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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859년 |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 | |
사망 | 불명 |
본관 | 강릉 함씨 |
서훈 | 건국포장 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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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2. 생애
1859년생이며 경기도 포천군 영중면 양원리 출신이다. 그는 1919년 3월 전국에서 3.1 운동이 전개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유중식(兪中植)·조훈식(趙薰植)·조계식·최학돌(崔鶴乭) 등과 함께 만세운동 계획을 추진했다. 이들은 거사일을 3월 30일로 정하고 군중이 많이 참가하게끔 만세시위의 참여를 촉구하는 선전문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선전문을 비밀리에 인쇄하여 각처에 배포하였다. 또한 이들은 만세시위에 필요한 선언서와 태극기를 밤새워 인쇄·제작하면서 거사에 만전을 기하였다.3월 30일, 그들은 신북면사무소 앞에 모여 군중 천여 명을 통솔했다. 함병식은 이들과 더불어 독립선언식을 거행하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을 전개하였다. 그러던 중 시위를 저지하는 일제 경찰의 탄압을 받아 시위대는 해산되고, 그는 현장에서 체포되었다. 이후 1919년 5월 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아 공소하였으나 6월 6일 경성복심법원과 7월 10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함병현에게 건국포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