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 | ||||
감독상 | ||||
제32회 (1979년) | → | 제33회 (1980년) | → | 제34회 (1981년) |
앨런 파커 (미드나잇 익스프레스) | →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지옥의 묵시록) | → | 구로사와 아키라 (카게무샤[1]) |
역대 골든 글로브 시상식 | ||||
감독상 | ||||
제29회 (1972년) | → | 제30회 (1973년) | → | 제31회 (1974년) |
윌리엄 프리드킨 (프렌치 커넥션) | →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대부) | → | 윌리엄 프리드킨 (엑소시스트) |
제36회 (1979년) | → | 제37회 (1980년) | → | 제38회 (1981년) |
마이클 치미노 (디어 헌터) | →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지옥의 묵시록) | → | 로버트 레드포드 (보통 사람들) |
각본상 | ||||
제29회 (1972년) | → | 제30회 (1973년) | → | 제31회 (1974년) |
패디 체이예프스키 (종합병원) | →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리오 푸조 (대부) | → | 윌리엄 피터 블래티 (엑소시스트) |
역대 새턴 시상식 | ||||
영화 감독상 | ||||
제18회 (1991년) | → | 제19회 (1992년) | → | 제20회 (1993년) |
제임스 카메론 (터미네이터 2: 심판의 날) | →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 → | 스티븐 스필버그 (쥬라기 공원) |
역대 칸 영화제 | ||||
국제영화제 그랑프리[2] | ||||
제26회 (1973년) | → | 제27회 (1974년) | → | 제28회 (1975년) |
앨런 브리지스 (하수인) 제리 샤츠버그 (허수아비) | →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컨버세이션) | → | 모하마드 라크다하미 (불타는 해의 연대기) |
황금종려상 | ||||
제31회 (1978년) | → | 제32회 (1979년) | → | 제33회 (1980년) |
에르마노 올미 (나막신 나무) | →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지옥의 묵시록) 폴커 슐뢴도르프 (양철북) | → | 밥 포시 (재즈는 나의 인생) 구로사와 아키라 (카게무샤[3]) |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Francis Ford Coppola |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출생 | 1939년 4월 7일 ([age(1939-04-07)]세) | |
미국 미시건주 디트로이트 | ||
신체 | 182cm | |
가족 |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부모 | 카르마인 코폴라, 이탈리아 코폴라 |
배우자 | 엘레노어 코폴라 | |
자녀 | 지안 카를로 코폴라, 로만 코폴라, 소피아 코폴라 | |
조부모 | 프란체스코 페니노 | |
형제자매 | 형 오거스트 코폴라[4], 여동생 탈리아 샤이어[5] | |
손자 | 지아 코폴라, 로미 마스 | |
학력 | 호프스트라 대학 (학사)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석사) | |
직업 | 영화 감독, 각본가, 영화 제작자 |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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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영화감독.윌리엄 프리드킨, 피터 보그다노비치와 함께 미국의 1970년대를 풍미했던 거장 감독이다. 이 시기 그는 〈대부 3부작〉 중 1, 2편, 〈컨버세이션〉, 〈지옥의 묵시록〉 등을 감독하며 그 자신의 명성을 드높였다.
2. 생애
이탈리아계 미국인 부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카마인 코폴라'는 음악가로 훗날 〈지옥의 묵시록〉의 지휘자를 담당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굳이 아버지를 거론하지 않아도 코폴라 가문 자체가 예술 관련 명문가로 널리 알려졌다.놀랍게도(!) 로저 코먼이 발굴한 로저 코먼 사단 중 일원으로서 1963년 코먼이 제작한 호러 영화 〈디멘시아 13〉에서 감독과 각본으로 데뷔했다. 학생 시절부터 리더십이 강해 대학 연극부를 이끌었으며, 각본을 잘 쓰기로 유명해 영화사들의 시나리오를 봐주는 일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자기 주장이 강하고 배우들을 통제하는 데 능수능란하여 기대를 받다가 독립 장편 영화 〈레인 피플〉로 차츰 이름을 알렸고, 곧 〈대부〉 프로젝트에 고용됐다. 영화사는 그를 재능 있는 신인 정도로 여겼으나 코폴라는 특유의 정치술과 리더십을 발휘하여 자기 입맛대로 영화를 만들었고, 그렇게 대부 시리즈는 역사에 남을 성공을 이루어낸다. 그 뒤로 〈컨버세이션〉, 〈지옥의 묵시록〉 등 황금종려상을 2회나 수상하며 70년대를 자신의 시대로 만들었다.
고전 그리스 비극에 일가견이 있으며 인물간의 신화적 갈등(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등)을 변주하는 데 탁월하다. 어릴 적부터 극단에서 짬을 쌓은터라 배우들 연기 연출에도 도가 텄다. 메이킹 영상을 보면 알 파치노를 앉혀놓고는 똑같이 따라하라며 직접 연기를 시연하거나, 게리 올드만과 영화를 찍을 때는 올드만이 고집을 피우자 일부러 스탭들 보는 앞에서 고래 고래 모욕을 줘가며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지옥의 묵시록〉을 찍을 때는 말론 브란도가 말을 안 듣는 것은 기본이고 체중까지 수십 키로를 넘겨서 현장에 등장하자, 아예 어둠 속에 그를 파묻어 버리고 자기 멋대로 독백하는 것을 찍어 명장면으로 만들어냈다.즉 대배우들 앞에서 전혀 기 죽지 않은 채 자신의 뜻대로 컨트롤하여 결과물을 뽑아내는 것이다.
또한 명실상부 블록킹 (연기 동선) 연출의 대가이며, 실내에서 벌어지는 인물들의 힘의 대결, 심리적 표현을 영화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는가에 있어선 1970년대의 1인자였다. 사업가 기질과 정치적 능력이 특출나 영화사의 입김을 감당해내면서도 자신이 원하는 선택과 결과를 이끌어내는 데에는 교과서적인 인물이다. 자신의 고집을 밀어붙이면서도 적을 만들지 않고 거대한 현장을 이끌어나가는 능력이 있고, 예술적인 능력 이외에도 영화 제작의 현실적 조건에 대한 판단력이 뛰어났다.[6]
시간이 흐를 수록 사업가에 가까운 행보를 보였다. 이탈리아계 미국인들이 대부분 그렇듯 혈연과 인맥을 중시하면서 이런 저런 사업을 많이 벌린 편이다. 가족들 대부분을 영화계에 입성시켰고 노인이 된 현재는 자신의 이름을 딴 포도주 농장을 경영하며 편안히 살고 있다. 그 밖에도 영화 '대부'에서 여동생 탈리아 샤이어는 마이클 콜레오네의 여동생 코니 콜레오네로 출연하고[7] 친딸 소피아도 마이클의 딸로 출연하는데 아기였을 때 연기는 그럭저럭 넘어갔으나, 어른이 되어서 출연한 대부 3부는 그녀의 발연기가 영화의 평가를 떨어뜨리는 요인 중 하나로 작용했다. 그로 인해 소피아 코폴라는 각종 타블로이드에서 아버지와 비교되는 일이 많자 연기를 포기하고 사진촬영을 비롯 이런 저런 예술과 관련된 일을 하다 영화감독으로 전업하고 처녀 자살 소동으로 데뷔하였다.[8]
〈대부〉(1972) - 〈컨버세이션〉(1974) - 〈대부 2〉(1974) - 〈지옥의 묵시록〉(1979) 이라는 4연타석 홈런을 치면서 아카데미 시상식 최우수 작품상을 2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2번[9]이나 받는 등 화려한 1970년대를 보냈지만, 〈지옥의 묵시록〉 이후 코폴라의 영화들은 1970년대의 빛나는 작품들과는 다르게 매우 평범한 수준이다. 물론 〈대부 3〉를 비롯해 영화를 계속 만들기는 하지만, 주로 기획이나 제작에 더 많이 참가하고 있다. 물론 이후에도 기획 프로필을 보면 은근히 인지도 있는 영화가 많다. 그리고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1992) 나 〈럼블피쉬〉, 〈아웃사이더(영화)〉 등의 우수한 작품을 감독했다. 더불어 제작자로서 여러 영화도 제작, 기획했는데 〈슬리피 할로우〉나 지퍼스 크리퍼스 시리즈 같은 영화 제작, 기획도 맡았으며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카게무샤〉를 조지 루카스와 함께 공동 제작하기도 했다.
1997년 제작된 맷 데이먼, 클레어 데인즈, 대니 드비토 주연의 〈레인메이커〉 이후, 2000년대부터 만든 영화들은 평가들이 매우 안 좋다.
2007년 마틴 스코세이지가 〈디파티드〉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을 때, 스티븐 스필버그, 조지 루카스와 함께 시상자로 나와서 감독상을 받는다는 건 기분좋은 일이라고 멘트를 했다.
더불어 현재 캘리포니아에서 포도주 제조용 포도 농장을 경영하고 있으며, 자신의 이름을 딴 포도주를 판매하고 있다. 한국에도 정식 수입 중이며, 대형마트나 인터넷 쇼핑몰 등에서도 쉽게 구입이 가능하다.[10] 2013년에 해당 사업 관련해서 한국을 찾았는데 인터뷰 사진 하나 남기지 않아서 팬들도 소식을 몰랐다. 인터뷰도 영화 매체가 아닌 비즈니스 언론에서 진행했다. 이외에도 리조트, 레스토랑들도 운영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더 이상 신작 연출은 맡고 있지 않지만 그래도 기존 연출 작품들에 대한 애정은 깊은지, 현재도 간간히 자신이 연출한 작품들의 재편집판을 내놓고 있다. 2019년에는 '지옥의 묵시록'의 또다른 감독판[11]인 파이널 컷을 내놓았으며, 2020년에도 대부3의 재편집판인 'THE GODFATHER CODA: THE DEATH OF MICHAEL CORLEONE'를 개봉했다. 트레일러 영상에서 아직도 정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영상
3. 여담
- 마틴 스코세이지의 마블 영화 발언에 대해서 옹호하기도 했다. # 하지만 표현의 수위에 대해 옹호 측으로부터도 지나쳤다는 비판을 받았다.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에 대해서는 좋은 평을 남겼다. #
- 〈대부 1〉 촬영 당시엔 신인 영화감독이라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자신이 경질될 시 백업 감독으로 엘리아 카잔 감독을 선정하는 등의 횡포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지만, 〈대부 1〉의 성공 후엔 코폴라 자신이 〈대부 2〉 감독으로 마틴 스코세이지를 추천할 정도로 상황이 역전됐다.
- 키가 182cm로 〈대부〉의 콜레오네 가족을 연기했던 배우들보다 장신인데, 그 배우들과 함께 찍은 사진에서는 그들보다 더 작아보인다. 이는 배우들이 죄다 키높이를 신었기 때문이다.
- 2019년 경부터 사람들이 기억하던 푸근하고 살집있는 모습과 달리 굉장히 수척한 모습으로 공식석상에 나타나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 아닌가 걱정 어린 여론이 있었으나, 코폴라 본인 스스로 건강을 위해 비만 클리닉을 다니며 체중을 감량한 것이라고 한다. 64 lb(29.0299 kg) 정도 감량했다고.#1#2
4. 작품들
* 대부 시리즈 - 영화 역사상 최고의 걸작 중 하나로, 1970년대 그의 전성기를 열어줬으며, 또한 그의 명성을 널리 알린 작품이다. 1990년(1편), 1993년(2편) National Film Registry 등재 작품.
- 컨버세이션 - 진 해크먼이 도청기술자로 출연하였고 해리슨 포드도 출연했다. 반전이 인상적으로 해크먼은 훗날 〈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에서 또 도청 기술자로 출연했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 지옥의 묵시록 - 흥행에서 성공은 했으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코폴라 자신은 경제적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그래도 비평쪽에선 호평받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았으며 리덕스가 나오는 등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2000년 National Film Registry 등재 작품.
- 럼블피쉬 - 젊은 시절의 맷 딜런과 미키 루크가 출연했다. 흑백 영화인데 주인공인 모터사이클 보이가 흑백 색맹이라서 그렇다. 니콜라스 케이지도 나오며 제법 호화 캐스팅이지만 흥행은 별로 좋지 않았다. 1천만 달러로 만들어서 290만 달러를 버는데 그쳤다.
- 아웃사이더 - 럼플피쉬에 출연했던 맷 딜런이 다시 출연하였으며, S.E. 힌튼의 소설을 원작으로 하여 만들어진 작품이다. 수작으로 평가 받으며 미국 현지에서 크게 성공하여 현재까지 권장 영화로 알려지고 있다. 그리고 브랫 팩 군단의 시초를 만들어 냈다.
- 마음의 저편 - 평가는 그럭저럭이었지만 흥행에서는 대참패를 거둬 코폴라에게 타격을 준 영화. 제작비가 2,600만 달러[12]였는데 북미에서 겨우 63만 달러를 벌었다. 덕분에 코폴라는 파산 지경에 몰렸고, 이후의 영화들 중에는 이때 생긴 빚을 갚기 위해 찍은 것이 많다.[13]
- 커튼 클럽 - 마피아를 소재로 했지만 대부와는 다른 성향의 작품. 이름없던 시절의 니콜라스 케이지가 나왔으며 리처드 기어, 다이앤 레인, 그레고리 하인스, 로렌스 피시번 등 제법 호화캐스팅이었지만, 제작비 5,800만 달러에 겨우 2,500만 달러를 버는데 그쳤다.
- 페기 수 결혼하다 - 캐슬린 터너와 니콜라스 케이지가 출연한 1986년작. 영화 평가는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제작비 1,800만 달러로 들어 흥행수익이 4,100만 달러를 기록하여 지옥의 묵시록 이후 오랜만에 흥행 성공하였으며, 아카데미 시상식에도 여우주연상(캐슬린 터너), 촬영상, 의상상 3개 부문에 후보로 올랐다.
- 병사의 낙원 - 제임스 칸, 안젤리카 휴스턴, 제임스 얼 존스가 출연한 1987년작이며 이 영화도 평가가 좋지 않았으며 제작비 1,300만달러로 들어 520만 달러에 버는데 그쳤다.
- 터커 - 작품에 대한 평가는 좋았지만 흥행에서는 참패한 1988년작. 자동차 회사를 새롭게 세워 획기적인 차량을 만들어냈으나 포드와 GM같은 대기업의 횡포로 몰락해 비참하게 사라진 실존인물 프레스턴 터커(1903~1956)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골든 글로브 남우조연상(영화부문), 전미 비평가 협회상 남우조연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프로덕션 디자인상 수상작.
-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 - 드라큘라를 로맨스 영화로 만들었다. 게리 올드만이 악역으로 출연했지만 로맨틱한 악역으로 출연했다. 평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14] 게리 올드만은 자신 특유의 캐릭터 해석력으로 색다른 분위기와 말투로 사람을 홀릴 듯한 그만의 드라큘라를 창조해냈다. 4000만 달러로 만들어져 2억 1500만 달러를 벌어들이며 흥행에도 성공했다.
- 잭 - 1996년작. 로빈 윌리엄스가 조로증 환자로 분한 작품. 느와르나 대하극 위주의 감독의 이력으로서는 독특한 성격의 작품(코미디, 가족물)이지만 이렇다 할 반응을 얻지는 못했다.(로튼토마토 신선도 19%)
- 레인메이커 - 1997년작으로 법정 드라마이다. 간만에 괜찮은 수작이 나왔다는 평이나 90년대 이후 코폴라 감독의 작품 이력이 그렇듯 흥행에는 실패하였다.
- 유스 위드아웃 유스 - 코폴라 최초의 디지털 영화. 루마니아에서 촬영한 영화이다. 팀 로스가 주연으로 나온다. 미국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으나 프랑스와 유럽권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하스미 시게히코, 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가 그들의 대담을 기록한 책 '영화장화'에서 해당 작품에 대해 호평을 하기도 했다.
- 테트로 - 2009년작으로 럼블피쉬처럼 흑백 영화인데 이것도 실패하였다. 5백만 달러로 만들어서 263만 달러를 버는데 그쳤다.
- 트윅스트 - 2011년에 제작된 호러영화. 700만 달러로 만들어진 저예산 호러물...이며 미국 흥행 집계도 안될 정도로 쫄딱 망했다. 저예산 호러 영화라는 점을 생각하면 평작 수준에는 들어가지만 감독 커리어에서는 엄청난 졸작으로 악평받고 있다!. 그러나 유럽과 일본 등의 작가주의 비평계에선 호평을 받아 카예 뒤 시네마 2012년 베스트 영화 3위, 하스미 시게히코가 뽑은 2012년 베스트 영화에 선정되었다.
- 메갈로폴리스 - 연출을 맡으며, 9.11 이전 뉴욕의 이야기를 그린다. 20년 동안[15] 준비해온 프로젝트로, 지옥의 묵시록보다도 훨씬 많은 제작비가 투입되었다고 한다. 지옥의 묵시록 뺨칠 정도로 제작에 엄청난 난항을 겪었는데, 제작비 문제 때문에 기획 이후에도 한참동안 실제로 촬영되지 못하다가 겨우 드라큘라 등의 성공 덕에 여유가 생긴 코폴라가 제작을 재개했더니 바로 9.11 테러가 터지는 바람에 사회 분위기에 맞지 않다고 장기간 제작이 중단되었으며, 제작이 재개된 후에도 또다시 제작비 문제가 발목을 잡아 투자사를 찾지 못해 코폴라가 사비로 그 대부분을 충당하는 등 제작과정 자체가 웬만한 영화보다 더 스펙터클했다. 어쨌든 이 우여곡절 끝에 2023년 3월에 촬영이 마무리되었으며, 2024년 9월 27일에 정식 개봉할 예정이다. 애덤 드라이버, 포레스트 휘태커가 출연한다. 이런 와중에 코폴라가 엑스트라 여배우를 성추행하려 했다는 의혹으로 악재가 터졌다. 코폴라와 프로듀서는 그런 일은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는 상태.
5. 관련 문서
- 코폴라 가문 - 집안인 코폴라 가문 자체가 영화 집안으로 아내는 영화 제작자, 딸인 소피아 코폴라도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며 그녀의 오빠인 로만 코폴라도 뮤직 비디오 감독이자 영화 감독이다. 조카인 니콜라스 케이지(이 이름은 예명)와 크리스토퍼 코폴라[16]도 영화인이다. 웨스 앤더슨 감독 영화에 자주 나오는 제이슨 슈워츠먼도 코폴라의 조카이며, 손녀인 지아 코폴라도 2013년 연출데뷔를 하였다.
[1]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본인과 조지 루카스가 제작한 작품이다.[2] 1964~1974의 최고상의 명칭. 현재 황금종려상과 동일한 상[3]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본인과 조지 루카스가 제작한 작품이다.[4] 대학교수로 차남이 니콜라스 케이지이다.[5] 장남이 제이슨 슈워츠먼이다.[6] 물론 거장으로 인정받아 전권을 부여받은 〈지옥의 묵시록〉 제작 당시에는 과도한 야심 덕분에 스스로 죽을 맛을 보기도 했다.[7] 그 외에도 록키 시리즈에서 록키의 아내 애드리안 페니노를 연기했다.[8] 이후 도쿄를 배경으로 스칼렛 요한슨, 빌 머레이가 주연한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로 아카데미 감독상에 여성으로서는 처음 지명되었다. 다만 소포모어 징크스를 겪는지 커스틴 던스트, 엠마 왓슨과 작업한 영화들의 평은 미묘한 편이다. 그래도 2017년작 매혹당한 사람들로 칸 영화제에서 감독상을 수상해 반등에 성공했다.[9] 황금종려상 2회 수상을 기록한 감독은 2023년 기준으로 9명에 불과하다. 알프 셰베리, 빌레 아우구스트, 에밀 쿠스트리차, 이마무라 쇼헤이, 다르덴 형제, 미카엘 하네케, 켄 로치, 루벤 외스틀룬드 등 면면이 쟁쟁하다.[10] 비슷하게 〈대부 2〉의 비토 콜레오네가 자신의 가게에서 생산한 올리브유를 팔기도 한다.[11] 첫 감독판으로 2001년판인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가 나온 바 있으나 미완성 장면이나 호흡이 느려서 지루한 장면까지 전부 억지로 우겨넣은 것 때문에 평가가 되려 원본보다 좋지 못했다. 비판을 의식한 것인지 파이널 컷에선 그러한 장면들이 아예 삭제되거나 그럭저럭 개연성 있게 편집된 편.[12] 참고로 원래는 제작비가 200만 달러에 불과했는데 엄청 뛰어오른 것이다. 코폴라는 지옥 같은 지옥의 묵시록 촬영 이후, 쉬어가는 느낌으로 소품이던 이 영화를 찍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특유의 도전 의욕이 발생하여, 당시 새로운 매체이던 비디오로 영화를 촬영할 것을 결심하고, 이때의 시행착오로 제작비가 엄청나게 높아졌다. 영화 자체가 흥행과 거리가 멀었고, 영사 방식 등의 문제로 결국 기록적으로 망했고, 이후 코폴라의 경력 내내 발목을 잡았다.[13] 대표적인 예가 대부3. 대부는 2편까지만 찍을 것이라 계획했지만, 경제적 사정이 너무 안 좋자, 결국 다시 손을 댔다. 나중에 자기 입으로 여러차례 "대부3? 돈 때문에 찍었어요. 그래서 망한거에요 ㅋ" 라며 자조하기도 했다.[14] 다만 호러물을 로맨스물로 바꿔버렸다고 엄청 까이기도 했다.[15] 각본을 80년대에 쓰기 시작했다는 점이나 촬영이 2023년에야 마무리 된 걸 생각하면 사실상 40년간 준비해온 셈이다.[16] 니콜라스의 친형. 다만 감독이나 연기보다는 San Francisco Art Institute 에서 영화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에 더 집중하고 있다. 1980년대 국내에 개봉한 실비아 크리스털 주연 영화 '드라큐라의 미망인'을 감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