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11-26 02:38:05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1. 개요2. 연혁3. 해외 진출4. 한국 진출5. 교육6. 의료7. 소속 수도자

1. 개요


1696년 프랑스 러베빌(Levesville)에서 루이 쇼베(Louis Chauvet) 신부에 의해 창설된 가톨릭 수도회. 한국 가톨릭 최초의 수도회이자[1], 한국에서 제일 큰 수도회이기도 하다.


수도회의 영성은 그리스도 중심 - 파스카 영성이며 카리스마는 애덕(카리타스)이다.

2. 연혁

창설자 루이 쇼베 신부는 작은 시골마을의 평범한 본당신부였다. 그는 러베빌 마을에 가난한 사람, 병든 사람, 방치되고 있는 아이들, 기타 보살핌을 필요로 하는 불쌍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고, 이들을 도울 방법을 궁리한다. 이 일을 위하여 그는 마을에서 신앙심 깊은 처녀 4명을 뽑아 공동체를 만들었다. 그녀들은 가난한 사람들과 환자들을 방문하여 보살피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았다.

4명만으로 시작한 공동체는 점점 더 성장했고, 쇼베 신부는 이 공동체를 샬트르(샤르트르) 교구에 위탁했다. 샬트르 교구장 주교는 공동체에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라는 이름을 주고, 사도 바오로주보성인으로 정했다.

3. 해외 진출

창설 30주년이 되는 1727년, 4명의 수녀들이 남미로 해외선교를 떠났다. 이것을 시작으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프랑스를 넘어 세계 여러 나라로도 진출했고, 오늘날은 전 세계 31개국에서 4,000여명의 수녀들이 활동하고 있다.

1848년 홍콩에 진출한 것을 시작으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동양에도 진출하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1888년에 진출했고, 가까운 일본에는 10년 빠른 1878년에 진출하여 시라유리 여학원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편 1900년부터는 중국 대륙에도 진출했지만, 이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고 종교의 자유가 없어져 1949년에 철수했다가, 1994년부터 다시 진출하여 활동하고 있다.

4. 한국 진출



1886년 조선과 프랑스가 정식으로 수교하여, 조선에서도 천주교 박해가 끝나고 자유로이 천주교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이에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7대 교구장인 프랑스인 블랑 백 요한 주교[2]는 프랑스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조선에 수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는 이 요청을 받아들여 4명의 수녀들을 조선에 보냈다.

1888년 7월 22일, 프랑스인 자카리아 수녀와 에스텔 수녀, 중국인 수련수녀 비르지니 수녀와 프란치스카 수녀가 인천항에 상륙했다. 곧 조선인 소녀 5명이 입회하여 수녀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기 시작했는데, 모두 독실한 천주교 신자 집안의 딸들이었다. 3명은 병으로 일찍 죽었으나 김해겸과 박황월[3]은 무사히 수련을 마치고 최초의 한국인 수녀가 되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종현(鐘峴) 언덕에 명동성당이 완공되기 10년 전인 1888년부터 종현 언덕에 수녀원을 세우고, 버려진 아이들을 위한 고아원과 가난한 환자들을 위한 시약소를 운영했다. 1900년에는 종현성당(명동성당)에서 여학교를 개설하기 위해 수녀들을 초빙했는데, 이것이 계성학교의 시초였다.

이후 서울뿐 아니라 여러 지방에도 진출했고, 1915년에는 대구에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이 세워졌다. 대구 수녀원과 성당은 훗날 문화재로도 지정되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처음 한국에 진출해온 이후로 다른 수도회들도 한국에 진출해왔고, 한국 땅에서 외국인 또는 한국인에 의해 수도회가 창설되기도 했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수녀들은 새로 생겨난 수녀회에 파견되어 수련자들을 교육시키는 일도 맡았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등)

1967년에는 서울관구와 대구관구로 분리되었다. 오늘날 한국의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2개의 관구에서 1,000여명의 수녀들이 선교, 사회복지, 교육, 의료 등등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5. 교육

가톨릭어린이집,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에서 교사로 일하고 있다.

6. 의료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의료 활동은 서울에서 운영했던 시약소가 그 시초였다. 대구에서는 무료진료소를 운영했고, 이 진료소는 1955년 성요셉의원으로 발전하였으나 1973년 운영난으로 폐원했다.

오늘날은 가톨릭계 병원인 서울성바오로병원, 여의도성모병원, 대전성모병원,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 완주성바오로복지병원, 부산메리놀병원에서 활동하고 있다. 또한 서울아산병원한강성심병원의 천주교 원목실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7. 소속 수도자


[1] 한국 가톨릭 최초의 남자 수도회베네딕토회이다.[2] 한국명 백규삼(白圭三). 파리외방전교회에서 파견됨. 명동성당을 짓던 중에 병으로 사망했다.[3] 박해시기 천주교 순교 역사의 증거자이자 인천지역 천주교 선교에 큰 역할을 했던 박순집 베드로의 셋째 딸. 천주교 인천교구 제3대 교구장 정신철 요한 세례자 주교의 외가 쪽 조상이기도 하다.[A] ‘매괴(玫瑰)’는 묵주, 장미꽃을 의미한다.[B] ‘쌘뽈’은 ‘성 바오로(Saint Paul)’를 프랑스어로 읽은 것이다.[A] [B] [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