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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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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전병욱.jpg

1. 개요2. 성추행 사건3. 출산율 발언 논란

1. 개요

1963년 서울 출생으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목사이다.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을 졸업하고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을 졸업하여 목사 안수를 받았다.

교인 80여명이 출석하던 삼일교회를 15년 후엔 16,000여명 규모로 부흥시켰다.

성추행 사건 전까지 전병욱 목사는 매우 주목받았다. 사랑의교회 오정현 목사와 함께 앞으로 예장합동 교단을 주도할 것 같은 이미지였다. 대형교회를 일으키려면 목사의 외모가 호감형이어야 유리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사진에서 보듯 전병욱 목사의 외모가 호감형은 아니다. 설교 내용에서 엄청난 양의 신학 서적을 읽었다는 것이 느껴졌고, 전달 능력도 뛰어났기 때문에 작은 교회에서 시작한 핸디캡, 외모 핸디캡을 다 뛰어넘을 수 있었다.

여자 교인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연달아 밝혀지면서 삼일교회 담임목사직을 사직했다. 1년 후 '홍대새교회'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목회하고 있다. 전병욱의 성추행 사건 기록은 '숨바꼭질(대장간출판)'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다.#

<파워 OOO 시리즈>란 저서에서 알 수 있듯, 왕성하고 진취적이고 강한 힘을 추구하며 권력지향적인 인물이다. 반면 성추행 사건에서 보듯이 목회자로서 요구되는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자기 성찰이 부족하다.

2. 성추행 사건

전병욱 목사는 다양한 저술과 강연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특히 청년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그런데 전병욱 목사가 삼일교회에서 담임목사로 재직할 당시 여자 교인들을 성추행한 사실이 2010년까지 지속적으로 폭로되었다.#

전병욱 목사는 처음에는 부인했으나, 2010년 11월 교회의 여성 교인에 대한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면서 담임목사직의 사의를 표명했다. 12월에 사표가 수리되었다. 사임하면서 13억원의 전별금을 받았다. 전병욱 목사는 "결코 많은 금액이 아니다."라고 이야기하였다.#

2012년 퇴직할 때 목회활동을 중단하기로 약속한 1년이 지나자마자 서울 지하철 6호선 상수역 근처에 '홍대새교회'를 설립했다.

이 성추행 사건이 폭로된 당시 전 목사를 지지하는 교인들은 오히려 피해자들을 꽃뱀, 이단으로 낙인찍어 비난하면서 전 목사를 옹호하였다.[1] 전병욱 목사도 피해자와의 통화에서 "너 교회 망하는 거 좋니?"라며, 피해자들 입을 막는 데 같은 논리를 적극 이용했다고 한다.# 전 목사와 거리를 두고 중립을 지킨다고 생각하는 이들조차, 교회 안에서 이를 공론화하는 것은 '은혜롭지 못한' 일이라고 이야기하며 2차 가해를 가했다. 반면 이에 의분한 다른 교인들은 전 목사의 성추행을 비난하면서 "목사직을 파해 달라"는 청원서를 올렸지만, 쿨하게 씹혔었다.

결국 2014년부터 노회에서 면직 재판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재판과정에서 이런저런 말썽이 일어나고 있는데다, 전병욱 목사가 개척한 홍대새교회에서는 지속적으로 전 목사를 싸고 돌면서 노답 인증이 진행 중이다. # 과연 이런 상황에서 제대로 처벌이 이루어질 수 있겠냐는 회의론이 일어났으며, 결국 노회는 전병욱 목사에게 공직 정지 2년, 강도권 2개월 정지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고 재판을 끝냈다. 형사 범죄를 저지른 사람에게 이 정도 징계를 내렸다면, 말이 징계지 사실상 면죄부를 준 셈이다.

교회단체가 목사의 성범죄에 대해 이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자, 2014년 피해자들을 중심으로 전 목사의 만행을 고발한 책 <숨바꼭질>이 출판되었다. 기사 네이버 카페 '전병욱 목사 진실을 공개합니다'도 참고하자. 공감 능력을 잃어버린 강자 숭배의 신앙이라는 글에서는 전병욱 목사, 삼일교회 교인들, 평양노회의 태도를 고발했다.

하지만 전병욱 목사는 자신의 성추행 사실에 대해 아직까지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하고 있지 않으며, '털어서 먼지 안나는 사람은 없다'는 등의 개소리만 늘어놓고 있다. 심지어 후술되는 소송 패소가 확정된 직후에도 입장 표명 없이 "예수님만 바라보자"는 애매모호한 이야기만 늘어놓아서 빈축을 사고 있다.

심지어 그에게 인터뷰를 시도하려던 뉴스앤조이 기자를 손찌검하고 도망갔다.#

삼일교회 담임목사 사퇴 이후 성추행과 관련 각종 고소/고발건이 진행되고 있으며, 그 가운데 2017년 9월 삼일교회와 벌인 전별금 반환 소송에서 전병욱 먹사의 패소가 확정되었다(대법원 2017다240915 사건). 대법원은 또한 전병욱 목사의 성추행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또는 기습추행으로서 형법 제298조의 강제추행죄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이로써 전 목사는 삼일교회에서 나오면서 받은 전별금 가운데 1억을 반환해야 한다.[2] 이 판결은 전별금도 전별금이지만 전 목사의 성추행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나, 전 목사의 성추행이 처음 폭로된 건 2010년으로 당시는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가 폐지되기 전이라 실제 형사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사건은 담임목사라는 권력자가 자신의 영향력을 이용하여 성추행을 벌였다는 점에서 2018년 들어 벌어진 미투 운동의 여러 폭로사건들과 본질적으로 같은 사건이다. 그리고 이와 비슷한 성격의 목회자 성추문 폭로는 2018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여담으로 한국 교회에서는 성추행을 저지른 목회자들이 버젓이 다시 목회를 하는 일이 빈번하나, 미국의 교회에서는 성폭력 사건발생에 대응하는 프로토콜이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전 목사처럼 성추행을 저지른 사람은 다시 목회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한다.#

3. 출산율 발언 논란

2016년 "청년들이 핍박당하고 가난해야 출산율이 높아진다."라고 발언하였다.#

전병욱 목사가 주장한 내용을 대충 요약하면 "개발도상국 등 가난한 환경에서 출산율이 높다. 그리고 자기들만 편하게 살고 싶다고 애를 안 낳는 젊은이들이 이기적이다."라는 것. 전병욱 목사는 청년들이 애를 안 낳는 진짜 이유를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얼핏 보면 그럴듯할 수도 있지만, 이는 현실적인 인과관계를 무시한 억지 논리에 불과하다. 가난한 국가들, 특히 저소득층에서 출산율이 높다는 사실 자체는 맞다. 하지만 이 높은 출산율은 피임 방법을 모르거나 신경쓰지 않는 낮은 교육 수준, 또는 피임할 돈조차 없는 수준의 극도의 가난, 그리고 결정적으로 소위 말하는 질보다 양의 상황 때문이라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이런 저소득층의 경우 아이 하나하나의 교육에 신경쓰기보다는 일정 수준 이상의 소득을 얻을 수 있기만 하면 최대한 많은 자식을 낳아 다수의 수입으로 가정의 재정 상황을 해결하려 하기 때문인데, 이 과정에서 자녀 한 명에게 들일 수 있는 자원이 턱없이 부족하기에 그 많은 아이들이 모두 잘 자라 양질의 인적자원이 되기는 어렵고, 이는 결국 가난대물림으로 이어지기 쉽다.

반면 한국의 경우, 대부분의 국민이 소득 수준에 비해 자녀를 많이 낳을시 제대로 양육이 어렵다는 사실을 알기에 자발적으로 출산율을 조정하려는 의지가 있다. 게다가 최근 경제 불황과 실업자가 넘쳐나는지라 한국의 젊은이들은 아이를 많이 낳는 건 둘째치고 하나를 낳아 키우는 것조차 어려운 처지다. 나 하나 살아남기도 어려워 자식은 꿈도 못 꾸고, 결혼마저 포기하는 상황이거나 결혼은 커녕 연애나 소개팅조차 꿈도 꿀수 없는 경우도 많다. 심지어 "무작정 아이를 낳기에는 아이에게 미안하다."거나 "내 아이마저 나처럼 흙수저로 만들고 싶지 않다", "가난을 내 대에서 끊고 싶다"는 견해도 있다. 반출생주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이것은 오히려 건전한 사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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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를 들면 "여성 신자가 먼저 전 목사를 유혹했다"거나, "자기가 싫었다면 왜 피하고 도망가지 않았냐"고 따지거나. 이처럼 피해자에게 책임을 뒤집어 씌우기 위한 2차 가해가 이 사건에서도 고스란히 나타났다.[2] 기사에도 나오지만 삼일교회가 전 먹사를 대신해서 피해자들에게 지급한 위자료 8천 5백만원과 교회의 명예가 훼손된 데 대한 손해 배상금 1천 5백만원이 1억 반환의 근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