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기사 서임자 (남성) British Knights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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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스콧 셰링턴 (1922) | 에드워드 빅터 애플턴 (1946) | 리들리 스콧 (2024)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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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color=#fff> 프랜시스 골턴 경 Sir Francis Galton | |||
<colbgcolor=#000> 국적 | [[영국| ]][[틀:국기| ]][[틀:국기| ]] | ||
출생 | 1822년 2월 16일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웨스트 미들랜즈, 버밍엄 | |||
사망 | 1911년 1월 17일 (향년 88세) | ||
[[잉글랜드| ]][[틀:국기| ]][[틀:국기| ]], 서리, 하슬미어 | |||
연구분야 | 인류학, 기상학, 유전학, 통계학, 심리학, 사회학, 지리학 | ||
소속 | 기상위원회 (Meteorological Council) 왕립지리학회 (Royal Geographical Society) | ||
정보 더 보기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colbgcolor=black><colcolor=white> 학력 | <colbgcolor=white,#1f2023>킹스 칼리지 런던 GKT 의과대학[3] (의학 / 1838년 – 1839년 | 1844년 – 복학 및 중퇴) | |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컬리지[4] (B.A. / 1840년 – 1844년) | (M.A. / 1847년) | |||
옥스퍼드 대학교 (명예박사 / D.C.L.) (1894년) 케임브리지 대학교 (명예박사 / Sc.D.) (1895년) | |||
수상 | 파운더스 메달[5] (1853년) 로열 메달 (1886년) 헉슬리 메모리얼 메달 (1901년) 다윈-월리스 메달 (1908년) 코플리 메달 (1910년) | ||
수훈 | 기사작위 (1909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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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영국의 기상학자, 지리학자, 유전학자, 심리학자, 통계학자, 발명가. 빅토리아 시대를 대표하는 학자다.2. 생애
그의 할아버지는 의사이자 시인인 에라스무스 다윈(Erasmus Darwin)이고, 사촌이 찰스 다윈이다. 소위 말해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고 성장한 금수저다. 밑에 언급된 우생학을 생각하면 묘한 사실이다.영국 버밍엄 스파크브룩(Sparkbrook)에서 출생했으며, 버밍엄의 에드워드 4세 그래머 학교를 16세까지 다녔다. 그 후 아버지의 권유로 버밍엄 병원과 킹스 칼리지 런던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이후 1840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지 칼리지로 옮겨 수학을 전공한다. 1844년 학사 학위를 마친뒤 다시 킹스 칼리지 런던으로 돌아와 복학했으나 그 해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게 된다. 이 일로 신경 쇠약에 걸리게 되고 의학 공부는 그만 두게 된다#
이후 골턴은 아프리카 등지를 원정하면서 몇 편의 견문록을 출간하였고, 왕립 지리학회의 회원이 되어 상을 수여받았다. 이 외에도 기상학에도 관심을 보여 일기도를 최초로 고안하였으며, 범죄자 식별을 법률 집행 수단으로 지문 감식법[6]도 최초로 고안하였고 통계학에서 설명 변수와 종속 변수 사이에 상관관계가 있는가를 검정하는 데 쓰이는 회귀 분석도 만들어냈다. 우생학 때문에 비판이 상당하지만 이 회귀분석은 현대에 심층학습이 기반이 되는 방법으로 매우 유용하게 쓰인다.
3. 우생학
물론 이 외의 업적도 많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유전학의 분과로 알려져 있는 우생학이다. 골턴은 사촌인 찰스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의 영향을 많이 받아 자신의 연구 방향을 초인적[7] 종족 창조로 돌렸다.1869년에 우등한 사람은 환경이 아니라 유전으로 탄생한다는 이론을 제창한 논문 《Hereditary Genius》[유전적]을 출판하였다. 해당 논문을 통해 과학이 부적격자의 출산율을 점검한 뒤 좋은 혈통 간의 조혼을 통해 적격자의 출산율을 높혀 인종을 개량하자고 제안한다.[9] 심지어 통계적 연구를 통해 영국의 미인 지도를 만들어 가장 못생긴 여성들은 스코틀랜드 에버딘에 살고 있다는 편향적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10]
1883년에 《Inquireies into Human Faculty and its Development》을 출판하고 같은 년도에 우생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었으며, 1889년에 책 《Natural Inheritance》을 출판하여 유전의 통계적 방법을 논하였다. 그의 유지를 받아 우생학 연구회가 설립되었다. 물론 이 우생학은 21세기 들어와서는 쓰레기 이론으로 확정되었다.
1904년에는 <Eugenics: Its Definition, Scope and Aims>[우생학:]이라는 논문을 통해 자연이 맹목적으로, 천천히, 무자비하게 하는 일을 인간은 신중하고, 빠르고, 친정하게 처리할 수 있으며 이러한 방향으로 노력하는 게 인간의 의무라고 강조한다.
이렇듯 골턴은 인종차별주의자였으며 이러한 골턴의 견해는 20세기 서구주의적인 사고의 핵심이 되며 영미권을 중심으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후 인간 품종의 개량 가능성은 실패작의 살균에 있다는 급진주의적인 사고로 이어지며 처형용 가스실의 광범위한 사용을 옹호하는 의견으로 이어지기도 한다.[12]
[1] Fellow of the Royal Society. 왕립학회 회원.[2] Fellowship of the Royal Anthropological Institute of Great Britain and Ireland.[3] 참고 자료
케임브리지에서 수학 후 다시 돌아와 학위를 마치려 했으나,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한 신경 쇠약으로 그만 둔다.[4] 케임브리지 대학교 동문 데이터베이스 참고.
여담으로 1847년에 받은 석사 학위는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관습에 따라 (학사를 완료한 사람에 한하여) 수여받은 것으로 골턴이 직접 석사 학위를 위한 학업을 이수하진 않았다.[5] Founder's Medal
왕립지리학회에서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상[6] 1888년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을 계기로 런던 경찰청은 1901년 최초로 지문 감식국을 설립했으며 1902년부터 지문 증거가 법정에 제출되기 시작했다. 이후 1900년대 중후반부터 잉그리드 도브시가 푸리에 변환의 대안으로 무한 차원의 공간을 통한 변환으로 점멸 신호를 나타내고자 제안한 웨이블릿이 등장하며 지문 감식법은 암호화 과정을 거치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7] 빈곤층, 장애인, 추남 등 골턴이 생각하는 부적격자로부터 오염되지 않는 우월한 유전의 인간을 뜻한다.[유전적] 천재[9]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인위적으로 구성하고자 한 것이다.[10] 상당수의 대중이 통계를 속임수라고 여기며 반지성적인 태도를 함양하는 현상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 흑사병 유행 당시 통계학이 기존의 미신을 없애고 진실을 탐구하고자 빠르게 발전된 취지와는 달리, 골턴은 통계학으로 본인이 믿는 미신을 강화시키고자 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라고 볼 수 있다.[우생학:] 그 정의와 범위 및 목적[12] 조지 버나드 쇼, 윈스턴 처칠, 매디슨 그랜트 등 당대 유명인사들이 골턴의 주장에 동조했다. 특히 아돌프 히틀러는 초인적 종족의 출현을 보장하는 강제 불임 시슬 등의 조치를 촉구한 매디슨 그랜트의 저서 <위대한 종족의 소멸>에 감명을 받으며 친필로 편지를 보내고 나치를 통해 독일을 장악한 뒤에는 해당 책을 증쇄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
케임브리지에서 수학 후 다시 돌아와 학위를 마치려 했으나, 갑작스런 아버지의 사망으로 인한 신경 쇠약으로 그만 둔다.[4] 케임브리지 대학교 동문 데이터베이스 참고.
여담으로 1847년에 받은 석사 학위는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관습에 따라 (학사를 완료한 사람에 한하여) 수여받은 것으로 골턴이 직접 석사 학위를 위한 학업을 이수하진 않았다.[5] Founder's Medal
왕립지리학회에서 수여하는 최고 영예의 상[6] 1888년 네이처에 게재한 논문을 계기로 런던 경찰청은 1901년 최초로 지문 감식국을 설립했으며 1902년부터 지문 증거가 법정에 제출되기 시작했다. 이후 1900년대 중후반부터 잉그리드 도브시가 푸리에 변환의 대안으로 무한 차원의 공간을 통한 변환으로 점멸 신호를 나타내고자 제안한 웨이블릿이 등장하며 지문 감식법은 암호화 과정을 거치며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7] 빈곤층, 장애인, 추남 등 골턴이 생각하는 부적격자로부터 오염되지 않는 우월한 유전의 인간을 뜻한다.[유전적] 천재[9]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인위적으로 구성하고자 한 것이다.[10] 상당수의 대중이 통계를 속임수라고 여기며 반지성적인 태도를 함양하는 현상에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다. 17세기 흑사병 유행 당시 통계학이 기존의 미신을 없애고 진실을 탐구하고자 빠르게 발전된 취지와는 달리, 골턴은 통계학으로 본인이 믿는 미신을 강화시키고자 했다는 점에서 아이러니라고 볼 수 있다.[우생학:] 그 정의와 범위 및 목적[12] 조지 버나드 쇼, 윈스턴 처칠, 매디슨 그랜트 등 당대 유명인사들이 골턴의 주장에 동조했다. 특히 아돌프 히틀러는 초인적 종족의 출현을 보장하는 강제 불임 시슬 등의 조치를 촉구한 매디슨 그랜트의 저서 <위대한 종족의 소멸>에 감명을 받으며 친필로 편지를 보내고 나치를 통해 독일을 장악한 뒤에는 해당 책을 증쇄하라고 명령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