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9-06 14:12:23

홍언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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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영의정
문희공(文僖公)
홍언필
洪彦弼
출생 1476년 8월 10일[1]
(음력 성종 7년 7월 12일)
사망 1549년 3월 7일[2] (향년 72세)
(음력 명종 4년 1월 28일)
봉호 익성부원군(益城府院君)[3]
시호 문희(文僖)
본관 남양 홍씨 토홍계 (12세)
자미(子美)
묵재(默齋)
부모 부친 - 홍형(洪泂, 1446 ~ 1500)
모친 - 한양 조씨 조충손(趙衷孫)의 딸
부인 여산 송씨 - 송질(宋軼)의 딸[4]
자녀 1남 1녀
장남 - 홍섬(洪暹, 1504 ~ 1585)
서녀 - 홍씨(1505 ~ 1587) - 파평 윤씨 윤진(尹珍)[5]의 처

1. 개요2. 생애3. 여담

[clearfix]

1. 개요

조선 중기의 문신.

2. 생애

1476년(성종 7) 음력 7월 12일 승정원 우부승지를 지낸 아버지 홍형(洪泂, 1446. ~ 음력 1500. 11. 25.)과 어머니 한양 조씨 조충손(趙衷孫)의 딸 조씨 사이의 3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495년(연산군 1) 증광 진사시에 3등 31위로 입격했으나, 1504년(연산군 10) 갑자사화에 휘말려 유배당했다가 1506년(중종 1)에 중종반정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1507년(중종 2) 증광 문과에 을과 1위로 급제했다.

1526년(중종 21)엔 형조판서로 임명되는데, 1535년(중종 30)에 김안로의 모함으로 파직된다. 하지만 김안로가 실직한뒤 다시 관직에 복귀해 호조판서로 임명되었다. 1544년(중종 39)에 영의정이 되었다.

영의정에 임명된 지 5년 후인 1549년(명종 4) 음력 1월 28일에 사망했다.

3. 여담

  • 그의 장남 홍섬(洪暹, 음력 1504. 9. 10. ~ 1585. 2. 11.)도 선조 때 영의정을 지냈다.
  • 그는 평소에 몸가짐이 검소하고 화려한 것을 그닥 좋아하지 않아 청렴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두 가지가 있는데, 장남 홍섬이 젊은 나이에 판서가 된 이후 초헌(軺軒)[6][7]을 타며 거리를 돌아다니자 아내는 기뻐하며 그에게 이 사실을 알렸는데, 홍언필은 축하해 주기는커녕 오히려 분기탱천해서 홍섬을 집으로 불러낸 뒤 홍섬에게 "높은 자리에 오르고도 항상 겸손해야 하는데, 넌 이렇게 나잇값을 못 하고 방탕하게 산다는 게 말이 되냐?"라고 호되게 꾸중하자 홍섬은 용서를 빌었고, 이어서 "그럼 어디 다시 한 번 초헌을 타 봐라! 벽제(辟除) 소리 또 크게 울려 봐라!"라고 화난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하자 홍섬은 초헌 위에 올라 벽제를 울리며 집 마당을 돌았고, 홍언필은 뒷짐을 지고 맨발로 미투리 신발을 신고서 그 뒤를 묵묵히 따라다녔다가 집으로 돌아갔다. 홍섬은 부끄러워서 실로 몸둘 바를 몰랐고, 이후부터는 홍섬도 언행을 조심하여 다시는 위세를 부리는 일이 없었으며, 후에 그의 벼슬이 아버지처럼 영의정까지 올랐다. 홍언필이 몸소 꾸지람과 창피한 행동을 보여 홍섬에게 경고를 준 셈이다. 몇 년 후 영의정이 된 홍언필이 환갑을 맞아서 환갑잔치를 치르게 됐는데, 집안 사람들이 광대와 기생까지 불러 큰 잔치를 열었지만, 홍언필은 오히려 홍섬을 혼내듯이 언짢은 기색을 지으며 "내가 이렇듯 높은 벼슬에 올라 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항상 마음 속으로 경계하고 삼가는 것을 잊지 않았기 때문인데 오늘 환갑을 맞아 기생들과 광대들을 불러 크게 한 번 놀고 있으니 이는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냐?"라고 하며 광대들과 기생들을 물리쳤다.
  • 그의 사위였던 윤진중종과 내외종사촌 관계였다고 한다. 윤진의 아버지는 윤탕로인데, 윤탕로는 성종의 부인이자 중종의 어머니인 정현왕후의 오빠이다. 그래서 홍언필과 중종은 겹사돈 사이가 되게 되었다.

[1] 율리우스력 8월 1일[2] 율리우스력 2월 25일[3] 1577년(선조 10) 위사공신 삭제로 인한 삭탈.[4] 아버지(송질)와 남편(홍언필), 아들(홍섬) 모두가 영의정을 지냈다. 조선시대 유일무이한 사례.[5] 성종의 2계비 정현왕후의 조카.[6] 조선시대 종2품 이상의 벼슬아치가 탄 외바퀴 수레로, 고위 관리의 위세를 상징하였던 물품이다. 초헌을 사용하는 종2품 이상의 당상관은 집에 솟을대문이 문턱이 없게 설계되어, 초헌을 바로 밀고 드나들도록 했다. 반면 홍언필은 높은 자리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헌보다는 급이 좀 낮은 남여(藍輿)를 타고 다녔다. 홍언필의 검소함을 엿볼 수 있는 부분.[7] 한마디로 오늘날로 치자면 초헌 정도면 차관급 이상의 관용차이고 남여는 고위공무원단 관용차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