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2 05:19:38

그리스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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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의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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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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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수도회 로고[1]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모토 하느님을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자(시편 100:2)
주보성인 바뇌의 성모님
창설일 1981년 5월 10일
창설자 가경자 소 알로이시오(Aloysius Schwartz) 몬시뇰
총원장 배성룡 바오로 신부
본원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로41가길
대표주소 대한민국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바리골길[2]
진출국 대한민국, 필리핀, 멕시코
홈페이지 그리스도 수도회 홈페이지
1. 개요2. 창설자 소 알로이시오3. 영성4. 수도자 양성 과정5. 소개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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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그리스도 수도회는 남성 수도자들로 이루어진 가톨릭 수도회이다. 1960년대 초부터 한국에서 구호 사업을 하던 미국 출신의 가톨릭 사제인 소(蘇) 알로이시오(알로이시오 슈월츠) 신부에 의해 한국에서 처음 창설되었다. 현재, 한국을 비롯하여 필리핀과 멕시코에도 한국인 수도자가 분원장으로 봉직하고 있는 분원이 존재한다. 이는 창설자 소 몬시뇰이 한국에 이어 필리핀과 멕시코에서도 구호 사업을 벌였기 때문이다.

현재 그리스도 수도회는 파주에서 노숙인 및 자립이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자활 치료 시설인 늘푸른 자활의 집, 장애인 복지시설인 한우리 공동체를 운영하고 있고, 서울에서 장애인 복지시설인 작은숨골 공동생활가정[3]을 운영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장애인 복지 시설인 아마데오 그리스도 나눔의 집과 직업 훈련 학교인 트리아스 그리스도 나눔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4][5]

위와 같은 각종 구호 및 복지 활동을 위해 '재단법인 그리스도수도회'와 '사회복지법인 그리스도수도회'를 운영 중이다.

2. 창설자 소 알로이시오

1930년 미국워싱턴 D.C.에서 태어난 소 알로이시오 몬시뇰은 어릴 때부터 선교 사제가 되고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기를 원했다고 전해진다.[6] 그는 메리놀외방선교회에 입회하여 메리놀회 신학교에서 학사 과정을 1952년에 마치고, 이후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하는 선교사제의 꿈에 더욱 적합하다고 판단했던 벨기에의 선교 협조자회로 옮겨 루벵대학 신학부를 1957년 졸업하였다.

루벵대학 신학부에서 공부하는 동안 그는 같은 대학에서 사회학을 공부하던 어떤 신부에게 전쟁 직후 한국의 어려운 상황에 대해서 듣게 되는데, 그 신부가 바로 당시 대구대교구의 신부였던 제2대 마산교구장병화 요셉 주교이다. 이로 인해 그는 한국인들을 위해 일할 결심을 하게 된다. 1957년 사제서품을 받은 소 신부는 같은 해 한국에서 활동하기 위해 부산교구에 입적하였다.

소 신부는 1961년 미국에서 민간자선단체인 '한국 자선회'를 설립하여 한국에서의 구호 활동을 전개하였고, 1962년부터 1967년까지 부산교구 송도본당의 주임 신부로 재직하였다. 부산 지역의 빈민들을 대상으로 활발히 구호사업을 전개한 소 신부는 1964년 가난한 이들에게 봉사함을 목적으로 하는 마리아 수녀회를 창설하였다.

소 신부의 구호사업은 지역적 범위를 넓히게 되었다. 그는 여러 부랑자가 소속된 서울시립갱생원의 위탁 운영을 1980년 제의받는데, 처음에는 자신의 힘으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여 거절하다가 결국 받아들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여성 수도자들인 수녀들만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한 소 신부는 남성 수도자들의 수도회를 만들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1981년 설립된 그리스도 수도회이다.

마리아 수녀회와 그리스도 수도회는 1981년부터 서울의 노숙자와 부랑자를 돕는 '은평의 마을'[7]을 창설하고 운영하게 되었으며, 소 신부는 이후 필리핀에서도 구호사업을 이어나갔다. 소 신부는 이 밖에도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구호사업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1975년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받고 1983년에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하였다. 그러나 그는 안타깝게도 1989년 10월 루게릭병을 진단받게 되었다. 교황청에서도 그의 업적을 인정하여 1990년 몬시뇰 호칭을 받게 된 소 몬시뇰은 병에 굴하지 않고 구호사업을 지속하였고, 투병 기간 중 멕시코에서 자신의 새로운 구호사업을 시작하였다.

1992년 필리핀 마닐라에 위치한 자신의 구호 기관의 사제관에서 사망(선종)한 소 몬시뇰은 2015년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가경자로 선포되었다.

벨기에에 머무는 동안, 소 신학생은 성모 발현이 있었던 바뇌 성모 성지에 자주 방문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내적 평화를 얻고 가난한 이의 동정녀, 즉 성모 마리아에게 자신의 사제직을 바치기로 결심하였는데, 바로 이 바뇌의 성모는 그가 한국에 세운 마리아 수녀회와 그리스도 수도회의 주보 성인이다.

3. 영성

그리스도 수도회의 가장 핵심적인 영성은 살아계신 그리스도 체험 영성이다. 옆 형제 속, 성체 속, 성서 속, 가난한 사람 속, 고통 속에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체험하는 것이 이 영성의 내용이다. 살아계신 그리스도, 즉 그리스도의 참 생명에 대한 체험에서 이어지는 참 생명과 일치 영성이 수도회의 2번째 영성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현존을 기뻐하는 것이 수도회의 3번째 영성인 기쁨 영성이다.[8]

이러한 영성은 소위 남매 수도회 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그리스도 수도회와 마리아 수녀회가 공유한다.

4. 수도자 양성 과정

세례성사를 받은 지 3년 이상 되는 35세 이상의 미혼 남성 중 수도회 입회를 희망하는 이들을 받아들인다. 6개월의 지원기와 1년의 청원기를 거쳐 본격적인 정식 수도자로서의 첫 단계인 수련기에 도달하면 수도복을 착복하게 된다. 1년 6개월의 수련기를 거치면 허원기에 도달하여, 완전한 그리스도 수도회의 수도자가 되고 매년 자신의 서원을 갱신한다.[9]

5. 소개 영상



[1] 삼각형: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삼위일체를 상징.
배와 돛: 예수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수도회, 십자가를 각각 상징.
작은 타원: 성모 마리아를 상징.
알파와 오메가: 언제나 가난한 이들과 더불어 존재할 것이라는 수도회의 영성을 상징.
[2] 본원의 주소와는 다른 파주 분원의 주소이다. 그리스도 수도회 홈페이지 '찾아오는 길'에서는 이 주소로 안내하고 있다.[3] 이곳이 그리스도 수도회 서울 본원의 주소이다.[4] 직업훈련학교가 위치한 제네럴 트리아스라는 도시는 같은 창설자가 설립한 마리아 수녀회의 본원이 위치한 곳이라고 한다.[5] 그리스도 수도회의 분원이 존재하는 또다른 국가인 멕시코에서의 활동은 그리스도 수도회 홈페이지를 통하여 전해지지는 않고 있는 듯하다.[6] 출처: 그리스도수도회 홈페이지 창설자 소개[7] 2010년 철수하였다.[8] 출처: 그리스도 수도회 홈페이지 영성[9] 출처: 그리스도 수도회 홈페이지 입회, 부르심, 그리스도 수도회 홈페이지 양성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