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1 11:04:48

테드 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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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도어 로버트 번디
Theodore Robert Bundy
출생1946년 11월 24일, 미국 뉴욕
사망1989년 1월 24일
국적미국 파일:미국 국기.png
학력퓨젯 사운드 대학교 → 워싱턴 대학교[1]
수감처플로리다 주 교도소

1. 개요2. 생애
2.1. 어린 시절2.2. 살인의 시작2.3. 2번의 탈옥과 검거
2.3.1. 콜로라도에서 1번째 탈옥: 8일간2.3.2. 2번째 탈옥: 2개월간2.3.3. 플로리다에서 3번째 검거2.3.4. 플로리다의 구금자가 테드 번디로 확인됨
2.4. 재판: 사형 구형2.5. 사형집행 연기시도
2.5.1. 독점기사 출판시도2.5.2. FBI와의 협력2.5.3. 사형집행 연기 신청2.5.4. 자백시도
2.6. 사형 집행
3. 어록4. 특수성
4.1. 엄친아
4.1.1. 화려한 겉모습에 가려진 공허한 내면
4.2. 나르시시즘4.3. 여성들에게서의 인기4.4. 문화계의 영향
5. 사후6. 기타

1. 개요

미국의 1970년대의 연쇄살인범. 당시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낸 대표적인 인물.

타입을 나누자면 호감형 타입으로 '자신의 매력 속에 사악한 영혼을 감추는' 형태의 반사회성 성격장애 연쇄살인범. 그에게 살해당한 피해자의 숫자는 현재까지도 불명확하다. 30명이라는 주장도 있고, 어떤 범죄 전문가는 50명 이상이 살해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테드 번디 본인이 피해자의 수를 밝히겠다고 했지만, 사형을 원하던 유가족들의 요구를 검찰이 받아들여 그 제안을 거절했기에 진실은 지금도 미궁에 빠져 있다.

2. 생애

2.1. 어린 시절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으며 유복한 집안 출신은 아니지만 매주 주일학교에 참석하는 등 평범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당시 사진을 보면 소시지 굽기, 낚시 하기, 크리스마스 휴가 보내는 모습이 담겨 있다. 하지만 성장환경은 그의 엽기적인 범행에도 불구하고 동정의 여지가 있을 정도로 비정상적.

사생아로 출생하였으며, 어머니누나로 대했고, 당시 외조부모인 샘과 엘리너 코웰 부부가 그의 부모 역할을 하였다. 한편 외조부 샘은 악의에 찬 인종차별주의자였고, 애완동물과 자신의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한 인간. [2] 물론 이런 그의 과거의 불우한 환경만으로, 어른이 된 후 저지른 끔찍한 행동들을 모두 설명할 수는 없지만, 영향이 적지 않았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테드 번디의 성장 환경을 보면, 어릴 때부터 명백한 정서불안 증세를 나타냈고, 겨우 3세 때 잠든 이모의 침대 이불 밑에 칼을 밀어 넣었다. 초등학교 시절엔 머리도 좋고 성적도 뛰어났지만, 반복해서 사납게 역정을 내는 성질 때문에 교사들은 불안에 떨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그는 이미 상습적 관음증 환자였으며, 좀도둑이 되어 있었다.

이 시기 동안 번디는 자신에 대해서 깨닫게 되는데, 그건 자신에게는 사람의 기본적인 특징, 대표적으로 양심, 타인을 욕망 충족을 위한 대상 이상으로 보는 능력 등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는 남들을 유심히 관찰했는데, 이런 과정을 통해 그는 정상인들의 행동을 흉내 내는 법을 배우는 데 성공했다. 그 때문에 그가 살인죄로 잡히기 전까지, 가장 친한 친구조차도 그의 어두운 기질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2.2. 살인의 시작

2.2.1. 워싱턴 주, 시애틀

그는 1965년 고등학교 졸업 후, 퓨젯 사운드 대학교(University of Puget Sound)에서 1년간 공부한 뒤에 워싱턴 대학교로 편입한다. 이 학교에 입학하여 생활하는 동안 '다이앤 마조리 진 에드워즈(Diane Marjorie Jean Edwards)'라는 여자와 사귀게 되는데, 이것이 그의 '처음이자 마지막 사랑'이라고 한다. 문제는 훗날 그의 범행 대상으로 삼은 피해 여성들의 상당수가 이 다이앤과 막연하게 닮았다는 것인데, 이는 실연의 상처가 그에게 범행 동기로 작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취향에 따른 결과일 뿐이다. 범죄자와 범행에 대한 이런 피상적 이해는 전 애인/전 배우자, 희생자들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2차 가해로 이어질 수 있다. 유영철의 여성들에 대한 범행이 아내에 대한 증오심 때문이라기 보다는 그냥 그런 여성들이 '쉽고 만만한' 대상이었기 때문인 걸 생각하면 된다. 테드 번디는 어릴 적부터 이미 관음증, 절도 등 문제 증상이 있었다.

대학교 졸업 후, 일류 로스쿨을 가려다가 실패하고 퓨젓사운드 로스쿨 야간대학에 진학하게 되면서 다이앤에게 차이게 되고, 이로 인해 그의 자존감이 크게 떨어지게 된다.

여기서 그의 주(主) 살인 목표가 정해지는데, 그것은 바로 자신이 사귀었던 다이앤 같이 아름답고 지적인 여대생이었다. [3] 물론 위에도 서술되어 있다시피 그저 본인의 이성에 대한 취향에서 나온 선택일 뿐, 전 여자친구 때문이 아니다.

이후로 워싱턴 주에 거주하는 동안, 엘리자베스 클래퍼라는 싱글맘과 함께 살고 있던 테드 번디는 결국 살인의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1974년 1월에 일어난 18세 여성 살인미수 사건을 시작으로, 1974년 2월 린다 앤 힐리, 조잰 호킨스, 게일 맨슨, 수잔 랜코트, 로버타 캐슬린 파크스, 브렌다 볼 등등을 여러 달에 걸쳐서 최소 7명을 살해했다. [4] 더하여 동년 7월 축제 때에 데니스 내스런드재니스 오트라는 두 여성을 동시에 살해했으며, 이때 목격자에 의해 테드라는 이름이 처음으로 경찰의 수사망에 잡히게 된다.

경찰은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하고, 급기야 8월 동거했던 여자 친구인 엘리자베스 클레퍼는 수상한 모습을 보였던 테드 번디에 대해 경찰에 신고하게 된다.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경찰은 그를 수사망에서 놓치고 만다.

2.2.2.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티

이후 1974년 9월에는 수사망을 피하기 위해, 유타 주 솔트레이크 시티 로 이사, 유타 대학 로스쿨에 등록하는데, 여기서도 그의 살인은 그치지 않았다. 이때 캐럴 다론치라는 여성에게도 접근했지만, 구사일생으로 그녀는 도망치는 데 성공한다. 하지만 그녀의 케이스는 운이 좋은 경우였다. 그녀를 놓친 후, 분노한 테드 번디는 겨우 4시간 후, 데비 켄트라는 여성을 납치해서 살해한다.

결국 솔트레이크 시티에서도 멜리사 스미스, 낸시 윌콕스, 로라 에이미 등등의 젊은 여성들이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고, 얼마 뒤 토막 난 시신이 협곡에서 발견되었다. 또한 이때 단순히 유타 주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콜로라도 주까지 진출, 최소 5명이 넘는 희생자들을 살해했다.

1975년 3월 5일, 워싱턴 주, 테일러 산에서 실종됐던 여성들의 시체들이 발견된다.

2.3. 2번의 탈옥과 검거

그러한 번디의 살해 행각의 전환점이 1975년 8월 16일 밤에 찾아온다. 그날 밤 유타 고속도로에서 순경, 밥 헤이우드는 전조등을 끄고 곡예운전을 하던 자동차를 세우고, 그 안에서 얼음송곳, 여성 팬티스타킹으로 만든 복면, 수갑 등등 의심스러운 물건을 발견한다. 번디는 그렇게 첫 번째 체포를 당한다.

이때 체포된 29살의 테드 번디는 자신이 1년도 더 전에 납치를 시도했던 캐럴 다론치에게 범인 지목을 받고 납치죄가 가중되어 1976년 2월 유죄가 선고되면서 15년형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후 콜로라도 살인사건에 대한 추가 징후도 발견되어 콜로라도로 이감, 그의 인생은 그렇게 끝나는 듯했다.

2.3.1. 콜로라도에서 1번째 탈옥: 8일간

하지만 1977년 6월 7일, 그는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자료 수집이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법원 도서관 출입을 허락받고, 경비원이 담배 피우러 복도에 나간 사이, 도서관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려 탈출했다. 하지만 8일 만에 다시 체포된다.

2.3.2. 2번째 탈옥: 2개월간

다시 그해 12월에 몰래 들여온 쇠톱으로 감방 천장 통풍구에 구멍을 내고 탈출한다. 이후 그는 다양한 교통수단을 이용해 미국 남부인 플로리다 주 탤러해시로 거처를 옮기는데, 그곳에서 그가 법정 진술도 거부할 만큼 끔찍한 사건들을 수차례 저지르게 된다.

2.3.3. 플로리다에서 3번째 검거

결국 1978년 2월 15일, 그는 12세 소녀 킴벌리 리치를 살해하고 시신을 돼지우리에 버린 지 1주일 만에 도난차량을 몰고 다니다 붙잡힌다. 하지만, 경찰은 그가 누구인지는 알 수 없는 상태였다.

2.3.4. 플로리다의 구금자가 테드 번디로 확인됨

1978년 2월 21일, 수감 중이었던 테드 번디가 워싱턴의 옛 여자 친구인 엘리자베스에게 수신자 부담 전화를 걸게 되면서 경찰이 그들이 구금하고 있던 자가 바로 살인 혐의가 있는 탈주범, 테드 번디란 사실을 확신하게 됐고, 결정적으로 4월 중순에 킴벌리 리치 살인사건의 사체가 발견된다. 이후 탤러해시 여대생 살인사건에서 발견한 치아 자국과 대조해서 증거를 확보한 후, 결국 7월 기소된다.

2.4. 재판: 사형 구형

결국 1979년 5월 9일부터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 재판이 진행되었고, 이는 미국 전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생방송으로 중계되었다. 그는 연쇄살인[5]으로 재판을 받았고, 플리바겐(사전형량조정제도)을 하는 쪽으로 변호인과 전략을 세웠다.

하지만, 6월 1일 돌연 그는 플리바겐(사전형량조정제도)을 거부하며 스스로 자신을 변호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7월 24일, 증거에 대한 배심원단의 6시간 30분 동안의 고민 끝에, 최종적으로 사형이 확정되었다.

사실 테드 번디는 죽지 않을 수도 있었다. 그가 죽인 피살자의 수가 적게는 30명, 많게는 100명 등 명확하지 않은 점에서 볼 수 있듯이, 검찰 측에 적극 협력하는 대가로 사형만은 면하게 해 줄 것을 제안할 수도 있었기 때문. 그러나 테드 번디가 선택한 길은 사형을 면하기 위한 전면적인 유죄인정협상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 자기 자신을 변호하는 행위였다.

물론 테드 번디도 바보는 아니라, 얼마 후에는 변호인단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이미 어그로를 있는 대로 끈 상황이라 별 효과는 없어, 정신이상 드립만 치다가 사형이 확정됐다. 물론 처음부터 변호인단의 전략대로 갔더라도 아동 살해까지 저지른 테드에게 플로리다 재판부 측이 과연 사형을 선고하지 않았을지는 의문.

2.5. 사형집행 연기시도

2.5.1. 독점기사 출판시도

1980년, 자신이 누명을 썼다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뉴스위크 지의 신참 기자 스티븐과 그의 옛 상사, 휴 애네스워스와 만나 책을 내려고 시도한다. 이 내용은 2019년 넷플릭스의 다큐멘터리, 살인을 말하다: 테드 번디 테이프로 만들어지게 된다.

2.5.2. FBI와의 협력

1984년, 연쇄살인범들의 범죄유형을 파악하기 위한 FBI의 조사과정에 도움을 준다. 이 과정이 후에 양들의 침묵에 영향을 준다.

2.5.3. 사형집행 연기 신청

1986년부터 1989년까지 그의 사형집행을 막으려는 시도가 성공하여 3년간 집형이 연기되었다.

2.5.4. 자백시도

더 이상 형이 연기되지 않을 것 같자, 그는 돌연 5개 주에서 벌인 30여 건의 자신의 범죄사실들을 FBI에게 자백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엔 이러한 시도도 그의 사형 집행을 더 이상 연기시키지는 못했다.

2.6. 사형 집행

결국 1989년 1월 24일 새벽, 플로리다 주 교도소에서 사형 확정 10년 만에 마침내 사형이 집행되었다. 일반적으로 사형집행이 있는 날은 어지간해서는 사형 집행에 대한 반대 시위가 있기 마련인데, 이날 번디의 사형집행 때는 워낙 그의 죄질이 나쁘기 때문인지 [6] 사형 반대론자들은 나타나지 않았고, 찬성론자들만 들어와 최악의 범죄자의 최후를 축하했다.

당시 사람들은 그가 사형당한다는 소식을 듣고 교도소 앞에 캠프파이어를 피우고, 바베큐 파티를 열고, 그가 전기의자로 끌려가는 것을 반기는 노래를 부르며 그의 집행을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고 오전 7시 16분 테드 번디의 사망이 확인되자, 교도소 앞에 모인 사람들은 일제히 환호성을 올리며 그의 시신을 실은 차가 교도소 밖으로 나가는 것을 지켜보았다고 한다.

3. 어록

"난 짐승이 아니야.
난 미치지 않았고, 다중인격도 아니지.
우리들은 너희들의 아들이고, 남편이야.
우리는 어디에나 있어.
내일은 더 많은 아이들이 죽어있을 거다."
"I mean, I'm not an animal
and I'm not crazy and I don't have a split personality.
I'm just a normal individual."

4. 특수성

4.1. 엄친아

파일:external/www.allthingscrimeblog.com/ann4.jpg

테드 번디보다 끔찍하고 엽기적인 살인마들이 많이 있었음에도, 번디가 대중들로부터 주목받고 공포의 대상이 된 이유는, 테드 번디가 연쇄살인범들 가운데서는 드물게 '미남이고, 대인관계가 좋으며, 사회적 지위를 갖춘 출세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타입의 살인마는 픽션에서 살인마를 흔히 접한 21세기의 현대인들에게는 그리 특이하게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많은 프로파일러들이 지적하듯이, 양들의 침묵에 나오는 한니발 렉터는 연쇄살인범들의 워너비(wannabe), 혹은 대중 매체가 만들어낸 판타지에 가까운 캐릭터일 뿐이다. 현실의 연쇄살인범들은 정상적인 지능을 가졌다고 해도 산만한 경향으로 성취가 부족한 경우가 많으며, 그 때문에 사회적 지위는 물론 자신의 직업 분야에서도 그다지 성공적인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반사회적인 성향을 억제하지 못하여 대놓고 드러내기에, 따돌림당하다시피 살며 인간관계가 거의 단절된 경우도 흔히 있다. 그러니까 '연쇄살인범'이라고 하면 준 히키코모리 수준의 사회 부적응자, 니트에 가까운 무직자인 하층민이 많았던 것이다.
그러나 테드 번디는 체포되면서 결국 법대를 졸업하지는 못했지만 법률적인 지식이 상당했고 선거운동같은 정치활동에 적극 참여하여, 공화당에서 일정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다. 영부인과 악수를 한 적도 있다. 전도 유망하고 매력적인 젊은 정치인이 알고 보니 연쇄살인범이라니, 두고두고 이야기될 만한 화젯거리임이 확실했다.

따라서 테드 번디를 학력위조나 하고 말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 그는 워싱턴 대학교에서 심리학을 전공하면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고, 교수들의 좋은 평가를 받은 학생이었다. 즉, 테드는 평균보다는 우수한 지적 능력을 가진 인간이었고, 정신상태를 가다듬으면 분명 성과를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4.1.1. 화려한 겉모습에 가려진 공허한 내면

그러나 테드 번디의 이러한 이미지는 어느 정도 '도금'된 것이다. 테드 번디는 겉모습만 번드르르하지, 내실이 수반되지 않는 속이 텅 빈 인간이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했다는 점에 있었다. 그의 LSAT 성적은 평이한 수준이었고, 법이라는 학문 자체가 진득하게 공부해야 하는데 법이란 적당히 머리 굴려서 때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에 걸쳐 공부하고 또한 그걸 지속적으로 유지시키며, 거기에 새로운 해석이나 판례 등을 계속 덧붙여 나아가야 하는 분야다. 그런데 자기 머리만 믿고 졸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부만 했을 가능성이 큰 번디가 법률 지식을 제대로 알고 있었을 리가 없다. 이 때문에 그는 대학교도 두 번이나 입학했고 로스쿨 역시 두 번이나 입학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로스쿨 재학생이고 머리가 좋은 인물임에도 테드 번디의 법률 지식은 놀라울 정도로 낮고 천박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테드 번디는 자가변호를 선택했고 스스로를 변호사로 삼아 '자기 자신을 변호'하는 쇼맨십을 보여줬다. 하지만 배심원들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번디가 반성하기는커녕 오히려 자기 자신을 변호하면서 큰소리치는 걸 보고 크게 분노했다. 심지어 판사까지 "젊은이! 나한테 손가락질하지 말게!"하면서 그를 제지했다.

얼마 후 바로 변호인단에 도움을 청하는 한편, 사형이 확정된 뒤에는 사형을 미루려고 계속 추가 자백과 범죄 관련 자문을 한 걸 보면 뒤늦게나마 실수를 깨달은 듯하지만, 그때는 이미 늦은 뒤였다. 번디는 철저하게 무능하고 실패한 법조 지망생이었다. 결국 그 역시 산만함과 학업 내지는 자신의 분야에서의 성취가 부족하다는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의 모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테드 번디의 이와 같은 행동은 자신의 지성을 과신하는 사이코패스들에게서 굉장히 흔히 볼 수 있는 행동이며, 실제로 상당수의 사이코패스들이 자신의 변호사나 법률 자문가를 해고하고 스스로를 변호하다 오히려 형기가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그들은 미래를 생각하고 말을 던지지 않기 때문에 언뜻 들으면 달변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순식간에 자신의 말과 전혀 모순되는 말을 늘어놓는 경우가 흔하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등쳐먹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7] 단련된 법조인들을 이길 수는 없다. [8]

4.2. 나르시시즘

전형적인 나르시스트로, 자신에 대한 왜곡된 자부심과 사랑으로 가득 찬 인물이었다. 자신의 변호를 자신이 하기로 한 것에서 어이없는 근자감을 알 수 있다. 미국의 또 다른 끔찍한 살인마 '그린 리버 킬러'라 불린 게리 리언 리지웨이를 추적할 때, 담당 수사관이었던 '데이비드 레이처트'가 테드 번디에게 자문을 구한 적이 있었는데,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사실에 적극적으로 자문에 협조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소설 양들의 침묵에 영향을 줬다.

그리고 하는 말이 창녀가 아니라 예쁘고 젊은 대학생만 죽였다면서, 자신이 그린 리버 킬러보다 낫다고 자뻑을 시전 했다. 이외에 자신이 저지른 짓을 다른 자가 저지른 것처럼 돌려서 이야기했다가 나중에 드러난 경우도 있었는데, 당시 그를 심문한 프로파일러는 그린 리버 킬러에게 쏟아진 관심을 돌리는 한편, 사형을 어떻게든 미뤄보려는 생각으로 자신의 범죄를 계속 추가 자백한 게 아닌가 추정하기도 했다.

로스쿨 재학생이었기 때문에 법률 지식 자체는 충분했고, 더욱이 머리도 좋아서 자백 내지 수사 조언을 미끼로 사형을 몇 년이고 계속 미루게 했는데, 그것이 더 시민들의 분노를 샀다. 다만 그가 한 자백의 상당 부분은, 타인이 저지른 것인 양 적당히 돌려서 말한 형태이긴 해도 결국 사실로 밝혀졌다. [9]

4.3. 여성들에게서의 인기

당시 언론들이 로스쿨 재학생이자 잘생긴 번디를 연쇄살인의 귀공자니 뭐니 하면서 띄워주고, 일부 대중이 거기 동조하는 현상이 있었다. 테드 번디가 언론에 노출된 이후, 엄청난 양의 팬레터가 날아들고, 많은 여성들이 그를 보기 위해 재판장을 찾아갔다고 한다.

위싱턴 대학 시절부터 친분 관계가 있던 '캐럴 분'은 테드 번디의 무죄를 확신하며 번디를 후원했고 재판 기간 도중 번디와 결혼까지 한다. 심지어 테드 번디가 재판장에서 분을 증인으로 세운 뒤 프러포즈를 했다고. 이 재판은 킴벌리 리치라는 12세 어린이가 번디에게 살해된 사건에 대한 판결이 내려지는 재판이었다. 그냥 살인도 아니고 아동 살인을 저지른 상황에서, 사형을 면하기 위해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재판을 대놓고 모독했다.

결국 이 여성은 테드 번디의 딸까지 낳게 된다. 결혼을 한 이후에도 많은 여성들이 팬레터를 보내오고 번디를 보기 위해 감옥까지 찾아갔다고 하는데, 이런 현상을 보면 영화 내가 살인범이다가 완전히 허황되지는 않을지도. 번디와 결혼했던 분이라는 그 여성은 나중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는지, 7년 후 이혼하고 자신과 딸의 성을 바꿨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번디를 좋아하던 여성들도 점차 등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번디가 미남형이라 그렇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는데, 연쇄살인범이라면 외모 수준에 상관없이 흔하게 나타나는 일이다. 에드먼드 캠퍼도 체포 이전엔 지나치게 큰 거구에 볼품없는 외모 때문에 여성에게 인기가 없었지만, 오히려 체포된 후엔 감방인데도 여성을 사귀는 데 어려움을 전혀 겪지 않는다니 황당할 정도. 관련 심리학 용어들도 있는 모양이다. 'Hybristophilia'(위키피디아 항목) 참고. 이 항목에서 든 예시들 중 하나가 바로 이 테드 번디의 일화이다.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를 쓴 프로파일러 로버트 K. 레슬러는 이런 현상을 아주 야멸치게 깠다. 레슬러가 직접 면담해 본 번디는, 인간으로서의 양심이 없는 변태 쾌락 살인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제프리 다머의 변호 측 고문을 맡았을 때는 다머에게 동정적인 입지를 취했기 때문에, 보는 입장에선 골 때린다는 의견이 많다. 물론 제프리 다머는 누가 봐도 명백한 정신병자라는 점에서, 인간으로서의 양심만 없었을 뿐 명백한 정상인이던 테드 번디와는 많이 다르긴 하지만,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둘을 대하는 태도에 차이가 심해서, FBI 시절 동료였던 존 더글라스도 자신의 저서에서 레슬러를 대차게 깠다. 게다가 성장 과정에서의 문제점만 따지면, 오히려 테드 번디가 더 동정받을 소지가 컸다.

4.4. 문화계의 영향

파일:external/www.newshankuk.com/nshk_0708_saico3_04.jpg

테드 번디는 문화계에 많은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아메리칸 사이코의 패트릭 베이트만(크리스찬 베일), 공공의 적조규환(이성재) 등에서 등장하는, 사회적으로는 번듯한 모습을 보이며 성공한 길을 걷고 있는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캐릭터들의 모티브가 되었다.

5. 사후

죽은 뒤 테드 번디 본인의 유언에 따라 화장되었고 그가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곳이라고 말하던 산에[10] 유해가 뿌려졌다. 강제화장 등은 사실무근한 낭설에 지나지 않는다.

참고로 이는 대부분 사형수의 가족이나 담당 변호사가 행하는데[11] 존 웨인 게이시처럼 일부 사형수는 장례 이후 시신을 어떻게 처리했는지조차 밝히지 않는 경우도 많다.

6. 기타

  • 사형집행 18시간 전, TV 폭력에 관한 공익광고를 찍었다고 한다.[12]
  •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게리 리지웨이가 한참 살인을 저지르고 다닐 당시 FBI가 그에게 프로파일 작성을 요청하였고 작성을 해주었다. 그의 프로파일링은 전문가 프로파일링보다 더 정확했다고 한다. 하지만 게리 리지웨이가 잡히게 된 건 프로파일링이 아닌 DNA 검사 때문이었다.


[1] 퓨젯 사운드 대학교에서 1년간 공부한 뒤 워싱턴 대학교로 편입을 했다.[2] 훗날 그의 아내 엘리너는 오랜 세월의 시달림 끝에,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했다.[3] 흑발 머리에 가운데 가르마의 단정한 미모의 여대생을 주로 노렸다. 책에 따라서 검은 머리가 아니라 검은 피부라고 쓰여 있는 경우가 있는데 오역 아니면 오타다.[4] 테드 번디가 성인이 되기 전부터 살인을 저질렀을 것으로 추측하는 수사관도 있다. 실제로, 테드 번디가 14살이었던, 1961년에 그가 이웃에 살던 8살 앤 메리 버를 납치·살해했을 정황 증거가 있다. 다만, 테드 번디는 이에 대해 부정했으며, 그의 사후에 실시된 DNA 수사는 DNA 확보 실패로 중단되어, 앤 메리 버 실종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5] 정확히는 플로리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 2건으로 재판을 받았는데 하나는 탤러해시의 대학 기숙사에 침입하여 그 안에 있는 여대생 4명을 무참히 폭행, 2명을 살해한 사건과 마지막으로 12세 소녀 킴벌리 리치를 살해한 사건.[6] 참고로 미국 연방 차원에서 사형집행이 이뤄진 오클라호마 폭탄 테러 사건의 범인인 티모시 맥베이의 사형 때조차도 사형 반대 시위가 열렸음을 생각하면, 미국 사회에서 테드 번디가 얼마나 최악의 살인마로 받아들여졌는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7] 게다가 이런 자들은 손쉽게 등쳐먹을 수 있는 순진하고 약한 '호구'들을 노리는 경우가 많다.[8] 사이코패스들의 천박한 지적 깊이와 산만함, 진술의 모순에 대한 내용은 <진단명: 사이코패스>(로버트 D. 헤어)에서 더 자세히 알 수 있다.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994532[9] 리지웨이도 비슷한 케이스라고 하는 경우가 있지만, 그는 실제로 자백 내지 수사 조언을 미끼로 형량 거래를 생각하고 있었고, 이를 위해 검거되자마자 자신이 저지른 죄를 아주 정직하게 털어놓은(물론 양심상 찔려서가 아니라 테드 번디처럼 죽기 싫어서) 점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10] 피해자들의 시신을 주로 유기하던 그 산이기도 하다.[11] 사형 집행 이후 사형수의 시신은 간단한 검사만 하고 무조건 가족에게 인도하여 장례를 치르도록 되어 있다. 사형당한 것은 아니지만, 자살을 택한 사형수 정남규의 시신도 가족들에게 인도한 뒤, 화장하여 장례를 치렀다.[12] 가네코 히데유키 지음. 《세계의 공익광고》 p.56~5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