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7 23:55:00

전멸

1. 개요2. 군의 전투력 관련 의미
2.1. 기준2.2. 영향
3. 여담

1. 개요

  • 영어: annihilation
  • 일본어: 全滅(ぜんめつ)

. 모두 죽거나 망해서 사라짐. 비슷한 말로 궤멸(潰滅), 괴멸(壞滅), 절멸(絶滅) 등이 있다.

군사적으로 많이 쓰일 것 같지만 군사용어로는 정의되지 않는 말이다. 군사용어로는 격멸(擊滅, destroy)을 사용한다. 창작물에서 흔히 묘사되는 전투원 전원이 전사하거나 지휘 체계가 완전히 붕괴된 상태는 combat-ineffective, unit destroyed, unit destruction[1] 등으로 칭한다.

2. 군의 전투력 관련 의미

일반인은 "전멸"이라고 하면 부대원이 한 명도 빠짐없이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은 상태로 생각하기 쉽지만, 군의 전투력을 표현하는 단어로써의 전멸은 그런 의미보다는 부대가 전투력 또는 전투효율성[2]을 어느 수준 이상 잃어 더이상 부여된 임무를 수행할 수 없는 상태를 나타낸다.

2.1. 기준

부대 전투력이 어느 정도 손실[3]되어야 전멸, 즉 임무수행 불가로 간주하는지는 국가별로 다르다.

미군은 2010년 이전까지 전투력[4] 30% 이상 손실 시 임무수행이 어렵다고 보았다. 미군 지휘관이 휘하 편제의 전투 역량을 빠르게 판단하는 용도로 썼던 검볼 차트(Gumball Chart)에는 전투력이 69~50%만큼 남은 부대는 전투 역량 상실로 간주하고 적색으로 표시하며[5], 50% 미만으로 남은 부대는 흑색으로 표시한다. 전투력이 70% 이하인 경우 다음 임무 이전에 재편성해야 한다고 명시한다.[6] 단 2010년 교리 개정 시부터 검볼 차트, 전투 역량 따위가 모두 교리에서 제외되어 교리적으로는 임무수행이 어려운 전투력 수준이 얼마라고 정하지는 않는다.

미군의 영향을 받은 많은 서구권 국가에서는 30% 이상의 사상자 발생 시 일반적으로 전투병력의 전투 의지 상실로 이어져서 전투력 상실/전멸로 간주하였다. 한국군은 교리에 수치를 정하지는 않지만, 전술임무과업 파괴[7]의 요망수준을 30% 이상 피해 유발로 제시하는 점으로 볼 때, 마찬가지로 30%를 기준으로 본다고 추측할 수 있다.

소련에서는 70%까지 손실되기 전에는 편제에 전투 의지가 남아있다면 제파식 전술을 통해 작전 수행을 도울 수 있어서 전멸이 아니라고 간주했다. 이런 극단적인 수치는 핵심지역에 제파식 공세를 통해 전략/전술적으로 인력을 갈아넣다시피 했던 세계대전의 영향도 있다. 하지만 현장지휘관 관점에선 극단적인 공세를 통해 휘하병력의 70%가 소실되는 상황보다 가능하면 상부에 허락을 구하고 중간에 후퇴하여 재편성과 휴식을 원하는 심리는 동일했다. 드물게 30% 이상의 전투 인원 손실이 발생하더라도 작전을 수행할 전투 의지와 장비가 남아있고 목표 달성이 가능하다고 예측되면 전멸 상태가 아닐 수도 있으나,[8] 정상적인 상황은 아니므로 가능한 빠르게 손실을 보충해줘야 한다.[9]

다만 전투력 손실은 물리적 손실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병력의 사기와 전투 의지 또한 전투력의 큰 부분을 차지한다. 전투 의지가 높은 집단은 더 많은 물리적 손실을 입은 상태에서도 전투 지속과 임무수행이 가능하지만, 전투 의지가 처음부터 낮은 집단은 약간의 손실만을 입거나 손실을 입을 상황에 직면하기 전부터 이미 전멸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이는 전쟁의 필요성에 대한 납득[10], 보급에 대한 만족도, 지휘관에 대해 갖는 신뢰와 존경심, 훈련을 통한 낯선 상황에 대한 대비와 적응력 등 단순한 수치로 측정할 수 없는 인적인 부분과 심리상태 또한 전투력(전투 역량)에 큰 영향을 끼치고[11] 전멸 여부를 따질 때는 이러한 점도 고려되어야 한다.

2.2. 영향

전투력 손실을 입은 부대가 전투력 복원을 거쳐도 기존만큼의 전투력을 지닌다는 보장은 없다. 오히려 많은 경우 전멸 이후 부대 전투력은 기존보다 낮다. 전멸로 숙련된 장교와 부사관을 잃은 경우 이들을 대체하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고 보충 병력 또한 대부분 전투 경험이 적어서 기본적인 전투 역량이 낮기 때문이다. 또한 보충 병력을 이끄는 나머지 장교와 부사관들도 같은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일선에서 더 적극적인 지휘를 해야 하기에 더 큰 손실을 입을 확률이 높다.[12] 심지어 기존의 고참병들이나 잔존 병력들이 경험이 적은 신병과 함께 실전 투입되는 것을 꺼리거나 함께 작전하는 것을 거부하는 사태도 생길 수 있다.[13] 신병들이 장시간 고참병들과 함께 훈련하며 상호신뢰가 쌓이고 숙련도가 일정 수준 이상에 올라가면 자연스럽게 풀리는 문제이지만 전시의 급박한 상황에서 부대가 장시간 훈련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따라서 한 번 큰 손실을 입었거나 전멸한 부대는 이후 전투에서 전멸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하지만 전쟁 중에 새로운 부대가 기존의 역량을 회복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므로, 지휘관은 재편성 직후 취약한 부대를 어떻게 보전할지, 전투력을 어떻게 평가하고 어떤 임무를 부여할지에 대해 더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14]

물론 전멸 수준인 상태에서도 전투를 지속한 부대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대부분 부득이하게[15] 전투를 강요당하는 상황이라 그런 것이고, 상식적인 지휘관이라면 예비대를 투입한 후 해당 제대는 후방에서 재편성 후 예비대로 전환하는 게 보통이다.

독소전쟁 등의 극단적인 사례들을 보다 보면 겨우 30% 정도의 손실로 전멸이라는 것은 성급한 판단이 아닌가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현대 사단이나 연대의 편제에는 상당한 수의 지원 부대[16]가 편성된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선진국의 군대일수록 이 지원 부대의 규모는 커지는 경향이 있으며, 그만큼 실제 전투에 투입되는 전투 병력의 비율이 줄어든다. 사단본부가 기습당하는 극단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경우 전사자는 지원 부대보다는 전투부대에서 많이 나온다. 따라서 사단 병력 30% 손실은 사실상 전투병력의 절반 가량을 잃은 것과 다름없다.

영화나 대중매체 등에서는 전멸 상태까지 몰려도 계속 그 자리에서 계속 사상당하며 싸우다 갑자기 증원군이 나타나 싹 쓸어버리거나, 독소전형벌부대처럼 막 쥐어주고, 마구 돌격시키고, 마구 사상당하는 진흙탕 싸움을 주제로 하기에 사람들이 왜곡된 생각을 하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것은 한정된 상영시간이나 분량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대중매체의 특성상 캐릭터성, 카타르시스 등을 위해 극적인 요소가 강한 전쟁의 승패와 직결된 절대 져서는 안되는 전투라는 예외만을 다루기 때문에 나타나는 오해이다. 현실에서 이런 막장 전투는 비효율성으로 인한 대량의 인명피해와 함께 장기적인 전쟁수행 능력을 크게 깎아먹는 행위이므로, 가능하면 즉각 후퇴나 교대시킨다. 즉 괜히 독전을 강요해 부대를 통째로 없애버리는 것보다 좀 많이 얻어맞았으면 뒤로 물러나 후방에서 재정비시키고 예비대로 전환하거나 재투입시키는 게 훨씬 적은 손실로 목적을 달성할 수 있으니까 후퇴시키는 것이다. 이런 오해를 만든 주범(?)인 독소전쟁에서도 소련은 통념과 달리 대부분의 전투에서 큰 피해를 보고 패배가 확실해지면 다음 전투를 위해 포위당하지 않은 병력들은 즉각 후퇴시켰다.

다만 영화에서 이런 전투를 다루면 관객들은 "에이, 후퇴했다가 다시 재도전하면 되잖아?"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고 이는 작중 긴장감과 핍진성을 망가뜨리고 작품의 흥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영화에서는 전쟁의 승패와 관련된 중요한 전투를 다루고, 현실에서도 이런 전투에서는 인력을 갈아넣으면서 싸운다. 대다수의 대중매체가 다루는 전쟁의 전환점인 스탈린그라드 전투모스크바 공방전를 다루는데 이 두 전투는 각각 대규모 부대의 보급 문제를 좌지우지하거나[17] 수뇌부가 노출되어 지휘체계가 박살날 수 있는 중대한 요충지를 방어해야 하는 경우라 만일 적에게 이곳을 빼앗기면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즉 뒤로 물러날 곳이 없는 사실상 배수진이나 다름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실제 역사에서도 다른 전투는 몰라도 이 두 전투에서는 더 이상 물러날 수 없는 소련군은 궤멸당하는 한이 있어도 인력을 갈아넣으면서 피 터지게 싸워야만 했고 소련군에서만 100만 명이 넘는 사상자가 발생했다. 특히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는 악명높은 명령 제227호가 나왔고 인류 역사상 최대규모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3. 여담

한국전 중 백석산 전투 1차전은 안개 및 동쪽에서 병행중인 피의 능선, 단장의 능선 전투로 화력 지원을 충분히 받지 못해 전투 가능 인원이 70% 이하로 떨어진 상태에서 치른 전투다.

실제 상황이 아닌 게임에서는 일부러 빠른 전멸을 하기도 하고, 전멸노가다 등을 하기도 한다.

토탈 어나이얼레이션이라는 게임은 제목부터가 '완전 전멸'이다.(...)

학교에서 과반수의 애들이 졸 때 전멸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카더라.


[1] 대응하는 한국군 군사용어가 없으며 보통 전투가 불가능한 상태 정도로 언급된다.[2] combat effectiveness. 부대가 임무를 수행하는 능력으로 인원, 탄약, 무기체계 따위가 평가 대상이다. 의미를 따지면 전투 역량이 더 알맞은 번역이긴 하지만 한국군은 이를 전투효율성으로 번역한다. 미군은 군사적결심수립절차(Military Decision-Making Process, MDMP) 중 방책분석 시 수립한 방책이 부대의 전투 역량을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뜨리지 않는지 확인하도록 하였으나, 2010년 개정 FM 5-0부터 전투 역량을 군사용어로 정의하지 않고 MDMP에도 사용하지 않는다.[3] 전투 병력은 후방으로 후송되어야 할 수준의 부상을 입거나 사망한 상태, 장비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할 정도로 손상된 상태를 나타낸다. 미군의 경우 병력이 손실되었는지의 기준은 퍼플 하트의 수여 기준과 거의 일치한다.[4] 원문은 strength[5] 즉, 31% 이상 손실을 전투 역량 상실로 간주한다.[6] FM 101-5-1, Operational Terms And Graphics, p. C-1.[7] 적 인원, 장비 등이 재편성하지 않고는 전투력 운용, 기능 발휘가 제한되도록 하는 물리적 피해를 입히는 행동[8] 가장 극단적인 상황은 공성전에서 방어자가 탈출이 불가능함에도 전투를 계속 할 의지가 있는 상황이다. 이 경우 방어자는 공격자의 시간을 최대한 많이 끄는 것이 목표가 되므로, 항복해도 좋다는 상층부의 허가가 없거나 항복해도 목숨을 보전한다는 보장이 없다면 마지막 한명이 궤멸될 때까지 싸우게 된다. 현대전에서 대표적인 예로는 마리우폴 전투가 있다.[9] The Relationship Between Battle Damage And Combat Performance, Leonard Wainstein, Institute for Defensive Analysis, 1986, p. 6-7.[10] 방어자는 고향과 가족을 지키는 것, 공격자는 성공적인 공격을 통한 보상을 받는 것. 이런 양상은 고대 시대의 전쟁에서부터 반복되어왔다. 프랑스 혁명 이후에는 자신의 사상을 지키는 것까지 포함된다.[11] Wainstein, ibid., p. 14, 19, 26.[12] 실제로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 다수의 러시아군 장성들이 최전선에서 전투병들을 독려하다가 우크라이나군이 감청과 연계한 정밀 타격을 가하여 사망했다.[13] 고금을 막론하고 실전에서 경험이 적은 신병의 실수로 고참병들 목숨마저 위험해지는 일은 흔하다.[14] Wainstein, ibid., p. 3.[15] 신속한 후퇴와 교대가 불가능한 중대전술기지 같은 고립지, 사방에서 전투가 벌어져 예비대의 여력이 없는 경우, 적진에 침투한 상황이어서 지원을 기대할 수 없는 특수부대 등.[16] 전투부대를 지원하는 전투지원, 전투근무지원, 군수부대 등. 포병, 화생방, 의무, 군수, 군사경찰 등이 지원 부대다.[17] 스탈린그라드를 빼앗기면 돈 강이 차단되고 바쿠 유전의 상실로 소련의 석유공급이 막혀서 전시경제가 마비될 위험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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