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06 00:32:30

외척보정

外戚輔政

1. 개요2. 기원3. 전한후한의 차이4. 사례
4.1. 전한4.2. 후한

1. 개요

황제의 부인인 황후나, 어머니인 황태후 등의 친족인 외척 세력이 정식 관직을 받아 공식적으로 황제의 정무를 보좌한다는 의미이다. 한나라를 전후한 시기로도 종종 나타났으나, 대체로 전한 무제 이후부터 등장한 한나라 만의 특징적인 섭정 제도라 할 수 있겠다.

2. 기원

고제(전한) 사후, 고황후 여씨가 정권을 장악하면서 여씨 일족이 제후왕으로 봉해지고 조정에서 전횡한 적이 있으나 이를 외척보정의 시원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후 지속되어 제도로서 외척보정이 이루어진 실질적인 기원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무제가 사망하면서 어린 소제를 정치적으로 보필하라고 명해 대사마 대장군 영상서사의 직함을 가지고 조정을 장악했던 곽광의 사례이다[1].

사실 곽광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외척보정의 사례가 아닌데, 그의 외손녀가 소제의 황후가 되긴 했으나 이 혼인은 소제가 즉위한 후에 이뤄진 것으로 외척이라서 소제를 보필하게 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가 받은 관직명은 약간의 변화는 있으나 후한까지 외척보정이 지니는 직함이 되었다. 어린 황제가 즉위하게 되면서 신뢰할 수 있는 자신의 인척에게 그 보필을 부탁하는 보정대신으로써의 의미에서 시작되었다.

3. 전한후한의 차이

전한시대부터 시작되어 후한 말까지 존속되었던 제도로서 그 내용과 의미에 있어서는 큰 차이는 없었으나 명칭 등에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약간의 변화가 있었다.

우선 전한대에는 외척보정의 공식적인 직함이 대사마 + X장군(고위무관직) (+ 영상서사)의 형태였다. 대사마는 삼공의 하나로 조정 내에서 군사권 및 군사행정의 총괄을, X장군은 막부를 설치하여 실제적으로 거느린 병사를 통한 군사력의 장악을, 영상서사는 무제 치세 이후로 이루어진 내조로의 권력집중의 핵인 상서대 통솔을 의미한다. 다만 영상서사의 직함은 몇 차례 사료상으로 나타나지 않은 경우도 있어 몇 몇 이들의 경우는 가관(加官)되지 않았는지도 의심되지만, 그 직함과 상관없이 같은 권한을 행사했으리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후한대에는 X장군 + 녹상서사의 직함으로 변화하였는데, 이는 대사마가 태위로 명칭을 바꾸고, 삼공이 유명무실화되면서 외척보정이 임명될 필요가 없었으리라고 생각된다. 녹상서사는 영상서사의 명칭이 개칭된 것인데, 실제 권한의 행사에서 전한의 영상서사와 대차는 없었으리라 보인다. 또한 후한의 외척보정은 사료상으로도 녹상서사를 반드시 겸하였다.

또한 전한에서는 성년으로 충분히 친정할 수 있었던 황제들도 자의에 따라 자신의 부인인 황후의 일족이나 어머니인 황태후의 일족을 외척보정으로 임명하여 자신의 친위세력으로서, 친정의 기반으로 삼았던데 반해, 후한에서는 장제(후한) 이후로 어린 황제가 즉위하고, 황태후가 임조칭제하는 경우가 많아서 황제의 의중과는 상관없이 즉위할 때부터 황태후의 일족이 외척보정으로 이미 임명되어서 황제가 환관들과 결탁, 친위쿠데타를 통해 권력을 탈환하는 일이 잦았다.[2]

4. 사례

4.1. 전한

4.2. 후한



[1] 곽광의 사례는 후일 전근대 일본의 역직인 간파쿠의 유래가 된다.[2] 물론 후한 시대에도 하진과 같이 황후의 일족으로서 전한 시대같이 보정하는 경우도 있었으나, 대체로 황태후의 일족이 외척보정으로서 권력을 장악하였다.[3] 양제 사씨는 선제의 할머니다.[4] 소의 부씨는 애제의 할머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