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의 성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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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천 양산촌 | 급량부 | 이씨 | 알평 | |
| 돌산 고허촌 | 사량부 | 최씨 | 소벌도리 | |
| 취산 진지촌 | 본피부 | 정씨 | 지백호 | |
| 무산 대수촌 | 점량부 | 손씨 | 구례마 | |
| 금산 가리촌 | 한기부 | 배씨 | 지타 | |
| 명활산 고야촌 | 습비부 | 설씨 | 호진 | |
| 삼국사기 기준.# 삼국유사에서는 돌산 고허촌(사량부) 소벌도리를 정씨로 취산 진지촌(본피부) 지백호를 최씨로 기록했고, 6촌의 순서도 셋째가 무산 대수촌(점량부), 넷째가 취산 진지촌(본피부)이라고 기록했다.# | }}}}}}}}} | |||
| 신라 6성 {{{#!wiki style="margin: -15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width=240><tablebordercolor=#ecd8e9> 경주 정씨 (월성 정씨) | }}} | |
| <colbgcolor=#710048> 관향 | 경상북도 경주시 | ||
| 도시조 | 지백호(智伯虎) | ||
| 중시조 | 정진후(鄭珍厚)[1] | ||
| 집성촌 | 경기도 연천군 충청북도 영동군 충청남도 금산군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전라남도 순천시, 여수시, 고흥군, 신안군, 장성군 경상북도 청송군, 김천시 경상남도 남해군, 통영시 | ||
| 함경남도 금야군 | |||
| 인구 | 350,587명(2015년) | ||
| 링크 | 경주정씨양경공파종약원 | ||
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신라 6성의 하나. 신라 6성은 경주 이씨, 경주 최씨, 경주 정씨, 경주 손씨, 경주 배씨, 경주 설씨[2]를 말한다. 신라 6부 중 하나가 되어 신라의 귀족계층으로 군림했던 성씨이기도 하다. 진골이었을 가능성도 충분하다. 본 가문의 시조 지백호가 진골들의 귀족 회의인 화백회의의 초대 참석자였기 때문.2. 시조
<경주정씨대관>에 따르면 "경주 정씨는 우리나라 성씨의 대종으로서 가장 오랜 유래를 지닌 씨족의 하나로 신라를 구성한 진한국(辰韓國) 사로(斯盧) 6촌의 하나인 자산진지촌(觜山珍支村)[3] 촌장인 지백호공(智伯虎公)를 시조로 받들고 있다."고 하였고, 또 "지백호공이 기원전 117년(원수 6년)[4] 경주 화산(花山)에 강림하여 부족국가이던 사로의 여섯 고을 중 자산진지촌을 다스렸으며, 그 뒤 서기전 69년 3월 초하루 다른 다섯 촌장과 함께 자제들을 거느리고 알천(閼川) 언덕 위에 모여 임금을 세울 것을 논의하다가 나정(蘿井) 곁에서 알에서 태어난 아이인 혁거세(赫居世)를 얻어 기원전 57년 거서간(居西干)으로 추대하였다"라고 한다.<경주정씨대관>의 이 이야기는 고려 중기 이후 저술된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경지> 등에 나오는 '신라건국설화'와 '진신전기'(縉紳傳記)를 인용한 것이다.
경주 정씨뿐만 아니라 동래, 영일, 연일, 온양, 하동, 진주 등 30여 성씨도 그들 씨족의 시조로 지백호를 추대하고 성을 정(鄭)으로 하였다. 이는 제일 먼저 경주 정씨가 성을 가지면서 지백호를 시조로 옹립했고, 그 뒤에 영일, 동래, 온양 등의 본관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처음에는 모두 자산진지촌(경주 지역)과 그 인근에 살면서 그 지역 촌장인 지백호를 시조로 삼으며 살다가, 시간이 흐르며 지역을 옮겨 다른 곳에 살게 되면서 각자 자기 지역을 본관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컨대 이들 본관은 모두 경주 정씨에서 분파되었다고 할 수 있다.
3. 유래
지백호(智伯虎)는 고조선 유민으로 삼한시대 진한(辰韓)의 사로국(斯盧國) 6촌장(六村長) 가운데 한 사람이며, 신라 개국공신 6명 가운데 유일하게 묘가 발견된 인물로 우리나라 정씨(鄭氏)의 도시조(都始祖)다 라고 한다.그러면 경주정씨가 '성씨(姓氏)'를 가진 것은 언제일까? 역시 <경주정씨대관>에 보면, "서기 32년(유리 이사금 9) 봄에 그의 현손 대(玄孫代; 東沖)에 와서 사로 6촌의 촌장들과 사성(賜姓)할 때, 자산진지촌(觜山珍支村)을 본피부(本彼部)로 개칭하면서 낙랑후(樂浪侯) 봉훈(封勳)과 함께 정씨(鄭氏)로 사성(賜姓)되었다."라고 하였다. '동충(東沖)'은 시조 지백호의 현손이며 대장군 빈(彬)의 아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사성제도가 씨족사회에서 부족사회로 넘어가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씨가 처음으로 성을 가지게 된 때는 신라 유리왕 9년, 서기 32년이다.
그 뒤 지백호(智伯虎)는 신라를 세운 공훈으로 서기 516년(법흥왕 3)에 문화(文和)로 시호(諡號)를 받았고, 이어 656년(태종무열왕 3)에 감문왕(甘文王)으로 추봉되었다.[5] 그 뒤 시조를 지백호로 추대하고 성을 정씨, 본관을 경주로 한 경주 정씨는 고려 때 문정공(文正公) 매포(梅圃) 정진후(鄭珍厚)를 중시조(中始祖)로 하고, 현재 문헌공파(文獻公派), 양경공파(良景公派), 월성위파(月城尉派), 평장공파(平章公派) 등 4파로 분파되어 있으며, 시조를 지백호로 하고 성을 정씨로 하였으나 본관이 다른 정씨로는 동래(東萊), 온양(溫陽), 연일(延日), 영일(迎日), 진주(晉州), 하동(河東), 초계(草溪), 청주, 해주, 나주, 봉화 등 30여 본관이 우리나라 모든 정씨의 대종(大宗)을 이루고 있다.
현재 경주정씨 중앙종친회에서는 1996년 지금의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 백운대를 지백호의 강림지라 여기고 이곳에 강림기적비를 세워 경주정씨의 발원지로 정하였으며, 또한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는 그곳의 산소를 지백호 시조 산소라 보고 주위에 추경사(追敬祠)를 짓고, 매년 음력 10월 10일 시제를 모시고 있다.
((참고))
*** 지백호 ***
(생존 : 기원전 128년 ~ 기원전 50년)
(추존 : 통일신라 658년 감문왕 추대)
(신라 건국과 정씨의 탄생)
鄭氏 始祖
**** 지백호(智伯虎) (모든 鄭氏의 都始祖) *****
사로국의 6개 마을 가운데 하나인 진지촌의 촌장.
《삼국사기》에 따르면, 진한(辰韓) 12국 가운데 하나인 사로국(斯盧國)의 화산(花山)에 내려와 사로육촌(斯盧六村)의 하나인 취산진지촌(觜山珍支村) 촌장이 되었다.
지백호는 기원전 69년 3월, 알평(謁平)·소벌도리(蘇伐都利)·구례마(俱禮馬:仇禮馬)·지타·호진(虎珍) 등 다른 6촌의 우두머리와 함께 각각의 자제들을 이끌고 알천(閼川) 기슭에 모여 덕이 있는 사람을 군왕으로 삼고, 나라를 세워 도읍을 정할 것을 의논하였다.
이때 양산(楊山) 아래 나정(蘿井) 곁에서 나는 말 울음소리를 듣고 혁거세를 얻었으며, 기원전 57년(혁거세왕 1) 혁거세를 거슬한(居瑟邯;거서간)으로 추대하여 나라를 세우고 국호를 서라벌(徐羅伐;徐伐·斯羅·斯盧·鷄林國)이라 하였다.
신라 제3대 유리왕은 32년(유리왕 9) 사로6촌을 6부로 개편하였는데, 이때 진지촌은 본피부(本彼部)로 바뀌고 정씨(鄭氏) 성을 하사받았다. 이로부터 오늘날 정씨는 중국에서 도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백호를 도시조(都始祖)로 한다.
정씨의 시조는 신라 6부족 중의 하나인 진지촌 지백호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에 대해선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다르게 기술되어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지백호는 한무제 6년(기원전 117년) 경주 화산에 강림하여 부족국가이던 사로의 여섯 고을 중 취산 진지촌을 다스리면서 신라 건국에 참여했다’고 한다. 그 후 ‘유리왕(2대) 9년 6부의 명칭을 개명하고 개국공신인 6부 촌장에게 성을 하사했는데, 진지부를 본피부(本彼部)로 정하고 정씨 성을 하사’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하지만, 이와 달리 삼국유사에는 ‘알천 양산촌의 촌장은 알평이며, 급량부 이씨의 조상이고, 돌산 고허촌의 촌장 소벌도리는 사량부 정씨의 조상이며, 무산 대수촌의 촌장은 구례마로 점량부 또는 모량부 손씨의 조상’이라고 하고, ‘진지촌의 촌장은 지백호이며 본피부 최씨의 조상’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즉, 소벌도리와 지백호에 대해 최씨와 정씨의 조상으로 엇갈려 기술하고 있는 것이다.
자(字)는 인세(仁世), 시호(諡號)는 문화(文和),
휘(諱)는 낙랑후(樂浪侯) 지백호(智伯虎),
추봉(追封) 감문왕(甘文王)이시다.
삼한시대(三韓時代) 진한(辰韓) 사로(斯盧) 6촌장(六村長)의 하나인 진지부촌장(珍支部村長)으로 박혁거세(朴赫居世)를 왕(王)으로 추대(推戴)하고, 신라(新羅) 건국(建國)에 큰 공(功)을 세웠다. 그 공(功)으로 개국(開國) 좌명공신(佐命功臣)이 되었다.
공(公)의 호양지의(互讓至義)는 신라건국(新羅建國)의 모체(母體)가 되었고, 왕도(王道)를 토착(土着)시켰으며, 한 나라의 역사(歷史)를 창조(創造)한 원훈(元勳)으로서 백성을 예(禮)로 가르치고 부족(部族)의 연맹(聯盟)을 이루었으며, 백성(百姓)들이 그 덕화(德化)를 입어 윤리(倫理)가 바로 섰고, 그 넓은 금도(襟度)와 위덕(威德)은 신라(新羅)의 국풍(國風)으로 이어 주었다
서기(西紀) 32년(유리왕 9)에 진지부(珍支部)가 본피부(本彼部)로 승격(昇格) 개칭(改稱)하고, 낙랑후(樂浪侯)에 봉(封)해지면서 정씨(鄭氏)라는 성(性)을 하사(下賜) 받았다. 서기(西紀) 516년(법흥왕 3)에 문화(文和)로 시호(諡號)되었고, 서기(西紀) 658년(무열왕 3)에 감문왕(甘文王)에 추봉(追封)되었다. 음력(陰曆) 10월 10일 후손(後孫)이 향사(享祀)하고 있다.
공(公)은 6촌장(六村長) 가운데 유일(唯一)하게 묘소(墓所)가 경상북도(慶尙北道) 경주시(慶州市) 내남면(內南面) 노곡리(蘆谷里)의 백운대산록(白雲臺山麓)에 현존(現存)하고 있다.
백운재(白雲齋)는 관향제종(貫鄕諸宗)이 성상즉위(聖上卽位)14년에 건립(建立)하였으나 장구(長久)한 세월(歲月)을 거치는 동안 풍우(風雨)로 퇴락(頹落)되어, 서기(西紀) 1984년에 중건(重建)하였다.
공(公)은 서기(西紀) 1971년 입덕묘(立德廟)의 제3위차 육촌장(六村長)에 열향(列享)되었다.
1987년 11월에 시조(始祖) 묘역(墓域) 및 열위조 기적비. 세계비를 세운뒤, 1988년 10월 신호비를 세웠으며, 1990년 11월에 홍살문 안내도 및 문정공(휘진후)의 묘단비를 세워 성역화(聖域化)하였다.
참고문헌(參考文獻) :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유사(三國遺事). 문헌록(文獻錄) 동경지(東京誌)
4. 항렬
| 문헌공파 | 양경공파 | 월성위공파 | 평장공파 | |
| 66세 | 영(永)○ | ○해(海) | ○식植 | ○순淳 / ○영永 |
| 67세 | ○조(朝) | 동(東)○ | 헌憲○ | 상相○ / 조朝○ |
| 68세 | 병(炳)○ | ○훈(薰) | ○수壽 | ○열烈 / ○병炳 |
| 69세 | ○균(均) | 지(址)○ | 용鎔○ | 재載○ / 균均○ |
| 70세 | 종(鍾)○ | ○호(鎬) | ○준準 | ○흠欽 / ○용鎔 |
| 71세 | ○수(洙) | 택(澤)○ | 병秉○ | 수洙○ / 홍洪○ |
| 72세 | 낙(樂)○ | ○(稙)직 | ○환煥 | ○식植 / ○주柱 |
| 73세 | ○섭(燮) | 원(愿)○ | ○훈薰 | 연然○ / 훈薰○ |
| 74세 | 경(坰)○ | ○채(埰) | 규奎○ | ○봉琫 |
| 75세 | ○옥(鈺) | 일(鎰)○ | ○석錫 | 호鎬○ / 용鏞○ |
| 76세 | 순(淳)○ | ○구(求) | 문汶○ | |
| 77세 | ○권(權) | 락(樂)○ | ||
| 78세 | 경(炅)○ | ○욱(煜) | ||
| 79세 | ○기(基) | 준(埈)○ |
5. 인물
5.1. 고려
5.2. 조선
- 정희계(鄭熙啓) - 고려 문하평리 / 조선 개국공신 1등, 찬성사[8], 계림부원군, 양경공. 정휘의 아들.
- 정지년(鄭知年) - 증 좌찬성, 계림군.
- 정효상(鄭孝常) - 이조판서, 계림군, 제안공. 정지년의 아들.
- 혜빈 정씨(惠嬪 鄭氏) - 인종의 후궁.
- 정발(鄭撥) - 부산첨사 증 좌찬성, 충장공.
- 정승복(鄭承復) - 함흥판관 증 병조참판. 정지년의 현손.
5.3. 대한민국
- 정간용 - 제7-8대 국회의원.
- 정규헌 - 제8·11대 국회의원.
- 정민태 - 현대 유니콘스 투수, 삼성 라이온즈 1군 투수코치. KBO 골든글러브 투수 부문 수상(1998·1999·2003).
- 정승(鄭勝) - 초대 식품의약품안전처장.
- 정영주 - 여배우, 뮤지컬 여배우.
- 정옥임 - 제18대 국회의원.
- 정인용 - 제21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
- 정정훈 - 제11·13대 국회의원.
- 정준호 - 배우.
- 정지훈 - 가수.
- 정태영 - 제14대 국회의원.
- 정희채 - 제10·11대 국회의원. 초대 서울시립대학교 총장.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부산대학교 교수. 제31대 문교부 차관.
- 정희선 - 가수.
- 정지만 - 사회복지사
[1] 지백호와 정진후 사이의 계대파악 손실로 인해, 경주 정씨에선 정진후를 1세조로 삼고있다.[2] 현재는 경주·순창 설씨이다.[3] 후에 6촌을 6부로 개편하면서 본피부(本彼部)가 된다.[4] 원수(元狩)는 전한(前漢) 무제(武帝)의 연호 중 하나로 기원전 222년부터 기원전 117년까지 사용됐다.[5] 사로 6촌장들이 시호를 얻었다거나 무열왕 때 왕으로 추봉되었다거나 하는 기록은 당대에는 전혀 확인되지 않는 거짓으로, 후대에 조상을 미화하기 위해 지어낸 것이다.[6] 족보에 의하면 정당문학 병부상서 겸 군기시윤, 평장사 등을 지냈다고 한다. 고려사에는 기록이 없다.[7] 고려사에는 기록이 없으나 조선왕조실록에 기록이 있다.[8] 실록에 참찬문하부사를 지낸 기록이 있는데, 실록 졸기에는 찬성사로 칭하고 있다. 찬성사(찬성; 종1품)가 참찬문하부사(참찬; 정2품)보다 상위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