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20 02:44:47

남양 홍씨

1. 개요2. 유래3. 당홍계(唐洪系)
3.1. 항렬3.2. 실존인물
3.2.1. 32세손3.2.2. 33세손3.2.3. 34세손3.2.4. 35세손3.2.5. 36세손3.2.6. 37세손3.2.7. 38세손3.2.8. 39세손
4. 토홍계(土洪系)
4.1. 24세손4.2. 26세손

1. 개요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본관으로 삼는 한국의 성씨 중 하나이다.

남양 홍씨는 고려 개국공신으로 삼중대광태사(三重大匡太師)를 지낸 홍은열(洪殷悅)을 기세조(起世祖)로 하는 남양 홍씨 당홍계(南陽 洪氏 唐洪系)와 고려시대 금오위 별장동정을 지낸 홍선행(洪先幸)을 시조로 하는 남양 홍씨 토홍계(南陽 洪氏 土洪系)의 두 계통으로 나뉜다.

2. 유래

홍씨가 처음 생긴 곳은 중국이다. 감숙성 서북부에 있는 돈황(敦煌)이 홍씨가 탄생한 지역이다. 처음 홍씨가 탄생한 것은 돈황 지역에 살고 있는 공공씨(共工氏·요순시대 형벌을 다루는 관리)의 후손이 원수의 추격을 피해 (共)자에다 (水)자를 붙여 홍(洪)이라는 성씨를 썼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 홍씨가 생겨난 것은 당나라 태종 때 고구려 영류왕의 요청에 의해 8학사(八學士)의 한 사람인 홍천하(洪天下)가 고구려에 입국한 것에서 연유한다. 고구려에 들어온 홍천하가 연개소문이 일으킨 반란에 반대하며 다시 신라로 건너가 삼국통일 이후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진 것을 계기로 홍씨가 생겨났다고 전해진다.

남양 홍씨는 동성동본이나 시조를 달리하는 두 계보가 있는데, 세칭 당홍(唐洪)과 토홍(土洪)이 그것이다. 당홍은 당나라에서 귀화한 홍천하의 후손이고, 토홍은 고려 고종 때 금오위별장을 지낸 홍선행의 후손으로 일컬어 온다. 당홍과 토홍이라는 속칭도 이처럼 귀화파와 토착파의 구분에서 연유한 것이다. 그러나 귀화파인 당홍의 역사가 300여년 이상 길다는 데서 모두 한 조상의 관계가 아닌가 여겨진다. 두 집안의 조상이 비록 달리 내려오나 동성동본인 만큼, 한 집안으로 보아 통혼하지 않으며, 양 계통은 현재까지도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

3. 당홍계(唐洪系)

남양 홍씨(南陽 洪氏) 당홍계(唐洪系)
관향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시조홍천하(洪天河)
중시조홍은열(洪殷悅)
집성촌강원도 강릉시, 삼척시, 춘천시
경기도 화성시, 양주시, 이천시, 안성시, 평택시,
동두천시
세종특별자치시 연서면 신대리
충청남도 논산시, 천안시
충청북도 옥천군, 보은군, 청주시
전라북도 완주군, 고창군, 부안군, 익산시
전라남도 곡성군, 무안군, 함평군
경상북도 군위군, 의성군, 청도군, 성주군,
구미시, 문경시, 봉화군, 고령군
경상남도 의령군, 남해군, 산청군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서귀포시
인구(2000년)379,708명 (22위)

당홍의 시조 홍천하(洪天河)는 고구려 27대 영유왕 때 중국 당나라에서 8학사의 한사람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와 유학과 문화를 혁신시켰다. 신라 27대 선덕여왕 때 유학의 발전에 공을 세워 당성백(唐城伯)에 봉해졌고 태자태사(太子太師)가 되었으며 본관을 당성으로 하였다. 당성이 후에 남양으로 지명이 바뀌어 본관을 남양으로 하고 있는데, 현재는 경기도 화성시 서부 일대(남양읍 등)이다. 고려 개국공신이며 삼중대광태사인 홍은열(洪殷悅)을 중시조로 1세 조상으로 하여 대를 잇고 있다.

홍은열의 손자대에서 재신공파(宰臣公派)가 나뉘어지고, 증손대에서 다시 예사공파(禮史公派)가 나뉘어진다. 그 후 6세손에서 중랑장파(中郞將派)가 나뉘어지고, 13대손에서 13파로 갈리고, 그 외에 3파가 있어 모두 16파로 나뉘어졌다. 그중 벼슬을 지낸 내력과 후손의 수가 많은 파로는 남양군파(南陽君派, 파조 홍주·洪澍), 문정공파(文正公派, 파조 홍언박·洪彦博), 판중추공파(判中樞公派, 파조 홍언수·洪彦修), 익산군파(益山君派, 파조 홍운수·洪云遂), 예사공파(禮史公派, 파조 홍복·洪復), 중랑공파(中郞公派, 파조 홍후·洪厚) 등이다. 그중에서 가장 번창한 파는 남양군파로 남양 홍씨 당홍계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1].

남양 홍씨는 조선시대에 문묘 종사 대현은 배출하지 못했지만 총 2명의 종묘 배향공신을 배출했다. 충정공(忠貞公) 익성부원군(益城府院君) 홍응(洪應, 1428~1492)은 문과에 장원급제했고 좌의정에 올라 성종의 배향공신이 되었으며, 문희공(文僖公) 홍언필(洪彦弼, 1476~1549)은 인종영의정까지 지내 배향공신에 올랐다.

이밖에는 총 329명(당홍 206명, 토홍 123명)의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는데 이는 전주 이씨(884명), 안동 권씨(359명), 파평 윤씨(336명)에 이어 네 번째의 서열이지만 인구 순위를 감안하면 놀라운 강세다. 그중 당홍에서는 상신(相臣) 8명, 대제학(大提學) 3명, 왕비(王妃) 1명(헌종의 계비 효정왕후), 청백리(淸白吏) 3명이 나왔다.

3.1. 항렬

대략적으로 근현대에 분포하고 있는 항렬자는 다음과 같다. 항렬자를 철저히 지키는 가문으로 유명한데 보통 33~37세손 항렬자를 쓰는 사람이 많다.
32세종(鍾)○
33세순(淳)○, 원(源)○
34세○표(杓), ○식(植)
35세성(性)○, 지(志)○
36세○기(基), ○의(義)
37세석(錫)○, 진(鎭)○
38세○택(澤), ○락(洛)

3.2. 실존인물

3.2.1. 32세손

3.2.2. 33세손

3.2.3. 34세손[5]

3.2.4. 35세손

3.2.5. 36세손

3.2.6. 37세손

3.2.7. 38세손

3.2.8. 39세손


4. 토홍계(土洪系)

남양 홍씨(南陽 洪氏) 토홍계(土洪系)
관향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시조홍선행(洪先幸)
인구(2000년)30,602명 (176위)

4.1. 24세손

4.2. 26세손



[1] 이 남양군파는 정치적으로 서인 노론에 속했다. 한때 흥선대원군의 측근이었던 홍순목, 홍순목의 아들로 갑신정변의 주역이었으나 피살된 홍영식,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자결한 홍만식 등이 바로 남양군파 벌족이었다.[A] 연령대에 비해 항렬이 굉장히 높은 편이다.[B] 연령대에 비해 항렬이 상당히 낮은 편이다.[A] 연령대에 비해 항렬이 상당히 높은 편이다.[5] 이 항렬대에 정치인들이 많다.[B] [B] [B] [B] [B] [B] [12] 자신의 이름인 홍진호의 '진'이라는 글자의 한자표기를 정식 항렬자인 '鎭(진압할 진)'이라는 한자로 쓰지 않고 '榛(개암나무 진)'이라는 한자로 쓴다.[13] 아버지가 三十六世 "基" 항렬자를 쓰시고, 三十七世 錫英 (석영)으로 戶籍名英碩 1976年1月10日生.[14] 본명은 홍근영이다.[15] 본명은 홍영후(洪永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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