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3-05-03 19:04:40

방유룡

한국순교복자수녀회에서 넘어옴

1. 개요2. 출생과 성장3. 신학생ㆍ사제 생활4.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설립5. 한국순교복자수도회의 영성과 활동

1. 개요

, 1900년 3월 3일~1986년 1월 24일 (향년 85세)

78번째 한국인 가톨릭 신부로, 세례명은 레오이고 수도명은 안드레아이다. 호는 무아()이며, 본관은 온양이다.

가톨릭의 토착화와 방인()[1] 수도회 설립에 힘써, 3개의 수도회를 세웠다. 방유룡 신부가 세운 수도회는 최초로 한국인이 한국에서 설립한 수도회로, 본래 천주교 서울대교구 소속이던 방 신부 역시 일선 사목에서 은퇴한 이후 자신이 세운 수도회에 입회하여 수도사제가 되었다. 방 신부가 세운 수도회는 (순서대로) 다음과 같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남자)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

2. 출생과 성장

한성부 서서 황화방 군기시계 소정동[2]에서 독실한 가톨릭 신자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 명동성당 제3대 주임인 파리외방전교회 소속 프랑스인 빅토르 루이 푸와넬(Victor Louis Poisnel) 신부로부터 유아세례를 받았다.

할아버지 방제원(方) 프란치스코는 한문에 조예가 깊은 인물이어서 천주교 서울대교구 제7대 교구장 블랑(Blanc)[3] 주교와 제8대 교구장 뮈텔 주교에게 한문을 가르쳤으며, 어린 손자 방유룡 레오에게도 한문을 가르쳤다.

어린 시절 가정에서 할아버지로부터 한문을 배우던 방유룡은 14세에 정동관립보통학교[4] 4학년에 편입했고, 졸업 후에는 미동공립간이농업학교[5]에 진학한다.

3. 신학생ㆍ사제 생활

미동공립간이농업학교를 졸업한 방유룡은, 사제가 될 뜻을 품고 1917년 17세의 나이로 용산예수성심신학교(소신학교)에 입학했다. 소신학생 방유룡은 활달한 개구쟁이였으나, 나이를 먹고 철이 들자 진지해져서 열심히 신학교 생활을 했다. 소신학교와 대신학교[6]를 모두 무사히 졸업한 후, 방유룡은 1930년 30세의 나이로 사제서품을 받아 신부가 되었다.

방유룡 레오 신부는 강원도 춘천성당의 보좌신부로 사목생활을 시작하여 황해도 장연성당, 재령성당, 해주성당과 경기도 개성성당 주임신부를 거쳐 서울 가회동성당, 제기동성당, 후암동성당 주임신부로 사목했다. 본당사목에서 은퇴한 이후에는 1955년 10월 7일 자신이 창설한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에 입회, 교구사제에서 수도사제로 소속을 바꾸고 수도회를 지도하다가 1986년 노환으로 사망하여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4. 한국순교복자수도회 설립

방유룡 신부는 신학생 시절부터 수도생활을 꿈꾸었다. 당시에는 아직 한국인이 세운 수도회가 없었고, 외국에서 한국으로 진출해온 수도회들이 몇 군데 있었다. 1888년 프랑스에서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가 최초로 한국에 진출한 데 이어, 1909년에는 독일에서 베네딕토회가 남자 수도회 최초로 진출해왔다. 신학생 방유룡은 외국에서 진출해온 수도회들을 방문해보기도 했지만, 나중에 자신이 직접 한국인의 심성에 맞는 한국적인 수도회, 즉 방인 수도회를 창설하기로 마음먹는다.

경기도 개성성당에 부임한 방유룡 신부는 성당 신자들 중 수도생활에 뜻이 있는 신앙심 깊은 젊은 처녀들을 모아 1946년 수녀회를 창설, 한국의 순교복자들을 주보성인으로 하여 '한국순교복자수녀회'라고 명명한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서 파견된 수녀들이 교육을 맡았고, 점점 규모가 커지고 발전되면서 수녀원을 개성에서 서울로 이전했으며, 1951년 교황청의 인가를 받았다. 한국전쟁 중에는 부산으로 피난을 다녀오는 등의 어려움도 겪었다.

한국순교복자수녀회의 성공을 발판으로 1953년에는 남자 수도회인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를 창설했다. 1957년에는 '한국순교복자외부회'라는 재속회를 설립했는데, 세속에서 평신도로 살면서 완화된 수도규칙을 따르는 신자들의 모임이다. 1962년 창설한 '빨마회'에는 40세 미만의 독신 여성 신자들, 특히 사별하여 혼자가 된 여성들도 입회하여 수도공동체 생활을 했다. 빨마회는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로 발전한다.

5. 한국순교복자수도회의 영성과 활동

'한국인의 심성에 맞는 한국적인 수도회 창설'이 목표였던 방유룡 신부는, 수도회의 영성과 목표에 대해서도 점성(), 침묵(), 대월(), 면형무아(無我), 완덕오계() 등의 동양적인 용어들을 많이 사용했다.

한국순교복자수도회의 영성

복자방송: 한국순교복자수녀회,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한국순교복자빨마수녀회의 공식 유튜브 채널.

3개의 수도회는 국내외에서 선교, 교육, 의료, 복지 등의 다양한 활동들을 펴고 있다.

[1] 현지인[2]서울특별시 중구 정동 덕수궁 대한문 옆[3] 한국명 백규삼()[4]서울봉래초등학교[5]서울미동초등학교[6]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신학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