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17 21:36:44

더스틴 호프먼

더스틴 호프먼의 주요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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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주연상
제51회
(1979년)
제52회
(1980년)
제53회
(1981년)
존 보이트
(귀향)
더스틴 호프먼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로버트 드 니로
(분노의 주먹)
제60회
(1988년)
제61회
(1989년)
제62회
(1990년)
마이클 더글러스
(월 스트리트)
더스틴 호프먼
(레인 맨)
다니엘 데이 루이스
(나의 왼발)

파일:Kennedy Center honors.jpg
케네디 센터 공로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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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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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top:-7px;margin-bottom:-7px; margin-left:-11px; margin-right:-11px;"
1978년매리언 앤더슨, 프레드 아스테어, 조지 발란신, 아르투르 루빈스타인, 리처드 로저스
1979년에런 코플런드, 엘라 피츠제럴드, 헨리 폰다, 마사 그레이엄, 테네시 윌리엄스
1980년레너드 번스타인, 제임스 캐그니, 애그니스 데밀, 린 폰탠, 리언타인 프라이스
1981년카운트 베이시, 케리 그랜트, 제롬 로빈스, 헬렌 헤이스, 루돌프 세르킨
1982년조지 애벗, 릴리안 기쉬, 베니 굿맨, 진 켈리, 유진 오르만디
1983년캐서린 던햄, 엘리아 카잔, 프랭크 시나트라, 제임스 스튜어트, 버질 톰슨
1984년레나 혼, 대니 케이, 잔카를로 메노티, 아서 밀러, 아이작 스턴
1985년머스 커닝햄, 밥 호프, 아이린 던, 앨런 제이 러너, 프레더릭 로, 베벌리 실즈
1986년루실 볼, 레이 찰스, 제시카 텐디, 흄 크로닌, 예후디 메뉴힌, 앤서니 튜더
1987년페리 코모, 새미 데이비스 주니어, 베티 데이비스, 네이선 밀스타인, 알윈 니콜라이
1988년앨빈 에일리, 조지 번스, 마이어나 로이, 알렉산더 슈나이더, 로저 L. 스티븐스
1989년해리 벨라폰테, 클로데트 콜베르, 알렉산드라 다닐로바, 메리 마틴, 윌리엄 슈만
1990년디지 길레스피, 캐서린 헵번, 라이즈 스티븐스, 줄리 스턴, 빌리 와일더
1991년베티 콤덴, 로이 아커프, 아돌프 그린, 헤럴드 니콜라스, 로버트 쇼, 그레고리 펙
1992년라이어널 햄프턴, 폴 뉴먼, 조앤 우드워드, 진저 로저스,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 폴 타일러
1993년조니 카슨, 아서 미첼, 조지 숄티, 스티븐 손드하임, 매리언 윌리엄스
1994년커크 더글러스, 아레사 프랭클린, 모튼 굴드, 해럴드 프린스, 피트 시거
1995년자크 당부아즈, 메릴린 혼, 비비 킹, 시드니 포이티어, 닐 사이먼
1996년에드워드 올비, 베니 카터, 조니 캐쉬, 잭 레먼, 마리아 톨치프
1997년로렌 바콜, 밥 딜런, 찰턴 헤스턴, 제시 노먼, 에드워드 빌렐라
1998년빌 코스비, 프레드 엡, 존 칸더, 윌리 닐슨, 앙드레 프레빈, 셜리 템플
1999년빅터 보르게, 숀 코너리, 주디스 재스민, 제이슨 로바즈, 스티비 원더
2000년미하일 바리시니코프, 척 베리, 플라시도 도밍고, 클린트 이스트우드, 앤절라 랜즈베리 }}}}}}
21세기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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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top:-7px;margin-bottom:-7px; margin-left:-11px; margin-right:-11px;"
2001년줄리 앤드루스, 밴 클라이번, 퀸시 존스, 잭 니콜슨, 루치아노 파바로티
2002년제임스 얼 존스, 제임스 리바인, 치타 리베라, 폴 사이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2003년제임스 브라운, 캐럴 버넷, 마이크 니콜스, 로레타 린, 이작 펄만
2004년워렌 비티, 오시 데이비스 & 루비 리, 엘튼 존, 조앤 서덜랜드, 존 윌리엄스
2005년토니 베넷, 수잔 파렐, 줄리 해리스, 로버트 레드포드, 티나 터너
2006년주빈 메타, 돌리 파튼, 스모키 로빈슨, 스티븐 스필버그, 앤드루 로이드 웨버
2007년레온 플라이셔, 스티브 마틴, 다이애나 로스, 마틴 스콜세지, 브라이언 윌슨
2008년모건 프리먼, 조지 존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트와일라 사프, 더 후
2009년멜 브룩스, 데이브 브루벡, 그레이스 범브리, 로버트 드 니로, 브루스 스프링스틴
2010년멀 해거드, 제리 허먼, 빌 존스, 폴 매카트니, 오프라 윈프리
2011년바바라 쿡, 닐 다이아몬드, 요요마, 소니 롤린스, 메릴 스트립
2012년버디 가이, 더스틴 호프먼, 레드 제플린, 나탈리아 마라코바
2013년마티나 아로요, 허비 행콕, 빌리 조엘, 셜리 매클레인, 카를로스 산타나
2014년알 그린, 톰 행크스, 퍼트리샤 맥브라이드, 스팅, 릴리 톰린
2015년캐롤 킹, 조지 루카스, 리타 모레노, 오자와 세이지, 시실리 타이슨
2016년마르타 아르헤리치, 이글스, 알 파치노, 마비스 스태플스, 제임스 테일러
2017년카르멘 드 라발라데, 노만 레어, 글로리아 에스테판, LL 쿨 J, 라이오넬 리치
2018년셰어, 필립 글래스, 리바 매킨타이어, 웨인 쇼터, 해밀턴 팀 (린 마누엘 미란다, 토마스 카일, 알렉스 라카뫄르, 앤디 블렝큰불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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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top:-7px;margin-bottom:-7px; margin-left:-11px; margin-right:-11px;"
1952년1953년1954년1955년1956년
세실 B. 드밀 월트 디즈니 대릴 F. 재넉 진 허숄트 잭 L. 워너
1957년1958년1959년1960년1961년
머빈 르로이 버디 아들러 모리스 슈발리에 빙 크로스비 프레드 아스테어
1962년1963년1964년1965년1966년
주디 갈란드 밥 호프 조셉 E. 레빈 제임스 스튜어트 존 웨인
1967년1968년1969년1970년1971년
찰턴 헤스턴 커크 더글러스 그레고리 펙 조앤 크로퍼드 프랭크 시나트라
1972년1973년1974년1975년1977년
앨프리드 히치콕 새뮤얼 골드윈 베티 데이비스 핼 B. 월리스 월터 미리쉬
1978년1979년1980년1981년1982년
레드 스켈톤 루실 볼 헨리 폰다 진 켈리 시드니 포이티어
1983년1984년1985년1986년1987년
로런스 올리비에 폴 뉴먼 엘리자베스 테일러 바버라 스탠윅 앤서니 퀸
1988년1989년1990년1991년1992년
클린트 이스트우드 도리스 데이 오드리 헵번 잭 레먼 로버트 미첨
1993년1994년1995년1996년1997년
로렌 바콜 로버트 레드포드 소피아 로렌 숀 코너리 더스틴 호프먼
1998년1999년2000년2001년2002년
셜리 맥클레인 잭 니콜슨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알 파치노 해리슨 포드
2003년2004년2005년2006년2007년
진 해크먼 마이클 더글러스 로빈 윌리엄스 안소니 홉킨스 워렌 비티
2009년2010년2011년2012년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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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2020년
제프 브리지스 톰 행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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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1977년1978년
잉그리드 버그만 다이애나 로스 앙리 랑글루아 자크 타티 로버트 도프만
1978년1979년1980년
르네 고시니 마르셀 카르네 샤를 바넬 월트 디즈니 피에르 브롱베르제
1980년1981년198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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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레드포드 없음*
* 내정자의 수상 거부로 당해의 수상자를 공석 처리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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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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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주연상
제22회
(1969년)
제23회
(1970년)
제24회
(1971년)
스펜서 트레이시
(초대받지 않은 손님)
더스틴 호프먼
(미드나잇 카우보이)/(존과 메리)
로버트 레드포드
(내일을 향해 쏴라)/(내일을 향해 달려라)/(다운힐 레이서)
제36회
(1983년)
제37회
(1984년)
제38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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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
더스틴 호프먼
(투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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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에미상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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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주연상 - 미니시리즈 부문
제37회
(1985년)
제38회
(1986년)
제39회
(198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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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레이프 오브 리차드 백)
더스틴 호프먼
(세일즈맨의 죽음)
제임스 우즈
(프로미즈)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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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주연상 - 드라마
제36회
(1979년)
제37회
(1980년)
제5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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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더스틴 호프먼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
로버트 드 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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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호프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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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우주연상 - 뮤지컬 및 코미디
제39회
(1982년)
제40회
(1983년)
제4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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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스틴 호프먼
(투씨)
마이클 케인
(리타 길들이기)
남우주연상 - 미니시리즈
제42회
(1985년)
제43회
(1986년)
제44회
(1987년)
테드 단슨
(썸딩 어바웃 아멜리아)
더스틴 호프먼
(세일즈맨의 죽음)
제임스 우즈
(프로미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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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더스틴 호프먼.jpg
이름더스틴 호프먼 (Dustin Hoffman)
본명더스틴 리 호프먼 (Dustin Lee Hoffman)
국적미국 파일:미국 국기.png
출생1937년 8월 8일, 캘리포니아 주 로스엔젤레스
직업배우, 프로듀서
활동1958년 – 현재
학력패서디나플레이하우스
신장167cm
배우자앤 바이른 (1969 – 1980)
리사 가체겐 (1980 – )

1. 소개2. 작품 활동3. 성추행 스캔들

1. 소개

파일:external/cdn.cloudpix.co/dustin-hoffman-filmek-amiket-latnod-kell-cb-bdc-def4d9a2846e3a3da8e60be248a0cbaa-large-688116.jpg

미국배우. 1937년 8월 8일생. 캘리포니아로스앤젤레스 출신. 《졸업》, 《빠삐용》, 《레인 맨》, 《세일즈맨의 죽음》으로 유명한 배우이며, 《쿵푸팬더》의 시푸 역을 더빙하기도 하고 2012년에는 미드《머니 레이스》에도 출연하며 아직도 현역으로서의 활동이 풍부하다.[1]

동 세대인 알 파치노, 로버트 드 니로, 잭 니콜슨과 함께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연기파 배우이자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 영화 역사상 최고의 배우 중 한 명 으로 평가받는다.[2]

2. 작품 활동

스스로 키가 작고 못생겼다고 생각해[3] 배우는 꿈도 꾸고 있지 않다가 여자애들 관심을 끌 수 있을 까 싶어 연극을 시작, 66년경부터 무대에서 주목받기 시작했으며 영화의 단역으로 출연하다 67년 《졸업》의 주인공으로 출세하게 된다. 하지만 당시 평론가들과 기자들은 그가 잘 생기지 않았다고 뭐라고 했다. 당시엔 주인공=미남이라는 암묵적인 공식이 있었는데, 무명에다 키도 작고 평범하게 생긴[4] 호프먼이 주연을 한다는게 탐탁지 않았다고 한다.[5] 심지어 라이프 매거진은 대놓고 그가 못생겼다고 쓰기까지 했다... [6] 하지만 《졸업》의 후덜덜한 흥행으로 호프먼은 스타가 됐고, 그렇게 미남 아니면 터프가이 (찰스 브론슨, 리 마빈 리 반 클리프 등)로 양분되던 헐리우드에서 평범한 외모로 성공하면서 "주연은 꼭 미남이 해야 된다."하는 고정 관념을 타파했다. 심지어 미남의 기준이 그로 인해 조금 바뀌는 현상이 있었다고 한다.

무명시절 신혼부부였던 진 해크먼에게 빌붙어 살았는 데, 해크먼이 다른 룸메이트를 찾아줘서 내보냈다. 그 룸메이트는 로버트 듀발.

1972년에는 그의 필모그래피에서는 특이하게 이탈리아 감독인 피에트로 제르미의 바람둥이 알프레도(Alfredo Alfredo)를 추가했다. 스테파니아 산드렐리와 함께 주연으로 열연했는데, 물론 이탈리아 영화다 보니 그의 대사는 Ferruccio Amendola라는 성우에게 이탈리아어로 더빙될 수밖에 없었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와 《레인맨》으로 두번 아카데미상 남우주연상을 수상했고, 《투씨》로는 다섯 번째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에 후보로 오르면서 총 7번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76년 영화 《마라톤 맨》에선 달랑 사타구니만 가리고 밤거리를 달리는 명연기를 보여주기도 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Ishtar_poster.jpg
물론 그도 생각도 하기 싫은 실패작에 나온 것도 있는데 1987년에 나온 코미디 《이슈타르》(Ishtar)[7] 같은 경우 그와 이자벨 아자니, 워런 비티(이자벨 아자니 항목 보면 알겠지만 둘이 이 영화 나오면서 사귀기도 했다.) 같은 호화 캐스팅으로 나왔으나 평이나 흥행이나 쫄딱 망했다. 당시 엄청난 제작비인 5천만 달러 이상을 들여 만들고 배우들도 550만 달러라는 당시로는 거액을 받으며 주목받았으나 총흥행 수익이 1500만 달러도 되지 않았고 평도 극악이었다. 배우이자 감독인 여배우 일레인 메이가 감독했다가 이게 마지막 감독 영화(2016년 단짝이던 마이크 니콜스를 추모하는 다큐멘터리를 감독한게 그나마 신작.)가 되어버렸다. 오죽하면 그 다음 영화인 《레인맨》이 흥행과 비평에서 좋은 소리 듣은 것도 이 《이슈타르》가 너무나도 망해서 보상 차원으로 호평을 더했다는 미국 내 우스개까지 있었을 정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Billy_Bathgate.jpg
그리고 1991년에 주연을 맡은 갱영화 《빌리 베스게이트》[8]도 5천만 달러 이상 들여 만들어 1500만 달러를 벌며 흥행과 평에서 쫄딱 망해서 지금은 잊혀진 경우이다. 그래도 그는 이런 실패작 나왔다 이렇게 거론되며 넘어가지만 이 영화로 첫 주연급으로 나온 신인배우 로런 딘은 아예 사라진 이름이 되었다.[9] 더불어 브루스 윌리스도 이 영화에서 황당한 카메오로 나왔는데 같은 해 그가 주연한 망작 《허드슨 호크》가 쫄망하면서 그에겐 두 영화 다 거론하기 싫은 경우다.

이름에서 보듯 유태 혈통이 맞고, 큰 매부리코와 곱슬머리 등 샤일록같이 이미지가 보통 생각나는 전형적인 유대인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유대인 역으로 나온 적도 꽤 많다. 하지만 부모나 그도 비종교적이었고, 그는 "유대인들끼리 지내는 잔치도 즐겨본 적이 없고 하누카나 욤 키푸르같은 유대인 명절 같은 것 또한 집에서 지내지도 않았다."고 회상했다.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걸 알게 된 것도 청소년 때이고, 부모도 "무슨 핏줄이 뭐건 그게 귀족이라도 되는지 아니? 우린 그저 미국인이야."라고 강조하던 걸 듣고 자랐기에 막상 유대인이라는 걸 알고나서도 별 느낌도 없었다고 한다. 역시 유대인 배우 겸 제작자가 주연하고 만든 미트 페어런츠 시리즈에서는 적극적으로 유대인 노부모 역을 하였다.

위에 얘기 나왔듯 167cm 란 키는 지금 기준으로 보나 그때 기준으로나 단신이다. 덕분에 작은 거인(Little big man)이란 영화의 주연을 맡기도 했고, 역시 고만고만한 단신인 톰 크루즈와 형제로 나온 레인맨도 있다. 여장 남자 역을 하였던 투씨도 체격 덕이었을 것이니, 연기력과 노력으로 단신이란 단점을 극복한 케이스라 하겠다.

현재는 파파라치와 즐겁게 숨박꼭질도 하고 사이좋게 놀고 다니신다.

한국에서는 거의 대부분의 더빙을 배한성이 전담하고 있다. 그러나 2012년과 2015년에 KBS1에서 방영되었던 《후크[10]와 《아메리칸 셰프[11]나 MBC 등 타방송사에서 방영되었던 호프만의 외화 작품들에서는 이정구김기현 등 다른 성우가 더빙하기도 했다.

으레 메소드 연기자들은 괴팍하다는 이미지가 있는데 남주인공을 맡은 더스틴 호프만은 실제로 괴팍한 면이 있다. 크레이머 대 크레이머에서 이혼한 아내 역으로 분한 메릴 스트립이 더스틴 호프만의 괴팍함 탓에 꽤 고생했는데 연기 똑바로 하라는 의미로 뺨을 때리기까지 했다.[12] 또 레스토랑에서 언쟁하는 씬에서는 말미에 분에 못이겨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면서 와인잔을 벽 쪽으로 날려버려 깨트린다. 근데 문제는 이게 애드립이란 것. 촬영 직전 더스틴 호프만은 카메라 감독에게만 그 사실을 알렸고[13] 아무것도 모르는 불쌍한 메릴 스트립은 놀란 와중에서도 프로정신으로 감독의 컷사인을 기다렸고 이후 너무 놀란 나머지 더스틴 호프만에게 분노를 표했다.

3. 성추행 스캔들

세일즈맨의 죽음의 촬영 당시 인턴으로 활동하던 안나 그레이엄 헌터가 폭로를 하게 됨으로써 성추행 스캔들이 드러나게 되었다.[14]이로서 하비 와인스틴, 존 토백, 브랫 레트너, 라스 폰 트리에, 올리버 스톤, 케이시 애플렉, 케빈 스페이시 등에 이어서 유명한 헐리우드 인사가 성추행 스캔들에 연루되게 되었다.


[1] 머니 레이스는 경마에 관한 미드였는데 동물단체의 항의로 첫 시즌 후 종영했다...[2] 실제로 그는 여장남자부터 인자한 스승, 사회부적응자와 장애인까지 항상 다른 캐릭터를 그것도 완벽하게 연기해왔다.[3] 벤 애플렉처럼 잘 생겼다면, 연기력쯤은 포기할 수 있다고 말했을 정도로 외모 고민이 심했다.[4] 졸업에서 보면 코가 좀 커서 그렇지 나름 괜찮게 생겨 보인다. 키만 컸더라면 못생겼다는 소리는 안 들었을 정도.[5] 졸업의 원작소설에 묘사된 주인공은 키가 큰 금발 백인이었는데, 호프먼은 키도 작고 갈색 머리에 유대인이었으니. 실제로 처음 오디션 제안을 받았을땐 누가 장난치는줄 알았다고 한다.[6] "만약 자신의 얼굴이 자신의 재산이 된다면 더스틴 호프만은 평생 가난했을 것이다 (if Dustin Hoffman's face were his fortune, he'd be committed to a life of poverty)"[7] 비디오판 제목은 '더스틴 호프먼의 사막 탈출'.[8] 망한 영화지만 특이하게도 1세대 마피아의 몰락과 세대교체를 다루는 실화 기반 갱스터 무비다. 미국 갱스터의 역사에 관심이 많은 사람한테는 의미가 있는 영화.[9] 그 이후에 맡은 그나마 인상적인 역할을 뽑으라면 가타카의 주인공의 동생 정도. 이 가타카도 개봉 당시에는 흥행에 참패하고 후에야 명작으로 재평가받았다.[10] 단, 이 경우는 배한성이 자신의 전담 1순위인 로빈 윌리엄스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이정구에게 넘어간 것이다.[11] 여기서는 김규식이 맡았다.[12] 여지없이 그냥 구타다. 메릴 스트립은 1975년 뉴욕 브로드웨이출신부터 소피의 선택까지 극장 바닥부터 올라온 연기를 발판을 삼아온 실력파였지만(사실상 스트립은 브로드웨이에서부터 재능파 신동이라는 얘기가 파다했다.) 연기를 할때만 격렬한 표현을 사용할뿐 작품 외에서 지금처럼 동료와 원만했었다. 후문에 의하면 호프만이 스트립의 기를 죽이려고 구타했다는 의견이 크다. 짚고갈 점은 둘다 똑같은 메소드 배우임에도 불구하고 메릴 스트립은 동료들과 원만한데에 비해 호프만은 그렇게 동료에게 폭력적이였다는 것. 이후 메릴 스트립은 더스틴 호프만과 두 번 다시 만나면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한다.[13] 그마저도 화면에 못 잡을까봐 알린 것이다. 확실히 더스틴 호프만이 일어서서 프레임 아웃이 됐는데도 유리잔을 찍기 위해 그냥 쭉 찍는다.[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