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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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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아시아민족반공연맹 이사장 (1955~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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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제21대 국방부장관
노재현
盧載鉉 | Roh Jae-hyun
파일:노재현 국방부장관.png
<colbgcolor=#ec1e31><colcolor=#fff> 출생 1926년 8월 4일
경상남도 마산부
(現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회원구)
사망 2019년 9월 25일 (향년 93세)
서울특별시
본관 교하 노씨
석봉(碩峯)
재임기간 제20대 육군참모총장
1972년 6월 2일 ~ 1975년 2월 28일
제14대 합동참모의장
1975년 2월 28일 ~ 1977년 12월 29일
제21대 국방부장관
1977년 12월 20일 ~ 1979년 12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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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c1e31><colcolor=#ffffff> 자녀 딸 노경선
친인척 사위 허명수
종교 천주교 (세례명: 요셉)
학력 창신고등보통학교 (졸업)
육군보병학교 (졸업)
육군포병학교 (졸업)
국방대학교 (행정학사 / 6기)
신체 180cm, 80kg
경력 제21대 국방부장관
한국종합화학공업 사장
한국화학연구원 이사장
한국비료공업협회 회장
군사 경력
임관 조선국방경비사관학교 (3기)
복무 대한민국 육군
1947년 ~ 1977년
최종 계급 대장 (대한민국 육군)
최종 보직 합동참모의장
주요 보직 제7보병사단장
육군포병학교장
육군군수기지사령관
제2군단장
육군참모차장
참전 6.25 전쟁
베트남 전쟁
}}}}}}}}}
1. 개요2. 생애3. 기타4. 대중매체에서5.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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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제21대 국방부장관.

2. 생애

1926년 경상남도 마산부에서 태어났다. 창신고등학교 졸업 후 1947년육군사관학교 3기로 임관했는데 병과포병이었다. 6.25 전쟁에 소령 계급으로 육군 포병 제6대대 및 제11대대장[1]으로 참전하였으며 고랑포 전투, 영덕-강구 전투 등에서 활약하였다. 육군포병학교장, 30사단장, 육군군수사령관, 대한민국 육군본부 감찰감, 육군참모차장 등을 거쳐 1972년에 육군참모총장에 올랐다.[2] 1975년에는 대한민국 합동참모의장에 올랐으며 1977년전역했고 이어서 국방장관에 임명되었다.

2.1. 12.12 군사반란

그렇게 국방부 장관 2년차인 1979년에 12.12 군사반란이 일어났을 때 국방장관 공관에 있던 그는 인근의 육군참모총장 공관에서 총소리가 나자 기겁하여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제대로 확인조차 하지 않은 채 즉시 가족과 함께 공관에서 빠져나와 단국대로(당시 단국대는 용산구 한남동에 있었다) 허겁지겁 도망쳤다. 부하의 집에 가족을 맡긴 후 육본 B-2 벙커로 가서 상황을 보고받은 뒤 미 육군 제8군 영내에 있는 한미연합군사령부로 이동했다. 이후 국방부로 다시 이동했다가 마침 국방부로 쳐들어온 반란군 제1공수특전여단에게 붙잡혔다.

동맹국인 미군 사령부인 데다 상황 파악과 지휘가 모두 용이하고 가장 안전한[3] 미8군 사령부를 쓸데없이 벗어나 실병력이 없는 국방부로 돌아온 이유는 의문이다. 이러한 국방장관의 본분을 망각한 어리석은 행적이 후세에도 거센 비판을 받고 있다.

국방장관에게 실병력 지휘권이 없었다고 해도[4] 당시 최규하 대통령은 반란군 장성들이 몰려와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체포를 사후허가해 달라고 압박해도 국방장관과 상의하에 허가하겠다고 버티고 있었기에 반란군 입장에서는 노재현 국방장관의 신병을 무조건 확보해야 했다. 국방장관을 확보하지 않는 한 쿠데타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없었다.

만약 전두환의 쿠데타가 아니고 북한의 침공이었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뛰어넘었을 것이다.[5] 다만 어느 정도 정상참작해야 할 부분도 있는데 야전부대의 이동과 관련해서는 국방부 장관에게는 합법적 권한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동의로 전시뿐만 아니라 평시에도 한미연합사령부가 작전통제권을 위임받은 상태였고 이것 때문에 노재현이 부대이동을 지시하려면 대통령의 동의 혹은 한미연합사의 동의가 필요하였다. 당시엔 이미 최규하 대통령이 있던 총리 공관은 접근이 어려웠고 이 때문에 노재현은 미8군 사령부에 있는 주한미군사령관 존 위컴의 동의를 얻어 수도기계화보병사단26사단을 수경사에 배속해 출동시키려 하고자 미8군 사령부로 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는 당시 정보 부족 및 최전방 병력들의 공백이 발생하면 북한의 침공 우려로 인해 위컴이 반대하여 무산되었고[6] 이 때문에 합법적인 수단만을 동원할 수 있었던 진압군은 한미연합사의 통제를 받지 않는 수경사 및 특전사 휘하 병력들만 활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이후 안전한 주한미군 제8군사령부에서 벗어나 국방부로 향하는 매우 안일한 판단으로 반란군에게 붙잡히고 말았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 체포 동의서에 서명하는 한편 장태완 장군이 모든 진압 기회를 놓쳐버린 뒤에야 장태완 수경사령관에게 사실상 무장해제하고 반란군에게 백기투항하라는 것과 다름없는 지시를 내렸다.[7] 당시 노재현 국방장관이 선택할 수 있는 최선책은 미8군 사령부에서 버티며 존 위컴 한미연합사령관을 설득해 반란군을 진압하게 하는 것이고, 차선책으로 정 국방부에 있고 싶었다면 육군본부 B-2 벙커(정선엽 병장이 지키던 곳)을 사수해야 했다. 육본 B-2 벙커는 진도 8.0의 강진에도 버틸 수 있도록 만들어진 난공불락의 요새였고 북한과의 전쟁 발발시 군 수뇌부의 지휘용도로 만들어진 벙커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버틴다면 적은 병력으로도 시간을 끌면서 주한미군이 개입할 시간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8]
파일:external/tv03.search.naver.net/201105271430437561.jpg

12.12 군사반란 직후인 1979년 12월 14일에 사임하였으며 이후 한국종합화학공업 사장, 한국화학연구원 이사장, 한국비료공업협회장 등을 지냈다. 2019년 9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 시신은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1993년 국회 증언 영상

3. 기타

  • 딸 노경선이 허명수 GS건설 부회장과 결혼하여 슬하에 아들 둘을 뒀다.

4. 대중매체에서

  • 1993년 KBS 《다큐멘터리 극장》에서는 배우 민지환이 연기했다.
  • 1996년 MBC 드라마 《제4공화국》에서는 배우 서학이 연기했다. 국방부에서 숨어 있다 발견된 후 보안사로 끌려온 뒤 반란군 군 후배들에게 무지막지하게 털린다. 예비역 대장이자 국방 장관이 육사 8기수 아래인 소장 전두환에게 "총소리에 놀라 뒷구멍에 숨어 있는 사람이 서류 내용은 알아 뭐합니까, 빨리 서명하시오."라며 털리고 "나는 자네들 편이야."라고 뒤늦게 빌붙으려다 5기수 아래인 중장 유학성에게 "잔말말고 서명하시오."라고 털린다.
  • 2005년 MBC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는 배우 신국이 연기했다.[9] 반란군들에게 대놓고 모욕을 당하지는 않지만 "장관님, 대통령께 가면 뭘 해야 하는지 아시겠지요?"라는 전두환의 은근한 협박에 눈치껏 기어 정승화 체포를 승인해야 한다고 최규하에게 말한다. 세월이 흘러 제5공화국 청문회 당시 쿠데타를 막지 못한 이유를 묻는 국회의원들에게 ‘북한의 남침 우려로 어쩔 수 없었다’는 변명만 늘어놓았다.
  • 2023년 영화 《서울의 봄》에서는 오국상이라는 배역명으로 등장하며 배우 김의성이 연기했다. 공화국 시리즈와는 다르게 이 영화에서는 본격적인 암유발 캐릭터이자 패작러 1호. 총소리를 듣자마자 잠옷차림으로 뛰쳐나와 미8군 사령부로 가서 어줍잖게 영어를 지껄이다가 보다 못한 미군 사령관에게 우리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당신 여기 있지 말고 육본 가야 해."라고 일갈을 당하며 이후에도 어딘가를 떠돌다가 뒤늦게 육본에 나타나서 전두광과 신사협정을 맺는 육군참모차장에게 "그니까 진돗개는 왜 때렸어요? 말로 할 생각을 해야지⋯."라며 육본 벙커를 버리고 수경사로 도피할 것을 명령한다. 여기에서 벙커를 끝까지 사수해야 한다고 사정하는 김준엽 육군본부 헌병감에게 '"어디 별 하나짜리가 장관한테 말대답이야!"라고 호통을 치면서 꼰대질까지 작렬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혼자 아무도 없는 국방부로 도망갔다가 2공수[10]에게 발각되어 전두광 앞에 끌려오고 이후에는 아예 반란군 편에 붙어서 끝까지 반란을 진압하려는 이태신 수경사령관에게 회군 명령을 내린 것도 모자라 아예 해임'''하여 반란 성공에 쐐기를 박아버리면서[11] 역사적인 트롤러로 인정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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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금은 제3보병사단 포병여단 소속이지만 창설 당시에는 야전포병단 제6대대로 창설되었다.[2] 이 때 육군참모총장을 놓고 채명신과 경쟁을 하고 있었다. 대내외적으로 유능한 장군으로 인정받은 채명신이 유력했지만 채명신은 박정희에게도 능력을 인정받은 군인이였으나 유신헌법 등 박정희의 장기 집권에 대해 직언을 하면서 제대로 찍혔고 결국 박정희는 노재현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한 반면 채명신은 예편시키면서 사실상 12.12 군사반란을 막을 수 있던 방지책이 막힌 셈이다.[3] 당시 쿠데타가 일어났든 북한이 쳐들어왔든 한국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가 미8군 사령부이며, 아무리 쿠데타군이라고 해도 노재현 국방장관을 넘기라며 미8군 사령부를 무력으로 공격할 순 없다. 공격하는 순간 미국을 공격하는 꼴이기에 당연히 반란군 수뇌부가 지도상에서 사라질 수준이었다. 그랬다면 많은 사람들이 죽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4] 당시 이건영 제3야전군사령관은 노재현 국방장관의 명령이 있어야 휘하 병력을 출동시킬 수 있다고 했기에 실제로는 그의 명령이면 3군 병력을 출동시킬 수 있었다.[5] 당시는 남한과 북한의 전력 차이가 거의 나지 않던 시절이다. 전면적 침공전이었다면 국가의 운명이 갈릴 수도 있었던 문제. 실제 반란 과정에서 노태우가 휴전선 전방의 9사단의 일부를 서울로 빼내오는 짓까지 하는 바람에 더 변명의 여지가 없는 일이 되었다.[6] 1989년 12월 윌리엄 글라이스틴의 증언[7] 물론 이 시점은 이미 노재현이 반란군 세력에게 붙잡힌 이후의 얘기지만 이전에 도망다니던 와중에 조금씩 사태 파악을 하면서 반란군 측에 점점 기울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출처는 장태완 장군의 수기.[8] 반란군의 승리조건은 주한미군의 전면적 개입 전에 최규하 대통령과 노재현 국방장관의 신병을 확보하고 반하나회 장군들을 숙청해 군을 장악하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주한미군은 상황을 파악할 것이고 반란군 병력들도 자신들이 반란을 일으켰음을 알게 될 것이기에 불리해지는 건 반란군이었다.[9] 제4공화국 드라마에서는 김치열 법무장관 역을 맡았다.[10] 실제 역사에서 국방부를 점령한 것은 1공수여단이지만 극중에서는 2공수로 각색되었다.[11] 여기에 반란 성공 이후 노태건이 술을 올리며 아까는 죄송했다고 말하자 "아이 괜찮아~ 나도 다 애국심에서 그런 거야~"라며 너스레까지 떤다. 여러모로 배우가 이전에 연기했던 부산행용석보다도 더한 빌런이라는 평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