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5-11-26 09:32:44

게토


1. 개요2. 역사
2.1. 전근대
2.1.1. 동유럽
3. 나치 독일의 게토4. 오늘날의 변화한 의미
4.1. 미국
5. 여담6. 동음이의어
6.1. PC방 클라이언트6.2. 코드 기아스의 지역6.3. 주술회전의 등장인물

1. 개요

Ghetto

유대인이 모여 살도록 법으로 강제한 도시의 거리나 구역을 가리킨다. 게토라는 명칭은 1516년경 베네치아 공화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어원은 미상이라고 한다.

2. 역사

2.1. 전근대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50px-Frankfurt_Am_Main-Fay-BADAFAMNDN-Heft_21-Nr_245-1904-Die_Judengasse_Suedseite.jpg
13세기 모로코에서 처음 등장했지만[1] 유럽 전역에도 14~15세기부터 이런 거주 제한 규정이 생겼다. 모로코에는 게토와 비슷한 멜라가 있었는데 게토보다는 한결 자유롭고 번화했다. 베네치아 이전의 유대인 거주지는 차이나타운 류에 가까웠다.

널리 알려진 사실과 달리 게토의 원래 목적은 유대인들을 보호하는 것이었다. 1090년대 말 십자군의 광기에 (하인리히 4세의 유대인 보호 칙령에도 불구하고) 신성 로마 제국 곳곳에서 유대인 학살이 자행되자 12세기 슈파이어의 주교가 유대인 주거지에 성벽을 두르고 자치권을 주어 학살로부터 보호하려고 했던 것이다. 십자군은 주교궁에 숨은 유대인까지 가차없이 죽였기 때문이다. 다만 게토라는 명칭의 유래가 된 베네치아 공화국의 게토는 유대인 강제수용 지역이 맞다.

게토는 높은 벽으로 둘러싸여 있어 바깥 사회와 격리되어 있었다. 게토에서는 유대인 공동체로서 어느 정도의 자치를 허용했으나 시민권을 절대 주지 않았으며 게토를 나갈 때 유대인임을 증명하는 노란색 옷과 챙달린 뾰족모자를 걸치고 마크까지 달아야 했다. 해가 진 후에는 게토 밖으로 나가는 것이 완전히 금지되고 기독교인들이 보초를 서고 게토를 감시했다.[2] 거주제한 때문에 게토의 유대인들은 건물을 높이 지을 수밖에 없었다.

서유럽에서는 19세기부터 점점 없어져 1870년 로마를 마지막으로 폐지되었다.

2.1.1. 동유럽

비슷한 개념으로 전근대 동유럽의 유대인 집중 거주 지대가 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p_showing_percentage_of_Jews_in_the_Pale_of_Settlement_and_Congress_Poland%2C_c._1905.png

러시아 제국에서는 유럽에서 유대인이 가장 많이 살던 옛 폴란드-리투아니아 강역을 따라 이른바 "정주제한선(Черта́ осе́длости(체르타 오세들로세티))"이라는 유대인 '집중거주구역'[3]을 설정하는 선을 긋고 이 지역 바깥으로의 유대인의 거주를 제한했으나 러시아 혁명 후 유대인들의 거주지 제한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 지역에는 유대인들이 거주하는 마을들이 산재해 있었는데 이를 이디시어로 슈테틀(שטעטלעך)이라고 했다.[4] '정주제한선' 안쪽에 거주하는 유대인 인구의 3/4가 슈테틀에 살았지만 19세기 후반부터 경제적 어려움과 러시아 제국포그롬 때문에 2백만 명이 동유럽을 떠났고 결정적으로 홀로코스트 때문에 슈테틀은 사라졌다.

3. 나치 독일의 게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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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하십시오.

일명 나치 게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나치 독일폴란드 총독부를 비롯한 동유럽 점령지의 도시들에서 부활시켜 유대인을 몰아넣을 수용구역으로 이용하면서 악명을 떨쳤다.

4. 오늘날의 변화한 의미

현재는 그 의미가 "외국 출신 이민자들, 또는 특정 인종이 모여 사는 곳"으로 바뀌었다. 즉, 유대인이 아니더라도 특정 민족이 사회의 주류 민족과 고립되어 살아가게 되면 게토로 불린다. 역사적 게토로부터 유래한 만큼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북미의 코리아타운이나 차이나타운 등의 소수 민족 커뮤니티와 게토의 차이점은 주류 사회로부터 철저히 백안시당하고 주류 사회로 편입될 기회가 사실상 차단되어 있다는 점이다.[5] 그런 면에서 슬럼과도 공통 분모를 지닌다.

대표적인 사례로 서유럽, 북유럽 국가들에서의 무슬림 공동체가 있다.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있던 흑인 거주 지역인 반투스탄 및 소웨토(Soweto)도 특정 인종의 격리라는 측면에서 게토와 비슷하다.

4.1. 미국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Chicago_ghetto.jpg

파일:external/th05.deviantart.net/ghetto___istanbul_by_nadersantina-d5calzc.jpg

보통 미국에서는 빈민 거주 지역을 의미하며 갱스터 랩 애청자들은 많이 들어 보았을 용어다. 일종의 속어지만 미국의 흑인 밀집 빈민가가 흑인 특유의 스웨거 문화와 맞물리며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했기에 미국에선 이미 고유명사화되었다. 이 게토 문화권에서 비롯된 독특한 음악 장르와 문화도 많은데 예를 들어 뉴욕 게토 브롱스에서 유래된 힙합이나 시카고 게토에서 유래된 게토 하우스-주크 하우스, 풋워크 등이 게토 문화권에서 창출된 음악 장르다.

싸구려 음식 앞에 "게토~"라는 접두사를 붙이거나[6] 허접한 물건으로 스웨거를 나타낸 경우 "that's ghetto"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미국의 래퍼 XXXTENTACION은 시끄럽고 음산한 느낌의 앨범을 만들어 제목을 “A Ghetto Christmas Carrol”이라고 짓기도 했다.

UC 버클리가 위치한 버클리에는 아시안 식당들이 모인 골목길인 아시안 게토가 존재한다.

파일:external/www.ghettofail.com/ghetto-wedding-dress1.jpg

위 사진처럼 앨런 아이버슨 유니폼을 리폼한 웨딩 드레스, 딸이 찍어준 매춘부 사진, 차체를 무지하게 올린 차 그리고 흑인들이 많이 피운다는 담배 브랜드 뉴포트 등의 게토 문화가 일종의 으로 자리잡아 아예 관련 자료들만 모아 둔 사이트가 있기도 하다.

5. 여담

  • GD&TOP이 2010년에 발표한 곡 ‘High High’에서는 게토의 알파벳을 하나씩 끊어 읽는다.
    "G H E T T O E L E C T R O

    미칠지 모르죠 말리지 마 HERE WE GO"
  • Men's Tear가 2022년에 발표한 곡 ‘빈민가 소년’에서도 자신들이 가난했다고 ghetto라 우기는 가사가 나온다. 당시 호미들을 위시한 래퍼들이 가족의 사랑을 받으며 충분히 풍족하게 살았으면서 가난했다고 가난팔이를 하거나 학군이 좋고 치안도 안정적인 땅값이 비싼 곳에서 살았으면서 선혈이 낭자하는 곳에서 살아남아왔다며 허세부리는 가사를 쓰는게 유행이었는데 그런 것들을 풍자한 노래다.
엄마가 끓여준 김치찌개
차돌박이 대신 들어간 돼지비계
우리 아빠 차 소나타
그런 똥차 탈 바엔 그냥 나 타
우린 ghetto ghetto woo
우린 ghetto ghetto yeah
우린 ghetto ghetto woo
우린 ghetto ghetto yeah

6. 동음이의어

6.1. PC방 클라이언트

대한민국의 PC방 클라이언트.

GETO라고 표기하며 트위치 대한민국 사업 철수 사건 이후 클라이언트 업데이트가 끊겼다.[7]

게토 애플리케이션도 존재한다.

6.2. 코드 기아스의 지역

코드 기아스에 등장하는 가상의 지역. 상위 항목의 의미 그대로 사용된다.[8] 다만 여기에서의 게토는 일정 지역을 지정한 게 아니라 조계 외부의 모든 지역들을 통칭하여 부르는 개념이다.

브리타니아-일본 전쟁의 승전으로 일본을 식민지화한 브리타니아는 구 일본의 주요 대도시 일부를 새로 개발하여 브리타니아인 전용 거주 지역으로 복구하였다. 이를 조계(租界)[9]라고 칭하는데 구 일본 국민들은 브리타니아에 충성을 맹세한 소수의 인원 외에[10] 조계 외부에 있는 게토로 쫓겨나 살아가게 되었다.

조계는 전쟁으로 초토화된 도시 폐허를 치우고 처음부터 다시 도시를 지어 신 시가지가 구성되어 있지만[11] 게토는 전쟁 당시 폐허가 된 모습 그대로, 심지어 여러 종류의 잔해조차 치워지지 않은 상태. 이렇다보니 조계와 게토의 생활 수준 차이는 처참할 지경이다.

6.3. 주술회전의 등장인물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게토 스구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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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게토 스구루#|]]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1] 몇몇 이슬람 국가에서는 2차 대전 이후에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집단이주하기 전까지 남아 있었다.[2] 베네치아에서는 보초를 세우는 데 필요한 돈을 유대인들이 내야 했다.[3] 물론 유대인 '집중거주구역'이라고 해서 유대인들 사는 동네는 절대로 아니었다! 이 지역도 러시아인, 폴란드인 등 슬라브인이 엄연히 다수 민족이었다. 이로 인해 유대인들은 이 지역의 민족국가의 성립을 오히려 경계했는데, 독립 민족국가가 세워지면 유대인 거주구역이 죄다 쪼개져 버리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의 이러한 불안은 제1차 세계 대전 후 현실이 되었다.[4] 슈테틀은 정확히 말하면 읍 정도 되는 개념이었다. 렘베르크 같은 큰 도시는 슈토트(שטאָט), 작은 유대인 마을은 도르프(דאָרף)라고 불리었다. 독일어 비슷한 느낌이 들 텐데 동유럽 유대인들이 사용했던 이디시어가 그 계통이라서 그렇다.[5] 사실 차이나타운도 초창기에는 화교들을 몰아넣는 게토였다. 반화교 폭동과 학살이 벌어지기도 했다.[6] 싸구려 냉동 부리토를 보통 Ghetto Burrito라고 부른다.[7] 대부분 PC방 클라이언트는 이 사태 이후 트위치가 치지직으로 바뀌었다. 대표적으로 피카플레이.[8] 다만 에리어 11 일본 외 다른 지역에서도 사용되는 용어인지는 불명.[9] 19세기~20세기 초 중국에 있던 외국인 전용 주거지역.[10] 이들을 '명예' 브리타니아 인으로 분류한다.[11] 심지어 조계 중앙부는 도시 구획을 몇 개 층으로 설계해두었다. 도시 면적만한 구조물이 수십 미터 솟아오른 모습은 감탄이 나올 지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