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25 21:04:15

시드니 루멧

시드니 루멧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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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공로상 수상자
'''[[틀:아카데미 공로상 수상자|Academy Honorary Awa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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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프랭크 프리먼 아서 프리드 존 챔버스 오나 화이트 케리 그랜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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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제35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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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
시드니 루멧
(네트워크)
허버트 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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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베를린 국제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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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곰상
제6회
(1956년)
제7회
(1957년)
제8회
(1958년)
진 켈리
(Invitation to the Dance)
시드니 루멧
(12인의 성난 사람들)
잉마르 베리만
(산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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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47302E><colcolor=#ffffff> 시드니 루멧
Sidney Lumet
파일:zuYwoP6mTEAJu9pTZ7u3NKP67gu.jpg
이름 시드니 아서 루멧
Sidney Arthur Lumet
출생 1924년 6월 25일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사망 2011년 4월 9일 (향년 86세)
뉴욕 주 뉴욕 시
국적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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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직업 영화감독, 프로듀서, 배우
활동 1930년 – 2007년
신체 165cm
학력 컬럼비아 대학교
배우자 리타 갬 (1949년 결혼 ~ 1955년 이혼)
글로리아 밴더빌트[1] (1956년 결혼 ~ 1963년 이혼)
게일 버클리 (1963년 결혼 ~ 1978년 이혼)
메리 김벨 (1980년 결혼)
자녀 딸 에이미 루멧 (1964년생)
딸 제니 루멧 (1967년생)
1. 개요2. 경력3. 특징4. 주요 연출작5. 여담6.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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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거장 영화 감독이자, 각본가.

2. 경력

1924년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나 뉴욕에서 자랐다. 4살 때부터 아역 배우로 활동하기도 했다. 15살이던 39년에는 아주 짧은 길이의 간단한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42년에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입대하여 인도버마에서 레이더 수리병으로 복무하기도 했다.

연극 연출부터 시작한 루멧은 1950년 친구인 율 브리너의 도움으로 TV 연출을 시작하였고, CBS에서 많은 드라마를 연출하면서 TV 연출계의 신성으로 떠올랐다. 영화를 제작한 헨리 폰다의 선택으로 연출한 57년 작 《12인의 성난 사람들》로 베를린 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하며 루멧은 단숨에 메인스트림으로 진입했다.

루멧은 촬영감독, 각본가, 배우들과 같이 논의하면서 아이디어를 공유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그리고 본 촬영 전에 미리 엄격하게 리허설을 가지면서 배우들과 조율을 맞추는 것을 좋아했다.[2] 루멧의 영화에 기라성같은 배우들이 많이 출연한 이유는 이러한 면에서 기인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영화 속에서 배우들의 숨겨진 면을 최대한 끌어내는데 능통했다. 그는 배우들 사이에서 '배우들의 감독(an actor's director)'으로 불렸으며, 한 평론가는 '루멧에게 쓸 만한(Good) 배우들을 주면, 그 배우들이 훌륭한(Great) 배우가 될수 있는 자질을 찾아낼 것이다.'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루멧 자신이 배우 선정에 까탈스러운 편은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이름값이 떨어지는 배우나 구설수가 많던 배우도 곧잘 캐스팅해서 썼다. 액션에 특화된 배우로 여겨지던 빈 디젤을 법정물인 《Find Me Guilty》(2006)에 주연으로 세워서 디젤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게 했고, 섹시스타의 상징이던 샤론 스톤을 《글로리아》(Gloria, 1999)에 주연으로 세워 강인한 여성상을 연기시키기도 했다.[3] 또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토마스 크라운 어페어》로 유명세를 탔지만, 촬영장에서의 괴팍한 성격으로 악명을 떨친 페이 더너웨이는 루멧과 함께한 76년작인 《네트워크》를 통해 커리어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는 평가를 들으며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마틴 스코세이지우디 앨런처럼 시드니 루멧도 뉴욕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가 많다. 루멧은 할리우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감독이었다. 루멧은 '나는 앨런의 영화 속 세계관을 좋아한다. 그리고 뉴욕이 가진 수많은 면들, 이를테면 범죄와 예술, 지적 교양과 부패, 아름다움과 추함. 이 모든 것이 나에게는 영감이 된다. 이 도시가 리얼리티로 가득하다면, 할리우드는 그저 판타지로 충만한 곳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데뷔년인 57년 이후 80년대까지 왕성하게 활동했지만, 88년 작인 《허공에의 질주》 이후로 극심한 슬럼프를 겪는다. 89년에 숀 코너리, 더스틴 호프먼, 매슈 브로더릭이란 화려한 캐스팅을 보이며 만든 《패밀리 비즈니스》가 흥행과 평에서 망하고, 《밤으로의 긴 여로》 이래 두 번째 칸 영화제 경쟁 부분이었던 《A Stranger Among Us》나, 자신의 영화 《네크워크》의 병원 버전이라 할 수 있는 《Critical Care》 등 찍는 영화마다 비평과 흥행에서 줄줄이 참패한다. 그나마 루멧의 체면을 살려준 영화는 그의 장기인 '경찰, 사법 조직 내 부패와 내부고발자'의 소재를 다룬 《Q & A》(1990)[4]앤디 가르시아가 주연을 맡은 《Night Falls on Manhattan》(1997) 정도였다.

그리고 99년, 샤론 스톤을 주연으로 한 리메이크작인 《글로리아》가 존 카사베츠의 원작을 모독한 수준이라는 평까지 들으면서 비평과 흥행 양쪽으로 처절하게 망해버렸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는 TV 드라마 연출만 했을 뿐, 영화 쪽과는 멀어져 있었다. 2004년의 HBO TV영화인 《스트립 서치》[5]나 2006년작에 찍은 《Find Me Guilty》가 있지만 예전같은 명성을 되찾지는 못했다. 그나마 《Find Me Guilty》는 베를린 영화제 경쟁 부문에 진출했고, 평도 그럭저럭 괜찮았으나, 흥행은 260만 달러에 그치며, 1300만 달러로 저예산인 제작비도 못 건졌다.

이대로 커리어를 마무리하나 했던 노장은 2007년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6]을 통해 비평가들에게 찬사를 받으면서 그의 연출력과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시선이 녹슬지 않았음을 다시금 보여줬다. 그의 유작이 된 이 작품에는 에단 호크, 필립 시모어 호프먼, 알버트 피니[7], 마리사 토메이 등이 출연했다. 여러 평론가들의 2007년 영화 Top10에 다수 선정되는 등,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2011년 4월 림프종으로 86세의 나이로 맨하탄의 저택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와 친했던 우디 앨런은 그를 두고 '뉴욕 필름메이커의 정수'라 칭송했고, 마틴 스콜세지도 그의 영화를 두고 '우리의 통찰력은 그가 만든 <형사 서피코>, <뜨거운 오후>, <도시의 제왕> 같은 고전들로 인해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다.'라 말했다. 당시 뉴욕 시장이던 마이클 블룸버그도 그를 '우리 도시의 위대한 사관(史官)' 이라 칭했다. 스티븐 스필버그는 '영화사에서 가장 위대한 감독 중 한 사람'으로, 알 파치노[8]는 '그가 남긴 훌륭한 유산을 통해 많은 이들이 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가장 세련되고, 사려깊은 사람이었다.'라고 말했다. #
파일:시드니 루멧.jpg
아카데미 공로상을 수상한 시드니 루멧

아카데미에는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9], 《뜨거운 오후》(1975)[10], 《네트워크》(1976)[11], 《심판》(1982)[12]을 통해 감독상[13]에 4회, 그리고 《도시의 제왕》(Prince of the City, 1981)으로 각색상에 1회, 총 5회 노미네이트 되었다. 가장 아까운 해는 대체로 10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된 76년의 《네트워크》로 보는데, 훗날 후일담에 따르면 루멧은 시상식이 끝나고 나서 이 결과에 불같이 화를 냈다고 한다. 앞선 골든 글로브에서는 감독상을 수상했기 때문에 본인도 기대감이 꽤나 컸던 모양인듯 하다. 결국 2005년에 아카데미에서 평생 공로상을 수여해서 그 마음을 달래주긴 했다. 루멧 자신도 내심 감독상을 못 받은게 아쉬웠는지, 공로상 관련 인터뷰에서 '감독상 한번 받고 싶었는데.. 진짜 하나 정도는 받을 만 했다고 생각했다.'[14]라며 농담 섞인 말을 하기도 했다.

3. 특징

시드니 루멧은 그가 찾을 수 있는 최고의 협력자들을 모아 그들의 재능을 집중된 비전에 집중시킨 사려 깊은 감독이었습니다. (중략) 그가 눈에 띄는 시각적 스타일이 부족했다고 말하는 것은 칭찬입니다. 루멧은 모든 장면을 필요한 요소로 축소하고, 그것들을 촬영했고, "보이지 않게"라고 말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당신은 카메라에 대해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는 당신이 등장인물들과 이야기에 대해 생각하기를 원했습니다.
로저 이버트 #

시드니 루멧은 1957년에 만든 감독 데뷔작 12인의 성난 사람들(1957)부터 유작인 악마가 너의 죽음을 알기 전에(2007)까지 50년 동안 45편의 영화를 감독하고 TV 시리즈 하나를 연출했다. 거의 1년에 한 편 꼴인 이 페이스를 반세기나 유지하면서 현역으로 활동했으니 참으로 부지런한 감독이라 할 만하다. 그는 타고난 이야기꾼이며, 사회 비판과 뉴욕 소재의 드라마에는 대가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만한 감독이다. 루멧의 작품을 세 가지 특징으로 표현하면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 "활발한 스토리텔링", "사회적 사실주의"라고 설명 할 수 있다.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그를 "훌륭한 (영화)기술자이자, 동시에 따뜻한 인본주의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이동진은 "할리우드 역사상 이야기를 가장 잘 다룰 줄 아는 감독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

상술했듯이 배우들의 연기력을 잘 끌어내는 감독으로 유명하다. NPR은 루멧을 "배우들에게 모든 것을 바친 감독"이라고 평가했다. # 헨리 폰다, 말론 브란도, 폴 뉴먼, 윌리엄 홀든, 알 파치노[15], 숀 코너리, 캐서린 헵번, 더스틴 호프먼 등 할리우드의 내로라하는 배우들이 그와 함께 했다. 5편의 영화로 루멧과 가장 많은 영화를 찍은 숀 코너리는 시드니 루멧을 좋아하는 감독 중 한명으로 꼽았다. 실제로 몇몇 평자들은 코너리 최고작은 루멧과의 협업작이라고 평하기도 한다. 네트워크에서의 연기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페이 더너웨이는 "시드니는 세상에서 가장 재능있고 전문적인 사람 중 한 명이에요. 그는 내 연기에 많은 기여를 한 정말 재능 있는 사람이죠."라고 칭찬했다. #

연극, 희극 연출에서 출발하여 TV 드라마 연출을 거쳐 <12인의 성난 사람들>을 시작으로 영화 연출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 때문인지 첫 영화인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영화임에도 연극의 분위기가 상당히 강하다. 이외에도 테네시 윌리엄스의 《지옥의 오르페우스》(1959), 아서 밀러의 《다리에서 본 전망》(1962),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1962), 안톤 체호프의 《갈매기》(1968), 피터 셰퍼의 《에쿠우스》(1977) 등을 영화화했다. 저서로 <영화를 만든다는 것>(1995)이 있다.

4. 주요 연출작

5. 여담

  • 루멧의 딸인 제니 루멧(Jenny Lumet)도 앤 해서웨이를 첫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로 올려준 《레이첼 결혼하다》(Rachel Getting Married, 2008)의 각본을 통해 각본가로 데뷔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영화에서 소소한 배역들[17]을 맡으며 연기자로서 출발했으나, 누구처럼 자신도 재능이 없다는 걸 깨달은 모양인지 곧 포기하고 각본가로서의 길을 걷는다. 그러던 중 바로 이 작품을 쓰게 되는데, 이 각본을 본 루멧이 영화 《양들의 침묵》의 감독인 조너선 데미에게 각본을 봐달라고 소개시켜줬다고 한다. 영화 《맨츄리안 켄디데이트》(2004) 이후 다큐멘터리 연출에 전념하던 데미도 대선배의 권유로 접한 각본이 썩 마음에 들었던지 오랜만에 영화를 연출했다. 비록 흥행은 실패했지만 다수의 호평을 받았고, 제니 루멧도 여러 시상식에서 각본상을 받았다. 그러나 그녀가 각색을 맡은 모 블록버스터는 보기좋게 말아먹었다.
  • 1983년판 스카페이스의 연출을 할 뻔했다. 루멧과 제작자인 마틴 브레그먼, 배우 알 파치노는 73년 <형사 서피코>(Serpico)와 75년 <뜨거운 오후>(Dog Day Afternoon)에서 이미 함께 한 경험도 있었다. 하지만 올리버 스톤의 초기 각본을 보고 루멧은 상당히 실망했는데, 루멧은 마약과 연결된 정치 드라마에 더 무게를 싣고 싶어했기 때문. 결국 이러한 시각 차를 극복하지 못하고 루멧은 하차하며[18], 결국 브라이언 드 팔마가 연출을 하게 된다. 그래도 '마리엘 항구에서 온 이민자'라는 주인공 토니 몬타나의 이력은 루멧의 아이디어라고 한다.

6. 외부 링크



[1] 19세기 미국의 대부호 코닐리어스 밴더빌트의 5대손이다.[2] 첫 작품인 《12인의 성난 사람들》은 2주 간 치밀하게 진행된 리허설 덕분에 본 촬영은 정작 3주 만에 끝이 났다. 이렇게 엄격한 리허설은 배우의 연기력을 극대화하려는 감독의 노력임과 동시에, 부족한 예산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고육지책이기도 했다.[3] 물론 이 영화는 카사베츠의 원작을 반도 따라가지 못하는 망작이 되었고, 이후 루멧은 한동안 영화판에 진입하지 못하고 TV 드라마에 집중하게 된다.[4] 국내명은 영화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사랑과 슬픔의 맨하탄'이다. 루멧은 원작 소설을 보고 완전히 반해버려서 열성적으로 영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각본도 직접 썼다.[5] 9.11이후 제정된 애국자법이 제약하는 자유를 알몸 수색으로 비유하여 정면으로 까는 영화다. 글렌 클로즈, 매기 질렌할 등이 출연한 영화로 무슨 이유인지 실제 120분이었던 영화가 실방영때는 56분으로 대폭 짤렸다.[6] 각본을 쓴 켈리 마스터슨은 훗날 설국열차 각본을 쓴다.[7] 루멧의 74년 작품인 오리엔트 특급살인에서 에르퀼 푸아로를 연기했다.[8] <뜨거운 오후>, <형사 서피코> 2개의 작품을 함께 했다. 루멧은 파치노의 메소드 연기극찬한 바 있고, 서로의 사이도 친밀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아카데미 공로상 수상 때 루멧을 직접 소개했다.[9] 수상은 콰이 강의 다리의 데이비드 린[10] 제48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작품상 후보작들이 여러모로 엄청나다. 이 작품으로 감독상도 수상했으며, 차후에 아마데우스로 감독상과 작품상을 다시 한번 석권하는 밀로스 포먼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수상작이고, 다른 후보작으로는 스탠리 큐브릭의 《배리 린든》, 로버트 올트먼의 《내쉬빌》,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다. 전부 70년대 미국 영화의 걸작들로 손꼽히는 영화들이다.[11] 수상은 록키의 존 G. 아빌드슨.[12] 수상은 간디리처드 애튼버러.[13] 작품상에도 전부 노미네이트되었다.[14] 'I wanted one, damn it, and I felt I deserved one.'[15] 파치노는 형사 서피코뜨거운 오후에서 강렬한 연기로 극찬을 받았다. 물론 영화 두 편에 대한 평가도 모두 좋은데, 특히 뜨거운 오후는 지금까지도 최고의 걸작으로 회자하고 있다.[16] 알 파치노의 명연기로 유명한 걸작이며 실화를 각색하여 만들어진 영화다. 작중 음악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한 시퀀스만 나온다) 연출과 편집, 배우의 연기만으로 많은 것을 표현했다. 1990년대 한국영화 '개같은 날의 오후'는 이 영화의 제목을 오마주한 것이다. 영미권에서 매우 더운 날에 개가 헥헥대는 것에 비유하여 Dog day라고 부르는 걸 직역한 것.[17] 루멧의 영화 《허공에의 질주》에서 마돈나의 노래에 따라 춤을 추는 여학생이 바로 이 사람이다.[18] 하차 후 연출한 작품이 82년 작품인 폴 뉴먼 주연의 <심판>(The Verdi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