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0 10:08:28

하스미 시게히코

제26대 도쿄대학 총장
하스미 시게히코
[ruby(蓮實, ruby=はすみ)] [ruby(重彥, ruby=しげひこ)] | Shigehiko Hasumi
파일:hasumi-14.webp
<colbgcolor=#187fc3> 출생 1936년 4월 29일 ([age(1936-04-29)]세)
일본 제국 도쿄부 아자부구 롯폰기쵸
(現 도쿄도 미나토구 롯폰기)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직업 영화 평론가, 불문학자, 문학 평론가, 소설가, 번역가, 교육자
재임기간 제26대 도쿄대학 총장
1997년 4월 ~ 2001년 4월
제18대 국립대학협회 협회장
1998년 12월 ~ 2001년 3월
링크 파일:홈페이지 아이콘.svg[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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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87fc3><colcolor=#fff> 가족 아버지 하스미 시게야스[2]
어머니 하스미 타츠코[3]
배우자 하스미 샹탈[4]
아들 하스미 시게오미
학력 가쿠슈인 초등과 (졸업)
가쿠슈인 중등과 (졸업)
가쿠슈인 고등과 (졸업)
도쿄대학 문학부 (프랑스문학 / 학사)
파리 대학교 대학원 (박사)
파리 제8대학교 (명예박사)
연구 분야 프랑스 문학, 표상문화론, 영화론
신체 182cm
경력 도쿄대학 문학부 조수
도쿄대학 교양학부 강사
릿쿄대학 일반 교육부 비상근 강사
파리 제7대학교 일본어 교사
도쿄대학 교양학부 교수
도쿄대학 교양학부장
도쿄대학 부학장
제26대 도쿄대학 총장
제18대 국립대학협회 회장
도쿄대학 명예교수
상훈 요미우리 문학상 비평부문 (반=일본어론, 1978)
예술선장 문부과학대신상 (평범한 예술가의 초상, 1989)
프랑스 문예공로훈장 1등급 코망되르 (1999)
카와키타상[5] (2007)
미시마 유키오(백작 부인,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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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소개3. 특징4. 비판5. 베스트 영화 목록6. 주요 저서
6.1. 단독 저자6.2. 공동 저자6.3. 번역
7. 여담8. 외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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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의 영화 평론가, 문학 교수, 소설가, 전 도쿄대학 총장.

현 일본 영화계의 대표적인 작가주의 비평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프랑스 유학을 마치곤 1970년대부터 일본 비평계를 휘어잡으며 명성을 얻었고, 대학에서 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 스오 마사유키, 만다 쿠니토시, 시오타 아키히코 등의 제자를 키워 거품경제 붕괴 후 일본 영화계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2. 소개

도쿄 롯폰기 출신으로[6] 어렸을 때부터 영화를 매우 좋아했고, 고등학생 시절부터 프랑스어를 공부하기 시작해 프랑스 유학을 꿈꿨다. 이후 도쿄대학재수해서 합격하고, 프랑스 문학을 전공한 후 프랑스 대학에 유학을 가 귀스타브 플로베르보바리 부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유학 시절에도 시네마테크 프랑세즈에 자주 들러 실시간으로 누벨바그 세대의 영화들을 접했다고 한다. 한편 동시기의 프랑스 지식계의 스타였던 미셸 푸코, 질 들뢰즈, 자크 데리다의 사상도 접했다.

유학이 끝나고 일본으로 귀국해 도쿄대 교양학부 강사와 동시에 릿쿄대학의 시간 강사를 역임한다. 이때 릿쿄대에서 교양 강좌로 열었던 "영화 표현론"의 전설이 유명한데, 동시대 세계 영화의 흐름에 대한 지식과 자신만의 영화관이 확고했던 그는 독특한 방법으로 학생들을 지도했다. 대표적으로 영화의 의미 등을 묻는 것이 아닌, 철저하게 화면에 무엇이 보였는지만을 설명하게 하고, 숫자 1부터 20까지의 영화와 관련된 것들을 써내는 쪽지 시험, 학기 말이 되면 수강생들이 직접 찍은 영화를 상영해서 칭찬만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영화감독으로 길러내고자 했고 실제로 이 수업을 수강하고 하스미의 영화 방법론[7]을 적극적으로 따른 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 스오 마사유키[8], 만다 쿠니토시 등의 감독들이 90년대~2000년대 일본 영화계에서 활약하게 된다.

한편 동시에 롤랑 바르트, 질 들뢰즈, 미셸 푸코 등과의 인터뷰와 그들의 글을 학술지에 실음으로써 프랑스의 최신 사상 동향을 일본에 소개하는 역할을 맡았다. 특히 들뢰즈 저서의 최초 일본어 번역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와중에도 장 뤽 고다르의 저서를 일본에 번역하거나, 일본에 촬영하러 온 고다르를 포함한 영화인들의 통역을 도맡고 인터뷰를 하는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드는 활동을 했다. 도쿄대학 교양학부에서 개설한 "영화론" 강좌에서는 링 시리즈의 감독인 나카타 히데오, 토요시마 케이스케가 영향을 받아 훗날 J-호러 흐름의 주역이 되었다.

70년대 후반에서 80년대엔 그의 대표적인 비평 저서이지만 아직 한국어로 번역이 되지 않은 《반=일본어론》, 《표층비평선언》을 저술했다. 또한 《나쓰메 소세키론》, 《오에 겐자부로론》, 《시네마의 선동장치》[9], 《영화의 신화학》, 프랑수아 트뤼포 저서의 번역 등의 활동을 했다. 영화 평론가로서 이 시기의 대표적인 저작은 한국어로도 번역이 된 《감독 오즈 야스지로》인데, 오즈 야스지로에 대한 당시까지의 일반적인 평론과 반대되는 독특한 시선으로 오즈의 영화 세계를 재해석한 명저로 손꼽힌다. 이후로는 꾸준히 세계 영화인들과 소통하며 일본 영화를 알리고, 소실된 영화 필름을 해외에서 되찾거나, 프랑스어와 영어로 세계 각국의 지면에 영화와 문학 비평 칼럼을 싣지만, 언어의 한계 때문인지 일본에서도 체계적으로 활동을 정리한 이력이 없어서, 2019년 가진 세미나에서 본인이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했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 도쿄대 총장을 역임하며 잠시 활동이 줄었지만, 총장직을 내려놓고 은퇴한 이후로는 다시 활발하게 활동했다. 가족으로는 아버지 미학자 하스미 시게야스, 아내 하스미 샹탈(벨기에 출신, 혼전 성은 판 멜케베케)과 아들인 하스미 시게오미가 있다. 시게오미는 뮤지션으로, 덕계에서는 속삭임 애니판 사운드트랙으로 알려져 있다. 안타깝게도 시게오미는 결장암으로 2017년 6월 18일 타계했다고 한다. [10] 본인과 부인의 건강도 좋지 않은 듯한 뉘앙스를 2020년 한국 영화지 FILO와의 인터뷰에서 살짝 내비쳤다. 그래도 현재까지도 문예지 등에 비평을 기고하거나 책을 내면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 7월 라이프 워크 중 하나로서 작업해 온 '존 포드론(ジョン・フォード論)'을 발표했다. 인터뷰 전편, 후편

3. 특징

어릴 때부터 영화를 가리지 않고 미칠듯이 탐닉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비디오 등의 매체가 없어서 영화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적었기 때문에 희귀한 영화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거의 모든 숏의 순서를 외우다시피 했고 이는 '영화는 의 연쇄로 성립한다'는 하스미의 영화관으로 발전하게 된다. 그의 영화에 대한 철학을 거칠게 요약하면 '영화에 있어 숨겨진 의미, 독특한 기교등은 의미가 없고 철저히 화면 표층의 요소들로 영화를 검증해야한다'는 것. 그의 영화 글은 인문학적 사상 등을 통한 영화 설명을 배제하고 자신의 폭넓은 씨네필적 영화 지식과 영화사를 인용해가며 무시무시한 만연체로 독자를 이끌고 가는 스타일이라 호불호가 갈린다. 하지만 글 자체의 힘과 매력이 뛰어나서 그를 따라하는 수많은 평론가 지망생들이 생겼고 이들이 하스미충(蓮實蟲)이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영화 평론가로서 지지하는 감독은 존 포드, 오즈 야스지로, 장 르누아르[11], 미조구치 겐지, 나루세 미키오, 하워드 혹스, 돈 시겔[12], 리처드 플라이셔, 로버트 알드리치[13], 스티븐 스필버그, 클린트 이스트우드, 장 뤽 고다르, 마노엘 드 올리베이라,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마이클 만, 팀 버튼[14] 등이 있으며 독특하게도 토니 스콧을 굉장히 고평가한다. 근래의 영화 감독 중에선 페드로 코스타, 제임스 맨골드, 웨스 앤더슨[15], 켈리 라이카트, 데이빗 로워리, 기욤 브락[16]를 좋아한다고 하며, 이밖에도 로베르 브레송[17], 테오 앙겔로풀로스와 같은 작가 감독부터 샘 레이미 같은 장르 영화 감독까지 호평을 남기는 등 영화 취향이 상당히 넓은 편이다.

반면 일반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스탠리 큐브릭, 잉마르 베리만, 마틴 스코세이지[18], 폴 토머스 앤더슨, 리들리 스콧, 테런스 맬릭[19], 올리비에 아사야스, 크리스토퍼 놀란[20] 등은 안 좋게 평가하며, 특히 스콜세지와 아사야스를 가장 과대평가된 감독이라 평했다.

일본 감독 중에선 오즈 야스지로를 자신이 비평적으로 재발견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관련 서적도 썼다. 스즈키 세이준, 기타노 다케시를 좋아하며 반대로 구로사와 아키라, 이마무라 쇼헤이, 이타미 주조는 폄하한다. 자신의 제자 감독들인 아오야마 신지구로사와 기요시, 그리고 기요시의 제자인 하마구치 류스케 등의 작품들[21], 최근 일본에서 떠오르는 영화 감독인 미야케 쇼[22]를 고평가한다. 한국 감독 중에서는 정재은의 극영화들을 고평가해서 나올 때마다 그 해의 베스트 10에 꼽는다. 이외에도 임권택과 홍상수 역시 고평가했다. 특히 임권택에 대해서는 압도적인 재능의 소유자며 매우 고전적인 주제를 다루고 전위적인 수법을 쓰지 않는다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

한국에선 친분이 있는 임재철 평론가의 한나래 시네마, 이모션북스 출판사를 통해서 대부분의 책들이 번역되었다. 이 중에서도 《영화의 맨살》은 70년대부터 최근까지 그의 영화 평론 중에서 대표적인 저서와 글들을 모아 출판한 것으로 특히 초창기 글의 무시무시한 가독성으로 악명높다. 한편 《영화장화》의 경우 그의 제자인 구로사와 기요시, 아오야마 신지와 함께 가볍게 영화들에 대해 이야기한 대담을 모은 책인데 일종의 술자리 뒷담화 느낌도 나고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다만 일명 하스미 사단 특징인 토니 스콧 고평가 등 자신의 취향에 대해 단언하듯 말하는 부분이 많아 이런 점에선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영화를 사랑했던 영향으로 소위 말하는 B급 영화로망 포르노도 가리지 않는다. 애초에 초창기 릿쿄대 제자들이 영화인으로서의 경력을 시작한 것이 닛카츠 로망 포르노와 비디오 가게용 싸구려 V시네마였고, 하스미는 영화지 등에서 자신의 제자 작품들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며 도움을 줬다.[23] 본인은 무성 영화들을 가장 선호한다고 밝혔지만 동시대 영화에 대해서도 늘 민감해야 하는게 영화 평론가에게 중요하다는 신념으로 어벤져스 시리즈도 전부 챙겨본다. 또 일반적으로 평론가들이 길고 어려운 영화를 선호한다는 선입견과는 달리, 영화는 90분이면 충분하다는 주장을 펼치며[24] 미국 영화를 즐겨본다.

4. 비판

위상과는 별개로 사실 일본은 물론이고 한국에서도 꽤나 호불호가 심한 평론가다. 특정 감독을 편애하는 하스미의 취향보다도, 비평 스타일에 있어서 특히 호불호가 갈린다.

비판에 앞서서, 하스미 시게히코가 활동했던 20세기 후반의 일본 평론계 상황을 먼저 알아야 한다. 당시에는 일본에서 유행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으로, 영화 만듦새가 엉망이라도 "좌익사상을 찬양했는냐?", "학생운동을 선하게 표현했느냐?", "계급투쟁을 그렸느냐?", "자본가를 악하게 표현했냐?"가 있으면 무조건 빨아주는 "테마가 옳다면 영화도 옳다"라는 테마주의에 입각한 "의미평론"이 당시 일본 영화 평론을 지배하고 있었다. 이러한 평론에 대한 반감을 가진 하스미 시게히코는, 영화의 뒷배경이나 메세지에 얽히지말고 스크린에 나오는 것만으로 영화를 평가하자는 뜻으로 "表層批評(표층비평)"을 제안했다. 원래 취지는 "60년대의 영화검열로 권선징악 등의 정해진 형식의 영화밖에 만들지 못하지만, 감독은 배우들에게 연출의 속뜻을 귀뜸하여 연기자에게 표현하거나 소품등으로 숨은 연출을 녹여냈기 때문에, 화면에 표상으로 나온 것만으로 비평하자."였지만, 이게 곡해되면서 인하여 영화의 메세지나 연출의 뜻, 뒷배경같은 걸 모두 배제해버리는 "감상비평", "인상비평"이 범란하여, 일본 평론계의 질을 심각하게 하락시켰다. 1980년대의 일본에서 난다긴다하는 영화평론가의 영화평론이 "쾅하고 폭발했어요!", "배우가 멋있었어요.", "재미있었어요!"하는 감상평수준의 듣보잡 영화평론과, 하스미의 문체를 따라하다가 쓸데없이 말을 복잡하게 하여, 영화감상 10%에 자기이야기 90%의 나르시시즘 비평의 시대를 불러왔다. 그런 하스미가 〈스카페이스〉를 저질 영화라고 평한 것에 대해 마치야마 도모히로는 분노의 반론을 펼쳤고, "영화를 평론하는데 있어서, 스크린에 나온 것만으로 표현하는건 부적절하다. 뒷배경이나 메세지에 대한 지식은 알아야 작가와 감독의 의도를 이해할수 있다!"라는 "반표층비평"을 펼쳤다.

존 포드 지지자로 유명한 허문영 평론가조차, 하스미 시게히코의 '표층비평'이 지닌 위험성을 언급한 적이 있다.
…비평은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여기서 "영화의 출발점이자 도달점이 광원의 구체에 의해 장방형의 벽에 비쳐지는 빛과 그림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라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문장에 유의해야 한다. 영화는 기계장치에 의해 조작된 빛과 그림자의 유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가 보고 있는 건 그저 표층의 기호 놀이일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비평체험이란 범용한 것들을 잊거나 모르는 '우둔함'의 상태에서 표층에 드러난 기호와의 현재적 조우라는 것이다. (하스미에게는 문학도 표층의 기호 놀이이기는 마찬가지다. 1978년에 발간됐으며 올해 국내에 번역 출간될 《나쓰메 소세키론》의 서장에서 그는 "의미해독을 용이하게 하는 거리도, 깊이도 없는 채로, 모든 것이 깨어지기 쉽게 표층에 부상해서 일제히 소란을 피우는 장이야말로 문학이 아니던가"라고 단언하며 소세키에 다가가기 위해선 "언어 이외의 어떤 것도 시계(視界)에서 일소할 것"을 주문한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하면 영화가 표층적 기호 놀이일 뿐이라는 언명은 위험한 발언이다. 이건 언어 혹은 철학의 개념이 닿을 수 없던 세계의 진실을 영화가 대면케 한다고 주장하며 전력을 다해 영화를 옹호했던 위대한 시네필 비평가-학자들(앙드레 바쟁,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 스탠리 카벨, 세르주 다네, 질 들뢰즈, 알랭 바디우, 질베르토 페레스 등등. 자크 랑시에르는 제외된다)에 대한 도발이다. 경탄을 멈추고 한발 떨어져 곱씹어볼 대목이다. 기껏 빛과 그림자의 유희에 불과한 것에 하스미는 자신의 영혼을 팔았던 것일까? 아니면 이 도발적 발언조차 '무상의 요설'을 격파하기 위해 동원된 모종의 수사일까? 그는 영화의 무엇을 사랑한 것일까?
허문영 평론가, 『야만적 유희자의 초상』, 계간 문학동네 2016년 봄 (86호)[25]

허문영은 하스미에 대해 "하스미 시게히코는 천재다. 그와 비교하기에 아주 적절한 가라타니 고진은 수재다. 가라타니에게는 배울 수 있어도 하스미에게는 배울 수 없다. 영화의 맨살을 읽다가 문득 떠오른 생각이다. 여기서 말하는 천재와 수재는 지능이나 지식의 차이가 아니라 지적 태도의 차이로 구분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정성일 평론가도 시네필 안내서를 통해, 하스미 시게히코 비평의 위험성을 경고한 적이 있다.
…하스미 시게히코의 「영화의 맨살」을 꺼내 들고 싶을지 모르겠다. 이 책 앞에서는 만감이 교차한다. 물론 하스미 시게히코는 그냥 한마디로 ‘영화 광인(狂人)’이다. 자기 글을 모아놓은 (일본판) 책 제목을 그렇게 붙였고 또한 그 말에 한 점 부끄럼이 없는 분이시다. (나를 포함해서) 내 동료들 중에서 이 책을 읽고 난 다음 탄식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하지만 이 책은 몹시 위험하면서도 유혹적인 무시무시한 책이다. 읽고 나면 괴상하게도 하스미 코스프레를 하고 싶어진다. (일본에서는 아예 ‘하스미 벌레(蓮實蟲)’라고 부른다) 괜히 큐브릭은 이류감독이지, 라고 중얼거려보고 싶어지고 역시 영화는 아무래도 존 포드지, 라고 하늘을 우러러보며 외치고 싶어진다. 잉마르 베리만이 우스워 보이고 이마무라 쇼헤이쯤은 무시하고 싶어진다. 그건 하스미 ‘센세이(先生)’의 견해이지 당신의 생각이 아니다. 게다가 거의 기적에 가까운 통찰력만큼이나 이상할 정도로 부정확한 장면 설명이 부조리할 정도의 조화(?)를 이룬다. 나는 당신이 하스미의 영향력을 견딜 만큼 힘센 시네필이 된 다음에 읽으라고 ‘경고’하고 싶어진다.
정성일 평론가, 시네필 안내서[26]

2016년에는 소설 백작부인으로 미시마 유키오 상을 받았는데, 이때 "80대인 나한테 상을 주는건 일본 문화에 통탄할 일"라고 소감을 발표했다가 츠지 히토나리를 비롯한 젊은 작가들에게 "그럼 수상 얘기 들었을때 사퇴하면 되지 뭔 소리를 하냐"라고 까인 적이 있다. 반대로 기타노 타케시처럼 옹호하는 입장도 있었지만, 아즈마 히로키는 트위터로 "그만 좀 하시라"라고 한 소리 더했다.

5. 베스트 영화 목록

※ 출처: 국내 미번역 저서 <영화광인, 신출귀몰>(2000).

I. 올타임 베스트 141 [ 펼치기·접기 ]
01. 게임의 규칙 (장 르누아르, 1939)
02. 역마차 (존 포드, 1939)
03. 만춘 (오즈 야스지로, 1949)
04. 게으름뱅이 병사 (장 르누아르, 1928)
05. 켄터키 프라이드 (존 포드, 1925)
06. 비상선의 여자 (오즈 야스지로, 1933)
07. 교차로의 밤 (장 르누아르, 1932)
08. 굽이도는 증기선 (존 포드, 1935)
09. 아버지가 있었다 (오즈 야스지로, 1942)
10. 익사에서 구조된 부뒤 (장 르누아르, 1932)
11. 흩어진 꽃잎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1919)
12. 결혼 행진곡 (에리히 폰 슈트로하임, 1928)
13. 키드 (찰리 채플린, 1921)
14. 스팀보트 빌 주니어 (버스터 키튼, 1928)
15. 스파이 (프리츠 랑, 1928)
16. 왓 프라이스 글로리 (라울 월시, 1926)
17. 선라이즈 (F. W. 무르나우, 1927)
18. 집안의 주인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1925)
19. 모든 항구의 여인 (하워드 혹스, 1928)
20. 모자상자를 든 소녀 (보리스 바르네트, 1927)
21. 뉴욕의 선창 (조셉 폰 스턴버그, 1928)
22. 바람 (빅토르 시외스트룀, 1928)
23. 10월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1928)
24. 어셔 가의 몰락 (장 엡스탱, 1928)
25. 이탈리아 밀짚모자 (르네 클레르, 1928)
26. 판도라의 상자 (G.W. 팝스트, 1929)
27. 미스터 웨스트의 신나는 모험 (레프 쿨레쇼프, 1924)
28. 안달루시아의 개 (루이스 부뉴엘, 1929)
29. 윈더미어 부인의 부채 (에른스트 루비치, 1925)
30. 바퀴 (아벨 강스, 1923)
31. 위대한 앰버슨가 (오슨 웰스, 1942)
32. 베이비 길들이기 (하워드 혹스, 1938)
33.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 (막스 오퓔스, 1948)
34. 식은 죽 먹기 (레오 맥캐리, 1933)
35. 젊음과 순수 (앨프리드 히치콕, 1937)
36. 백만냥의 항아리 (야마나카 사다오, 1935)
37. 섈 위 댄스 (마크 샌드리치, 1937)
38. 여인들 (조지 큐커, 1939)
39. 단 한번뿐인 삶 (프리츠 랑, 1937)
40. 기온 가의 자매들 (미조구치 겐지, 1936)
41. 팜 비치 스토리 (프레스턴 스터지스, 1942)
42. 사형집행인 또한 죽는다 (프리츠 랑, 1943)
43. 필라델피아 스토리 (조지 큐커, 1940)
44. 딸기 금발 (라울 월시, 1941)
45. 옥스보우 인시던트 (윌리엄 A. 웰먼, 1943)
46. 안개 낀 부두 (마르셀 카르네, 1938)
47. 소유와 무소유 (하워드 혹스, 1944)
48. 폭풍우 (장 그레미용, 1941)
49. 파리의 프릴 (자크 베케르, 1945)
50. 창녀 데데 (이브 알레그레, 1948)
51. 강 (장 르누아르, 1951)
52. 센소 (루키노 비스콘티, 1954)
53. 운명의 박차 (안소니 만, 1953)
54. 여자의 일생 (알렉상드르 아스트뤽, 1958)
55. 여인들 (잉마르 베리만, 1964)
56. 밴드 웨건 (빈센트 미넬리, 1953)
57. 여자는 여자다 (장 뤽 고다르, 1961)
58. 거미의 계략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70)
59. 파자마 게임 (스탠리 도넌, 1957)
60. 쉘부르의 우산 (자끄 드미, 1964)
61. (로베르 브레송, 1983)
62. 수색자 (존 포드, 1956)
63. 엘 / 이상한 열정 (루이스 부뉴엘, 1953)
64. 바니나 바니니 (로베르토 로셀리니, 1961)
65. 황금 마차 (장 르누아르, 1952)
66. 폭군 이반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1944 / 1958)
67. 동경이야기 (오즈 야스지로, 1953)
68. 창 속의 여인 (프리츠 랑, 1944)
69. 현기증 (앨프리드 히치콕, 1958)
70. 오하루의 일생 (미조구치 겐지, 1952)
71. 그들은 밤에 산다 (니콜라스 레이, 1949)
72. 녹색 머리의 소년 (조셉 로지, 1948)
73.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 1960)
74. 400번의 구타 (프랑수아 트뤼포, 1959)
75. 냉혹한 학살자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1962)
76. 주머니 속의 주먹 (마르코 벨로키오, 1965)
77. 안나 막달레나 바흐의 연대기 (스트로브-위예, 1968)
78. 멈춰 선 시간 (에르마노 올미, 1958)
79. 벌집의 정령 (빅토르 에리세, 1973)
80. 천국보다 낯선 (짐 자무시, 1984)
81. 엄마와 창녀 (장 외스타슈, 1973)
82. 시간의 흐름 속으로 (빔 벤더스, 1976)
83. 라 팔로마 (다니엘 슈미트, 1974)
84. 그렇게나 서로를 사랑했는데 (에토레 스콜라, 1974)
85. 카사노바 (페데리코 펠리니, 1976)
86. 클레르의 무릎 (에릭 로메르, 1970)
87. 두 명의 영국 여인과 유럽 대륙 (프랑수아 트뤼포, 1971)
88. 사냥꾼들 (테오 앙겔로풀로스, 1977)
89. 오톤 (스트로브-위예, 1970)
90. 건파이터 (헨리 킹, 1950)
91. 평범한 소시민 (마리오 모니첼리, 1977)
92. 인생의 승리 (이반 파서, 1971)
93. 가르시아 (샘 페킨파, 1974)
94. 리투아니아 여행의 추억 (요나스 메카스, 1972)
95. 마지막 지령 (프랭크 로이드, 1955)
96. 부전승 (예지 스콜리모프스키, 1965)
97. 붐! (조셉 로지, 1968)
98. 킬링 (스탠리 큐브릭, 1956)
99. 킹콩 (메리언 C. 쿠퍼 & 어니스트 B. 쇼드새크, 1933)
100. 클레오파트라 (조셉 L. 맨키위즈, 1963)
101. 화씨 451 (프랑수아 트뤼포, 1966)
102. 해밋 (빔 벤더스, 1982)
103. 넬 탑 (아벨 강스, 1955)
104. 샤이엔의 가을 (존 포드, 1964)
105. 지옥의 묵시록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 1979)
106. 천국의 문 (마이클 치미노, 1980)
107. 자유의 이차선 (몬테 헬만, 1971)
108. 보디 우먼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1982)
109. 뽀빠이 (로버트 알트만, 1980)
110. 전사의 용기 (존 휴스턴, 1951)
111. 부정한 여인 (클로드 샤브롤, 1969)
112. 5개의 무덤 (빌리 와일더, 1943)
113. 실비와 유령 (클로드 오탕 라라, 1946)
114. 도전 (프란체스코 로시, 1958)
115. 뮤리엘 (알랭 레네, 1963)
116. 수수께끼의 기사 (리카르도 프레다, 1948)
117. 릴리 (찰스 월터스, 1953)
118. 성공의 달콤한 향기 (알렉산더 맥켄드릭, 1957)
119. 가족 일기 (발레리오 추를리니, 1962)
120. 여름에 일어난 일 (잉마르 베리만, 1951)
121. 42번가 (로이드 베이컨, 1933)
122. 흰옷을 입은 여인 (클로드 오탕 라라, 1965)
123. 부베의 연인 (루이지 코멘치니, 1963)
124. 피서지에서 생긴 일 (델머 데이비스, 1959)
125. 그대가 떠나간 후 (존 크롬웰, 1944)
126. 악마의 딸 (앙리 드쿠앙, 1946)
127. 비밀의 연정 (필립 던, 1958)
128. 나의 속마음 (장 네굴레스코, 1950)
129. 사랑의 총구 (아나톨 리트바크, 1953)
130. 정말 짧은 시간 (컴튼 베넷, 1952)
131. 일곱 여인들 (존 포드, 1966)
132. 게르트루드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1964)
133. 슬픔은 그대 가슴에 (더글러스 서크, 1959)
134. 승객 (안제이 뭉크 & 비톨트 레시비츠, 1963)
135. 7인의 무뢰한 (버드 버티커, 1956)
136. 신나는 일요일 (프랑수아 트뤼포, 1983)
137. 탈주한 하사 (장 르누아르, 1962)
138. 루이지애나 스토리 (로버트 플래허티, 1948)
139. 가족 음모 (앨프리드 히치콕, 1976)
140. 스티밍 (조셉 로지, 1985)
141. 순수한 사람들 (루키노 비스콘티, 1976)

II. 위 목록에 넣을 수 있었던 영화들 [ 펼치기·접기 ]
* 키스 미 데들리 (로버트 알드리치, 1955)
  • 황야의 탈출 (로버트 로센, 1959)
  • 허슬러 (로버트 로센, 1961)
  • 40자루의 권총 (새뮤얼 풀러, 1957)
  • 대나무의 집 (새뮤얼 풀러, 1955)
  • 로빈 후드 (앨런 드완, 1922)
  • 쾌걸 조로 (프레드 니블로, 1920)
  • 빅 퍼레이드 (킹 비더, 1925)
  • 북서쪽으로 가는 길 (킹 비더, 1940)
  • 쥬덱스 (루이 푀이야드, 1916)
  • 핀치 콘티니의 정원 (비토리오 데 시카, 1970)
  • 마법에 걸린 데스나 (율리아 솔른트세바, 1964)

III. 그 외 좋아하는 작품들 [ 펼치기·접기 ]
* 그랜드 뷔페 (마르코 페레리, 1973)

IV. 일본 영화 [ 펼치기·접기 ]
* 오로치 (후타가와 분타로, 1925)

V. 액션영화 베스트 50 [ 펼치기·접기 ]
(※ 1996년 선정한 리스트)

"1940년대 액션 활극이 생겨날 때까지 무엇이 영화의 운동을 부추겼는가를 따라가야 한다"며 영화사를 되돌아보는 형식으로 선정한 목록이다.
01. 공장을 떠나는 노동자들(뤼미에르 형제, 1895)
02. 해수욕 후의 샤워 / 무도회 후의 목욕 (뤼미에르 형제,1895/1897)
03. 미국 소방수의 생활 (에드윈 S. 포터, 1902)
04. 키스턴 캅/배이싱 뷰티즈 (맥 세네트, 1910)
05. 론데일 오퍼레이터 (데이비드 와크 그리피스, 1911) 혹은 소녀와 그녀의 신뢰 (1911)
06. 치트 (세실 B. 드밀, 1915)
07. 더 콜드 덱 (윌리엄 S. 하트, 1917)
08. 시크릿 맨 (잭 포드, 1917)
09. 쥬덱스 (루이 푀이야드, 1917-18)
10. 쾌걸 조로 (프레드 니블로, 1920)
11. 마부제 박사 (프리츠 랑, 1922)
12. 걱정하지 마 (프레드 뉴메이어/샘 테일러, 1923)
13. 커버드 웨건 (제임스 크루즈, 1923)
14. 바퀴 (아벨 강스, 1923)
15. 볼쉐비키의 나라에서의 웨스트 씨의 이상한 모험 (레프 쿨레쇼프, 1924)
16. 전함 포템킨 (세르게이 예이젠시테인, 1925)
17. 오로치 (후타가와 분타로, 1925)
18. 세븐 챈스 (버스터 키튼, 1925)
19. 빅 퍼레이드 (킹 비더, 1925)
20. 켄터키 프라이드 (존 포드, 1925)
21. 미스 멘드 (표도르 오셉/보리스 바르넷, 1926)
22. 날개 (윌리엄 웰만, 1927)
23. 언더월드 (조셉 폰 스턴버그, 1927)
24. 추지 여행일기 3부작 (이토 다이스케, 1927-28)
25. 낭인가 제 1화-아름다운 사냥감 (마키노 마사히로, 1928)
26. 잔 다르크의 열정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 1928)
27. 농땡이 병사 (장 르누아르, 1929)
28. 지옥의 천사 (하워드 휴즈, 1930)
29. 리틀 시저 (마빈 르로이, 1930) 혹은 공공의 적 (윌리엄 웰만, 1931)
30. 그날 밤의 아내 (오즈 야스지로,1930)
31. 도시의 거리 (루벤 마물리안, 1931)
32. 스카페이스(1932) (하워드 혹스,1932)
33. 덕 수프 (레오 맥캐리, 1933)
34. 돌아가는 증기선 (존 포드,1935)
35. 39계단 (알프레드 히치콕,1935)
36. 벵갈의 창기병 (헨리 하사웨이, 1935) 혹은 전진하라 용기병 (마이클 커티즈, 1936)
37. 역마차 (존 포드, 1939)
38. 하이 시에라 (라울 월시, 1941)
39. 공군 (하워드 혹스, 1943)
40. 상하이에서 온 여인 (오슨 웰스, 1946)
41. 그들은 밤에 산다 (니콜라스 레이, 1948)
42. 악의 힘 (에이브러햄 폴론스키, 1948)
43. 건 크레이지 (조셉 H. 루이스, 1949)
44. 황금 투구 (자크 베케르, 1952)
45. 키스 미 데들리 (로버트 올드리치, 1955)
46. 베이비 페이스 넬슨 (돈 시겔, 1957)
47. 반격의 총탄 (버드 버티커, 1957)
48. 40정의 총 (사무엘 풀러, 1957)
49. 최전선 (안소니 만, 1957)
50. 네 멋대로 해라 (장 뤽 고다르, 1959)
"이후 영화는 이 작품을 능가하는 활극을 결국 찍지 못하고 있다." (라며 글을 끝맺음)

2000년대 베스트 (필름 코멘트) [ 펼치기·접기 ]

※ 출처: Film Comment Vol. 46, nº 1, janeiro/fevereiro de 2010

2000년-2010년 베스트 10 (카예 뒤 시네마) [ 펼치기·접기 ]
※ 출처: 카예 뒤 시네마 2010년 1월호 게재 #

2010년-2020년 베스트 10 [ 펼치기·접기 ]
출처: 씨네 21 설문조사 1, 2

아시아 영화 베스트 10 (연대순) [ 펼치기·접기 ]
※ 출처: 씨네21 (2015)

21세기 영화 베스트 10 (BBC) [ 펼치기·접기 ]
※ 출처: BBC 선정 '21세기 위대한 영화 100편' #

비영어권 영화 베스트 10 (BBC) [ 펼치기·접기 ]
※ 출처: BBC 선정 비영어권 영화 베스트 100편 #

코미디 영화 베스트 10 (BBC) [ 펼치기·접기 ]
※ 출처: BBC 선정 코미디 영화 베스트 100편 #

여성 감독 영화 베스트 10 (BBC) [ 펼치기·접기 ]
※ 출처: BBC 선정 여성 감독 영화 베스트 100편 #

존 포드 영화 베스트 20 (문예춘추) [ 펼치기·접기 ]
※ 2022년 선정 출처 #

하스미 시게히코는 "10개로 짜는 것은 무리지만 20개를 고르려면 이것밖에 없다."라고 적었다. 또한 황야의 결투를 넣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이유는 극히 간단합니다. 그것보다 뛰어난 작품이 확실히 10편 이상 존재하니까 그걸 안 선택했을 뿐이죠. 실제로 그 직전에 찍힌 그들은 희생양이다(1945)와 3년 뒤 찍은 아파치 요새(1948)가 훨씬 멋집니다."라고 적었다.

[1차대전~2차대전 중 베스트 10]
[전후 베스트 10]

6. 주요 저서

6.1. 단독 저자

  • 반=일본어론 (1977) [27]
    프랑스어 네이티브인 아내와, 다중언어 환경에서 자란 아들이라는 환경 속에서 겪은 일화들을 에세이 형식으로 풀어내며 종래의 일본 문화론에 대한 비판, 더 나아가 서구의 구조주의 철학에도 비판을 가하는 내용.
  • 푸코 들뢰즈 데리다 (1977)
  • 나쓰메 소세키론 (1978) [28]
    하스미 시게히코식 비평의 대표작으로, 나츠메 소세키 소설상징이나 작가의 의도, 또는 사회상의 반영으로 읽게 하는 종래의 문학 독해를, '소세키라 불리는 사람의 그림자와의 조우를 회피하는 것에 지나지 않다'고 비판한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소설에 말로서 드러나는 표층을 철저하게 읽기를 제안하며, 소세키 소설에서 반복하여 등장하는 요소들인 '눕기' '비와 만남' '종적인 구도' '가까워짐과 멀어짐'의 테마를 중심으로 소세키를 해체하고 재구축한다. 이 과정을 통해 최종적으로 작가문학으로 환원되지 않는 비평을 추구한 역작. 100여년 역사의 소세키론 중에서도 현재까지도 굉장히 독특한 포지션을 취하고 있다.
  • 표층비평선언 (1979)
  • 사소설을 읽다 (1979)
  • 오에 겐자부로론 (1980)
  • 프랑스어의 여백에 (1981)
    도쿄대 조교수 재직 당시 교양 프랑스어 수업 교과서로 집필한 책. '이 책은 일본의 대학 교양과정에서 프랑스어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교과서이다. 다만, 그 사람들을 용이하게 프랑스어로 인도할 목적으로 편성되어 있지는 않다.'라는 서문을 지나면, 첫 예문으로 프랑스 헌법 1조 1항이 나온다. 2023년 재출간.
  • 감독 오즈 야스지로[29] (1983)
    하스미 시게히코의 대표작 중 하나. 하스미는 영화의 맨살의 서문에서 "내가 자신을 본격적인 영화평론가라 생각하고 그것에 어울리게 행동하게 된 것은 감독 오즈 야스지로가 간행된 이후의 일입니다."라고 적었다. 평론가 정성일인생책 중 하나라고 언급한 명저다. 정성일은 영화에 대한 글쓰기의 모범 사례로 이 책을 언급했다. 그 이유는 하스미 시게히코가 최고이기 때문이며, (당시 기준) 한국에 나온 하스미 시게히코의 책은 '감독 오즈 야스지로' 한 권 뿐이기 때문이었다. 일본에선 2003년에 3장이 추가된 개정증보판이 나왔으나 한국 번역본은 구판이다. 프랑스, 한국, 미국에서 번역서가 출판되었다.
  • 범용한 예술가의 초상 (1988) [30]
  • 소설에서 멀리 떨어져 (1989)
  • 영화광인 시리즈 (전 10권, 2000~2004)
  • 고다르 혁명 (2005)
  • '빨강'의 유혹 (2007)
  • 보바리 부인론 (2014)
  • 영화의 맨살 : 하스미 시게히코 영화 비평선 (2015)
    40여년 간의 하스미 시게히코 비평을 모은 한국어 선집. <영화의 신화학>, <영상의 시학>, <시네마의 기억장치>, <시네마의 선동장치>, 영화광인>, <영화는 어떻게 죽는가>, <영화에 눈이 멀어서>, <영화붕괴전야>, <영화강의> 등의 저서에 수록된 글들이다.
  • 백작부인 (2016) [31]
    장편소설. 미시마 유키오상을 수상했다. 최고령 수상.
  • 숏이란 무엇인가 (2022)
  • 존 포드론 (2022) [32]
  • 숏이란 무엇인가 실천편 (2024)

6.2. 공동 저자

  • 근대 일본의 비평 1868~1989 (2002)
  • 현대 일본의 비평 1868~1989 (2002)
  • 나루세 미키오 (2002)
  • 영화장화 (2011) [33]

6.3. 번역

7. 여담

  • 도쿄대 총장 시절, 서울대와의 행사에 참여했는데 한국측 교수가 한국인들은 창의성이 없어서 세계에서 인정받지 못한다는 내용의 발표를 하자 본인도 일본에서도 회의하면 ‘일본 사람들 독창성 없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화가 나서 임권택 감독이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은 사실을 들어, "독창성 없는 나라의 감독이 왜 상을 받았겠느냐고. 지금 상황이 나쁘니까 바꾸는 게 아니다. 지금 상황에 더 나아지도록 하는 것일 뿐이다. 대학이 마비됐다, 이렇게 말하면 좋은 대안이 안 나온다. 지금 잘 하는데 좀더 나은 쪽으로 가자, 이래야 한다"라며 맹렬하게 쏘아붙였는데 장내가 조용해지고 얼마 뒤에 조금씩 박수가 나왔다고 한다. 본인은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교수에게 미안하다고... #
  • 인터넷에 자기 이름을 쳐봤는데 일본, 한문, 프랑스, 영어 위키피디아나 팬 사이트 등 어디에도 자신의 이력이 완벽하게 정리된 곳이 없어서 아쉽다고 한다. 2ch트위터는 의식적으로 피했다고 덧붙였다.
  • 에드워드 양이나 페드로 코스타등 좋아하는 영화 감독들은 인맥을 이용해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 하나 그리고 둘의 촬영 당시 카메오 출연을 할 뻔도 했다고 한다. 다니엘 슈미트처럼 절친 수준으로 왕래가 잦았던 감독도 있다. [34]
  • 1998년 3월 도쿄대 졸업식장에서 “그들(일본의 파워 엘리트 그룹)의 파렴치한 언동[35]이 (권력지향적인)도쿄대 특유의 풍토를 반영하고 있다면 우리 모두 이를 깊게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 1999년 도쿄대 입학식에서 200자 원고지 84장 분량의 47분짜리 축사를 해서 화제가 되었다. # 해당 현장엔 신입생이던 하마구치 류스케가 있었는데, 당시엔 하스미 시게히코가 누군지도 몰랐고 너무 길고 말이 어려워서 도중에 잠들었다고 한다.
  • 마틴 스코세이지는 하스미 시게히코에 대해 "위대한 일본 비평가이자 역사가"라고 소개했다. 하스미의 제자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 '큐어'를 호평하는 평론에서 나온 문장이다. #
  • 쿠사노 진이라는 필명으로 야구 평론가로 활동했다는 설이 있다. # 1점을 얻어 팀을 승리로 이끄는 근대 합리주의적 야구를 부정했고, '난투', '상쾌한 실책', '호쾌한 삼진'이라고 하는 야만한 행위를 적극적으로 긍정했으며, 거기서 야구의 '미'를 발견했다고 적어 일본의 야구 평론에 큰 충격을 주었다고 한다. #
  • 하스미의 제자들이 모인 좌담회에서 사회자가 "하스미씨 자신에게는 영화를 찍고 싶은 마음은 없는 것일까요"라고 물었는데, 구로사와 기요시는 질문에 대해 "하스미 씨 안에 영화를 찍고 싶다는 욕망은 예전에는 분명히 있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저희가 질이야 어떻든 양으로 계속 찍으니까 '쟤네가 찍고 있으니까 괜찮겠어' 이런 식으로 된 건가 봐요. 그래서 혹시 저희가 하스미 씨한테 조작돼서 대신 찍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거든요. 그래서 저희가 아예 못 찍게 됐을 때 처음으로 '그럼 내가 찍을래' 하고 나올 수도 있어요."라고 답했다. #

8. 외부 링크



[1] 2010년 이후 업데이트가 끊겼다.[2] 미술사학자다. 교토대학 문학부 교수직을 역임했다.[3] 내대신 비서관 오노 하치치오의 딸이다.[4] 蓮實シャンタル (Chantal Hasumi)[5] 예술 문화의 발전에 엄청난 공적을 남긴 개인·단체에 대해 수여하는 공로상.[6] 일본의 대표적인 부촌으로, 다수의 방송국과 연예 기획사가 밀집해 있다.[7] 한국 기자가 하스미의 제자들에게 하스미의 강의 방식과 내용이 무엇이었는지 물었는데, 아오야마 신지는 관념을 구체화시키는 쇼트를 발견하고 그것이 어떻게 영화 속에 구축되는지, 그 구성원리를 발견했던 방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구로사와 기요시 역시 쇼트의 원리에 관해 이야기 했다. 경제적이고 기술적으로 가능한 쇼트를 통해 영화의 의미와 형식을 축적해 나가는 방법들, 그것은 기요시가 대학에서 영화과 학생들을 가르치는 방법론이기도 했다.#[8] 쉘 위 댄스(1996), 그래도 내가 하지 않았어 감독[9] 책 전체가 한 문장이다[10] 훗날 아오야마 신지 타계 당시 시게히코가 밝히길, 아오야마 신지의 부인인 토요타 마호랑 아들이 소꿉친구였다고 한다. 그래서 서로 면식이 있었던 모양.[11] 한국 방문 당시 이 세 사람에 대해 "영화를 알고, 영화에 접근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세명을 꼽으라면 역시 오즈 야스지로, 존 포드, 장 르누아르이다."라고 말했다. #[12] 시겔이 연출한 '베이비 페이스 넬슨'은 하스미가 '자신의 원점'이라고 평한 영화다. #[13] 시겔, 플라이셔, 알드리치를 1950년대부터 활약하기 시작한 뛰어난 감독들이라고 평했다. #[14] 저서 '영화장화'에서 자신이 지지하는 미국 작가 중 한 명이라고 평했다.[15] 자신의 저서 '숏이란 무엇인가'에서 현대 할리우드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작가라고 평했다.[16] 다함께 여름!의 감독[17] 하스미는 브레송의 영화를 전부 좋아한다고 말했다. #[18] 하스미 "스코세이지는 틀림없이 영화보다 자신을 더 신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영화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확신하는 그가 찍은 작품에는 영화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우선 없습니다. 따라서 극히 평범한 장면을 찍을 수 없습니다. 모든 샷-구도, 피사체와의 거리, 앵글, 그 움직임-이 그 자신의 다소 조잡한 감성에 의해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스스로도 의식하지 않고 찍혀 버렸다는 멋진 샷이 그의 영화에서는 전혀 부재한 것입니다. 택시 드라이버의 촬영 감독 마이클 채프먼의 카메라는 예컨대 이 시대의 알드리치의 '그리솜 갱단'의 조지프 바이 로크의 카메라,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의 비토리오 스토라로의 카메라, 마이클 치미노디어 헌터나 스필버그의 미지와의 조우 등에서 카메라를 담당한 빌모스 지그몬드와 비교하면 화질적으로 훨씬 못합니다. 피사체에의 카메라의 위치나 거리, 혹은 그 움직임이 갑자기는 정당화되기 어려운 것 뿐이므로, 작품으로부터 떠 버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스코세이지가 이런 샷만 찍으면서 그 화면의 연쇄로 영화가 성립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후 미하엘 발하우스에게 카메라를 맡기게 된 이후로는 약간 화면이 차분함을 되찾습니다. 순수의 시대 등은 결코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최근 로드리고 플리에토에게 카메라를 맡긴 후에는 다시 제대로 된 화면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사일런스 등 대부분의 화면이 죽은 것으로 밖에 생각되지 않았습니다."# 택시 드라이버를 천박하고 졸렬하다고 까기도 했다.[19] 스코세이지 이상으로 과대평가된 감독으로 꼽았다. 화면 설계와 편집 리듬은 맬릭이 스코세이지보다 재능이 있는 감독인 것은 틀림없지만, 지극히 평범한 샷을 아주 평범하게 찍을 수 있는 감독이라고 평했다.[20] 놀란에 대해 "어디까지나 "착상"으로 승부를 보는 사람이고, 그 "착상"의 시각화에선, 그것을 숏의 연쇄로 제시하는 그의 "연출"은 반드시 고도화된 것만은 아니다"라고 평했다.# 다만, 덩케르크는 호평했다. #[21] 하지만 2022년 기준으로, 아직 하마구치는 앞선 두 사람만 못하다고 보는 듯하다.#[22] 하스미 시게히코와 친분이 두터운 사이이며, 영화적으로도 하스미의 영향을 받은 일명 하스미 라인 감독이다. #[23] 이 부분은 자신의 제자인 구로사와 기요시가 길러낸 제자들, 예컨대 하마구치 류스케미야케 쇼등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며 매년 베스트10을 꼽을 때 자신의 제자와 그 제자들의 작품을 뽑는 경우가 많다. 구분법은 토니 스콧을 좋아하면 높은 확률로 하스미 사단이다.[24] 대부분의 영화가 90분에서 100분 안으로 충분한 이야기를 찍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가장 적당한 길이라고 설명하며 다만 긴 상영시간을 가진 영화 중에서도 납득이 가는 영화들도 있다고 말한다. 4시간 23분짜리 영화인 아벨 강스의 〈바퀴〉를 올타임 베스트로 뽑기도 했다.[25] 전문 링크[26] 전문 링크[27] 요미우리 문학상 수상[28] 2017년 한국어 번역본 출간[29] 2001년 한국어 번역본 출간[30] 2024년 한국어 번역본 출간[31] 2018년 한국어 번역본 출간[32] 2023년 한국어 번역본 출간[33] 2018년 한국어 번역본 출간[34] 뉴 저먼 시네마랑 연관있으며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랑 친했던 스위스 감독이었다. 정작 하스미는 다니엘 슈미트만 높이 치고 파스빈더는 그리 높이 평가하지 않는다.[35] 당시 도쿄대를 졸업한 관료들이 검거된 금융비리 사건이 터졌다.[36] 평론가 허문영과 인터뷰를 진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