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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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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Dean_Corll.jpg
이름 딘 코를(Dean Corll)
출생 1939년 12월 24일
사망 1973년 8월 8일 (향년 33세)
신체 180cm, 86kg
범죄유형 연쇄살인, 강간살인

1. 개요2. 일생3. 본격적인 범행4. 코를의 최후5. 그 후6. 신원미상 피해자7. 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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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연쇄살인범. Candy Man, Pied Piper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최소 28명의 사람들을 살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간, 고문을 동반한 살인이었다. 희생자들은 대부분 10대 남성들이었으며, 본격적인 범행은 1970년~1973년 사이이다. 미국 역사상 최악의 연쇄살인마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는 인물.

2. 일생

딘 코를은 1939년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시의 한 가정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그가 7살일 때 이혼하였다. 어릴 때 성격이 내성적이었다고 하며,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려 놀지 못했다고 한다. 부모는 4년 후 재혼하였으나, 얼마 못 가 또 다시 이혼하였다. 그리 순탄한 가정 속에서 자란 것은 아니지만 괜찮은 고등학교까지 입학해 성적도 나쁘지 않게 받는 등 크게 문제되는 행동을 보이진 않았다.

1958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인디애나 주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서 사탕 판매업을 하다 1964년 영장을 받고 군에 입대하였다.[1] 루이지애나에서 기초군사훈련을 받고 그 후 텍사스에 있는 부대로 자대배치를 받은 후 군생활을 하다 군생활을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에 그는 생계를 이유로 상부에 의가사 제대를 끈질기게 신청했다. 결국 의가사 제대가 승인되어 1965년 제대하게 된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제대하고 난 후 자신의 동기들에게 자신이 동성애자인 것 같다고 커밍아웃하였다고 한다.

제대 후 그는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사탕 판매업을 재개하였다. 그는 아이들에게 자주 공짜 사탕을 주었기 때문에 캔디맨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사업을 하면서 그는 데이비드 오웬 브룩스(1955년생으로 당시 12세)를 불러 같이 사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브룩스가 돈이 필요할 때마다 돈을 빌려주거나 공짜로 주면서 친밀도를 쌓았다. 그러나 어느 순간 공짜로 빌려주지 않고 대신 자신에게 펠라치오를 해달라고 요구하고 돈이 급했던 브룩스는 이에 응한다. 이렇게 성적 행위를 하면서 브룩스는 코를의 집까지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서로 친밀한 사이가 되었다.

이 정도에서 끝났으면 그냥 사탕업을 영위하는 한 소아성애 동성애자의 이야기로 끝났을 것이다.

3. 본격적인 범행

하지만 브룩스는 코를이 남자 아이 둘을 강간하고 있는 걸 보게 됐다. 그의 진술에 의하면 코를은 이 당시에도 재미 좀 보고 있는 중이라며 능청을 떨었다고 한다. 그후로 코를은 태연하게 브룩스에게 경찰에게 신고를 안 하는 대가로 자동차를 선물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브룩스는 이러한 광경을 보고도 경찰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 브룩스를 신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봤는지 브룩스에게 제안을 하였다. 범행 대상인 아이를 집으로 끌고올 때마다 200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어이없게도 브룩스는 이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만 이때까지만 해도 연쇄살인을 돕는 역할이라는 걸 처음부터 인지하고 가담한 건 아니었다는 게 브룩스의 주장이다. 나중에 하다 보니까 거기까지 가게 됐고, 게다가 어떤 살해수법으로 어떻게 죽이는지 구체적인 건 본인도 몰랐다고 한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제프리 코넨.jpg
1번째 피해자 제프리 앨런 코넨
코를의 첫 살인은 1970년 9월 25일에 텍사스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제프리 앨런 코넨(Jeffrey Alan Konen)을 납치, 살해한 것이었다. 코넨은 오후 6시 15분경에 휴스턴 업타운 지역 근처의 웨스트헤이머 로드(Westheimer Road)와 사우스 보스 로드(South Voss Road) 모퉁이에서 부모님 집으로 가기 위해 히치하이킹을 하다가 코를의 차에 올라타게 되었고, 코를은 그를 자신의 아파트로 납치하여 살해하고 하이 아일랜드 해변에 유기하였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대니 예이츠.jpg 파일:딘 코를 희생자, 제임스 글래스.jpg
2번째 피해자 대니 예이츠 3번째 피해자 제임스 글래스
브룩스는 돈을 벌기 위해 자신의 친구들까지 유인했다. 1970년 12월 13일, 브룩스는 종교 집회에서 14세의 친구 사이인 제임스 글래스(James Glass)와 대니 마이클 예이츠(Danny Micheal Yates)를 코를의 아파트로 데려왔고, 글래스와 예이츠는 강간당한 후 코를의 창고에 유기된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도널드 월드롭.jpg 파일:딘 코를 희생자, 제리 월드롭.jpg
4번째 피해자 도널드 월드롭 5번째 피해자 제리 린 월드롭
1971년 1월 30일, 브룩스와 코를은 부모님의 집으로 걸어가던 15세 도널드 웨인 월드롭(Donald Wayne Waldrop)과 13세 제리 린 월드롭(Jerry Lynn Waldrop) 형제를 마주친다. 브룩스에 의해 코를의 벤에 올라탄 형제는 아파트로 끌려가 강간을 당한 후 창고에 유기되었다. 형제는 외모가 준수했기 때문에 시신에 전기 코드가 묶이는 등 가혹 행위의 정도가 더했다고 한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데이비드 힐리지스트.jpg 파일:딘 코를 희생자, 그레고리 멜리 윙클.jpg
7번째 피해자 데이비드 힐리지스트 8번째 피해자 그레고리 윙클
3월 9일 오후, 코를은 자전거를 타고 근무하던 주유소로 가던 15세의 랜델 하비(Randell Harvey)를 납치해 총을 쏴 살해했으며, 5월 29일에는 13세 소년 데이비드 힐리지스트(David Hilligiest)와 16세 소년 그레고리 멜리 윙클(Gregory Malley Winkle)을 한번에 납치해 살해하고 보트 창고에 유기하였다. 힐리지스트와 윙클의 부모는 아이들을 찾기 위해 직접 포스터를 만들어 배포하였는데, 소름돋게도 코를의 공범 엘머 헨리는 피해자 데이비드 힐리지스트와 평생 동안 알고 지낸 사이였고, 아이들을 찾는 포스터를 직접 붙이기도 했다고 한다. 윙클의 모친 셀마 윙클(Selma Winkle)은 후에 이 사실을 알고 "끔찍하다"고 표현했다.

피해자들은 대부분 오갈데 없는 가난한 10대 청소년들이었으며 브룩스, 헨리는 자신들의 친구들을 코를에게 팔아먹기까지 했다. 코를은 기존에 사탕을 무료로 나눠 주어 얻은 별명인 캔디맨 명성을 이용하여 아이들에게 공짜 사탕을 주겠다고 하거나, 피해자들과 또래 뻘 정도의 나이인 공범 두 명을 이용하여 집에서 파티를 벌인다는 등의 핑계를 대며 유인하였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루벤 왓슨.jpg
9번째 피해자 루벤 왓슨 헤니
1971년 8월 17일, 코를과 브룩스는 휴스턴의 영화관에서 집으로 걸어가는 17세 루벤 윌퍼드 왓슨 헤니(Ruben Willford Watson Haney)를 만났다. 헤니는 브룩스를 알고 있었고, 브룩스가 코를의 아파트에서 파티를 한다고 하자 이를 따라갔고, 결국 살해당했다. 헤니는 어머니에게 "브룩스와 함께 저녁을 먹을 것"이라고 알렸고, 이는 후에 브룩스가 용의선상에 오르는 결정적 이유가 되었다.

1971년 9월 코를은 다른 아파트로 이사했는데, 브룩스는 나중에 코를이 이 주소에 거주하는 동안 헨리가 공범으로 포섭되기 이전에 살해된 한명[2]을 포함해 두 명[3]을 살해하는것을 도왔다고 자백했으며 그중 한 명은 감금되고 4일 동안이나 살아있었다고 한다.
파일:엘머 헨리.webp
엘머 웨인 헨리
이 시기 이후 엘머 웨인 헨리(Elmer Wayne Henley)라는 15세 소년도 딘이 금전을 주겠다는 미끼로 추가로 범행에 가담케 하였다. 본래 엘머 웨인 헨리 역시 코를의 범행 대상이었으나 헨리가 또래 아이들을 많이 알고 있기 때문이 이용가치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를 공범으로 포섭하였다. 1956년생인 헨리 역시 브룩스와 동일하게 아이들을 꾀어올 때마다 200달러를 지급하겠다는 코를의 제안에 응하고 브룩스와 같이 공범이 된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윌러드 브랜치.jpg
10번째 피해자 윌러드 브랜치
1972년 2월 9일에 코를은 스튜우드(Studewood)에서 윌러드 카몬 브랜치(Willard Karmon “Rusty” Branch Jr.)라는 17세 소년을 마리화나를 피우자는 명목으로 데려와 강간 후 살해했다. 브랜치의 신원은 오랜 시간 밝혀지지 않았고 헨리는 그가 누군지 몰랐으나 최근에 신원이 확인되었다.

2월 19일, 코를은 스큘러 스트리트 925(925 Schuler Street)의 아파트로 이사를 가고, 여기서 헨리도 "잔혹했다"고 묘사할 정도로 끔찍한 범죄를 수 차례 저지르게 된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프랭크 아귀레.jpg
11번째 피해자 프랭크 아귀레
1972년 3월 24일, 헨리, 브룩스, 코를은 하이 아일랜드 비치(High Island Beach) 예일 스트리트의 한 레스토랑에서 헨리의 지인 프랭크 아귀레(Frank Aguirre)라는 18세의 친구를 만났다. 헨리는 아귀레에게 코를의 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마리화나를 피자면서 벤에 태워 아파트로 데려갔다. 헨리는 나중에 코를에게 "그를 죽이지 말라"면서 설득했다고 인터뷰했으나 코를은 거절하고 이전에 다른 소년들을 강간 후 살해했음을 밝혔지만 헨리는 그럼에도 코를을 도와 살인에 가담했다. 코를은 아귀레를 강간하고 살해했다.

대부분은 이런 유인의 방식이었으나 간혹 피해자가 강력히 저항하면 강제로라도 끌고 오기도 했었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마크 스콧.jpg
12번째 피해자 마크 스콧
1972년 4월 20일, 코를은 헨리, 브룩스 모두와 서로 아는 사이였던 17세 마크 스콧(Mark Scott)을 살해했고, 이 과정에서 스콧은 강력하게 저항하며 지니고 있던 칼로 이들을 공격했으나 코를이 총을 겨누며 강제로 납치하여 살해하였다. 스콧은 하이 아일랜드 비치에 유기되었고, 공범들 둘다 스콧과 알고 있던 사이였기에 헨리와 브룩스는 그가 코를에 의해 살해되었다고 인정했으나 스콧의 시신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4]
파일:딘 코를 희생자, 빌리 볼치.jpg 파일:딘 코를 희생자,조니 델롬.jpg
13번째 희생자 빌리 진 볼치 14번째 피해자 조니 레이 델롬
1972년 5월 21일, 일당은 빌리 진 볼치(Billy Gene Baulch Jr.)와 조니 레이 델롬(Johnny Ray Delome)이라는 17세 소년 2명을 납치, 살해했고 이들은 침대에 묶여 강간을 당했다. 코를은 볼치의 목을 졸라 먼저 살해하고 저항하던 델롬의 이마에 총을 쏴 살해했다. 이 범행 이후 코를은 웨스트코트 타워(Westcott Towers)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스티븐 식맨.jpg 파일:딘 코를 희생자, 로이 번턴.png
15번째 희생자 스티븐 식맨 16번째 희생자 로이 유진 번턴
1972년 7월 19일에는 17세 스티븐 식맨(Steven Sickman)이 하이츠에서 열린 파티에서 나와 집으로 가던 길에 납치된 후 교살 당했고 보트 창고에 묻혔고 한달 뒤인 8월 21일에는 가게로 출근하던 19세의 로이 유진 번턴(Roy Eugene Bunton)이 납치되어 총을 2발 맞고 살해당했다. 이 두 피해자는 2011년에 신원이 확인되었다.

어떤 피해자는 딘 코를의 집에서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기까지 했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월리 시모노.jpg 파일:딘 코를 희생자, 리차드 헴브리.jpg
17번째 희생자 월리 제이 시모노 18번째 희생자 리차드 헴브리
1972년 10월 2일, 월리 제이 시모노(Wally Jay Simoneaux)라는 15세 소년과 시모노의 친구 리차드 헴브리(Richard Hembree)가 헴브리의 집으로 가던 중 헨리, 브룩스와 마주쳤고 이들은 브룩스의 콜벳 차량에 유인되어 코를의 웨스트코트 아파트로 이동했고 그날 저녁에 월리 시모노는 집에 전화를 걸어 두려움에 떠는 목소리로 "엄마!" 라고 불렀지만 곧바로 딘이 눈치채 전화가 끊겼고, 이후 살해당했다. 부모는 이를 수상히 여겨 경찰에게 알렸지만 경찰은 그 당시에도 아이들의 장난이라 여기며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리차드 케프너.png
19번째 희생자 리차드 케프너
1972년 11월 15일, 19세의 리처드 알렌 케프너(Richard Alan Kepner)는 전화 부스로 가던 길에 코를에 의해 납치되어 살해당했고, 시신은 하이 아일랜드 비치에 묻혔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조셉 라익스.png
20번째 희생자 조셉 라일스
1973년 1월 20일에 코를은 휴스턴의 스프링 브랜치(Spring Branch) 지역에 있는 윌스 로드(Wirt Road)에 있는 아파트로 이사했고 그는 이 주소로 이사한 지 2주도 안 된 2월 1일에 17세의 조셉 라일스(Joseph Lyles)를 납치해 아파트로 데려와 살해했다.

1973년 3월 1일 코를은 윌스 로드 아파트를 비우고 사우스 포스트 오크 로드(South Post Oak Road)에 있는 아파트에 잠시 거주했으며 이후에 라마 드라이브(2020 Lamar Drive)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라일스가 살해될 무렵 헨리는 코를과 거리를 두려고 이사를 갔으며 이 시기에는 아무런 살인도 발생하지 않았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윌리엄 로렌스.jpg
21번째 희생자 윌리엄 로렌스
1973년 6월 4일, 코를은 브룩스, 그리고 돌아온 헨리와 함께 15세 윌리엄 로렌스(William Lawrence)를 납치, 3일 동안 감금하여 강간하고 목을 졸라 살해한 후 샘 레이번 호수(Lake Sam Rayburn)에 묻었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레이 블랙번.jpg 파일:딘 코를 희생자, 호머 가르시아.jpg
22번째 희생자 레이 블랙번 23번째 희생자 호머 가르시아
1973년 6월 15일에는 20세의 레이먼드 스탠리 블랙번(Raymond Stanley Blackburn)이 납치되어 목이 졸려 살해되었고 7월 7일에는 헨리의 운전 학원 친구였던 15세의 호머 L.가르시아(Homer L.Garcia)가 납치되어 총에 맞아 살해되었다. 이 두 피해자 모두 샘 레이번 호수에 유기되었다.

고작 5일 후인 7월 12일에 코를은 오렌지 카운티에서 17세의 존 매닝 셀라스(John Manning Sellars)를 납치, 살해, 결박 후 하이 아일랜드 해변에 묻었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마이클 볼치.jpg
25번째 희생자 마이클 볼치
1973년 7월, 브룩스는 임신한 애인과 약혼을 하게 되고 이 시기에 코를은 머리를 자르러 가던 15세 마이클 볼치(Michael Baulch)를 납치 후 살해해 샘 레이번 호수에 묻었다. 마이클 볼치는 1972년 5월 21일에 살해된 13번째 희생자 빌리 진 볼치의 동생이었다. 형제가 서로 다른 날에 같은 범죄자에게 같은 범행을 당해 살해당한 것이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마티 존스.jpg
27번째 희생자 마티 존스
7월 25일 오후, 코를과 헨리는 17세 찰스 코블(Charles Cobble)과 18세 마티 존스(Marty Jones)를 한번에 납치, 강간 후 살해하고 보트 창고에 유기했다.
파일:딘 코를 희생자, 제임스 드레이말라.jpg
28번째 희생자 제임스 스탠턴 드레이말라
1972년 8월 3일에 코를과 헨리는 자전거를 타던 13세 제임스 스탠턴 드레이말라(James Stanton Dreymala)를 차에 태우고 라마 드라이브로 가 강간, 살해하고 보트 창고에 유기하였다. 드레이말라 역시 외모가 괜찮았기에 고문대에 묶이는 등 너무나도 잔혹한 성고문을 당했고, 후에 헨리는 코를이 드레이말라를 마음에 들어하는 것 같핬다고 증언했다.

끌려온 아이들은 코를에게 넘겨진 뒤 나체가 된 채 수갑을 채우거나 벽에 내걸린 뒤 온갖 가학적인 성고문을 당했다. 그러다 흥미가 떨어지면 피해자를 총으로 쏴죽이거나 목을 졸라 죽인 뒤 다른 범행 대상을 물색하는 등 이러한 방법으로 희생된 아이들은 최소 28명에 이른다. 시체들은 대부분 야산 혹은 코를 소유의 창고에 묻어서 은닉하였다.

한편 휴스턴시에서는 계속해서 10대 남자아이들이 실종된다는 제보를 받고 있었지만 경찰은 이를 누군가의 조직적인 범행이 아닌 단순 가출로 보았기 때문에 관련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존 웨인 게이시, 데니스 닐슨 사건도 마찬가지로, 20세기에는 남성들을 유괴해 성폭행 뒤 살해한다는 범죄가 다소 생소한 시기였기도 했다. 심지어 이후 90년대까지 미국 경찰은 제프리 다머 사건에서 도망쳐 나온 피해자를 범인에게 돌려보내주는 짓을 하기도 했다.

4. 코를의 최후

그는 1970년부터 1973년까지 휴스턴에서 범행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1973년 8월 8일 공범인 헨리는 자신의 여자친구 론다 루이스 윌리엄스(Rhonda Louise Williams)를 코를의 집으로 데리고 갔다. 여자친구 아버지가 술주정으로 폭력을 일삼아 이를 잠시 피하기 위해 코를의 집에 데려갔던 것. 코를과 상의하지 않은 일이었다. 그 당시 코를의 집에는 브룩스는 없었고 브룩스가 꾀어온 피해자들이 있었다. 코를은 자신의 집에 여자가 왔다는 사실에 굉장히 불쾌해하며 헨리에게 화를 내지만 헨리가 정황을 설명하면서 코를을 설득하였고 코를도 겉으로 수긍하면서 술과 마약을 하며 새벽 내내 지새우다 정신을 잃었다.

그러다 헨리는 잠에서 깨어났다. 그런데 깨어났을 때 그의 몸은 결박되어 있었다. 코를은 헨리가 자신의 집에 여자를 데려왔다는 점에 매우 분노하여 그들을 결박시켰던 것. 자신을 살려달라며 애원하는 헨리에게 코를은 자신이 티모시 커리라고 하는 다른 남자 아이를 강간하고 죽일 테니 헨리 역시 자신의 여자친구를 강간하고 죽이면 살려주겠다고 하였다. 그리하겠다고 약속하며 헨리는 풀어났지만 자신의 여자친구를 죽이기 싫었던 헨리는 이를 망설이다 결국 코를이 방심을 한 틈을 타 그의 권총을 훔쳐 코를을 쏴 죽인다.

그 이후, 헨리는 인생이 끝났다고 판단했는지 경찰에 자수를 하였고 결국 이 추악한 사건의 진상이 세상에 알려진다. 브룩스 역시 헨리의 진술로 체포되었고 처음에는 부정하다가 울면서 경찰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5. 그 후

파일:딘코를따까리.jpg

현장검증 중인 헨리와 브룩스. 상의를 벗은 소년이 헨리, 안경을 쓴 소년이 브룩스다.

휴스턴 경찰은 엄청난 비난을 받았다. 사건 초기만 하더라도 아이들이 실종됐다는 제보에 단순한 가출일 뿐이라고 일축했지만 실상은 뒤에서 온갖 추잡하고 더러운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헨리가 코를을 쏘고 자수를 하지 않았다면 또다른 피해자가 생길 지 모를 일이었다.

사건 현장은 매우 처참했다. 대부분의 시신들은 산속에 묻어두었다. 이를 파헤쳐보니 시신들은 온갖 가학 행위를 짐작케해주는 흔적이 발견되었는데 음모가 뽑힌 흔적, 유리를 요도 속으로 집어 넣은 흔적, 생식기를 칼로 자른 흔적 등 시신이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다. 시체는 총 28구가 발견되었다. 그 외 헨리는 이 외에도 3구의 시체가 더 있다고 주장하였으나 발견되지 않았다.

게다가 헨리와 브룩스가 자백한 내용을 기반으로 밝혀진 것만 이 정도인데 조사와 증언을 종합해 본 결과 코를이 범행과정에서 이 둘을 전적으로 믿지는 않았다는 증거가 계속 나오고 있고, 더욱이 헨리와 브룩스 모두 코를이 범행 중간에 범행을 용이하게 하기 위한 유인책으로 자신들을 끌어들였다고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로는 더 많은 피해자가 더 잔혹하게 살해됐을 것이 확실시된다. 증언을 받던 도중에 브룩스가 헨리는 살인에 직접적으로 가담하였다면서 이야기를 꺼내기도 하였다. 문제는 딘 코를이 사망하는 바람에 정확한 혐의도, 남은 시신도 오리무중이 되어버린 것.

헨리와 브룩스는 결국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고 헨리는 6건의 살인죄를 도왔으나 자수한 점을 참작해 99년형[5], 브룩스는 1건의 살인죄를 도운 혐의로 가석방 불가 종신형을 받았고 2010년대 초 미국 대법원이 미성년자에게 가석방없는 종신형은 부당하다고 판결하여 가석방 가능 종신형으로 감형된 뒤 2021년 현재도 교도소서 복역중에 있다.

유죄로 인정된 범행은 많지 않으나 실제로는 증거가 부족하다뿐 둘 다 사실상 코를의 범행 중 그들이 포섭된 뒤 이뤄진 살인 모두를 도운 공범으로 간주되고 있어 범행당시 미성년자고 죄를 뉘우치고 있다 해도 죄질이 너무 나쁘고 피해자 가족들이 사회 복귀를 반대하는 점을 들어 일정 기간마다 돌아오는 가석방 신청이 모두 기각되고 있으며, 교도소에서 생을 마칠 가능성이 높다. 2020년 5월 24일, 브룩스는 코로나19와 그 외 합병증 및 예전부터 앓았던 병들로 인해 교도소에서 65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헨리는 지금도 교도소에서 조용히 복역하고 있다.

마인드헌터에서 간접적으로 언급되었으며, 헨리를 연기하는 배우가 작중 프로파일러들의 인터뷰 대상으로써 출연하였으며, 프로파일러의 다소 민감한 질문들에 불쾌해하는 장면이 묘사되었다. 성적인 관계가 있었냐와 같은 직접적인 질문은 아니고 헨리가 본인 범죄를 부인하면서 딘에게 피해자를 상납하면서 붙어있고 딘을 존경하는 걸 갖고 파트너 관계에 대해 질문한것이다. 헨리 웨인이 본인은 동성애자가 아니라고 질문을 넘겨짚으면서 부정한 것이고. 애초에 작품 내에서 언급된 건 동성애 관계에 대한 것이 아니라 헨리 웨인의 뻔뻔한 모습, 범행 후 범죄를 부인하는 유형들에 대해 나오는 것이다.

다만 이 사건을 바탕으로 제작된 2017년 독립영화 'In a Madman's World' 에서는 헨리와 브룩스 사이에 묘한 분위기가 암시되긴 한다. 실제로도 딘 코를과 공범들이 그런 관계였는지는 불명. 물론 브룩스가 어린 시절 코를의 회유에 못 이겨 성적 행위를 하긴 했었지만 이미 성인이 되고 나서는 두 명 다 여자친구도 있었던 터라. 설령 동성애 관계였다 해도 누가 봐도 딘에게 종속된 것이 뻔하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이는 아니다.

6. 신원미상 피해자

파일:deancorllunknownvictim.jpg

그렇게 사건이 종결된지 39년이 지난 해, 이 사건이 다시 한 번 주목받게 된다. 2012년 헨리의 소지품에서 한 사진이 발견되었다.[6] 금발을 한 남자 아이가 코를의 집에서 수갑을 찬 채 결박당해 있으며, 옆에는 코를이 피해자를 고문하는데 쓰였던 각종 연장 도구가 보이는 사진이다. 이 남자 아이는 경찰이 이제까지 조사했던 피해자 신원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피해자로 추정되었고 이 아이의 신원을 밝히기 위해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던 헨리, 브룩스를 불러내 사진을 보여주었으나, 정작 그들도 코를의 범행으로 살해됐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 사진 속의 아이가 누구인지는 전혀 모른다고 하였다.[7] 결국 사진 속 남자 아이의 이름은 이름도 밝혀지지 않은채 미상으로 남았는데, 딘 코를의 단독 범행으로 살해된 걸로 추정된다. 범인인 코를이 피살됐고 발견된 시신조차 헨리와 브룩스가 매장위치를 알고 있던 피살자만 발견이 가능했던 것이어서 이 소년은 지금도 생사조차 알 수 없다.

이 소년에 대한 정보가 작성된 위키[8]

7. 미디어




[1] 당시 미국은 복무기간 18개월의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었다.[2] 10번째 피해자 윌러드 브랜치.[3] 윌러드 브랜치 + 11번째 피해자 프랭크 아귀레.[4] 현재 해당 장소는 해수면 상승으로 바다 아래에 잠겨있는 상태이다.[5] 다만 코를을 죽인 부분에 대해서는 정당방위가 인정되어 이 부분은 무죄가 인정되었다.[6] 그가 체포되고 난 후에 이 소지품은 가족에게 있었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경찰에게 밝혀지지 않았다가, 가족들이 그의 소지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경찰에 제보한 것이다.[7] 이들이 연쇄살인을 함께 시작한 게 아니라 중간에 포섭됐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8] 존 도와 제인 도는 미국에서 신원미상의 피해자에 대해 붙이는 일종의 가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