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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指揮者 / Conductor오케스트라 등에서 연주의 시작과 끝, 템포, 리듬을 통일할 뿐만 아니라, 다이나믹, 아고긱,[1] 프레이징을 비롯한 음악적 표현에 필요한 모든 해석을 연주자에게 지시하여 작품을 재창조하는 음악가이다.
관현악이나 합창과 같은 집단적 연주에 대해 몸동작을 통해 통일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지휘자는 음악 이론을 알아야 하는 것은 말하기도 민망하고, 모든 악기의 특징과 연주 방식에 대해 두루두루 다 잘 알아야 한다. 영화로 가정하면 감독과 유사한 포지션이다.
가장 막강한 권한을 가진 만큼 막중한 책임감과 지식이 필요한 직업으로, 지휘의 대상에는 관현악, 합창, 중주(합주), 협주곡, 교향곡, 오페라, 발레, 뮤지컬 등이 있다.
보통의 대중매체나 미디어에서 지휘자를 비중 있게 다루는 경우도 흔치 않고, 또한 무대 위 중앙에 서있음에도 혼자 등을 돌리고 있어서 별로 눈에 들어오지 않는 포지션이다 보니 일반인에게는 가장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생소한 존재이다. 하지만 상술하였듯이 지휘자의 존재의 중요성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2. 역사
중세시대에 손으로 선율의 움직임을 지시하는 카이로노미나, 르네상스시기의 탁투스를 메트로놈적으로 나타내는 지휘법의 시대를 거쳐 17, 18세기에는 통주저음을 맡는 쳄발로 주자나 오르가니스트, 뒤이어 콘서트마스터가 지휘자의 역할을 겸임했다. 이때까지는 챔버 오케스트라에 맞춘 곡들이 대다수였기 때문에 이러한 것이 가능했다. 챔버 오케스트라 등에서 악장이 몸을 흔들면서 연주를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이다.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변화되기 시작한 것은 베토벤 시기부터이다. 영웅 교향곡의 규모를 보면 얼추 이해가 될 것이다.[2] 연주하는 사람이 수십명을 넘어 100명 단위가 넘어간다면 다른 것을 하면서 그들을 컨트롤하는게 가능이나 하겠는가. 이렇게 편성이 커지면서 앙상블을 맞추기 위해 지휘를 할 사람이 필요했고 이것이 지휘자의 시초였다. 초기의 지휘자는 전문직업이 아니라 작곡가나 연주자인 리더가 그 역할을 맡았다. [3]
초기의 지휘자는 지팡이 같은 나무 막대기로 바닥을 쿵쿵 치며 박자나 신호를 보냈지만, 서정적인 음악의 경우에는 방해가 되고, 지휘자의 발등을 찍을 수 있어 위험했다. 실제로 장 바티스트 륄리는 이 상처로 인해 사망했다.
이러한 방법들은 좋지 않았지만, 단순히 손만 흔들기에는 50~100명 되는 인원이 보기 힘들었기에 어쩔 수 없이 사용하였다. 본격적으로 지휘봉을 사용하는 지휘자가 출현한 것은 19세기 초인데, 최초의 지휘자 중 1명인 멘델스존이 최초로 지휘봉을 사용한 지휘자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멘델스존이 사용한 지휘봉은 오늘날 사용하는 가는 지휘봉과는 달랐고, 굵은 나무막대기에 가까운 것이었다.
시간이 흐를 수록 지휘의 테크닉과 역할이 세분화되고, 4~5시간에 이르는 지휘를 하기에는 작곡가의 체력과 운동신경이 받쳐주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이후 19세기 후반부터 직업적인 지휘자가 출현하였으며, 작품의 해석을 중심으로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한스 폰 뷜로가 최초의 직업적 지휘자로 꼽히지만, 엄밀히 말해 뷜로는 최초의 작곡을 하지 못하는 직업 지휘자라고 말하는 것이 옳다. 뷜로 이전에 19세기 중반부터 펠릭스 멘델스존, 로베르트 슈만, 리하르트 바그너 등이 직업 지휘자로 명성을 날리며 활발히 활동했다.
이들을 비롯해 당시 지휘자들은 자신이 소속된 극단을 위해 작곡을 하는 것이 기본적인 소양이자 업무였다. 뷜로는 작곡을 하지 않는(엄밀히 말해 못하는) 직업 지휘자의 첫번째 케이스일 뿐이다. 뷜로 역시 스승인 바그너처럼 지휘자보다 작곡가로 더욱 성공하기를 원했고, 실제로 작곡도 했지만, 작곡가로서 변변한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기에 다른 사람들이 전업 지휘자로 여기게 된 것이지 뷜로 본인은 스스로를 스승과 마찬가지로 작곡가 겸 지휘자로 여겼다.
지휘자의 역사 및 적나라한 뒷이야기 등을 보고 싶으면, 노먼 레브레히트가 쓴 '거장 신화'를 참조하면 좋다. '지휘 권력'이란 표현을 사용하면서 지휘자라는 종족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3. 역할
지휘자의 역할은 악단에서 곡을 재창조해내서 자신의 곡으로 그것을 연주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악보를 재해석한다는 것은 지휘자 자신이 그 곡에 통달했다는 것이다.지휘자는 악보를 입수하여 바로 곡의 형태 분석에 들어간다. 일단 크게 형식 분석[4]부터 시작하여 주제 분석, 화성 분석, 그리고 각 안에서의 세세한 부분까지 분석한다.
분석을 마친 후에는 암보를 한다. 이후, 악단과 함께 리허설을 하며 자신의 해석을 악단이 완벽하게 연주할 때까지 연습시킨다.[5]
악단의 수준과 지휘자에 대한 이해도에 비례하여 지휘자가 명령을 내리는 빈도가 달라지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프로 오케스트라에서는 조금 더 따뜻한 음색이 좋겠다는 말 한 마디에 오케스트라의 음색이 바뀌고, 손짓 혹은 눈빛만으로도 바뀐다.
물론 예외는 많다. 멩겔베르크는 악단에게 일장 연설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고, 카라얀은 자기가 원하는 소리가 나올 때까지 단원을 개인 단위로 질책하며 리허설을 진행했으며, 토스카니니는 음이 틀릴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손목시계를 던져가면서[6] 리허설을 진행했다. 첼리비다케의 경우에는 대놓고 비꼬면서 리허설을 진행한다.
현실적으로 현대 프로 오케스트라는 리허설 시간이 짧은 편이라 지휘자의 스타일에 따라서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도 시간적 제약이나 단원들의 자존심 때문에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반면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는 상대적으로 연습시간이 많고, 단원들이 학생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지휘자가 신변잡기적 이야기를 하면서 연습시간을 때우는 경우도 많다.
3.1. 지휘자의 필요성
결론부터 말하면 지휘자가 필요없다는 말은 일부만 맞는 말이다. 사실 오케스트라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지휘자가 왜 필요한지 의아해 하기도 한다. 연주영상 등을 보면 연주자들은 하나같이 지휘자를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이렇게 신경쓰지 않을 수 있는 이유는 그 경지에 도달할 때까지 지휘자가 연주자들을
오케스트라 연습에 있어서 자신의 해석에 맞게 오케스트라의 음색, 박자, 음향 등 모든 것을 조절하는 일이 바로 지휘자의 역할이다. 똑같은 악보를 보더라도 지휘자마다 갖가지 해석의 차이가 있으므로, 같은 곡을 동일한 관현악단이 연주하더라도 지휘자가 누구냐에 따라 결과물[7]은 판이하게 달라진다.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극 중 강마에가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너희들은 내 악기야! 그러니까 시키는 대로 짖으란 말이야!"라며 폭언을 퍼부은 건 다소 극단적이지만, 틀리지는 않은 예시라고 볼 수 있다.
연주 중만 놓고 보면, 지휘자를 신경쓰기보다는 보면대에 놓여진 악보를 보며 자기 연주에 집중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프로 연주자들의 경우에는 지휘자 없이도 연주가 어느 정도 가능하고, 일부 챔버 오케스트라의 경우에는 아예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경우도 있다. 스포츠에서 시합 중에 팀 코치나 감독이 부재한 상황의 느낌을 생각하면 된다.
허나 필하모닉 또는 심포니 오케스트라 정도의 규모에서는 지휘자 없는 연주란 어렵다. 수십 명의 연주자들이 넓게 펼쳐모여 연주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연주자들은 지금 자신들이 연주하고 있는 음악이 관객석에 어떻게 들리고 있을지 파악할 수 없기 때문. 연주자의 귀에는 자신과 자신 주변의 악기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다.
협주곡의 경우, 곡을 해석하는 데에 협연자의 해석이 더 비중을 많이 차지하는데, 당연히 연습도 협연자의 해석에 맞추어 연습한다. 그러나 협연자와 아무리 열심히 연습하더라도 연주 당일 협연자의 컨디션에 따라 연주가 연습 때와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오케스트라가 달라진 협연자의 연주에 맞추어 조화를 이루는 데에 지휘자가 큰 역할을 하게 된다. 노다메 칸타빌레에서 노다메의 데뷔 무대는 비록 조금은 극단적인 상황이지만 좋은 예시라고 할 수 있겠다.
해당 영상은 사이먼 래틀이 베를린 필하모니에서 베를린 소재 여섯 군데 학교에서 활동하는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들을 한데 모은 자리에서 학생들의 연주를 "훈련" 시키는 모습이다.
연주곡은 페르 귄트 모음곡 1번 중 제 4곡 In the Hall of the Mountain King인데, 연주 횟수를 거듭할수록, 아마추어인 학생들의 실력이 향상되는게 확실히 느껴질 것이다. 이는 지휘자가 어떤 위치에 있는지 알려주는 좋은 예시이다. 학생들이 알아 듣기 쉽게 친절히 설명해 주는 것은 덤.
1분 36초에서 먼저 학생들끼리 연주했다가, 5분 30초부터 래틀의 지적을 받고, 19분 23초부터 완성된 연주가 들린다. 이 역시 지휘자가 연습에서 공헌을 하는 예시라고 할 수 있다.
4. 기본 소양
지휘자는 여러 연주자나 성악가들을 보듬어 음악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많은 것을 알아야 한다.사교성, 리더십, 행정 감각, 정치력을 비롯한 수많은 외적 요소를 논외로 쳐도, 기본적으로 다음과 같은 능력이 있어야 한다.
4.1. 기본 음악 이론과 악곡 분석, 관현악법
물론 지휘자도 실제 연주만 안할 따름이지 음악가이므로, 기본 음악 이론은 연주자 이상으로 알아야 한다. 지휘자는 단원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음악을 만들어야 한다. 단원들도 충분히 교육받은 음악인들이라,[8] 이 부분은 더 세게 저 부분은 좀 더 느리게 등등 각자 선호하는 해석이 있다.이러한 단원들을 설득해 자신의 해석으로 이끌어야 하는데 기본적인 음악 이론을 모른다면 연주자를 설득할 수 없다. 피아노(p)가 무엇인지, 4/4박자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음악을 지휘한다는 것은 튼튼한 다리가 있다고 K리그에서 축구 선수로 활약할 수 있다는 것 만큼이나 심각한 착각이다.[9]
일반적인 독주곡이나 실내악, 성악곡과 달리 관현악곡은 상당히 다양한 악기가 복잡하게 얽히고설키는 곡인 만큼, 그 음향의 소용돌이 속에서 중요한 악구와 그렇지 않은 악구, 어느 악기나 파트가 부각되거나 보조 역할을 할 지에 대한 판단, 음악이 흘러가는 전체적인 흐름 등을 장악할 수 있는 방법은 악곡 분석 밖에 없다. 물론 고전적인 소나타 형식이나 세도막 형식, 론도 형식에 대한 이해 뿐 아니라 악기 별로 주어지는 세세한 프레이즈, 연주법, 셈여림 등 수많은 변수에 대한 제어도 이 분석 과정 없이는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
관현악 지휘자의 경우 관현악법도 필수적으로 익혀야 하는 분야다. 악기의 음역이나 기본적인 연주법, 음향의 특색, 다른 악기와 어우러지는 조화 등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면 제대로 된 지휘자가 될 수 없다. 이 때문에 작곡을 전공하던 사람이 지휘로 방향을 바꿀 경우 이 방면에서는 좀 더 유리할 수도 있다.
4.2. 지휘법 (바톤 테크닉)
이타이 탈감의 TED 강연.[10]
적어도 초기 낭만 시대까지는 지휘자라는 직책이 전업직이 아니었고, 보통은 연주자나 작곡가가 부업 혹은 겸업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제대로 된 지휘법에 대한 이론이 정립되기 힘들었다.
이러한 현상은 지휘자라는 직업이 고정되기 시작한 19세기 후반에도 예외는 아니었고, 20세기 들어서도 지금 보면 저게 지휘자인지 발작 중인 환자인지 모를 괴상한 지휘법으로 악단을 이끄는 이들이 꽤 여럿 있었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가 좋은 예시.
하지만 곡의 구성이 복잡해지면서 챙길 것이 예전보다 더 많아지고 까다로워진 현대에 와서는, 명확한 지휘법을 갖추고 있어야 제대로 된 지휘자로 대접받을 수 있다. 대개 지휘봉을 쥔 오른손으로는 기본 박자를 지시하고, 왼손으로는 셈여림이나 악기의 도입 유도, 프레이즈의 시작과 끝 등을 표현하기 때문에 가능한 한 양손이 같이 노는 일이 없어야 한다.
그리고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의 봄의 제전 같이 미친듯한 변박크리가 작렬하는 곡의 경우 양손으로도 모자라는 경우까지 있는데, 이 때문에 시선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다. 실제로 아르투르 니키슈 같은 지휘자는 대부분의 지시를 눈으로 주었다고 하며, 심지어 아예 손을 젓지 않아도 눈빛만으로 소통이 가능했을 정도라고 한다. 프리츠 라이너의 경우에는 복잡한 박자의 곡을 지휘할 때 박자가 바뀔 때마다 신체 각 부위를 지정해 그 쪽을 강조하면 단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리허설을 진행하기도 했다.
물론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처럼 두 눈을 감고 팔을 움직여 지휘하는 이들도 있었다지만, 그거야 악단을 확실하게 장악할 수 있는 능력과 연륜이 쌓여야 한다.
지휘봉의 경우에는 합성 섬유, 나무, 금속 등 다양한 재료로 제조되며, 손에 쥐는 끝부분에는 쥐기 편하도록 코르크나 플라스틱, 나무 등으로 둥그렇게 만든 부분이 덧붙는 경우가 많다. 대개 소편성 곡을 지휘할 때는 길이가 짧은 것을, 대편성 곡을 지휘할 때는 긴 것을 사용한다. 규칙으로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만, 지휘봉은 왼손잡이든 오른손잡이든 상관 없이 오른손에 쥐는 것이 보통이다. 다만 작곡가로 유명한 크시슈토프 펜데레츠키 같이 왼손에 쥐고 지휘하는 왼손잡이 지휘자들도 종종 있다.
지휘봉의 경우 보통 한두 개만 지참하는 지휘자들이 많은데, 한 개 정도 여분으로 더 준비해 지휘자 맨 오른쪽에 착석하는 비올라나 첼로 주자의 보면대에 끼워두고 무대에 오르는 이들도 있다. 지휘 도중 얇은 지휘봉이 보면대 등에 잘못 맞아 부러지는 경우가 종종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1978년 9월에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내한했던 로린 마젤이 공연 중 지휘봉을 부러뜨리자, 비올라 차석 주자가 재빨리 여분의 지휘봉을 준비해 마젤에게 건네기도 했다.
또 지휘봉을 쓰지 않는 지휘자들도 20세기 후반 들어 자주 보이고 있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배출된 합창 지휘자들의 경우 이런 경향이 대세고, 관현악단과 협연하는 공연이 아닌 경우 거의 맨손 지휘만 하는 것이 보통이다. 비슷한 맥락인지, 합창단과 관현악단이 협연하는 미사나 레퀴엠 같은 종교음악의 경우에도 지휘봉을 쓰며 지휘하는 지휘자가 아예 맨손으로 무대에 서서 지휘하기도 한다. 카라얀이나 크리스티안 틸레만 같은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관현악 지휘자의 경우에도 소편성인 곡이나 느린 대목에서 지휘봉을 쓰지 않고 맨손으로 지휘하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아예 지휘봉을 전혀 쓰지 않고 맨손 지휘만 하는 이들도 있는데,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의 러시아 지휘자 바실리 사포노프의 경우 원래 지휘봉으로 지휘하다가 어느 날 깜빡하고 지휘봉을 놓고 온 바람에 맨손으로 지휘하던 것이 되레 자신의 개성처럼 각인되어 '맨손의 지휘자' 가 되기도 했다.
사포노프 이후로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게오르크 틴트너, 피에르 불레즈 등이 맨손 지휘자로 이름을 남겼고, 키릴 콘드라신의 경우 활동 초기에는 지휘봉을 쓰다가 중기에 맨손으로, 다시 후기에는 지휘봉으로 지휘했다. 오토 클렘페러의 경우 1950년대까지는 지휘봉을 계속 사용했지만, 이후 화상과 고혈압 후유증 등으로 건강이 악화되자 활동 후기에는 지휘봉 없이 지휘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일본의 오자와 세이지도 1990년대 중반 이후로는 지휘봉을 쓰지 않고 맨손으로 지휘하고 있다. 발레리 게르기예프 같은 경우에는 그냥 지휘봉도, 또 맨손도 아닌 이쑤시개를 엄지와 검지에 쥐고 지휘하는 굉장히 독특한 지휘법을 구사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4.3. 총보 독법 (스코어 리딩)
지휘자가 악기 연주를 겸하지 않는 이상, 무대에서 연주자 역할을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적어도 사무실에서는 꼭 가까이 해야 할 악기가 있는데, 바로 피아노다. 절대 다수의 음대나 음악원에서 지휘자에게 필수적으로 요구하는 악기 연주법이 피아노 연주인데, 따로 피아노용으로 편곡된 악보가 아니라 관현악의 모든 파트가 기록된 총보(영어로는 풀 스코어)를 주고 즉석에서 피아노로 연주하도록 하는 것이 이 총보 독법이다.당연히 수십 종류나 되는 악기를 별도의 편곡 작업 없이 즉석에서 두 손의 연주 만으로 축약해서 들려줘야 하는데, 게다가 콘트라베이스나 콘트라바순, 튜바 같이 실제 연주 음보다 한 옥타브 높게 표기된, 반대로 피콜로 같이 한 옥타브 낮게 표기된 악기라든가 악보에 적힌 음과 실제 연주되는 음이 다른 클라리넷, 호른, 트럼펫 같은 이조악기, 보통 높은음자리표와 낮은음자리표만 사용되는 피아노 악보에서는 거의 눈에 띄지 않는 가온음자리표를 쓰는 비올라나 테너 트롬본 같은 악기도 그런 변수를 머릿속에서 재깍재깍 계산해서 피아노로 연주할 줄 알아야 한다.
여기에 오페라 지휘자 같은 경우에는 한 술 더떠서, 아리아 같은 부분의 총보를 주고 관현악 부분을 피아노로 연주하면서 성악부의 노래를 동시에 부르도록 하는 과제가 추가로 주어진다. 물론 위의 관현악곡 총보 독법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적어도 선율과 반주의 구분이 명확한 이탈리아 오페라 류는 무난하게 소화할 수 있겠지만, 바그너나 슈트라우스, 드뷔시 같이 관현악 파트가 복잡하고 정교하게 구성된 곡이면 욕부터 나온다.
칼 리히터나 다니엘 바렌보임, 블라디미르 아슈케나지, 미하일 플레트뇨프, 머레이 페라이어, 정명훈, 김대진 같은 이들 처럼 유명 피아니스트 혹은 건반악기 연주자가 지휘자를 겸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인데, 전업 피아니스트나 피아노 전공자는 아니더라도 웬만한 지휘자들은 기본적으로 일정 수준급의 피아노 연주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볼프강 자발리슈나 제임스 레바인, 안토니오 파파노,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 같이 뉴비 시절부터 오페라단이나 오페라극장의 연습 피아니스트로 시작해 오페라 무대에서 구르며 실력과 명성을 쌓은 지휘자들의 경우, 지휘 외에 가곡 반주나 실내악 공연의 피아니스트로도 나름대로 탁월한 실력을 보여주기도 한다.
유럽과 미국의 성가대 지휘자들 중에도 오르가니스트 출신이 많은 편인데, 대개 성가대 지휘자가 따로 있는 한국과 달리 이 지역 교회나 성당은 지휘자가 성가대의 합창을 리드하는 게 아니라 오르가니스트가 연주하는 반주에 성가대가 연주를 맞추는 식으로 예배를 보기 때문에 오르가니스트가 합창 지휘자를 겸하는 경우가 많다.
4.4. 암보
지휘자에게 총보는 필수요소지만 이걸 아예 머릿속으로 몽땅, 혹은 기본적인 흐름을 외워서 지휘하는 스킬이다. 단순히 악보 자체를 일일이 외우는 것은 한스 폰 뷜로,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디미트리 미트로풀로스나 빅토르 데 사바타 같은 사기급의 암기력 본좌들 정도만 가능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암보 능력은 우선 악곡 분석과 총보 독법 스킬을 통해 중요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추려 도표화하거나 자신만의 특수 기호 등을 만들어 외우는 등의 기술로 습득할 수 있다. 암보에 능숙해지면 단순명쾌한 고전 시대의 곡들 뿐 아니라 복잡한 구성과 음향을 가진 후기 낭만~현대곡까지 악보 없이 지휘할 수 있다.물론 지휘자에 따라서는 암보라는 것이 기억력에 의존하기 때문에, 이 능력이 떨어질 경우 악단에 대한 통제력을 놓칠 수 있다고 여겨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한스 크나퍼츠부슈는 모든 연주곡의 총보를 보며 지휘했는데, 어느 기자가 왜 그러는 지 이유를 묻자 "난 악보를 읽을 줄 아니까."라고 답했다고 한다.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는 암보 지휘를 하기는 했지만, 공연의 모든 곡을 암보로 지휘하는 것은 그저 암기력 과시용 허세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게오르그 솔티의 경우 모든 곡을 지휘할 때 반드시 총보를 지참하고 무대에 섰다.
하지만 콩쿠르를 통해서든 음대나 음악원을 통해서든, 현재 양성되는 지휘자들은 기본적으로 암보하는 법을 익힐 수밖에 없다.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암보 자체가 '악보 없이도 나는 곡을 다 이해할 수 있다' 는 일종의 과시 행위로 여겨지기 때문이기도 하고, 지휘자 밑에서 연주하는 단원들의 입장에서도 '아, 저 지휘자는 악보를 외울 정도로 곡에 통달해 있구나' 는 식으로 일종의 신뢰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는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모든 파트가 다 기록된 총보가 아닌 축약형 총보를 사용해 악보 넘길 횟수를 줄이는 지휘자도 있다. 그리고 본 공연이 아닌 리허설 때는 모든 곡을 연습할 때 총보를 지참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4.5. 그 외
악기 연주나 작곡, 편곡 기술도 필수는 아니지만, 있으면 좋다. 가끔 깜짝쇼 식으로 지휘자가 악기를 연주하면서 악단을 이끌면 지휘대에서 보여준 것과 다른 의미의 쇼맨십을 발휘할 수도 있고, 또 여러 악기에 대한 연주법을 익히면 그 악기들에 대한 실질적인 이해도를 증진시켜 리허설을 진행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지휘자는 수많은 악기들의 어우러진 음 사이에서 어느 부분을 어떻게 바꿔야할지 알아야하므로 대부분의 지휘자들은 여러 종류의 악기에 숙련도가 높아야 한다.실제로 지휘자라는 직업이 제대로 정립되기 이전이었던 19세기 중반의 독일에는 관현악단에서 연주하는 거의 모든 악기의 연주법을 익혀야 하는 슈타트파이퍼(Stadtpfeiffer)라는 5년제 수업 과정이 있었고, 대부분의 지휘자는 이 과정을 이수해야 했다. 지금도 이 정도는 아니지만 관현악단에서 연주 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지휘자로 전직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는데, 연주자로서 관현악 활동을 했다는 경험이 뒷받침되어 지휘 경력에도 플러스 요인이 될 수 있다.
취주악단 지휘자들의 경우 대부분 관악기나 타악기 연주자였다가 전직하는 경우가 상당히 많은데, 특히 군악대 지휘자의 경우 악단원부터 시작해서 지휘와 작곡/편곡을 배우고 부임하는 것이 거의 기본이 되어 있다. 군악대 뿐 아니라 학교 동아리 같은 아마추어 취주악단의 경우에도 일반 공연 외에 야외에서 행진하며 공연하는 마칭밴드 역할도 하기 때문에, 단원으로서 참가해보지 않았다면 지휘자로서 마칭 공연을 제대로 해낼 수 없기 때문이다.
건반악기를 제외한 악기 연주자였다가 지휘자가 되거나 연주자 겸 지휘자로 투잡을 뛴 유명인들로는 아르투르 니키슈, 샤를 뮌슈, 라파엘 쿠벨릭, 빌리 보스코프스키, 클라우스 텐슈테트, 네빌 매리너, 로린 마젤, 구스타보 두다멜, 앨런 길버트(이상 바이올린), 프란츠 콘비츠니, 바츨라프 노이만, 만프레드 호네크(이상 비올라),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존 바비롤리,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장한나(이상 첼로), 세르게이 쿠세비츠키, 주빈 메타(이상 콘트라베이스), 파트릭 갈루아(플루트), 루돌프 켐페, 바츨라프 스메타첵, 하인츠 홀리거(오보에), 콜린 데이비스, 오스모 벤스케(이상 클라리넷), 제러드 슈워츠(트럼펫), 실뱅 캉브를랭, 크리스티안 린트베리(트롬본), 사이먼 래틀, 아드리앙 페뤼숑(타악기) 등이 있다.
성악가 역시 지휘자로 전직하거나 투잡을 뛰는 경우도 있는데, 대개 전공을 살려 합창 지휘자가 되는 경우가 많지만 개중에는 관현악 지휘자로 가는 경우도 있다. 페터 슈라이어는 합창 지휘자로,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와 호세 쿠라, 나탈리 스튀츠망, 바바라 해니건은 관현악 지휘자로, 플라시도 도밍고는 오페라/관현악 지휘자로 활동했거나 활동하고 있다.
악곡 분석이나 관현악법 같은 분야도 작곡/편곡과 밀접한 연관이 있기 때문에, 몇몇 지휘자들의 경우 부업으로 작곡 활동을 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있다. 심지어 작곡과 지휘를 같은 비중으로 놓고 음악 활동을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이 경우 흔히 상당히 큰 비용 부담 문제 때문에 연주하기 쉽지 않은 자작 관현악곡을 한결 쉽게 무대에 올릴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작곡까지는 아니더라도 편곡도 할 수 있으면 꽤 쏠쏠한 스킬인데, 대중적인 음악회에서 가요라든가 뮤지컬 넘버를 관현악 반주 혹은 관현악 메들리로 편곡해 올리거나 앙코르를 직접 편곡한 곡으로 선곡해 소개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김정일이 아예 지휘자를 피아노 연주도 되고 작편곡 실력도 되는 인물로 뽑는 것이 좋다고 친히 '교시' 를 내려주는 바람에, 웬만한 지휘자들이 1인 3역을 할 수 있는 엘리트로 뽑힌다고 한다.
5. 직책에 따른 분류
유럽이나 미국 같이 클래식 음악 역사가 수백 년 가까이 되는 곳에서는 지휘자도 여러 직책으로 분류되는데, 특히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의 오페라극장이나 발레단 같은 경우 지휘자 등급이 상당히 세분화되어 있다.- 코레페티토어 (Korrepetitor/Korrepetitorin): 성악가나 합창단, 발레단 연습 때 관현악 대신 피아노로 반주하는 연습 피아니스트. 엄밀히 따지면 지휘자는 아니지만, 갓 음대나 음악원을 졸업한 뉴비 지휘자 지망생들이 오페라/발레 지휘자로서 경력을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거쳐가는 포지션이므로 입문 단계에 속한다. 이 기간 동안 성악진의 앙상블을 미리 다듬고 가수들의 딕션과 호흡, 프레이징 등을 상임 직책 지휘자들의 의향에 맞게 세세하게 체크하는 역할도 한다. 발레 코레페티토어의 경우 초벌 안무에 적합한 템포를 택해 반주하며 무용수들의 춤을 미리 연습시킨다. 이 때문에 피아노 반주자의 역할 뿐 아니라 공연하는 레퍼토리의 언어, 안무, 음악적 분석에도 숙달되어 있어야 한다.
- 카펠마이스터 (Kapellmeister/Kapellmeisterin): 악장 혹은 악단장이라는 뜻인데, 코레페티토어에서 올라오거나 코레페티토어를 겸하며 본격적으로 지휘봉을 잡게 되는 단계다. 대개 영어권의 부지휘자(assistant conductor)에 해당하며, 주로 성악진/합창단의 앙상블/합창이나 관현악단의 합주 연습을 담당하고 본 공연 무대에는 거의 올라오지 않는다. 다만 선임자들이 병환 등의 응급 상황으로 출연하지 못하게 될 경우, 혹은 가벼운 오페레타 상연이나 발레 갈라쇼, 성악가들의 리사이틀, 합창단 공연 등 부수적인 공연 등에서 무대에 오르는 경우도 간혹 있다. 한국에서는 단어 자체가 간지가 나기 때문인지 이 직책을 상임 지휘자처럼 오독해서 경력위조 문제까지 불거지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다만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경우 상임 지휘자를 카펠마이스터라고 부르는데, 이는 해당 악단이 라이프치히 오페라극장의 오페라 상연 때 전속 관현악단으로 활동하며 오페라극장 지휘자 등급 체계를 같이 쓰던 시절의 잔재이므로 게반트하우스 카펠마이스터라고 하면 일반적 카펠마이스터보다 훨씬 높은 음악총감독 등급으로 분류된다.
- 제1카펠마이스터 (Erster Kapellmeister/Erste Kapellmeisterin): 규모가 큰 대도시 오페라극장들의 경우 카펠마이스터도 등급 없는 일반 카펠마이스터부터 1~2 같은 숫자가 붙는 카펠마이스터 지휘자들까지 여러 명이 소속되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런 곳에서는 숫자 붙는 카펠마이스터가 일반적 카펠마이스터보다는 더 등급이 높고, 직위에 붙는 숫자가 작을 수록 등급도 올라간다. 대개 영어권의 전임/전속 지휘자(resident conductor)에 해당한다. 성악진이나 무용수, 기악(관현악)의 개별 연습이 끝나면 둘을 어느 정도 합치되도록 다듬는 역할을 주로 하고, 가끔 본격적인 프로덕션의 오페라/발레 공연도 지휘한다. 다만 이 직책도 상임 지휘자라는 직책에는 좀 모자란 위치다.
- 음악총감독 (Generalmusikdirektor/Generalmusikdirektorin): 약칭 GMD. 여기까지는 올라와야 영어권의 상임 지휘자(chief conductor) 또는 수석 지휘자(principal conductor) 급으로 대접받는다. 오페라/발레 공연의 모든 음악적 과정을 총괄하고 책임지는 직책으로, 코레페티토어의 반주로 성악가들이나 발레단, 합창단을 연습시킬 때부터 무대 장치와 의상까지 다 갖추고 실제 공연처럼 연습하는 드레스 리허설(총연습), 본 공연 무대까지 세세히 관여한다. 다만 짬이 높을 수록 드레스 리허설 이전의 과정은 자신의 밑에 있는 카펠마이스터나 제1카펠마이스터에게 일임하고 드레스 리허설부터 지휘봉을 잡고 조정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코레페티토어~제1카펠마이스터가 현장에서 구르고 있는 동안 음악총감독은 놀고만 있는 건 아니고, 주로 연출가나 안무가, 단장, 극장장 등과 공연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을 놓고 협의하며 디테일을 맞춘다거나 다른 단체에서 객원으로 지휘하거나 하는 경우가 많다.
이외에 왕정/제정 시대에는 왕실이나 황실에서 하사하는 궁정 악장(Hofkapellmeister) 같은 더 높은 직책도 있었지만, 군주제가 붕괴된 후에는 사라졌다. 나치 독일 시대에는 요제프 괴벨스의 선전성 휘하 제국 음악국(Reichsmusikkammer)에서 심의해 슈타츠카펠마이스터(Staatskapellmeister. 직역하면 국가 지휘자)라는 최상위 칭호가 주어지기도 했다. 오이겐 요훔,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등이 이 칭호를 받았고, 이들은 전후에도 독일 지휘계의 주역으로 활약했다.
연주회 전문 관현악단이나 합창단, 취주악단을 담당하는 지휘자도 비슷한 등급으로 분류할 수 있다.
- 상임/수석지휘자 (chief conductor/principal conductor): 오케스트라의 예술적 대표자라 할 수 있는 직책이다. 상임지휘자는 보통 악단의 대표 공연인 정기연주회의 1/3 이상을 지휘하게 되며, 악단 행정진과 함께 단원들의 고용과 해촉, 협연자와 연주 곡목 선정, 객원 지휘자 선정과 초빙, 연주 스케줄 조정 같은 행정 업무에도 관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게 된다. 구체적인 권한과 의무는 오케스트라별, 계약 조건에 따라 상이하다.
- 음악 감독/예술 감독 (music director/artistic director): 권한과 위치는 상임/수석지휘자와 비슷하며, 상임지휘자와 많이 혼용되고 있는 명칭이다. 모든 오케스트라에 있는 직책은 아니며, 없는 경우도 많다. 일반적으로 상임지휘자와 비슷한 역할과 권한을 가지지만 상임지휘자에 비해 행정적 권한이 조금 더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상임지휘자보다 조금 더 우위에 있는 직책으로 여기기도 하며, 일본과 한국 관현악단에서 이런 경향이 강하다. 또 일부 오케스트라에서는 음악 감독과 상임지휘자를 따로 두는 경우도 있는데, 역시 서구보다 일본과 한국에서 이런 예가 더 흔하다. 상임지휘자와 음악 감독이 따로 있는 경우 지휘자가 아닌 행정전문가가 음악 감독이 되는 경우도 있으며 음악 감독을 상임지휘자보다 상위 직책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러나 상임지휘자와 음악 감독을 따로 두는 것은 흔한 예는 아니다. 최근에는 '음악 감독 겸 상임 지휘자' 혹은 '예술 감독 겸 수석 지휘자'같이 양대 직책을 동시에 포괄하는 공식 직함을 가지는 경우도 많다. 감독이라는 직함 대로 악단의 거의 모든 예술/행정 분야에서 전권을 행사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인물임을 어필할 수 있기에 지휘자들도 이 직함을 선호하는 경우가 있다. 일례로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경우 전임자에 비해 권한이 많이 축소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가 아닌 예술 감독(Artistic Director)으로 불러달라고 인터뷰 때마다 강조하곤 했다. 사실 아바도가 그 전에는 보편적이지 않았던 음악 감독/예술 감독이라는 직책을 세계적으로 유행시키는데 한 몫을 했다. 그러나 음악 감독이라 해서 행정 분야의 전권을 가지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실질적으로 행정 분야의 운영에 대해서는 단장, 대표이사 같은 경영진의 또 다른 책임자와 협의하며 진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 전임/전속 지휘자 (resident conductor/conductor-in-residence): 일반적으로는 보기 드문 직책이며, 일본이나 한국에서 종종 존재하는 직책이다. 오케스트라에서 상임지휘자가 공석인 상태지만 당장 마땅한 사람을 상임지휘자로 초빙하기 어려운 여건일 때, 그보다 조금 경륜이 떨어지는 지휘자에게 임시로 상임지휘자의 롤을 맡길 때 이런 직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경우가 일본 NHK 교향악단이다. 과거 1950년대에 마땅한 일본, 국내 상임지휘자감이 없고, 해외 거장을 상임지휘자로 초빙하려 했지만 스케줄상의 문제가 걸림돌이 되자 상임지휘자를 두지 않고 해외 거장들을 명예지휘자로 위촉하여 공연의 일부를 맡기고 다수의 공연을 정지휘자라는 직책의 지휘자가 소화했다. 한국에서도 이런 예가 종종 있는데, 대표적인 예가 1980년대 KBS 교향악단에서 상임지휘자가 장기간 공석인 상태에서 전임지휘자로 있으면서 사실상 준 상임지휘자의 역할을 했던 금난새였다.[11] 최근 서울시립교향악단도 정명훈 퇴임 후 새로운 상임지휘자를 물색하는 동안 독일의 중견 지휘자 마르쿠스 슈텐츠를 전임 지휘자로 초빙하여 정기연주회 및 서울시 산하 단체로서 진행하는 주요 공공 음악회를 지휘하도록 했다.
- 수석 객원 지휘자 (principal guest conductor): 일반적으로 존재하는 상설 직책은 아니다. 이런 직책이 존재하는 오케스트라는 많지 않으며, 이런 직책이 있다하더라도 일시적으로 운용되는 경우가 많다. 주로 상임지휘자가 모종의 이유로 많은 연주회를 소화하기 힘들 때 이 직책을 임시적으로 운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에 있었던 수석 객원 지휘자 직책이다.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1969년 새로운 상임지휘자로 게오르그 솔티와 계약했는데, 솔티는 1971년까지 런던 코벤트 가든 오페라의 음악 감독을 맡고 있었기 때문에 시카고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때문에 악단 경영진과 솔티의 합의 하에 수석 객원 지휘자 직책을 신설하고 이 자리에 줄리니를 영입하여 연주회의 일정 부분을 맡겼다. 이 직책은 솔티가 코벤트 가든과 계약이 끝난 후 없어졌다가 솔티가 나중에 다시 런던 필의 상임지휘자를 겸직할 때 다시 생겼다가 사라졌다. 국내에서는 서울시향에서 정명훈이 사임한 후 슈텐츠와 함께 영입한 스위스 출신의 지휘자 티에리 피셔에게 이 직함을 부여했다. 또 나이가 많이 들어 인생의 황혼기를 보내고 있는 이름난 노장 지휘자의 이미지를 활용하기 위해 이 직함을 주고 초빙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70년대 런던 심포니 이사회는 상임지휘자 앙드레 프레빈이 기대에 못 미치자 그를 경질하려 했으나 프레빈은 계약서를 들이대며 사임을 완강히 거부했다. 결국 런던 심포니 이사진은 프레빈을 경질하는 것을 포기했고 대신 당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지고 있던 노장 지휘자 칼 뵘을 초빙하여 그를 위해 수석 객원 지휘자직을 신설했다. 이 역시 칼 뵘을 위한 임시직이었으며, 뵘의 서거하면서 수석 객원 지휘자 직책도 사라졌다.
- 부지휘자 (assistant conductor): 대개 음대나 음악원에서 지휘 과정을 갓 수료/졸업한 이들이 처음 맡는 직책으로, 주로 공연 전에 리허설 전용 공간에서 초벌 합주/합창 연습을 담당한다. 카펠마이스터와 마찬가지로 본 공연 무대에 오르는 경우는 거의 없다. 지휘 이론을 배운 지망생이 실전 경험을 쌓는 과정이라 상임 지휘자에게 배우기도 하는 등 직업과 교육이 혼재된 단계에 속한다. 직접 공연 무대에 설 기회가 거의 없기 때문에 가외벌이 혹은 더 다양한 경험을 위해 아마추어 혹은 전공 학생들로 구성되는 악단들의 공연을 자주 지휘하기도 한다. 20세기 중반까지는 주로 특정 지휘자가 직접 마음에 드는 신인 지휘자를 발탁해 상임 지휘자 직책이 있는 악단의 공연이든 객원 출연 공연이든 일일이 데리고 다니며 연습을 맡기는, 군대로 따지면 전속부관처럼 굴리다가 이후 악단에서 상임 지휘자와 단장의 동의 하에 공식적으로 임명하는 악단 소속 직책으로 바뀌었다.
물론 연공서열 쩌는 한국에서는 부지휘자가 상임 지휘자 뒤치다꺼리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외에 상임 부재 시 임시로 투입되는 음악/예술 고문(musical/artistic advisor), 악단 발전에 큰 공헌을 세우고 퇴임한 지휘자에게 수여되는 명예 음악/예술 감독(honorary music/artistic director), 명예 지휘자(honorary conductor/conductor emeritus), 계관 지휘자(laureate conductor) 같은 직함이 있다.
6. 장수하는 지휘자
노장 지휘자들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기에 예전부터 지휘자가 장수한다는 이야기가 있어왔다. 지휘를 하면서 운동을 많이 하는 것이 장수의 한 원인인 것으로 추측되어왔다. 미국의 아틀라스 박사가 조사한 결과로는 미국 남성 평균 수명이 68.5세 이지만 유명 지휘자의 경우 73.4세인 것으로 나왔다. 장수의 이유는 정신적 충족감과 지휘할 때의 동작이라고 분석했다.#특별히 사고로 요절하지 않는 이상 유명 지휘자들의 상당수가 평균 수명보다 오래 사는 경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이 쪽으로 유명한 지휘자는 레오폴드 스토코프스키, 에이드리언 볼트,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있다.
7. 주요 국가
세계적인 지휘자를 배출한 국가(태생 포함)는 대부분 서유럽 및 동유럽, 미국에 몰려 있으며, 주요 10개국을 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오스트리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구스타프 말러, 카를 뵘, 클라우디오 아바도,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등
- 독일: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한스 크나퍼츠부슈, 오토 클렘페러 등
- 이탈리아: 아르투로 토스카니니, 리카르도 무티, 클라우디오 아바도,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 등
- 프랑스: 피에르 불레즈, 샤를 뮌슈, 로린 마젤, 오르페우스 샤피르 등
- 러시아: 예브게니 므라빈스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발레리 게르기예프, 테미르카노프 등
- 헝가리: 게오르그 솔티, 페렌츠 프리차이 등
- 핀란드: 에사 페카 살로넨, 사카리 오라모, 수잔나 멜키, 피에타리 잉키넨 등
- 영국: 사이먼 래틀, 존 바비롤리, 제인 글러버 등
- 네덜란드: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빌렘 멩엘베르흐 등
- 미국: 레너드 번스타인, 마이클 틸슨 토머스, 마린 알솝, 유진 오먼디, 제임스 레바인 등
클래식 음악계가 그러했듯 지휘자 역시 오랫동안 '금녀의 벽'이 있었지만, 세계 최초의 여성 지휘자로 알려진 네덜란드 태생의 안토니아 브리코(미국)[12] 이후, 마린 알솝(미국), 제인 글러버(영국), 수잔나 멜키(핀란드), 김은선(한국) 등 여러 국가에서 뛰어난 여성 지휘자들이 나오고 있다.
8. 실존 인물
- 유명 지휘자들은 클래식 지휘자 일람 참조.
9. 가공의 인물
자세한 내용은 지휘자/창작물 문서 참고하십시오.10. 여담
2023년 6월 30일에 국립국악관현악단은 국내 공연 최초로 로봇 지휘자를 무대에 올렸다. 공연의 출발점은 “박자만 정확히 센다고 지휘자 없는 연주가 가능할까”란 질문이었다고 하며, 로봇 에버6과 함께 이 공연에서 악단을 지휘할 예정인 최수열 지휘자는 “결국 로봇이 인간 지휘자를 대체하지 못 할 거라 본다. 이번 공연도 '결국 인간 지휘자가 필요하긴 하구나.'를 느끼는 공연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또한 국립국악관현악단 악장 여미순 연주자는 이번 공연에 대해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게 분명 있다는 걸 관객들이 새로 경험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1] Agogik:악보에 없는 패시지를 지휘자가 직접 만들어서 편곡-연주하는 것.[2] 베토벤의 업적 중 하나인 '작곡자가 작곡에만 전념할 수 있게' 한 것도 여기에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작곡자가 계속 지휘봉을 잡아야 했다면 브루크너는 존재하지 않을지도?[3] 당시의 음악가는 작곡, 지휘, 연주를 모두 겸임했고, 그 외의 사람들은 연주를 부업으로 삼았다.[4] 소나타 형식/론도 형식 등등. 상당수의 지휘자는 알파벳 같은 기호로 형식, 주제 등의 변화에 따라 곡을 세분화한다.[5] 이 과정에서 일부 지휘자, 특히 보수적인 지휘자는 단원이 곡 해석의 다른 방향을 제시하면 무시하고, 자신만의 해석을 창조해 낸다. 다만 2000년대 이후 등장하고 있는 신인 지휘자들은 단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하며 같이 음악을 만들어가기도 하며, 특히 소규모 실내 관현악단의 경우 이런 협업형 지휘자가 이끄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6] 실제로 토스카니니의 팬이 손목시계를 선물했을 때 하나는 실제 연주를 위한 고급시계와 리허설을 위한 싸구려 시계 둘을 선물했다는 일화가 있다.[7] 주로 음색과 빠르기, 셈여림 등등...[8] 어느 정도 알려진 오케스트라에서는 박사과정까지 마친 단원도 있을 수 있다.[9] 드라마 베토벤 바이러스에서 강마에의 석란시향을 반대하던 최석균 신임 시장이 낙하산 인사로 꽂아넣은 '이상윤'이라는 신임 지휘자가 시향 단원들보다 음악적 내공이 형펀없어서 시향을 전혀 통솔하지 못하고 하극상을 유도하는 에피소드가 있다.[10] 사실 이 강연은 지휘자 그 자체에 대한 것이 아니라, 지휘자를 예시로 리더십에 대해 강연하는 것이다. 그래도 유명 지휘자들의 지휘하는 모습들은 볼 수 있다.[11] 당시 금난새가 젊고 커리어가 일천했기 때문에 전임지휘자 직책으로 임명되었다.[12] 2019년 개봉된 영화 '더 컨덕터'의 주인공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