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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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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별 명칭
한국어 목수
영어 Carpenter
한자
1. 개요2. 역사
2.1. 어원2.2. 변천사
2.2.1. 한국
3. 구분
3.1. 건축
3.1.1. 형틀목수3.1.2. 프레이머3.1.3. 팀버프레이머3.1.4. 한옥목수3.1.5. 내장목수
3.2. 선박목수(조선공)3.3. 가구목수
4. 급여와 근로조건
4.1. 한국4.2. 일본4.3. 북미, 영국 및 영연방4.4. 독일 및 유럽
5. 목록
5.1. 실존 인물5.2. 가상 인물
6. 이야깃거리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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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나무를 다루어 집을 짓거나 각종 가구 및 도구를 만드는 직업 또는 사람. 작은 의미로는 나무만을 가공하는 사람이지만, 큰 의미로는 나무 이외의 건축도 포함한다. 집을 짓는 목수의 경우 건축기사 같은 개념이다.

2. 역사

2.1. 어원

영어에서의 목수를 일컫는 Carpenter는 고대 라틴어에서 Carpentrius, 그 이후 프랑스어의 Carpentier에서 파생되었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간단하게 나무목(木)자에 손수(手)자를 붙여서 목수라고 일컫는다. 옛날에는 가구나 창호를 만드는 사람은 소목수 또는 소목장, 집을 짓는 사람은 대목수 또는 대목장이라고 일컬었으나, 현재는 전통목공 외에는 쓰이지 않는다. 이와 비슷하게 일본에서는 집짓는 목수는 다이쿠(大工), 전통가구나 목공예를 하는 목수는 사시모노시((指物師, さしものし)라고 일컫는다.

2.2. 변천사

나무는 세계 각지에 서식하는 식물로, 인류가 돌 다음으로 도구로 쓰기 시작해 철기 시대가 열린 현대까지도 콘크리트, 시멘트, , 과 함께 문명의 기반을 다지는 데 가장 많이 쓰이는 소재 중 하나다. 본격적으로 이용된건 구석기 시대 후반, 돌도끼나 돌창을 위한 자루로 쓰였다. 건축용으로는 40만 년 전에 프랑스의 라자 동굴(grotte du lazaret)안에서 발견된 나무뼈대에 가죽을 덧댄 텐트가, 중석기시대부터는 목재를 활용해 활이나 화살 등의 도구를,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목재와 석재를 적절히 활용하여 요새로서 성이나 성벽을 만들었다.

신석기시대부터는 농경과 정착이 시작되어 나무가지와 두꺼운 나무를 엮어 움집을 만들었지만, 나무는 유기물이라 오랜 시간이 흐르면 썩기 때문에 현재 남아있는 유적이나 유물은 드물다.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구조물은 아프리카 잠비아에 칼람보 유적터에서 발견된 곳으로 47만 6천년 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된다.위키 참고로 장부이음으로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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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에 오래된 것은 독일에서 발견된 참나무 우물터와 체코에서 발견된 참나무 구조물로, 역시 둘 모두 장부와 홈을 정교하게 파서 결합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아직 계급과 직업이 분화되지 않아, 목수라는 별도의 직업이 있던 것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이 가내수공업으로서 주거나 의식주 등의 생계를 위해 목공을 겸한 것으로 보인다. 중석기시대부터 신석기시대 일부지역에서 정교하게 만들어진 신전이나 건축물 등이 발견되는데, 그리 흔한 광경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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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집트의 목수

청동기 시대에 들어서 본격적인 농경생활이 시작되고 잉여농산물이 생기자 식량생산 외에 다른일에 종사하는 직업과 계급이 분화되었는데, 전문적인 목수와 건축가도 이 때 등장하였다. 건축물도 단순한 움막을 떠나서 복잡하고 정교한 구조의 주거지와 궁전, 요새, 신전 등이 생겨났고, 청동기가 사용되면서 무기를 비롯 각종 정교한 기구와 도구들이 생겨났다. 기원전 32세기 경의 이집트에서는 청동으로 만들어진 인류 최초의 도 사용되었다.

이 때의 전업목수는 주로 지배계층의 수요를 채우기 위하여 정교한 도구나 가구, 가령 식탁이나 책장, 그 밖에 목조각이나 장식등을 만들었고, 이 밖에도 성곽, 요새, 신전, 저택같은 건물들을 지을 때 동원되는 등 일종의 전문직 종사자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귀족이나 왕족은 아니었지만, 고대 이집트에서 목수는 서민(농민)들보다 소득도 높았고, 작업에 필요한 연장을 그 당시에는 귀족이나 전사들의 무기에나 쓰이던 청동으로 만들어 쓸 정도로 부유했으며 사회적으로도 꽤 대우받았다. 이들은 , 망치, 보우 드릴 등을 사용하였고, 나무 뿐만 아니라 원시적인 합판과 널판지도 사용하였다. 이집트의 목수들은 당시 이집트의 일반 서민과 마찬가지로 자유롭게 일을 하였는데, 하루에 8시간 일을 하고 10일 중 이틀은 쉬었으며링크, 별도의 작업장을 가지고 주문을 받고 물건을 생산하거나 용역을 제공하는 식으로 계약을 맺기도 했고, 파라오 직속으로 영구히 일하기도 했다. 파라오의 무덤에 안치될 장식품과 가구를 만드는 일은 사회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로 여겨졌고, 부장품과 가구, 건축까지 통괄 및 숙달된 장인급 목수는 보통 파라오를 위해 일했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 대장장이 신인 헤파이스토스가 있는 것처럼 이집트 신화에서는 수공인과 장인들을 수호하고 상징하는 신으로써 멤피스의 '프타'가 있었다.

고대 중국에서도 마찬가지로 서주(西周)시대에는 목수, 목수 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공인(특히 청동기 주조와 관련된)이 왕과 봉신들이 쓸 수공예품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였다. 목수의 경우 가구와 특히 수레나 전차등을 만드는 일에 종사하였는데, 시대상황상 그리고 이집트와 달리 공인들은 주로 왕과 분묘가 있는 수도와 왕경 주변의 각 왕족과 귀족이 소유한 공방에서 일을 하였고, 신분 역시 귀족이나 왕족에게 매여있다 보니 귀족들끼리 공인들을 사고 판 기록도 존재한다.

동주(東周)시대에 들어서고, 춘추전국시대가 되자 중국 전토가 각국으로 나뉘고 각국의 수도를 중심으로 도시화가 진행되자, 도시내에 수공업단지가 조성되고, 이 무렵부터 목수를 비롯한 공인들이 귀족뿐만이 아니라 각국의 군수물자와 물품 생산 그리고 각 지역의 물류이동과 거래를 위한 상품 및 공예품 생산을 위해서 일하기 시작했다. 단 사회적으로는 전쟁을 위한 인구 및 병력의 확보 및 증가, 이를 위한 식량생산으로서 농업을 중히 여기고 사농공상의 신분질서가 생기는 분위기여서 공인은 일반적인 서민인 농민보다 천시받는 분위기였다. 을 발명했다는 공수반도 이시대 노나라에서 활동했다.

전국시대의 각국 중에서도 진의 뒤를 이은 조(趙),위(魏),한(韓)은 유통과 상업이 발달하여 도시에 위치한 공방이 주로 상인들의 거래와 유통을 위한 공산품 생산에 집중하는 식이었지만, 진(秦)나라에서는 아예 거의 모든 공인이 왕실과 국가의 필수품과 군수물자생산에 총동원되고, 이를 위해 상세한 호적조사가 이뤄지는 등 좋게 말하면 국영 기능인 내지는 공무원이고, 나쁘게 말하면 공인을 비롯한 전 백성이 나라의 노역에 묶여있었다. 이런 추세는 진이 전국을 통일한 뒤 멸망하고 (漢)나라가 세워진 이후에도 유지되었고, 목공예품 생산 외에 건물을 지을 때에도 종종 작업반장이나 기술노동이 필요한 때마다 노역을 제공하는 식이었다. 주로 기술이 없는 고된 육체 노동은 죄수나 노예, 서민들이 하고, 목수는 물품을 생산하거나, 기술업무나 작업지시를 하는 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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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폼페이 유적지에서 발견된 목수를 그린 프레스코

이집트 문명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고대 그리스에서는 목수들의 사회적 처지가 그리 좋지 않았는데, 그리스 사회에서 목수를 포함한 수공인들은 노예신분이었다. 그러다가 로마시대에 이르러서야 그나마 장인급 목수나 건축가는 적어도 노예가 아닌 평민계급이 되었다.

로마시대에는 콜레기아(collegia)라는 일종의 길드조직이 있어서 목수의 직업교육 예컨데, 기초적인 건축용 수학과 목공 및 건축기술을 가르쳤으며, 작업 중 부상자나, 혹은 병에 걸려 일을 못하는 사람, 정년퇴임자 등을 관리하고 생계를 지원해주었다. 대부분의 목수들이 콜레기아에 등록되었으며, 노예제 사회였던 로마에서 자유민이 되고 싶은 노예들이 콜레기아에서 목수장인이 되기 위해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이 당시의 목수들은 대게 평민계급의 장인급 목수이거나, 아니면 노예였다. 목공용 수공구는 당시에는 비쌌기 때문에 귀하게 여겼고, 공방에서 일하는 목수들은 주로 자신들의 작업장에서 같은 목수끼리 일하거나 소수의 견습생만 들여서 일을 하였다. 장인급 목수가 그나마 평민인 것 외에는 숙련자와 비숙련자를 사회적 혹은 의식적으로 인식 및 구분은 하고 있었으리라 추정은 되지만 제도적으로 더 체계적으로 구분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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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치용 거푸집. 로마시대에도 비슷한 것이 사용되었다.

이집트나 그리스때와 마찬가지로 건축목공과 수공예로써 목공이 구분되지 않아 로마시대의 목수들은 작게는 목조각과 가구에서부터 콘크리트나 석공, 아치 등의 종합건축은 물론 마차나 차륜을 만드는 일까지 담당하였고, 다른 로마인들과 마찬가지로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에 6시간 정도를 일하였다. 기록으로는 5년마다 행하는 인구조사때 직업을 표기하였고, 기원전 1세기 로마 건축가 비트리비우스가 자신의 저서에서 건축용 목공기술에 대해서 쓴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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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재를 가공하는 중세 유럽의 목수

서로마제국 멸망 이후 유럽에서는 전염병과 잦은 전란 등 사회적 혼란을 겪으며 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고, 또 런던이나 알렉산드리아 등의 대도시가 파괴되거나 버려지는 등의 이유로 로마시대에 축적된 공학과 건축기술들 상당수와 함께 목공기술들도 소실되었다. 동시에 로마라는 강력한 제국이 사라지고, 봉건시대가 도래하자 지역영주들과 왕들이 자신의 봉토와 영지를 가꾸는데 혈안이 되고, 또 종교계의 위세에 교회를 중심으로 한 경제력 확보나 세력권 형성이 잦아졌다.

영주와 교회, 왕들은 자신들의 요새와, 궁전, 성, 교회나 성당이나 그밖에 여러 건축물이나 수공예품이나 무기등을 만들고 공급하기 위해서 목수를 비롯한 수공인들의 확보에 기를 썼는데, 그때문에 이때 목수들은 다른 농민이나 평민들과 달리 영주의 성안에서 거주했고, 수공인들의 조합으로써 길드가 생겨나, 로마시대 콜레기아(collegia)보다 막강한 조직력을 과시하였다. 한편 로마의 콜레기아는 동로마제국, 즉 비잔틴제국에서 고스란히 살아서 전해질 수 있었는데, 서유럽의 길드가 기술자들 간의 자치단체에 가까웠다면, 비잔틴 제국의 콜레기아는 중앙 정부의 행정장관에게 통제를 받으며, 세금확보 등에 이용되는 어용기관이었다.

중세 서유럽의 목수는 아무나 할 수 있는 직업은 아니었는데, 애초에 이들의 협동조직이었던 길드에서 장인이 수공인을 양성할 때에, 자기 자식이나 인맥이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인원을 선발하여 수년에 걸친 도제과정으로 기술을 전수해줬기 때문이다. 또 길드의 장인에게 자녀를 제자로 맡기려면, 가족이 꽤 비싼 돈을 지불해야 됐다.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여 유럽에 인쇄술이 전래되고, 15세기에는 목공용 서적도 발행되었지만, 여전히 길드를 비롯하여 목공인들은 주로 자기 수련생을 두고 도제방식으로 제자를 길러냈으며, 이런 도제문화는 산업혁명이 일어나서야 점차 줄어든다.

중국에서는 전한 말기부터 국가의 재정능력과 통제력이 약화되고 반대로 지방호족이 득세하면서 정부에서조차 국영수공업을 유지하거나 목수를 유지하는 것보다 민간수공인들에게 돈이나 곡식을 주고 일을 맡기는 것을 선호함에 따라 이시기부터 목수들도 정해준 물품을 제작하여 왕실이나 호족들에게 팔거나, 또는 국영공사가 있을 때면, 정해진 일수나 월수에 따라 용역을 제공하고 곡식과 화폐로 급여를 받기 시작했다. 다만 일이 고정적으로 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에 농사를 겸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다가, 송대에 이르러서야 전업목수가 많아지기 시작한다. 원,명,청을 거치며 지역별로 특산품이나 수공품을 특화하여 시장에다 내다파는 일이 잦아지고, 전업 수공업자와 상인도 늘어남에 따라 수공업자로써 전업목수도 숫자가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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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변천과정

19세기 무렵 산업혁명으로 증기기관이 발명되고, 또 기계식 목공도구들이 개발 및 도입되면서 목수들도 큰 변화를 맞는다. 특히 쇠못의 대량생산이 결정적이었다. 과거에는 쇠못이 충분히 공급되지 않아 건축물의 목재뼈대를 만들거나 가구를 만들 때는 주로 장부에 홈을 파서 끼워 맞추어 제작하였는데, 이는 숙련된 목수들만 할 수 있는 꽤 어려운 작업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 이후에는 나무에 박는 규격화된 쇠이 대량생산되면서, 굳이 장부에 홈을 파지 않고도 못을 이용할 수 있었고, 또 원형톱날이 발명되어, 기계동력으로 두꺼운 목재도 쉽게 자를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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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화 제재소에서 가공된 판재와 못만 이용하면, 장인이 아니더라도 어렵지 않게 간단한 가구나 수공예품을 만들 수 있게되었고, 또 건축계에서는 이러한 기술혁신에 힘입어 더 단순한 방법으로 집을 지을 수 있는 경량목 구조공법이 미국에서 발명되면서, 소수 장인들의 비효율적인 수공업에 의존하던 목공 길드는 점차 사라져가고 현대적인 노동자로서 목수와, 목수 노동조합이 등장하였다. 그러면서 노동조합이나 정부로부터 지원 받는 직업전문학교가 생겨나고, 목공기술 역시나 인맥이나 소득 자산과 상관없이 누구든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현대에는 노동조합에 가입하거나 직업전문학교 등에 입학하면 교육을 받고 목수가 될 수 있으며, 그밖에도 과거 도제제도처럼 누군가에게 교육을 받으며 일을하며 직업교육을 받을 수도 있다.

그 외에 1880년에는 영국에서 목수 노동조합이 생겨나, 목수노조 주도로 일일 근로시간 8시간 정착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오늘날 노동법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끼쳤다.

2.2.1. 한국

삼국사기》 '직관지'에 나타난 궁정 수공업 관청의 직제 가운데 밥상, 책상, 의자 따위를 만드는 곳을 '궤개전'이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신라 시대에는 목수들의 일이 분업화되지 않았으며, 따라서 이름도 따로 없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실제로 신라의 목공 기술은 백제보다 뒤떨어져서, 선덕여왕이 국내 최대의 목탑인 황룡사 9층탑을 세울 때는 백제의 목수인 아비지를 초빙하였다. 또, 백제인의 뛰어난 기술은 일본에까지 전해졌으며, 일본이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라고 자랑하는 호류사도 백제인들이 건너가서 세운 것이다.

일의 내용을 나타내는 목업이라는 이름이 기술자를 가리키는 목수로 바뀐 것은 조선 시대 초기의 일로, 1460년(세조 5년)에 제정된 체아직(遞兒職:현직이 없는 문무관에게 주는 벼슬) 규정에 목수 100명이 '선공감'에 배속되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그러나 이 명칭은 공식 문서에서는 곧 사라졌다. 1471년(성종 2년)에 완성, 반포된 《경국대전》에는 목장이라고 씌어 있으며, 조선 시대 말기에 편찬된 《대전회통》에도 같은 이름으로 적혀 있다. 《경국대전》에 실린 목장의 수를 보면 중앙 정부에 딸린 이른바 경공장이 74명이고, 지방 관아에 소속된 외공장은 356명이다.[1]

조선 시대 초기 목수와 소목장의 대우에는 큰 차이가 있었다. 1461년(세조 6년)의 체아직제에 따르면 목수에게는 '전사'(典事 정7품)와 '부전사'(副典事 정8품) 각 1명과 '급사'(給事 종8품)와 '부급사'(副給事 종9품) 각 2명씩을 배정하였다. 그러나 소목장에게는 단지 부급사 1명뿐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궁궐과 같은 큰 건물을 짓거나 고칠 때는 목수가 벼슬도 받았다.

1447년(세종 29년) 서울의 숭례문을 고칠 때 총책임자인 대목은 정5품, 우변목수와 좌변목수는 종7품의 직위를 받았으며, 1479년(성종 10년) 개축 공사 때는 대목이 어모장군으로서 정3품의 당하관이었다. ‘도편수(우두머리 목수)는 정승감이어야 한다.’는 우리 속담은 이러한 데서도 연유했을 것이다.

조선 시대 후기에는 목수의 기술이 더욱 더 세분, 전문화되었다. 철종 때 이루어진 《인정전중수의궤》에 따르면 이 공사에는 도편수와 부편수 아래 정현편수, 공도편수, 연목편수 등이 참가하였다. 도편수는 공사 전체를 주관하고, 부편수는 그를 보좌하며, 정현편수는 지붕의 기울기나 기둥 및 보의 크기와 간격을 담당하였다. 그리고 공도편수는 공포를 짜고, 연목편수는 서까래를 거는 일을 맡았다. 이 밖에 수장 일을 하는 수장편수, 단청장이인 단청화사, 조각장인 조각편수, 자귀장이인 선장소임, 톱장이인 기거편수, 가칠장이인 가칠편수, 석수장이인 석수편수, 대장장이인 야장편수, 나막신장이인 목혜편수 등이 협조하였다.

그러나 이렇게 작업과정에 따라 역할구분은 되었지만, 정작 <의궤>상에 나오는 임금액을 살펴보면, 실질임금 측면에서 아무 기술이 없는 비숙련공과 기술이 있는 숙련공의 임금액수가 거의 같은 등 조선시대 기능을 가진 사람에 대한 경제적 대우는 없거나 거의 미미한 수준이라는 연구결과가 계속 나오는 실정이다.[2] 물론 공식적으로 기록된 임금외에도 별도의 수입이나 보너스가 더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지만, 자료가 없어 확신할 수는 없다.

일제강점기에는 건축/가구/창호등에 종사하는 목수들의 직업군을 일괄 조사하여 기술과 경력을 체계적으로 증명해주는 공적 증명서를 발급하였다. 정확한 소득을 파악하여 소득세를 부과하고, 각지의 기술자 현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였다. 장인이나 대공급 기술자는 십장이라고 하여, 십장 증명서를 발급하여 배부하였으나, 해방이 되고 나서 제도가 없어졌다. 이 시대에는 일제의 관공서나 창고 건물을 짓기 위해 일본인 목수의 유입이 두드러졌는데, 현재도 그 영향으로 목수들이 쓰는 목공공구인 수공 대패가 거의 대부분 일본식이고, 최초의 무형문화재 한옥목수인 배희한 목수 역시 일본인 밑에서 처음 일을 배웠었다고 한다.

해방 이후 현재까지 목공기술 장인에 대한 자격증 배부는 오히려 일제강점기보다 지지부진하며, 한옥을 제외한 다른 분야에서 장인급 기술자에 대한 자격증명이나 대우는 조금 부진한 편이다. 분야별 직업학교가 있지만, 일을 하면서 배우는 직업교육도 존재하며, 비중도 낮지 않다. 한옥계에서는 장인급 기능공을 무형문화재 제도나, 문화재수리 자격증 등을 발급하여 관리하나, 그밖의 다른 기능공들에게 별도의 자격증이 존재하지 않거나, 존재해도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대학으로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전통건축학과 정도가 있다.

한편 국가에서는 전통 목수를 한옥을 짓는 대목장, 가구를 만드는 소목장으로 분류하며, 도편수는 관습적 명칭으로만 남아있다. 사실 조선 초까지 한옥 건설 총괄자에게 대목 벼슬을 내리고 건축을 맡겼는데 입지가 낮아지며 도편수라는 명칭으로 격하된 것이긴 하며#, 이런 사실이 대목장 명칭 공식화와 관련된 듯하다.

몇몇 분야 목수들은 고용보험에 가입치 않고 임금을 현금이나 계좌 이체 등으로 지급받아 정확하게 통계에 잡히지 않으며, 소득세를 내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회에서의 인식은 조금 미묘한데, 돈을 많이 번다는 인식이 있는가 하면, 분야를 막론하고 목수를 과거의 공장에 다니던 비숙련노동자나 건설현장 일용 노동자 등과 동일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3. 구분

3.1. 건축

3.1.1. 형틀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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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명칭으로 형틀공, 혹은 거푸집 목수등으로도 불리며, 영어명으로는 Concrete Form Carpenter라고 쓰거나, Concrete Form Worker등으로 부른다. 철근 콘크리트 건물의 기초 뼈대나 토목작업을 하기 위한 콘크리트 기초를 만들 때 필요한 거푸집, 즉 형틀을 만드는 목수들을 통칭한다. 규격화된 형틀이 없을 당시에는 콘크리트를 부을 형틀을 모조리 목재로 직접 만들었으나, 현재는 이를 위한 규격형틀(예를 들어유로폼)들이 개발되어 규격폼을 조립하는 일이 주가 된다. 아직도 계단이나 지붕 등 복잡한 공간등에는 목재를 많이 사용하지만, 규격폼이 개발된 이후에는 쇠나 플라스틱으로 된 형틀을 더 많이 다루다보니 나무랑 조금 멀어진 감도 있다.

그밖에 위험한 건설현장에서 일할 뿐더러 자재의 무게가 많이 나가고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힘들고 어려운 일에 속하며 인원이 모자라 급여가 높은 편이다. 토목공사부터 해서 교량이나 교각 각종 건축분야에서 콘크리트는 널리 쓰이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우 외국과 달리 주택이나 상가에도 대부분 철근 콘크리트 건물이 많기 때문에, 건설현장에서 인원 수요가 가장 많다. 한국에서는 보통 건설현장에서 목수라고 하면 형틀목수인 경우가 많다.

3.1.2. 프레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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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권 현지에서는 Framing carpenter 나 Framer로 일컬으며, 구체적으로는 미국식 경량목 구조 주택의 목골조(木骨組)를 만드는 목수를 뜻한다. 한국에서는 딱히 구분지어 부르는 명칭이 없다보니 그냥 두루뭉실하게 목조주택 목수라고 일컫는다. 다만, 목조주택이라는 명칭이 한옥까지 포괄하는 의미이기 때문에 어미가 부정확하다. 일본에서는 경량목구조나 중목구조 가리지 않고 집짓는 목수는 다 大工이라고 부른다.

국내에서는 최근에 단독주택을 중심으로 경량목 구조의 수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다양한 공간과 모양을 만들기 쉽고, 건축비용이나 시간이 철근 콘크리트조보다 비교적 적게 소요되고, 다른 부수작업을 하기도 편리하다 보니 소규모 건축회사들이 실력을 뽐내어 건축대전이나 잡지 등에 홍보하는 일이 늘었다. 한국에서는 매해 1만 채 가량이 계속 지어지고 있다.

국제적으로 보면, 미국, 영국, 유럽, 일본, 호주 등지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주택은 목재로 짓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며, 그중 미국식의 경량목구조(light weight wood frame)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3] 만들기 쉽고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저 지역에서는 가장 흔한 목수 직군 중 하나다.

3.1.3. 팀버프레이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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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공된 목재들
작업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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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식 중목구조
작업과정

중목구조 혹은 팀버프레임 구조 건물을 만드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앞서 말했듯이 일본에서는 미국식 경량목, 중목을 구분치 않고 집짓는 목수는 다 다이쿠(大工)라고 부른다. 유럽이나 북미, 오세아니아 등지에서는 경량목 구조를 시공하는 사람과 구분지어 이렇게 부른다. 구조가 비교적 복잡하고, 목재를 가공하는데도 시간이 비교적 더 걸리기 때문에 시공비용이 비싸고 배워야 할 것도 많은 직업이다. 유럽이나 북미에서 팀버프레임 시공자는 국내의 한옥목수와 비슷한 모습으로 인식되고 있다.

작업방식도 지역이나 회사마다 저마다 약간씩 다른데, 일본의 경우 일반주택을 지을 때 쓰는 재래공법에는[4] 공장에서 미리 가공하는 프리컷(Pre-Cut)을 도입하였고[5], 중목구조 시공자들은 보통 미리 만들어진 목재를 현장에서 조립하는데, 잘 안맞으면 끌이나 톱등으로 조금씩 더 다듬고, 거대한 나무 망치를 들고 때려서 끼는 일이 이들의 주업이다.

독일이나 북미등에서도 이런 공장가공을 선호하기도 하나, 북미에서는 비교적 수요가 그리 많지 않고, 있더라도 소득이 있는 사람들이 주로 찾기 때문에 지역공방에서 목수들이 수작업을 하기도 한다.

3.1.4. 한옥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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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랑, 한국의 서정민요

김장, 한국의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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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탈춤
1 12개국과 공동등재, 2 베트남·캄보디아·필리핀과 공동등재, 3 북한과 공동등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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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목(治木) 중인 한옥목수들
작업과정

한국에서 목수를 부르는 전통적인 이름은, 대목장, 소목장, 도편수[6] 등이 있다. 대목장과 도편수는 단순히 목수가 아니라 설계부터 자재 조달, 시공, 감리까지 전 과정을 아우르는 한옥 건설의 총괄 책임자를 뜻하고, 소목장은 보통 창호와 가구등을 짜는 목수를 일컫는다. 도편수와 대목장은 전통적으로 수십 년에 걸친 도제식 교육과 현장 경험을 통해 전승되었다. 고려 시대에는 대목장들에게 관직이 주어졌으며[7], 조선 초에는 이들에게 주어진 최고 관직이 정5품으로 기록되었다.

현재에는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전통건축학과에서 한옥을 배우고#, 전국 각지에 사설 및 국립 한옥학교 등이 있어서 한옥의 제조공정을 배우고 한옥목수가 될 수 있다. 팀버프레이머와 마찬가지로 목재를 가공하고 조립하는데에 많은 교육이 필요하다. 현장에서는 주로 목재를 가공하는 치목작업과 현장에서 조립하는 일을 하나, 최근에는 인접국가인 일본의 영향과 세계적인 추세에 힘입어 기계화 자동 공정이 도입되어, 공장에서 가공된 부재를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웃인 일본과 달리 한옥은 시장이 작아 일반 민중이 접하기 어렵고 가격이 비싼 탓에 주택으로 지어지는 것은 드물고, 한옥목수들은 주로 사찰과 같은 관용이나 공용 및 상업용 건축물을 짓는다.

3.1.5. 내장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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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명으로는 Interior carpenter, Finish Carpenter. 국내에서는 인테리어 목수라고도 한다. 주로하는 일은 건물 내부의 인테리어, 유리섬유나 석고보드등의 단열재를 설치하거나 천정을 만들거나, 바닥에 걸레받이와 천정의 몰딩을 설치하거나, 집기, 방문등을 설치 및 제작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다. 과거 한국의 소목장도 창호와 가구를 제작하는 사람들을 일컬었다. 인테리어를 담당하기 때문에 주로 건물 실내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으나 바깥 데크나 상가 작업을 하다보면 외부작업도 하는 편이다.

3.2. 선박목수(조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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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공, 선목장, Ship's Carpenter, Shipwright

과거에는 주로 선박이 목재였기 때문에, 조선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배를 만드는 동시에 일종의 목수들이었다. 그러나 고대때부터 집을 짓는 사람과 가구를 만드는 사람을 똑같이 목수로 취급하였어도, 조선공 만큼은 별개로 취급했다. 애초에 현재 목재선박을 만드는 장인을 조선공이나,선목장이라고 부르고, 영어권에서도 전통목선 제조업자는 Ship's carpenter라는 명칭보다, Shipbuilder나 Shipwright로 더 많이 부르는 편이다. 어찌됐던 19세기 이후 철선의 등장으로 현재는 화물이나 여객의 목적으로 운용되는 함선은 대부분 금속으로 만드므로, 목공인으로써 조선공은 이제 요트곤돌라 혹은 레저용 범선을 만드는 곳에서나 찾아볼 수 있다.[8]

해외에서는 레저용 목선에 대한 수요가 있어 몇몇 목선박 제조 공방이나 공장등이 존재하나, 국내에서는 범선 제작은 요원하고, 그나마 레저용 선박을 만드는 요트업체에서조차 선박을 유리섬유나 철제로 만드는 일이 더 많아, 목조선박을 만드는 조선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전통한선 복원 및 제조등에는 국내에서 단지 두 업체 '(주)전통한선복원연구소'와 '(주)청해진조선해양'이 있고, 서구식 목조선박 제조회사로는 '(주)올리버선박'이 있다. 개중 올리버 선박에서는 올리버선박학교를 설립하여 선박교육을 진행한다. 그밖에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에서도 전통한선 복원 사업을 진행하며, 문화재청 자체적으로 목선박 전문인력을 몇몇 고용한 상황이다.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조직도 목선박은 시장규모가 한옥보다 현저하게 작다보니 문화재청 고용 공무원 외에는 급여와 근로여건이 현재 공개적으로 밝혀진 것이 없다.

3.3. 가구목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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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그대로 가구를 제작하는 장인이다. 영어로 Carpenter라고 하면 가리키는 직군이 많기 때문에 Cabinet maker라고 부르기도 한다. 건축물에 쓰이는 목재가 보통 덩치가 크고 잘 자라는 침엽수 위주인데 비해, 가구는 활엽수와 침엽수를 가리지않고 취향이나 목적에 맞게 쓰기 때문에 다루는 목재가 가장 다양하다.
영업의 형태에 따라서 공방이나 공장에서 고객(혹은 고객사)으로부터 주문 된 가구를 제작하여 배송하는 가구목수들이 있는가 하면, 주택이나 상가에 가구를 설치하는 쪽에 주력하는 가구목수도 있고, 이 둘 모두를 겸하는 가구목수도 있다.
주문 된 가구를 제작한다 함은, 장롱, 서랍장, TV받침대, 책꽂이, 책상, 식탁 등 "이동가능한" 가구들을 주로 의미한다.
반면, 설치하는 가구는 신발장, 붙박이장, 싱크대, 주방 수납장, 고정선반, 등 가구를 해체하지 않고서는 이동이 어려운 가구들을 주로 의미한다.
가정용으로 쓰이는 가구로는 원목의 선호도가 높고, 반대로 상가, 사무실, 공장 등에서는 MDF합판등이 많이 사용된다.

홍익대학교를 비롯하여 각 대학별로 가구디자인 학과가 설치되어 있는데다가, 미술계열 진학생들이 가구나 인테리어 쪽에 관심이 많아 매해 일정한 수의 인재 및 인력들이 쏟아져 나오는 상황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목공 DIY열풍이 불면서 독창적인 디자인의 원목 가구에 관심이 높아져 다른 일을 하고싶어 가구업에 뛰어드는 사람도 등장하고 있다.

이렇게 인력수급이 넘쳐나는 상황이다 보니 근로여건은 목수 중에서 제일 안좋다. 구체적인 근로여건은 후술

4. 급여와 근로조건

4.1. 한국

  • 형틀목수 : 많은 건축물이 철근 콘크리트조라서 형틀 목수는 가장 수요가 많고 동시에 노동자 단체가 가장 잘 이루어져있다. 보통 처음 입문시 인력사무실의 잡부와 동일하거나 그보다 높은 일일 13-16만 원을 받고,실력이나 경력에 의해 금액이 점진적으로 상승하는데, 이 기준은 사람마다 제각기 다르다. 대한건설협회에서 집계한 2022년 전국 형틀목수 기능공 표준 급여는 일일 242,138원링크, 노동조합의 경우 2021년 합의기준으로 일일 23만 5천 원이다. 2023년 경기도 남부 인력공사 가격기준으로는 일일 30만 원, 수수료를 제하면 27만 원 정도다. 2018년 노동조합의 기준에 따르면, 기초직업교육을 한 달간 이수한 초보자는 일일 16만 5천 원, 조공은 19만 5천 원, 반장은 24만 5천 원, 팀장은 27만 5천 원이었다. 노동조합에 가입할 경우 토/일요일 근로는 연장근로로 취급되어 1.5배의 연장수당 배율이 적용되고, 노동조합 규칙에 따라 별도의 월차가 있다. 물론 노동조합 혜택으로 미가입자는 사업장 재량에 따른다. 기본적으로 철근 콘크리트에 종사하기 때문에, 날씨가 추워 콘크리트 양생이 힘든 겨울에 일이 줄어드는 편이다. 원룸이나 소규모 빌딩은 보통 겨울에는 공사를 기피하고, 대형 건설현장은 공사규모도 크고 공사기간도 길어 비용의 증가를 감수하고서라도 온풍기와 천막 등을 이용, 실외기온을 맞추면서 공사를 진행하여, 형틀 목수들의 일감을 주기도 한다. 상황에 따라 정해진 근로일이나 시간이 제각각이지만, 보통 일요일 휴무가 많고, 근로시간은 오전 7시 내외에 출근하여 5시가 되기 전에 퇴근한다. 대게의 건설현장 처럼 오전과 오후에는 간식이 나오는 참시간이라는 휴식시간이 있다. 고정된 퇴근시간을 넘겨 연장근로를 할 경우 2시간을 연장하며, 수당은 보통 1.5배(시급 200%)로 간주한다. 규모가 작은 건설현장의 경우 형틀 목수가 타설을 겸하거나, 철근작업까지 겸하는 경우도 종종 있으나, 대규모 공사의 경우 아예 철근과 콘크리트 타설이 나뉘어져 있고, 심지어 양생이 완료된 콘크리트에 붙은 형틀을 떼어내는 작업을 전담하는 해체인원이 별도로 배정된다.
  • 경량목구조 목수 : 보통 목조주택 목수라고 한다. 일본이나 유럽, 북미의 경우엔 수요가 많지만, 한국은 주거지까지 철근콘크리트조가 주류이고, 목조주택은 전원주택 외에 수요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시장이 작다. 아직까지 노동자 단체나 노동조합은 없다. 다른 직군과 달리 전국단위의 평균 급여 자료가 없다. 구인구직 커뮤니티의 게시글들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종종 중목 구조경량목 구조를 병행하는 경우가 많고 급여나 근로조건도 큰 차이가 없이 유사하게 형성되어 있다. 2018년 기준 보통 초보자 공임은 일일 10만 원이고, 기능공 공임은 일일 15~18만원으로 형성되어 있다. 현황상 일일급여 15만원 선이 가장 많아, 인테리어 목수나 형틀목수보다 적은 편이다. 고가의 작업장비를 소유할 경우 장비대라는 명목으로 포함하여 일일 25만 원까지 지급해주는 경우도 있으나 매우 드물다. 바닥의 기초토대만 준비되어 있다면, 겨울에도 일이 가능하지만, 시장규모가 매우 작기 때문에 보통 겨울에 일이 적고, 또한 한 지역에서 꾸준하게 일감이 나오지 않아 전국구로 출장이나 숙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근로시간은 보통 오전 8시에 출근하여 오후 5시나 5시 30분에 퇴근하는데, 근로시간과 연장근로수당에 대한 것이 명확치 않아 논란이 많다. 유독 한국에서는 소형건설현장 임금체불이 빈번하여, 매해 구직/구인 사이트에 임금체불 신고게시글이 올라오며, 심지어 임금체불을 겪었음에도 번거로움때문에 공공연히 밝혀지지 않는 경우도 많다.
  • 인테리어 목수 : 상가나 주택가, 사무실에서 광범위하게 활약하는데, 마찬가지로 개인고용이 일반적이고 지역별로 편차가 있으나 2022년 기준 기능공의 인건비는 26ㅡ29만원 사이로 형성되어 있다. 초보자의 경우 딱히 정해진 가격이나 기준이 없이 최근에는 인원유입이 더 늘어서 개인차가 심한 편이고 열정페이도 생겨나는 추세다. 꽤 많은 사람들이 종사하는 직군임에도 아직까지 노조설립등의 움직임이 지지부진하고 형틀목수처럼 전국단위 노조는 없다.[9]2022년 대한건설협회에서 집계한 평균 인건비는 237,273원 가량이고, 각종 협동조합 등 이권단체이서 지정한 인건비는 자신의 개인 작업 장비 사용료[10]를 포함할 경우, 반장 인건비는 일일 35 ~ 42만원 가량이다.참고 근래에 신축이나 재개발등을 담당하는 주거지 관련 인테리어 공정의 수요는 많아졌지만, 상가의 경우 자영업의 창업 수요가 일정치 않기 때문에 일이 일정치 않다. 특히 수도권의 경우 인구가 많고 상가가 많이 밀집되어 있지만, 그만큼 목수의 공급도 원활하기 때문에 일을 하기가 어렵다. 게다가 실내에서 일하기 때문에 날씨와 상관없이 일할 수 있고, 비교적 육체적으로 힘이 덜들기 때문에 입문희망자가 많아 경쟁율을 심화시키고 있다. 근로시간은 오전 8시에 출근하여 오후 5시에 퇴근하는 것이 보통이나, 점심시간은 1시간에 오전과 오후의 쉬는 시간은 사업장 재량에 따라 없을 수도 있다. 목조주택과 마찬가지로 빌라나 원룸, 그외 개인 상가나 중소기업의 발주를 받는 경우, 한마디로 소규모 건설현장에서 임금체불이 꽤 빈번하게 일어난다.

  • 한옥 목수 : 자격증이 있는 목수에게 도제로 들어가거나 지역별 한옥학교를 졸업하고 학교추천이나 알선으로 실습 및 구직하는 경우가 많다. 앞서 다른 건설직 목수들과 달리 인터넷을 통한 구직/구인체계가 잘 자리잡지 못하고 개인적인 알선과 추천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시장 자체가 폐쇄적이기 때문에 급여와 근로시간이 불분명하다. 대한건설협회에서 통계낸 평균 임금치는 도편수가 30만원 이상, 기능공이 22만 원 이상, 조력공이 17만 원 이상이지만, 실제로는 조력공과 기능공 모두17만 원 이상 받는 경우는 거의 없다. 보통 책임자나 도편수가 원청 회사의 임금기록계에 일꾼들의 급여를 높게 적어놓고서, 정작 자신의 일꾼들에게는 그보다 훨씬 적은 급여를 지급한다. 그리하여 실제 초임자는 통상 7~8만 원의 일당을 받으며기사 근로시간은 오전 6시~7시에 밥을 먹고 바로 시작하여 오후 6~7시에 끝나며 점심시간이 일정치 않으며 오전, 오후의 쉬는시간은 별도로 없이 일하기도 한다. 당연히 일일 8시간을 초과한 것이다. 수 년간 경력을 채웠다고 하더라도 일일 급여는 9 ~ 13만 원 사이이거나 이보다 더 적을 수도 있다. 애초에 수요도 적고, 그나마 있는 수요도 전국적으로 산재한 사찰이나 관용건축물이 많아 인적이 드문 지역에 파견이나 출장근무를 가는 일이 잦다. 문화재수리기능자격증 소유자나, 명인, 인간문화재 등의 소수 장인들의 수입은 엄청나게 높으나, 이런 명인들을 제외한 실제 일꾼들의 급여는 다른 건설직종보다 비교적 매우 적기 때문에 얼핏 자본과 소득 등을 소수 장인들이 과점하는 듯 한 모양새를 띄고 있다.
  • 가구목수 :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공장의 경우에는 애초에 자동화 공정으로 사람이 하는 공정은 단순공정인 경우가 많거나 그마저도 사람을 잘 구하지 않는다. 그래서 대부분의 가구목수는 대체로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나 영세업체에 많고 건설현장처럼 일용직의 연장선으로 고용을 하는 것이기 아니기 때문에 월급제로 고용된다. 그나마 고용은 비교적 안정적이고 장기적이나 일일 급여나 월별 급여자체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기술이 없으면 통상 거의 법정 최저임금선에서 기본급이 결정되는 편이나, 사업장에 따라 그 이하로 주는 불법사업장도 존재한다. 대체로 영세자본이나 계절별 고객의 수요에 따라 일의 수주량이 수시로 변하기 때문에 일의 양은 분기별, 사업장 별로 크게 다르다. 게다가 가구의 특징은 한 번 사면 어지간해서는 5년, 10년은 두고 쓰기 때문에 이 수요가 꾸준할 수가 없다. 실내근무가 많고, 가구제조업에 대한 청년층의 인식도 좋고, 홍익대학교를 비롯해 각 대학교에도 가구디자인 학과가 있기 때문에 청년층의 구직이 많아 근로조건 개선될 여지가 많이 적은 편이다.

4.2. 일본

일본은 한국과 달리 단독 주택 문화가 잘 자리잡고 있고, 또한 단독주택의 거의 대부분이 목조주택이다. 목조주택의 수요도 현대식 경량목 구조와 개량된 전통 중목구조로 나뉘는데, 양측 다 일정하게 수요가 있는 편이다. 전시회가 많은 만큼 전시회장의 부스를 설치, 철거하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목수도 많다. 보통 건설현장 목수는 비나 눈, 그밖의 여러 기후적인 조건등의 요인이 없다면 주 6일을 일하는 편이다. 수입도 꽤 짭짤한 편이다.[11]보통 신사 건축 또는 유지보수를 전문으로 하는 목수인 ‘미야다이쿠(宮大工)’가 수입이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사가 많은 만큼 유지보수 수요도 많다고 한다.

임금은 일본 국토교통성이 집계한 것링크에 따르면 레이와 2년(令和2年)인 2020년, 집의 목재뼈대를 만드는 목수 다이쿠(大工)가 전국 평균 일당으로 23,315 엔(円)을 받아 당시인 2020년 환율로 한화 229,690 원이었다. 콘크리트 거푸집을 만드는 형틀목수 가타와쿠코우(型枠工)가 25,146 엔으로 한화로 일당 247,730 원이다. 앞 서 언급한 미야다이쿠(宮大工)는 월별 혹은 연봉등으로 임금집계가 되는데, 2022년 월 평균 급여는 31만 엔, 연봉은 406만 엔 정도로 각각 한화로 월급은 3,062,800 원, 연봉은 40,112,800 원이다.

2000년대 초와 비교해서 현재 일본의 임금은 한국과 액수의 차이가 거의 없거나 오히려 한국 측이 높다.

4.3. 북미, 영국 및 영연방

서구권에서는 산업혁명 초창기 공장노동자와 함께 노동조합 결성에 가장 먼저 앞장을 섰던 직업으로 북미와 영국 모두 아주 오래전부터 전국적으로 노조가 아주 잘 결성되어있고 조직력도 상당히 뛰어나다. 어떤 직군의 목수냐와 상관없이 법정근로시간과 급여, 복리후생의 준수가 매우 분명하며 한국과 달리 중소규모 업체에서도 임금체불 자체가 매우 드물다. 캐나다영국 같은 경우에는 정부에서 산업재해보상이 매우 철저하게 되어있으며, 정부로부터 별도의 의료혜택이 없는 미국조차도 미국내 다른 직장이 그렇듯 통상 직장의료보험에 거의 의무적으로 가입하고, 노조에도 간섭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는 기간을 정하여 고용하는 것이 많은데에 반해 기본적으로 건설시장 자체가 많고 일의 수요도 꾸준하게 있는 편이기 때문에 단기고용이나 일당제의 고용보다는 정규고용이 일반적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창업을 하여 사업을 하여 프로젝트별로 일을 해주는 자영업자도 많다.

정규고용이 일반적이기 때문에 일일근로시간 뿐만이 아니라 통상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주당 근로시간도 철저하게 지키는 편으로 각국의 법규에 따라 다르겠지만 주당 40~44시간정도를 일하고 주5일제 근로를 한다. 일용직근로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소득에 대한 세금은 연봉이나 급여등을 기준으로 수취되며 세율은 각국, 각주의 세율규정에 따라서 다르다.영국소득세율. 캐나다 소득세율, 미국 소득세율

현장이나 사업장, 회사별로 계약된 규정근로시간은 제각기 다른데 오전7시에 시작해서 오후 4시에 끝나는 경우도 있고 5시에 끝나는 경우도있다. 경우에 따라서는 오전 6시에 시작해서 오후 3시에 종료되기도 한다.

한국과 달리 장비대는 별도로 지급되지 않고 역할에 따라 급여에 차등을 둔다. 근로자의 급여는 시급을 기준으로 하고, 도급업자의 경우 시공가격에 의해 수익이 결정된다.

현재 미국의 경우 미국 노동통계국에 따르면, 기능공은 2021년 전국 평균 시급 22.99 - 24.94 달러 연봉은 51,880 달러를 벌고 있으며, 조공이나 초보자로 분류되는 Helper의 경우 시급 17.64 - 18.22 달러, 연봉은 37,900 달러를 버는 것으로 집계된다.링크 통계외에 크레이그리스트와 키지지(KIJIJI) 등에 나오는 구직/구인란에서 확인할 수 있는 평균 급여는 2019년 기준 캐나다와 미국 모두 환율과 상관없이 초보자 급여는 시급 15불 혹은 25불로 시작해서 숙련공의 경우 시급 35불 가량 혹은 그이상을 받아, 일일 8시간기준으로 일일 120불~280불 정도를 지급받는다.

영국의 경우 영국정부에서 이민자들을 위해 직업별 임금평균을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링크, 숙련자를 기준으로 전국평균 주 39시간 근로하에 연 22,300 파운드, 시간당 11파운드를 번다고 한다. 2022년 한화로는 35,479,077 원, 17,500 원 등이다. 통계외에 개별적으로 노동자들에게 직접 물어봤을 경우 2016년 아일랜드에서는 숙련자를 기준으로 일일 150파운드에서 180파운드를 지급받았었다.

각 일당은 각국의 세금에 따라 실제 근로자의 손에 들어오는 금액은 달라진다. 지역에 따라 큰 차이가 있으나 대략 이 금액에서 소득세액율로 30%정도를 감산하여야 한다.

각분야별로 자격증이 별도로 발행되고, 직업전문학교와 함께 직업전문대학교까지 존재하고 사업장에 따라서는 안전교육과 함께 구인시 자격증을 함께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4.4. 독일 및 유럽

2015년 경에 독일 동포 커뮤니티인 베를린 리포트에 한 청년이 독일에서 목수와 용접공의 삶과 소득에 대해서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교포가 댓글에서 답변한 내용은 이렇다. 현장목수의 월 인건비는 대략 월 2천유로(2018년 기준 한화 262만 원) 내외인데, 사회보장비등의 각종 세금이 40%로 실 수령액은 1,500유로(2018년 기준 한화 197만 원)이고, 자신과 같이 생활한 지붕수리 목수의 경우 성수기때에 월 1,500유로, 비수기때 1,000유로, 겨울일 때에 소득이 없어서 실업수당으로 생활을 했다고 한다.

5. 목록

역링크 목록을 참조.

5.1. 실존 인물

  • 공수반(노반): 중국 역사적으로 유명한 목공 장인. 이 사람이 을 발명했다고 전해진다. 궁성을 만드는 데 쓸 목재가 부족해서 산을 오르다 넘어질 뻔 하면서 풀을 잡았는데 풀결의 날 때문에 상처가 난걸 보고 풀의 결을 본따 쇠를 다듬어서 최초의 톱을 만들었다고. 다만 톱날 자체는 이미 구석기시대부터 인간이 만들어서 잘만 썼다. 실제 톱니날 석기를 보면 톱날의 모양과 역할이 톱과 유사하다. 다만 톱니날 석기는 대부분이 소형석기인지라 나무를 자르는데 쓰지는 않고 동물 관절 부위를 자를 때 이용된 것으로 보인다.
  • 김병만 : 아버지가 목수였으며, 현재 주택건설회사에서 홍보모델로 활약하고 있고, 또 때에 따라서 같이 일을 하기도 한다.
  • 배희한(1907 - 1997) : 1985년 대한민국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 대목장으로 이광규씨와 함께 처음 선정된 목수다. 자신의 목수일생을 회고한 "이제 이 조선톱에도 녹이 슬었네"를 출판사를 통해 출간한 적있으며, 무형문화재 제도가 정비될 당시 대목장의 계보와 전승과정을 진술하면서 무형문화재 제도가 안착하는데에도 기여하였다.
  • 신응수: 숭례문 복원 사업에 참여했던 대목장. 신응수는 1세대 무형문화재인 이광규씨의 직계제자로 1991년에 무형문화재로 선정되면서 해방이후 2번째로 대목장 신분으로 무형문화재를 받았다. 그러나 광화문 복원 과정에서 금강송을 횡령했다는 혐의로 벌금형을 선고 받으면서 무형문화재 자격이 박탈됐다. 링크
  • 예수: 30세가 되어 공생애전까지 집짓는 목수로서 일했다. 그의 제자들 중에도 어부, 옷감 가게 주인 등 단순노동직이 많았다. 보다 정확하게는 그리스어로 된 성경에서 그의 직업을 Tekton이라고 적고있는데, 이게 '건물을 짓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더불어 성경에서는 예수가 건물을 짓는 예를 많이 드는데, 목공소 노동자라기 보다, 건설 노동자였을 가능성이 크다.
  • 지미 카터: 집없는 사람들 위해 집을 지어준다 대통령 재직시절에도 나무 조각을 했다고한다 여담으로 심슨가족 편에서 나와서 자신이 직접 집을 만들기도한다.
  • 천계제: 명나라의 황제이지만 나라는 안다스리고 목수 일만 했다.
  • 최기영: 중요무형문화재 74호 대목장. 신응수 대목장과 함께 한국 전통건축계의 투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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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가상 인물

민담이나 설화에도 목수에 관련된 것들이 있다. 대표적으로 북두칠성에 얽힌 민담. 집을 삐딱하게 지은 목수가 도망치고 있는 모습이라고 한다.

6. 이야깃거리

한 때 오마이뉴스 기자가 전직 한옥목수의 삶에 대해서 인터뷰를 한 뒤 이를 연재기사로 쓴 적이 있다.링크 현장근로자의 열악한 삶의 모습이 잘 보여주고 있어서 애달프다.

교과서에 목수에 관련된 글이 실려 있는 경우가 있다.[17] 신영복의 《목수의 집 그림》이 그것.[18] 내용인즉슨, "일반인들은 집을 그리라고 하면 먼저 지붕부터 그리고, 그 다음에 벽을 그린 후, 창문과 문을 마지막으로 그린다. 그런데 어쩌다 만나게 된 목수가 집 그림을 그리는 것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주춧돌부터 그리기 시작해서 집을 짓는 순서를 정확히 따라 그리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일하는 사람의 그림이었다." 정도이다.[19]

수직추(plumb bob setter)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현재까지 이용되는 도구로 집이 똑바로 지어지고 목재나 석재의 잘린 각도가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실로 묶은 추를 늘어뜨려 수직 자나 각도기와 비교하여 각도를 확인하는 데 쓴다.

게임 《에이지 오브 엠파이어 2: 정복자》에는 한국 문명이 등장하는데, 이 게임에서는 각 문명별로 그 문명의 언어를 사용한다. 물론 한국 문명은 한국어 더빙이 되어 있다. 가장 기초적인 경제 유닛인 주민의 경우, 어떤 명령을 내리면 자신이 부여받은 직업을 복창하는데, 건물 건설을 시키면 남녀 불문하고 "목수" 라고 복창한다. 이 게임은 성우진은 엄청나게 화려한데, 정작 유닛 대사는 별 볼 일이 없는 걸로도 유명하다.

정형외과 의사들이 주로 목수라고 불린다고 한다. 이나 드릴등의 공구를 사용해서 깎고 자르고 붙이고 그래서 그렇다고… 현재는 조경이나 벌목, 목공용으로 쓰이는 전기톱도 본래 뼈를 자르기 위해서 개발되던 것이 시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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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확실한 발암 물질 120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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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암의 종류에 따라 1군/2A군으로 나뉜다.
[2] GMO, 항생제 등 고기 잔류 물질이 문제가 아니다. IARC에서는 확실히 밝히지는 않았지만 고기의 성분 자체가 조리되면서 발암 물질을 필연적으로 함유하기 때문이라고 논평하였다. 청정우 같은 프리미엄육을 사 먹어도 발암성이 있다는 뜻이다. 이에 전세계의 육류업자들이 고기를 발암물질로 만들 셈이냐며 정식으로 항의하기도 하는 등 논란이 있었다.
[3] 단, 올바른 조리 과정을 거치면 먹어도 문제는 없다. 문서 참조.
[4] 카프로락탐. 2019년 1월 18일 IARC 서문 개정에 따라 불필요하다고 판단되어 삭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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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B군 발암물질에 목공 업무가 해당된다. 목수들이 일상적으로 노출되는 톱밥은 1군 발암물질이다.

7. 관련 문서


[1] 이것은 전 외공장(3,764명)의 9.45%에 이르는 수로서 지장(705명), 야장(493명), 석장(408명), 시장(377명)에 이어 5위에 이른다. 한편, 《대전회통》의 경공장 수는 78명으로 조선 전기와 후기 사이에 큰 차이는 없는 셈이다.[2] 대표적으로 박이택, 「서울의 숙련 및 미숙련 노동자의 임금, 1600-1909」, 『수량경제사로 다시 본 조선 후기』, 2004 ; 차명수, 「의궤에 나타난 조선 중ㆍ후기의 비숙련 실질임금 추세, 1600-1909」, 『경제사학』46, 경제사학회, 2009[3] 파일:external/img11.deviantart.net/simpson__s_house_cutaway_first_floor_by_ajdelong-d5di5hs.jpg 파일:external/www.bricksandbloks.com/The-Simpsons-House-Interior-Cross-Section-Photo.jpg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의 집도 경량목구조다.[4] 크레용 신짱의 집도 이런 형태[5] 전동장비를 이용한 목수가 1시간 동안 1평에 필요한 목재들을 가공할 수 있는데, 자동화 기계는 1시간에 30평 분량의 목재를 가공할 수 있다.[6] 단, 도편수는 위의 변천사 문단에 나오듯 더 이상 정식 명칭은 아니다.[7]고려사》 식화지봉록조에 이들을 소목장(小木匠)과 목업으로 구분한 것이 그것으로서, 이들은 중상서(中尙署)와 도교서(都校署)에 2명씩 배속되었다. 목업 가운데 우두머리를 목업지유(木業指諭)라고 하였으며, 큰 역사 때는 부두목 격인 '석업지유'를 두고 그 밑에 '화업', '소목장', '목업행수교위', '조각장', '행수대장' 등 5명을 두어 일을 분담하였다. 이들 가운데 목업행수교위는 목업지유의 보좌관인 셈이다.[8] 다만 금속으로 제작된 선박용 부품을 포장하여 수출하는 업체의 경우, 포장용 박스를 목재로 제작하기에 목수의 수요가 필요한 곳이다.[9] 형틀목수는 대기업 건설 현장이 많은 반면, 인테리어 목수의 경우는 개인에게 고용되어 단기간에 끝나는 소규모 공사가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10] 장비가 이것 저것 필요한데, 꽤 비싸고, 소모품 비용과, 수리 비용, 감가상각비도 발생하기 때문이다.[11] 전시회장 부스 설치의 경우 목조만 있는 것도 아니고 업무가 세세하게 분할되어 있어서 목수 외에도 많은 직종의 사람들이 일하는데, 목수는 잔업을 시킬경우 원체 돈을 많이 줘야하기 때문에 정해진 시간을 넘으면 어지간하면 정시에 퇴근시켜버린다.(뒷일은 남은 자들의 몫)[12] 직업 부터가 가구 제작 기업 우드레일 현장팀 소속으로 직급은 팀장이며 현장에서 직접 가구를 만드는 일을 한다.[13] 배관공이라는 설정이 붙은 건 슈퍼 마리오 시리즈부터.[14] 작중에서 분명히 언급되지는 않지만 양산박에 들어와서 집 건축 및 수리를 담당한 것을 봤을 때 도두가 되기 전에 목수였다는 점을 유추할 수 있다.[15] 푸무클과의 인연이 시작된 것 역시 자신이 가공할 원목에서 푸무클이 나오면서부터이다.[16] 뉴 월드에서. 물론 실제로도 꿈이 목수가 되는 것이었다고. 현실에서는 일성 전자 회장이다.[17] 고등학교 2학년 좋은책신사고 문학 48p(2014)[18] 교과서상에는 신영복, 드높은 삶을 지향하는 진정한 합격자가 되십시오, 라고 쓰여 있다.[19] 사실 어떤 그림이던지 제대로 그리기 위해서는 내부 구조나 전체 구성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괜히 인물화를 배울 때 해부학을 배우는 게 아니다. 대갈치기가 어느 정도 부정적인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 전혀 그렇게 안보이는 피카소의 입체파 그림이나 추상화도 마찬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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