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후기의 문신. 자 季耕(계경). 호 耕隱(경은). 시호 文元(문원). 본관 潭陽(담양). 부 希慶(희경). 형 埜隱 祿生(야은 녹생), 耒隱 貴生(뇌은 귀생). 충숙왕 복위 5년(1336)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라 충혜왕 복위 2년(1341)에는 왕이 밤에 특별히 불러 두 왕자를 부탁했으며[1]재편에 참여했고 충목왕 2년(1346) ‘編年綱目(편년강목)’ 1년(1349) 贊成事(찬성사)에 올랐다. 동왕 3년(1351) 원 나라에서 江陵君(강릉군, 공민왕)을 왕으로 세우고 충정왕을 강화도로 추방하니, 조생은 李岡(이강), 朴思愼(박사신), 韓修(한수1)), 申德麟(신덕린) 등과 함께 충정왕을 호종해 강화도로 가서 은거했는데, 충정왕은 이듬해에 서거했고 선생은 38세에 돌아가셨으니, 사람들이 顔子(안자, 공자의 제자)보다 겨우 6살을 더 살아 뜻을 펴 보지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벼슬은 贊成僉議府事(찬성첨의부사)를 역임하였고 용모와 器量(기량)이 뛰어나고 학문이 깊어 성리학을 처음 연구한 학자이기도 했다. 고려말 전씨 삼은의 한 분이며 문집에 ‘耕隱先生實記(경은선생실기), 三隱合稿(삼은합고)’ 등이 있다.
무제라는 시가 유명하다
秋雨霏霏江水寒 黃昏獨坐望長安 海上陰雲西北立 不知明月落何山. (추우비비강수한 황혼독좌망장안 해상음운서북립 부지명월낙하산) 가을 비 부슬부슬 내리는 속에 강물은 차고, 황혼에 홀로 앉아 장안을 바라보네. 바다 위 음침한 구름 서북쪽으로 가득 끼어 있어, 밝은 달은 어느 곳으로 지려는지 모르겠구나.
[1]충목왕이 전조생을 불러 두 왕자를 한(漢)나라 곽광(霍光)과 제갈량(諸葛亮)같이 보필하여줄 것을 부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