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5 10:15:27

담양 전씨


한국의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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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록색: 2015년 기준으로 총 인구 100명 미만인 성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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潭陽 田氏
담양 전씨
<colbgcolor=#000><colcolor=#ece5b6> 관향 <colbgcolor=#fff,#1f2023>전라남도 담양군
원시조
비조 전완
시조 전득시(田得時)
중시조 전녹생(田祿生), 전귀생(田貴生), 전조생(田祖生)
집성촌 경상남도 의령군 낙서면 여의리, 용덕면 죽전리
경상북도 울진군 북면 신화리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신관동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선은리
충청남도 논산시 은진면 내동리
충청남도 홍성군 구항면 내현리
평안남도 양덕군 오강면 월명리
평안북도 강계군 외귀면 건하동, 종서면 종포동, 이서면
평안북도 정주군 덕언면 원봉동
인구 155,018명(2015년)
링크 담양전씨 대종회
1. 개요
1.1. 기원1.2. 상세
2. 분파3. 항렬자4. 인물5. 기타
[clearfix]

1. 개요

전라남도 담양군을 관향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밭 전() 자를 쓰는 전씨 중에서는 가장 큰 집안으로, 인구는 2015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155,018명에 달해 대한민국 성씨 중 45위이다.

담양 전씨에서 갈라져 나간 본은 연안, 하음, 고양, 평택, 예산, 남원, 우봉, 개성 등이 있는데, 현재는 합본되었다. 이외에도 밭 전(田) 자를 쓰는 전씨는 영광 전씨와 태산 전씨, 남양 전씨 등이 있는데, 담양 전씨와의 관계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 외에도 전씨가 원래 개성 왕씨에서 파생된 거라고 하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에서 왕씨들을 탄압하고 죽이는 통에 王을 쓰는 사람들이 대를 잇기 위해 l l를 씌워 田이 됐다거나 위에 人을 얹어서 全으로 피해갔다는 설 등등이 많다. 태조실록에 의하면 어머니 성씨를 따라갔다고.

1.1. 기원

시조인 전득시(田得時)의 선계는 분명하게 나온 바가 없다. 다만 담양전씨 임진보 서문에 중국 제나라로부터 동래하였다고 되어 있고, 담양전씨 갑자보에는 제나라 왕실의 후예라고 적혀있다. 전득시는 고려조에 담양에서 향리를 하던 집안의 아들이라고 하며, 현량과에 합격하여 의종 때에 좌복야(左僕射)[1],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내고 담양군(潭陽君)에 봉해져 담양 지역을 식읍으로 하사 받았다. 이때부터 본관을 담양으로 쓴다.

전씨(田氏)는 본래 규성(嬀姓)에서 나온 집안으로, 순임금의 후손이라 전한다. 담양 전씨의 비조가 되는 진완(陳完)은 순임금의 후손이 되는 춘추전국시대 진(陳)나라 공실(公室)의 공자로, 진 여공의 차남이었다. 진완이 9살이던 기원전 700년에 여공이 죽자, 여공의 동생이었던 진 장공진 선공이 차례로 공위를 물려받았다. 진완은 선공의 태자였던 어구와 친했는데, 선공은 태자 어구보다는 후처 소생의 아들이었던 규관을 더 사랑하여 태자 어구를 죽이고, 규관(嬀款)을 후계자로 삼았으니, 이가 바로 진 목공이었다.

그러자 순식간에 끈 떨어진 연이 되어버린 진완제나라로 달아났다. 제환공은 그의 인물됨을 보고 일찍이 (卿)으로 삼으려 하였으나, 진완은 사양하였다. 제환공은 또 다시 그의 인물됨에 감탄하여 백공(百工: 당시의 직인職人을 이르는 말)을 통솔하는 공정(工正)의 벼슬을 내렸다. 공정집안으로 일하면서 나라에 공헌을 하자 그 상으로 전(田) 땅을 영지로 하사했다. 이때부터 진완의 후손들은 진(陳)과 전(田)을 병용하였다.

진완은 제나라로 망명하여 공정 벼슬을 지내는 한편 상업에도 참여하여 큰 재력을 쌓았다. 그리고 영지로 하사받은 전 땅의 생산력을 바탕으로 제나라 안에서 세력을 넓혀갔다. 그러던 중 진완은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났고, 제나라 공실에서는 그에게 경(敬)이란 시호를 내려 훗날 그의 자인 중(仲)[2]과 합쳐 경중(敬仲)이라 불리게 된다.

진완의 증손자인 전수무(田須無) 때부터는 제나라의 자작 가문이 되었고, 진완의 7대손인 성자(成子) 전항(田恒) 때부터는 거의 제나라의 강씨 공실을 허수아비처럼 쥐고 흔들었으며, 진완의 11대손인 전화(田和)는 결국 제강공을 밀어내고 주나라로부터 제나라의 새로운 제후로 인정 받아 제태공으로 불린다. 이로부터는 제나라의 공실이 강태공의 후손인 강씨(姜氏)가 아니라 진완의 후손인 전씨로 교체되고 이를 구분하여 강제(姜齊)와 전제(田齊)라 한다.

이 전제는 진시황으로 인하여 결국 멸망하게 되고, 초한쟁패기에 제나라 왕실의 후손인 전영, 전횡, 전담 등이 일어나 제나라를 부활시키고자 하였으나 결국 모두 진압 당했고, 전횡은 칭다오에 은거하다가 유방의 부름에 자살하였다고 한다. 다만, 전횡이 이 당시에 칭다오가 아니라 한반도에 동래하여 어청도에 닿았다는 설이 있다. 현재 군산시에는 전횡을 기리는 치동서원이 있다고 한다.

제나라의 멸망으로부터 고려조까지의 12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담양 전씨의 선계가 어디에서 어떻게 왔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바가 없다. 이런 경우, 실제로는 한국의 토착 성씨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1.2. 상세

담양 전씨 6세손 전희경(田希慶)은 동지밀직사사(同知密直司事)[3]를 역임했는데, 슬하의 아들 3명 야은(野隱) 전녹생(田祿生), 뇌은(牢隱) 전귀생(田貴生), 경은(耕隱) 전조생(田祖生)도 고려 말에 모두 크게 출세하였다. 전녹생은 예문관 대제학[4]사헌부 대사헌[5]을 역임했고, 전귀생은 삼사좌윤(三司左尹)[6], 전조생은 찬성첨의부사에 제수되며 전씨삼은(田氏三隱)으로 불린다.

전녹생은 충혜왕 때부터 내외관직을 두루 역임하다가 우왕 1년에 이인임을 탄핵했는데, 오히려 죄를 받아 곤장을 맞은 뒤 유배를 가던 길에 죽었고, 전귀생은 고려가 망한 뒤, 두문동에 들어갔다고 전해진다. 전조생은 원나라의 간섭으로 충정왕이 폐위되어 강화도로 갈 때에 왕을 호종하여 같이 강화로 갔는데, 그 후로 얼마 되지 않아 젊은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담양 전씨에서는 이 전씨삼은을 중시조로 하여 전녹생의 후손은 야은파(野隱派), 전귀생의 후손은 뇌은파(牢隱派), 전조생의 후손은 경은파(耕隱派)로 계파가 나뉘게 되었다.

전득시의 8세손인 전가식(田可植)을 시조로 하는 연안 전씨, 전조생의 7세손인 전균(田畇)을 시조로 하는 하음 전씨, 고양 전씨, 전실(田實)을 시조로 하는 예산 전씨, 남원, 우봉, 개성 등은 담양 전씨에서 분파되었다. 담양 전씨 대동보에는 함께 등재하고 있다.

2. 분파

6세 7세
전희경
田希慶
야은 전녹생
野隱 田祿生
야은파
野隱派
뇌은 전귀생
牢隱 田貴生
뇌은파
牢隱派
경은 전조생
耕隱 田祖生
경은파
耕隱派
3개 파 중에서 경은파가 가장 번성하여 담양 전씨의 대종을 이루고 있다.

3. 항렬자

  • 야은파
<colbgcolor=#000><colcolor=#ece5b6> 25세 일(鎰) <colbgcolor=#000><colcolor=#ece5b6> 34세 ○곤(坤)
26세 ○기(淇) 35세 호(鎬)
27세 계(桂) 36세 ○구(求)
28세 ○희(熙) 37세 상(相)
29세 준(埈) 38세 ○열(烈)
30세 ○수(銖) 39세 기(基)
31세 호(浩) 40세 ○종(鍾)
32세 ○식(植) 41세 근(根)
33세 병(炳) 42세 ○형(炯)
  • 뇌은파 - 정산파
<colbgcolor=#000><colcolor=#ece5b6> 25세 ○진(鎭) <colbgcolor=#000><colcolor=#ece5b6> 35세 ○석(錫)
26세 영(泳) 36세 홍(洪)
27세 ○근(根) 37세 ○식(植)
28세 병(炳) 38세 희(熙)
29세 ○균(均) 39세 ○기(基)
30세 종(鍾) 40세
31세 ○태(泰) 41세
32세 계(桂) 42세
33세 ○환(煥) 43세
34세 재(在)
  • 뇌은파 - 선산파
<colbgcolor=#000><colcolor=#ece5b6> 25세 ○진(鎭) <colbgcolor=#000><colcolor=#ece5b6> 35세 병○(柄)
26세 광(光) 36세 ○환(煥)
27세 ○규(圭) 37세 ○재(在)
28세 석(錫) 38세 호(鎬)
29세 ○태(泰) 39세 ○원(源)
30세 상(相) 40세 식(植)
31세 ○용(容) 41세 ○경(炅)
32세 희(喜) 42세 배(培)
33세 진○(鎭) 43세 ○종(鍾)
34세 ○수(洙)
<colbgcolor=#000><colcolor=#ece5b6> 26세 용(溶) <colbgcolor=#000><colcolor=#ece5b6> 37세 ○빈(彬), ○동(東)
27세 ○수(秀), ○휘(輝) 38세 노(魯), 사(師)
28세 병(炳), 필(弼) 39세 ○재(在), ○성(盛)
29세 ○배(培), ○무(茂) 40세 탁(鐸), 당(唐)
30세 종(鍾), 강(康) 41세 ○제(濟), ○완(琬)
31세 ○호(浩), ○서(舒) 42세 계(桂), 관(寬)
32세 정(楨), 구(九) 43세 ○휴(烋), ○술(術)
33세 ○덕(悳), ○행(行) 44세 재(載), 기(紀)
34세 치(致), 범(範) 45세 ○현(鉉), ○달(達)
35세 ○회(會), ○재(宰) 46세 수(洙), 등(登)
36세 락(洛), 규(揆) 47세 ○업(業)

4. 인물

이름 생몰년도 비고
1세
전득시(得時) ? ~ ? 고려의 문신, 담양부원군(潭陽府院君) 봉작, 시호 충원공(忠元公)
6세
전희경(希慶) ? ~ ? 고려의 문신
7세
전녹생(祿生) 1318 ~ 1375 야은파 고려의 문신, 전희경의 아들, 야은파의 파조(派祖)
전귀생(貴生) ? ~ ? 뇌은파 고려의 문신, 전희경의 아들, 뇌은파의 파조(派祖)
전조생(祖生) 1318 ~ 1355 경은파 고려의 문신, 전희경의 아들, 경은파의 파조(派祖)
23세
전우(愚) 1841 ~ 1922 야은파 조선의 성리학자, 호 간재(艮齋)
26세
전용성(溶星) 1911 ~ 2007 경은파 의사, 법조인
전원용(元溶) 1936 ~ 2003 경은파 정치인, 족보명 용원(溶元)
전용학(溶鶴) 1952 ~ 경은파 16대 국회의원
전용기(溶冀) 1991 ~ 경은파 과천군파 21대 국회의원
27세
전명운(明雲) 1884 ~ 1947 경은파 독립운동가, 호 죽암(竹嵒)
전수안(秀安) 1952 ~ 경은파 前 대법관, 現 서울대학교 이사장
전재수(載秀) 1971 ~ 경은파 20·21대 국회의원
전정규(正圭) 1983 ~ 뇌은파 선산파 농구선수
전희진(姬振) 2000 ~ 야은파 아이돌, ARTMS 소속
28세
전병헌(炳憲) 1958 ~ 경은파 17·18·19대 국회의원, 문재인 정부 초대 정무수석비서관
전찬걸(燦傑) 1959 ~ 경은파 前 울진군수
전병욱(炳旭) 1963 ~ 경은파 목사
전준호(埈昊) 1969 ~ 경은파 야구선수
전봉민(奉珉) 1972 ~ 경은파 21대 국회의원
29세
전만중(萬重) 1903 ~ 1975 경은파 3·4대 국회의원
전소연(小娟) 1998 ~ 경은파 아이돌, (여자)아이들 소속
30세
전봉덕(鳳德) 1910 ~ 1998 경은파 친일파
전창진(昌眞) 1963 ~ 야은파 前 농구선수, 現 농구감독
31세
전혜린(惠麟) 1934 ~ 1965 경은파 번역가, 수필가, 전봉덕의 딸
전윤철(允喆) 1939 ~ 경은파 19·20대 감사원장, 족보명 철원(喆源)
전미라(美羅) 1978 ~ 경은파 前 테니스선수, 現 방송인
32세
전정국(柾國) 1997 ~ 경은파 과천군파 아이돌, 방탄소년단 소속, 족보명 정국(楨國)
33세
전승배(勝培) 1987 ~ 경은파 코미디언

5. 기타

田 자를 쓰는 담양 전씨는 삼남(三南)지방인 전라도, 충청도, 경상도에 많이 거주하고 있다. 특히 전북, 충남 공주, 대전, 부산/울산/경남권에 많은 편으로 경상북도 울진에도 집성촌이 있다. 울진 입향조는 경은 전조생의 네명의 아들 중에서 장남인 전순(田順)의 아들 전자수(田子壽)이다. 여기서 뿌리를 내려 울진에서 전씨라고 하면 거의 담양 전씨를 가리킨다고 한다. 울진군 내에서는 담양 전씨가 성씨 순위 10위에 해당한다.

전자수의 손자 전훈(田勳) 즉 경은 전조생의 6세손이 경상남도 의령에 뿌리를 내리니, 전훈은 의령 입향조가 된다. 전훈의 여섯 아들이 의령은 물론 경남 일대에서 가문을 크게 일으켰다. 요즘도 의령 일대에서는 담양 전씨가 사돈에 팔촌까지 얽혀 있어서 다른 성씨가 담양 전씨 가문의 흉을 봤다가는 의령을 떠나야 한다고 할 정도로 가문이 번성하였다.

일본 성씨로 잘 알려진 다나카(田中) 성씨가 담양 전씨에서 파생된 성씨로 알려져 있다. 이와 관련해 일본 총리를 지낸 다나카 가쿠에이[11] 가 자신의 가계에 대해 "담양 전씨의 후손으로 시조 전득시의 12대손이 일본으로 건너왔다"고 언급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12]총리 재임 당시 김영선 주일대사와의 만남에서 이를 밝히며 한국에 대한 친근감을 표시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일본 정계의 대표적인 친한파 인물이기도 했다. 다나카 가쿠에이의 딸은 일본 외무상을 지낸 다나카 마키코[13]이고, 사위는 일본 방위상을 지낸 다나카 나오키[14]이다.
[1] 현재의 부총리급 관직[2] 둘째 아들을 뜻하는 한자로, 여공의 차남이기에 이렇게 지었다. 사마의도 차남이었기에 자가 중달(仲達)이다.[3] 지금의 대통령실 소속의 차관보 급[4] 지금의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5] 지금의 검찰총장[6] 지금의 기획재정부 국장급에 해당한다. 언간을 담당하던 조선시대의 삼사와는 달리 고려시대의 삼사는 재무를 담당하던 곳이었다. 전혀 다른 곳이다.[7] 27세 이후로, 오른쪽에 있는 항렬 규칙은 천간법으로 지은 것인데, 규칙은 갑(甲)-병(丙)-무(戊)-경(庚)-임(壬)/을(乙)-정(丁)-기(己)-신(辛)-계(癸) 순으로 되어 있다. 즉, 홀수 천간은 홀수 천간끼리 짝수 천간은 짝수 천간끼리 이어지는 방법으로 홀수 천간이 끝나면 짝수 천간으로 넘어가는 순서로 되어 있다.[a] 아버지가 파키스탄인, 어머니가 한국인이므로 모계 성을 따른 것이다. 아버지도 귀화 후 담양 전씨가 되었다.[a] [10] 실존인물이다. 다만, 담양 전씨와 남양 전씨 문중에서 서로 자기네 집안 사람이라고 입씨름 중인 듯하다.[11] 1970~1990년대까지 다나카 총리부터 타케시타 총리까지 일본 경제 부흥기를 이끌던 자민당을 지배한 주류 파벌은 다나카 가쿠에이로 대표되며, 다나카파로 불린다. 현재도 자민당 누카가파가 다나카파를 계승하고 있으며 또한 다나카 가쿠에이의 마지막 제자로 불리는 니카이 도시히로가 2021년 현재 일본 집권 여당 서열 2위인 자민당 간사장을 역임할 정도로 일본 정계에 영향력이 컸던 인물이다.[12] 다만 이에 대한 명확한 근거가 되는 문헌 자료 등은 없다.[13] 다나카 가쿠에이의 부인이 병약해서,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 레이디 역할을 수행하며 국민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다나카 가쿠에이의 고향이자 '다나카 왕국'으로 불리던 니카타현에서 6선 중의원을 하며, 일본 최초의 여성 외무상이 됐다. 다만 외무상으로서 자질은 높게 평가받지 못했다.[14] 장인의 영향력 때문인지 처가의 성씨를 따랐다. 실제 일본 언론들도 처가의 후광으로 방위상이 됐다고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