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0 18:02:11

오지랖

1. 겉옷의 앞자락2. 참견하는 성향
2.1. 일반적인 정의2.2. 원인
2.2.1. 사회적 거리 및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이해 부족2.2.2. 상대방의 기분과 상황에 대한 배려 부족2.2.3. 원하지 않는 도움2.2.4. 인간의 본성2.2.5. 의도는 좋았다2.2.6. 연좌제, 군사독재 등의 영향이라는 주장
2.3. 유형
2.3.1. 잘못된 대화 주제 선정2.3.2. 하소연에 대고 해결책 제시2.3.3. 사생활 침해성 질문
2.3.3.1. 관련 문서
2.3.4.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음2.3.5. 상대방의 의도를 몰라주거나 따라주지 않는 경우2.3.6. 지나가는 사람 머리채 잡기2.3.7. 서비스 직종에서2.3.8. 해외 여행에서2.3.9. 오지라퍼
2.4. 왜 모르는 사람에게도 오지라퍼가 되는가?2.5. 한국에서의 오지랖
2.5.1. 과연 나이 든 사람들만의 전유물인가?2.5.2. 외향적인 사람만의 전유물인가?
2.6. 창작물에서의 오지랖2.7. 모든 것이 오지랖?2.8. 관련 문서

1. 겉옷의 앞자락

순우리말로 웃옷이나 윗도리에 입는 겉옷의 앞자락을 뜻한다. 충청도 방언으로 앞지락이라고도 한다.

2. 참견하는 성향

1번 문단의 어원에서 유래된 비유로 오지랖이 넓다라는 관용어구가 있으며, 오지랖이 넓으면 그 안의 옷을 다 가리니 남들 앞에 나서서 간섭할 필요도 없는 일에 참견하며 따지는 모양새가 이와 닮아서 나온 말이다. 이렇게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신조어로 '오지라퍼(오지랖+er)'라고 부르기도 한다. '오지라퍼'는 한국어에서 불파음화를 거친 자음이 기저에서는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음운론적 근거를 제공한다. 아무리 '빛' '빚' '빗'의 종성이 [t̚]으로 중화된다고 하여도 어떠한 경우는 기저에서 형태를 잃지않고 있는 것이다.

2.1. 일반적인 정의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아래와 같은 경우를 오지랖이라고 정의한다.

* 본인의 발언에 따르는 책임을 회피한다
도움과 오지랖의 차이를 가리키는 가장 중요한 경우이다. 보통 화자가 오지랖을 부린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강제성을 띠고 있기에 어느정도 책임이 필요한 강요와 지적을 했기 때문이다. 의도의 시비를 떠나서 의도만으로는 청자의 상황이 좋아진다는 보장도 없고, 화자의 강요와 지적을 통한 청자의 선택의 과정을 포함, 강요에 따른 선택으로 나쁜 결과가 나온 이후까지의 모든 과정동안 청자가 화자로부터 납득할 만큼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받았다면, 보통 청자는 오지랖으로 받아들이지 않겠지만, 애초에 화자의 식견을 신뢰하지도 않고, 도움을 받으리라는 믿음도 없는 등, 여러가지 이유들로 무례하다고 받아들여 기분이 상하는 것이다. 즉 강요와 지적으로 인해 청자의 기분이든 결과든간에 영향을 주었다면, 청자가 느끼기에 충분한 정도로 뒷수습을 하는것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책임을 진다면 오지랖 보다는 도움에 가깝다.
  • 청자와 화자와의 관계형성이 부족하다
    친하거나 호감을 가진 사람이 도와(간섭)준다고 하면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하고, 친하지 않거나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사람이 도와(간섭)준다고 하면 오지랖이라고 인식한다. 매우 친한 사람이나 신뢰가 깊은 사람이 아닌데 조언이나 충고를 한다든지, 그냥 친한 사이인데 상대방이 조언이나 충고를 부탁하기 전에 조언이나 충고를 하면 오지랖이라고 인식하기 쉽다.
  • 독선적이고 아집이 있다
    의도는 좋았으나, 그게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를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적극적인 행동을 했을 때 오지랖이 넓다는 소리를 듣는다. 여기까지는 아래의 '결과가 나쁘다' 유형과 같은데, 문제는 오지랖을 부린 당사자가 타인에게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지적을 받아도 자기만의 세계에 갇혀 있어서 그게 독선과 아집인 줄 인정하지 못하고 되려 역정을 내기도 한다.
  • 결과가 나쁘다
    이는 의도는 좋았던 경우, 혹은 의도 자체가 나빴던 경우 모두 포함한다. 의외로 상대방이 싫어하고 불쾌한 반응을 보일 거라는 걸 뻔히 알면서도 일부러 상대방 기분 나쁘게 하려고 오지랖을 떠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다만, 화자가 본인 나름대로 심사숙고했는데 결과가 나쁜 경우, 소위 장고 끝에 악수 둔다에 해당되며 그나마 본인도 미안해할 줄 아는 사람인 경우에는 오지랖이라고 욕먹기보다는 그냥 운이 나빠서 의도가 오독되었을 뿐이라고 이해해 주는 반응이 많다.
  • 머리보다 행동이 앞선다
    상황 판단을 제대로 못 하고 끼어들었을 때 오지랖이란 소리를 듣기 쉽다. 단적인 예로 여론몰이에 선동되는 대중들이 있다.
A)
오지랖이 넓다.
훈장질, 선생질, 지적질을 한다.
참견한다.
낄 데 안 낄 데 못 가린다.
공과 사를 구별할 줄 모른다.
부정적으로 보일 경우 A와 같은 이야기를 주로 듣는다.
B)
이타적이고 다른 사람을 돕기 좋아한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을 보살피기 좋아한다.
의리가 있고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한다.
리더십이 있고 주도적이다.
상대에게 필요한 이야기, 상대가 잘 되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를 해 준다.

물론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는 B와 같은 이야기이다. 하지만 사회성의 결여로 인해 의도와는 달리 A와 같은 이야기를 듣게 마련이다. 이 차이는 대단한 이유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조언을 받는 사람이 어떻게 느끼느냐에 달렸다. 즉, 조언의 내용을 불문하고 결과적으로 타인의 감정을 상하게 만들기 때문에 오지랖을 부린다며 배척당하기 쉽다는 것이다.

2.2. 원인

2.2.1. 사회적 거리 및 사회적 지위에 대한 이해 부족

상술되었듯, 오지라퍼들은 자신의 조언이나 충고를 필요로 하지 않거나 듣기 싫어하는 상대를 대상으로 자꾸 대화를 시도하다 보니 배척당하게 된다.
  • 자신과 개인적인 이야기를 주고받기 싫어하는 상대에게 오지랖을 부릴 경우. 예를 들어 직장 동료, 동네 주민 등 그저 지인 수준일 경우이다. 이 경우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상대가 불쾌하게 여길 수 있다. 심한 경우 처음 보는 낯선 사람에게도 조언이랍시고 꼭 참견을 한다. 당연히 대개는 불쾌하게 받아들여진다.
  • 자신을 싫어하는 사람에게 조언을 한다. 상대가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인지 아닌지도 모를 정도로 주변에 무관심하거나 사회성이 부족한 제법 심각한 케이스.[1]
  • 자신의 사회적 지위가 낮거나 우습게 보이는 행색을 하고 있으면서 타인에게 조언에 관한 이야기를 한다[2]. 사회적 서열이 높다고 자부하는 사람에게는 그 사람이 듣고 싶어하는 상황 이외에 조언을 하면 특히 위험하다. 무시당할 확률이 훨씬 올라간다. 한 마디로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선망받는 사람이라면 오지랖이 넓다는 소리를 듣는 경우가 적고, 낮은 신분에 실패를 반복하고 다른 사람에게 부러움을 사지 않는 사람이라면 오지랖이 넓다는 조롱을 듣기 쉽다.
  • 상대방과 자신의 지위가 동등함에도 마치 자신이 더 높은 사람인 것처럼 훈수를 두는 경우. 자신보다 실제로 지위가 높은 사람이 말한 경우라도 불쾌한 것이 오지랖인데, 동등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마치 대단한 사람인 척 굴면서 간섭을 하고 훈수를 둔다면 누구나 크게 불쾌해한다. 이런 언행을 일삼는 사람은 주변의 다른 사람들에게 따돌림을 당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3]
  • 물론 진짜로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고 해도 어쨌든 오지랖은 오지랖이다.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조차도 실질적인 도움은 하나 주지 않으면서 입만 줄창 나불대면 '잘난 척 한다', '너무 진지하다' 등의 뒷담화나 듣고 평판도 나빠진다. 당장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예시인데, 직장 회식에서 상사가 오지랖을 부릴 때가 바로 이런 경우이다.[4]
  • 상태가 심각한 경우에는 윗사람에게도 오지랖을 부린다. 이 정도면 눈치가 없어도 단단히 없는 정도를 넘어 완전히 사회 부적응자 수준. 흔히 말하는 꼰대 중에 하극상까지 하는 꼰대와 결이 같다. 대개는 자기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을 상사로 모시는 경우 이러다가 인생 망하는 불상사가 발생하곤 하는데, 무슨 소리를 하든 결국은 자기보다 나이도 어린 사람 밑에서 굽신거리며 일해야만 한다는 불만과 열등감을 훈수로 표출하는 것일 뿐이다.[5]

    또 드물지만 윗사람이고 자기보다 나이까지 많은데도 똑같이 오지랖을 부리는 경우도 있다(...). 뼛속까지 성차별주의자인 남성우월주의자 남자가 여자 상사 밑에서 일하는 경우라든가. 사실 제대로 된 사회생활에서 직접 보기는 힘든 유형이다.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좌우할 수 있는, 명백하게 의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는 안 보이는 데서 뒷담화할지언정 면전에서는 겉으로나마 강약약강이라도 되는 게 조금이라도 상식이 있고 앞날을 걱정하는 사람의 태도인데, 이런 개념 상실한 짓거리를 할 정도라면 그 사람은 생각이 심각하게 없다는 거다. 사회적 능력이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라면 아무래도 면접에서부터 싹수가 딱 티가 나기 때문에 진작에 걸러져서 취업 자체를 못할 거다. 운 좋게 어찌어찌 입사했더라도 제 무덤 파는 바보짓만 반복하다 얼마 못 가 인사고과에서 도태될 것이며, 심하면 아예 직장에 붙어있지 못하게 된다.

2.2.2. 상대방의 기분과 상황에 대한 배려 부족

  • 이러한 사례를 보듯 자신의 생각에 다른 의견을 틀리다고 묵살하고 오지랖을 부리는 것은 불쾌감을 줄 수 있다. 오지랖이 조언이 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방의 기분과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의 개인적인 감정은 최대한 배제한 채 진심으로 상대방을 위한 대답이어야 한다.[6][7]
  • 오지랖은 상대방이 갖고 있는 트라우마나 상처를 모르거나 알고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 애를 들어 물에 빠져 죽을 뻔한 이후에는 물에 공포증 생긴 사람에게 정신력이 나약하다 혹은 겁쟁이로 치부한다.

2.2.3. 원하지 않는 도움

오지랖 넓은 사람들은 '상대가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더라도 상대방에게 이로운 것을 주면 상대방이 좋아할 것이다'라고 착각한다. 그렇지만 상대방이 도움을 원하지도 않는 상황일 때 도움을 주는 것은 대인관계에서 몹시 위험하다. 거기다 원치 않을 때 도움을 주거나 주려던 사람이 막상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 외면하면 사이는 악화되기 십상이다. 또한 제대로 할 줄도 모르면서 남한테 큰소리만 뻥뻥 쳐댄 뒤 자기가 해 보겠다가 나섰다가 도리어 자기가 일만 더 확대시키거나 동문서답을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간다, 1절만 하자 같은 말들이 괜히 생겨난 말들이겠는가? 애초에 도움이라는 건 상대방이 도움을 느껴야 진정한 도움인 것이다. 나중에 상대방이 정말 이로운 것을 받았다는 것을 알았더라도 도움을 받을 당시에는 막상 도움이 필요하지 않았더라면 역시 위험하다. 물론 처음부터 좋은 의도가 없었고 일부러 도와주는 의도로 보이는 척 하는 경우도 많다.
  • 도움의 시기: 상대방이 질문을 하거나 어려움으로 인한 괴로움을 호소할 때 쯤 먼저 물어보고 차후에 도와줘도 늦지 않다. 가령 질문도 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질문을 받을 때까지는 그냥 끝까지 충고를 하지 말고 일단 가만히 있는 게 좋다. 질문을 끝까지 하지 않는다면 끝까지 아무 말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게 사회적 관계를 망치지 않기 위해서 나을 수도 있다.
  • 도움의 방법: 도움은 상대방에게 이로운 것이어야 한다. 가령 일을 도와준답시고 나섰다가 일만 오히려 망쳐놓았다면 민폐라는 소리밖에 듣지 못한다. 자기 혼자 도와줬다고 착각하며 정신승리하고 도움받은(?) 사람이 일을 망쳤다고 화를 내면 도와준 사람의 성의를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가 있다. 일을 망치고 있어서 말리는데 기어이 자기가 끝까지 도와주겠다고 고집을 부리기도 한다. 결국 상황만 보면 남이 선의로 내 일을 해 주고 있는데 나는 싫다고 꼬장 부리고 있는 추잡스런 꼴이 되고, 끝까지 눈치 못 채고 "아니 해 주겠다는데 왜 그래? 남의 친절 왜 그렇게 무시해? 해준다는데도 왜 지랄이냐?"가 되어 싸움까지 나 버린다. 이런 경우.
  • 리스크: 사람들은 남의 행동 때문에 위험부담을 지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가령 도와주려는 사람이 컴퓨터 전문가로써 잘 다루고, 자기 집에서도 컴퓨터를 자주 능숙하게 고치며, 가족이나 친척들이나 지인들의 컴퓨터 관련 부탁도 잘 들어준다고 치자. 그런데 자신이 아르바이트를 하는 가게에서 컴퓨터를 수리해야 할 상황에서 "공짜로 최선을 다해 해 보겠습니다!"라고 하면 가게 사장과 손님은 신뢰를 전혀 하지 않는다. 컴퓨터는 상당히 비싼 고가의 물건이고, 망가뜨리면 손해배상 문제로 분쟁도 생기기 때문이다. 도와줄 실력이 있는 것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실력을 상대방이 믿을 정도의 객관적 근거와 신뢰부터가 있어야 한다. 괜히 인간관계에서 신뢰가 중요한 게 아니다. 상대방으로부터 신뢰를 살 수 없으면 제아무리 실력이 좋더라도 말짱 꽝이다.
  • 창의적인 거래: "내가 너에게 이것을 해줄 테니 네가 나에게 저것을 해 다오. 그러면 너는 많이 이득을 보고 나는 조금 이득을 보니까 둘 다 좋은 거 아니냐?" 서로간에 신뢰와 친분이 깊다면 이런 창의적인 거래를 통해 상호간에 이득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생활에서 사람들 사이, 특히 본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이에서 그런 거래를 제안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기피 인물로 간주되어 거부감을 주기 십상이다. 진심으로 상대방을 도와주고 싶으면 일방적으로 혹은 거의 일방에 가까운 수준으로 퍼주든지, 아니면 아예 제안 자체를 하지 마라. 사람들은 공짜를 좋아하며, 사기꾼들이 사람을 속이는 수단 역시 공짜를 미끼로 낚는 것이다.
  • 갑작스런 관심: 예를 들면 평소에는 다른 사람이 지금 무슨 공부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특정 시험 스케줄이나 성적이나 합격/불합격 여부 같은 것엔 관심도 하나 안 가지다가 돌연 관심을 가진답시고 "지금 뭐 공부하는 거냐?", "시험 언제냐?", "시험 붙었냐?", "성적 어떻게 나왔냐?", "그런 거 공부해서 뭐하려고?" 등의 예민한 질문들로 떠보면서 나중에는 이런저런 얘기들로 괴롭혀대는 경우다.

최소한 도움을 주려면 상대와 먼저 친해지고 도와라. 사이도 안 좋고 친분도 없는 사람한테 도움이랍시고 물적지원도 아닌 핀잔이나 주거나 민폐만 끼친다면 그건 도움이 아니라 빼박 오지랖이다. 설령 상대방이 나중에 그 충고가 정말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고 받아들이더라도 그 당시에 느낀 부정적인 감정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2.2.4. 인간의 본성

'TAA 결핍증세'에 대한 연구[8]를 통해, 사람들이 '어렵거나 성가신 일을 하라는 조언'은 자신의 건강에 매우 중요하다고 해도 거부함이 드러났다.[9] 21% vs. 79%로 인구를 나눌 수 있다.

TAA 결핍증세에 대한 실험은 그나마 실험 참가자들을 속일 만한 영상과 같은 증거를 가지고 시행되었다. 현실에서의 문제는 정확한 증명을 하기 힘들기 때문에 TAA 결핍증세보다 더 설득하기 힘들다. 삶에서 부딪히는 대부분의 문제[10]는 틀려도 틀린 티가 나지 않고 맞아도 맞은 티가 나지 않는다. 꼰대나일리지나 아집과 교만 등의 원인으로 남의 이야기는 무시해버리고 자신만 옳다는 생각이 강한 사람들도 있다. 시기심 때문에 잘 하고 있는 타인의 발목을 잡으면서 '실력은 있을 지 몰라도 잘난 척해서 밥맛'이라고 덮어씌우는 사람들도 있다.

폭삭 망하기 직전이라 허우적거리고 있는 시기가 아닌 한, 대부분의 사람은 칭찬과 아부를 듣고 싶어하지, 현 상황에서 발전시켜 줄 조언을 듣고 싶어하지 않는다. 그 중 상태가 많이 심한 사람들은 폭삭 망한 시기여도 칭찬과 아부만 듣고 싶어하고, 현 상황에서 발전시켜 줄 조언을 싫어한다.

참견을 싫어하는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아래를 들 수 있다.
  •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다. 누구나 자신만의 가치관이 있는데, 오지랖은 오지라퍼의 가치관대로 살라는 명령으로 들릴 수 있다.
  • 자유를 침해받는다 느낀다. 참견은 대개 명령조에 가깝게 행해진다.[11] 따라서 청자는 아무리 그 참견이 일리가 있더라도 자신의 자유와 선택권이 참견자에 의해 제약받는다 느끼게 되고, 기분이 나빠진다.
  • 적절성과 결과 보장이 안 된다. 누구의 조언이든 그 문제의 결정권자가 아닌 한, 오랜 기간 성공만 반복해 온 사람이 아닌 한, 그 말이 맞다는 보장은 없다. 또한 사람마다, 상황마다 매사 늘 인과가 달라지므로 성공을 오래 유지한 사람의 조언조차 늘 맞지는 않는다.
  • 책임은 내가 진다. 남은 책임 지지 않는다. 책임 지지 않는 간섭으로 내가 손해를 보면 어쩔 것인가? 책임은 나 혼자 지게 된다. 그리고 만약 오지라퍼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간섭한다면? 결국 자기 일은 자기가 해야 한다.
  • 네거티브성 발언. 저조한 성취나 좋지 못한 결과로 인해 고민하고 있는데 "공부를 열심히 안 하니까 그렇지.", "왜 그렇게 죽어라 해도 안 되냐?", "지능에 문제가 있을지도 몰라." 등 기분 나쁘게 말하는 경우. 사람은 자신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는 발언은 그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다.
  •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높은 성취나 효율적인 일처리를 좋아할 지 모르나,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법이다. 자신이 선택하고 책임지는 한은, 일견 비효율적이고 힘든 방식일지라도 괜찮게 느끼거나 감내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참견이 심해지면 상기한 이유들로 인해 이런 사람들도 자신의 선택과 방식을 감내하기 힘들어지고, 서로 피곤하고 힘들어진다. 특히 한국 사회에는 가족 포함 주변인이 무조건 돈 많이 버는 직업을 가져야만 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낙동강 오리알로 만들어 행복하던 사람도 강제로 불행하게 만들어 버리는 악습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로 인한 피해를 보는 사람이 많다.

2.2.5. 의도는 좋았다

과거 공동체 문화가 강했던 시절을 살았거나, 사회 변화의 속도가 매우 느린 지역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본인 나름대로 이타적인 의도를 가지고 행동한 것이지만, 그것이 상대방의 상황에 맞지 않는 해결책이거나 현 시대에 맞지 않는 방식이라서 문제가 되는 경우다.

대표적인 경우로는 다음과 같다. 과거 시대에나 특정 지역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안 되는 행동이었지만, 문화의 차이로 인해 그 의도가 오해받기 쉬운 경우다.
  • 혼인 또는 연애 주선: 다음 항목에도 예시로 나오지만, 상대방이 결혼이나 연애를 할 의사가 있는 것이 아닌데, 갑자기 생판 모르거나 생각지도 못했던 사람과 억지로 결혼이나 연애를 주선하려고 하는 경우이다.
  • 흔히 가족이나 친척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이지만, 요즈음에는 매스컴에서 명절증후군을 대대적으로 다루기 때문에 부모님 세대들도 꼰대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자제하는 경향이 있다. 다만, 아주 연세가 지긋하신 세대들 중에는 아무런 혈연 관계가 없는 남에게도 정말 손주 같다고 아끼는 진심어린 호의로 자신이 평소 괜찮게 생각했던 남녀를 서로 짝지워 주려고 진지하게 마음 먹는 경우가 있다.
  • 물론 당사자로서는 매우 당혹스러운 상황이다. 어르신 세대야 얼굴조차 모르는 상태로 집안 어른들이 정해준 상대와 어쩔 수 없이 결혼해 정들어 해로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은 일일지는 모르나, 친할아버지나 친할머니도 아니고, 심지어 그렇게 오랫동안 알고 지낸 분도 아닌데, 얼굴조차 모르는 상대와 결혼을 전제로 사귀어 보지 않겠냐고 한다면?[12]
  • 극단적인 케이스이긴 하지만 이름도 모르는 처음 만난 사람한테 자기가 아는 누구랑 결혼하라고 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는 당연히 선의로 볼 수 없다. 이는 전통적인 관념으로도 이상하게 여겨지는 일이다. 배우자 얼굴도 모르고 시집/장가를 가던 시대에도, 결혼을 주선하는 어른들끼리는 서로 형성된 신뢰가 있기에 혼담이 가능했다.
  • 그런데 이것이 어르신 세대만의 특성은 아니다. 30~40대 세대라 할지라도 공동체적 가치관이 강한 분위기에서 성장했을 경우 결혼을 못 하게 되면 큰일난다는 생각에서 정말 진지하게 남의 노후 대책까지 고민해 주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주변에 관련 계통 종사자가 있고, 해당 직종의 시설이나 업체가 지역에서 성장했을 경우, 홀어머니와 함께 사는 사람에게 정말 결혼하실 의사가 없다면, *** 자격증을 따시는 건 어때요? 나라에서 지원금도 나오고 부모님 모시고 살 집도 구하기 쉬워요라고 구체적으로 인생 설계를 해 주는 경우도 있다. 문제는 그 사람이 해당 분야에 관심이 없을 경우 굉장히 당혹스럽게 들릴 제안이라는 것.

2.2.6. 연좌제, 군사독재 등의 영향이라는 주장

오가작통제로 대표되는 연좌제의 영향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으나 설득력은 낮다.

오가작통은 말 그대로 옆에 사는 이웃으로, 알기 싫어도 상대의 밥그릇이 몇 개인지 알 수밖에 없을 정도의 가까운 이웃집을 하나의 단위로 묶고 사고 시 책임을 지게 함으로서 서로 감시하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의 오지랖은 사적으로 그다지 친하지도 잘 모르는 사이인데도, 상대에게 참견하는 것이므로 성격이 차이가 크다.

또한 대한민국이 대한민국 제4공화국 시절까지 연좌제가 있었던 독재국가이긴 했지만 공식적으로는 1980년에 연좌제가 폐지되고 1987년 이후로 제6공화국의 출범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지면서 연좌제는 오래 전의 이야기가 되었다.

무엇보다 상대의 평소의 행실 때문에 내가 피해볼 것 같다고 느끼면, 평소에 교류가 없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연락을 끊지, 오지랖을 부릴 이유가 없다. 상대가 내 말을 듣고 행동을 고칠 확률은 알 수 없지만 확실히 매우 낮은 데에 비해, 연락을 끊는 건 효과가 100%이기 때문.

혹 직계 혈연으로 이어져 있다고 해도, 한 가정 내에서 함께 살고 있고 사건에 직접 관계한 가족이 아닌 이상, 연좌제 때문에 피해보긴 힘들다. 실제로 2020년대에 들어서도 논란을 일으킨 사람이나 범죄 가해자의 가족, 친척, 지인 등이 SNS에서 악플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지만, 단순히 그 사람의 가족, 친척, 지인이란 이유로 악플을 달진 않는다. 그 사람의 범죄를 일으키는데 가정환경적인 책임이 있거나, 혹은 두둔하기 위해 사건을 덮으려고 하거나, 설득력 없는 주장으로 변명하거나, 무리를 일으킨 사건에 직접이나 간접적으로 관계했을 때 두드려 맞을 뿐이다.

예를 들어 독립한지 한참 지나 명절 외에 만날 일도 별로 없는 형제가 사고 쳤다고, 다른 형제에게 욕을 한다면 당연히 욕을 하는 사람이 이상한 사람 취급 받는데다가 해당 일에 대해 본인의 책임이 없으므로 소송하면 100% 악플 단 사람이 손해다.

명예훼손으로 악플 단 사람에게 너 고소를 시전하면 끝날 일을 가지고, 가끔씩 볼 때마다 가족에게 오지랖을 떨면서 사고 치는 걸 미리 막겠다는 발상을 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무엇보다 법은 연좌제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가족이 일으킨 범죄나 사건에, 본인의 책임이 없는 이상 국가 상대로 소송해도 이기고도 남는다.

2.3. 유형

2.3.1. 잘못된 대화 주제 선정

설사 상대와 시기를 제대로 잡았다 하더라도, 주제가 잘못되면 배척당하기 쉽다.
  • 상대가 세운 진로, 인생계획, 가치관에 대해서 폄훼하거나 부정한다면 간섭으로 받아들이고 기분나빠하기 쉽다.
  • 상대의 가족, 친구, 애인을 놓고 '어떤어떤 사람과는 사귀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하면 간섭으로 받아들이고 기분나빠하기 쉽다. 그 사람들은 상대가 좋아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2.3.2. 하소연에 대고 해결책 제시

  • 상대가 단순히 억울하고 분통터지는 상황에 대해 하소연을 하면서 기분을 풀기를 원하는데, 여기에다 대고 '결론, 해답을 찾는 방법, 상대의 문제점'을 제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상대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는 경우 싸움이 날 수 있다. 물론 그냥 들어만 달라고 하고 먼저 양해를 구하지 않았다면 그건 오지랖이 아니다. 참고로 이는 남녀간의 대화에서 많이 나타난다. 여자는 하소연만 하고, 남자는 짜증은 나지만 일단 해결을 봐야 짜증도 낼수있다는 생각에 해결책만 제시하다 여자는 남자에게 "왜 공감을 안해주냐, 넌 도대체 왜 그러느냐" 하고, 남자는 "아니 방법을 알려줘도 지X이냐" 하면서 짜증내고 싸우기만 하는 경우가 많다.[13]
  • 화자의 사회적 기술이 미숙한 경우 '하소연을 원하는 상황'과 '도움을 원하는 상황'을 잘 표현하지 못할 수 있다. 이 경우, 상대에게 도움을 원하는지 그저 들어만 주기를 원하는지를 먼저 표명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미리 양해를 구하지 못한 상황이면 상대가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도록 그냥 내버려 둬야 한다. 당연히 이 경우도 오지랖이 아니다. 양해를 구했는데도 불구하고 해결책을 제시한다면 그 때는 빼도 박도 못할 오지랖일 수도 있다.

2.3.3. 사생활 침해성 질문

이런 부류는 상대가 이야기하기 싫은 개인사를 함부로 꺼내거나 알아내려고 한다.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니? 학교에서 몇 등 하고 있어? 넌 어느 학교 갈래? 졸업하면 뭐 할래? 옆집 누구네는 전교 1등이라는데 넌 그 성적으로 그거 할 수 있겠니?", "(자신의 자식은 명문대를 다닐 경우) 우리 애는 열심히 공부해서 oo대학 갔는데 넌 뭐니?[14] 과외 배워볼래?", "학원 다닐래?", (더 악질의 경우) "너 같은 애 과외 시켜줘도/학원 보내줘도 우리 애랑 수준이 맞을지 모르겠다~" (공부를 못 하는 중고생에게)
"살은 좀 빠졌니? 운동은 열심히 하고 있니? 다이어트 좀 해야겠네. 참 밥 잘 먹네, 그렇게 세 끼 다 챙겨먹고 살은 언제 빼니?" "어우, 얘 살찐 것/뱃살 좀 봐. oo 엄마 애 꼴이 이게 뭐야~ 우리애는 밥도 적게 먹고 얼마나 열심히 운동해서 예쁘게 살뺐는줄 알어~?"[15] (비만 때문에 그러잖아도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마당에 무슨 수를 써도 살이 도통 빠지지 않는 사람에게)[16]
"일은 안 하니? 넌 취직은 언제 할 거니? 올해는 취직을 할 수 있겠니? 그런 직장에 원서 내서 뭐하려고 그러니? 좀 번듯한 데를 목표로 해라./누구는 어디 들어갔다던데/뭐 됐다던데 넌 뭐하는 거니?" (취업준비생에게)
"넌 아직도 애인 없니? 눈이 너무 높은 거 아니니?/넌 결혼 안 하니?" (모태솔로 혹은 오랫동안 연애를 하지 않았던 사람에게)
"넌 결혼은 언제 할 거니? 올해는 결혼을 할 수 있겠니? 만나는 사람은 있니? 올해 네 나이가 몇인지 아니?[17] 누구는 좋은 곳에 산다던데/좋은 곳으로 시집장가 갔다던데 넌 뭐하는 거니/부럽지도 않니? 엄마랑 아빠가 몇 살 때 결혼했는지/널 낳았는지 아니?" (노총각, 노처녀, 취업준비생에게)
"연봉은 어떻게 되니? 회사가 어디니? 옆집 누구는 어느어느 대기업 들어갔다던데 넌 거기만 계속 다닐 거니?" (썩 만족스럽지 않은 직장을 잡은 사회초년생에게)
"빨리 애를 하나든 둘 이상이든 낳아서 대를 이어나가야지. 부모 노릇도 안 해 본 게 무슨 어른이니?/누구는 손주 안겨 줬다는데/손주 재롱에 하루하루가 즐겁다는데 넌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이럴거면 넌 대관절 무슨 의도로 결혼한 거니?" (노총각, 노처녀, 딩크족, 불/난임 부부[18]에게)
"남자가 머리가 그게 뭐니? 남자답게 짧게 깎아. 남자가 무슨 악세사리니? 딴따라 될 거니? 당장 면도해! 어디 어린 놈이 건방지게 어른 앞에서 수염을 길러?" (젊은 남성에게)
"옷이 그게 뭐니? 아주 홀딱 벗고 다니는구나? 여자 머리가 그게 뭐니? 선머슴같이. 화장이 그게 뭐니? 순간 술집여잔 줄 알았다." (젊은 여성에게)
"좀 단정하게 하고 다녀라. 하여튼 TV가 사람을 망친다니까? 그딴 것 좀 그만 보고 제발 뉴스 좀 봐라 뉴스 좀! 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궁금하지도 않냐?" (젊은 자녀들, 오락 프로를 너무 좋아하는 자녀들에게)
''둘째는 안 낳니? 요즘 저출산 시대에 도움도 안 주고 아주 이기적이네. 아이 혼자면 외로워. 돈 들더라도 애는 최소 둘 이상은 낳아야 돼, 우리 때는 지금보다 못 살아도 7~8명은 낳았는데 요즘 애들은 엄살이 심해서 (한자녀인 부부에게)..."
"니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독립도 안 하고 이렇게 캥거루로 있니?" (나이가 들었는데도 독립을 안 하고 있는 자녀들에게)
"어른이 돼가지고 아직도 운전면허증이 없다는 게 말이 되니?" (서른이 다 됐거나 넘었는데도 아직도 운전면허증이 없는 자녀들에게)
"꼭 저렇게 먹는 것만 먹는다니까! 너 그러다 오래 못 산다! 너 그러다 배 나오는 거 한순간이다! 니 나이면 이런 것도 좀 먹을 줄 알아야지! 참 맛없게도 먹는다! 참 깨작깨작댄다! 못 먹겠어도 먹어야 돼! 잔말 말고 먹으라면 먹어!" (편식하거나 초딩 입맛인 자녀들에게)
"너 그래가지곤 사회생활 제대로 못 한다/연애 못 한다/남자 or 여자가 도망간다!" (성격에 문제가 있는 자녀들에게)
"넌 평소에도 그럴 것 같애! 사람 많은 데서도 그래라? 넌 한 두 번/곱게 얘기해가지곤 절대 안 돼! 말을 안 할 래야 안 할 수가 없어!" (실수가 은근히 잦은 자녀들에게)

우리나라 명절이나 가족모임에서 평범한 친척 어른들에게 쉽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비단 친척 뿐만 아니라 부모 - 자식 - 형제자매 간에도 이런 대화로 사이가 틀어지는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들은 "상대방을 걱정하고 위로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자극 받아서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느냐?"라고 항변하기도 하지만, 컴플렉스를 건드리는 이야기를 함부로 해 봤자 상대의 기분만 상하게 만들고 아킬레스건만 자극할 뿐이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가시 돋힌 말이라면 잔소리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 그리고 이런 작자들이야말로 자기도 똑같은 소리 들으면 제일 풀발한다. 제대로 말하려면...
X: 살은 좀 빠졌니? 운동은 열심히 하고 있어? 살을 좀 빼야겠네.
O: 내가 요즘 등산을 다니고 있는데 괜찮더라. 살을 빼려면 많이 힘들다는데 같이 하면 어떻겠니? 생각 있으면 연락해. (상대가 다이어트 중인 경우)
X: 애인은 여전히 없니? 요즘 말하는 모태솔로니 뭐니 하는 거니? 연애 한 번 못해보고 답답해서 어떻게 살아?
O: 과 후배 하나가 너하고 잘 통할 것 같아. 네가 의향만 있다면 둘이 소개팅 한 번 해 보면 좋겠는데 어떠니? (상대가 연애 의사가 있을 경우)
X: 나이가 몇인데 아직도 취직을 못하니? 그 나이가 되었으면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니니?
O: "oo이라고 내가 아는 곳이 있는데 그 일자리를 한 번 소개시켜 줄까?" (그 일자리가 사회적으로 인기 있고 평판 좋으며 당사자의 적성 및 전공과도 전혀 어긋나지 않은 경우)
X: 너는 외동이니까 사회성을 키우기 위해서 남들보다 많은 노력을 해야 해. (상대방이 사회성이 부족한 자신의 성격에 대해 고민한 경우)[19]
O: 너는 외동이라 외로움을 탈 일도 없고 다른 형제들한테 사랑 뺏길 일도 없을 테니까 그 장점만 살리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야.
X: "어휴, 공부도 안 하고 게임/인터넷이나 매일 하고 or TV나 매일 보고 있고 or 놀기나 하고 있고... 아주 잘 한다 잘 해!
O: "내가 이번에 공무원 시험 붙어서 동사무소에 들어갔는데, 그 동안 모아놓은 시험 준비 자료 줄게."
X: "(대학교 막 졸업한 사람에게) 뭐 집에서 쉬겠다고... 야, 빨리 취업하고 결혼해서 아이 하나 낳고 또 애 외로우니까 아이 더 낳아도 아까울 판에 부모님이 너 걱정하겠다! ㅉㅉ!
O: "요즘 취업하기 어렵다는데 많이 힘들었지? 내가 좋은 데 알아봤는데 도움이 되면 한 번 같이 가 보는 게 어떨까?

이렇게 된 경우엔 듣는 사람이 그 도움을 받아들이고 고마워하든지, 아니면 도움을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조용히 거절하는 선에서 가볍게 끝난다. 자신이 언급한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강요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사람이 어떤 상황에 있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까지 이해하고 있는 상태에서 건네는 조언이라 듣는 사람이 특별히 악감정을 가지지 않을 수 있다. 게다가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다만 의사를 거절할 경우에는 포기해야 한다. 의사를 거절해도 계속 도움을 주려는 모습은 오히려 처음부터 기분을 상하게 하는 말을 한 경우보다도 더 큰 화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

조언을 한다 하더라도 단둘이 있을 때 하면 좀 덜하다. 하지만 악의 축들은 꼭 다른 사람들이 있는 데서 물어보고 대놓고 망신 주며 자극하니 욕을 먹는 것이다. 이건 진심으로 하는 충고가 아니라 걍 사회성이 떨어지는 것이다.

물론 이런 충격요법을 사용해야 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닌데, 교관, 교사, 강사, 교수 등의 직업군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합법적으로 훈육에 대한 교육을 면밀히, 그리고 전문적으로 이수받은 사람들이며, 필요할 경우 효율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교관의 경우에는 새로운 조직, 직장, 기술, 직업 등의 적응을 도와주는 역할을 수행하는 직종이며, 교사는 사회 인재 육성 및 진로 창출에 도움을 주는 것을 사명으로 하고 있다. 실제 교사들과 교수들은 졸업생들에게 일자리를 알아봐 줘서 취업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거나(특히 실업계, 전문학교), 더 크고 올바른 배움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다(입시지도, 진로 상담 등). 그런데 오지라퍼들 중에서 자기가 지적하는 사항을 개선할 수 있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주는 사람이 아니 애초에 책임감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관찰하여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지랖과 이런 충격요법 전문가 간의 결정적인 차이는 훈육 대상자에 대한 지속적이고 면밀한 평가, 관심의 지속 여부이다. 교관, 교사, 교수들은 자신이 맡은 사람에 대한 평가와 관심을 계속해서 가진다. 하지만 오지랖을 부리는 사람들에겐 책임의식이 없다. 그저 개인적인 감상으로나 상대를 평가하는 것이다. 책임을 가지고 신중하게 충격 요법을 쓰는 사람들과 별 생각 없이 상대의 흠을 잡아 왈가왈부하는 사람은 완전히 다르다.

또한 교사와 교관 같이 권한을 가진 사람들조차 역시 지나치게 감정적이거나 콤플렉스를 건드리는 것은 금기시 되어 있다. 이런 쪽에서 전문적으로 연수를 받고 훈육을 받는 프로들도 쉽게 적용하기 어려운 방법을 고작 일년에 한두번 보는 사람들, 면밀한 관찰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멋대로 쓰고 말하는 것은 결국 무책임하며 한심한 행위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전문적인 올바른 교육을 받는 사람이라도 그런 잘못을 범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후술하겠지만, 가족과 관련된 얘기가 특히 그렇다.

본인의 문제는 누구보다도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해당 사안을 문제로 여기지 않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그런 상대방에 대해 저런 소리를 하게되면 결과는 상대방이 즐겁지 않으니 대화를 짧게 끊어버리는 것밖에 남지 않는다. 특히 심각한 경우 이혼한 사람에게 이혼에 대해, 파혼한 사람에게 파혼에 대해, 시험 낙방한 사람에게 시험에 대해 물어보는 등 콕콕 찌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는 그저 질문을 가장한 갈굼이 될 뿐이다. 또한 역으로 그런 질문을 받았을 시의 행동인 그런 사람에게 역공한다고 한 번 넌지시 이야기 해 봐라. 아마 거의 대부분이 그 사람에게 해서는 안 될말까지 던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본의 아니게 사생활 관련 인권침해성 발언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재혼 가정이나 한부모가정에서 자란 사람, 장애인, 성소수자 등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나쁘게 얘기하는데, 알고 보니 대화 상대방이 그러한 딱한 속사정이 있거나 그런 사람을 가족으로 둔 경우이다. 어지간히 마음을 터놓은 사이가 아니라면 민감한 개인사를 자기가 먼저 얘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보니 이런 식으로 모르고 상처 주는 경우도 꽤 많은데, 당연히 '몰랐다'는 말이 면죄부가 되어주진 않는다. 이런 실수를 범하지 않는 가장 좋은 방법은 남의 험담을 일체 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말을 하고 다니다가 한번쯤 크게 피보는 사람의 특징이, '어쩌면 내 앞에 있는 사람이, 내가 알지 못해서 그렇지 내가 말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을지도 몰라'라고 미리 생각하며 남의 입장을 헤아리고 조심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일반론으로 포장한 편견을 늘어놓는 행위는 반드시 누군가의 지뢰를 밟게 십상이다. 앞서 언급한 외동 자녀에 대한 얘기도 그런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본래는 형제가 있었으나 불의의 비극을 당해 본의 아니게 외동이 된 사례도 있고, 복잡한 가족사로 인해 이복형제이부형제가 있음을 숨기는 사례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외동이니까 너는 이런 게 부족하다는 식의 발언은 그 사람의 말 못할 상처까지 건드리는 결과가 된다.

또한 앞서도 언급된 이혼의 경우 본인 스스로 이를 창피하게 생각해서 입밖에 내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혼한 사람에 대해 악담을 하는 것도 상대방을 자극하는 행위가 된다. 설령 그 사람이 이혼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 사람의 가족이나 친척에게 그런 상처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자신을 공격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심지어는 대화 상대가 아니지만 그냥 근처에 있게 되어 우연히 대화를 듣게 된 무관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다.

따라서 어떤 사람을 만나든 간에 가족에 대한 얘기는 꺼내지 않는 게 예의이다. 실제로 서양 문화권에서는 친하지 않은 사이에서는 사생활 관련 얘기는 일절 하지 않는다.
2.3.3.1. 관련 문서
  • 꼰대
  • 명절증후군
  • 참견이 선을 넘을 경우: 이 경우는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되긴 하지만, 참견하는 성향이 극도로 심해지면 이 단계까지 갈 수 있다. 물론 모든 오지랖꾼들이 이 유형인 것은 아니다.

2.3.4. 상대의 기분을 배려하지 않음

설사 상대와 시기와 주제를 제대로 고르더라도 능숙한 말재간에 자신이 없다면 조언은 함부로 하지 않는 것이 좋다.
  • 눈치 부족이라면 아무리 조금만 외향적이라도 상대는 지나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이 재미없어하고 지루해하는 말, 기분나빠하는 말은 최대한 빨리 끊는 게 좋다. 또 자신을 배척하고 관심없어하며 무시하려는 자에게는 최대한 말을 적게 붙이는 게 좋다. 사회성이 부족한 사람들은 이런 미묘한 신호를 눈치채지 못하기 때문에 상대 역시 자신과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고 혼자 착각하고 기분 나쁜 이야기를 길게 이어간다.[20] 이런 상황은 더 심하고 노골적인 배척을 불러온다.
  • 상대를 무시하는 조언을 한다. "너는 무능하고 멍청해서 엉터리 선택을 한 거야. 너는 너무 생각이 짧고 어리석어. 넌 틀렸어. 넌 노력이 부족하고 의지박약이야."라고 말하면 그게 팩트더라도 상대를 기분 좋게 만들기는 어렵다. 애초에 인생에 있어서 절대적으로 틀린 선택은 몇 되지 않는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결과만 보고 상대를 무시하는 건 수준낮은 행동이고 사고방식이다. 그리고 인생에는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부분이 너무나도 많다. 상대방이 자신의 성장환경/재산/인맥 등 현재 조건상 올바른 판단을 해 왔다는 전제 하에 말을 이어나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나는 너보다 유능하므로 너의 판단은 틀렸으며 내 말을 들어야 한다"는 우월의식에 기반한 조언은 상대가 열등함을 인정하고 특수한 상황이라면 몰라도, 우월하다는 객관적 증거도 없는 사람이 함부로 이런 말을 한다면 잘난 척으로 받아들여지기 쉽다. 물론 대부분의 인간은 심지어 스스로 자신을 열등하다고 판단하더라도 자존심이란게 있기 때문에 대놓고 남이 저렇게 무시해오면 어떻게든 복수를 하고 싶어하지 결코 좋게 듣지 않을 것이다.
  • 상대가 '물적인 도움'이 필요한 상황에서 말로만 상대방을 날카롭게 비판을 한다면 그건 상대방에게 상처만 줄 뿐이다. 자기가 도와줄 거 아니면 조언도 충고도 하지 말고, 상대가 물어보는 것이 아니면 그냥 언급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자. 상대방이 물적인 도움을 친구에게 부탁하는 건 자신 나름대로 방법을 찾아보다가 안 돼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도움을 청하는 경우나 그냥 친구에게 위로되는 말이라도 들어보려고 하는 것이다. 물적인 도움이 필요하다면 상대방이 어떤 상황에 처해있는지부터 들어보고 도움받을 방법을 같이 찾아보는 게 중요하지 앞/뒤도 고려하지도 않고 다짜고짜 "네 잘못이네.", "네가 알아서 해라." 등의 의지드립으로 냉소하는 것은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말이고 상대방에게 절망만 안겨줄 뿐이니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보고 말하는 게 좋다.
  • 설사 상대에게 '물적인 도움'을 준다 해도 기분나쁜 표현을 함부로 써 가며 하면 돈을 쓰고도 오히려 욕을 먹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21]
  • 도움을 주면서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말하고 다닌다. 이런 경우는 도움을 주면서도 상대를 기분 나쁘게 하는 방법이다. 보통 이 경우는 처음부터 좋은 의도로 했을 가능성이 낮다.

2.3.5. 상대방의 의도를 몰라주거나 따라주지 않는 경우

상대방이 어떤 사람에 대한 불편한 감정을 호소할 경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상대방의 심정에는 주목하지도 않고,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실체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에게 감정 이입을 하는 것을 말한다.
  •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어떤 여자 회사원이 인터넷 게시판에 회사 생활 중 남자 선배와 생긴 트러블에 대해 하소연했다고 하자. 이런 경우, 당연히 원글을 쓴 회사원은 남에게 쉽게 털어놓기 어려운 이야기를 익명의 공간에 털어 놓아서 위로를 받고자 그 글을 올린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 어떤 여대생이 글 속에 등장하는 남자 선배를 만화나 드라마 속에 나오는 차도남으로 상상하고 열심히 남자 선배를 쉴드 친다고 생각해보자. 남자 네티즌이라면, 자신의 군복무 시절을 떠올리며 원 글을 쓴 이에게 공감하는 상황에서도 그러한 일이 벌어진다. 왜냐하면 사람마다 생각이나 처했던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다.
당장 자신이 남자냐 여자냐에 따라 공감하는 대상이 달라질 수도 있다. 때문에 위와 같은 경우, 여자 회사원이 올릴 장소를 잘못 고른 셈이다. 위로만을 원했으면 자신의 심정에 주목해 줄 친한 동성 가족이나 동성 친구가 있는 채팅방 등에서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평범한 남자 가족은 여자어를 해석하기 힘들어 하므로 대상에서 제외하는 게 좋다. ( ...) 예를 들어 자신이 잘못했는데도 불구하고, 상대가 아닌 자신을 편들어 주길 원하는 경우, 여자들은 누가 잘못했는가는 일단 제쳐두고, 대상과의 친분에 따라 이러한 의도를 이해하고 따라주는 듯하나,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러한 의도를 읽지도 못하고, 알더라도 속으로 어이없어 한다. 상대편이 억울한 일을 당했는데, 가해자를 위로해야 하는 게 이해가 안 되기 때문. 뭐 자신의 생계를 좌우할 상사가 오프라인에서 하는 하소연이라면, 남자 직원이라도 아부용 멘트로 위로를 받을 수 있겠지만, 익명이 보장된 온라인 상황이라면 좋은 소린 듣지 못할 것이다.* 심지어는 이런 경우도 있다. 만약 어떤 기업의 사장이 내연녀를 자기 회사에 고용하고, 직원들의 임금을 떼어 먹는 등 비리를 저지른다면,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자기 일이 아니라도 공분한다. 그런데 다른 사람도 아닌 자기 자식이 그런 케이스인데도 사장 편을 드는 어머니가 실제로 있다. 자식이 비난하는 악덕 사장을 어려운 상황에서 고군분투하는 중소기업 사장일 거라고 제멋대로 상상하고, "그런 사람들이 겉은 무서워도 속은 그렇지 않다."느니, "아내가 들들 볶으니까 어쩔 수 없이 바람을 피웠을 것이다."라고 되도 않는 쉴드를 친다(...). 이런 개논리라면 막영애 조덕제까지도 쉴드 칠 기세.이 경우, 알고 보면 어머니의 형제나 친인척 중 누군가 사업을 하다가 망한 아픈 사연이 있다거나, 어린 시절 모녀 관계가 아주 안 좋았을 가능성이 있다.
앞서 예를 든 두 사례의 공통점은, 상대가 자신에게 위로를 해줄 수밖에 없는 처지에 있는지, 위로를 원하는 자신의 의도를 읽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정확히 파악을 안 하고 하소연했다는 점이다. 만약 임금을 떼어먹었다는 뉴스나 신문기사나 내연녀를 고용했음을 증명하는 명확한 증거를 보여주지 못한 상태에서 하소연을 했다면, 에이 설마 그런 쓰레기가 사장일리 없잖아 하고 의심할 수도 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할 때, 명확한 증거 없이 자식의 말만 믿고 그 사람을 판단하면 피볼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게다가 저 어머니는 자식이 회사원일 뿐, 회사에 가 본적도 사장을 만난 적도 없을 것이다. 즉,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도 없는 사람에게 의견을 묻고, 실망한 셈이다. 그리고 직장인들이 공분한 건, 자신의 직장에서도 그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도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으므로, 자기 일처럼 느끼고 위로해 줄 수 있었던 것이다. 결코 자기 일이 아닌데도 공감해 준 게 아니다.
  • 국제적인 규모로 보자면, 2019년 6월 경에 영국 정부가 소말리아인 아동 성폭행범을 항공기로 추방하려 하자 튀르키예인 승객들이 항의하며 반발해 추방이 취소된 적이 있다. 승객들은 무슬림대한 언더도그마에 빠져, 아동 성폭행범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 하고 겉모습만 보고 외국인 혐오 피해자일 거라고 멋대로 지레짐작한 것이다.

2.3.6. 지나가는 사람 머리채 잡기

이 부제목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일면식도 없는 사람들의 일에 끼어들어 봉변을 당하게 만들거나 본인이랑은 하등 상관도 없거나 전문 분야도 아니거나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괜히 나대고 참견하거나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경우[22]이다. 하지만 문자와 거의 일치하는 사례도 아주 없지는 않다.

예를 들면, 아주머니 B의 염색 머리를 나무라던 아주머니 A가 갑자기 지나가던 20대 여성 C를 툭 치며 아주머니 B 들으라고 "쟤 좀 봐! 저렇게 까만 머리가 얼마나 예뻐?"라고 하는 경우이다. 비록 칭찬하려는 의도였다고는 하지만, 지나가던 C의 입장에서는 참 난데없는 봉변이다. 애초에 그냥 지나가면서 칭찬 한 마디 들었다 느낌만 주면 되지 굳이 툭 쳐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이럴 때는 그나마 불쾌한 상황으로 일단락되지만, 만약 험담으로 가르치기식으로 말을 걸면 듣는 사람은 오지랖 수준을 넘어 모욕으로 고소할 게 분명하다.

또한 아이들이 놀다가 생긴 사소한 다툼에 지나가던 아줌마가 끼어들어 애꿎은 아이를 나무라는 경우도 있다. 일을 처음부터 지켜본 것이 아니라면 누가 원인 제공자인지도 알 수가 없고, 굳이 모르는 사람이 끼어들지 않아도 알아서 잘 해결될 사소한 일도 많다는 걸 생각하면 그야말로 긁어 부스럼이 따로 없다.

또다른 황당한 사례로는 목적지가 지하철 종점역이라 맘 놓고 자고 있는 학생을 흔들어 깨우며 우리 아들이 서울대학교에 다녀서 깨웠다고 하는 경우. 해당 학교 재학생이 아닌 경우엔 불쾌감만 느낄 뿐이다.

지하철에서 벌어질 수 있는 또 다른 황당한 사례로는 주변에 임산부가 있다고 오해하여 자리 양보를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
보통 일반 좌석에 앉은 승객 앞에 임산부로 추측되는 여성이 있을 경우, 자리를 양보하려는 승객들이 있는데, 이때 여성이 손사래를 치면 승객은 상황을 파악하고 뻘쭘해 하며 도로 앉는다.

하지만 개중에 체면을 중시하는 아줌마가 있을 경우, 도로 앉지 않고 그냥 서 있는데, 이때 새로 탑승한 승객이 앞서 있었던 상황을 모르고, 그냥 앉을 경우 갑자기 태세를 전환하여 왜 임산부가 여기 엄연히 있는데 자리를 막 빼앗느냐고 고함을 친다. 그러면 졸지에 그 승객은 주변의 임산부를 외면하는 이기적이고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으로 몰리는 것이다. 더군다나 애초에 임산부가 있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오해하여(…) 자리 양보를 강요한 것이다.

물론 아줌마가 선의에서 오해했을 가능성도 없는 것이, 빈 자리가 난 타이밍에 우연히 그 자리에 온 승객임이 분명하면, 누가 봐도 모르고 앉은 상황임에도 그런 것이다.[23]

설령 주변에 정말 임산부가 있었다 해도 조용히 알려주면 그만인데, 공공장소에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망신을 주는 것은 결코 옳은 방법이 아니다. 임신 초기인 임산부라면 정말로 몰라서 양보를 안 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임산부가 지하철에서 배려를 못 받는다는 사례만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애먼 사람을 자리 양보도 안 하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몰아가는 이런 민폐를 저질러도 정의감이 투철한 사람이라 미화된다는 것이다. 이런 행동은 절대로 정의로운 행동이 아니다.

앞에서는 아줌마들 사례가 많이 소개되었지만, 사실 지하철에서는 아저씨, 할아버지 오지라퍼 빌런들도 결코 적지 않다. 주로 청년들의 옷차림이나 헤어스타일이나 외모를 갖고 시비를 걸거나 지적질을 해대는 경우가 많다. 진짜 왜 그러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또한 앞서 언급된 자리 양보 강요 사례도 있다. 옛날에는 아저씨들이 어르신에게 자리 양보를 안 한 학생들에게 훈계를 했다면 이제는 임산부석을 비워주지 않았다고 훈계를 하는 것으로 변했는데, 문제는 그 방식이 고압적이라 명분이 옳음에도 불쾌감을 준다는 것. 링크

2.3.7. 서비스 직종에서

일반적으로는 정해진 업무만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손님에게 말을 걸더라도 일상적인 대화이거나 상품 선택에 관한 대화가 많다.

하지만 간혹 특이한 경우, 손님에게 느닷없이 사생활 질문을 하여 손님을 당황스럽게 하는 경우가 있다. 물론 미용실 같은 경우는 머리를 하는데 시간이 워낙 오래 걸리는 일도 많아서 단골 손님인 경우 자연스레 사적인 대화도 주고받게 되지만, 마트 같은 곳에서 계산원이 손님에게 뜬금없이 사적인 질문을 던지는 상황도 있다는 것. 예를 들면 그냥 뚱뚱할 뿐인 여손님에게 "혹시 산달이세요?"라고 갑자기 묻는 계산원도 있다고 한다. 만약 그 손님이 단골이거나 친분이 깊고, 계산원과 잘 아는 사이라면 기/미혼 여부를 아는 상태를 전제로 한 질문이니 큰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그냥 물건 몇 번 사러 온 정도이면 매우 곤란한 상황이 빚어질 수 있다. 결혼도 안 한 미혼녀에게 임신 루머가 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그렇다고 당한 손님이 대놓고 화를 내기도 어렵다. 물론 그 틈을 노리고 갑질에 대한 명분을 만들어서 엄청나게 화를 내며 온갖 행패를 부려대는 손놈도 있다

물론 이런 사례 자체가 매우 특이 케이스라 일반화하긴 어렵지만, 서비스직 종사자들 중에서 아줌마들이 생각하는 서비스 개념과 젊은 층이 생각하는 서비스 개념 사이에 괴리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젊은 층일수록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주로 젊은 고객층을 상대하는 매장에서는 되도록이면 손님과 거리를 두고 손님이 도움을 요청했을 때만 움직이는 것이 매뉴얼화 되어 있는 반면, 아줌마일 경우에는 과거 응팔 시대 동네 슈퍼 정서를 서비스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 시절에는 동네 슈퍼 주인이 이웃사촌이었으니 정말 가족처럼 가깝게 지내는 것이 가능했지만, 불특정 다수의 고객을 상대하는 요즈음에는 모든 고객에게 일일이 그렇게 신경을 쓸 수가 없으니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해야 함에도 자기도 모르게 과거 그 시절 습관이 튀어나오는 것.

2.3.8. 해외 여행에서

혼자서 여행하는 젊은 사람들에게 나이든 사람들이 많이 가는 패키지 여행은 기피 상품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집요하게 호구조사를 하는 어른들이 있기 때문. 기사.

2.3.9. 오지라퍼

인터넷에선 이런 오지랖이 넓은 사람을 오지라퍼라는 말로 부르기도 한다. 마이클럽 등 여성 유저가 많은 게시판에서 주로 발생하였다. 주로 쓸데없이 사생활에 참견하는 사람에 대해 푸념을 늘어놓으면서, "요즘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많다."는 식의 공감 댓글이 달리다가 영어의 -을 하는 사람 이라는 의미의 '-er'을 '오지랖'에 붙여서 '오지라퍼' 라는 말이 탄생하게 된 듯 하다. 영어로 Oziraper라 하기도.

2.4. 왜 모르는 사람에게도 오지라퍼가 되는가?

일단 여기서는 가족이나 친구인 경우가 아닌 생판 모르는 사이인 경우로 한정해서 설명하겠다. 아는 사이일 경우에는 어디까지가 오지랖인지 분간하기가 애매한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먼저 인터넷상에서 벌어지는 오지랖의 경우 같은 이슈에 동참함으로서 소속감을 느끼려는 심리가 있다. 세모자 사건을 비롯한 각종 헛소문이 좋은 예. 게다가 헛소문임을 알기 전에는 정의로운 일을 한다는 보람까지 느낄 수 있다.

두 번째는 인정 욕구이다. 다른 사람의 일에 개입함으로써 자신이 쓸모 있는 사람, 또는 성숙한 사람임을 인정받고자 한다는 것이다. 조언을 할 때는 자신이 그 사람보다 어른인 것처럼 느껴지게 되고 만족감을 느끼게 된다.

세 번째로 관계 맺기 방식이 미숙한 경우이다. 앞서 언급한 지나가는 아줌마들의 오지랖이 주로 두 번째와 세 번째 유형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여성은 자신의 일로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를 보살피는 역할을 함으로써 인정을 받았다. 즉 자신의 삶 자체로 인정을 받은 게 아니라,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야만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다. 신사임당이 당대에는 여성 화가로 유명했지만, 성리학이 보수화되면서 이이의 어머니로 더 유명해진 게 좋은 예이다. 따라서 생판 모르는 사람의 일에 참견하는 아줌마들은 무의식적으로 누군가와 관계를 맺어 누군가에게 영향력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는 욕망을 품었을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아들이 서울대 다녀서 서울대입구역에서 깨웠다는 아줌마는 평소에 아들을 서울대에 보내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 인식해 왔지만, 그 목적이 달성되어 더 이상 자신의 역할이 없어지자, 생판 모르는 젊은이를 자기 아들과 동일시하여 실례를 범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는 것이다. 이러한 경우 이 아줌마는 인정 욕구는 강한 반면 관계 맺기 방식이 매우 미숙하다고 볼 수 있다.

오 헨리의 소설 <마녀의 빵>에 나온 나이 많은 미혼 여성의 경우도 그런 맥락으로 볼 수 있다. 지금은 결혼을 늦게 하거나 아예 안 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40대 미혼 여성이 개인 사업을 하고 있다는 게 부끄러운 일은 아니다. 비록 작은 빵집이긴 하지만, 모아 둔 재산도 있고 어쨌든 사장님 소리는 들으니 어느 정도 자부심을 느낄 만한 위치인 것이다. 그러나 본문에 묘사되어 있듯이, 당시에는 아무리 사업에 성공해도 시집을 못 가면 여성으로서는 실패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에 자신의 여성성을 과하게 어필하려는 마음에서 지나친 친절을 베푼 것이다. 더군다나 저 당시에는 여성의 솔직한 고백을 좋게 보지 않았던 시대였으므로, 빵 속에 버터가 있으니 맛있게 드세요라고 분명한 메시지를 남길 엄두를 못 내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지금 시대의 사람이라면 원작과는 다르게 행동했을 것이며, 결말이 이처럼 비극으로 끝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즉, 이성에게 인정받으려는 욕구는 강했지만, 제대로 관계 맺는 방법을 몰라서 생긴 비극이다.

특히 여성의 경우, 과거 숱하게 발생했던 실종아동 사건과 모성 본능도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 지금이야 스마트폰과 인터넷이 있어서, 가족이 실종되면 당장 인터넷에 글을 올려서 전국의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하고, 실제로 이렇게 해서 잃어버린 가족을 바로 찾은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도구가 없었던 과거에는 48시간 이상 실종되면 영영 생이별을 해야 하곤 했다. 80~90년대 우유갑에 미아 사진이 붙어 있었던 것이나, 지상파에서 미아 찾기 방송을 했던 게 그래서인데, 그럼에도 영영 못 찾은 아이들이 많았다.

따라서 여성들의 경우, 일단 자기 아이와 비슷하게 생긴 어린이가 지나가면 본능적으로 자기 아이로 느끼고 행동하기 쉽다. 그래서 도플갱어급으로 흔하게 생긴 사람들이 엉뚱한 사람으로 오인을 잘 당하게 되는데, 여기서 더 나아가면, 남의 사정도 모르면서 그 사람을 자기 아이와 같은 상황이라 간주하고 참견을 하게 될 수가 있다. 앞에 나온 사례 중, 자기 아들이 서울대에 다녀서 깨웠다는 것이 이런 심리일 가능성도 있다고 볼 수 있다.

그 아줌마는 자기 아들이 내려야 할 역을 지나쳐서 수업을 못 듣고 그래서 학점 관리 실패하고, 취업에 실패하는 악순환을 생각하고 자기도 모르게 그런 행동을 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사람으로 드러나자 '사람을 잘못 봐서 그랬다'고 해명하려던 게, 저런 식으로 말이 나왔을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흔히 오지랖 하면 아줌마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은 이런 사회적 환경과도 어느 정도는 관련이 있을 것이다.

2.5. 한국에서의 오지랖

한국인들은 세대를 막론하고 유난히 오지랖으로 심하다는 평가를 받으며, 이게 남에 대한 단순한 흥미가 아니라 불필요한 간섭이나 호구조사 등으로 이어지는 일이 심각할 정도로 많다. 어느 정도냐면 유튜브 외국인 반응 동영상에서 대한민국 거주 외국인들에게 한국인의 단점이 뭔지 물어보았을 경우, 가장 먼저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하는 게 바로 오지랖이다. 이러다 보니 대한민국의 사회 문제에 대해 논의할 때 반드시 등장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심지어 이런 반응은 같은 한국인한테 물어봤을 때도 비슷하게 나타난다. 조선시대부터 이어져 온 오지랖 문화로 인해 사람 사이에 적당히 거리를 두는 개인주의 문화를 거의 이해하지 못하다 보니 개인주의와 이기주의를 동일시 하는 편협한 시각이 형성되었기 때문이다.[24] 그리고 조선시대에서의 집단주의 향약 문화와 교육 발전의 한계로 인해 근대화되지 못하여 오지랖이 활기치게 된 것이다.

사실상 매우 안 좋은 취급을 받는 행동이며, 한국인들의 장점을 모조리 깎아먹을 만큼 항상 높은 순위에 언급되는지라 한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 형성에 큰 몫을 한다. 그래도 2010년대 이후로 불필요한 호구조사에 거부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오지랖에 대해서도 부정적 반응이 한국 사회에 급속도로 확산되었다.

아무래도 관습적 행태인 만큼 세대별로 반응과 결과는 다소 엇갈리는 경향이 있다. 20 ~ 30대 청년층 내지 40대는 대체로 오지랖에 매우 부정적인 데 반해, 50 ~ 60대 이상의 장년층 및 노년층은 오지랖을 오히려 정이나 관심의 표시라며 긍정적으로 포장하는 일이 많다. 그렇지만 청장년층임에도 시시콜콜 주책맞게 타인에게 오지랖을 떨어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노년층임에도 오지랖을 떠는 것을 꺼리거나 고깝게 여기거나 타인에게 철저하게 거리를 두는 사람들도 있는 등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므로 단순히 일반화하기는 어렵다. 물론 이런 예외 사례들이 있다고는 하나, 오지랖이 한국 사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문제점이란 사실은 한국인과 외국인 모두가 인정하고 공감한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면 내가 외국 나갔더니 거기도 그렇더라며 일부 개인적 경험에 기반하여 반박하는 반응도 있지만, 이는 동양인을 만만하게 보고 일부러 벌집을 건드렸을 가능성을 더 염두에 두어야 한다. 외국은 치안이 안 좋은 경우가 많아서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었다가 봉변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여 오히려 철저히 거리를 두기 때문이다. 해외의 셀럽들을 보면 파파라치에게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당하긴 하지만, 이건 관심의 대상이 되는 사람들이니까 그런 것이고, 적어도 일반인에게 그 정도로 관심을 과하게 보이는 일은 없다는 얘기다.

대표적인 한국인의 오지랖 유형으로 모르는 사람과 대화를 텄을 때 처음부터 호구조사를 하듯이 말을 꺼내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몇 살이세요?", "어디 사세요?", "직업은 어떻게 되시나요?", "어느 대학을 나오셨나요?", "전공이 어떻게 되세요?", "형제관계가 어떻게 되세요?" 등 링크. 다음 항목에 분석글도 있지만, 인구 밀도가 높고, 인종 구성이 일원화되어 있으며, 계층이 철저히 구분되지 않은 한국 사회 특성상 다양한 삶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게다가 개인주의 문화가 발달하지 않아서 위 세대로 갈수록 혼자서 즐기는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25] 젊은 사람들은 심심하면 혼자서 동영상이나 TV나 비디오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게임을 하면 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아무래도 그런 걸 할 줄 모르거나 그런 문화에 익숙하지 않으니까 무작정 모르는 사람만 만났다 하면 통성명부터 하며 대화를 트려고 하는데, 막상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 줄 몰라서 호구조사부터 가장 먼저 시작되는 것.[26]

그래서 이에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호구조사하지 않고 대화 트는 법'이라는 글도 등장했다. 링크. 다만 공통된 관심사를 설정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스터디 모임처럼 처음부터 목적이 분명한 모임인 경우 모임의 주제에 맞는 대화를 이어 나가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었다.

문제는 정작 자신의 행동이 오지랖이라는 자각이 없는 사람들이 세대 불문하고 의외로 많다는 것. 그뿐만이 아니라 아예 오지랖을 한국인의 '미덕'이라는 '(情) 문화'로 포장하고 미화하는 경향까지 보이니 더더욱 답이 없다. 당연하지만, 정이라는 단어에게는 모욕이며, 의미와 뉘앙스가 180도 다르다. 둘 다 사람에게 진심을 다 해 대해주는 건 맞지만 정은 좋은 의미에서 격려, 칭찬, 도움, 배려 같은 긍정적인 것이라면 오지랖은 민폐, 지적, 훈계, 모욕, 간섭, 막말, 참견, 잔소리, 설레발, 나서기 등 매우 부정적인 것이다. 어쩌면 정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변질시킨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영상은 문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영상인데, 두 사람 모두 한국에서는 사람들을 여러 가지 부분으로 평가하는 경우가 많음을 지적하고 있다.



이 영상은 한국인은 왜 남들을 그렇게 평가하려 하는지에 대한 외국인들의 생각과 한국 여성들의 답이 있다.

외국인들이 한국에서 겪는 불편한 점

북미, 유럽 등의 서구 문화권 국가나 바로 이웃나라인 일본의 경우 살이 찌거나 여드름이나 보조개가 생겨도 그에 대해서 언급을 잘 하지 않는데[27] 한국은 바로 만나자마자 그 사실을 바로 이야기하고 더 나아가서 물어보지도 않은 해결 방법에 대해서 말해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경우가 은근히 많다고 지적받는다.[28] 남에 대해서 쓸데없이 신경을 많이 쓴다는 것.

남녀 모두 마찬가지지만 여성을 예로 들면 여성들끼리 쓸데없이 몸매와 성형수술을 어떻게 하면 좋을지 지적을 하고 타인에 대해 외모에 대해서 직설적으로 평가를 하다 보니 외모가 떨어지는 사람은 자연히 자존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고 이는 외모에 대한 자신감 하락으로 이어져 성형수술로 이어질 수도 있고 결과적으로 보면 외모지상주의를 부추기게 된다.

대한민국의 패션이나 기타 다른 것들이 유행을 타는 것도 어느 정도는 이 오지랖에서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출세 목적 교육의 원인도 어느 정도 이 오지랖 문화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부모들이 그렇게나 공부하라고 과하게 닦달하는 이유도 동창회 나가면 꼭 나오는 주로 이야깃거리가 바로 자녀 이야기이기 때문.[29] "이것도 다 너를 위해서야."라고 덧붙이며 했던 잔소리도 결국엔 부모 자기자신을 위한 셈이다. 그리고 명절 때도 명문대, 대기업, 7급 이상 공무원, 전문직 등은 오지랖 방지권을 얻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기 때문.[30]

여담으로, 온라인 버전 쿵쿵따 한방단어 중 하나. 일단 '랖'으로 시작하는 단어가 없고 두음법칙을 적용해도 '앞'이 아니라 '낲'으로 시작하는 단어를 대라고 한다.[31]

나이 든 사람들은 본인보다 연하자인 사람들한테는 오지랖 부리기를 좋아하는 악취미가 있으면서 정작 본인들은 아랫사람이 참견하거나 나서는 걸 반대로 굉장히 싫어한다. 그럴 때마다 매번 나오는 대표적인 말들은 "너랑은 하등 관련 없는 일이니까/너한테 안 물어봤으니까 신경 꺼라!", "이게 나랑 관련 있는 일이지 너랑 관련 있는 일이냐?", "참 말 많다!", "어디 어린 게 감히 어른한테 이래라 저래라냐?", "그딴 거에 관심 가질 시간에 너는 제발 니 일이나 좀 알아서 해라!", "참 할 일도 없다!", "지금부터 한 마디도 하지 마!" 등이다.

2.5.1. 과연 나이 든 사람들만의 전유물인가?

케이스 바이 케이스이다. 흔히 이러한 훈수와 오지랖은 나이든 사람들이 주로 한다고 착각하지만, 남녀와 장소를 불문하고 청년층조차 남한테 괜시리 훈수질을 하거나 오지랖을 떨어대는 것을 알게 모르게 굉장히 자주 한다. 젊은 꼰대라는 말까지 다 나올 정도. 군대에서는 선임이 후임에게, 직장에서는 자기보다 몇 년 이상 늦게 입사한 후배 직원에게, 학교에선 선배가 후배에게, 가정에서는 형/오빠/누나/언니가 동생에게, 심지어 동기나 친구 간에도 이렇게 하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사회생활 제대로 하는 것이라고 자신의 오지랖과 훈수질을 합리화하는 경우가 매우 많다.[32] 이 원인은 징병제로 인해 사회가 군사화된 탓이 매우 크다.[33]

이에 대해 자신은 단지 개념 있게 살라고 조언한 것일 뿐인데 그조차도 싸잡아서 전부 훈수질로 매도하냐고 항변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런 것은 보통 젊은 세대들이 속히 꼰대라고 부르며 오지랖이라고 깔아뭉개는 나이든 사람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나이든 사람들도 속칭 꼰대질 하는 젊은 청년들 같은 동기인 경우가 많다. 실제로도 이야기를 나눠보면 상대방에게 조언해주고 싶어서 이야기를 한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단지 이게 상대방이 받아들일 기분인가 아닌가에 대해서도 별로 고려하지도 않고 그저 자기 위주로만 줄창 이야기해서 그렇다.

속이 좁아서 그렇다고 생각하겠지만, 과거 능력이 뛰어나고 인성이 좋다고 평가를 받은 뛰어난 인물들도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을 상당히 힘들어했다. 하물며 평범한 사람들이 조언과 훈수를 잘 받아들일 것이라고 마냥 생각하는 것은 인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예전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조언을 받아들이는 것의 중요성과 함께 상대방을 기분 상하지 않게 잘 조언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는 것의 중요성 또한 누차 강조해왔다.

특히 젊은이들이 하는 커뮤에 올라오는 인터넷 선동글들은 앞서 언급한 오지랖 사례들과 매우 닮았다. 단지 그 공간이 온라인이란 점이 다를 뿐이다. 이런 경우 항상 의도는 좋았다는 것을 앞세우며 자신의 잘못을 사과하지 않는다.

2.5.2. 외향적인 사람만의 전유물인가?

흔히 오지랖 하면 과거 공동체 문화에서 성장했던 외향적인 아줌마를 연상하기 쉬우나, 개인주의 문화가 상대적으로 강했던 시기에 성장했고, 평소 성격도 조용한 사람이 오지라퍼인 경우도 있다. 한 마디로 조용히 있다가 큰 사고를 치는 유형인데, 문제는 행동 유형이 흔히 알고 있는 오지랖과는 다른 유형이라 주변에선 오지라퍼인지 당연히 모르며, 사회 경험이 부족한 젊은 사람은 더더욱 모른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형은 두 가지 이유에서, 예시로 등장한 유형보다 대처하기가 훨씬 까다롭다.

첫째, 흔히 알고 있는 오지랖의 유형과 달라 오지랖인 줄 모르고 곁을 주게 된다. 둘째, 알고 보면 상처가 있었던 사람들일 수도 있다. 애정결핍으로 인해, 적절한 거리를 두는 방법을 학습할 기회도 없고, 알더라도 본능으로 인해 쉽게 선을 넘는다. 따라서 단호하게 대처하고 싶어도, 의도치 않게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줄까봐 망설이다가 적절한 타이밍을 놓치게 된다.

이는 앞 항목에 언급된 한국 사회의 특성과도 어느 정도 관련되는데, 유독 현대의 한국은 비공식적인 세는나이로 서열을 매기는 경향[34]이 유난히 강해서 또래임에도 연장자다움을 강조하는 경우가 있다보니, 후배 앞에서 능력 있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 무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간단히 한 문장으로 축약하면 언니(오빠)만 믿고 넌 가만히 있어가 이런 유형이다.

예를 들어, 후배가 단순히 선배에게 위로를 받기 위해 하소연을 했을 뿐인데, 선배가 한술 더떠서 후배가 부탁하지도 않은 일을 추진하려다 사고를 치는 것이다. 그런데, 소심한 성격상 남들 앞에서는 모든 걸 자기가 계획했다고 솔직하게 실토하지 않고, 마치 후배가 먼저 원한 것처럼 얘길 흘리니 중간에 낀 후배만 난처해진다.

어찌보면 평소 성격 얌전한 사람이 저런 사고를 치는 경우가 너무나도 당연한 게, 연장자다움을 지나치게 의식하다 보니 평소 행동거지가 얌전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특히 여성이면 직접적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같은 여성들끼리 있더라도 단숨에 눈치채기 어려울 수도 있다. 보통 여성들이 위로와 공감을 받길 원해서 언니뻘 동료들과 수다를 많이 떤다지만, 당연히 이것도 케바케라 능력도 안 되는데 무리하게 해결책을 만들어 주려는 유형도 분명 있다.

그리고 알고 보면 평소 소심하고 얌전한 사람들 중에 자기 잘못을 죽어도 인정 안 하는 은근 고집 센 유형들이 많기 때문에, 난 그저 좋은 의도로 한 것일 뿐인데, 어른들이 나빠라며 은근슬쩍 책임전가를 하기도 한다. 어찌 보면 주책바가지 아줌마보다 더 위험한 유형이다. 평소 소심하고 얌전한 유형도 케바케라, 심사숙고하는 신중한 유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 경험의 폭이 좁고 독선과 아집에 빠지기 쉬운 유형도 섞여 있다.[35]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은 자기 자신의 능력을 믿지 못하므로, 최대한 신중하게 심사숙고해서 판단하려고 노력한다. 때문에 신중을 기한만큼 자신의 잘못을 쉽게 인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반대로 자신의 잘못을 너무 쉽게 인정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판단을 믿지 못하기에 이게 잘못된 판단일수도 있다는 고려를 마지막까지 놓지 못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면, 일이 잘못되었을 때 어차피 다음에 잘해서 만회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의외로 쿨하게 인정하는 경우도 있고, 자신의 실력을 과신하여 나 같은 사람이 실수하다니 말도 안 된다며 잘못을 인정 못하는 경우도 있다. 즉 자존감의 높고 낮음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과는 관련이 없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같은 실수를 안 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이라고 인정받을 뿐이다.

평소 봉사활동을 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러한 유형이 있을 수 있다. 열등감이 있어, 자기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에게 참견을 하면서 우월감을 느끼려는 것인데, 겉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얌전하니 참견으로 보이지 않아서 조용히 묻어가기 쉽고 본인 스스로도 그게 잘못된 것인 줄 모를 수도 있다. 이게 심해지면 단순 오지랖을 넘어선 것이라 다른 카테고리로 분류해야 할 정도가 될 수 있다. 봉사를 받는 사람이 자기에게 영원히 의지하길 바라는 가스라이팅이나, 상대방에게 집착하는 스토킹 등.

따라서 주변 사람이 말수 없고 조용하다고 해서 안심하고 쉽게 속내를 털어놔선 안 된다. 그리고 이런 내성적인 인물들에게 어쩔 수 없이 속내를 털어놓게 되었다면, 그냥 답답해서 이야기하는 것일 뿐, 당신이 이 일을 해결해 주었으면 해서 이야기하는 게 절대 아니라는 것을 미리 밝혀두면 폭주를 막을 수 있다. 그들은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 스스로 나서서 일을 추진할 정도로 활동적이지 않다. 폭주의 원인이 자신에게 해결을 부탁했다는 착각인 만큼, 착각하지 않게만 하면 되는 것.

2.6. 창작물에서의 오지랖

주인공, 특히 정의의 히어로가 가지는 기본 속성. 본 문서에서 대체로 오지랖을 부정적으로 묘사했지만, 여기서만큼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봐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여기서 말하는 오지랖은 자기와 이해관계가 없어도 무고한 사람의 위험에 빠지면 끼어들어서 구해주려는 성격을 의미하기 때문. 그리고 주인공이 물리치려는 악인이 적반하장으로 나올 때, 주인공이 오지랖을 부린다며 까는 것이 단골 레퍼토리가 된다.
A는 지나가다가 B가 C를 괴롭히고 돈을 뺏거나 두들겨 패는 걸 봤다.
A는 여기에 끼어들어 C를 구해주려 한다.
B는 A에게 "우리 일에 관계도 없는 니가 웬 참견이야, 쓸데없는 오지랖이야."라고 쌍욕을 퍼붓는다.

창작물에서 "오지랖"이라는 단어가 나온다면 높은 확률로 이런 상황인 경우가 많다. 대개 주인공이 A고, B가 악당인 경우. 특히 주인공이 정의감이 불타는 사람이라면 이런 식의 디스를 당할 가능성이 더욱 크다.

특히 B와 C가 어떤 형태로든 가까운 관계에 있을 수록 오지랖 취급을 당하기 쉬운데, 이 쪽 분야에서 가장 정형화된 클리셰히로인인 C가 가족이거나 가문의 높으신 분인 B에게 학대당할 때 외부인 A가 B를 물리치고 C를 구해주는 경우. 이렇게 되면 대개 B로부터 "우리 집안하고 상관도 없는 놈팽이가 웬 오지랖이냐!" 하는 식으로 발악을 듣게 된다.

이 바닥에서 유명한 오지랖 속성의 캐릭터로는 카미조 토우마가 있다.

웹소설 독자들은 개인주의가 발달한 세대라보니 오지랖을 싫어하며, 심한 경우(사이다패스)에는 주인공이 자신한테 이득이 없는데도 자기와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을 구해준다면 호구, 고구마라고 비난하는 어처구니없는 댓글이 달릴 정도다.

2.7. 모든 것이 오지랖?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 서양은 표현의 자유도 만만치 않게 세다. 타인의 사생활, 인생설계 등에 대한 참견과 훈수 등은 적으나, 자신의 생각, 감정표현이나 윤리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은 거침이 없다. 예를 들면 동물 학대, 아동 학대 등의 문제에 있어서는 남의 일이라도 매우 적극적으로 관여한다. 매우 억압된 형태로 나타나는 일본식 개인주의와는 다르다.

오지랖의 나라라는 한국에서는 아이러니하게도 카페, 블로그나 SNS 등에서 논란이 될만한 소재나 사진 등을 올려놓고 누군가가 뭐라고 하면 "여기는 내 OO이니 오지랖 떨지 말아라"라며 의견교환에 있어 폐쇄적으로 구는 모습을 비교적 쉽게 볼 수 있다. 이는 네이버 블로그에서 시작된 폐쇄적인 사이버 문화 탓도 있겠지만.

중요한 것은, 애초에 오지라퍼는 나서기는 좋아하나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은 회피하는 유형이란 것이다.

평소에 피곤할 정도로 입바른 소리를 많이 할지라도, 자신이 불이익을 당할 것을 감수하고 책임을 확실히 지는 사람이면, 그 사람은 의인이지 오지라퍼가 아니다. 물론 입바른 소리 하려고 엄청난 불이익마저도 감수하려는 태도가 모두에게 항상 좋게 보이는 것은 아니다. 즉, 너무 큰 불이익까지 감수할 바에는 차라리 입바른 소리 조금 덜 하는 모습을 더 좋게 보는 경우도 있다는 뜻.

농담조로, 오지랖과 진정한 도움의 차이점이 이렇게 표현되기도 한다.
오지랖: 취직은 했니? 너도 이제 독립해야지.
진정한 도움: (100만 원을 주며)취직은 했니? 너도 이제 독립해야지.

오지랖: 연애도 하고 결혼도 좀 해라. 더 늦기 전에.
진정한 도움: (100만 원을 주며)연애도 하고 결혼도 좀 해라. 더 늦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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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관련 문서



[1] 사실 자신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괜히 자신이 더 잘났다고 생각하고 조언을 하는 경우도 제법 많다.[2] 이 경우는 본인도 똑같은 처지인 주제에 역시 그런 처지인 남한테 지적질하는 것도 비슷한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심지어 이런 사람들은 타인을 돌아버리게 만드는 식으로 상당히 기분 나쁘게 말하는 경우도 많다.[3] 간혹 자기 일은 제대로 하지만, 타인의 방식이나 성격 등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훈수를 두거나 자신의 방식을 따를 것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사람의 경우(어쨌거나 주어진 일처리는 똑바로 하기 때문에) 높으신 분들에게만큼은 평가가 괜찮다. 물론 동기나 후배들의 평가는 매우 나쁘다.[4] 당연히 부하 직원들이야 웃는 얼굴로 "네네, 상무님/사장님 말씀이 맞죠!" 하고 오지랖 떠는 족족 맞장구를 쳐 주지만, 속내는 전혀 다르지 않은가? 거기다 이런 류의 오지랖은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대부분 조언을 빙자한 자화자찬인 경우가 대부분인데다가, 그나마도 아랫사람들의 세대에는 맞지 않는 구닥다리 사고방식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아집에 절어 있는 꼰대 오지라퍼로 느껴지는 것이다.[5] 사실 윗사람 아랫사람 구분을 못할 정도로 눈치가 없다기보다는 자신보다 위든 아래든 상관없이 그냥 막나가려는 경우일 수도 있다.[6] 조언을 한답시고 20대에게 "너는 공부를 열심히 못해서/머리가 나빠서 연애/취업/결혼을 못한 거야/시험에서 탈락한 거야!"나 "어떻게 대학생이나 됐는데 알바도 안 하냐?"나 "어떻게 이 나이 먹고도 독립도 안 하냐?" 같은 말은 상대방의 입장과 상황을 전혀 배려하지 못한 거다. 그 나름대로 각자의 어쩔 수 없는 상황도 있다는 것도 고려하지 못하고 그저 단순히 "결과가 안 좋은 것은 딴 거 없고 다 너의 의지가 모자라서야!"라고 의지드립을 하는 것은 보통 꼰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참고로 요즘은 나이가 찼다고 해서 바로 독립하는 시대는 지났으며, 요즘은 서울은 물론 지방도 집값이 상당히 비싸져서 사비만으로 내 집 마련은 하늘의 별따기인지라 취업하고도 독립하지 않는 경우가 흔해졌다. 근데 일부 보수적인 어른들은 나이 먹고도 독립 안 하면 자기 자녀를 무작정 나쁘게 취급을 해 버리고,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다고 자녀가 조언해도 그런 사람들도 다 똑같은 취급을 해 버리니 문제가 심각한 것이다.[7] 상대방의 부정적인 면이나 약점을 잡는 거 자체가 안 그래도 그 아킬레스건 때문에 괴로운 상대방에게는 몹시 불쾌한 행위인데, 거기에 자신의 생각도 상대방의 처지도 배려하지 않고 막 던져대고 자신이 마치 정의인 양 비교를 한다면 모욕과 헛소리로밖에 느껴지지 않을 것이고, 그러한 사람들과는 친구도 되려 하지 않을 것이다.[8] Ditto and Lopez, 1992[9] TAA 결핍증세는 이 심리학 실험을 위해 만들어낸 가공의 질병이다. 학생들에게 TAA 결핍 증세가 얼마나 심각한 질병인지 영상을 보여주고, TAA 결핍 여부를 검사받고 싶으면 구강 내부를 채취하면 된다고 했다. 절반의 학생에게는 TAA 결핍 진단을 받으면 2주간 약을 먹어 치료할 수 있다고 하고, 나머지 절반에게는 TAA 결핍은 평생 약을 복용하는 수밖에 치료법이 없다고 설명하였다. 2주간 약을 먹으면 치료받을 수 있다는 설명을 들은 학생들은 52%가 TAA 결핍 검사에 동의하였고, 평생 약을 먹어야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은 학생들은 21%만 검사에 동의하였다.[10] 연애, 결혼, 이직, 인간관계, 사내 정치, 창업, ...[11]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너는 이걸 해라, 저걸 해라, 이건 하지마라, 내가 분명 하지 말랬지!? 넌 도대체 왜 내 말을 안듣냐, 이 못된 놈아! 등 상대방을 기계마냥 자기 맘대로 통제하려고 하며, 말을 듣지 않거나 참견 말라고 거부하는 경우 그 사람을 이기적인 사람이거나 인간말종, 미X놈으로 포장하는 등 불순한 의도가 다분한 형태가 분명 존재하고 있다. 그 원인이 정신병일 가능성도 있으므로 약간의 주의가 필요하다.[12] 이런 경우, 그 어르신이 사이비 종교 신자들의 타깃이 되었을 가능성도 의심해 보아야 한다. 알고 보니 그 어르신이 연결해 주고 싶어한 사람이 사이비 종교 신자인 경우도 있는데, 포교하려고 작정하고 꼬시는 사이비 종교 신자들은 주변 사람에게 싹싹하게 잘 하기 때문에 평소 순수하게 살아오신 분들이면 넘어가기 쉽다.[13] 일설에는 이는 뇌내 신경 구조 차이 때문이라고 한다. 여자는 남성보다 좌뇌와 우뇌가 더 활발히 연결되어 이성과 감성 스위칭이 잦고 빠르나, 남자는 여성보다 좌우 연결이 떨어지는 대신 앞뒤 연결이 활발하기 때문에 양쪽을 동시에 처리하기는 어렵고, 대신에 우선순위를 매겨 처리하기에 이런 차이를 보인다고.[14] 이로 인해 부모에게도 비교 대상이 되어 혼나곤 한다.[15] 이로 인해 후에 부모에게도 살찐 것을 가지고 눈치를 보게 되기도 한다[16] 특히 스트레스는 비만에 큰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이런 스트레스를 주는 발언을 하는 것은 당사자에게는 오히려 폭언으로 인식되기에 크게 화만 내며 듣지 않게 되어서 되려 역효과만 날 수 있다. 하지만 "꼴에 걱정해주는 건데 살찐 게 뭐 자랑이라고 덤비냐?"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경우 또한 많기에 이 또한 문제.[17]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결혼에 대한 가치관이 변해서 30대 중반 이후에 결혼하는 경우가 어지간히도 늘었지만, 기성세대들은 되도록 20대 후반 ~ 30대 초반이 결혼 적령기로써 자녀들이 되도록 이 때 결혼하기를 바라는 경우가 많으며, 또한 뜻있는 젊은이들도 대체적으로 어른들의 뜻에 따라 저 무렵에 일찌감치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경우는 지금도 여전하다. 더불어서 다른 직종들에 비해 결혼이 상대적으로 늦게 된다는 연예인들도 때가 되면 일찌감치 시집장가를 가는 경우도 여전히 흔하다.[18] 다만 불임과 난임의 경우에는 본인들도 그렇게나 애를 낳고는 싶은데 사정상 못 낳는 경우라서 어쩔 수가 없지만, 일부 젊은 부부들 중에서는 실제로는 불임이나 난임도 아니면서 평생 애 안 낳고 부부끼리만 백년해로할 요량으로 집안 어른들한테 불임이나 난임이라고 거짓말을 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그런 거에 쉽게 넘어가지 않고 계속해서 애 낳으라고 강요하는 독종들도 있다.[19] 얼핏 듣기에는 별 문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외동에 대한 편견을 깔고 있는 말이다. 외동도 성격이 다 제각각이다. 그런데 그 이전 세대들의 경우는 워낙에 베이비 붐 세대라 외동을 많이 보지 못했기 때문에 외동이면 엄청 특이하고 육아에도 한결 편할 것이라는 편견이 심하며, 심지어 실제로는 그다지 나이 차이가 많이 나지 않는 70년대 후반 출생자가 80년대 초 출생자를 자기네들과 엄청 다른 이질적인 존재로 보는 경우도 있었다.[20] 손바닥이 마주쳐야 박수를 칠 수 있듯이 인간관계는 상대방도 본인에게 호감을 가지고 친하게 지내려 하는 의도부터 있어야 맺어질 수 있는 것이지 한 쪽이 일방적으로 하고 싶다고 해서 맺어질 수 있는 관계가 결코 아니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인간관계를 한번 시작하면 끊는 것을 어려워 하는 것이다. 상대방이 자신과 이야기 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면 말을 끊고 자신도 똑같이 상대방에게 무신경해지는 것이 가장 적절한 방법이다.[21] 매우 대표적인 예가 설날이 있다.[22] 이럴 경우 "이게 뭐가 나랑 상관 없는 일이야?"라는 헛소리와 적반하장으로 나오는 사람도 있어서 문제가 된다.[23] 이는 트페미들이 임산부 배려석에 앉은 남성들을 찍어서는 이 남성이 게이라고 허위 사실을 유포해 문제가 된 것과 어떤 면에서는 유사하다. 더군다나 일반 좌석이면 누가 봐도 만삭 임산부가 있는 게 아닌 한 빈 자리가 나서 무조건 앉았다 해도 비난받을 이유가 없다.[24] 한국은 20세기 말까지 집단주의를 중시하는 군사독재를 실시한 나라로, 세계적으로도 이런 경우는 몇 안 된다. 역시 20세기 말까지 군사독재를 했던 인도네시아도 집단주의 성향을 띠고 있다.[25] 이는 개인주의를 오해하게 만드는 부분인데, 개인주의란 남의 이익을 자신의 이익만큼 중요시하는 이념이다. 다시 말해 자신의 이익=남의 이익인 것. 혼자 놀기를 중시한다거나 그런다는 의미가 절대로 아니다.[26] 이는 6.25 같은 민족의 비극으로 생긴 문화일 수도 있는데, 전시 상황이면 일단 무조건 뭉쳐야 하고, 혹시나 모르는 사람이 잃어버린 가족을 찾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상황에서 이런 식으로 대화 주제가 설정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 주장은 전쟁을 겪지 않은 전후세대에서도 불필요한 호구조사나 외모 지적 등의 오지랖이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27] 일본은 특유의 메이와쿠 문화가 한 몫 한다. 단, 여자의 경우는 모르겠으나 남자의 경우는 일본인이라도 친한 친구 사이라면 "살쪘다"라든지 외모에 관련된 부분을 한국인처럼 매우 직설적으로 표시한다. 다만 어른이 혼내야 할 상황이 아닌데 오지랖을 한다거나 성인이 된 남이나 친척 등에게 오지랖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점이 국내 거주 외국인들 사이에서 한국인과 일본인의 결정적 차이가 드러나는 점으로 자주 언급된다. 단, 일본에서도 오셋카이(お節介)라 하여 오지랖에 가까운 개념이 있으나, 빈도가 낮은 편이다.[28] 예를 들면 살을 빼라고 하거나 아니면 성형을 어떻게 하면 좋을 지에 대해서 얘기하는 등.[29] 주로 사업이나 장사하는 친구들, 그중에서도 특히 노점, 유흥업소 등 불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들, 즉 소위 말하는 사파 계열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물어본다.[30] 여기서 포인트는 돈을 얼마나 버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구구절절한 설명이 필요없이 한 단어로 아~ 할 정도가 되어야 한다.[31] 일반 끝말잇기에서는 모음까지 굳이 세세하게 따지지 않고 ㄹ은 그냥 ㄴ, ㅇ 모두 바꿀 수 있게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32] 대학에서 자신과 친한 사람이 아니고서야 동기나 친구 간에 충고를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동기는 기본적으로 서로와 자신을 동급으로 생각하기에 자신을 아래로 보고 생각한다고 판단되면 굉장히 배타적이고 적대시하는 태도를 취한다. 충고랍시고 어줍잖게 말 한 마디 던졌다 오히려 자신이 미움을 살 수도 있다. 그리고 친구도 말이 친구지 이러면 진정한 친구라고 볼 수도 없고 사이만 나빠진다.[33] 징병제도 징병제지만, 어릴 때부터 친척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이런 오지랖을 99% 이상은 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학창시절 권위적인 교육을 받은 것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경우는 헬리콥터맘으로 불리는 극성 엄마에게 가정 교육을 받은 탓이 크다.[34] 과거에는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 위아래 8살까지 친구가 되는 상팔하팔 문화가 있었음을 생각해보면 너무 심각하게 변질된 셈이다. 돌잔치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한국의 전통적인 나이셈법은 만 나이도 일부 병용하는 형태였다. 그러나 현대 한국에서 법정 나이이자 공식 나이인 만 나이를 서열문화 파괴 같은 얼토당토 않은 명목으로 배제하는 사람들이 워낙 많다보니 이런 상황이 개선되는 것이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많다.[35] 이런 부류가 사이비 종교 포섭 대상이고, 오지랖의 끝판왕이 사이비 종교이다.[36] 좀 더 진지하게 말하자면, 돈을 주지 않더라도 취직 자리나 취업교육을 추천해주거나, 소개팅을 주선하거나 결혼정보사이트 등을 소개해주고 알려주는 것도 '오지랖'이 아닌, '도움'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