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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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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日成廣場

Kim Il Sung Squ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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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일성광장 전경.jpg
▲ 김일성광장의 전경
(대동강구역에서 본 모습)
파일:김일성광장 전경2.jpg
▲ 김일성광장의 전경
(인민대학습당에서 본 모습)
<colbgcolor=#e40001,#222222><colcolor=white> 준공 1954년 8월
기능 광장
(열병식 등 정치행사용)
규모 크기 75,000㎡[1]
수용인원 10만 명
주소

김일성광장
(평양시 중구역 중성동, 경림동)[2][3]

1. 개요2. 주변 풍경3. 역할4. 여담

[clearfix]

1. 개요

북한광장. 평양시 중구역 중성동, 경림동에 있다. 러시아 모스크바붉은 광장, 중국 베이징천안문 광장처럼 북한을 상징하는 광장이다.

명칭은 당연히 북한의 초대 독재자김일성의 이름에서 따 왔다. 처음 이름은 중앙광장이었으나 완공 전 김일성 우상화를 위해 김일성광장으로 바뀌었다.

6.25 전쟁 후 복구 과정에서 1954년 8월 김일성이 구상한 '평양시복구건설총계획도'에 의거하여 건설됐다. 건설에 연인원 100만 명이 동원되었다고 한다.
파일:김 일성 광장과 로동자 아빠트.jpg
1954년경 공사중인 김일성광장

면적은 75,000㎡[4]이며 바닥은 화강암으로 되어 있다. 영어 위키백과세계의 광장 목록 문서에 따르면 54위라고 한다.

2. 주변 풍경

주요 시설물로 김일성광장 대주석단이 있다.

광장 바로 뒤편으로는 대동강이 흐르고 주체사상탑 맞은 편에 있다. 대주석단, 인민대학습당, 내각종합청사, 외무성 청사, 대외경제성 청사, 조선중앙력사박물관, 조선미술박물관, 평양제1백화점 등 중요 시설들이 광장을 둘러쌌다. 여러모로 소련붉은 광장을 본떠서 만든 듯하다. 승리거리, 대학습당거리 등과 직접 연결되었고 보조광장도 있다고 한다. 원래는 카를 마르크스블라디미르 레닌초상화가 걸려 있었으나 2012년 철거되었다.[5]

3. 역할

국가의 중앙광장이다 보니 각종 군중대회, 정치적 행사, 경축회, 추모행사 따위를 하는데, 북한이 자주 하는 열병식도 이 광장에서 한다. 따라서 남한과 세계 각국의 TV 뉴스에서도 북한 관련 보도를 할 때마다 자료화면으로 이 장소가 자주 등장하곤 한다. 큰 인공기가 보이는 건물 옆으로 탱크가 지나가고 북한군이 열병식을 하고 김정은조선로동당 및 국방성 고위간부들은 맞은편 건물에서 박수치는 그런 모습. 이 광장의 다양한 활용 모습을 보고 싶으면 열병식/북한 문서를 참고하는 것도 좋다.
  • 2021년에는 북한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방역체제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정권수립 73주년 열병식을 강행한 와중에, 광장 우측의 선전문구를 "백전백승의기치"에서[6] "새로운 승리를 향하여"로 바꾸었음이 영상으로 확인되었다.
  • 2024년 신년에는 화려한 축포를 터뜨리는 행사를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

4. 여담

이 광장은 1996년 북한 도로망의 출발점인 도로원표의 역할도 하고 있다. 정확히는 대주석단 바로 아래 쪽이며 이곳에 '평양 나라길 시작점' 비석이 있다.(#1#2) 1990년대 초 이전에는 평양 중구역 중성동 승리거리의 해방산려관 앞마당, 1996년까지는 평양 중구역 평양성 중성 출입문 중 함구문이 도로원표였으나 김정일이 지시하여 이곳으로 옮겼다고 한다.[7]
[1] 세계에서 37번째로 큰 광장.[2] 광장을 가로지르는 큰 도로가 승리거리고, 승리거리를 경계로 강변이 경림동, 반대편이 중성동이다.[3] 1946년 미군이 발행한 지도에 의하면 광복 당시 행정구역상으로는 평양시 아청리(衙廳里)이다.(범례 칸에 한국식, 일본식 발음이 병기되어 있는데 한국어 발음은 '이위편리'라고 엉뚱하게 적혀 있지만 일본어 발음은 "가쵸-리"로 적혀 있음을 알 수 있다.)[4] 10만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다. 참고로 서울의 구 여의도광장이 약 237,600㎡였고 # 광화문광장이 약 2만㎡.[5] 이는 북한이 자국 헌법에서 공산주의를 삭제했던 시기와도 맞물린다.[6] 이전에는 "선군혁명총진군"이었다.[7] 북한은 "나라길 시작점을 혁명활동 역사와 결부시켜 올바로 정한다."는 것이 옮긴 이유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