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57:42

상서(관직)

尙書

1. 개요2. 고려3. 중국의 상서4. 서브컬처

1. 개요

한국에서는 고려시대 상서 6부(= 조선의 6조 격)에 설치된 장관의 관직명이며 중국에서는 청나라까지 지속된 6부 장관의 관직명. 한자는 유교 경전 상서와 같은 尙書다.

2. 고려

고려 전기 중앙 관제인 2성 6부 가운데 상서성에 설치된 행정 관청인 육부의 장관으로 관제 구조 상 조선의 육조 판서에 해당한다. 그러나 그 품계가 정2품인 조선과 달리 고려의 상서는 정3품으로 조선에 비해 품계가 떨어지고 재추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1] 이는 실제 6부의 장관은 재신들이 겸직하는 판사(判事)(ex 판이부사(判吏部事)) 였으며 상서는 그 밑에서 제반사무를 전담하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서성 직원이라도 참지정사를 겸임하면 재추회의에 참여할 수 있었다. 단 고려의 재상직 중 하나인 참지정사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규명되지 않아 상서성 직원이 참지정사를 겸임한 것인지, 참지정사가 상서성 직원을 겸임한 것인지 알 수 없다.

또한 상서성의 으뜸인 상서령 또한 종친에 임명하는 명예직 성격이기에 중서문하성의 재신이 육부의 판사를 겸하여 재추회의에서 관부의 중대사를 논의하고 상서와 중요 업무를 총괄하였다. 그렇다 하여도 관청의 제반사무는 상서가 전담하였다.

그리고 고려의 상서는 상서성의 상서좌복야와 상서우복야가 있었는데 조선의 판서는 그것이 없었다는 것도 꽤 큰 차이점이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왕권이 사건에 의한 즉위와 잇다른 침공으로 왕권이 약한 현종 초 이후로 상서 6부뿐 아니라 거의 모든 관부로 확대 되어 상서와 판사의 상호 견제를 하게 만들었다. 고려 귀족 정치가 관제로 구현되는 모습인 셈이다.

정리하자면 고려 전기의 이부상서를 업무나 관제의 구조에서 조선의 이조판서 격으로 볼 수도 있지만 고려 전기 정치 운영과 조선의 정치 운영의 성격이 다른 관계로 온전히 동일하게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다. 사상적 차이만 해도 당송제에 영향 받은 성종대의 정비(982년)와 고려 왕조 400년의 운영 노하우와 역사, 그리고 성리학을 구현한 정도전의 《조선경국전》(1394년)은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상서의 성격은 귀족 사회가 무너진 고려 중기를 거쳐 변화하였는데 최충헌이 이부, 병부의 상서를 겸직하며 문,무관의 인사를 전횡하고 '이부, 병부의 판사는 다만 검열만 할 뿐' 이게 되었다. 그러나 무신정권이 끝난 원간섭이 이후 고려 전기의 운영 방식으로 성격이 회복된다.

고려 육부의 차관은 시랑이며 조선 육조참판에 해당한다.

고려 성종 14년(995년)에 육부제 시행으로 만들어졌다. 그러다 원 간섭기 충렬왕 1년(1275년)에 관제가 격하되어 4사 판서[2]로 바뀌었고 이후 6부 상서와 6사 판서[3]를 반복하다가 여말선초에 육조 판서로 바뀌어 조선으로 그대로 이어진다.

3. 중국의 상서

중국에서 '상서'의 시작은 전한 시대 내조(內朝 황실의 업무 담당)의 한 관직이었다. 당시 외조(外朝 이 시기의 외조는 국가의 업무 담당 기구)의 수장은 승상, 어사대부, 태위를 비롯한 3공 및 9경이었다. 그러나 한 무제 시기 황제권이 크게 강화되며 황실 업무를 맡은 내조 관직의 힘이 비대해졌고, 무제가 승상을 빈번히 교체하여 외조의 힘은 감소되었다. 더욱이 상서는 군대를 맡은 대장군을 겸하여 승상의 힘을 능가하였다. 무제는 신임하는 측근인 외척을 상서에 임명하여 무제 이후 상서는 외척보정의 전권수단이 되었다. 왕망도 상서의 자리에 올라 정권을 장악하였다.

후한 시대에 이르면 내조의 힘이 막강해져 내조의 관직인 상서를 통제하는것이 전권을 쥐는 것이 되었다. 이에 녹상서사(녹상서대라고도 함)라는 관직이 생겼고, 이를 황제가 임명한 것은 전권을 내렸다는 의미였다. 남북조시대에 상서를 통제하고자 황제 측근 신하를 중서령, 시중에 임명하기 시작하였고, 수당 시대에 이르러 상서는 정식으로 외조 관원으로서 6부의 수장이 되었다.

명나라에 이르러 정3품이던 상서는 중서성이 사라지자 홍무 연간 정2품으로 올랐고, 재상이 없었기 때문에 상서가 조정의 실권을 쥐었다. 명 중기 이후 내각제가 혼란해지자 인사권을 쥔 이부상서의 자리가 권력의 핵심이 되었다.

청대는 명의 제도를 답습하였는데, 상서는 종1품으로 올랐고 만한병용의 원칙에 의해 만주족 1인, 한족 1인으로 각 2명이 임명되었다.

4. 서브컬처

은하영웅전설에 나오는 군무상서의 상서가 이 관직이다.


[1] 단, 고려시대 당시 정3품은 조선시대 당시 정3품보다 대접이 엄청 좋았다. 고려시대 당시 정3품은 장관급에 해당되는 직책들이 많았고 고려시대 정3품이면 조정에서 중진 대접을 받았다.[2] 이부와 예부를 전리사로 통합하고 공부를 아예 폐지해버렸다.[3] 이부를 전리사, 예부를 예의사, 공부를 전공사로 바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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