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6 19:43:09

숀 코너리

숀 코너리 관련 틀
{{{#!folding [ 펼치기 · 접기 ]
영국 기사 서임자 (남성)
British Knights
{{{#!wiki style="margin:0 -10px -5px"
{{{#black,#white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같이 보기: 기사 서임자 (여성)
GBE 파일:Grand Cross of the Order of the British Empire_.jpg
찰스
스콧 셰링턴

(1922)
에드워드
빅터 애플턴

(1946)
리들리
스콧
(2024)
KBE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7b160a24b08857219efc111189b9773d.jpg
프레더릭 벤팅
(1934)
에드먼드 힐러리
(1953)
게오르그 솔티
(1971)
시드니 푸아티에이
(1974)
찰리 채플린
(1975)
앨프리드 히치콕
(1980)
밥 호프
(1998)
앤드루 와일스
(2000)
로저 무어
(2003)
팀 버너스리
(2004)
조너선 아이브
(2012)
Knight Bachelor 파일:knightbachelor.jpg
아이작 뉴턴
(1705)
찰스 라이엘
(1848)
찰스 휘트스톤
(1868)
조지프 리스터
(1883)
아서 코난 도일
(1902)
W. S. 길버트
(1907)
프랜시스 골턴
(1909)
핼퍼드 매킨더
(1920)
프레더릭
G. 홉킨스

(1925)
무하마드
자파룰라 칸

(1935)
오언 리처드슨
(1939)
알렉산더 플레밍
(1944)
랠프 리처드슨
(1947)
로런스 올리비에
(1947)
존 길구드
(1953)
칼 포퍼
(1965)
알프 램지
(1967)
쉬리다스 람팔
(1970)
제임스 블랙
(1981)
마이클 아티야
(1983)
클라이브
싱클레어

(1983)
렉스 해리슨
(1989)
V. S. 나이폴
(1990)
더크 보가드
(1992)
로저 펜로즈
(1994)
팀 라이스
(1994)
캐머런 매킨토시
(1996)
마이클 스타우트
(1998)
폴 너스
(1999)
리처드 브랜슨
(2000)
숀 코너리
(2000)
톰 커트니
(2001)
믹 재거
(2002)
벤 킹슬리
(2002)
리들리 스콧
(2003)
조너선 색스
(2005)
헨리 세실
(2011)
케네스 브래너
(2012)
안드레 가임
(2012)
다니엘
데이 루이스

(2014)
패트릭 헤드
(2015)
마크 라일랜스
(2017)
제임스
래트클리프

(2018)
톰 무어
(2020)
마이클 호턴
(2021)
마틴 에이미스
(2023)
CBE + Knight Bachelor 파일:knightbachelor.jpg
데이비드 린
(1953)
마이클
레드그레이브

(1959)
알렉 기네스
(1959)
스탠리 매튜스
(1965)
맷 버스비
(1968)
알렉 이시고니스
(1969)
에른스트
곰브리치

(1972)
리처드 애튼버러
(1976)
존 밀스
(1976)
월터 윈터보텀
(1978)
데이비드
애튼버러

(1985)
윌리엄 골딩
(1988)
피터 유스티노프
(1990)
이안 맥켈런
(1991)
안소니 홉킨스
(1993)
데릭 제이코비
(1994)
바비 찰튼
(1994)
사이먼 래틀
(1994)
조지 마틴
(1996)
마이클 갬본
(1998)
아서 C. 클라크
(1998)
엘튼 존
(1998)
이안 홈
(1998)
존 엘리엇
가디너

(1998)
톰 피니
(1998)
나이젤 호손
(1999)
알렉스 퍼거슨
(1999)
프랭크 윌리엄스
(1999)
마이클 케인
(2000)
폴 스미스
(2000)
바비 롭슨
(2002)
앨런 파커
(2002)
앨런 베이츠
(2003)
그레고리 윈터
(2004)
트레버 브루킹
(2004)
제임스 다이슨
(2007)
크리스토퍼 리
(2009)
브래들리 위긴스
(2013)
존 허트
(2015)
칼 젠킨스
(2015)
로드 스튜어트
(2016)
레이 데이비스
(2017)
빌리 코놀리
(2017)
배리 깁
(2018)
마이클 페일린
(2019)
데이비드 수셰이
(2020)
샘 멘데스
(2020)
스티브 맥퀸
(2020)
로저 디킨스
(2021)
조너선 프라이스
(2021)
존 부어만
(2022)
브라이언 메이
(2023)
OBE + Knight Bachelor 파일:knightbachelor.jpg
어니스트 섀클턴
(1909)
윌리엄 브래그
(1941)
리처드 돌
(1971)
잭 브라밤
(1978)
지미 새빌
(1990)
클리프 리처드
(1995)
트레버 맥도날드
(1999)
스털링 모스
(2000)
재키 스튜어트
(2001)
톰 존스
(2006)
테리 프래쳇
(2009)
패트릭 스튜어트
(2010)
밴 모리슨
(2015)
앤디 머리
(2017)
가즈오 이시구로
(2018)
마이클 모퍼고
(2018)
MBE + Knight Bachelor 파일:knightbachelor.jpg
폴 매카트니
(1997)
제프 허스트
(1998)
나이젤 쇼트
(1999)
니콜라스 윈턴
(2003)
닉 팔도
(2009)
링고 스타
(2018)
케니 달글리시
(2018)
루이스 해밀턴
(2021)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초대
(1962–1967, 1971, 1983)
2대
(1969)
3대
(1973–1985)
숀 코너리 조지 레이전비 로저 무어
4대
(1987–1989)
5대
(1995-2002)
6대
(2005-2021)
티모시 돌턴 피어스 브로스넌 대니얼 크레이그
번외 1대
(1954)
번외 2대
(1967)
배리 넬슨 데이빗 니븐
}}}}}}}}} ||

숀 코너리의 주요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AFI 평생 공로상
파일:미국영화연구소 로고.svg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1973년 1974년 1975년 1976년 1977년
존 포드 제임스 캐그니 오슨 웰스 윌리엄 와일러 베티 데이비스
1978년 1979년 1980년 1981년 1982년
헨리 폰다 앨프리드 히치콕 제임스 스튜어트 프레드 아스테어 프랭크 카프라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존 휴스턴 릴리안 기시 진 켈리 빌리 와일더 바버라 스탠윅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잭 레먼 그레고리 펙 데이비드 린 커크 더글러스 시드니 푸아티에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엘리자베스 테일러 잭 니콜슨 스티븐 스필버그 클린트 이스트우드 마틴 스코세이지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로버트 와이즈 더스틴 호프먼 해리슨 포드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톰 행크스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로버트 드 니로 메릴 스트립 조지 루카스 숀 코너리 알 파치노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워렌 비티 마이클 더글러스 마이크 니콜스 모건 프리먼 셜리 맥클레인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멜 브룩스 제인 폰다 스티브 마틴 존 윌리엄스 다이앤 키튼
2018년 2019년 2022년[1] 2023년
조지 클루니 덴젤 워싱턴 줄리 앤드류스 니콜 키드먼
[1] 2020년 시상 예정이었으나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의 확산으로 인해 시상식 개최가 2년 연기되었다. }}}}}}}}}}}}

파일:Kennedy Center honors.jpg
케네디 센터 공로상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20세기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000000> 1978년 <colbgcolor=#fff,#1f2023>매리언 앤더슨, 프레드 아스테어, 조지 발란신,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리처드 로저스
1979년 에런 코플런드, 엘라 피츠제럴드, 헨리 폰다, 마사 그레이엄, 테네시 윌리엄스
1980년 레너드 번스타인, 제임스 캐그니, 애그니스 데밀, 린 폰탠, 리언타인 프라이스
1981년 카운트 베이시, 케리 그랜트, 제롬 로빈스, 헬렌 헤이스, 루돌프 세르킨
1982년 조지 애벗, 릴리안 기시, 베니 굿맨, 진 켈리, 유진 오르만디
1983년 캐서린 던햄, 엘리아 카잔, 프랭크 시나트라, 제임스 스튜어트, 버질 톰슨
1984년 레나 혼, 대니 케이, 잔카를로 메노티, 아서 밀러, 아이작 스턴
1985년 머스 커닝햄, 밥 호프, 아이린 던, 앨런 제이 러너, 프레더릭 로, 베벌리 실즈
1986년 루실 볼, 레이 찰스, 제시카 텐디, 험 크로닌, 예후디 메뉴힌, 앤서니 튜더
1987년 페리 코모,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베티 데이비스, 네이선 밀스타인, 알윈 니콜라이
1988년 앨빈 에일리, 조지 번즈, 마이어나 로이, 알렉산더 슈나이더, 로저 L. 스티븐스
1989년 해리 벨라폰테, 클로데트 콜베르, 알렉산드라 다닐로바, 메리 마틴, 윌리엄 슈만
1990년 디지 길레스피, 캐서린 헵번, 라이즈 스티븐스, 줄리 스턴, 빌리 와일더
1991년 베티 콤덴, 로이 에이커프, 아돌프 그린, 헤럴드 니콜라스, 로버트 쇼, 그레고리 펙
1992년 라이어널 햄프턴, 폴 뉴먼, 조앤 우드워드, 진저 로저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폴 타일러
1993년 자니 카슨, 아서 미첼, 게오르그 솔티, 스티븐 손드하임, 매리언 윌리엄스
1994년 커크 더글러스, 아레사 프랭클린, 모튼 굴드, 해럴드 프린스, 피트 시거
1995년 자크 당부아즈, 메릴린 혼, 비비 킹, 시드니 푸아티에, 닐 사이먼
1996년 에드워드 올비, 베니 카터, 조니 캐쉬, 잭 레먼, 마리아 톨치프
1997년 로렌 바콜, 밥 딜런, 찰턴 헤스턴, 제시 노먼, 에드워드 빌렐라
1998년 빌 코스비, 프레드 엡, 존 칸더, 윌리 넬슨, 앙드레 프레빈, 셜리 템플
1999년 빅터 보르게, 숀 코너리, 주디스 재스민, 제이슨 로바즈, 스티비 원더
2000년 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척 베리, 플라시도 도밍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안젤라 랜스버리
}}}}}}}}} ||
21세기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bgcolor=#000000>2001년<colbgcolor=#fff,#1f2023>줄리 앤드류스, 밴 클라이번, 퀸시 존스, 잭 니콜슨, 루치아노 파바로티
2002년 제임스 얼 존스, 제임스 리바인, 치타 리베라, 폴 사이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2003년 제임스 브라운, 캐롤 버넷, 마이크 니콜스, 로레타 린, 이작 펄만
2004년 워렌 비티, 오시 데이비스 & 루비 리, 엘튼 존, 조앤 서덜랜드, 존 윌리엄스
2005년 토니 베넷, 수잔 파렐, 줄리 해리스, 로버트 레드포드, 티나 터너
2006년 주빈 메타, 돌리 파튼, 스모키 로빈슨, 스티븐 스필버그, 앤드루 로이드 웨버
2007년 레온 플라이셔, 스티브 마틴, 다이애나 로스, 마틴 스코세이지, 브라이언 윌슨
2008년 모건 프리먼, 조지 존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트와일라 사프, 더 후
2009년 멜 브룩스, 데이브 브루벡, 그레이스 범브리, 로버트 드 니로, 브루스 스프링스틴
2010년 멀 해거드, 제리 허먼, 빌 존스, 폴 매카트니, 오프라 윈프리
2011년 바바라 쿡, 닐 다이아몬드, 요요마, 소니 롤린스, 메릴 스트립
2012년 버디 가이, 더스틴 호프먼, 레드 제플린, 나탈리아 마라코바
2013년 마티나 아로요, 허비 행콕, 빌리 조엘, 셜리 맥클레인, 카를로스 산타나
2014년 알 그린, 톰 행크스, 퍼트리샤 맥브라이드, 스팅, 릴리 톰린
2015년 캐롤 킹, 조지 루카스, 리타 모레노, 오자와 세이지, 시실리 타이슨
2016년 마르타 아르헤리치, 이글스, 알 파치노, 마비스 스태플스, 제임스 테일러
2017년 카르멘 드 라발라데, 노먼 리어, 글로리아 에스테판, LL 쿨 J, 라이오넬 리치
2018년 셰어, 필립 글래스, 레바 매킨타이어, 웨인 쇼터, 해밀턴 팀 (린 마누엘 미란다, 토마스 카일, 알렉스 라카뫄르, 앤디 블렝큰불러)
2019년 어스, 윈드 앤 파이어, 세서미 스트리트, 샐리 필드, 린다 론스태드, 마이클 틸슨 토머스
2020년 데비 엘렌, 조안 바에즈, 가스 브룩스, 미도리, 딕 반 다이크
2021년 저스티노 디아즈, 베리 골디, 론 마이클스, 베트 미들러, 조니 미첼
2022년 조지 클루니, 에이미 그랜트, 글래디스 나이트, 타니아 레온, U2 (보노, 디 에지, 애덤 클레이튼, 래리 뮬렌 주니어)
2023년 퀸 라티파, 르네 플레밍, 빌리 크리스탈, 디안 워윅, 배리 깁
}}}}}}}}} ||
}}}}}}}}} ||

파일:goldenglobe_cecildemil.png
골든글로브 세실 B. 드밀상 수상자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952년 1953년 1954년 1955년 1956년
세실 B. 드밀 월트 디즈니 대릴 F. 재넉 진 허숄트 잭 L. 워너
1957년 1958년 1959년 1960년 1961년
머빈 르로이 버디 아들러 모리스 슈발리에 빙 크로스비 프레드 아스테어
1962년 1963년 1964년 1965년 1966년
주디 갈랜드 밥 호프 조셉 E. 레빈 제임스 스튜어트 존 웨인
1967년 1968년 1969년 1970년 1971년
찰턴 헤스턴 커크 더글러스 그레고리 펙 조안 크로포드 프랭크 시나트라
1972년 1973년 1974년 1975년 1977년
앨프리드 히치콕 새뮤얼 골드윈 베티 데이비스 핼 B. 월리스 월터 미리쉬
1978년 1979년 1980년 1981년 1982년
레드 스켈튼 루실 볼 헨리 폰다 진 켈리 시드니 푸아티에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1987년
로런스 올리비에 폴 뉴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바버라 스탠윅 안소니 퀸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1992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도리스 데이 오드리 헵번 잭 레먼 로버트 미첨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1997년
로렌 바콜 로버트 레드포드 소피아 로렌 숀 코너리 더스틴 호프먼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2002년
셜리 맥클레인 잭 니콜슨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알 파치노 해리슨 포드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2007년
진 해크먼 마이클 더글러스 로빈 윌리엄스 안소니 홉킨스 워렌 비티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스티븐 스필버그 마틴 스코세이지 로버트 드 니로 모건 프리먼 조디 포스터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우디 앨런 조지 클루니 덴젤 워싱턴 메릴 스트립 오프라 윈프리
2019년 2020년 2021년 2023년 2025년
제프 브리지스 톰 행크스 제인 폰다 에디 머피 비올라 데이비스
}}}}}}}}} ||

파일:oscar_logo.svg
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자
'''[[틀:아카데미 남우조연상 수상자|Academy Award for Best Supporting Actor]]'''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000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000,#e5e5e5
제9회
(1937년)
제10회
(1938년)
제11회
(1939년)
제12회
(1940년)
제13회
(1941년)
월터 브레넌
(컴 앤 겟 잇)
조셉 쉴드크로트
(에밀 졸라의 생애)
월터 브레넌
(켄터키)
토머스 미첼
(역마차)
월터 브레넌
(서부의 사나이)
제14회
(1942년)
제15회
(1943년)
제16회
(1944년)
제17회
(1945년)
제18회
(1946년)
도널드 크리스프
(나의 계곡은 푸르렀다)
벤 헤프린
(자니 이거)
찰스 코번
(한 여자와 두 남자)
배리 피츠제럴드
(나의 길을 가련다)
제임스 던
(브룩클린의 나무 성장)
제19회
(1947년)
제20회
(1948년)
제21회
(1949년)
제22회
(1950년)
제23회
(1951년)
해롤드 러셀
(우리 생애 최고의 해)
에드먼드 그웬
(34번가의 기적)
월터 휴스턴
(시에라 마드레의 황금)
딘 자거
(정오의 출격)
조지 샌더스
(이브의 모든 것)
제24회
(1952년)
제25회
(1953년)
제26회
(1954년)
제27회
(1955년)
제28회
(1956년)
칼 말든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안소니 퀸
(혁명아 자파타)
프랭크 시나트라
(지상에서 영원으로)
에드먼드 오브라이언
(맨발의 백작부인)
잭 레먼
(미스터 로버츠)
제29회
(1957년)
제30회
(1958년)
제31회
(1959년)
제32회
(1960년)
제33회
(1961년)
안소니 퀸
(열정의 랩소디)
레드 버튼스
(사요나라)
벌 아이브스
(거대한 서부)
휴 그리피스
(벤허)
피터 유스티노프
(스파르타쿠스)
제34회
(1962년)
제35회
(1963년)
제36회
(1964년)
제37회
(1965년)
제38회
(1966년)
조지 샤키리스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
에드 베글리
(스윗 버드 오브 유스)
멜빈 더글러스
(허드)
피터 유스티노프
(토프카피)
마틴 발삼
(천 명의 어릿광대)
제39회
(1967년)
제40회
(1968년)
제41회
(1969년)
제42회
(1970년)
제43회
(1971년)
월터 매튜
(포춘 쿠키)
조지 케네디
(폭력 탈옥)
잭 앨버트슨
(서브젝트 워스 로지스)
기그 영
(그들은 말을 쏘았다)
존 밀스
(라이언의 딸)
제44회
(1972년)
제45회
(1973년)
제46회
(1974년)
제47회
(1975년)
제48회
(1976년)
벤 존슨
(마지막 영화관)
조엘 그레이
(카바레)
존 하우스먼
(하버드 대학의 공부벌레들)
로버트 드 니로
(대부 2)
조지 번즈
(선샤인 보이)
제49회
(1977년)
제50회
(1978년)
제51회
(1979년)
제52회
(1980년)
제53회
(1981년)
제이슨 로바즈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제이슨 로바즈
(줄리아)
크리스토퍼 워컨
(디어 헌터)
멜빈 더글러스
(찬스)
티모시 허튼
(보통 사람들)
제54회
(1982년)
제55회
(1983년)
제56회
(1984년)
제57회
(1985년)
제58회
(1986년)
존 길구드
(아서)
루이스 고셋 주니어
(사관과 신사)
잭 니콜슨
(애정의 조건)
행 S. 응고르
(킬링필드)
돈 아메체
(코쿤)
제59회
(1987년)
제60회
(1988년)
제61회
(1989년)
제62회
(1990년)
제63회
(1991년)
마이클 케인
(한나와 그 자매들)
숀 코너리
(언터처블)
케빈 클라인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
덴젤 워싱턴
(영광의 깃발)
조 페시
(좋은 친구들)
제64회
(1992년)
제65회
(1993년)
제66회
(1994년)
제67회
(1995년)
제68회
(1996년)
잭 팰런스
(굿바이 뉴욕 굿모닝 내사랑)
진 해크먼
(용서받지 못한 자)
토미 리 존스
(도망자)
마틴 랜도
(에드 우드)
케빈 스페이시
(유주얼 서스펙트)
제69회
(1997년)
제70회
(1998년)
제71회
(1999년)
제72회
(2000년)
제73회
(2001년)
쿠바 구딩 주니어
(제리 맥과이어)
로빈 윌리엄스
(굿 윌 헌팅)
제임스 코번
(어플릭션)
마이클 케인
(사이더 하우스)
베니시오 델 토로
(트래픽)
제74회
(2002년)
제75회
(2003년)
제76회
(2004년)
제77회
(2005년)
제78회
(2006년)
짐 브로드벤트
(아이리스)
크리스 쿠퍼
(어댑테이션)
팀 로빈스
(미스틱 리버)
모건 프리먼
(밀리언 달러 베이비)
조지 클루니
(시리아나)
제79회
(2007년)
제80회
(2008년)
제81회
(2009년)
제82회
(2010년)
제83회
(2011년)
알란 아킨
(미스 리틀 선샤인)
하비에르 바르뎀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히스 레저
(다크 나이트)
크리스토프 발츠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
크리스찬 베일
(파이터)
제84회
(2012년)
제85회
(2013년)
제86회
(2014년)
제87회
(2015년)
제88회
(2016년)
크리스토퍼 플러머
(비기너스)
크리스토프 발츠
(장고: 분노의 추적자)
자레드 레토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J. K. 시몬스
(위플래쉬)
마크 라이런스
(스파이 브릿지)
제89회
(2017년)
제90회
(2018년)
제91회
(2019년)
제92회
(2020년)
제93회
(2021년)
마허샬라 알리
(문라이트)
샘 록웰
(쓰리 빌보드)
마허샬라 알리
(그린 북)
브래드 피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대니얼 칼루야
(유다 그리고 블랙 메시아)
제94회
(2022년)
제95회
(2023년)
제96회
(2024년)
제97회
(2025년)
제98회
(2026년)
트로이 코처
(코다)
키호이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오펜하이머)
--
}}}}}}}}}}}}}}} ||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파일:goldenglobe.png
남우조연상 - 영화
제44회
(1987년)
제45회
(1988년)
제46회
(1989년)
톰 베린저
(플래툰)
숀 코너리
(언터처블)
마틴 랜도
(터커)

역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파일:BAFTA 로고.svg
남우주연상
제40회
(1987년)
제41회
(1988년)
제42회
(1989년)
밥 호스킨스
(모나리자)
숀 코너리
(장미의 이름)
존 클리즈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
}}}
}}} ||
<colbgcolor=#151538><colcolor=#ffffff>
숀 코너리
Sir Sean Connery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eanConneryJune08.jpg
본명 토머스 숀 코너리
Thomas Sean Connery
출생 1930년 8월 25일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파운트브리지
사망 2020년 10월 31일 (향년 90세)
바하마 나소
국적
[[영국|
파일:영국 국기.svg
영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작위 기사 (Knight Bachelor)
신체 188cm
종교 가톨릭 (세례명: 요한)
직업 배우, 프로듀서
데뷔 1954년 영화 'Lilacs in the Spring'
활동 1954년2006년
부모 아버지 조셉 코너리(1902년 출생 ~ 1972년 사망)
어머니 유페미아 맥린(1907년 출생 ~ 1985년 사망)
형제자매 남동생 닐 코너리(1938년 출생 ~ 2021년 사망)
배우자 다이앤 클라이언토 (1962년 결혼 – 1973년 이혼)
미슐라인 로크브루네 (1975년 결혼)
자녀 아들 제이슨 코너리 (1963년생)
서명 파일:Signature_of_Sean_Connery.jpg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공식 사이트

1. 개요2. 생애
2.1. 007 이후2.2. 은퇴2.3. 은퇴 이후2.4. 사망
3. 출연작4. 평가5. 논란6. 여담

[clearfix]

1. 개요

파일:external/3.bp.blogspot.com/pikicast-859490909.gif

초대 제임스 본드이면서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배우이다. 멋쟁이 대머리의 대명사. 젊은 시절에는 노안이었는데[1] 오히려 나이가 들면서 미남미중년(나이스 미들)→미노년의 황금 테크트리를 완성했다.

2. 생애

노동자 집안 출신으로 같은 시기의 대다수 영국인 배우들과는 달리 정식 연기수업을 받지 않았다. 우유 배달부를 시작으로 영국 해군에서 수병으로 복무하는 등 잡다한 직업을 전전하다 미스터 유니버스 중량급에서 3위를 차지한 것을 계기로 연기 인생을 시작한다. 다만 당시 연기는 눈에 띄게 뻣뻣하고 어색해, 단역을 전전하며 빈곤한 생활을 보냈다. 그러다 007 제임스 본드역에 캐스팅된 것을 계기로 절치부심한 끝에 명배우로 각성했다.

007 캐스팅 직전에 찍은 영화 《지상 최대의 작전》(1962)[2]에서조차 연기가 어색하여 007 원작자 이언 플레밍은 이를 보고 고릴라 같다고 혹평한 바 있다.[3] 다수 평론가도 이에 동의했는데 제임스 본드 역으로 연기력이 발전한 후인 64년의 히치콕 영화 《마니》에서는 '같은 사람 맞나?' 싶을 정도로 안정된 연기를 보여준다.

2.1. 007 이후

제임스 본드 역과 함께 주로 액션이 필요한 배역을 많이 맡았지만 자신의 이미지가 007역에 묻혀간다고 판단, 고심한 끝에 배역을 거절하고 홀로서기에 나섰다. 국적불명의 이탈리아 영화나 C급 괴작 영화에 출연하는 등 어려움도 있었으나 《오리엔트 특급살인》으로 메이저 작품 복귀에 성공, 재기하게 된다.[4]


007 배역 거부 후 찍은 영화 중 가장 유명한 희대의 C급 컬트 SF 영화 《자도즈》(1973)의 예고편. 그런데 감독 존 부어만엑스칼리버로 칸 영화제 예술공헌상까지 받은 감독이다.

연기 도중 얼굴에 입은 부상으로 배우 생명이 위험에 처해 상처를 수염으로 가렸지만, 오히려 이후 그 수염이 그의 상징이 되었다. 넓어져만 가는 이마로 가발을 쓰거나 머리를 심는 등 노력을 계속했던 적도 있지만 결국 대머리 이미지를 밀어붙여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이런 이미지 변신 후 찍은 유명한 작품으로는 〈장미의 이름〉, 〈붉은 10월〉, 〈더 록〉이 있다. 1987년 《언터처블》에서 케빈 코스트너를 돕는 노장 경찰 말론 역을 멋지게 소화해서 그 해 아카데미상 남우조연상을 받았다.

다만 일부에서 《언터처블》에서 숀 코너리의 연기는 발연기라 불릴 만하며 오스카 수상 중 최악의 수상이라고 하기도 한다. 영화사 최고의 캐릭터 제임스 본드의 영화판 이미지를 구축한 공로를 인정받아, 일종의 공로상으로 받았다는 것. 그 당시 많은 평론가들이 공로상으로 간주했던 건 사실이지만 말론 경감은 흔히 말하는 '산전수전 다 겪은 현자' 캐릭터로, 코너리의 연기는 '명품 조연'이라는 표현에 걸맞았다. 이는 '언터처블'에 대한 평론가들의 몇몇 평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이 한창 준비 작업에 있던 1999년, 간달프역을 제의받은 적이 있다. 당시 뉴 라인 시네마는 영화수입의 10~15%를 출연료로 지불하겠다는, 지금 보면 엄청난 제의를 했다. 만약 숀 코너리가 출연에 응했다면 그는 4050억원을 받았을 것이다. 숀 코너리라 하면 제임스 본드라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그 당시 뉴스의 댓글도 재미있다. 코너리가 간달프를 하면 본드걸처럼 마법사 걸이 나온다든지... 하지만 코너리는 원작 소설도 읽었고 대본도 읽었지만 반지의 제왕 스크립트를 난해하다면서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 뉴질랜드에서 18개월이나 머물러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시하며 거부했다. 그 직후인 2000년에 기사작위(Knight Bachelor)를 받았다.

2.2. 은퇴

2003년 《젠틀맨 리그》에 출연했으나 이 과정에서 감독인 스티븐 노링턴과 극심한 마찰을 빚었고, 더 이상 연기를 하는 것에 환멸을 느껴 2006년에 공식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스티븐 스필버그로부터 인디아나 존스: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헨리 존스 박사 역으로 다시 나와달라는 제의를 받았고 은퇴 번복을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스필버그와의 예술관의 차이와 은퇴생활의 즐거움, 그리고 헨리 존스 박사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조연이라는 이유 때문에 결국 포기했다.[5] 이후 2005년 인터뷰에서 할리우드 영화 산업에 대해서 멍청한 제작자들이 능력있는 배우와 감독들을 질식시키고 있다고 강력하게 비판하였다. 이에 대한 질문이 계속되자 2006년, 조지 클루니, 스티븐 소더버그, 숀 펜 등을 근면하고 창의력있는 인물들이라고 언급하면서 돈 벌 생각밖에 없는 멍청하고 게을러빠진 할리우드 영화 시스템의 희생자들의 예시로 제시했다. 젠틀맨 리그 제작 과정에서 한이 굉장히 많이 쌓인 듯.

다만 2006년의 은퇴 선언 이후에는 그렇다고 해서 감독들이 자신을 다시 불러내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했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마피아들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 수준의 조건이 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영화 복귀 가능성은 완전히 끝난 것으로 보이며 2010년 8월 25일 80세 생일에 공식적으로 배우 은퇴를 재확인했다. 실사영화 마지막 연기는 위에서 언급한 젠틀맨 리그다.

2011년, 코너리의 친구인 마이클 케인은 텔레그래프와의 인터뷰에서 코너리에게 새로운 영화를 제작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가 "절대로 안 한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전했다. 더불어 케인은 코너리의 은퇴가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코너리에게 노인 조연 외에는 더 이상 시키려 하지 않아서 코너리가 실망한 것이 코너리의 중대한 은퇴 사유 중 하나라고 전했다. 코너리는 로맨스 연기를 좀 더 하고 싶었었다고...

다만 실사 연기 이후에도 성우 연기는 가끔 하고 있는데 2005년 그의 1963년 출연작이었던 007 위기일발이 게임화되자 제임스 본드 성우로 잠시 복귀했었다. 코너리 자신이 007 영화 중에서 위기일발을 자신이 제일 좋아하며, 손자들이 비디오 게임을 워낙 좋아해서 하기로 했다고. 2012년에는 애니메이션 미스터 빌리: 하일랜드의 수호자(원제: Sir Billi the Vet)의 주인공인 빌리의 성우를 맡기도 했다. 성우도 주인공 역만 맡은 걸 봐서 노인 조연 역할에 지쳤다는 설명이 설득력이 있긴 한 듯하다.

2.3. 은퇴 이후

은퇴 이후로는 한동안 인터뷰를 제외하고는 은둔에 가까운 생활을 하였다. 세금 문제 때문에 바하마에서 주로 거주하는 이유가 컸다. 세금문제는 지금도 코너리의 발목을 잡는 이슈인데, 2010년에는 스페인 마르벨라의 카사말리부에서 지방정부의 허락 없이 70여채의 호화 아파트를 건설하고 매각하고, 그 수익을 탈세한 혐의로 스페인 당국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결국 2015년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으나 이미지는 상당히 구겼다.

2013년에 돌연 알츠하이머설에 휩싸였다. 절친이라 불릴 만한 배우 마이클 케인이 인터뷰 도중 '숀이 요즘 기억력 감퇴로 고생한다'라고 언급했다며 독일의 언론 매체가 보도를 때린 것. 마이클 케인은 '(독일 언론 매체와는) 숀의 병세에 대해 다른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며 매체가 자신의 발언을 왜곡해서 보도했다고 주장하였다. 이후 2014년에 스코틀랜드 독립 운동에도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2015년 2월에 건강해 보이는 모습이 미국 마이애미 공항에서 목격되었기에 알츠하이머설은 그냥 루머로 여겨지는 듯하다.

한동안 조용히 지내다가 2014년 스코틀랜드 분리독립 투표때 2014년 스코틀랜드 독립운동의 열성적인 지지자로 전면에 나서서 독립 찬성 단체인 예스 스코틀랜드(Yes Scotland)[6]에 기부하는 등 독립에 한표를 던지자고 호소하였다. 하지만 정작 본인은 세금 문제 때문에 아내와 함께 바하마에서만 거주하고 있으며 영국에는 1년에 90일 정도도 있지 않았다. 이 때문에 스코틀랜드 독립을 지지하고 나서도 스코틀랜드 귀환은 안 해서 구설수에 올랐고 독립 반대론자들은 스코틀랜드가 독립하고 싶으면 코너리를 끌고 와서 세금을 뜯어낸 돈으로 지불하면 될 것이라고 조롱하기도 했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78309f68d5a3d069fdf7e681c3c2d3a7.jpg
여튼 이러한 성향 때문에 위 사진과 같이 영국 국내의 여러 공식석상에서는 스코틀랜드의 전통복장인 킬트를 입고 참석하는 멋진 모습을 볼 수 있다. 목에 건 것은 2000년 받은 기사작위(Knight Bachelor) 목걸이.

2017년 9월 27일에 근황을 담은 사진이 공개되었는데 미국의 뉴욕에서 촬영했다. 연세가 있는 만큼 지팡이를 짚으며 산책을 하고 있으며 외신의 보도로는 간병인의 도움을 받고 있다고 한다.

2.4. 사망

2020년 10월 31일, 90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가족의 발표에 따르면 잠자던 중에 평화롭게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파일:연합뉴스 로고.svg유족들의 인터뷰에 따르면 생전에 치매를 앓았다고 전해진다. 직접적인 사인에는 심장질환, 폐렴이 복합적으로 관여한 것으로 보인다.

3. 출연작[7]

4. 평가

'숀 코너리가 연기하면 숀 코너리가 그 배역이 되는 게 아니라, 그 배역이 숀 코너리가 된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 다른 배우가 같은 배역을 맡는 걸 상상하지 못할 만큼 잘한다는 뜻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배역이 배우에게 먹혀버리는 것이다. 게다가 은퇴할 때까지 말투에서 스코틀랜드 억양을 완전히 지우지 못했다는[8] 약점도 있었다. 영화 《붉은 10월》에서 그가 맡은 마르코 라미우스 함장과의 싱크로율을 생각하면 그 말이 농담은 아닌 듯하다.

몇몇 평자들은 오스카를 받은 언터처블 대신 그가 출연한 시드니 루멧 영화들을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배우로서의 평가와 별개로, 007 팬덤이 가장 사랑하는 제임스 본드이기도 하다. 숀 코너리의 영화들은 여전히 팬덤에서 높이 평가받는 고전이 되었으며 5대 본드인 피어스 브로스넌은 아예 코너리를 보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케이스. 스티븐 스필버그가 숀 코너리의 평생공로상(AFI Life Achievement Award) 행사에서 말한, "모든 남자가 되고 싶고 모든 여자가 갖고 싶어하는" 남자라는 표현이 그의 위상을 요약해준다. 2020년 8월, 14,000명의 팬들이 뽑은 최고의 제임스 본드 투표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

5. 논란

1965년 플레이보이와의 인터뷰에서 "여자를 때리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자를 때리는 방식으로 때리는 것은 권장하지 않겠다."("I don't think there is anything particularly wrong in hitting a woman, though I don't recommend you do it in the same way you hit a man.")라고 발언한 바가 있다.[9] 뿐만 아니라 1993년의 인터뷰에서는 여자가 남자랑 언쟁하는 것을 두고 "맞고 싶은 모양"("They want a smack.")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이 발언들이 문제되자 코너리는 문맥을 무시하고 선정적으로 인용한 것이라고 반박했지만 이후 그의 전처인 다이앤 클리엔토가 자신의 전기를 써서 코너리가 자신을 정신적, 육체적으로 학대했다고 폭로하면서 상당히 논란이 되었다. 코너리는 클리엔토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맞섰으나 기자들의 추궁을 우려하여 2006년 할리우드 페스티벌 참석을 취소했다. 이후 코너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여성을 학대하는 일을 정당화할 수 없다는 것이 자신의 입장이라고 밝혔다. 관련 링크 참조

6. 여담

  • 소싯적에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 '입단할 뻔'했던 적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아마추어 팀에서 축구를 잠시 했는데, 그 팀이 당시 맷 버스비가 주목하고 있던 팀과 연습 경기를 했다. 그 경기에서 숀 코너리는 월등한 체격과 날카로운 볼 감각으로 버스비 감독의 주목을 받았다. 허나 코너리는 맷 버스비의 입단 제의를 거절했는데, 이미 그때 그의 나이가 23살이었기 때문.
    당시 영국 프로축구 선수 급료는 지금과 비교해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고, 평균 선수 활동 기간도 30대 안팎일 정도로 짧았다. 그래서 겨우 7~8년 선수 생활을 하고 노후 걱정을 하느니[10], 착실하게 배우 인생을 설계해 나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고.
  • 유명한 미국 퀴즈쇼 Jeopardy!에 나온적이 있는데, 거기서 깽판을 치고 호스트인 알렉스 트레벡에게 패드립까지 치면서 Jeopardy 레전드 에피소드가 되었다.... SNL이 이걸 소재로 Celebrity Jeopardy라는 스케치를 만들게 됐다. 코너리를 포함한 3명의 연예인들이 Jeopardy를 하는 내용인데 연예인들이 완전 멍청이로 나온다(숫자가 뭔지 모른다든가... 기본 덧셈 뺄셈도 못한다든가....). 여기서 숀 코너리 역할은 미국의 정성호라 볼 수 있는 성대모사의 신 대럴 해먼드(Darrell Hammond)가 맡았다.[11]
  • 키가 188cm, 당시 사람 중에는 매우 크다.[12] 007 역을 맡은 배우 중 180cm 이하인 사람이 거의 없긴 하지만 조지 레이전비, 티모시 달튼과 함께 최장신. 한 때 보디빌딩을 했던 만큼 어깨도 엄청나게 넓은데, 그래서 수트 핏이 매우 잘 받는다.[13]
  • MSX로 나온 메탈기어 2 솔리드 스네이크빅 보스의 얼굴이 이 사람 얼굴을 기본으로 했다고 한다.(PS2용 MGS 3 섭시스턴스에 부록으로 들어간 버전에서는 얼굴이 MGS 2의 솔리더스 스네이크와 비슷하게 변경되었다. 물론 설정상 빅보스가 오리지널. 초상권 문제일 듯.
  • 2003년 뉴욕을 방문했을 때 8시간 동안 도시를 관람한 다음에 운전사에게 으로 5달러를 주었는데 8시간 부려먹고 팁이 5달러 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분개한 운전기사 폴 먼로가 고맙지만 됐다고 팁을 거부하였다. 이 일이 기사화되면서 스코틀랜드 타입의 구두쇠라고 구설수에 올라 이미지를 구겼다.
  • 한국어로 더빙할 때는 유강진 성우가 전담. 심지어는 케빈 코스트너판 《로빈후드》에서 카메오로 등장[14]할 때도 유강진이 연기를 했을 정도. 다만 MBC에선 이규연 성우가 생전에 전담하였다. 사후에는 MBC에서도 유강진 성우가 맡았다.
파일:external/images.rapgenius.com/540026199ddb08dc9d6f96048e836c3f.399x480x1.png
파일:external/i1.kym-cdn.com/7d6.jpg* 르네 데카르트와 닮았다.
  • 3×3 EYES에 나온 마법사 요괴 마드무라이가 사람세계에 사람으로 숨어살때 이름이 바로 숀 코너리였다...극중 코너리(90년대 해적판은 코넬리)라고 부르다가 딸이 우리 아버지 이름이 숀이라고 하자 주인공 후지이 야쿠모는 숀 코너리? 그 늙은이가 장난치나? 라고 어이없어 했다.
  • 2008년 네버엔딩 스토리라는 프로에서 세계적인 팝페라 가수 키메가 출연했는데
    당시 영상에서 숀코네리가 이웃에 살고 있고 키메라의 팬이라고 이야기 했다 당시 영상을 보면 키메라와 숀코네리가 웃으면서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이 방송에 나왔었다


[1] 바로 위 움짤 속 모습이 007 1편 닥터 노 때인데 32살이었다.[2]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연합군과 독일군 양쪽의 처지에서 영상화한 작품. 무려 180분의 상영시간에 당대의 톱스타와 당시에는 무명이었지만 이후 톱스타가 되는 수많은 배우가 총출연한 전쟁영화의 걸작이다. 원제목은 'The Longest Day'로 '사상 최대의 작전'으로도 번역하는 예도 있다.[3] 그래서 처음 007에 캐스팅되었을 때 이언 플레밍은 코너리를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 게다가 제임스 본드는 스파이 이전에 부유한 엘리트 캐릭터이다. 숀 코너리는 상류층이 아니었기에 그들의 문화를 잘 몰랐다. 처음 007에 캐스팅되었을 때 감독이 코너리를 데리고 다니면서 일일이 가르쳐줬을 정도. 하지만 촬영이 진행되며 숀 코너리를 지켜보던 플레밍은 그가 제임스 본드에 어울린다 인정하게 되었고, 아예 소설 속 본드를 숀 코너리의 고향 스코틀랜드 출신으로 바꾸었다.[4] 여담이지만 그의 동생 닐 코너리도 숀과 매우 닮았는데, 007로 숀이 유명해지자 한 이탈리아 제작사에서 닐 코너리를 주인공 -그것도 007의 동생이라는 설정!-으로 기용하여 'OK 코너리'라는 3류 첩보영화를 찍었다. M역에 실제 007 시리즈에서 M을 맡았던 버나드 리, 본드걸로는 007 위기일발의 다니엘라 비앙키 등 007 시리즈의 실제 출연진들까지 조연으로 기용했지만 불행히도 닐은 형과 외모만 닮았지 연기력은 전혀 닮지 않았고 영화는 대 참패. 그래도 한국 KBS 명화극장에서 '암호명 테투안'이라는 제목으로 방영한 적이 있다.[5] 사실 해리슨 포드가 크리스탈 해골의 왕국에 출연했을 당시 이미 숀 코네리가 최후의 성전에서 헨리 존스 박사 역을 맡았을 때의 나이를 뛰어넘어 버렸기 때문에 후속작에 출연하는 게 오히려 납득이 가지 않았을 수 있다.[6] 스코틀랜드 독립 주민투표에서 투표 용지의 문구를 "스코틀랜드가 독립국이 돼야 할까요?(Should Scotland be an independent country?)"로 정했기 때문에 선택지의 Yes=독립, No=영국 잔류를 의미하게 됐다. 그래서 찬성 진영에서 자신들의 단체 이름을 Yes Scotland로 정했다. 반면 독립 반대 진영에서는 자신들의 단체 이름을 베터 투게더(Better Together)로 정했다. 단체명에 No를 집어넣는 건 부정적 인상을 줄 수 있어인지 그걸 피하고 보다 긍정적인 뉘앙스가 되게끔 작명한 듯.[7] 국내 개봉 기준.[8] 못하는 게 아니고, 스스로 스코틀랜드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여겨서 굳이 고칠 노력은 안 한다고 볼수도 있다. 사투리 안 고쳐도 잘만 캐스팅되는데 뭐하러 고칠 것인가. 오히려 숀 코너리와 같은 스코틀랜드 출신 배우들의 영향으로 미국쪽에선 영국식 영어 악센트, 그중에서도 가장 뚜렷하고 개성있는 스코티시 악센트를 배우려고 하는 성우와 배우들도 많이 있다.[9] 다만 저 당시의 미국은 인종차별은 물론이고 남자가 여성을 차별하는 것도 공공연하게 이루어지는 일이었다. 저걸 하필 인터뷰에서 말해서 문제가 커졌을 뿐..[10] 실제 이 시기 영국 축구계는 은퇴 선수 생활 문제가 골칫거리 중에 하나였다. 축구 코치 자리는 한도가 있고, 급료는 영국 노동청에서 동결 시켜놓은 상태고, 선발 출전을 하지 않으면 보너스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이렇다 보니 대부분의 프로선수들은 일찍 은퇴해서 다시 기술을 배우거나 직업연수교육을 받았다. 이 당시 레전드 선수 중에 은퇴하고 목수배관공, 일러스터로 활동한 이들이 적지 않으며, 심지어 축구보다 인기가 많았던 크리켓 선수를 겸해서 활동한 선수들도 매우 많았다.[11] 대럴 해먼드(Darell Hammond)와는 다르다.[12] 6살 어린 워렌 비티와 거의 같다.[13] 사실 서양에서도 190cm 이상은 '좀 너무 큰 사람' 취급을 받는다. 물론 평균신장이 큰데다 카메라로 보정이 가능한 연예계에서는 좀 낫긴 하지만, 좀 연배가 있는 배우들의 경우 리엄 니슨만 해도 키가 너무 커서 배역을 따내지 못한 적이 있었다고 키가 2미터에 가까운 제임스 크롬웰은 괴물 취급을 받기도 했다고. 188cm라면 '멋진 장신'의 상한선에 가깝다. 그나마 최근에는 190이 넘는 배우들이 꽤 있어 상황이 나은 편.[14] 보통 이런 경우엔 무명 성우로 대충 때우는 편이다. 제작비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