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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A5034><colcolor=#fff> 출생 | 1962년 3월 19일 ([age(1962-03-19)]세) |
본관 | 능성 구씨(綾城 具氏)[1] |
학력 | 달성고등학교 (졸업 / 5회) 건국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 석사[2]) 대전대학교 대학원 (군사학[3] / 박사[4]) |
소속 정당 | |
경력 | 대전대학교 전문경력 초빙교수 국방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장 |
군사 경력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1984년 ~ 2018년 | |
임관 | 육군사관학교 (40기) |
최종 계급 | 중장 (대한민국 육군) |
최종 보직 | 육군참모차장 |
주요 보직 | 수도방위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작전부장 제7보병사단장 합동참모본부 작전1처장 육군특수전사령부 참모장 제3공수특전여단장 합동참모본부 합동작전과장 수도방위사령부 제1경비단장 제3공수특전여단 참모장 제15보병사단 작전참모 제15보병사단 제38보병연대 2대대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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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전직 장성으로 최종 계급은 중장, 최종 보직은 육군참모차장이다. 병과는 보병, 직능은 작전이다.2. 생애
1962년 3월 19일 태어나 1980년 대구 달성고등학교(5회)를 졸업하고 육군사관학교 40기로 입교했으며[5], 1984년 졸업과 함께 보병 소위로 임관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육사 40기 선두주자였으나 정권 교체기에 맞물려 아쉽게 대장 진급에 실패했다.2.1. 군 경력
- 대위 1987년 8월 진급
- 소령 1993년 11월 진급
- 육군특수전사령부 제707특수임무대대 대테러 5지역대장
- 미합중국 육군 델타 포스 전지교환훈련 연수
- 육군특수전사령부 제707특수임무대대 작전과장
- 육군특수전사령부 인사처 보임과 인사장교
- 중령 1999년 12월 진급
군 생활 내내 작전 분야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자로 인정받아 합참 작전본부의 최고 요직을 모두 역임했으며, 수방사 1경비단장과 7사단장, 수방사령관 등을 맡으며 지휘관 보직도 핵심 부대에서 이수했기에 대장 진급 1순위로 여겨졌으나 문재인 정부와 결이 맞지 않아 대장 진급에 실패했다. 고향이 경북에, 이명박 정부 시절과 박근혜 정부 시절 근위부대인 1경비단장과 수방사령관을 맡으며 잘나갔기 때문이다.[10] 2017년 8월 동기 중 김병주와 김운용이 대장을 달고서 구홍모는 육참차장으로 전보되어 1년간 재직하다 전역했다. 세대 교체성 군 인사가 없었다면 경력상 합참 작전본부장을 거쳐 대장으로 진급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2017년 시점에서 동기 중 대장이 나왔기에 그는 진급이 불가능해졌고, 그래서 진급 가능성이 있는 시기의 중장들만이 앉는 작전본부장 직에는 육사 41기의 서욱 중장이 갔고, 그는 말년 중장들도 자주 앉는 육참차장에서 군생활을 마무리한 것이다.
2.2. 전역 후
전역 후 대전대학교 전문경력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2023년 1월 30일, 국방부 주한미군기지이전사업단장으로 임용되었다. #
2024년 2월 29일, 국민의힘에 영입되었다. 대통령경호처장으로 봉직하던 김용현 장군이 2024 8월 국방부장관으로 지명되자 후임 경호처장으로 구홍모의 하마평이 나왔다.
3. 논란
2018년 3월 8일, 군인권센터의 '탄핵 정국 위수령 및 군대 투입 검토 폭로 긴급 기자회견'에서 무력 진압을 논의한 당사자로 실명이 거론되었다. 군인권센터에 따르면 2016년 12월 9일 국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후 국방부 내에서는 헌법재판소가 탄핵심판을 기각할 것에 대비하여 군 병력 투입을 준비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는데, 당시 수도방위사령관이던 구홍모 중장이 직접 사령부 회의를 주재하며 ‘소요사태 발생 시 무력 진압’을 구체적으로 논의했다고 한다. 즉,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 기각 후 직무에 복귀시 촛불시위에 나섰던 시민들이 저항할 경우 위수령을 선포하여 무력 진압하는 친위 쿠데타를 기획하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軍, 탄핵 정국 위수령 및 군대 투입 검토 폭로 긴급 기자회견문2016년 11월 탄핵 정국 당시 더불어민주당의 추미애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계엄령을 준비하고 있다는 정보가 돌고 있다.'라는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고, 이후 '계엄령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있었으나, 정보를 미리 풀어버리면 실행을 할 수 없을테니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선제적으로 말하였다'고 후에 밝혔다. 군인권센터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추미애 대표가 말한 '계엄령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라는 것이 어쩌면 서로 연관되는 내용일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이 주장에 대해 현 정권이 '친위 쿠데타' 모의를 한 장성을 걸러내지 못하고 육군참모차장에 임명할 만큼 인사 검증이 허술했을까라는 회의적인 반응이 있다. 또한 구홍모 중장은 군부 내 박근혜의 친위세력이었던 알자회와 적대적인 인물로 알려져 있다. 그리고 청문회 때 17년 상반기 인사 단행시 알자회 일원인 장경수로 교체당할 예정이었다고 폭로된 것을 생각하면 다시 한 번 더 검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11] 그러나 탄핵인용으로 그런 일은 없었고 정권교체 이후 장경수는 문재인대통령의 직권으로 예편되었다. 1992년 육사 39기가 알자회 가입자를 동기회에서 제명한 후, 40기도 알자회 제명 작업에 동참하게 되는데 이를 주도한 인물 중 하나가 구홍모 중장이다.[12] 이런 점을 봤을 때 오히려 계엄령 관계 정보를 밖으로 전달한 인물일 수도 있다는 추측도 나오는 상황이다.[13] 다만, 추미애 당대표에게 계엄령 선포 계획을 알린 건 현역 대령으로 알려져있다.
2018년 11월 7일 합수단 중간수사결과 발표때 일단 무혐의로 판명났다. 즉 수방사의 위수령은 수방사에 파견나온 기무요원의 소행일 가능성이 더 커진 셈이고 탄핵기각시 17년 상반기 군장성인사때 구홍모 경질직후 장경수 수방사령관 부임썰도 조사할 필요가 생겼다.
구홍모사령관이 사실과 다르다며 의혹을 주장한 임태훈 인권센터 소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였으나 기자회견 내용은 정치 잇슈화되어 정치권을 포함한 사회의 큰 논란거리로 확산되었다. 해외 순방 중이던 문재인대통령도 현지에서 엄중수사 필요성을 강조했고 이후 민군합동특별수사단이 설치되어 합동수사결과 구홍모 사령관에 대해 '내란예비 및 내란모의죄'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박근혜대통령 탄핵 관련 촛불집회 무력진압을 논의했다는 의혹으로 제기했던 '청와대 시위 집회 대비계획'이란 문건은 광화문 촛불 집회와 무관한 청와대 특정경비구역 방호를 위한 수방사 고유임무 수행계획이라 무혐의 처분되었다.
4. 여담
- 선 굵고 강한 인상의 외모로 인해 '대북 경고 전담' 으로 불렸다. 육사 5기수 후배인 전동진 장군이 본인에 이어 대북 경고 전담으로 활약하였다.
- 제7보병사단장 시절 초코바 '자유시간의 의미' 네 가지를 강조하면서 만나는 간부, 병사들에게 자유시간 초코바를 하나씩 나눠주었다. 처음에 나눠줄 때는 오리지널 자유시간이었는데 나중에는 자유시간 쿠키로 바뀌었다. 수방사령관 시절 또한 자유시간을 나눠주곤하였는데, 덕분에 1호차에는 항상 자유시간이 몇 박스씩 있었다. [14]
- 제7보병사단장 시절 전임자였던 원홍규(3사 16기) 장군은 특급전사 휴가를 제외한 모든 포상휴가를 없앴으며, 주말에도 용사와 간부들의 휴식을 보장하지 않고 불필요한 작업을 시키는 것으로 악명이 자자하였다. 원홍규 장군의 후임으로 제7보병사단장이 된 본인은 원홍규 장군이 없애버린 포상휴가를 도로 복구하여 용사와 간부로부터 평가가 엄청나게 좋았다. 후임인 서정열(3사 20기) 장군도 마찬가지.
- 창원 구씨 종친회에서는 능성 구씨인 구홍모의 집안이 부사공파 대구 세천문중으로 창원 구씨이면서 능성 구씨로 둔탁한 문중이라고 주장하면서 구홍모의 조상 중 아래에 기재한 사람들을 창원 구씨 족보에 기록되어 있는 사람들이라고 주장한다. #
14세 구청로(具靑老), 15세 구상(具祥), 16세 구승립(具承立), 17세 구귀현(具貴賢), 18세 구계발(具繼發), 19세 구귀업(具龜業).
[1] 좌정승파(左政丞派) 절도사공계(節度使公系) 29세로 시조 구존유(具存裕)의 28대손, 파조 구홍(具鴻)의 22대손, 계조 구종절(具宗節)의 21대손으로 1세 구존유(具存裕), 2세 구민첨(具民瞻), 3세 구연(具珚), 4세 구예(具藝), 5세 구영검(具榮儉), 6세 구위(具褘), 7세 구홍(具鴻), 8세 구종절(具宗節), 9세 구익령(具益齡), 10세 구장손(具長孫), 11세 구숙리(具淑利), 12세 구현(具絢), 13세 구수만(具壽萬), 14세 구청로(具靑老), 15세 구상(具祥), 16세 구승립(具承立), 17세 구귀현(具貴賢), 18세 구계발(具繼發), 19세 구귀업(具龜業), 20세 구만순(具萬詢), 21세 구충한(具忠漢), 22세 구능희(具能喜), 23세 구원조(具元祖), 24세 구연문(具然文), 25세 구효서(具斅書), 26세 구경회(具慶會), 27세 구자철(具滋喆), 28세 구본천(具本天), 29세 구홍모(具洪謨) 순으로 이어진다. 다음은 출처 사진들이다. [2] 석사 학위 논문: 북한 탄도미사일 위협과 대응책 연구 (2005. 08.)[3] 국방정책/전략 전공[4] 박사 학위 논문: 군 복무자의 수면의 질 구조모형 연구 : 교대근무 병사를 중심으로 (2023. 02.)[5] 이종섭 前 국방부 장관과 고등학교 및 사관학교 동기이다.[6] 합참 작전본부 수석과장으로 육군 대령 최고 요직이다. 역대 과장은 대부분 고위직으로 진급했다. 이 직위를 역임한 사람들로 정승조(육사 32기-대장 전역), 이홍기(육사 33기-대장 전역), 신현돈(육사 35기-대장 전역), 김종배(육사 36기-중장 전역), 신원식(육사 37기-중장 전역), 김왕경(육사 38기-준장 전역), 장경석(육사 39기-중장 전역), 구홍모(육사 40기-중장 전역), 박철희(육사 41기-준장 전역), 김승겸(육사 42기-대장 전역), 안준석(육사 43기-대장 전역), 김정유(육사 44기-소장 전역), 전동진(육사 45기-대장 전역), 김홍석(육사 46기-소장 전역), 강호필(육사 47기-현직 대장), 이승오(육사 49기-현직 중장), 강현우(육사 50기-현직 소장), 안찬명(육사 51기-현직 소장), 우석제(육사 52기-현직 준장), 김홍식(육사 53기-현직 준장)이 있다.[7] 재직 중 2012년 22사단 북한군 노크 귀순 사건 당시 상황보고 혼선 초래 등의 이유로 합참 작전 지휘라인인 합참 작전본부장 신현돈(35기), 합참 작전부장 엄기학(37기), 합참 작전1처장 구홍모(40기)이 모두 징계를 받아 1차 진급에 실패하게 된다. 다만 신현돈과 엄기학 모두 결국 대장을 달았다.[8] 작전1처장 시절 징계로 소장 진급은 좀 틀어졌으나, 사단장 보직 후 소장 최고 요직에 보임되었고, 40기 동기 중 선두주자인 서상국이 총기난사 사고로 낙마, 송유진이 성범죄자로 수감되면서 다시 선두주자의 입지를 단독으로 굳혔다.[9] 동기 중 김병주, 김해석과 함께 진급[10] 한편 같은 TK 출신 동기 김병주는 대장 진급에 성공한다. 김병주 장군이 나중에 더불어민주당에 입당하여 국회의원을 지내는 것, 그리고 구홍모 장군은 나중에 국민의힘에 입당한 것에 비추어보면 두 사람의 정견 차이가 진급의 성패를 가른 듯. 물론 두 장군 다 대단한 능력자들이었으며, 능력이 없다면 3성장군까지 갈 수도 없다.[11] 16년 청문회 당시 여당의원이었던 장제원이 폭로했다.[12] 이 때 알자회 제명 작업의 핵심 인물이었던 사람이 지금 3군 사령관으로 있다.[13] 추미애는 구홍모의 고향선배이기도 하다.[14] 후임 사단장(서정열 소장)은 절절포 과자세트를 전 장병에게 나눠주는데 자유시간은 그 중에 구성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