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0-15 21:55:55

이 녀석도 사실은 불쌍한 녀석이었어


1. 개요2. 남용3. 전쟁물인 경우4. 반대 케이스
4.1. 한계
5. 변주6. 현실에서7. 창작물에서8. 관련 문서

1. 개요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와 함께 악역을 이긴 후에 흔히 나오는 클리셰. 본격 겁나게 두들겨놓고 용서하기 2탄. 오늘은 이만 물러가주지주인공 판이다.

악당은 확실히 나쁜 놈이긴 한데 알고 보니 환경이 그를 악하게 만들었다는 전개다. 전투 전에 행복했던 과거를 회상하는 등 복선을 뿌려놓기도 하며, 잘 쓰면 스토리를 극적으로 만들면서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었어와 같이 악역을 입체적으로 만들어 독자들의 호감도를 올릴 수 있다.

세상엔 언제나 처음부터 나쁜 악당만이 존재하지 않으며, 현실에서도 다수의 가해자들은 극단적인 환경에 노출되어 뒤틀린 경우가 많다. 따라서 창작물에서도 어떤 과정을 통해 악역이 그렇게 극단적인 행동을 하게 되었는지 동기를 설명하는 것은 작품의 질과 개연성, 현실성과 연결되는 중요한 요소이며, 죄를 개인의 자질 문제로만 치부하지 않고 환경을 개선하자는 주제의식과도 상통하는 것이다.

또한, 독자들은 악질 범죄자의 수사기록을 읽고 싶은 게 아니라 개연성을 갖춘 이야기를 읽고 싶어한다. 그래서 작가들은 창작물 속의 이야기를 보다 완전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고, 그에 따라 악역과 범죄자들에게 과거와 사연을 부여하게 된 것이다.

2. 남용

하지만 이것이 지나치면 동정에 호소한 오류가 된다. 법원에서 피고인의 태도는 양형 참작사유[1]지, 범죄 성립여부[2]를 참작하지는 않는다. 즉, 불쌍한 과거가 있다고 해서 범죄를 짓지 않았다고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게다가 이런 논리로 범죄자들을 옹호해버릴 경우 피해자들이 입은 피해와 피해자의 사정이 잘못하다가 묻혀버리는 부작용이 발생할수도 있다.[3] 게다가 불쌍한 사연 품은 악역들에게 피해를 입는 건 악역들의 복수의 대상 외에도 무관하고 무고한 사람들[4]도 엄연히 포함되는 케이스도 많다.[5]

그러나 '불쌍하다 = 선량하다'라는 잘못된 인식이 퍼져있다보니 범죄를 저질렀지만, 과거가 불쌍하므로 죄가 없다로 착각하기 쉽고, 이를 작가들도 그대로 차용하여 "이 캐릭터에게는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라고 자칫 언더도그마에 빠져서 잘못된 정당화를 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가해자에게도 사연과 정의가 있다고 옹호하면서, 주인공이 공정한 중립이랍시고 피해자에게 무조건적인 용서를 강요할 수도 있다. 여기 더해서 속죄를 요구하는 행위 자체를 부정적으로 묘사할 수도 있다. 극우 미디어물에서 자주 보이는데, 이는 만행을 부정하는 일본 극우 정치적 인사들의 태도가 일본의 우경화서브컬처에까지 영향을 미쳤기에 이런 상황이 나타난 것으로 추정된다는 의견들도 있다. 물론 극우미디어물이 아니지만 이러한 경향이 나타는 작품들도 있는데, 제일 대표적인 게 바로 나루토다.

현실에서도 불쌍한 사연을 지닌 가해자가 정작 해치는 건 자기와 관련 없는 불특정 대상/약자인 경우도 상당하다는 것 역시 고려해야 한다. 가해자에게 과거에 직접적으로 피해를 줬던 사람들이 보복당하는 경우도 없잖아 있지만,[6] 대부분의 가해자들이 타깃으로 지목하고 건드리는 건 보통 자기가 범죄 대상으로 건드릴 수 있는 약자들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7] 그리고 이렇게 가해자에게 피해를 입는 무관하고 무고한 이들의 경우, 가해자에게 무슨 사연이 있던 간에 그들이 가해자의 가해 행위를 받아주고 용서해줘야 할 필요나 의무도 없음을 명심해야한다.[8]

또한, 그 전까지만 해도 아무런 복선도 없다가 갑작스럽게 불쌍한 과거가 흐르는 경우도 있다. 전투에서 과거 회상이 나오면 진다라는 클리셰와 일맥상통하는 것인데, 급하게 정당화시키듯 무리하게 펼쳐놓는 눈물겨운 스토리는 독자들이 거부감을 느끼기 쉽다.

이 클리셰에 반대하여 악역의 과거를 밝히지 않는 창작물 속에서도 독자들에게 악역이 악행을 벌이게 된 이유를 추측할만한 단서를 아주 조금이라도 주는 작품이 많다. 하치야 아이의 경우,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지만 아버지에 의해 그렇게 되었다는 추측은 가능한 수준으로 단서를 준다.

3. 전쟁물인 경우

여기서 말하는 전쟁은 단순히 선-악의 구도가 아니라 국가-국가의 경우를 뜻한다. 즉, 분명히 빌런인데 도저히 빌런이라고는 볼 수 없는 경우. 이 경우는 실제로 주인공 측에 반대되는 입장에 악행을 저지르는 세력이나 인물인데도 도저히 미워할 수가 없을 지경의, 더 나아가 주인공이 과거에 저지른 악행이나 범죄에 의한 피해자인 인물을 가리키거나, 혹은 작품 자체가 나쁜 놈VS더 나쁜 놈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경우에서 볼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웹툰 카산드라헬레네가 있겠다. 그리스도 막장, 트로이도 막장.

4. 반대 케이스

자살과 마찬가지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서는 안되는 짓을 했기 때문에 마음을 굳세게 먹고 악당에게 동정의 여지를 주지 않는 창작물도 존재한다.
영웅 "이제 그의 악행도 끝났군."
부하 "저는 그가 어떤 삶을 살았고, 어째서 악에 빠졌는지 궁금하군요."
영웅 "그와 부하들이 언데드의 길을 걸은 이상, 그는 우리의 동정을 바랄 권리를 버렸네. 그가 어떤 자였는지가 중요한가?"
부하 "아뇨. 아닙니다."
마술의 자질을 보인 주인공이 오크로부터 자신의 가족과 마을을 지키기위해 네크로맨서가 되었다가, 결국 그 선택으로 인해 모두에게 버림받고 리치가 된 뒤에 퇴치당하는 내용으로 마지막 시나리오에서 주인공이 최후를 맞을 때 나오는 대사가 바로 위의 대사다. 시나리오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 클리셰에 해당되지만, 영웅의 저 한마디가 그 반대 개념도 제시한 것이다. 게다가 주인공은 가끔씩 언데드를 이끌고 오크사냥을 나서면서 드워프, 인간, 엘프 할것없이 보이는 정찰대를 모두 죽였기에 죄가 없는것도 아니다.
"그런 놈 따위에게 구구절절한 사연 따위는 필요 없다. 사연이 있는 놈들이 다 살인자가 되었다면 이 세상엔 살인자가 넘쳐 날 거야. 그런 놈들의 구구절절한 사연이란 결국 다 핑계일 뿐이지. 궁금할 것 없어. 연쇄살인범에게까지 살인의 이유를 붙여주면 안 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클리셰는 강풀의 만화들에서 많이 남용되는 클리셰다. 등장하는 배달부 소년이 아버지에게 "류승혁은 무슨 사연이 있었길래 연쇄살인을 했을까?"하고 묻자 그 아버지는 이렇게 답했다. 그리고 이 작품에서 류승혁의 과거는 끝까지 나오지 않았다.
"어디서 사연을 팔아? 범죄에 동정은 없다. 어려운 환경에 있는 사람은 전부 범죄자가 되어야 하나. 넌, 정신 상태가 썩었어!"
  • 영화 폭력의 법칙: 나쁜 피 두 번째 이야기에서 막내아들 성진을 셋이서 악독하게 괴롭히고 죽인 학교폭력범 3명이 있다(2명은 남학생, 1명은 여학생). 형인 성현이 동생의 복수를 한다고 둘을 죽이나 그 과정에서 자기도 죽게 된다. 마지막 1명이 감옥에서 출소하자 형제의 어머니가 식당으로 유인하여 이놈마저 죽여버린다.
    이후 엄마는 경찰에 자수를 했는데 형사라는 작자가 엄마를 취조하는 과정에서 '죽은 가해자 3명도 누군가의 소중한 자식이었다느니, 그들도 이혼이나 결손가정에서 힘들게 자랐고 가정이나 가족에 대한 분노가 피해자에게 잘못 향했던 것이라느니, 1명은 감옥에 있다 나왔으니 새롭게 시작할 기회는 주었어야 하지 않냐는 등등...'진짜 피해자인 형제의 엄마 앞에서 되도않는 망언을 지껄인다. 이에 대해서 엄마는 바로 반론을 하는데
"어느 누구도 자신이 불행하다고 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힐 권리 없습니다. 왜 가해자들의 불행이 내 자식의 죽음에 대한 면죄부가 되어야 하나요? 형사님처럼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은 가족이 희생돼도 대범하게 넘어갈 수 있는 대인배일지 몰라도, 난 단지 내 자식의 고통을 그냥 넘길 수 없는 이 나라의 지극히 평범한 엄마일 뿐입니다."
  • 소년이여에서 최종보스 최민철이 어릴때부터 아버지에게 맞고 자랐고 자기도 사회의 피해자라고 발악하자
"안타까운 사연이구나. 그러나 그게 면죄부가 될수없다! 아까부터 무슨 개소리를 하는거야? 넌 그냥 내 동생에 대한 죄값을 치루고 있는거야"

CSI 마이애미와 뉴욕의 크로스오버 에피소드에서도 체포당한 살인범이 불우한 어린 시절을 들먹이자 맥 테일러 반장은 "불행하게 자란 사람이 다 너처럼 되는 건 아니다."라고 응수한다.
"친한 사람이 좀 나쁜 놈이었다고 살인자가 된다면 이미 인간들은 씨가 말랐을 텐데. 자기가 할 말도 못하고 빌빌대서 악화된 걸 죄 없는 사람들한테 화풀이하면 안 되지."
이었다. 게다가 나가는 자기 힘든 것만 이야기하고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선 언급도 안 하거나 정당화한다고 백모래의 행적을 깠다.

이러한 이야기도 있다.
작품 내에 악당A가 있다. 악당 A는 흉악하고, 인간적인 면도 묘사되지 않은 악당이다. 하지만 수사관인 주인공은 그에 대해 조사하다가, 그가 불쌍한 가정에서 자랐다는 걸 알게 되고 동정한다. 그래서 인간적으로 다가간다. 픽션이라면 이걸 잘 포장하겠지만, 실제로는 오히려 배신당하거나 무장해제 뒤에 피해를 받을 수 있다. 심정에 변화가 생긴건 수사관(주인공)이다. 그가 악당 A에게 가진 혐오가 동정심으로 바뀐 거지, 악당 A는 수사관에 대해 증오나 혐오를 그대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악당 A가 불쌍하다고 동정한다고 해서, 악당 A도 자기를 알아준다며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것은 아닐 것이다.

4.1. 한계

아이고, 이를 어째~ 내 마누라랑 자식이 죽어버렸네~
내가 못됐다고 말해도 상관없어! 우리 모두가 누군가를 잃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까지 죽게 만드는 건 용납 못해!
로켓,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 1편 中[10]

이 클리셰는 뜬금없이 악역을 미화하는 데에만 쓰이지는 않는다.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생각해볼 점을 제시하거나 씁쓸함을 유발하기 위해 악역에게 불행한 과거를 설정하는 경우도 있다.

정말로 세계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 악역이 될 수밖에 없었던 사례도 등장하며, 현실에서도 흉악범이 대부분 아동학대나 심각한 수준의 인권 모독을 당해왔던 사람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이를 방지하는 법은 마련하지 않은 채 개인의 의지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지나친 클리셰 파괴 시도는 오히려 비인간적일 것이다. 악행의 동기를 찾는 것은 악행의 근본 원인이 무엇인가 파악하는 것이며, 이는 행동을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근본 원인을 알아서 해결하기 위함에 있다.

이러한 한계를 수용하기 위해서 또 다른 변주도 생겨났다. 불행한 과거를 제시는 하되, 그것을 캐릭터의 평가에 직접적으로 개입시키지는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DC 코믹스조커는 불행한 과거를 가졌다는 암시가 틈만 나면 나오지만 항상 용서할 수 없는 악역으로 묘사되며 영화 지구를 지켜라의 병구는 고문수준의 인생을 살았지만 제대로 미친 살인마로 나온다. 개연성을 만족하면서도 악행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간혹가다 정말 눈물날 정도로 불행한데다가 불쌍한 이유가 시청자들의 공감대를 자극해서 오히려 작중에서는 용서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이 용서해주는 희귀 케이스도 존재한다.

추리소설중 한 연쇄아동납치범이 도주중 결국 체포되기 일보 직전 자신의 사연[11]을 털어놓고 납치한 아이들에게 자신의 사과를 전해달라 한 뒤 자살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체포에 협력하기 위해 파견 나왔던 카운티 보안관은 범죄자가 이리저리 사연을 불어봤자 그게 범죄를 정당화해주진 않는다며 냉소하는 반면[12] 주인공 경사는 범죄자라 할지라도 그들의 사연에 귀기울지 않고 아무런 관심도 없이 매도할 뿐이라면 결국 그 범죄자는 어디선가 다시 나타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도 어느 순간에서 범죄자가 되기 일보 직전인 사람들이 많이 있으며 그들에게 사람들의 관심과 도움만 있다면 거기서 물러설 수 있지만 그러지 못하고,[13] 결국 범죄자가 되어버린 이들은 비극적인 과거를 호소할 자격도 박탈된 채로 연민과 동정조차 받지 못한 채 사회에서 격리되어 버리는 현실을 은유한 셈. 소설 자체가 사회가 뒤쳐진 이들은 돌보아주지 않으면서, 뒤쳐지고 고립된 처지를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일을 선택한 이들에겐 엄격한 잣대를 들이밀며 무자비하게 채찍질 한다고 전체적으로 엄벌주의에 대한 부정과 회의감이 많이 스며들어 있다. 소설 제목을 기억하시는 분은 수정바람.

보통 소년만화 전개에선 아군으로 돌아서는 악역, 혹은 개심하는 악역에게 많이 발생하는 클리셰라고 한다.[14]

5. 변주

이 클리셰를 살짝 비튼 형태로, 단순히 악역을 용서하기 위한 게 아니라 오히려 악역을 간접적으로 모독하고 정신적으로 무너뜨리기 위해 이 클리셰를 적용하는 경우도 있다.

우상의 눈물에서 학교폭력의 주체이자 두려운 독재자라 할 수 있는 기표는 선생과 반장의 계략으로 인해 어느 순간 사회의 불행한 피해자로 포장되며, 결국 사실상 권력을 잃고 쪼그라든 기표는 완전히 달아나버림으로써 오히려 비참하게 몰락한다.

격투천왕 98에서도 세계 그 자체에 맞서는 최강자의 패기를 보여준 최흉의 악당 루칼시취진오와의 격렬한 사투 끝에 모든 힘을 잃는다. 루칼은 "지금 날 죽이지 않으면 다시 무한한 힘을 손에 넣어서 너희들을 죽일 것이다!"라고 소리치면서 자신을 죽일 것을 종용하지만, 갑자기 시취진오가 눈물을 흘리며 주변 사람들을 설득한다.
"루칼이야 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고 가련한 자 입니다. 모두 그를 용서해 주세요!"
"난...강자로서 죽고싶단 말이다... 제발...날...죽여줘!... 제발...부탁이니...제발...제발...부탁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아무도 루칼을 죽이려 들지 않았고 죽일 가치도 없는 공기 취급하기 시작했다. 루칼은 오히려 처절하게 울부짖으면서 무너졌으며 결국 보다 못한 팔신암에게 최후를 맞았다.

강철의 연금술사에서 엔비는 에드의 동정을 듣고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져서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6. 현실에서

이 클리셰(?)가 대두된 것은 만화 이전에 심리학과 정신의학이 발달됨에 따라, 흔히 사이코패스를 비롯한 여러 흉악범죄자들이 거의 대부분 유년 시절 학대를 받았다는 연구결과가 밝혀지면서다.

엄밀히 말하자면, 범죄학이나 사이코패스와 아동발달을 연구하는 학자들 중 그 누구도 '불행이 죄를 용서한다'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다만 '범죄를 줄이고 싶거나, 흉악한 살인마가 나오는 걸 막고 싶으면, 아동학대를 막아야 한다'는 지극히 당연한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이다.

'불행하다고 모두가 범죄자가 되는 건 아니다'는 말은 "의지로 참아야지."로 변질될 위험이 크다. 아마 이러한 말을 하는 사람들의 의도는 "다른 건전한 방법을 찾아봤어야지."였겠지만, 그 '건전한 방법'은 정신적으로 무기력한 피해자 입장에서는 비현실적일 때가 많다. 자식이 부모를 신고하는 것은 아직까지도 패륜아라고 안 좋게 보는 시선이 많고, 아동학대를 당했다는 사실이 '정신이 이상할 것이다 = 미래의 범죄자'로 취급되어 인간관계가 끊어지기도 쉽다. 또한, 아동학대를 당한 사람은 부모에게 남아있는 애정 때문에도 신고를 꺼린다.

경찰을 부르는 용기를 내더라도 경찰이 "가족끼리 잘 해결해보시라"하고 돌아가기도 한다.[15][16] 경제권도 없고 정신적으로 무기력한 가정폭력의 피해자가 부모를 고소할만한 재력과 시간적 여유, 법적 지식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만약 부모를 고소해서 처벌까지 성공했다고 해도, 그렇다면 그동안 누구에게 의탁할 것이며 경제력은 어떻고 그 부모가 집으로 돌아온다면 어쩔 것인가? 사실, 많은 가정폭력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의 양상이 이렇게 '그 외에는 대안이 없기 때문에' 무기력하게 붙들려있는다.

이런 비정상적인 환경 속에서 큰 사람이 정신이 멀쩡하다는 것은 운이 좋아서 기질이 굳건한 경우다. 체벌 문서에도 나오듯, 폭력을 당하며 살아온 사람은 나중에 다른 사람이 눈에 거슬리는 행동을 하면 '처벌'한다는 것을 당연하게 체화하게 된다. 제대로 된 인성교육도 받지 못했으니 "그렇다면 무엇을 해야할지"에 대한 지식 자체가 없다. 여태까지 봐온 세상이 비정상이었기 때문에, 자신 또한 비정상적인 행동밖에 아는 것이 없다.

여기까지 오면 사회의 책임을 묻는 단계까지 오게 된다. 심각한 인권침해로 범죄자가 탄생하기까지 사회는 무엇을 했는가? 정상참작은 '불쌍하면 봐준다'로 오독하기 쉽지만,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사회가 방관했다는 책임을 감안하는 것이다. 작품에서는 이것이 '더 방관하지 말고 세상을 바꿔 처음부터 죄인이 탄생하는 것을 막자'는 주제의식으로 나타난다. 현실에서도 이것이 적당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를 보완한다.

적어도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인간을 죽였고, 사이코패스 라고 추측되는 스탈린에 관련된 연구를 보자면, 스탈린이 태어난 나라와 환경은 아주 악독했다고 한다. 사실 스탈린에게 '불행을 핑계로 대지 마'라고 말해봤자 씨알도 안먹혔을 거다.불우한 환경과 아동학대가 얼마나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날 수 있는지 스탈린 같은 경우를 통해서 보여주듯이 아동학대를 막기 위해 정부과 사회가 노력하는 것이 가장 범죄와 폭력을 줄이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게 학계를 비롯한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이러한 현실의 딜레마는 여러 작품세계에 가해자가 된 피해자이 녀석도 사실은 불쌍한 녀석이었어를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할 것인가에 대한 주제로 반영되었다.

7. 창작물에서

이 문서는 토론을 통해 예시에 아래 기준을 적용하기(으)로 합의되었습니다. 합의된 부분을 토론 없이 수정할 시 제재될 수 있습니다.


해당 문단에는 다음의 기준을 모두 만족한 인물/작품만 기재될 수 있습니다.
  •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이 완결난 시리즈거나, 옴니버스식 구성이여서 해당 인물에 대한 평가가 반전될 일이 없는 경우
  •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이 상업 작품인 경우 (동인 작품 X)
  • 인물이 이 녀석도 사실은 좋은 녀석이였어 등의 다른 클리셰가 아니라, 환경에 의해 악행을 저지르게 된 동정심을 유발하는 악당에 해당하는 경우

예시를 등재하면서 설명도 함께 추가해야합니다. 설명의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 해당 인물이 처했던, 악인이 될 수 밖에 없던 환경에 대한 서술이 포함되어야합니다.
  • 해당 설명이 스포일러를 포함할 수 밖에 없더라도 반드시 서술되어야합니다.
  • 해당하는 인물이 많은 경우는 최소 1명의 설명이 존재해야하며, 설명이 없는 인물은 이름을 기재할 수 없습니다.('이 외에도 다수 존재한다.' 같은 식으로 서술)

  • SD 건담 포스 - 바람의 기사 톨기스 : 그는 기사로서 뛰어난 실력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나, 건담이 아니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라크로아 친위대 뿐만이 아니라 라크로아 기사단에조차 들어갈 수 없었던 과거 탓에 라크로아 왕실에 대한 증오와 건담에 대해서 강한 열등감을 가지고 있다. 그 때문에 다크 액시즈에 협조하여 조국을 헬게이트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 만약 그가 하다못해 기사단에라도 들어갈 수 있었더라면 톨기스는 주인공의 조력자로서 활약할 가능성이 희미하게나마 있었다.[진실(스포일러)]

8. 관련 문서


[1] 주관적인 갱생 여지[2] 객관적인 범죄 성립. 구성요건해당성 및 위법성조각사유와 책임조각사유의 부존재라고도 부른다.[3] 정당방위 같은 식으로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가해자가 되는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했다 쳐도 살인이나 심각한 수준의 폭행 등은 마냥 참작하기가 쉽지 않은데, 가해자가 불쌍한 사연을 지녔다고 해도 그 사연으로 인해 생긴 울분이나 분노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묻지마 범죄 식으로 전혀 무관한 사람에게 풀어서 자신과는 무관했던 피해자를 만든다면...[4] 보통 엑스트라들이 주로 이런 역할을 맡지만 주인공까지도 이런 피해를 입는 케이스에 속하는 경우도 있다.[5] 한데 이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서 대다수의 작품은 별로 조명하지도 않고, 악역이 반성 좀 했거나 사연팔이 했다는 상황 하나로 퉁치는 경우가 많다.[6] 가령 가정폭력을 행하던 가장이 그 폭력의 피해자였던 아내나 자식에게 역공을 당하는 경우.[7] 특히 아동학대를 당한 자녀가 부모가 되서 자기 자식에게 똑같이 아동학대를 벌이는게 세대를 거듭한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 성범죄자 중에 불우한 가족사정을 가진 이들도 자기에게 직접적으로 피해를 준 사람들 대신 자기보다 더 약하거나 무관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가 다수이다.[8] 아동학대를 당한 자녀가 나중에 직접적인 가해자였던 부모를 공격하는 것과, 아무 상관 없는 자기 자식을 '부모에게서 그런 것밖에 안 배웠다' 는 사연으로 학대하는 것은 엄연히 별개의 문제이다.[스포일러] 나중에 골무맨이 악당과 그 아버지를 바늘총으로 살해했지만, 살인을 했다는 이유로 구해준 여자한테 맞아 그 여자를 갑툭튀한 김치맨과 같이 때리다가 김치맨이 골무맨이 쓴 골무를 벗겨 노출된 뇌를 박살낸 후 거기에 생라면을 끼워 골무맨으로서의 기억은 사라졌고 김치맨의 부하 라면맨이 되었다.[10] 이 말은 1편에서 드랙스에게 했던 일갈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드랙스 역시 노웨어에서 가오갤 맴버가 몰래 지켜볼동안 타노스를 보고 복수심에 막 달려갈려고 하는 바람에 들켜버리고 만다. 그리고 스타로드의 트롤링 이후 이 대사는 자신소중한 사람을 잃었다고 해서 복수심에 불타 타인의 소중한 사람까지 희생시키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명대사로 재조명 받고 있다.[11] 막장 부모 밑에서 태어나 하루하루 학대 당하며 울부짖는 생활을 보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게 구조되어 주 법원에서 가정위탁을 맡기게 했으나 위탁받은 가정에서도 기르는 가축마냥 밥만 줄뿐 애정을 거의 주지 않았기에 불우한 생활을 보낸건 마찬가지.[12] 더 원본의 뉘앙스에 맞게 해석하자면 "방금 그 새끼가 자기의 무지하게 슬픈 일기를 판사 앞에서 낭독하려는 것보다 더 끔찍한 계획이 있었으면 아마 미국은 뒤집어졌을걸 ㅋ"[13] 소설에서 나온 것은 상당히 드라마틱한 경우고 실제로는 뽕 빨고 약기운에 취해서 난동을 부리거나 산탄총 들고 근처 가게에 강도질 하러 들어가는등 그런 잡범죄가 훨씬 많다. 또한 범죄의 피해자는 결국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는데 날벼락을 맞은 억울한 사람인 것도 변하지 않는다.[14] 의외로 주인공 편이 안 되거나 개심여지가 없는 악역한텐 저런 사연 보정이 잘 안 붙기도 하기 때문.[15] 경찰도 이 문제를 인지하고 있으나, 경찰이 출동하면 도리어 피해자가 돌아가라고 요구해서, 더 개입할 명분이 사라져버려서 어쩔 수 없이 돌아갈 때가 많다고 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는 가해자가 대개 경제권을 잡은 인물이기 때문에 가해자가 구속되면 자신의 생계가 엉망이 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다.[16] 이 서술이 품고 있는 '경찰은 모두 나태하고 부패했으므로 그냥 돌아가버릴 것이다'라는 막연한 적의도 신고를 막는 요인이 될 수 있다.[진실(스포일러)]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원한 때문에 라크로아 편의 진정한 흑막에게 실컷 이용만 당하다가 에피온을 부활시키기 위한 제물이 되는 식으로 버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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