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2 15:43:24

경주 정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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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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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be673> 사로 6촌 신라 6부 성씨 시조
알천 양산촌 급량부 이씨 알평
돌산 고허촌 사량부 최씨 소벌도리
취산 진지촌 본피부 정씨 지백호
무산 대수촌 점량부 손씨 구례마
금산 가리촌 한기부 배씨 지타
명활산 고야촌 습비부 설씨 호진
삼국사기 기준.# 삼국유사에서는 돌산 고허촌(사량부) 소벌도리를 정씨로 취산 진지촌(본피부) 지백호를 최씨로 기록했다. 또한 6촌의 순서도 셋째가 무산 대수촌(점량부), 넷째가 취산 진지촌(본피부)이라고 기록했다.# }}}}}}}}}


신라 6성 {{{#!wiki style="margin: -15px -10px"<tablealign=center><tablewidth=240><tablebordercolor=#ecd8e9>
파일:경주 정씨 종문.svg
慶州 鄭氏 (月城 鄭氏)
경주 정씨 (월성 정씨)
}}}
<colbgcolor=#710048> 관향 경상북도 경주시
시조 지백호(智伯虎)
중시조 정진후(鄭珍厚)[1]
집성촌 경기도 연천군
충청북도 영동군
충청남도 금산군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전라남도 순천시, 여수시, 고흥군, 신안군, 장성군
경상북도 청송군, 김천시
경상남도 남해군, 통영시
함경남도 영흥군
인구 350,587명(2015년)

1. 개요2. 시조3. 유래4. 항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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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경상북도 경주시를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신라 6성의 하나. 신라 6성은 경주 이씨, 경주 최씨, 경주 정씨, 경주 손씨, 경주 배씨, 경주 설씨[2]를 말한다.

2. 시조

<경주정씨대관>에 따르면 "경주 정씨는 우리나라 성씨의 대종으로서 가장 오랜 유래를 지닌 씨족의 하나로 신라를 구성한 진한국(辰韓國) 사로(斯盧) 6촌의 하나인 자산진지촌(觜山珍支村)[3] 촌장인 지백호공(智伯虎公)를 시조로 받들고 있다."고 하였고, 또 "지백호공이 서기전 117년(원수 6년)[4] 경주 화산(花山)에 강림하여 부족국가이던 사로의 여섯 고을 중 자산진지촌을 다스렸으며, 그 뒤 서기전 69년 3월 초하루 다른 다섯 촌장과 함께 자제들을 거느리고 알천(閼川) 언덕 위에 모여 임금을 세울 것을 논의하다가 나정(蘿井) 곁에서 알에서 태어난 아이인 혁거세(赫居世)를 얻어 기원전 57년 거서간(居西干)으로 추대하였다"라고 한다.

그러나 <경주정씨대관>의 이 이야기는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경지> 등에 나오는 '신라건국설화'와 '진신전기'(縉紳傳記)를 인용한 것이다. 이들 문헌은 고려 중기 이후에 저술되었고, 또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정사의 기록에서 전혀 확인되지 않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기에 그 진의의 신빙성이 매우 떨어진다. 따라서 이는 실제적 역사적 사실이라기보다는 단군신화처럼 하나의 설화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교차검증이 불가능하여 실제 역사로 보기 어려운 부분은 빨간색 글씨로 표시하였으며, 이하 같다.

지백호의 '강림설(降臨說;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설)'이나 박혁거세의 '난생설(卵生說)'은 모두 그들의 탄생을 일반사람들의 '태생(胎生)'과 달리하여 신격화하려는 의도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즉, 후대 어느 씨족이 지백호를 시조로 추대하고 그 계통을 이루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그 씨족이 바로 경주 정씨이다.

그런데 경주 정씨뿐만 아니라 영일, 동래, 온양, 하동, 진주 등 30여 성씨도 그들 씨족의 시조로 지백호를 추대하고 성을 정(鄭)으로 하였다. 이는 제일 먼저 경주 정씨가 성을 가지면서 지백호를 시조로 옹립했고, 그 뒤에 영일, 동래, 온양 등의 본관이 발생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처음에는 모두 자산진지촌(경주 지역)과 그 인근에 살면서 그 지역 촌장인 지백호를 시조로 삼으며 살다가, 시간이 흐르며 지역을 옮겨 다른 곳에 살게 되면서 각자 자기 지역을 본관으로 삼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본관들은 모두 경주 정씨랑 같은 조상인 셈이다.

3. 유래

그러면 경주정씨가 '성씨(姓氏)'를 가진 것은 언제일까? 역시 <경주정씨대관>에 보면, "서기 32년(유리 이사금 9) 봄에 그의 현손 대(玄孫代; 東沖)에 와서 사로 6촌의 촌장들과 사성(賜姓)할 때, 자산진지촌(觜山珍支村)을 본피부(本彼部)로 개칭하면서 낙랑후(樂浪侯) 봉훈(封勳)과 함께 정씨(鄭氏)로 사성(賜姓)되었다."라고 하였다. '동충(東沖)'은 시조 지백호의 현손이며 대장군 빈(彬)의 아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는 사성제도가 씨족사회에서 부족사회로 넘어가면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씨가 처음으로 성을 가지게 된 때는 신라 유리왕 9년, 서기 32년이다.

그 뒤 지백호는 신라를 세운 공훈으로 서기 516년(법흥왕 3)에 문화(文和)로 시호(諡號)를 받았고, 이어 656년(태종무열왕 3)에 감문왕(甘文王)으로 추봉되었다.[5] 그 뒤 시조를 지백호로 추대하고 성을 정씨, 본관을 경주로 한 경주 정씨는 고려 때 문정공(文正公) 매포(梅圃) 정진후(鄭珍厚)를 중시조(中始祖)로 하고, 현재 문헌공파(文獻公派), 양경공파(良景公派), 월성위파(月城尉派), 평장공파(平章公派) 등 4파로 분파되어 있으며, 시조를 지백호로 하고 성을 정씨로 하였으나 본관이 다른 정씨로는 영일(迎日), 동래(東萊), 온양(溫陽), 초계(草溪), 하동(河東), 진주(晉州) 등 30여 성씨로 우리나라 모든 정씨의 대종(大宗)을 이루고 있다.

현재 경주정씨 중앙종친회에서는 1996년 지금의 경주시 내남면 노곡리 백운대를 지백호의 강림지라 여기고 이곳에 강림기적비를 세워 경주정씨의 발원지로 정하였으며, 또한 예로부터 전해내려오는 그곳의 산소를 지백호 시조 산소라 보고 주위에 추경사(追敬祠)를 짓고, 매년 음력 10월 1일 시제를 모시고 있다.

4. 항렬

문헌공파 양경공파 월성위공파 평장공파
66세영(永)○○해(海)○식植○순淳 / ○영永
67세○조(朝)동(東)○헌憲○상相○ / 조朝○
68세병(炳)○○훈(薰)○수壽○열烈 / ○병炳
69세○균(均)지(址)○용鎔○재載○ / 균均○
70세종(鍾)○○호(鎬)○준準○흠欽 / ○용鎔
71세○수(洙)택(澤)○병秉○수洙○ / 홍洪○
72세낙(樂)○○(稙)직○환煥○식植 / ○주柱
73세○섭(燮)원(愿)○○훈薰연然○ / 훈薰○
74세경(坰)○○채(埰)규奎○○봉琫
75세○옥(鈺)일(鎰)○○석錫호鎬○ / 용鏞○
76세순(淳)○○구(求)문汶○
77세○권(權)락(樂)○
78세경(炅)○○욱(煜)
79세○기(基)준(埈)○

[1] 지백호와 정진후 사이의 계대파악 손실로 인해, 경주 정씨에선 정진후를 1세조로 삼고있다.[2] 현재는 경주·순창 설씨이다.[3] 후에 6촌을 6부로 개편하면서 본피부(本彼部)가 된다.[4] 원수(元狩)는 전한(前漢) 무제(武帝)의 연호 중 하나로 기원전 222년부터 기원전 117년까지 사용됐다.[5] 사로 6촌장들이 시호를 얻었다거나 무열왕 때 왕으로 추봉되었다거나 하는 기록은 당대에는 전혀 확인되지 않는 거짓으로, 후대에 조상을 미화하기 위해 지어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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