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5 19:18:59

사이먼 래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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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1882–18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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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1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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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1922)
3대
(1922–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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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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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라우디오 아바도 사이먼 래틀 키릴 페트렌코
영문 위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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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라모폰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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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8FE539D-CCB2-44DA-9D5B-B6EEC0E8759F.png
그라모폰 명예의 전당은 예술적 탁월함, 혁신, 혹은 상상력을 통해 클래식 음악 녹음에 기여한 예술가들을 기리기 위해 만들었다.
★는 첫 발표(2012년)때 헌액된 인물들이다.
☆는 두번째 발표(2013년)때 헌액된 인물들이다.
지휘자 부문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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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기사 서임자 (남성)
British Knigh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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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보기: 기사 서임자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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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숄티
(197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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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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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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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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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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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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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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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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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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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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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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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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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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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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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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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킹슬리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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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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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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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CBE + Knight Bachelor 파일:knightbachelo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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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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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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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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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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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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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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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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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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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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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r Simon Rattle
OM, CBE
파일:external/www.askonasholt.co.uk/Simon_Rattle_Johann_Sebastian_Hanel_WEB.jpg
본명사이먼 데니스 래틀
(Simon Denis Rattle)
국적영국 파일:영국 국기.png
출생1955년 1월 19일
영국 리버풀 머지사이드
소속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직업지휘자
배우자엘리스 로스(1980~1995)
캔디스 앨런(1996~2004)
마그달레나 코제나(2008~)
학력런던 왕립음악원(RAM)
옥스퍼드 대학교 음악학 박사(1999)
런던 왕립음악원 명예박사(2000)
경력머지사이드 청소년 오케스트라 타악기 단원
리버풀 신포니아 설립, 지휘자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보조지휘자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 보조지휘자(1974~1977)
버밍엄시립교향악단 수석지휘자, 예술고문(1980~1998)
버밍엄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1990~1998)
로테르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
로스엔젤레스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수석객원지휘자(1981~1994)
버밍엄 현대음악단 설립이사,예술고문(1992)
계몽시대 오케스트라 수석 예술가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2002~2018)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2017~)
수상존 플레이어 국제지휘콩쿠르 우승(1974)
그라모폰상 '올해의 음반'(1988)(말러 교향곡 2번 "부활",버밍엄시립교향악단)
대영제국 훈장(CBE)(1987)
그라모폰상 '올해의 예술가'(1993)
기사작위(Knight Bachleor)(1994)
셰익스피어 상(함부르크 토엡퍼 재단)(1996)
알버트 메달(왕립 예술 협회)(1997)
쉴러 특별상(만하임 시)(2005)
골든 카메라(2007)
우리니아 메달(2007)
독일 어린이 상(2007)
독일 연방 공화국 공훈장(독일 대통령 호르스트 쾰러)(2009)
레지옹 도뇌르 훈장(프랑스 대통령 베르나르 드 모포꽁)(2010)
울프상(2012)
메리트 훈장(OM)(2014)
1. 개요2. 생애3. 기타4. 평가
4.1. 비즈니스 수완

1. 개요

영국지휘자로, 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이며, 버밍엄 시립 교향악단,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를 역임했다.

2. 생애

영국의 리버풀 머지사이드에서 태어났다. 타악기를 배워 열다섯 살 때 동네에 있던 머지사이드 청소년 오케스트라에 타악기 주자로 입단하여 활동했다.[1][2]

리버풀 칼리지(Liverpool College)에 다니다가 런던의 왕립음악원(Royal Academy of Music)에 편입하여 타악, 바이올린, 피아노, 지휘 등을 배웠다. 졸업학년인 1974년에는 본머스에서 열린 존 플레이어 국제 지휘 콩쿠르에 최연소 연주자로 참가하여 우승을 차지했다.

1974년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부지휘자가 되었고, 1975년 뉴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면서 지휘자로 공식 데뷔했다. 이후 1977년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부지휘자가 되었다.

1980년 버밍엄 시티 심포니 오케스트라 상임지휘자로 부임했다. 그는 60여 명이나 되는 단원을 해고한 뒤 새로운 단원을 뽑아 사실상 악단을 재창단했다. 그는 현대음악과 특히 1988년 말러 교향곡 2번 음반이 그라모폰상 '올해의 음반상'을 받으면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1990년에는 동 악단의 음악 감독이 되었다. 지휘자로 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87년 CBE 훈장을, 1994년에는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후임으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로 선출되어 2002년부터 임기를 시작했다.[3][4] 래틀이 베를린 필의 지휘자 후보로 오른 것에 호사가들이 입방아를 찧었지만, 마땅한 경쟁자가 없는 관계로 최종투표에서 별 어려움 없이 당선되었다. 1989년 카라얀 사후 강력한 후보였던 마젤바렌보임은 이제는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더이상 당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예측되고 있었고,[5] 어쩌면 가장 강력한 후보가 될 수 있었던 얀손스는 당시에 심장마비 수술을 받은 상황이었기 때문에 건강 문제로 후보군에서 배제되었다. 파이낸셜 타임즈에 의하면 사이먼 래틀은 43%의 지지율을 얻었다고 한다. 래틀 본인이 직접 베를린 필의 재단법인화 계획서를 작성해서 베를린 필에 제출했는데 이것이 당선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한다. 임기 중에 한 차례 계약을 연장하여 2018년 상반기까지 재임했다.

래틀은 재임 기간 동안 단원들이나 젊은 관객들에게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래틀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디지털 콘서트홀[6]이 말 그대로 대박을 거두면서 베를린 필의 재정 상태를 크게 개선시켰기 때문이라고 한다. 베를린 필의 재단법인화도 한 몫을 했다. 여러 모로 금전적으로 베를린 필하모닉을 발전시킨 지휘자라고 할 수 있다. 카라얀 시절에 비하면 궁핍하지만

2015년 3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차기 상임지휘자로 내정되었다는 보도가 발표되었다. 관련기사 2017년 9월부터 공식적인 임기를 시작했다.

3. 기타

1월 19일이 생일인데, 2011년 1월 19일 베를린 필 공연 때 관객들과 단원들이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래틀 귀여워요 래틀


2012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 등장하여 영국 영화산업에 대한 트리뷰트인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불의 전차〉 연주를 지휘했...는데 연주 중에 정신줄 놓은 미스터 빈을 보고 경악했다.(...)

팀파니를 연주하는 사이먼 래틀.

4. 평가

현대음악에 능하다. 래틀이 상임지휘자를 맡은 이후 베를린 필에서 현대음악 래퍼토리가 상당히 늘었다. Late Night at Philharmonie 처럼 현대음악으로만 꽉 채운 연주회도 인기 있는 편이다. 그러나 다른 지휘자들이 잘 다루지 않는 현대음악을 다룬다는 사실만으로 래틀의 역량을 최고로 평가하는 것에는 무리수가 있다. 취임 초기에는 현대음악을 많이 다루는 래틀의 성향에 대해 베를린 청중이 반발하기도 하였고 언론도 이를 비판적으로 다루었다. 래틀은 이러한 여론을 수렴하여 현대음악의 비중을 줄이고 독일 고전주의 및 낭만주의 레퍼토리를 확대하며 본인 스스로 이러한 레퍼토리에 적응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의 브루크너 교향곡 해석은 시간이 지날 수록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7]
[8]

주류 레퍼토리인 독일 낭만주의 음악 해석엔 호불호가 크게 갈리는 편이다. 연주에 대한 평가는 워낙 거장들의 시대먼치킨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나쁘진 않지만, 과거의 명연에 비하면 아쉽다는 평을 받기도. 고전주의 이전의 레퍼토리에 있어선 평범하다고도 하고 뽕끼가 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독일 낭만주의 음악에 대해서는 베를린 필이라는 천의무봉의 악기를 가지고 연주한 것치고는 아쉬움이 많다는 평을 받기도 하다.

래틀이 취임 후 2005년 베를린 필이 RCO에 밀렸으나.[9][10] 10년 뒤 2015년 최고의 오케스트라 1위를 탈환했다.[11] 래틀은 리카르도 샤이에게 3표 차로 밀리며 근소한 차이로 지휘자 랭킹 2위를 차지했다.

여담으로, 래틀은 베를린 필 음악감독 당선 이전엔 객원을 엄청 뛰던 지휘자. 베를린 필 객원으로 연주를 소화했고, 빈 필과도 연주횟수가 꽤 많다. 미국에선 LA 필과 가장 친근했으며, 이 외에도 보스턴 심포니, 시카고 심포니와 종종 연주했다. 신기하게도 런던 심포니와는 그리 친밀한 관계는 아니다.

버밍엄 시절 말러 교향곡 2번이 레퍼런스 중 하나로 꼽히며 명성을 날렸고, 베를린 필 취임후 취입한 말러 5번, 8번, 9번, 10번 교향곡은 레퍼런스 급으로 유명하다.[12] 빈 필과 녹음한 베토벤 교향곡 전집은 취향을 심하게 타는 연주로, 많은 사람에게 좋은 평을 받지는 못했다. 그밖에도 구스타프 홀스트의 행성, 이모겐 홀스트에게 헌정된 음악으로 구성된 음반, 바흐 마태수난곡과 요한수난곡, 올리비에 메시앙과 죄르지 쿠르탁의 음반, 스트라빈스키 아폴로, 카롤 시마노프스키 작품집, 베를린 필과 함께한 브람스 교향곡 전집, 하이든 교향곡집(베를린 필, 버밍엄 둘 다 우수하다), 스트라빈스키와 신빈악파 음악도 높은 평가를 받는다. 마이너 레퍼토리 최강자? [13]

2000년대 클래식 업계 불황으로 메이저 음반사들도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게 되는데 엔지니어와 같은 유능한 인력들이 전부 사라버려서 이후 녹음들의 음질이 좋지 못하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녹음도 시대값을 못하는 녹음상태 때문에 아쉬운 녹음들이 많은데 래틀의 녹음도 2000년대 이전의 CBSO와의 녹음과 비교해 이후 녹음의 음질이 좋지 못한 편이다.

4.1. 비즈니스 수완

사업적 수완이 매우 뛰어나다. 지휘자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비즈니스맨으로 성공했을 것이다. 사실 이러한 경영가로서의 면모가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로 선임되는 것에 큰 영향을 미쳤다. 카라얀은 음악이라는 콘텐츠와 신기술에 의한 매체, 그리고 자신의 타고난 외모와 이미지를 잘 활용해 비즈니스맨으로 성공을 거두었다.[14] 반면 래틀은 조직 전략을 기획하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며 조직을 관리하고 바이어들과 협상하는 능력이 뛰어나, 말 그대로 탁월한 비즈니스 재능이 있다.

래틀은 베를린 필이 국가 보조금을 받는 상황에서 벗어나 재단으로 독립하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상임지휘자가 되기 전에 베를린 필의 재단화 기획안을 제시했고, 이것이 그가 상임지휘자가 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상임지휘자가 되기 전부터 베를린 필 재단화 작업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베를린 필의 디지털 콘서트홀을 오픈하는 등 악단의 비즈니스에 크게 관여했다. 이로 인해 악단의 재정이 개선되었기 때문에 단원들의 지지도도 높은 편이다. 하지만 정작 악단의 가장 큰 수입원이었던 음반 수입은 급감했다. 허나 이는 변명의 여지가 있는 것이 절대 다수의 지휘자가 2000년 이후 음반 수입이 급감했다.[15] 이는 2000년대 이후 한국 가요 음반판매량만 봐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래틀은 대부분의 지휘자들이 크게 꺼리는 후원자 접대와 같은 비즈니스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내한공연 때 지휘대에서 후원자였던 박성용 금호그룹 명예회장에 대한 헌사를 자주 표하여 청중들에게 충공깽을 선사하기도 했다. 래틀은 훗날 베를린 필의 21C 경영 모델을 체계화한 인물로 이름이 남을 것이다.

일본드라마 CD 호두까기 인형에 베를린 필이 참여한 것도 래틀 시절이다(2010년). 참고로 참여한 성우는 이시다 아키라쿠기미야 리에.


[1] 타악기 주자 출신이라 그런지 칸타빌레에 약한 면모를 보이기도 한다.[2] 그가 직접 팀파니를 치는 모습이 영상으로 있다. *영상[3] 일각에서는 카라얀이 그를 차기 지휘자로 점찍었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고 하는데 별 의미는 없다.[16][17] 카라얀은 과거에도 오자와[18], 비쉬코프[19] 등 젊은 지휘자가 베를린 필을 지휘할 때마다 같은 립서비스를 한 바 있다. 자신의 후계자 자리를 둘러싼 끊임 없는 구설수에 대해 젊은 뉴비 지휘자들을 이용해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간접적으로 표출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20][21][4] 한 편 독설의 대가그리고 츤데레 첼리비다케 역시 뮌헨필에서 래틀이 객원지휘를 하는 것을 보고 극찬했고 이에 첼리비다케 사후 뮌헨필에서 사운드를 살릴 만한 유일한 지휘자로 래틀이 지목되었으나, 래틀은 이를 고사했다.[5]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가 되기 위해서는 나이가 중요한 변수로 작용했다. 베를린 필은 정기음악회 뿐만아니라 순회공연, 음반녹음 등 수많은 일정을 함께 소화하며 악단을 발전시킬 젊은 지휘자를 원했다. 푸르트벵글러는 30대에, 카라얀은 40대에 베를린 필의 상임지휘자가 되었으며, 50대에 베를린 필에 취임한 아바도는 나이가 많은 편이라는 소리를 들었다. 카라얀 사후 바렌보임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커리어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후보로 꼽힌 것은 40대라는 나이가 크게 작용했다. 마젤, 무티, 오자와 등 다른 후보들도 당시에 40~50대였으며, 60대 이상이었던 지휘자들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6] 인터넷을 통해서 베를린 필의 공연을 생중계해주는 베를린 필하모닉 공식 웹사이트. 때로는 해외 공연도 생중계를 해주며 아카이브를 통해서 예전에 했던 공연 영상들도 볼 수있다.[7] 안톤 브루크너의 교향곡 9번.[8] 요하네스 브람스의 교향곡 1번.[9] 왕립 콘서트허바우 관현악단(RCO)은 2005년 복수의 랭킹에서 1위를 차지했다.[10] 다만 이러한 견해에 대해서는 전반적으로 여러 오케스트라의 실력이 상향 평준화되기도 했고, 녹음 기술 또한 과거에 비해 크게 발달했기 때문이지 베를린 필의 연주력이 떨어졌기 때문은 아니라는 지적이 있다. 베를린 필 정도의 역사가 있는 악단이 지휘자가 바뀐다고 해서 갑자기 연주력이 떨어지거나 하지는 않는다.[11] RCO는 2위를 차지했다.[12] 래틀의 말러 교향곡같은 경우 장난끼가 있는 편인데 이게 곡 분위기와 잘 맞으면 좋은 녹음, 공연이라는 평이 많고 그렇지 않으면 깬다는 평이 많다.[13] 카라얀, 아바도, 래틀 모두 신빈악파에 능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푸르트뱅글러는 현재 시점에서 신빈악파를 잘한다고 하기에 무리가 있지만, 상당히 이른 시기에 많은 신빈악파 음악을 소화했다. 카라얀은 신빈악파에서 낭만성을 진하게 뽑아내었고, 아바도의 경우 맑은 사운드로 이해하기 쉽게, 래틀의 경우 그야말로 구조전체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신빈악파 음악을 소화해 냈다. 다음 베를린 필 상임도 신빈악파에 능한 지휘자가 될것인가 지켜보자.[14] 이는 조롱이 아니며 상임지휘자로서 아주 뛰어난 덕목이다.[15] 2000년대 이후 음반사가 수익 문제로 녹음을 거부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악단의 재정은 점점 어려워지는데 수익은 내야했기 때문에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많은 악단들이 자체 레이블을 두고 실황 녹음을 판매한다. 베를린 필의 경우 비교적 최근에 자체 레이블을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