가 잘 보이게 끔 만드는 새로운 권력의 용도가 되기에 문제다. 실제로 사례금은 초청된 목사의 자질 + 초청한 교회의 규모로 정해지기 때문에 성도가 수천이 넘는 거대 교회에서 오후 예배 초청 목사로 하루만 불러주면 영세한 목사의 경우 자기네 교회에서 한달 내내 설교하고 받는 사례비보다 많은 사례비를 받아가기도 한다.

물론 좋은 마음에서 돈을 받지 않고 남의 교회에 설교를 하러 와주는 목사님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러나 교회 활동내역비를 보면 알겠지만 외부 목사님 사례금은 거의 반드시 나간다. 이를 보아도 알겠지만 사례금 없이 외부 강사를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분위기가 분위기인지라 공짜로 남의 교회에 파견가서 설교를 해준다면 다른 목사들에게 찍힌다. 자기들 밥그릇에 구멍을 내는 짓이기 때문이다. 이런 더러운 암묵의 룰 때문에 아무리 공짜로 파견설교를 해주고 싶어도 그리 쉽지 않다.

4.3.8. 사이비 종교의 온상

신천지를 낳은 것에 사과한 NCCK와 한교총

개신교가 '교리가 마음에 안 들면 독립하기가 쉽다(개교회주의)'라는 특성을 갖고 있어, 이에 따라 사이비 종교를 만들기도 쉽다. 사이비 종교/분류 문서만 봐도 대다수의 사이비 종교는 개신교계이다.

5. 어록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개독교/어록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2010년대 후반에 이르러 개신교발 가짜 뉴스가 SNS에 독버섯처럼 마구 퍼지고 있다. 대충 내용은 이슬라모포비아, 호모포비아의 내용이 많으며 각종 선전, 선동으로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다.#

6. 기타

개독교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성경을 글자 그대로만 이해하고 해석한 나머지 타 문화에 대한 관용성, 배려심이 극히 부족하다는 것이다.
일례로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특히, 한국 개신교 큰 문제는 성경 문자주의를 맹신한다는 점이다.#
죽은 자 때문에 너희의 살에 문신을 하지 말며 무늬를 놓지 말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레위기 19:28)

이 구절을 근거로 수많은 개독교 신자들이 문신을 대놓고 깐다. 같은 교회의 교인이 문신을 했어도 대놓고 욕을 하며, 이는 신앙심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일단 욕부터 하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언급한 '문신'은 문맥으로 판단했을 때 하나님을 믿지 않고, 다른 신들을 믿는 표현에서 몸에 새긴 경우를 뜻한다. 뭐 오해할 법도 하다. 그런 거 알 신도들이 얼마나 될 리가... 하지만 안타깝게도 개독교 신자들에게는 그런 것을 감당할 머리가 존재하지 않고 그러니까 이렇게 욕을 얻어먹고 사는 거지 마찬가지 이유로 피어싱도 악마의 상징 취급을 받는다. 귀걸이도 피어싱의 일종인데? 이런 역설이 제일 잘 드러나는 것이 바로 레터링(Lettering)이다. 레터링은 문신의 일종으로, 글자나 자기 마음에 드는 문구를 새기는 것이다. 개인의 취향에 따라 한글 및 외국 글자로 새긴다. 그럼 생각을 해보자. 본인이 감동을 받고 삶에서 따르고자 하는 성경 구절이나 예수의 얼굴 및 십자가를 새기면 그건 (기독교 입장에서) 좋은 것일까 나쁜 것일까? 하지만 개독들에게는 그런 거 없다. 일단 깐다. 자신들이 용납할 수 없는 행위를 타인에게까지 강요하고 있다.[109]

은밀한 부위에 작게 새기던, 바로 보이는 부위에 크게 새기던 문신을 한 것은 똑같은데, 내가 하면 로맨스, 네가 하면 불륜이라는 의미와 다를 바 없다. 겉모습으로 대부분을 판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은 어쩔수 없는 일반적인 오류이자 관념이다. 그러나 깔끔하고 단정한 외모를 지녔어도 금전적인 이익(극단적으로는 신자들에게 사기 치거나 돈을 빌리려는)을 노리고 교회를 다니는 사람도 있는 반면에, 문신이나 피어싱을 하고 교회에 자신의 삶의 지표를 위하여 열심히 다니려는 사람도 있다. 개독인들은 이 부분을 늘 간과하고 다닌다. 문신을 패션 아이템으로 하는 사람들이 계속 급증하고 있는 추세에서 개독인들의 이러한 배타적이며 무례한 생각이 고쳐지지 않는 한 기독교 및 교회라는 곳에 학을 떼는 사람은 매우 많게 될 것이다.

고린도전서에도 나오지만 사도 바울은 근친상간까지 일어난 타락한 고린도 교회를 질책하고 경고하지만 그래도 교회라고 불러주었다. 이단 기준은 어디까지나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하기에. 하지만 한국 교회의 대다수가 문제가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예수를 사상이 아닌 머리로만 믿으며 기복신앙 측면을 강조하고, 누구를 적그리스도로, 무엇을 666으로 단정지으면서 종말론적 예언을 극단적으로 강조하면서, 영계에서 천국과 지옥을 봤다는 부류는 100% 확실히 이단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교리적으로 틀렸다고 선언하는 것 이상으로 다른 종교를 탄압하거나 억압, 무시, 모욕하는 행위는 이단적인 행동이다. 헌금이나 돈에 관심이 많거나 돈 내라고 눈치 주는 교회는 인정사정을 막론하고 100% 이단이다. 남을 핍박하고 공격하고 상처 입히면서까지 전도하는 것 역시 이단이다. 이것은 성경이 증명하므로 다른 여지가 없다.

재미있는 건 이런 개독교와 소위 '사이비 종교'의 일치점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 둘 다 예수는 뒷전이다
기독교의 경우, 진짜로 예수를 믿는다면 예수의 말과 행적에 관심을 갖고 예수의 행동을 본받아 살려고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이단들은 교묘하게 예수의 자리에 교주 자신을 치환해 넣는다. 그래서 자신에게 충성하는 자가 구원받고 천국간다고 현혹한다. 그리고 봉사와 헌신이라는 명목으로 성상납을 요구하고, 과도한 헌금을 요구한다. 기성교회에서도 성문제와 돈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일단 부패 종교 나오면 무조건 등장하는 클리셰.
  • 둘 다 규모가 작지 않고, 세뇌를 하고 본다.
문제는 이단의 규모가 결코 작지 않으며, 심지어는 이단에 현혹되었어도 자신이 이단에 빠져있는지 인지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어릴 때부터 이단에 빠진 부모의 손에 이단 교회를 다니게 되면서 어릴 때부터 세뇌된(!) 사람들은 자신의 교회가 이단인 줄도 모르는 이들이 허다하다.
  • 둘 다 모두까기를 시전한다.
소위 이단들의 특징은 기성교회들을 모두까기를 시전하면서 자기들만이 옳다고, 자기 교회에 와야만 구원받는다고 하는 것이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이다. 기성교회가 잘못된 것을 성토하는 것은 교회 자체의 정화를 위해서 내부에서부터 당연히 나와야 하는 행동인데, 이단들은 모두까기를 시전하면서 교묘하게 자기들만, 더 나아가서는 자기 교주를 신으로 모셔야 된다는 것을 강요한다. 그 이후의 테크 트리는 직장도, 학교도, 심지어는 가족도 제껴두고 구원받는 것에 목숨을 걸라고 현혹시키고 세뇌시키는 것이다. 또 사람의 심리상 자신이 몸담은 사회가 아무리 문제가 많아도 변호하려는 일종의 자기합리화 현상이 매우 강하기 때문에 대다수의 문제 있는 이단들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부인하는 경우가 많다. 알면서 부인하는 건 그나마 양반이지 자신들의 문제를 모른 채 인지부조화가 와 버려서 일부드립 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
  • 둘 다 기복신앙적 속성이 강하다.
한국은 점(占), 미신이나 샤머니즘 기복신앙 속성이 강하므로 일반적 신도들이 대부분 제대로 배우지도 못한 노인~장년층 세대라 웬만해서는 무엇이 문제인지 모른다. 이런 부류에서 자란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모태신앙으로 성장하기 때문에 잘못인지 아닌지를 구분하지 못하고 믿는 경우가 대부분.

개독광신도든 선량한 평신도든 어차피 예수천국 불신지옥은 성경에 적혀있는 개신교에 있어서 부정할 수 없는 당연한(어디까지나 교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러하다) 교리이기 때문에 타종교와의 갈등은[110] 지속될 수 밖에 없다.[111]

따로 항목으로 분류할 정도로 사건 사고가 일어나진 않았지만, 다른 문제들에 비해서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문제중의 하나로, 소음 문제 를 들 수 있다. 바로 옆에 콘서트장이라도 벌어진 듯한 소음이 낮 뿐만이 아니라, 새벽에도 시간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문제는 보통사람이 밤과 새벽에 이렇게 큰 소음을 발생시키면 당연히 소란 행위로 처벌을 받는데, 정작 교회가 발생하는 괴소음을 아무리 신고해 봤자 경찰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는 게 가장 큰 문제. 경찰에 신고하면 오히려 경찰이 신고자 보고 참거나 이사가라는 말을 하는 꼬라지만 보게 된다.. 참고로 만약 직접 가서 항의를 하게 되면, 오히려 의식방해 행위의 누명을 쓸 수도 있으니 극히 주의해야 한다.

7. 대중매체에서의 개독교

개독교와 완전히 일치하는 세력이 나오지는 않으나 극단적인 세력인 만큼 창작물에서 유사한 단체를 많이 접할 수 있다. 여신전생 시리즈의 메시아 교단이라든가... 한국 양판소 등지에서 기독교를 모티브로 한 종교단체가 타락하고 부패했다고 나오거나 그들로 인해 중세 암흑기가 왔다는 인식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기는 하다.

tvN에서 방영했던 8부작 드라마 아르곤의 경우 첫 방송에서 주인공이자 작중 HBC 방송국 탐사 프로그램 앵커 겸 팀장인 김백진(김주혁 분)이 대형교회 비리를 보도했다는 이유로 대국민 사과 멘트에 더해 진행 프로그램이 시청률이 나오지 않는 주중 심야시간대로 옮겨지는데[112] 해당 드라마의 경우 극본 집필에 참여한 작가 세 명 중 한 명인 주원규는 본인이 개신교 목사(!)다. 개신교계 언론인 노컷뉴스에서 이를 보도했는데 왜 교회를 나쁜 놈처럼 그려놓았느냐는 비난보다는 어쩌다 개신교 교회가 이런 지경에 이르렀느냐며 자성하는 어조로, 그동안 교회 비리나 목사 성추행 등의 문제는 시사 프로그램에서나 가끔 등장하다가 이렇게 드라마 속의 소재가 될 정도로 일상화되기에 이르렀다는 문제 제기에 대해 해당작의 극본을 맡은 주원규의 코멘트는 "그만큼 사회가 현재 개신교를 바라보는 시선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소설적 작업에서 저는 그런 비판적 작업을 사실 개진해 왔었고 그런 연장선상에서 언론, 교회, 종교 이런 문제들을 총체적으로 다뤄볼만한 주제로 대본작업에 참여하게 됐다."고 한다.#

뉴스앤조이에서 2000년대(2000년부터 2018년까지) 한국 영화와 드라마 17편에서 등장한 개신교 교회의 모습들을 추려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는데, 결과는 영화 한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 부정적으로 묘사되어 있더라고 한다.# 그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광신적 행태[113], 위선[114], 권력과의 영합 및 유착[115], 사이코패스[116][117], 비극 앞에서 보여주는 무기력한 모습들[118] 등, 어째 좋은 것이 없다.[119]

WOW를 하는 게이머들은 이들을 황혼의 망치단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실제로 행태가 비슷하기도 하다. 스타크래프트2의 싱글 미션을 즐기는 게이머라면 바로 탈다림이 떠오를 듯. 데드 스페이스를 하면 유니톨로지도 있는데 거의 판박이처럼 비슷하다.


디스클로저의 음악 'When a Fire Starts to Burn'의 뮤비가 타락한 먹사와 광신도 등 현대 기독교의 문제점을 비꼬는 내용이다.

한편 워해머 세계관에 대하여 조금만 아는 사람은 이들의 행태가 카오스 스페이스 마린, 황제교와 비슷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말 쌍벽을 이룬다. 특히 워드 베어러, 시스터 오브 배틀. 그런데 워해머40k 세계관은 신이 진짜로 존재하고 믿음으로 물질적인 힘까지 보상받아 행사하는 경우도 있는 세계관이기 때문에 광신할만한 이유라도 있다. 사실 개독들이 쓰는 문장에서 '예수' 라는 단어를 황제카오스 신 이름으로 바꿔보면 어떤 문장이라도 Warhammer 40,000 관련으로 둔갑시킬 수 있다. 재밌는 건 황제 문서에도 알 수 있지만 황제 본인은 이런 종교 활동을 극도로 혐오했다. 즉 철저한 무신론자를 신으로 모시는 격. 마찬가지로 CCM 등에서 예수를 알트만, 구원을 합일로 치환하면 꽤 그럴듯한 유니톨로지 찬송가가 나온다.

귀귀 갤러리에서는 아예 개독교와 불교를 합체한 불독교라는 요상한 종교가 나온다.

심슨 가족에 등장하는 네드 플랜더스, 러브조이 목사는 미국 근본주의 개신교의 면모(특히 위선적인)를 위트 가운데 잘 보여준다.

DarkMatter2525의 영상에서 자주 까인다

메트로 2033에서 아르티옴이 들르는 역 중 개독교도들의 역이 있다.

야인시대에서 시라소니 린치 사건의 진술을 위해 시라소니가 개신교 신자로서 나온다. 예수쟁이라는 소문이 돌고 자기 스스로도 예수쟁이라 했으나 자기를 끈질기게 괴롭힌 이정재를 살리려고 애쓰는 모습을 보면 오히려 평범하게 독실한 기독교인에 가깝다. 다만 합성물에서는 진짜 개독교 광신도로 나와서 아무에게나 포교를 시전하다가 궁예빙의한 불교신자 김두한에 의해 저지 당하거나 포스에 밀려서 데꿀멍 한다.(...)

8. 같이보기


[1] 유사어로 예수쟁이가 있으나, 현재 젊은 층에서는 예수쟁이보다 개독 쪽이 사용 빈도가 높다. 한편 예수쟁이의 경우 나이 드신 분들끼리 얘기할 때 쓰인다(옛날에는 야소쟁이라고 했다가 발음이 바뀌었다). 천주교를 집어서 욕할 경우 따로 개톨릭(개독+가톨릭) 또는 카독(카톨릭+개독)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다만 개톨릭의 경우는 인지도와 사용빈도 모두 개독교에 비하면 먼지 수준이다. 또한 가톨릭의 영어 발음은 Catholic 캐쏠릭이므로 개톨릭하면 그냥 가톨릭의 영어 발음 같아서 비하단어로 좀 부족하다.[2] 사실 이 '복'이라는 단어는 그리스어 단어인 '헤세드'를 번역한 것인데, 원어의 의미는 하느님/하나님이 베풀어주시는 사랑과 은혜를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절대자와의 관계에서 오는 기쁨과 즐거움이 '복'인 것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천국도 (보석으로 치장된 으리으리한 장소가 아니라) 하느님/하나님과 온전한 관계 속에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반대로 지옥은 하느님/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끊어진 상태를 말한다. 이 '복'이나 '천국'을 물질적이고 금전적인 의미로 해석하고 있으니, 개독의 반지성주의가 얼마나 심각한 지를 알 수 있다.[3] '안 돼 안 바꿔줘 돌아가'로 유명한 천종호 판사 같은 이도 있다.[4] 일제치하에서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고, 독재치하에서 인권과 자유를 외치던 페미니스트들이 현재 우리 사회에서 어떤 민폐를 끼치고 어떤 인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지 보면, 한 집단 안에서 문제가 되는 주장이 나왔을 때 이를 자정하는 반성의 목소리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5] 넓게 보자면 성공회도 개신교의 분파인데, 성공회도 6.10 항쟁에서 희생이 있었고, 사회적 약자나 빈곤층을 위한 사회사업에 중점을 두긴하지만, 교세가 워낙 작아서 잘 알려져 있지는 않다.[6] 사진의 인물은 동시에 세 가지 법률을 위반하고 있다. 도로교통법, 총포화약법, 군복 및 군용장구 단속에 관한 법률[7] 기독교 교리적으로 보자면 천국의 것이 목숨보다 귀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종교적 가치를 위해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인생을 파탄내며 살아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기독교는 본디 가정의 화목과 사회생활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종교이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내 삶을 주님께 드린다'는 말의 뜻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버리고 기도원 들어가서 수도사처럼 사는 것이 아니라 비 신자들이 자신의 삶에서 예수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 즉, 하늘나라의 선한 뜻을 이 땅에 실현하기 위해 일생을 바쳐 사는 사람의 모습을 보게 하는 것을 의미한다.[8] 상대방의 동의는 커녕 의사도 묻지 않은 채 '저는 제 이웃 ~~를 전도하겠습니다'라며 선언하고 교회에 그 사람의 연락처나 주소를 알려주는 일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진다.[9] 복음주의와 근본주의 사이의 경계가 애매한 면이 있지만, 복음의 유일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복음 외의 다른 것들이 별 가치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근본주의로 넘어왔다고 보면 쉽다. 누군가 복음을 전할 때 이웃에 대한 존중이 부족한 면이 있다고 생각된다면 그는 근본주의 기독교인이기 쉽다.[10] 예를 들어, 이태석 신부님 같은 분은 오지나 가난한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 봉사와 선행을 하며 살고 있다. 가톨릭이나 일부 개신교회에서는 이를 은유적인 표현으로 '그리스도의 향기를 뿌린다' 고 한다.[11] 국내에서는 그저 기피할 뿐이지만, 해외 선교를 하면 현지 종교를 모욕하다가 폭력 사태를 유발하는 경우도 있고, 심한 경우에는 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같은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12] 속옷에 비해 겉옷이 크고 두꺼운 천으로 되어있으므로 훨씬 비싸다. 지금이야 '팬티까지 뜯긴다' 처럼 속옷 = 밑천이라는 인식이 있지만.[13] 이는 예수가 "너희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네 원수를 사랑하라", "네 형제가 네게 죄 짓거든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하고 가르치신 것에서 이어지는 내용이다. 서로 사랑하지 못하는 것, 서로 폭력을 행하는 것이야말로 악한 것, 즉 하늘 나라에서 멀어지는 일이란 얘기다. 그래서 주기도문에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라는 문구가 있다.[14] 잘 모르는 사람들은 '가톨릭은 타 종교(의 구원)도 인정한다'고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확실한 길이라는 교리를 버린 적이 없다. 타 종교인과 종교 문제로 싸우지 않고 존중한다는 말이다.[15] 개신교는 천주교와 달리 연옥을 인정하지 않는다.[16] 여기에서의 이웃은 자기 자신을 제외한 사람들, 즉 가족과 친구와 기타 모든 사람들을 해당하는 것이다.[17]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아버지의 뜻(서로 사랑하라)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것이니라.'라고 분명히 나와 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한 번 얻은 구원 용을 써도 지옥에 못 간다고 자랑하는 것이 문제가 되는데, 신실하게 신앙생활 조금이라도 해 본 위키러들은 알겠지만 바울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니라'고 한 것처럼 오히려 천국에 들어가기가 훨씬 힘들고 고통스럽다.[18] 물론 쿼바디스에서 나온 것처럼 충분히 도망갈 수 있었음에도 양심에 찔려서나마 기꺼이 다시 돌아와서 순교를 선택한 점을 감안할 필요는 있다.[19] 인천 주님의교회 김용두 목사가 쓴 '내가 너에게 불세례를 주노라' 책 6권에서 예수님이 목사에게 직접 말씀을 하는데, '한국교회는 내 사랑하는 종들이 내 십자가와 내 피를 전하지 아니하고 삶에 복받아야 된다고 복받는 이야기만 하는데 복만 받으면 뭐하느냐. 지옥으로 오는데 이 땅에서 복 받으면 뭐 하느냐. 내가 그 영혼들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얼마나 가슴 아파하는 줄 아느냐.'라고 하셨다. 근데 문제는 일반적인 한국 교계에서 이런 교회를 이단 취급한다는 점이 더 심각한 상황이다. 정작 그 교회를 이단 정죄했던 어떤 목사가, 나중에 역으로 이단 판정을 받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기도 하였다.[20] 예정설이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신자의 구원을 예정해놓았다는 주장이다. 한낱 작은 존재인 인간의 행위가 아닌 유일하시고 온전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자비로써 구원을 내리셨다는 것. 이건 종교개혁 당시 신학자 장 칼뱅이 면죄부 등 부패한 교회가 요구하는 것들의 무의미함을 주장하기 위해 만든 얘기인데, 현재는 선한 행실을 하지 않더라도 하나님의 자비만 입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의미로 악용되고 있다. 불우이웃을 돕는 것보다 교회에 나와서 예배 드리는 게 더 중요하다는 식으로. 예수는 '너희들이 내게 잘 한 것은 내가 기억하지 않고 하늘나라에서 외면할 것이며, 주위의 어려운 사람들을 도운 것만을 귀하게 여기고 기억하겠다'하신 가르침이 성경에 명확히 적혀 있지만, 개독은 이 부분을 신경쓰지 않는다. 바른 칼뱅주의의 가르침은 믿음->구원의 확신->예정에 대한 무한한 감사->그에 따른 빛과 소금의 의무에 힘쓰기이지, 결코 행위를 하찮게 가르치지 않는다.[21] 성서무오설이란 성서는 신의 말씀을 빠짐없이 적어 놓은 책이므로 틀린 부분이 단 한 글자도 없다는 주장이다. 황당하게도, 이 말이 제일 처음 나온 것은 1978년으로 비교적 최근이다. 17-18세기까지는 아예 관련된 논의가 없었다가, 진화론이나 천문학 등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성경에 적혀있는 내용 중에 틀린 것도 있다는 것이 크게 이슈가 되었고, 이에 대한 반발로 일부 종교인들이 본인들의 입장으로써 주장하기 시작한 것이 바로 이 성서무오설이다. 개독교도들의 비과학적, 반지성주의적 태도는 여기서 기인한다.[22] 직업소명설이란 모든 직업이 하나님의 거룩한 부름에 의한 거룩한 직업이라는 장 칼뱅의 직업윤리를 말한다.[23] 장로회에 매우 비판적인 일부 기독교인은 칼뱅의 청부사상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다르게 물욕을 정당화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24] 미국에서 들어온 신사도 운동을 직수입하는 경우도 있다. 신사도 운동은 사이비성이 짙어 교회 내부적으로도 우려하는 목소리가 큰데.. 이걸 따르는 사람들은 반대하는 사람이 있으면 '사탄이 나에게 시련을 주는구나'라고 생각한다.[25] 마리아가 남성과의 관계 없이 임신하여 예수께서 출생하였다는 의미[26] 당연히 따라오는 것.[27] 미국에서는 조엘 오스틴 목사가 대표적인 번영신학 목회자로 알려져 있다.[28] 당시 유대교에서는 교육, 특히 초등단계의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교육을 활발하게 하기 위해 학교를 신축하고 교육을 장려했다. 유대교인들 중에서 남자는 12세에 성인식을 맞는데, 여기에 들어가는 조건 또한 '율법을 읽고 외울줄 앎'이 포함된다. 예수의 직업은 그의 아버지인 요셉의 직업을 물려받았으며, 단순히 나무베는 목수가 아닌 '테크톤' 즉, 집안의 집기류부터 시작해 신축공사까지 넓은 범위를 커버할 수 있는 직업이었다.[29] Fundamentalist–Modernist controversy, 영문위키 항목 참고[30] 1837~1899. 미국의 개신교 운동가이자 근본주의 형성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부흥 설교자였으며, 그의 설교에 의해 서구권에서 대규모 선교운동이 일어난다. 지금의 시각으로는 그의 설교에 의해 파견된 선교사들의 일방적인 선교 풍토의 문제점이 바로 드러나지만, 당시에는 실험적인 면이 강했다. 뿐만 아니라, 선교사들의 이 신앙은 누구도 가기 꺼리던 국가들까지 진출하게 했고, 서양철학 및 과학과 의학을 통해 약소국들의 민생 발전을 가져오기도 했다. 더불어 그들이 파견된 국가들은 대부분 서양 및 일본에 의해 침략당한 지역이었으며, 그 참상을 목격한 선교사들 중엔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이들도 있었다. (물론 제국주의에 편승한 이들도 많았다.) 문제는 한국 보수교단들의 전반적인 선교에 대한 인식이 여기서 조금도 발전하지 않았다는 것. 물론 선교사로서 외지에 가보면, 사람 사는 것이 그렇듯이, 문화와 종교, 역사를 심사숙고하여 활동하는 이들이 대다수이긴 하나, 그들 역시 한국에 본부를 두고 있는 선교단체와의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일이 다반사이며, 특히 일부 극렬 선교 단체들의 폭압적 행태는 도를 넘어선지 오래다. 한국 사회가 가진 선교에 대한 일반적인 인식은 사실 이 일부 단체들(정말로)의 영향이 큰데, 그 이유는 이들이 선교지에서나, 한국 사회에서 워낙 시끄럽게 떠들고다닐 뿐 아니라, 그만큼 큰 사건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기 때문이다. 많은 대형 교회 목사들도 이 단체들에서 공부하고 있고, 이들을 지원하는 등 적극 후원하거나, 최소한 용인하고 있다.[31] 대각성운동이란 1720~1740년대 사이에 일어난 대부흥운동으로 하나님이 자신들에게 특별한 목적을 부여해 주었다는 커다란 자각과 함께 신세계에서 일체감을 갖게 되었다는 의미에서 위와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32] 복음주의란 '우리는 죄인이어서 원래 영원히 고통받을 운명이지만, 예수님께서 이 땅에 내려와 고난을 받음으로써 우리의 죄사함을 받을 길을 열어주셨다'는 복된 소식을 기쁘게 생각하고 널리 알려야만 한다는 사고방식이다.[33] 현재에도 옥스퍼드대 출판부가 펴내는 스코필드 주석 성경이 아직도 출판되고 있다.[34] 정확히는 미국 근본주의+세대주의에 기반한 변종 분파를 칭한다. HIM 등 신사도 교회의 메인 스트림은 후천년설에 가깝다.[35] 우리나라에도 꼭 진보적 기독교인은 아니더라도 이들과 비슷한 생각 가진 이들이 많아지고 있다. 교회에선 문제아 취급을 많이 받고 있긴 하지만 작은 교회들을 중심으로 목회자들의 풍토도 바뀌고 있다. 보수교단일 경우, 교단의 지역 모임에서 왕따당하는 건 덤. 어차피 이런 생각으로 목회하는 이들은 왕따 좀 당해도 별 신경 안 쓴다 국내 교단 중 이쪽에 가장 가까운 곳으로는 장로회의 합신 교단이 있다.[36] 박윤선의 경우 화란개혁주의의 영향도 받은지라 근본주의 노선이라 보기는 어렵다.[37] 이들 모두가 근본주의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니다. 이들 중에는 호러스 그랜트 언더우드처럼 신자 비신자 모두의 존경을 받는 사람도 존재한다. 단 언더우드 역시 자신이 믿는 선교 방식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었으며, 반 가톨릭 성향 역시 강했다.[38] 다만 여기서 개신교가 흑역사요 치욕이라는 점에서는 기독교 내외가 모두 같은 평가이나 가톨릭1936년 5월 18일교황청의 지시로 일찌감치 굴복했고, 불교계는 친일반민족행위자 승려와 일본 승려가 교단을 장악한데다가 교리상 마땅히 충돌점도 없어서 별 비판 없이 넘어갔다. 오로지 개독먹사들이 친일에 앞장서서 신사 참배를 독려했다는 건 명백한 역사 왜곡이다. 최후까지 저항하지 못한 측면은 오십보 백보이지만, 오로지 개독만이 신사 참배를 했다는 건 정도를 지나친 비판.[39] 신사 참배 반대 순수신앙파 장로교 교도들을 의미한다.[40] 아예 '출옥 성소들의 광적인 활동과 테러 행위'가 있었다며 날조된 교육을 하는 곳들도 있을 정도이며, 엔하위키 시절부터 본 문서에 '광적인 활동'에 대한 서술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 왔다.[41] 고신대학교를 제외한 모든 신학교의 교회역사학에서 고신 교단에 대한 교육을 전혀 하지 않으며, 일선 교회에서도 고신 교단이 아닐 경우 관련 정보를 신도들에게 전혀 가르쳐 주지 않는 것으로 악명 높다. 이러한 정보 은폐가 어찌나 심각한지 아예 자체적으로 자료를 정리하고 홍보하는 역사편찬위원회를 고신 쪽에서 따로 꾸려야 했을 정도다.[42] 아직도 여성 목사의 안수를 금지하는 교단 중 하나인데, 이는 성서무오설의 잔재 중 하나이다.[43] 미국식 기독교 우파의 영향을 크게 받았던 한국식 기독교이기에, 당연히 공산주의를 '사탄의 세력'으로 규정했던 이데올로기 이론도 거의 그대로 흡수했다.[44] 자유주의자들은 또 지나친 친북 성향이 문제가 되곤 한다. 근본주의자들이 '적의 적은 우리 편' 논리를 일본이나 독재정권에 대입한다면, 이 쪽은 북한에 대입해서 사고를 일으키는 것이다. 문익환 목사의 무단 방북 사건이 대표적.[45] 아이러니하게도, 근본주의 종교인들과의 토론과 논쟁에서 일반적인 상식보다도 더욱 결정적이고 유용하게 반박할 수 있는것이 바로 그들의 경전 구절이다. 수많은 저자가 여러 시대에 걸쳐 저술한 것이 전승되며 변화했기 때문에 종교 경전은 앞뒤가 안 맞는 구절이 서로 엇갈리는 일이 많다. 종교 근본주의의 약점은 바로 이런 점에서 나온다.[46] 수꼴 성향으로 유명한 학교로 아래에 나오는 에큐메니즘 비판 때문에 빌리 그레이엄을 제명시켰다. 빌리 그레이엄의 방한 집회에 통역을 맡았다고 김장환 목사까지 제명시킨 건 덤[47] 이화학당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튼부터 헤아려 제7대. 김활란은 이화학당 대학과 졸업생이자 이화여자전문학교 최초의 한국인 교장이며, 해방 후 이화여전을 이화여자대학교로 개편하여 총장이 되었다.[48] 신명기 28장 1절부터 19절 내용을 말하는 것 같다. 참고로 신명기 28장 1절은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이다. 그런데 언제 박정희하고 여호화가 같은 존재가 된 건지?[49] 그것도 대량살인. 즉 학살이다. 다시말해 전두환은 사실상 전범으로 분류만 안되었을뿐 영락없는 B급 전범[120]이었다.[50] 데이빗 로스라는 본명보다 오대원이라는 이름으로 더 유명하다. 한국 예수전도단을 창립한 미국 남장로회의 선교사. 추방 조치는 90년대에야 복권되어 현재는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하며 통일운동에 매진 중이다.[51] 박근혜 대통령은 학생 때 가톨릭 세례를 받았지만 지금은 무교라고 한다. 어떤 무? 無(없을 무)? 아니면 巫(무당 무)? 이런 걸 중의적 표현이라고 하는 거다[52] 이명박은 재임 시절 속칭 고소영 라인만 일방적으로 우대했는데 그 고소영 라인이라는 게 고려대학교, 소망교회, 영남 지역 출신자들이다. 이쯤되면 친 개신교적 행보가 극에 달한 수준이다.[53] 덕분에 기독교 우파의 이미지가 나락으로 처박혔다[54] 그리스 신화에 나온 왕으로 제우스 대신 자신을 섬기라고 하면서 강철다리에 놋쇠마차를 달려서 천둥소리를 흉내낸 뒤 높은 곳에 올라가서 번개를 흉내낸 불붙인 나뭇가지를 투척했다. 그 결과 제우스는 이 작자에게 진짜 번개를 때렸다.[55] 여자친구의 경우도 멤버 6명 모두가 전원 다른팀 같으면 메인보컬이 되었을 정도로 다들 뛰어난 가창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실제로 메인보컬 역할을 하는 사람은 유주 혼자다.[56] 물론 일본은 한국 기독교인들과 달리 우치무라 간조 등 기독교인들이 매우 신실하고 신앙심이 좋다는 점을 감안하기는 해야 한다. 소위 소수정예.[57] 다만 동성애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 또한 좋지 않다는 점을 감안해야 할 필요가 있고 여기까지는 그런 반응을 보일 수도 있다. 이게 더 문제가 되는 이유는 동성애자들도 사람이니 같은 인권을 누려야 하므로, 그들 방식을 수용 못하겠다면 최소한 어쨌든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라는 인정이라도 해줘야 하는데 그런 일말의 관례도 없으니 동성애를 반대하다가 역으로 배척받는 사단이 나는 것이다.[58] 위에 뺀질나게 나온 바로 그 로마서 13장 1절이다[59] 근본주의 성향의 교단이나 교인들은 정치적으로도 자유주의가 아닌 권위주의 성향을 띄는 경우가 흔한 것도 이 때문.[60] 프리메이슨은 종교 다원주의가 중심인 모임이다. 뭘 모르는 사람들이 대단히 착각하는데, 천주교는 종교 다원주의를 인정하지 않는다. 타 종교 신자들을 사랑과 친절로 대하고, 타 종교를 함부로 모욕하고 저주하는 짓을 반대하지만, 그렇다고 타 종교의 신이나 교리까지 인정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61] 두 목사 모두 세월호 사건으로 악명을 떨쳤던 구원파다.[62] 진화론은 처음부터 단 한 번도 원숭이가 우리의 조상이라고 한 적이 없다. 원숭이 운운하는 건 신자들이 한 주장일뿐이다.[63] 더 이해가 잘되게 설명하자면 인간과 원숭이는 조상만 같을 뿐 서로 다른 종이다. 따라서, 인간과 원숭이는 조상과 후손 관계가 아니라 친척이라고 하는 것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더욱이 현대 개독들이 말하는 원숭이=인간은 진화론이 나온지 얼마되지 않는 근대 시절에 신자들이 주장하던 거였는데, 진화론과는 다르게 이들의 논지가 근대나 현대나 레파토리가 똑같다. 즉, 반대만을 위한 반대다.[출처필요] 톨스토이는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집필한 바 있다. 톨스토이는 복음서의 가르침을 따라 하느님을 공경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사랑하며, 폭력에 무저항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사상식사전[65] 하지만 반대로 신도 관측된 적 없다. 특히 성경이나 탈무드에서는 신을 보면 죽는다고 하니, 있어도 증명할 수 없는 셈(...)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들의 논리는 그들의 신앙을 공격하는 논리로도 사용될 수 있음을 의미하며 적에게 칼을 쥐여주는 꼴이라는 것이다.[66] 빅뱅 이론상으로는 137억년.[67] 초기 교부들이나 종교개혁을 주도한 이들은 지질학이나 생물학을 절대로 부정하거나 한 적이 없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오랜 세월을 거쳐 경험과 이성으로 증명되고 비신자들도 많이 알고 있는 과학적인 사실에 대해서 크리스천이랍시고 성경 들이대서 엉뚱한 소리 하니까 사람들이 크리스천들을 이상한 놈 취급한다"며 그런 인간들은 교회에 해악만 될 뿐이니 쳐내야 한다고 했고(아우구스티누스창조설 항목 참조) 장 칼뱅 역시 "과학자란 주님께서 인간에게 내려주신 이성과 지성의 능력으로 탐구할 수 있는 가장 예리한 경지까지 파고들어 탐구하는 사람들이고 그들이 그러한 연구와 탐구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은 자신이 모르는 것은 덮어놓고 부정부터 하고 보는 맹신자들 따위에 비난당할 이유가 없다"며 깠다. 이게 뒤집어 생각하면 성 아우구스티노나 장 칼뱅이 살던 시대에도 이미 본인이 크리스천이랍시고 성경 들이대면서 헛소리하는 인간들이 있었다는 소리인데...[68] 차라리 천지장조에서 '하루'가 현재의 24시간이 아닌 '기간'으로 봐서 동물을 창조하는 기간 동안에 공룡이 있었다가 여호와께서 마음에 들지 않으셔서 운석을 박아 멸종시켰다... 고 설명하면 어거지로 끼워맞출 수는 있다만 과학, 종교 측 모두 이런 설명을 좋아하진 않는다.[69] 이를 테면 석탄기페름기의 시기에서 지금까지의 지층의 변화 등.[70] 해당 간사의 다른 글을 봤을 때 개신교 내에서도 근본주의의 극을 달리는 독립침례교회 신자로 추정된다.[71] 이유는 2화에서 예수가 병맛스럽게 표현되었기 때문[72] 물론 당연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예를 들면 기독교의 알레고리가 무척 많이 들어간, 성공회 신자인 C.S.루이스가 쓴 나니아 연대기판타지 소설이다.[73] 예를 들면 이루마조지 윈스턴, 야니같은…[74] 영화판인 남겨진 사람들도 있다.[75] 실제로 영상에서 한말[76] 그리스인 조르바로 유명한 그리스의 소설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77] 사실 이런 보수적, 근본주의 교회야말로 성범죄가 발생하기 매우 좋은 환경이다. 우선 기본적으로 외부인에게 폐쇄적이고 내부 결속을 지나치게 중시하는 닫힌 사회이며, 종교의 자유를 내세우기에 국가 기관이나 공권력을 동원하기가 어렵고, 목사의 권위가 절대적이며, 게다가 순결을 강조하는 탓에 피해를 입은 여성들이 죄책감과 죄의식, 수치심을 느껴 성폭력 피해를 말하지 않는 등, 등, 성범죄를 부추길 만한 요소는 다 갖추고 있다.[78] 아랍에미리트나 카타르와 같은 조금 세속화 된 이슬람교 국가는 성문화를 아주 조금씩 개방적으로 하고 있다. 성문화 자체가 인간의 본능하고 직결되는 쾌락이라 무조건 탄압만 한다고 해서 없어지는 문제는 결코 아니다. 한국처럼 성매매가 불법인 나라에서도 단속을 보통 허술하게 하는 등의 방식으로 조금은 열어주는 편이다.[79] 불교2012년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가 창설된 뒤로 성소수자나 이주노동자 문제에 관심을 쏟아왔고, 2017년부터 사노위 이름으로 부스를 열어 퀴어문화축제에 지지를 표하고 있다.### 가톨릭프란치스코 교황이 "성소수자들을 주님의 창조 질서로 인정하지는 못하더라도 자비(mercy)를 가지고 대해야 한다", "주님은 그 사람의 있는 그대로를 모두 사랑하신다", "모든 이가 자신의 성적 성향에 관계없이 그 존엄을 존중받고 사려 깊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언명한 적이 있다.### 다만 가톨릭 교계의 공식 입장은 동성애를 분명히 '죄'로 보고 있으며, 가톨릭 사제들의 미성년자 소년들에 대한 성범죄들에 대해서 교황은 가차없이 "(이성애자건 동성애자건) 순결 서약 유지 못할거면 교회에서 나가라"며 비난했다.#[80] 크리스트교의 관점에서 어떤 사람이 죄가 있건 없건 그를 단죄하고 정죄할 권한은 오직 신만이 가지고 있다.[81] 전국 만 19세 이상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졌고, 응답자의 종교를 보면 개신교가 327명, 불교 139명, 가톨릭 92명, 이슬람교 등 기타 종교 18명, 무교 424명[82] 이슬람교 등 기타 종교가 2.93점, 불교 2.86점, 가톨릭 2.63점 순이다.[83] 무교 3.56점, 불교 3.51점이었고 개신교와 기타 종교는 각각 3.37점, 3.36점으로 낮은 수준이었다.[84] 불교는 3.49점, 무교 3.48점, 기타 종교는 3.22점이었다.[85] 한국 사회에서 혐오 표현이 어느 정도로 나타나는지, 사회 구성원 모두가 혐오 표현을 동일하게 인지하는지, 개신교인과 비개신교인 사이에 혐오 표현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는지 등을 조사했다. 비개신교인 970명, 개신교인 230명(종교별 가중치 적용) 총 1200명이 참여했다.[86] 이 행동은 극단적 성향을 띄는 이슬람교도들이 행하는 행동이다.[87] 마태복음 16:22~23[88] 물론 이런 일들이 한국 기독교의 발전에 도움이 된 원동력 중 하나이기는 하지만 단기간에 된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 동안의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 결과물이다.[89] 인도는 선교가 (그들 입장에서 보면) 더럽게 어려운 국가에 속한다. 사례로 인도인 하나를 죽어라 고생한 끝에 개종시키는데 성공하...기는 개뿔 그 인도인이 "전 하나님 믿는 힌두교에요." 이라고 하자 포기했다.[90] 이 책자는 선교사들이 적었는데 역시나 겪어보거나 선교사들을 통해 접한 정보를 적어보니 카더라 이야기보다 기막힌 선교 개차반 사례들이 여럿 나오고 있다. 그 사례 중 하나로 터키에서 10년 넘게 지내면서 현지인들과 친하게 지내며 가끔 내 종교를 이야기하며 서서히 기독교를 나쁜 게 아니다. 강요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 게 있으니 알아봐 달라, 무조건 기독교라고 욕하지 말고 우리도 이슬람이라고 무조건 욕하지 말아야하듯 이라며 이야기하던 선교사가 있었다. 터키인들도 조금씩 흥미를 보이고 친하게 지냈으나, 갑자기 그 선교사 방식이 잘못되었다면서 성경책을 터키인들에게 거리에서 나눠주고 찬송가 부르던 다른 한국인 선교사가 오면서 그 모든 노력이 물거품이 된 기막힌 사례가 있다. 분노한 터키인들에게 욕설과 같이 애꿎은 그 선교사도 저 개차반들이랑 같이 추방당했다. 하도 기막힌 선교사가 그 개차반들을 비난하며 그렇게 1억년 해봐라, 개신교에 대한 증오만 남는다! 라고 부르짖음에도 우리가 잘났다고 뻐기더란다....[91] 뒤틀어 말하자면 그 선교에 열 올리는 그들에게 말해보라 자신들의 종교를 겨우 물건 몇 개에 바꿀 수 있을지를[92] 다만 유럽에서 알바니아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무슬림이 상당히 남은 경우이며 레바논도 아랍에서 드물게 기독교가 다수다.[93] 가톨릭대학교/성신교정, 신부, 주교 항목 참조.[94] 교단마다 다르다.[95] 여담으로 이러한 목사 과잉 공급과 대형 교회에의 성도 편중 문제가 개척교회들까지 과격하고 무리한 선교로 뛰어들게 만들어 악순환에 동참시킨다는 견해도 있다.[96] 심지어는 교회내 권력다툼에 휘말려 쫓겨나다시피 해도.[97] 뉴욕에 있으며 컬럼비아 대학교 내에 위치하고 있다[98] 칼 바르트 신학을 두고. 예일, 유니온은 칼 바르트쪽이다.[99] 대부분 피곤하다 보니 부목사끼리 돌아가며 한다.[100] 바울 서신에서도 파벌싸움에 대한 비판이 있었던 것을 보면, 교회사와 궤를 같이하는 문제라 봐야 한다.[101] 유치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규모가 작은 교회의 경우 중등부와 고등부가 합쳐져 있기도 하다.[102] 보통 성별, 나잇대, 사는 곳을 기준으로 나뉜다.[103] 앞서 말했듯 청소 문제도 있고, 교회에서 각 과제, 예를 들어 "이번 달 목표는 전도다!"라고 정한다면 각 모임에 통보해서 이를 달성하라고 지시하는 식이다. 따라서 이들은 교회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단체가 아니라 종속적인 단체이다.[104] 다른 교사가 간식을 준비해 오는 것을 목격한 학생들이 자기네 담임 교사한테" 우리도 간식 먹고 싶다"고 하니깐, 간식 준비해온 교사한테 "애들이 간식 사달라고 조르니깐 준비해 오지 말라. 돈 쓰기 싫다."고 직접적으로 말한 경우도 있다.[105] 현대 천주교의 입장은 성당에 일을 많이 해주면 천국 간다, 보상을 많이 받는다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믿음과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결정된다. 때문에 신자들에게 봉사를 강요할 이유가 전혀 없다. 단순히 그 사람이 봉사를 했다는 사실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했느냐가 중요하고, 아무리 사제라 할지라도 인간인 이상 그러한 일을 해주면 하느님이 기뻐하실지 아닐지 판단하는 건 하느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일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하느님이 기뻐하실 테니 하시죠" 같은 식의 강요를 못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불교도 개인의 수양과 도덕을 강조할 뿐, 을 위해 일해야 열반에 든다는 주장은 하지 않는다.[106] 그래도 개신교에는 남아 있으려는 부류[107] 아예 개신교를 떠나려는 부류[108] 이게 종교가 아니라 개인사업으로 등록되었으면 얄짤없이 사기배임죄가 성립된다.[109] 그리고 상당히 이중적인 면모도 있다. 보기 안 좋다면서... 사실은 나도 안 보이는 은밀한 부위에 이쁘게 해보고 싶어...[110] 불교는 그리스도교 신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신이라는 존재를 인간이 결코 초월할 수 없는 유일무이하고 전지전능하며 절대적인 존재이자 섬기고 복종해야 하는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신들 역시 인간을 포함한 세상 만물들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윤회와 운명에 매여 있는 존재이고 인과윤회라는 전우주적인 법칙 앞에서는 인간도 신도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고 보기에 창조주의 전지전능함을 말하는 그리스도교 신학과 충돌할 수 밖에 없고, 유대교나 이슬람의 경우는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한 유일신에 대한 인간의 복종을 강조하는 점에서 그리스도교와 신학적인 관점은 비슷한 부분이 있지만 그리스도교에서 결코 바꿀 수 없는 신앙의 기조로 삼는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신이자 완전한 인간이며 주님의 아들로써 인간의 몸을 입어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죽어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라는 문구에서 예수를 완전한 신이자 완전한 인간이고 신의 아들로 보는 것은 결코 용납하지 않기에, 서로 충돌이 있을 수 밖에 없고, 이건 저마다의 논리나 철학이 분명하게 하나씩 버티고 있는지라 무엇이 옳다고 딱 잘라서 어느 한쪽을 편들 수도 없는 문제다.[111] 가톨릭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그리스도교의 기본 교리에 충실한다는 점에서는 개신교와 같은 포지션이지만 그것을 개신교만큼 강경하거나 일상 생활에서 두드러지게 강조하지는 않고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마태오의 복음서 7장 21절)라는 예수의 발언을 융통성 있게 해석해서 "예수님밖에 구원이 없기는 하지만, 예수님 믿는답시고 뭐든지 다 해도 용서된다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정도.[112] 비리를 저지른 해당 교회의 담임목사의 친인척이 바로 HBC 사장이었다.[113] 대표적으로 구해줘의 경우. 손만 대도 쓰러지는 '치유 기도회' 등 집회 현장이나 방언, 헌금, 기도 등 종교 행위를 강요하는 모습이 나온다. 이 같은 종교 행위 이면에 목사·교주들의 이권을 챙기기 위한 목적이 있다는 것이 공통된 묘사다. 2009년작 호러영화 불신지옥도 주인공의 어머니가 광신적인 개신교인의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114]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는 등 신앙생활 자체에는 열심이지만, 중요한 기로에서 이기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나 종교를 내세워 자신의 죄를 덮어보려고 하거나 하는 경우. 이창동 감독의 2007년작 밀양이 분야의 대표작이며, 물론 영화의 원작인 이청준의 소설 벌레 이야기를 읽어봐도 영화 못지 않은, 아니 그 이상으로 깊은 딥빡을 느낄 수 있다.[115] 교회가 권력과 유착해 권력을 이용하는 모습. JTBC 드라마 '내 ID는 강남미인!'은 아예 국회의원 도상원(박성근 분)이 교회에서 목사로부터 신도들 앞에 '믿음의 가정'이라며 추켜올려지다가 곧이어 다음 장면에서는 사찰에서(!) 스님 앞에 합장하고 "제 아들이 대학 합격한 것도 다 부처님의 자비하심 덕분"이라고 대답하는 장면이 그려져 제대로 현실 고증에 성공했다.[116] 1987(2017년작)에는 <사랑의 하나님>이라는 제목의 기독교 서적을 읽으면서 박종철(여진구 분) 군을 잔혹하게 고문하는 공안경찰 조 반장(박희순 분)의 모습이 담겨 있는데, 그는 이후 감옥에 갇혀서도 찬송가 '이 눈에 아무 증거 아니 뵈어도'를 부르는 등 독실한 기독교인으로 표현된다. 다만 본작에는 민주화 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쫓기는 사람들을 숨겨주는 교회의 모습도 제대로 나온다. 소설가 공지영의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황동혁 감독의 영화 도가니(2011년)는 보다 보면 개독교에 대한 환멸을 넘어 인간성 자체에 대한 혐오와 부정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해당작이 작가의 창작이 아니라 실화라는 점에서 더더욱.[117] 여담으로 박희순은 천정명 주연의 2007년작 영화 헨젤과 그레텔에서도 1987과 비슷한 기믹의 악역을 맡은 적이 있다. 작중 대놓고 드러나지는 않았으나 대사 속에서 관객이 '아, 개신교구나'하고 눈치챌 수 있도록 깔아둔 암시와 묘사가 많다.[118] '그놈 목소리'(2007)의 경우 방송국 앵커인 경배(설경구 분)의 9살 아들이 흔적 없이 사라지고 "1억을 가져오라"는 유괴범의 협박 전화가 걸려오는데, 마침 교인이던 경배의 집에 심방 온 목사는 아들을 유괴당한 경배를 향해 "고난과 시련에도 감사하자"고 괜히 어설픈 위로를 던졌다가 분노한 경배에게 "고난과 시련이 감사해요? 나가세요. 오늘부터 하나님 안 믿어. 하나님도 이제 필요 없어"라는 악다구니를 듣고 쫓겨난다. 파괴된 사나이(2010년)도 "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 용서하라"고 설교하던 목사 주영수(김명민 분)가 자신의 어린 딸이 납치되고 딸이 돌아오기만을 바라며 8년을 신앙에 매달렸지만 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고 결국 신앙을 버리고 냉혹한 사업가로 변모한다. 앞서 해당 설교(일곱 번씩 일흔 번까지 용서하라는 마태오의 복음서에 등장하는 유명한 예수의 설교)가 끝나고 신도들이 다 나가 혼자 남은 회당 안에서 자신이 방금 했던 설교 내용을 되뇌다 십자가를 올려다보면서 냉소적이고 경멸 서린 눈으로 "X까고 있네..."라고 중얼거리는 김명민의 연기가 매우 명장면이다. 다만 김명민 본인은 독실한 개신교 신자라 해당 장면을 연기하는 것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감독님 왜 그러셨어요[119] 유일하게 교회에 대한 긍정적인 모습을 묘사한 작품이 완득이(2011년작)인데, 작중 완득(유아인 분)의 담임 동주 선생(김윤석 분)은 자신을 교회 전도사라고 소개하며 동네 교회를 운영하고 예배당을 자립이 어려운 이주 노동자를 위한 쉼터로 내어 주고 교회 내 외국인들의 네트워크를 통해 완득이 어머니(이자스민 분)를 찾아 주기도 한다. 술 · 담배를 서슴지 않는 그가 운영하는 교회를 '사이비'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동주는 "교회에서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니까 내가 전도사다"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야말로 참교육자이자 참성직자의 표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