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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51426><colcolor=#ffffff> | |||
출생 | 1945년 8월 12일 ([age(1945-08-12)]세) | ||
강원도 원주군 | |||
본관 | 전의 이씨[1] | ||
현직 | 보다나은미래를위한 반기문재단 이사 | ||
재임기간 | 제19대 제3야전군사령관 | ||
2003년 4월 ~ 2005년 4월 4일 | |||
제32대 합동참모의장 | |||
2005년 4월 7일 ~ 2006년 11월 17일 | |||
제41대 국방부장관 | |||
2008년 2월 29일 ~ 2009년 9월 23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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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녀 | 슬하 1남 1녀 | ||
학력 | 경기고등학교 (졸업 / 60회)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문학부 (사회학 / 학사) 연세대학교 행정대학원 (행정학 / 석사) | ||
경력 | 제41대 국방부 장관 한국전략문제연구소장 | ||
군사 경력 | |||
임관 | 육군사관학교 (26기) | ||
복무 | 대한민국 육군 | ||
1970년 ~ 2006년 | |||
최종 계급 | 대장 (대한민국 육군) | ||
최종 보직 | 합동참모의장 | ||
주요 보직 | 제3야전군사령관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본부장 제5군단장 제30기계화보병사단장 제29보병연대장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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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전 군인. 예비역 육군대장. 前 제25대 제3야전군사령관. 前 제32대 합동참모의장. 前 제41대 국방부장관.2. 생애
1945년 8월 12일 강원도 원주시 출신으로 1964년 경기고등학교(60회)를 졸업 후 육군사관학교 26기로 1970년 임관했다. 당대 최고 명문인 경기고 출신에 서울대 위탁교육을 다녀온 점에서 알 수 있듯, 군내 대표적인 엘리트 군인으로 꼽혔고 작전과 전략, 정책 분야에서 모두 두각을 드러냈다. 군 생활 내내 청와대 외교안보담당관, 합참 군사전략과장, 30사단장,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제5군단장, 합참 전략기획 및 작전본부장, 3군사령관 같은 요직을 맡으며 잘나갔다.[2] 2008년 2월 이명박 정부의 첫 국방부장관으로 임명되어 이듬해 9월까지 재직했다.3. 주요 경력
- 1970. 3.〜1972.3 임관 후 제21보병사단에서 소대장, 작전교육장교
- 1972. 3.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사회학과) 위탁교육
- 1974. 3. 육군사관학교 사회학강사
- 1975. 9. 제33보병사단 101연대 9중대장
- 1978. 4. 육군사관학교 생도대 훈육관
- 1979. 4. 육군대학 정규과정(소령)
- 1980. 3.〜1986. 12 7사단 작전처 보좌관, 정보참모, 대대장, 작전참모
- 1986. 12. 육군 제88사격훈련단[3] 부단장
- 1988. 12. 육군본부 작전참모부 C3I과장
- 1989. 11. 제9보병사단 29연대장[4]
- 1991. 4.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본부 군사전략과장
- 1992. 2. 청와대 국방담당비서실 외교안보담당관
- 1994. 7. 미국, 메릴랜드대학교 연수
- 1995. 5. 육군본부 전력기획참모부 전력계획처장
- 1996. 11. 제30기계화보병사단장(소장)
- 1998. 4. 국방부 정책기획국장
- 1999. 10. 제5군단장(중장)
- 2001. 11. 합동참모본부 전략기획본부장
- 2002. 4.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 2003. 4. 제3야전군사령관(대장)
- 2005. 4. 합동참모의장 겸 통합방위본부장
- 2008. 2. 국방부 장관
4. 상훈
- 1983. 10. 보국훈장 삼일장
- 1989. 4. 대통령표창
- 1996. 10. 보국훈장 천수장
- 2001. 10. 보국훈장 국선장
- 2006. 11. 보국훈장 통일장
5. 여담
- 전형적인 무골, 맹장이면서도 지장을 겸비한 지휘관이었다. 현역 군인 시절에는 할 말이 있으면 꼭 하는 강직함, 그리고 열정을 가지고 업무에 임하는 부지런함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나친 엘리트 의식과 자존심을 단점으로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함께 근무했던 이들에 따르면 그는 항상 먼저 그리고 더 깊이 생각하는 스타일이어서 범접하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강한 자존심은 그가 장관직에서 물러나는 원인이 된다.
- 김성회 전 의원의 군 생활을 꼬아버린 인물이다. 이상희 장군이 30사단장이던 시절, 작전참모가 김성회 당시 중령이었는데 둘이 궁합이 상당히 안 맞았고 근무평정을 짜게 주었다고 한다. 그뿐아니라 비육사출신 작전장교(대위)도 쫓아낸건 덤. 결국 김성회를 내치고 당시 기갑수색대대장이던 중령을 새 작전참모로 데려오는데 그 사람이 박찬주이다. 박찬주가 실력이 있어서 상당히 마음에 들어했다는 후문. 신동아 기사 그래서 장관 시절에 군사보좌관으로 데려가서 썼다. 작전 직능의 엘리트답게 군단장 재임시도 예하 사단장들[5]이 인사, 군수 직능들이라 말귀를 못알아먹는다며 깠다.
- 육사 26기의 선두주자였다. 중장, 대장 진급을 동기인 신일순과 같이 했지만 이상희는 합참 전략기획본부장과 작전본부장을 맡으면서 대장 진급을 기다리고 있었다. 또 다른 동기인 양우천은 중장 진급을 2차에 했기 때문에 이상희에 비하면 밀리는 형국이었고, 대장 진급 때 따라잡는다. 이후 이상희가 핵심 요직인 3군 사령관을 맡고 합참의장까지 오르지만 신일순은 한미연합군사령부 부사령관 시절에 비리가 걸려서 전역했고, 양우천은 2군 사령관에서 군 생활이 끝났다.
- 이상희 장관은 하나회 인사가 아니었지만 하나회 출신이자 육사 14기 선배였던 이종구 전 국방부 장관이 같은 전의 이씨였던지라 뒤에서 장관이 될 수 있도록 힘을 써줬다는 후문.[6]
- 7사단 작전참모 시절, 경기고 컴플렉스가 심했던 정만길 사단장(서울고 졸업) 밑에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6. 비판
2009년 국방예산에서 전력증강과 직결되는 방위력 개선 부문의 예산이 대폭 삭감되려는 것에 항의하여 이명박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여기서 "경제가 어려워 재정을 긴축해야 한다면, 그것은 미래의 국방력을 좌우하는 전력증강분야가 아닌 인건비·급식·주거 등 경상운영비에 국한되어야 합니다. 병영환경의 불편은, 지난 60년 동안 참아왔듯이 앞으로도 몇 년은 충분히 감내할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을 담은 게 알려지면서 장병들의 대우를 소홀히 취급한다는 일부 비판이 있었고 현역과 예비역들에게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이른바 "편한 군대보다 강한 군대" 발언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창군 이후 6.25 전쟁을 거치면서 이 장관뿐만 아니라 역대 대부분의 직업군인들이 이러한 각오와 희생을 바탕으로 군의 전력증강에 심혈을 기울여 왔다는 점을 고려할 때 오히려 용기 있게 할 말을 한 것이라는 군 내부나 일각에서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았다. 당시 장교들이나 부사관들 그리고 군무원들은 별다른 원성이 없었고 오히려 이상희 장관을 적극 지지하기까지 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한미연합군의 구호는 Fight Tonight이다.[7] 당장 오늘 밤 전쟁이 나도 싸워 이길 수 있도록 준비하고 각오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당시 예산 삭감은 청와대, 대선캠프에서 온 경제관료 출신인 장수만 국방부차관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이 장관은 이 사건 이후 청와대와 갈등을 겪다 2009년 9월 물러났다.
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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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장관 | <colbgcolor=#fff,#1f2024><colcolor=#0095DA> 강만수 → 윤증현 → 박재완 | |
교육과학기술부장관 | 김도연 → 안병만 → 이주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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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장관 | 이상희 → 김태영 → 김관진 | |
행정안전부장관 | 원세훈 → 이달곤 → 맹형규 | |
문화체육관광부장관 | 유인촌 → 정병국 → 최광식 | |
농림수산식품부장관 | 정운천 → 장태평 → 유정복 → 서규용 | |
지식경제부장관 | 이윤호 → 최경환 → 최중경 → 홍석우 | |
보건복지가족부장관 → 보건복지부장관 | 김성이 → 전재희 → 진수희 → 임채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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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임장관 | 주호영 → 이재오 → 고흥길 | }}} }}}}}}}}} |
[1] 중종(조선)때 병조판서를 역임한 신암 이준민의 후손이다.[2] 똑똑하다고 소문이 났고 능력을 널리 인정받았지만, 엘리트주의가 강했고 말도 직설적으로 하는 편이라 위아래와 잘 융화되지 못했고 특히 하나회 동기들의 집중 견제를 받아 대령을 3차에 진급했다. 하나회 척결 이후로는 순풍을 탄 듯 군내 요직을 섭렵하며 잘나갔다.[3] 1988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사격선수의 발굴과 양성을 위해 1985년에 창설했으며 훈련 및 지도를 육군이 전담하였다. 당시 육군참모총장은 정호용 대장이다.[4] 전두환 前대통령도 29연대장 출신이다[5] 당시에는 제3보병사단과 제6보병사단이 예하였으며 제6군단의 2022년 11월 30일부 해체로 인해 제5보병사단, 제28보병사단도 5군단 예하로 변경됐다.[6] 이종구 전 장관과 같이 육사 14기로 입학했으나 중간에 건강을 이유로 자퇴하고 서울대로 간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국회부의장이었다. 그러나 친분 자체는 계속해서 이어져 왔고, 이종구는 다른 예비역 장성들이 박근혜를 도울 때에 이명박을 뒤에서 지원하게 된다.[7] 포병에서는 이를 착안하여 Fire Tonight을 외쳤다. 의미는 오늘 밤에라도 당장 사격한다는 것. 대표적으로 육사 40기 염완균 예)준장이 2포병여단장 시절 구호로 사용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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