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성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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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240><tablebordercolor=#fff> 진주 정씨 (진양 정씨) | }}} | |
<colbgcolor=#FFFFFF> 관향 | 경상남도 진주시 | ||
비조 | 지백호 (智伯虎) | ||
시조 | 정예 (鄭藝) 정자우 (鄭子友) 정장 (鄭莊) 정헌 (鄭櫶) | ||
집성촌 | 대전광역시·세종특별자치시 경상남도 진주시·고성군·남해군·하동군 경상북도 상주시 전라남도 영광군·화순군·광양시·고흥군·장흥군 전라북도 고창군 충청남도 공주시·서산시·아산시 충청북도 보은군·옥천군·영동군 강원도 홍천군 | ||
평안북도 영변군 | |||
인구 | 324,521명(2015년) | ||
링크 | 진주정씨대종회 진주정씨어사공파종회 진주정씨은열공파목사공문중 |
1. 개요
진주 정씨(晉州 鄭氏) 또는 진양 정씨(晉陽 鄭氏)는 경상남도 진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동래 정씨와 연일 정씨, 경주 정씨 다음으로 많은 성씨이다. 정예(鄭藝), 정자우(鄭子友), 정장(鄭莊), 정헌(鄭櫶) 등 시조를 달리하는 네 계통이 있다. 이 문서에서는 편의상 진주 정씨와 진양 정씨 중 인구가 조금 더 많은 진주 정씨로 호칭한다.[1]2. 역사
진주 정씨의 원류는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전하는 신라 6촌 중 자산진지촌(觜山珍支村)의 촌장 지백호(智伯虎)이다. 그러나 그 후 세계(世系)가 실전(失傳)되고 각기 시조를 달리하는 진주 정씨가 여덟 파가 되어 진주8정(晋州八鄭)이라고 하는데, 8정(鄭)을 편의상 크게 정예(鄭藝), 정자우(鄭子友), 정장(鄭莊), 정헌(鄭櫶)을 시조로 하는 4계통으로 구분하는 것이 통설이다.2.1. 주요 인물
시조 영절공(英節公) 정예(鄭藝)는 고려의 삼한벽상공신(三韓壁上功臣)으로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郎平章事)를 지냈다.고려 문종 때 양관대제학을 지낸 정시양(鄭時陽), 병부상서를 역임한 정신열(鄭臣烈), 판도판서인 정임덕(鄭任德), 예의판서의 정유(鄭愈),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정수(鄭需), 평장사를 지낸 정록, 찬성사를 지낸 정을보(鄭乙輔)[2] 등이 있다.
정천익(鄭天益)은 공민왕 때 전객령(典客令)을 지내고, 중국에서 목화씨를 들여온 문익점의 장인으로 목화종자를 재배하고 보급하는 데 큰 공적을 남긴 인물이다.[3]
조선시대에 상신 1명(정분), 대제학 2명(정이오[4], 정경세), 문과(文科) 급제자 59명과 정척(鄭陟), 정성근(鄭誠謹)[5] 등의 청백리를 배출해냈다.
인조 때 대제학(大提學)을 지낸 정경세(鄭經世)는 서애 류성룡의 수제자로서 나이 스물셋에 문과에 급제하고 호당(湖堂)에 뽑혔던 수재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공을 세웠고 예학을 연구하여 김장생과 함께 예학파를 형성했다.
임진왜란의 명장 정기룡(鄭起龍)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상주성 탈환과 정유재란 때의 성주, 초계, 의령성 탈환 전투에도 눈부신 전공을 세웠다. 광해군 9년 삼도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에 올라 남해안을 방어하던 중 통영진중에서 숨졌다.
2.2. 몰락
여말선초 때까지만 해도 일반적인 문벌 가문으로서 어느 정도 기반을 다져나가며 번영하는 듯했다. 그러다 세종대왕의 고명대신 가운데 한 명이었던 대종손 우의정 정분이 계유정난에 휘말려 사사당하면서 진주 정씨 종문도 함께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상당수의 진주 정씨 후손들이 숙청당하는 과정에서 죽임을 당하거나 지방으로 뿔뿔히 흩어짐에 따라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그나마 정계에 발을 여전히 들이거나 훈구-사림 세력으로서 잔존하던 진주 정씨도 갑자사화에서조차 화를 면치 못하게 되면서 제대로 몰락한다. 이 당시 가장 큰 피해를 본 진주 정씨들은 정예(鄭藝)의 후손들로[6], 때문에 조선 중후기에 이르러 훗날 출사해 이름을 알리게 되는 이들은 대부분 그 외 계파 출신들로, 예계는 기껏해야 현감[7]이나 호장[8]을 지내면 다행인 정도의 몰락 양반 가문, 심지어 중인이나 양인까지 떨어지는 경우도 생겨난다.임진왜란 때 활약한 명장인 정기룡조차도 몰락한 양반 가문 출신으로 알려져 있을 뿐만 아니라, 경남 남해의 대종(大宗)을 이루는 화헌공파(和軒公派)의 경우 아예 파조인 정결(鄭潔)[9]이 계유정난을 계기로 부인인 전의 이씨와 더불어 남해로 피난한 것이 시초다. 때문에 화헌공파는 조선 시대 내내 벼슬길이 아예 막혀 대대로 호장(戶長)을 지내며 부를 축적한 몰락 양반 가문으로 존속했다.
3. 본관
진주(晋州)는 경상남도 서부에 위치한 지명이다. 본래 백제의 거열성(居烈城)이다. 663년(문무왕 3) 신라에 편입되어 거타주(居陀州)가 설치되었으며, 685년(신문왕 5)에 청주(菁州)를 설치하였다가, 757년(경덕왕 16)에 강주도독부(康州都督府)로 개칭되었다가 혜공왕 때 청주(菁州)로 개칭되었다. 고려 건국 후 940년(태조 23)에 다시 강주로 환원되었고, 983년(성종 2)에 12목의 하나인 진주목으로 개편하였다. 995년(성종 14)에는 정해군(定海軍)이라 하고 절도사(節度使)를 두어 산남도(山南道)에 속하게 하였다. 1012년에 안무사(按撫使)로 고쳤다가, 1018년(현종 9)에 진주목으로 복구되었다.1392년(태조 1) 조선 건국 후 진양대도호부(晉陽大都護府)로 승격하였다가 1402년(태종 2)에 진주목으로 환원되었다. 1896년 경상남도 진주군으로 개편되었다. 1939년 진주읍이 시로 승격하면서 나머지 지역이 진양군으로 개칭되었으며, 1995년 진양군이 진주시에 통합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경상도 진주목의 토성(土姓)으로 정(鄭)·하(河)·강(姜)·소(蘇) 4성이 기록되어 있다.[10] 한 고을에서 통혼이 매우 잦았기 때문에 종친회 어르신들은 하씨, 강씨, 소씨와는 한 집안처럼 여기며 통혼을 꺼린다.
4. 분파, 계파
진주 8정(晉州八鄭)으로 불렸던 진주 정씨(晉州 鄭氏)는 동성동본이면서도 세계를 달리하는 4계통, 8파로 계대(繼代)를 이어왔다. 예계, 헌계, 장계가 모두 정시양의 후손이라고 되어 있는 자료도 있으나 신빙성은 높지 않다.- 예계: 시조 영절공(英節公) 정예(鄭藝)는 고려 통합 삼한벽상공신 광록대부(光祿大夫)·문하시랑 평장사(門下侍郎 平章事)를 지냈다. 그 후의 세계가 실전되어 고려 문종조 양관대제학인 문익공(文翼公) 정시양(鄭時陽)을 일세조(一世祖)로 하여 계대(系代)하고 있다.
- 청천군파(菁川君派): 파조 정수규(鄭守珪)는 정시양의 8세손으로 문과에 올라 정당학사, 내부령, 이조전서, 평장사를 지냈다.
- 충장공파(忠莊公派): 파조 정분(鄭苯)은 정시양의 14세손으로 조선 세종~단종조 문신이다. 예계, 헌계, 장계의 큰집이다.
- 화헌공파(和軒公派): 파조 정결(鄭潔)은 정시양의 14세손이자 정분의 사촌이다. 계유정난 당시 정분이 숙청당했을 때 화를 피해 남해에 들어가 터를 잡았다고 전해지며 이후 대대로 향리를 지내왔다고 한다.
- 내부사공파(內府事公派): 파조 정안교(鄭安校)는 정수규의 조부 정안사(鄭安社)의 동생이다.[11] 고려 때 판내부사(判內府事)를 지냈다.
- 첨정공파(僉正公派): 파조 정중공(鄭仲恭)은 정시양의 증손으로, 고려 때 첨정(僉正)을 지냈다.
- 헌계: 시조 정헌(鄭櫶)은 정시양의 8대손이자 정수규의 차남으로, 고려 말에 문하시랑 평장사로 진산부원군(晉山府院君)에 봉해졌다. 정헌의 손자 정택(鄭澤)은 고려말 감찰어사(監察御使)를 지냈다.
- 우곡공파(愚谷公派): 시조 11세손 정온(鄭溫)은 고려 때 대사간(大司諫)을 지냈다.
- 어사공파(御史公派): 시조 11세손 정택(鄭澤)은 고려 때 감찰어사(監察御使)를 지냈다.
- 지후공파(祗侯公派): 시조 정신(鄭侁)은 고려 때 지후(祗侯)를 지냈다.
- 장계: 시조 정장(鄭莊)은 정시양의 9대손이자 정헌의 조카로, 고려 말엽에 통종첨지중추원사(通政僉知中樞院事)를 지냈다.
- 공대공파(恭戴公派): 공대공 정척(鄭陟, 1390~1475)은 정장의 아들 정자순의 아들 정설의 아들로, 조선 태종 때 판윤을 지냈다. 정척의 아들 정성근(鄭誠謹, ?~1504)은 성종 때 직제학을 지냈다.
- 자우계: 시조 정자우(鄭子友)는 호장(戶長)을 지냈다.
5. 인물
5.1. 역사적 인물
- 정을보(鄭乙輔) - 조일신의 일파로서 난에 가담해 기철을 제거하려다 실패, 결국 숙청당한[12] 고려의 문신. 진주 정씨의 실질적인 중시조에 해당되는 인물이기도 하다.
- 정이오(鄭以吾) - 정을보의 증손. 여말선초 당시의 문신(판한성부사 예문관대제학) 및 문장가. 태조실록의 편찬자로, 실질적인 총책임자로 여겨진다.
- 정분(鄭苯) - 정이오의 아들. 단종 대의 우의정으로, 계유정난 당시 사사되었다.
- 정결(鄭潔)[13] - 정을보(鄭乙輔)의 현손이자 정분의 사촌으로, 계유정난 당시 화를 피해 부인인 전의 이씨와 더불어 남해에 정착. 화헌공파(和軒公派)의 파조.
- 정척(鄭陟) - 세종·세조 대의 충청도관찰사와 중추원지사 및 서예가. 동국지도를 제작하는 데 참여한 인물 중 하나이다.
- 정성근(鄭誠謹) - 성종 대의 청백리
- 정경세(鄭經世) - 임진왜란 당시의 경상도관찰사
- 정사제(鄭思悌) - 임진왜란 때 활약한 의병
- 정기룡(鄭起龍) - 임진왜란 당시의 울산부사
- 정필달(鄭必達) - 숙종 대의 문신
- 정택신(鄭宅臣) - 영조 대의 이조판서
- 정중록(鄭重祿) - 영조 대의 병조판서
- 정순조(鄭順朝)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정몽호[14]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 정봉주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한국광복군 한교전지공작대
- 정영호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한국광복군 한교전지공작대
- 정영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한국광복군 한교전지공작대여군
5.2. 정치인
- 정대철 - 더불어민주당 소속 제16대 국회의원
- 정세환 - 전라북도 제3대 민의원
- 정준 - 반민특위 재판관 출신 제3-5대 국회의원
- 정상용 - 제13-14대 국회의원 (무소속)
- 정균환 - 더불어민주당 소속 제13-16대 국회의원
- 정상열 - 제3대 국회의원 (충남 대전시)
- 정갑주 - 경상남도 제4대 민의원
- 정재완 - 전라남도 제4대 민의원
- 정철기 - 새천년민주당 소속 제16대 국회의원
- 정성호 - 더불어민주당 소속 제21대 국회의원
- 정점식 - 국민의힘 소속 제21대 국회의원
- 정현복 - 제7-8대 광양시장
- 정헌율 - 제39-41대 익산시장
- 정종해 - 제42-43대 전라남도 보성군수
5.3. 공무원
- 정일형 - 제6대 외무장관, 정대철의 아버지
- 정헌주 - 제10대 교통부 장관
- 정동호 - 제4대 대통령경호실장
- 정순덕 - 전두환 정부 제3대 정무제1수석비서관
- 정상천 - 제4대 해양수산부 장관
- 정원식 - 제23대 국무총리
- 정홍원 - 제42대 국무총리
5.4. 법조인
5.5. 학자
5.6. 교육인
5.7. 연예인
- 유노윤호 - 보이그룹 동방신기의 멤버
- 정동원 - 가수 (트로트)
- 정선호 - 유튜버 겸 가수
- 정성찬 - 보이그룹 RIIZE의 멤버, 가수
- 정인선 - 배우
- 정아현 - 걸그룹 BABYMONSTER의 멤버
- 정예린 - 걸그룹 여자친구의 멤버, 가수
- 정진솔 - 걸그룹 이달의 소녀 출신 가수
- 정건 - 보이그룹 SUPERKIND의 멤버
- 정채연 - 걸그룹 다이아, 아이오아이의 멤버, 가수 겸 배우
- 정하나 - 걸그룹 시크릿의 멤버
- 정세운 - 가수
- 정해린 - 걸그룹 tripleS의 멤버, 가수
6. 집성촌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사곡리
- 경상남도 진주시 사봉면 마성리
- 경상남도 진주시 진성면 구천리
- 경상남도 고성군 대가면 금산리
- 경상남도 남해군 서면 정포리
-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문항리
- 경상남도 남해군 남면 운암리
- 경상북도 상주시 외서면 우산리
- 전라남도 고흥군 도덕면 용동리
- 전라남도 광양시 골약동
- 전라남도 나주시 봉황면 각동리
- 전라남도 장흥군 장동면 조양리
- 전라남도 영광군 군서면 덕산리
- 전라남도 화순군 백아면 서유리
- 전라북도 익산시 삼기면 기산리
- 전라북도 고창군 무장면 덕림리
- 전라북도 완주군 구이면 광곡리
-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
- 충청북도 영동군 양강면 양정리
- 충청북도 보은군 삼승면 우진리
- 강원도 홍천군 서면 길곡리
-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성기리
- 경상남도 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 평안북도 영변군
7. 항렬
- 충장공파[15]
28세손 | 영(泳), 중(重), 찬(燦) |
29세손 | 口식(植), 口규(奎), 口감(鑑) |
30세손 | 헌(憲), 종(鍾), 일(一) |
31세손 | 口희(喜), 口원(源), 口인(仁) |
32세손 | 종(鐘), 삼(三), 휴(休) |
33세손 | 口순(淳), 口헌(憲), 口수(壽) |
34세손 | 근(根), 오(五), 길(吉) |
35세손 | 口묵(默) , 口진(鎭) |
36세손 | 치(致), 호(浩) |
37세손 | 口선(善)석(碩), 口주(柱) |
38세손 | 해(海), 병(炳), 원(元) |
39세손 | 口래(來), 口기(基) |
40세손 | 대(大), 석(錫) |
41세손 | 口태(泰) |
42세손 | 상(相) |
- 은열공파
23세손 | 한(漢), 해(海), 제(濟) |
24세손 | 口식(植), 口모(模), 口채(采) |
25세손 | 연(然), 병(炳), 형(炯) |
26세손 | 口기(基), 口효(孝), 口달(達) |
27세손 | 종(鍾), 용(鎔), 진(鎭) |
28세손 | 口태(泰), 口호(浩), 口수(洙) |
29세손 | 상(相), 병(秉), 래(來) |
30세손 | 口현(炫), 口희(熹), 口혁(爀) |
31세손 | 재(在), 규(圭), 채(埰) |
32세손 | 口석(錫), 口호(鎬), 口일(鎰) |
33세손 | 영(永), 순(淳), 택(澤) |
34세손 | 口빈(彬), 口표(杓), 口근(根) |
35세손 | 경(炅), 영(煐), 찬(燦) |
8. 인구
1985년 55,464가구 231,289명2000년 74,777가구, 238,505명
2015년 진주 정씨 197,242명 + 진양 정씨 127,279명 = 324,521명
9. 조선 왕실과의 인척관계
10. 참조
https://www.segye.com/newsView/20130101022008[1] 대체로 부산/경남 쪽은 진양 정씨, 그 외의 지역은 진주 정씨로 더 많이 부른다. 같은 진주(진양)를 본관으로 하는 진주 강씨, 진주 하씨도 마찬가지다.[2] 조일신이 배경이라 집안을 말아먹을 뻔했다.[3] 다만, 문익점의 목화 붓두껍 반입 이야기는 후대에 최무선의 일화를 보고 베낀 것일 가능성이 높다.[4] 정을보의 증손, 정분의 부친으로 시문으로 명망이 높다. 여말선초에 고려와 같이 망할 뻔하던 집안을 동향 동갑내기인 하륜과 이방원에게 줄을 잘 타서 살려놨다.[5] 그 유명한 창경궁 통명전 지당 구리수통 사건의 주인공.[6] 충장공파, 첨정공파, 내부사공파, 화헌공파 등. 다만 정기룡 같은 드문 경우들도 존재하기도 한다.[7] 충장공파 공주계[8] 화헌공파[9] 우의정 정분의 종형제, 즉 사촌지간.[10] 세종실록 150권, 지리지 경상도 진주목[11] 또는 정중공의 손자라 한다.[12] 조일신과는 달리 목숨은 부지한 채 좌천되었다.[13] 문화 류씨 우부대언 유총(柳總)과 권한공(權漢功)의 딸인 안동 권씨의 증외현손.[14] 진주 정씨 첨정공파[15] 계파마다 항렬자가 다르다. 첫번째 열은 공주계의 항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