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0 16:22:54

이나후네 케이지

이나후네 케이지
稲船 敬二 | Keiji Inafune
파일:이나후네 케이지.jpg
<colbgcolor=#000000><colcolor=#ffffff> 본명 이나후네 케이지
직업 게임 개발자, 캐릭터 디자이너, 사업가
출생 1965년 5월 8일 ([age(1965-05-08)]세)
일본 오사카부 키시와다시
국적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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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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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구
]][[틀:국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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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령
]]
학력 오사카 디자이너 전문학교 (졸업)
소속 캡콤
LEVEL-5 콤셉트
링크 네이버캐스트 이나후네 케이지 편
네이버캐스트 록맨 편
1. 개요2. 이력3. 록맨의 아버지?4. 무슨 판단이냐, 돈을 시궁창에 버릴 셈이냐5. 게임관6. 캡콤에서의 발자취7. 콥셉트 시절8. 레벨 파이브 콥셉트 시절9. 비판 및 논란10. 참여작
10.1. 캡콤 시절10.2. 콤셉트 시절10.3. LEVEL-5 콤셉트 시절
11. 여담

[clearfix]

1. 개요

일본게임 개발자, 캐릭터 디자이너, 사업가. 록맨 시리즈게임 프로듀서이자 디자이너로 유명하다.

2. 이력

한때는 오카모토 요시키, 미카미 신지, 카미야 히데키와 더불어 캡콤을 대표하는 게임 제작자 중 한명이였으며 퇴사 이후에는 '콤셉트'라는 회사를 설립하였다. 이후 콤셉트가 LEVEL-5에 인수합병되어, 주식회사 LEVEL-5 콤셉트의 자회사가 된 2017년 기준으로 콤셉트의 대표이사 겸 LEVEL-5 콤셉트의 CCO (Chief Customer Officer)이다.

록맨 시리즈 크레딧에서는 INAFKING이라는 별명을 사용한다.[1]

아이디어 팩토리 쪽에서 압도적인 신작을 개발한다며 갑자기 등장한 新 이나후네 케이지라는 프로듀서는 이나후네 본인이 아닌 완전 다른 사람이다. 이나후네 케이지를 존경해서 저런 팬네임을 썼다고 한다.

마이티 No. 9의 발표 인터뷰에서 캡콤 입사시의 비하인드 스토리가 밝혀졌는데, 사실은 코나미에 입사하려고 했지만 코나미가 거리 상으로 멀고 대신 캡콤이 더 가까워서 캡콤에 들어갔다고 한다.[2][3]

원래는 일러스트레이터 및 그래픽 디자이너였으며 캡콤에 입사 후 처음으로 디자인한 캐릭터는 스트리트 파이터아돈이다. 캡콤 재직 시절에는 데드 라이징 실사 영화도 감독한 적이 있다. 사실 그래픽 디자이너 외의 직책으로 이나후네가 게임 개발에 제대로 참여한 것은 록맨 X 시리즈가 전부였고, 게임 프로듀서가 된 이후에는 고속 승진을 하며 캡콤의 경영진이 되어 활동했다. 프로듀서라는 직책의 특성과 고위직이라는 것 때문에 프로듀서가 된 이후부터는 실제 게임 제작 현장과는 동떨어진 채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나후네는 한때 강연 장소 등에서 매너리즘에 빠진 일본 게임들과 일본 게임의 미래에 대한 비판을 하였다. 당시 캡콤의 노골적인 DLC 정책에 반감을 가진 캡콤의 안티팬들과 덤으로 신작이 나오지 못해 화가 난 록맨의 팬들에게서 "일본 게임계의 마지막 보루", "록맨의 아버지" 같은 식의 찬양을 받아왔었으며, 때마침 그가 언급한 "무슨 판단이냐, 돈을 시궁창에 버릴 셈이냐" 같은 발언 덕분에 인터넷 등지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이후 캡콤에서 퇴사한 후에 발매한 소울 새크리파이스를 성공시키며 이나후네의 독립은 성공한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후속작의 잇따른 실패와 더불어 결정적으로 꺼낸 카드인 마이티 No. 9의 참혹한 실패로 지금까지 쌓은 명성과 커리어가 한 순간에 박살나 버리고 그의 팬들도 등을 돌리게 되었다. 하단의 퇴사 후 문단에서 후술.[4]

이나후네가 마이티 No. 9으로 몰락하자 그 이전부터 자기 복제와 홍보용 립서비스, 경영에의 간섭 등을 해왔다며 '그럴 줄 알았다'며 성토하는 팬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이나후네는 이미 오래전부터 (최소 바이오2 시기부터) 홍보 담당 임원으로 올라갔으며 개발 일에서 손 뗀지는 한참 되었고 프로듀서로 경영진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주장은 대부분 억측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아닌 게 아니라 이나후네가 프로듀스를 맡기 시작하면서 똑같은 게임의 후속작 제작에만 열을 올려서[5] 이를 보다못한 다른 프로듀서들이 이나후네를 불러 자제하라고까지 요구했다고 하니 이나후네를 전범 취급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재직 시절 록맨 이외에도 귀무자, 데드라이징, 스트리트 파이터 4 등 굵직한 작품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걸 보면 이나후네만을 확신범 취급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6]

3. 록맨의 아버지?

이나후네는 록맨 시리즈의 팬들에게서 흔히 록맨의 아버지라고 불리고 있지만 사실 이는 잘못된 것이다. 일단 이나후네는 록맨 1의 핵심 개발진이 아닌 그래픽 스태프 중 한 명에 불과했다. 록맨의 개발에도 처음부터 참가했던 게 아니고 이나후네가 캡콤에 입사하기도 전부터 이미 주인공인 록맨의 캐릭터 디자인은 물론이고 시스템까지도 구상이 전부 다 완료된 상태에서 이나후네가 입사하여 브러쉬업 정도를 담당한 것이다. 이나후네 본인도 자기 자신에 대해 자신은 록맨의 탄생에 관여하지 않았다면서 이러한 칭호를 부정했다.

록맨 클래식 시리즈의 진정한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개발자는 키타무라 아키라로, 록맨이라는 게임과 캐릭터를 고안하고 픽셀 아트까지도 만들었다고 한다. 키타무라 아키라는 록맨 2를 마지막으로 캡콤에서 퇴사했으며, 이후 후지와라 토쿠로(프로페서 F)가 록맨 시리즈의 총괄 프로듀서가 되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이나후네에게 슈퍼 패미컴용 록맨(록맨 X)를 만들라는 지시가 떨어지며 이나후네가 록맨에 크게 관여하게 되는 계기가 생기게 된다. 당시 캡콤 안에서는 들어가면 즉사라는 말이 돌 정도로 빡센 3대 개발팀 중 하나가 록맨이었기에(다른 둘은 마계촌과 디즈니 게임) 이나후네는 망설였지만 통장에 잔고가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이를 맡는다. 크레딧에는 올려져있지 않지만 제로의 창조와 벽 미끄러지기-점프 같은 새로운 시스템 등이 이나후네의 작품이다. 이후 록맨 X2록맨 X3에서는 디렉터를 맡아 게임 개발을 총괄하였다.[7]

그리고 1996년에 캡콤에서 이나후네의 최상위 상사이자 가정용 게임기 분야를 담당하던 록맨 시리즈의 총괄 프로듀서, 후지와라 토쿠로(프로페서 F)가 캡콤을 퇴사해 그 후임으로 록맨 X 시리즈를 성공시켜 실적을 인정받은 이나후네가 프로듀서로 승진해 록맨 시리즈의 새로운 총괄 프로듀서로 취임한다.[8]

록맨 시리즈의 총괄 프로듀서가 된 이나후네는 록맨 대시 시리즈, 록맨 제로 시리즈, 록맨 ZX 시리즈, 록맨 에그제 시리즈, 유성의 록맨 시리즈를 기획하고 프로듀스한다. 아이러니하게도 프로듀서가 되기 이전의 대표작이던 록맨 X 시리즈록맨 X4를 마지막으로 손을 떼서 록맨 X5부터는 캡콤의 다른 개발자인 미나미 타츠야[9] 프로듀서가 록맨 X 시리즈를 총괄하게 되었다.[10]

이나후네가 록맨의 아버지라는 표현은 잘못된 말이지만 후지와라 토쿠로 퇴사 이후 록맨 시리즈를 담당하며 록맨 시리즈 출시에 큰 기여를 한 기른 아버지 정도의 위치에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XX의 아버지生み親'라는 표현에 걸맞은 사람이 되려면 적어도 해당 창조물을 0부터 기획하고 제안한 사람 정도가 아니라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점 또한 염두에 두고 표현에 주의해야 하는 것이 옳다. 예를 들자면 몬스터 헌터 1편의 프로듀서로서 시리즈의 기틀을 마련한 후나미즈 노리타카를 제쳐놓고 타나카 츠요시, 츠지모토 료조를 몬헌의 아버지, 창조주로 꼽는 꼴이다.[11] 다만 상술한 것처럼 대시, 제로, ZX, 에그제, 유성의 록맨에 한해서는 이나후네가 아버지인 게 맞다.

4. 무슨 판단이냐, 돈을 시궁창에 버릴 셈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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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게임관

본인도 액션 게임을 좋아한다고 하며 실제로 제작한 게임도 대부분 액션이다. 게임은 어떻게든 많이 팔려야 한다는 것이 신조인 것 같다. 팔리지 않는 게임에 대해선 평가가 박하다. 또한 세계적으로 많이 팔려야한다고 보기 때문에 자신의 게임에 일본 게이머들의 취향과 별로 맞지 않는 서구적 요소도 대거 도입하는 편이다.[12]

한편으론 자신이 만들고 싶다고 말하는 게임은 상업적인 것과 별 관계가 없는 경우도 많은데, 이런 얘기를 할 때는 보통 "만들어도 안 팔리겠죠"라거나 "회사 입장에선 무리겠죠"라며 회의적인 입장을 반드시 덧붙여주며 실제로 제작되는 경우는 드물다. 를 엄격히 구분한다는 평. 유일하게 이것을 어긴 예외라면 록맨 대시 시리즈를 들 수 있는데 이나후네 본인은 이 시리즈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시리즈의 판매량이 높지 않아서 후속작 제작은 힘든 상황이었고 이나후네도 팬들의 요청에는 현실적으로 힘들다고 대응해왔지만 그렇지만 팬들을 무시하기 힘들었는지 결국 록맨 대시 3를 발표했다. 그러나 게임 제작 관련으로 불협화음이 있었는지[13] 2010년 10월 29일, 블로그에 캡콤을 퇴사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 소식으로 현재 록맨을 비롯한 그의 각 작품들의 팬들은 엄청난 패닉에 빠진 상태. 이로써 록맨 시리즈의 앞날은 더더욱 캄캄해졌다.

인터넷에서 자신의 작품이나 캡콤의 작품을 가지고 2차창작을 하는 것에 대해선 저작권적으로 그럭저럭 관대한 입장이다. 예로 수많은 북미의 메가맨 동인작품이라든가 에어맨이 쓰러지지 않아를 보고 『록맨 9』을 제작하기로 결심했다는 일화 등이 그렇다.[14]

일본 게임 제작자들 중 일본 게임업계에 대해서 매우 회의적인 몇 안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일본 게임업계는 미국 같은 곳에 비교하면 10년은 뒤쳐져있다. 정신 좀 차려라. 이러다 망한다"라는 식으로 과격한 언사를 내놓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일부는 귀기울여 들어볼만한 지적이지만 문제는 결론을 항상 "일본 게임업계는 뒤쳐졌지만 캡콤은 그래도 따라가고 있다"로 지어버리는 경우가 많아서 자뻑이 아니냐는 비난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이건 조직생활을 하는 사회인으로서 어쩔 수 없이 취해야할 태도이긴 하다. 자신이 속한 조직에 대한 비판이라도 까는 걸로 시작해 다독이는 식으로 마무리하는 비판은 건설적인 비판으로 포장되어 용납되기 때문이다. 퇴사한 이후로는 '도전을 하지 않는 미래가 없는 회사'라는 식으로 가루가 되도록 까고 있는 걸 보면 그냥 회사 간부급 입장에서 자기 회사 욕을 하기는 힘들어서 그런 게 맞는 듯. 또한 게임 산업에만 한정된것은 아니고 일본인들의 지나치게 속내를 숨기는 말투를 지탄하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다 바뀌어야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강연에서 남긴 성공하는 게임의 3가지 요소를 언급한 적이 있다. 이 중 2가지가 성립이 된다면 성공한다는 발언이였는데 이 3가지는 이렇다.

1. 보기에 재미있어 보이는 게임.
2. 플레이해서 재미있는 게임.
3. 그 외 패러디나, 2차 창작이 흥하는 게임.

그런데, 2번은 최소 필수사항이면서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게이머 각각의 취향은 언제나 갈리기 마련이다. 액션만 주구장장 하고 액션이외에는 눈길을 안주는 사람에게 과연 스포츠 게임을 던져주면 재미있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그리고 1번 같은 경우는 PV로 낚시질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실상 PV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던 아수라의 분노를 보면[15] 결국 저 3가지 요소는 서로 모순되는 발언에 불과하다.

캐릭터를 그릴 때 특유의 손짓을 그리는 편이다.

6. 캡콤에서의 발자취

이나후네는 초기에는 스트리트 파이터 1아돈을 시작으로 그래픽 디자이너로서 가정용 게임기 개발에 참여했다. 주로 록맨 시리즈에 디자이너로 개발에 참가해오다가 록맨 X를 기획하였고, 이후 록맨 X2록맨 X3에서는 디렉터를 맡는다. 그리고 록맨 8에서 공동 프로듀서를 맡았다가 록맨 시리즈의 초대 프로듀서였던 후지와라 토쿠로가 캡콤을 퇴사함에 따라 그의 뒤를 이어 록맨 시리즈의 새로운 총괄 프로듀서가 된다.

록맨 시리즈 외에도 『귀무자』, 『데드 라이징』 같은 신규 히트 IP를 성공적으로 프로듀스한 이나후네는 이런 실적을 인정받아 캡콤에서 톱에 가까운 임원 자리에 올라서며 먼저 퇴사한 후쿠하라나 오카모토보다도 더 오래 캡콤에서 재직하게 된다. 그러나 2010년 11월을 기해 돌연 캡콤에서 퇴사한다.

이나후네는 퇴사 직전 인터뷰에서 이미 캡콤을 그만둘 것을 밝혀두고 있는 상태였다. 퇴사의 이유는 더 이상 캡콤에서 게임을 만들 수 없다 정도.

록맨 대시 3의 개발 중지가 공식 발표가 난 직후에는 캡콤과 더불어서 이나후네도 덩달아서 까이고 있었다. 기껏 록맨 대시의 신작을 발표해서 팬들을 설레이게 하였건만 프로젝트를 제대로 확정짓지도 않은 상태에서 무책임하게 퇴사하고 결국은 공중분해되어버리게 만들었다는 것이 이유다. 하지만 최근에 밝혀진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이나후네가 분명히 차후 게임 개발사와의 계약을 1~2년간 포기하고 캡콤의 하청업자 비슷하게 록맨 대쉬 3를 포함한 몇몇 게임들의 개발에 참여해주겠다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그 제안을 캡콤 측에서 거절했다고 한다.

이나후네의 퇴사 이후 여러 정황들로 캡콤이 의도적으로 이나후네의 흔적을 없애려고 한다는 루머가 돌았다. 오오카미(게임) 문서 참조.

또 이나후네의 현재 행보가 화제가 되니까 카미야 히데키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풍으로 자신의 제작비화를 밝혔는데 내용인즉슨 '바이오하자드 2 만들 때 제작 현장에 한 번도 와보지 않고는 해골 가죽잠바 텍스쳐를 보내면서 특전 복장으로 쓰라고 지시했다'라고 에둘러 깠다.

이후 이나후네는 국내를 비롯 세계 유슈의 개발자 회의에 강연을 다니며 일본 게임 업계나 캡콤을 디스했다. 2012년에는 캡콤의 노골적인 DLC 정책에 보다 못해 이나후네 케이지는 더 이상 추억에 의존할 수 없다고 디스를 걸었다.[16] 이때 캡콤은 물론 일본 게임 자체가 예전만 못했기 때문에 이런 이나후네의 디스 투어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았고 이나후네의 주가는 올라갔다.

7. 콥셉트 시절

캡콤을 퇴사한 뒤에는 콥셉트라는 게임 개발사를 세워 여러 게임을 만들기 시작한다. 다만 콤셉트의 CEO가 된 이후에는 게임 기획에만 관여하며 게임 프로듀싱에조차 관여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17]

콤셉트는 PS Vita용 소프트 소울 새크리파이스를 제작하여 2013년에 발매했다. 게임 자체는 그럭저럭 준수했고 비타의 소프트 갈증, 헌팅액션의 부재, 한국어화 등의 요인이 맞물려 인기를 끌었다. 소울 새크리파이스는 일본 주간 판매량 1위를 달성. 2013년 6월 20일에 소울 새크리파이스 한국 발매 기념으로 이벤트 겸 사인회를 했다. 9월 27일 KGC 2013에서도 한국을 찾아 강연을 했는데, 강연의 준비나 한국의 게임 개발자들을 대하는 시각에 있어서 아쉬웠다는 반응이 많아 보인다.

이후 콤셉트는 야이바: 닌자 가이덴 Z의 제작에 관여했으나 망했다. 웹진에서도 유저에게도 평가도 처참하다. 초기에는 이나후네 케이지가 제작에 참가하는 작품이라고 해서 기대감이 높았고 공개된 영상은 좀비와 보더랜드풍 그래픽으로 북미 코믹스 느낌도 났기에 제대로 북미풍의 닌자 가이덴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과 닌자 가이덴 3의 아쉬움을 갚아줄 것이라 여겨졌지만 점점 플레이 영상이 공개될수록 조약한 품질로 보여줘서 기대감을 사라지게 했다. 출시 후 없는 기대감에서도 평균 이하의 품질로 닌자 가이덴 팬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그리고 애초에 콤셉트와 이나후네 케이지는 게임 제작에 거의 관여를 하지 않았다는 게 드러났다. 야이바: 닌자 가이덴 Z의 개발사는 레전더리, 로스트 플래닛 3 등을 개발한 '스파크 언리미티드'이며, 개발 지휘는 팀 닌자가 했고 콤셉트는 게임 기획 및 지휘 보좌만 담당했다. 3개의 게임 제작사 중 가장 관여도가 적었으며 이나후네 케이지 또한 게임 기획에만 관여하고 실제 게임 제작에는 거의 관여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어쨌든 게임이 망한 만큼 지휘 보좌도 제대로 못했다고 할 수 있기에 콤셉트와 이나후네에게 잘못이 없다고는 할 수 없다.

2013년 8월 31일에는 PAX에서 마이티 No. 9라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록맨 팬들을 위해서 록맨 시리즈의 계보를 잇는 게임으로서 기획하였으며 대다수의 스태프가 전직 록맨 개발자이다. 이와 동시에 90만 달러 목표의 킥스타터 페이지가 올라왔다. 팬들은 열광했고 10월 1일 킥스타터가 종료되었는데 총 모인 금액은 약 400만 달러(한화 약 43억)이라는 금액이 모였다. 물론 이나후네는 이번에도 게임을 기획하기만 하고 제작 그 자체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2014년 3월에는 인티 크리에이츠가 개발하는 푸른 뇌정 건볼트 시리즈의 제작에 관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발표했다. 콤셉트의 CEO가 된 이후에는 게임 기획 정도에만 관여하던 이나후네였으나 푸른 뇌정 건볼트 시리즈는 콤셉트의 게임이 아닌 다른 회사의 게임이라서인지 총괄 프로듀서와 액션 감수를 맡아 이나후네가 게임 제작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2011년부터 마벨러스와 함께 개발해오던 해왕이라는 닌텐도 3DS용 게임이 몇년동안 감감무소식이었다가 2015년 3월 14일, 돌연 개발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 2017년 5월 21일에 밝혀진 바에 따르면 이나후네 케이지가 콤셉트 설립 이후 첫 개발작이었던 해왕의 취소로 인해 개발비가 무려 4억 6,100만 엔이 날아 갔다고 한다. 마벨러스는 2011년부터 2015년까지 4년간 해당 게임의 개발비를 지원해주었으나 콤셉트가 갑자기 해당 게임의 개발을 취소하는 바람에 마벨러스에게 엄청난 손해를 입혔다고 한다.

점점 길어진 마이티 넘버 9의 발매연기와 논란이 된 트레일러 영상등을 통한 여러 불안들 속에서 2016년 6월에 마이티 No. 9이 출시했지만, 그 우려가 현실이 되어버렸으며 결국 이나후네는 수많은 비난과 비판을 받게 되면서 이미지가 나락가게 되었다.

이나후네가 차린 회사 콤셉트와 아머처 스튜디오가 리코어의 공동 제작을 하게 되었다. 2016년 9월 13일에 출시되었으며, 이쪽은 록맨 대시 시리즈의 색채가 짙은 게임이다.

8. 레벨 파이브 콥셉트 시절

2017년 6월 15일, 레벨 파이브가 이나후네 케이지의 회사인 콤셉트를 인수하였다고 발표했으며, 회사 이름도 레벨 파이브 콤셉트로 바뀌었다. 히노 아키히로가 그대로 CEO를 맡게 되는건 변함없으나, 이나후네가 CCO를 맡게 된다고 한다.

2017년 12월 28일, 4gamer에서 2018년의 포부 인터뷰를 했다.

한편 캡콤에서는 2018년 10월에 발매된 록맨 11이 화려하게 록맨 시리즈를 부활시킴으로서 이나후네는 또 의문의 패배를 가져갔다. 캡콤의 창립자이자 CEO인 츠지모토 켄조가 이나후네를 비롯한 여러 개발자들을 내보냈을 때만 해도 츠지모토 켄조를 비롯한 높으신 분들이 초심을 잃고 삽질들을 하며[18] 한참 욕을 먹던 시기였지만, 2016년을 기점으로 캡콤 경영진이 절치부심하고 자사의 프랜차이즈들을 재시동 및 부활에 성공시켜가면서 적대적이던 민심도 다시 우호적으로 돌아간 것과 달리 이나후네는 반대로 우호적이었던 민심을 모두 잃어버리는 결과가 됐다.

2019년 6월 드래곤 & 콜로니즈(ドラゴン & コロニーズ)라는 모바일 게임을 개발하여 iOS안드로이드로 발매하였다. 반응과 평가는 그저 그런 편. 결국 1년을 못버티고 2020년 2월 서비스 종료했다.

2020년 6월, 여전히 푸른 뇌정 건볼트 시리즈의 개발에 참가하고 있으며 푸른 뇌정 건볼트 鎖環에도 관여하는 게 확인되었다.

그 후로 한동안 소식이 없다가 2022년 5월, 뜬금없이 자신이 디자인한 캐릭터들을 NFT로 판다고 했다. 반응은 당연히 안좋은 편.

2024년 1월 5일, Fantasy Life라는 시리즈의 1편을 제작하고 있다는 기사가 떴다.[19] 하지만 일본 개발자들에 대해 선망을 품는 서구권에서조차 반응은 시큰둥한 듯하다. 그래도 "'메가맨(록맨의 북미판 명칭)의 아버지'라는 인식이 강해서 불필요한 욕도 얻어먹고 있다"는 얘기도 나오는 등 우호적인 여론도 조금은 남아 있다.

9. 비판 및 논란

9.1. 마이티 No. 9 사태

상술했듯 2016년, 캡콤 퇴사 후 이나후네는 록맨 시리즈의 정신적 후속작 마이티 No. 9을 만들겠음을 밝혔다. 록맨 시리즈가 계속해서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나온 선언이었기에 록맨 팬들은 열광하였고 이후 컨텐츠/플랫폼 위주의 1차 킥스타터에서 최소 목표량을 몇 배나 넘기는 등 게이머들로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마이티 No. 9은 역대급 실패작이자 최악의 킥스타터 게임이 되어버렸다. 이나후네의 명성은 나락으로 떨어졌다.

본격적으로 이나후네가 유저들로부터 비판받기 시작한 것은 2차 펀딩 시작 시기였다. 이에 대부분의 유저들은 킥스타터에서 400만 달러나 되는 금액을 모았는데 왜 또 모금을 받느냐는 반응을 보였다. 킥스타터 당시에 성우에 대한 이야기는 일절 없었으므로 추가 펀딩을 받는게 맞을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지만 유저들 사이에서는 대체로 달갑게 느껴지지 않는 듯 했다.

그러나 2차 펀딩에서 그치지 않고 이후 제로를 오마주한 캐릭터를 만들어놓고 등장시키는데 19만 달러를 더 모금 받아야 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펀딩 뿐만 아니라 테스트판의 낮은 그래픽, 계속되는 출시일 연기[20] 등으로 인해 이나후네는 본격적으로 욕을 얻어먹기 시작한다.

그나마 연기해서 내놓은 마이티 No. 9의 3차 트레일러 영상이 공개되었는데 일반 모바일 게임, 심지어 퀄리티만 보면 3D로 내놓아서 온갖 욕이란 욕은 다 먹은 록맨 X7보다 더욱 떨어지는 퀄리티를 보여주면서 디비니티: 오리지널 신 2의 모금액인 210만 달러의 두 배 가까이 되는 돈을 시궁창에 넣었냐며 유저들이 격노하였다. A급 게임 하나 개발되는 비용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퀄리티를 봐선 모금액을 다른 용도에 썼을 가능성도 농후하다는 의견도 수없이 나왔다.

결국 게임이 완성되고 정식 출시될 때는 그 저질 퀄리티 그대로 나와 록맨 시리즈 팬들의 기대를 한 몸에 받던 마이티 No. 9은 최악의 결과로 막을 내렸다. 네이버나 루리웹 등지를 가 봐도 이나후네에 대한 평가가 매우 안 좋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뭔가 대단한 걸 만드는 것처럼 말해 놓고 정작 그 결과물이 많은 팬들이 원하던 것과 전혀 달랐으며 연이은 발매 연기에 쓸데없는 입털기 등으로 이미지가 확실히 추락했다. 본인의 캡콤 시절 발언인 "무슨 판단이냐, 돈을 시궁창에 버릴 셈이냐"를 스스로 실천해 버린 셈이다.

더욱이 이나후네는 온갖 문제로 말이 많은 와중에 레드 애쉬라는 새로운 킥스타터 프로젝트를 열었다. 이미 앞의 사례들로 인해 유저들로부터 신뢰를 상실할 대로 상실하였기에 킥스타터 펀딩에 실패[21]했다. 마넘나 관리도 못하면서 무슨 깡으로 레드 애쉬 킥스타터를 연 거냐는 비난이 많다.[22] 게다가 킥스타터 방식도 완전히 잘못되었다. 서양 쪽 유명 킥스타터 출시 게임들의 사례를 보면 게임을 제작하면서 도중에 킥스타터 모금을 받고, 이것이 정상이지만 이나후네는 선 킥스타터 후 제작이라는 반대의 방식으로 모금을 받았다. 당연히 확인할만한 제대로 된 알파소스조차 없고 8개월 동안 만든 준비 자료들도 품질이 매우 조악하고 양도 부족했다. 펀딩 실패는 당연한 거다.[23]

마넘나의 대폭망으로 온갖 욕을 얻어먹은 이나후네는 인터넷 생중계에서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음을 밝혔다.

그러나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마이티 No. 9의 킥스타터에 참여했던 유저들이 참다 못해 소송을 예고하였다. 루리웹 링크 헌데 소송 이유가 상당히 충격적인데, 이 게임이 발매된 지 반 년[24]이 지났는데도 게임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는 돈을 줬는데 물건을 받지 못한 경우이므로 명백한 사기 행각이고, 사기죄로 해당된다.

2017년 1월 10일에 패키지와 킥스타터 보상품의 제작을 맡은 회사인 Fangamer에서 작성한 보상 지급 연기에 대한 답변글(영어)에 따르면 Fangamer는 발송 계획까지 다 세웠지만 콤셉트에서 계약금을 주지 않아 생산을 못하고 있다고 한다. 당연히 빼도박도 못할 콤셉트/이나후네의 잘못이다.

2017년 7월 15일에 보상이 배송된다는 메일이 보내졌다. 발매된지 1년도 넘은 시기지만 어쨌든 보상을 줬기 때문에 소송은 취소된 모양. 이후 킥스타터 펀딩 보상들이 속속들이 도착하고 있는데, 퀄리티가 심각한 수준이다. 해당 후원자들은 "마지막까지 통수냐"라는 반응과 함께 분노를 쏟아내고 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패미컴슈퍼 패미컴 스타일의 게임 박스와 매뉴얼을 후원자들에게 보내기로 약속했는데 문제는 패미컴용 박스가 슈퍼 패미컴 박스보다 작은데도 매뉴얼 사이즈가 같다. 후원자들에게 보내는 보상을 원가절감해 메뉴얼보다 작은 박스를 보낸 것도 모자라 후원자들에게 박스에 들어갈 수 있는 매뉴얼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해놓고 이런 일이 생긴 것이다.

사실 이전부터 서양에서도 자잘한 킥스타터 사기 문제는 많이 있었지만 이 사태를 계기로 상당수의 게이머들이 킥스타터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이나후네를 신뢰했던 팬들 역시 등을 돌리며 뿔뿔이 흩어지게 됐다. 이로 인해 이나후네 케이지는 몰락하게 된 것이다.

10. 참여작

10.1. 캡콤 시절

별다른 코멘트가 없다면 프로듀서로 제작에 참가한 것이다.

10.2. 콤셉트 시절

콤셉트의 CEO가 된 이후에는 디렉팅은 물론이고 프로듀싱에도 관여하지 않고 오직 기획만 담당할 때가 많았다.

10.3. LEVEL-5 콤셉트 시절

11.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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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차원게임 넵튠 mk2에서 등장한다. 대사는 '무슨 판단이냐·노바'. 그리고 신차원게임 넵튠 V에서는 업그레이드 버전이 나온다.

[1] 비슷한 경우로 악마성 시리즈이가라시 코지 또한 IGA라는 별명을 크레딧에서 사용한다.[2] 캡콤과 코나미 모두 간사이에 위치한 회사였다. 다만 지금도 캡콤은 오사카에 있지만 코나미는 고베도쿄로 본사를 이전한 상태.[3] 여담이지만 미야모토 시게루도 "닌텐도에는 자전거를 타고 갈 수 있으니까"라는 발언을 한 적이 있다.[4] 웃긴 건 그의 인생 최악의 실수로 가만히 있던 캡콤록맨 11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록맨의 아버지가 캡콤을 떠난 후 록맨 시리즈에 손을 댈 일이 없었는데 그의 실수와 만행이 일어난 걸 보고 두고 볼 수 없었던 캡콤의 개발진들이 우리가 이거보단 더 잘 만들겠다는 심정으로 나서서 만들었다고 한다. 물론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확실히 그가 떠난 후 록맨 시리즈 신작에 대한 부담감이 캡콤 직원들 사이에서도 존재했다고 한다.[5] 당시 캡콤에서는 유명한 싱크탱크인 보스턴컨설팅에 막대한 돈을 주고 경영컨설팅을 받았고 그렇게 도입한 제도 중 하나가 '프로듀서는 성공보수에서 일정 비율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챙겨갈 수 있다' 였는데 이나후네는 항상 최대로 땡겨가서 별명이 'MAX군'이었다고 한다.[6] 캡콤의 잇따른 부도위기는 게임이 안팔려서일 뿐이고, 캡콤의 경영실책은 츠지모토 회장을 비롯한 족벌경영의 문제가 더 많다. 또한 바이오 시리즈는 팬들에게 불만일지는 몰라도 5나 6도 나름 준수하게 나온 작품이고 팔리기도 많이 팔렸다.[7] 참고로 이나후네의 뒤를 이어 록맨 X 시리즈의 디렉터가 된 개발자는 오코하라 코지라는 개발자다. 록맨 X5, 록맨 X6, 록맨 X 사이버 미션, 록맨 X2 소울 이레이저의 디렉터를 맡았다. 록맨 X, 록맨 X4, 록맨 X7의 디렉터는 누구인지 알려지지 않았으며(스태프롤에도 없다) 록맨 X8그레고리 호러쇼, 건 서바이버 3: 디노 크라이시스, 바이오하자드 건 서바이버 4 등의 디렉터를 맡은 시라하마 에이로가 디렉터를 맡았다.[8] 다만 록맨 8록맨 X4에서는 타케나카 요시노리와 공동으로 프로듀서를 맡았다. 타케나카 요시노리도 록맨 클래식 시리즈 시절부터 록맨 시리즈의 개발에 오래 관여해온 고참 개발자이며 이후 록맨 X 커맨드 미션에서는 디렉터를 맡기도 했다.[9] 캡콤에 소속되어 여러 게임들의 프로듀서를 맡았던 개발자. 특히 록맨 X5 이후의 록맨 X 시리즈의 프로듀서로 유명했다. 2006년에 캡콤을 퇴사한 뒤 유한회사 ODD를 설립하고 이후 플래티넘 게임즈의 대표가 되었으나 2016년에 플래티넘 게임즈를 퇴사하고 바이오하자드 시리즈의 개발사 중 하나인 M-Two를 설립했다.[10] 이나후네가 관여를 하고 싶지 않아서 안 한 것은 아니고 캡콤이 이나후네가 다른 작품의 개발로 바쁠 때 이나후네의 의향을 무시하고 다른 개발진을 시켜서 멋대로 록맨 X 시리즈의 후속작을 연달아서 만들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다만 자신의 본의는 아니었지만 록맨 X 시리즈가 일단 자신의 손길을 떠나자 애정을 잃었는지 이후에도 록맨 X8까지 록맨 X 시리즈는 미나미 타츠야가 총괄하고 이나후네는 이레귤러 헌터 X에만 관여했다.[11] 이나후네 케이지와 비슷하게 악마성 시리즈로 유명한 이가라시 코지월하의 야상곡이나 메트로배니아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경우가 많은데 이 또한 잘못된 것이다. 메트로배니아는 메트로이드 시리즈라는 원작이 있고, 월하의 야상곡 또한 하기하라 토루가 프로듀서이자 디렉터였기 때문. 이가라시 코지 또한 악마성 시리즈의 중역이기는 하지만 하기하라 토루의 부하이자 후임이기 때문에 '아버지'라고 하기는 힘들다.[12] 데드라이징1은 일본인이 만들었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이며 데드 라이징 2는 아예 블루 캐슬 게임즈라는 캐나다의 독립 게임 제작사에 외주 제작을 맡겼고, 이 회사는 이후 캡콤에 인수돼 캡콤 밴쿠버로 개칭된다.[13] 아마도 2.1 문제가 아닐까 하고 추측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무래도 돈 안되면 절대 NO라고 외치고 거물 개발자도 마음에 안 들면 그냥 잘라버리는 게 캡콤 경영진인데 평가는 좋았지만 돈이 안된 록맨 대시 시리즈를 발표했기 때문에 그렇다.[14] 그런데 이건 캡콤의 행적을 되돌아봤을 때 윤색일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는 캡콤 상부의 명령으로 이나후네 케이지가 어쩔 수 없이 저렇게 만든 것으로 추측된다. 그 전에 만든 것이 록맨 록맨이었던 점을 생각해보자.[15] 물론, 아수라의 분노는 2번이 부합되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무작정 PV에 돈칠을 한다고 1번이 성립되는 것도 아닌듯 하다.[16] Crunchyroll: 이나후네 케이지 "일본은 더 이상 일본 게임의 추억에 의존할 수 없다"[17] 당장 이나후네 케이지의 평가를 나락으로 떨어뜨린 그 마이티 No. 9조차도 이나후네는 기획과 캐릭터 디자인에만 관여하고 의외로 게임 실개발이나 디렉팅은 물론이고 프로듀싱에조차 관여하지 않았다.[18] 도가 지나칠 정도로 수많은 DLC 판매, 완성도가 떨어지는 게임들 등등.[19] 해당 기사에 나온 1편은 원래 2023년 발매였지만 2024년으로 연기(#)됐다.[20] 최초엔 2015년 4월 발매 예정이었지만, 딥실버와의 공동 퍼블리싱과 더불어 게임을 더욱 더 다듬기 위해서 2015년 9월로 발매일을 연기하였다. 그러나 동년 8월경에 연기했고, 결국 16년 1월에 한번 더 연기했다. 이로써 발매일만 3번 연기한 셈.[21] 마넘나도 이와 같은 형태로 진행되었지만 이때에는 록맨 시리즈의 팬들이 이나후네를 신뢰하고 있었고 후속작에 갈망이 컸기에 많은 이들이 후원을 결정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마넘나로 피를 본 이들은 이 어이없기 짝이 없는 짓에 어울려 줄 이유가 없었다.[22] 이 레드 애쉬란 단어가 상당히 수상한데, 스펠링을 알아보면 REDASH, 즉 RE(영어에서 '다시'를 뜻하는 접두사)+DASH가 되므로 록맨 대시 시리즈의 리부트가 될 가능성이 높았다.[23] 이후 쉔무 3 역시 이런 킥스타터로 비판을 받았는데 그나마 쉔무 3는 시리즈물이라 추억보정이라도 있었지만 레드 애쉬는 신 IP임에도 불구하고 컨셉아트와 조악한 데모만 던져주고 펀딩을 했다. 한 술 더 떠서 레드 애쉬 프로젝트 시작 선언 이후 스크린샷 한 장도 올라오지 않은 상태였다.[24] 참고로 마넘나의 출시일은 2016년 6월 21일이다.[25] 록맨 7까지는 그래픽 디자이너(일부 작품은 기획도), 록맨 8부터는 프로듀서.[26] 록맨 X는 기획 겸 그래픽 디자이너, 록맨 X2록맨 X3는 디렉터 겸 그래픽 디자이너, 록맨 X4는 프로듀서, 이레귤러 헌터 X는 총괄 프로듀서.[27] 록맨 X5의 경우는 이나후네가 실제로 개발에 관여하지는 않았으나 이나후네가 기존에 미리 만들어 뒀던 시나리오 원안(록맨 X 시리즈 최종장)을 바탕으로 삼아 개발이 이루어졌기에 결과적으로는 간접적으로나마 개발에 관여했다.[28] 여담으로 주인공 척 그린의 셔츠에 적힌 영어를 거꾸로 읽어보면 케이지라는 글자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