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7-19 20:33:34

자기혐오

1. 설명2. 장단점3. 원인4. 동족혐오5. 치료법6. 창작물

1. 설명

自己嫌惡
self-hatred

자기 자신을 혐오하는 행위. 자학과 비슷하다. 반대말은 자뻑.

근데 경우에 따라 외적으로 자뻑해도 사실은 자기혐오를 가진 경우도 있다. 사실 이것도 제법 흔한 사례. 열등감이 클수록 그것을 부정하려는 방어기제로 허세부리거나 남을 무시하게 되기 때문이다.

자아혐오를 중2병적 사고방식이라고 보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전혀 다른 개념이다. 간단히 말해서 중2병은 철없이 현실과 창작물, 혹은 망상을 혼동해서 기행을 벌이거나 남을 무시하는 성향을 주로 가리킨다. 사춘기 무렵 애니메이션에 심취해서 중2병이란 명칭도 붙었고 자기혐오는 자아존중감이 낮고 후회나 콤플렉스가 크다. 중2병도 열등감을 드러내기도 하지만 현실과 가상을 혼동해서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행동을 중2병이라고 비꼬는 것이지 중2병은 심리학도 아니고 정신의학 용어도 아니다. 정신적 문제라고 할 수 있는 청소년기의 방황이나 우울증이나 자기혐오 등도 중2병에 속한다고 오해하는 것은 위험한 시각이다. 타인혐오나 인간혐오로 넘어가는 케이스가 있어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중2병도 자칭할 뿐이지 타인혐오와 인간혐오는 엄연히 중2병과 다르다.

자아비판과는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2. 장단점

말은 이렇게 하지만 당연히 단점이 훨씬 더 많다. 굳이 장점을 꼽자면 자기혐오를 하는 사람들은 대개 자신에 대해, 정확히는 자신의 단점에 대해 대단히 정확하게 잘 알고 있다. 주의해야 할 것이 자기 자신의 장점 때문에 자기 혐오를 일으킬 수도 있다. 자신의 단점이라 생각하는 것을 보면서 자기혐오를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게 진짜 장점으로 승화가 되려면 자신의 단점을 바로보는 걸 넘어 그걸 고치거나 극복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실상 그게 안되기 때문에 장점으로서 기능하지 못한다.

자신의 단점을 자각하고 그것에 대한 후회나 비하를 반복하다가 정신적으로 버티기 힘들면 단점을 알면서도 오히려 현실도피를 하게 되어서 이기적인 언행을 보이거나 당장 안정을 위해 겉으로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공격적인 성격으로 나타나기도 쉽다. 이런 경우 겉으로 보기엔 정말로 그냥 고집세고 자기잘못 모르는 사람과 구분이 어려울 수 있지만 상담이나 심리검사 등을 하면 차이점이 드러나며, 이런 성향이면 자신의 단점을 지적받거나 자각했을 때 자신이나 타인에게 또다시 혐오받고 좌절과 후회, 자책을 반복하는 지옥순환을 하기 때문에 그걸 방어하려는 기제로 공격성을 보이거나 회피한다.

특히 선천적인 것들, 예를 들면 기질, 외모, 키, 장애 등처럼 본인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요소가 원인이라면 이런 경우의 사람들은 해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기혐오의 강도가 대단히 높다. 결국 단점은 단점대로 계속 남고 자기혐오는 갈수록 깊어진다. 이게 자기혐오 단점의 시작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에게도 친절하지 않은 경우도 적지않다. 자기 자신에게 시달리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에 여유가 없고 비협조적이게 되기 쉽기 때문.

자기혐오를 하는 사람은 남에게 나쁜 평가를 받는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한 설명으로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면 남을 사랑하지 않게 된다', '자신에게 몰입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타인과 적절한 소통을 하기가 힘들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다. 자기애가 너무 부족하면 타인과 멀쩡한 관계를 맺기 어렵긴 하다. 타인과의 관계에서 있는 일에 부정적 해석을 하기 쉽고 내면에 분노나 불만, 후회가 많고 타인도 자신을 안 좋게 평가할 거라는 피해의식으로 타인 혐오도 가지고 남에게 피해주는 유형이 되는 것도 가능하다. 아니면 자기혐오를 하느라 타인의 입장은 잘 안 보이거나.

거울 뉴런세포를 이용한 설명도 있다. 자기혐오를 하는 사람과 만나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과학적으로 자기 자신의 기분이 나빠지며, 이 때문에 인간관계연애에서 피해를 입는 것이다. 이 때문에 좋은 대인관계를 가지고 싶으면 찡그린 침울한 표정으로 있으면 큰 역효과를 보고, 밝은 얼굴과 밝은 목소리로 자신감있게 행동하는 게 좋다.

상대가 관심없는 이야기를 길게 늘어놓기 때문에 짜증내는 면도 크다. A와 B가 있고 B가 자기혐오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한다고 하자. A입장에서는 전혀 관심이 생기지 않는다. 이런 이야기를 좋아해주길 바라는 건 무리한 요구이다. 자기혐오를 하는 사람은 이를 인지하고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사색하는 데 사용한다. 자기혐오를 하는 데 있어서 다른 사람은 오히려 방해물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는 B에게 A가 마냥 다른 주제를 들이밀어도 B입장에선 거부하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타인에게 자기혐오 이야기를 길게 이야기한다면 그것만이 아니라 해결을 위한 방식으로서가 아닌 자기혐오를 주제로 A의 관심을 유도하고 싶은 것이라고 판단하는 게 합리적이다.

자기혐오를 이해하든 이해하지 못하든 자기혐오의 궁극적 이유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상 해결할 수는 없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혐오까지 오게 만드는 원인들은 대부분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라는 것이다. 결국 어떠한 원인으로 자기혐오 -> 원인을 해결할 수 없음 -> 해결할 수 없기에 자기혐오 순으로 계속 이어지게 된다.

3. 원인

자기혐오는 어릴 시절의 충격 혹은 어떠한 사건에 의한 트라우마로 생겼을 수도 있고, 연속된 실패로 인해 좌절해서 생겼을 수도 있다. 심각한 정신병까지 이어질 수도 있기 때문에 주변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 기분나쁘다고 편견을 가지고 대한다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도 있다.

완벽주의자나 가정적인 학대를 받은 사람들에게서도 자주 나타난다. 자신이 목표하는 이상과 자신의 간극이 클 때 보통은 자기합리화를 하지만 어떤 이들은 자기혐오로 귀결된다.

분노가 억압된 자녀들도 자기혐오를 하는 성인으로 클 수 있다. 분노는 누구나 자연스럽게 발생한다. 그러나 이를 표출하지 못하고 찢으려고(fragment) 하는 사람들은 분노의 화살을 자신에게 보내어 해소한다. 분노는 식은 후, 깊은 잠재의식 속에서 죄의식과 공포, 자기혐오로 변질된다.

때로는 성적지향으로 인해 생기기도 한다. 게이레즈비언 등의 성소수자들도 사회의 핍박이나 안좋은 시선 때문에 자신이 비정상이라고 자책하거나 혐오하기도 하며 이종족 같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이종족에게 사랑을 느끼거나 아예 이런 종족으로 살고 싶다는 충족 불가능한 욕구로 인해 자신을 혐오하게 되기도 한다. 이렇게 생긴 자기혐오는 아예 자신을 낳은,제조한 부모사회, 나아가 인간에 대한 혐오로도 발전할 수 있다.

4. 동족혐오

Self Hating의 경우 자신과 같은 특징을 지닌 사람에게 확장될 수도 있고 이런 경우엔 동족혐오가 된다. 이런 현상이 많이 나타난 집단이 유대인(Self Hating Jews), 흑인(Self Hating Black), 게이 (Self Hating Gay/Lesbian) 등이 있다. 자기혐오 유대인들의 경우 나치에 협조한 유대인 경찰 등에 있었다. 현대의 사례는 정치적인 이유도 생겼는데 이스라엘이 건국된 뒤에 이스라엘이 아랍에서 벌이는 일을 보고 유대인이란 정체성을 혐오하게 된 유대인들이 있다. 미국 흑인이나 영국 흑인백인사회에서 사는 흑인들 중에도 백인의 가치관을 내면화해 흑인이란 정체성을 혐오하는 부류가 있다. 동성애자 집단의 경우도 자신은 게이지만, 동성애자들의 인권운동, 거리축제등은 혐오하면서 '조용히 살자'고 주장하는 부류들이 많다.
한국의 자국혐오자나 한국계 출신 혐한들의 경우 한국인과 한국의 사회문화에 대해서 혐오하기 때문에 여기에 해당된다.

5. 치료법

결론부터 말하면 거의 불가능하다. 크게 말해 자기혐오의 원인 자체가 해결이 되거나 그것으로 자기혐오를 하지 않게 눈을 돌릴 수 있게 되거나 둘중 하나는 되어야 하는데, 전자는 원인이 그렇게 심한 문제가 아니었다면 자기혐오까지 올 일도 거의 없다는데 있고, 후자는 자기혐오까지 하게 될 문제라면 이미 눈을 돌리기 힘들 정도로 큰 문제라는 점이 있다.

자기혐오를 하게 되면 모든 희망을 고문으로 여기는 시점까지 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신의 강점과 능력에 대한 칭찬이나 역경을 극복한 사례를 얘기할 경우 통상적인 반응은 대부분 '대단하다, 본받아야겠다'라는 쪽으로 귀결된다.

하지만 자기혐오자들에게 이런 얘기를 하면 오히려 무한히 순환하는 덫에 빠지게 된다. 당사자가 지닌 강점과 능력을 부정하거나 스스로에게는 저런 강점과 능력이 없기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결론이 난다. 오히려 이를 심리적 반응을 시험하기 위한 테스트로 여겨서 거부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가령 역경을 극복한 사례를 얘기할 경우, 다음과 같은 순서를 통해 더 심각한 자기혐오에 빠지게 된다.
  1. 역경을 이겨낸 사례의 주인공과 자신을 비교
  2. 자신의 처지가 주인공보다 조금이라도 좋다고 생각함, 또는 자신의 처지가 주인공보다 더 나쁨.
  3. "나는 더 좋은 환경에 처해 있다. 그런데 왜 나는 내가 마주한 역경을 이겨내지 못하고 있는 거지?", 또는 저 주인공은 나보다 나으니 그나마 저렇게 된거지만 나는 저보다 훨씬 안좋다.
  4. "이런 나는 쓸모가 없다. 더더욱 혐오스럽다."

다시 말해서, 비교대상을 두는 순간부터 실패한다. 자기혐오자에게는 모든 예시가 자기 자신을 깎아내릴 빌미로 작용해 오히려 악순환을 부추긴다. 운명을 신봉하거나 결정론자일수록 이 정도가 심하다. 특히 당사자로서는 정말 환장할 수밖에 없는 게, 이를 자각하고 진심으로 벗어나고 싶은데도 여전히 바뀌지 않은, 혹은 영원히 바뀌지 않을 현실에 절망해서 더 심각하게 자기혐오를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당사자가 죽을 때까지 억지로 참고 산다면 모를까, 사실상 완치는 불가능하다. 당사자가 스스로 해법을 찾지 않는 한 평생 짊어져야 할 마음의 짐인 것이다. 한편 다른 완치가 불가능할 정도로 심리상담사가 골을 썩는 부류도 있는데 그건 자기애성 성격장애다. 극과 극은 통하나보다.

만일 대상의 주변 사람으로서 그의 증세를 완화시키고자 한다면, 절대 섣불리 칭찬하거나 비교하지 말아야 한다. 앞서 서술했듯 칭찬조차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에, 생각의 전환 이전에 행동양식의 전환을 시나브로 이끌어내는 것이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서두르면 모든 일을 망친다. 자기혐오자에게 작지만 유의미한 변화가 일어났다고 해서 그것을 토대로 뭔가 큰 변화를 일으키고자 할 경우, 자기혐오자는 현실의 한계로 인해 반드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따라서 자의가 다분한 행동을 삼가는 것이 급선무다.

6. 창작물

  • 창작물에선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주인공을 상대방이 극복시켜주거나 반대로 주인공이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상대방을 구해주는 전개가 자주 나온다. 또한 작중에서 커플로 이어지기도 하거나 부정적인 경우 흑화 전개로 이어지는 등 꽤 흔한 소재다.내용 자체가 자기혐오/죄책감을 빠져 나오면서 주인공이 바뀌는것도 클리셰라면 클리셰.이러한 연관성 때문인지 자기혐오를 갖고 있으면 대게 PTSD 관련 질환이 있는 경우가 많다.
  • 자기혐오가 심하다못해 남한테까지 피해를 준 케이스는 ★표시.

주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진이 아마존을 사냥하는 이유는 아마존을 만들어낸 자신의 속죄이자 인간을 지키기 위함과 동시에 자기혐오와 죄책감으로 자신을 싸움으로 내던지는 행위이기도 하다. 실제로 죽여야할 아마존에 자기 자신을 포함한것은 물론 틀랄록의 결과를 지켜보고 생존한 아마존을 죽인다는 선택지가 있었음에도 틀랄록이 벌어지는 한 가운데에서 아마존을 사냥했으며 후에는 사명감과 죄책감이 광기로 변질되는 모습까지 보여주었다. 틀랄록의 여파로 육체,정신이 모두 한계에 봉착했음에도 자신이 아마존을 만들었으니 자신의 손으로 죽이겠다고 외치는 모습은 처절함을 넘어 안타깝기까지하다.[2] 그냥 과거나 미래의 취향이 맘에 안 든다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지만, 뉴 시즌 들어와서는 시간 전쟁갈리프레이자기 손으로 끝장냈었던 과거 때문에 자기혐오의 끝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죄책감에서 해방된 12대 닥터조차 시도때도 없이 과거의 자신과 지금의 자신을 까내리기까지.[3] 주로 인격에 문제가 생긴 개체의 경우, 원래 증오밖에 감정이 없는 종족답게 자기혐오에 빠져버린다(9대 닥터때 만난 생존 달렉, 서기 20만년의 달렉 황제의 달렉 제국 전체). 아예 동족혐오로 가버리는 경우(달렉 칸, 러스티)도 있는 편.[4] 과거의/미래의 자신이 맘에 안 든다고 스스로의 과거스스로의 미래서로를 죽여버렸다.[5] 평소에는 천계군 총사령관의 젊은 부관으로서 성격만 좀 무뚝뚝할 뿐인 유능한 남자로 보이지만 호감도를 쌓으면 나오는 특수 대사에서 약하게는 자신은 시간을 투자할만한 인간이 아니다, 함께 하는건 시간 낭비다, 자신의 능력은 발에 채이는 돌멩이처럼 보잘것 없다 에서부터 강하게는 자신은 불행을 부르는 재수없는 놈이다, 자신의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자신만 없었어도 다른 사람들이 살아남았을것이다 라는 말을 하며 자기혐오 성향을 뚜렷하게 드러낸다[6] 자신이 메바의 집합체라는 것에 대해서 혐오하고 있다.다만 자신을 제외한 다른 존재에게 폭력성을 표출하였고 자신에 대해서 메바의 집합체라고 말한 자를 해치려 들었다.[7] 극단적인 다혈질과 괴력 때문에 정상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고 남들과 거리를 두려고 해도 그게 잘 안 되어서 남들과 연관되고 싶다는 이유로 다라즈에 가입했다. 사이카 무쌍 장면에서도 자신이 가장 무서워하는 건 자기 자신이라고 되뇌일 정도.[8] 티가 잘 안 나지만 언행 하나하나에 자신에 대한 부정과 혐오가 묻어나 있다. 자신의 안식과 행복을 부정하고 구원의 손길을 강하게 거부하는 모습을 보면 상당한 중증 자기혐오증인 듯.[9] 10~11권 한정,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고 죽이고 싶어했던 정령이 되었다는 사실에 구토감이 몰려올 정도였다. 그리고 자신의 부모님을 죽인 진 범인의 정체를 알아버려 자신에 대한 증오와 혐오감이 극대화해 반전한다.[10] 보통 사람들은 이해가 불가능 할 정도로 부정적인 성격인데 작가일러스트레이터는 데어라 캐릭터들 중 제일 공감가는 성격이라고[11] 에녹의 죽음과 실험에 성과가 없게 되고,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중에 자기 자신을 미워하게 된다.이로 인해 욕조속에서 자살 했으니 한 사람의 죽음이었으나 이를 이어 모든 사람이 죽게 되었다.[12] 넷다 사실 동일 인물이다.하지만 특히 '속죄와 후회'를 상징하는 죄책감의 아브람이 이 성격을 강렬히 띄는 편.[13] 동시에 네크로필리아에 빠져 살해한 시신을 아름답게 꾸미는 사이코패스 살인마다. 작중 자기혐오로 가면을 쓴다고 언급되어있다.[14] 극장판 반역의 이야기에서 크게 드러나지만 본편인 TVA에서도 본래 성격이 자기혐오적이고 자책이 많다는게 표현되는데 이는 호무라의 과거가 드러나는 10화에서도 묘사된다. 반역의 이야기에서는 본편에서 마도카를 지키지 못한 죄책감과 자기혐오, 그녀의 개념화에 대한 슬픔이 극대화하여 마녀화한다. 포터블 등 다른 매체에서의 마녀화도 그녀의 죄책감과 후회가 많이 반영되는것으로 묘사된다.[15] 마법소녀의 진실을 깨닫고 자신은 좀비나 다름없다고 생각하며 좋아하던 쿄스케에게 말도 못하고 히토미를 원망하는 자신을 저주하고 "난 정말 바보"라며 자조하다가 마녀화한다. 호무라가 원래 자신감과 자존감이 낮은 성격인 것을 점차 숨기는 경우면 이쪽은 본래 자신감있는 성격으로 사건에 뛰어들지만 멘붕하면서 자기혐오에 빠진 경우.[16] 극초반부터 "나는 착한 아이가 아니야" 같은 말을 해대더니 이미 죽은 언니 한겨울(사실은 2년 후의 자신)이 등장한 후로는 강도가 심해져 종국에는 나같은 건 없는 편이 낫다는 말까지 한다. 이는 언니 때문인 듯 한데 무엇이든 잘 해내는 팔방미인인 언니에게 심한 열등감을 느꼈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한없이 다정한 그녀를 미워하지도 못했고, 결국 이런 상반된 감정을 밖으로 분출하지 못하고 심각한 자괴감에 빠져버린 듯하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스포일러] 청각장애가 있는 본인으로 인해 이시다 가 불행해진다고 생각하여 자살을 시도했으나 역으로 이시다 가 추락하고 만다.[18] 이쪽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에 모두 '자신'이 들어가 있다.[19] 자신을 계속 쓰레기 라고 칭하기도 한다.[20] 자세한 것은 엔드 오브 에반게리온 항목 참조. 스포일러 주의.[21] 신지가 평상시의 자기평가도 낮은 자기혐오라면 이쪽은 평상시 자기평가와 프라이드는 자뻑수준으로 높아서 이상적인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하며 거기에 집착하지만 깊은 내면에는 자기혐오를 가진 타입.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스포일러 주의.[22] 프로필 상에서도 큰 키 때문에 자기혐오 기질이 있다고 한다.[23] 자신은 남들에게 피해만 끼치는 구제불능 악당이라며 선한 이들이 자신같은 악과 엮이는 걸 싫어하고 자신이 언제나 시궁창속이란 걸 알고있다 하거나 인덱스가 라스트 오더를 치료하기 위해 노래를 부를 때 라스트 오더와 어울리는 밝은 노래라며 자신같은 어둠은 그런 노래를 못부를 것이라고 하는 등을 보면 자기혐오가 맞고 요미카와 아이호가 아예 12권에서 직접 인증했다.[24] 지금까지 무기를 팔아온 무기상인이고, 요르문간드 계획을 위해 더 많은 무기를 팔아야하는 자신을 경멸한다.[25] 다른 사람을 지키지 못했다는 트라우마와 자책감 때문.[26] 그의 평소 마이페이스적 언행을 보면 의외인데, 사실 내면적으로 자기혐오를 지니고 여러번 자기비하를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자신은 뭣도 아니다, 그냥 살인자일 뿐이다. 같은 말로 자조하는 등.[27] 따돌림으로 인해 자존감이 상당히 낮은 캐릭터였지만, 마츠카제 텐마, 소라노 아오이, 쿠사카 류지에 의해 개화하고 중반부부터는 성격이 많이 밝아진다.[28] 1부에서만 한정. 대전용전에서는 나름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자세한 것은 문서 참고. 스포일러 주의.[29] 어떤 아이의 자살 전까지 무기력하고 인생이 재미없다고 하며 자살까지 시도했는데 정작 자신을 구해준 그녀자살을 오히려 방관하고 부추겼다고 생각하는 캐릭터다. 그 사건 이후로 방구석에 틀어박힌 채로 나오지 않고 니트 생활을 하지만 전뇌소녀를 만난 이후로 모두와 함께 지내지만 가끔씩 자신의 프라이드를 깎아내리며 자책한다. 그 나름대로 노력한 결과의 산물, 결과가 썩 좋지 않다. 자책하는 수준이 PTSD를 가진 듯한 캐릭터다. 루트 XX 때는 거의 세끼 밥먹듯 자책을 하며 그녀를 그리워하며 "차라리 데리고 가줘."라고 말한 뒤 하면 안되는 행동을 한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30] 소설판에서 친애하는 이 자신을 끌어안자 '나 같이 더럽고 혐오스러운 게 형한테 닿아선 안 돼' 라고 생각하며 구토감이 몰려올 정도.[31] '사람을 죽여서는 안된다'는 양아버지의 가르침과 군인으로 무수한 사람들을 살해한 자신의 모순된 처지가 맞물려서 스스로를 혐오스러운 살인자로 여기는데, 이 사고방식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희생하기를 가볍게 여기거나, 자신에게 사랑과 행복을 손에 넣을 자격이 없다고 여기는 형태로 드러난다. 란델 본인도 이것이 현실도피에 지나지 않다고 자각은 하고 있으며 주변 사람들의 지적으로 이를 고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트라우마가 워낙 깊은 데다가 주변 상황이 그를 극한으로 몰아가는 탓에 사실상 제자리걸음 상태.[32] 기억을 잃고 엘자가 기억을 잃어버린 제라르에게 동료를 배신했고 시몬도 죽였다고 하자 자립붕괴마법으로 자살하려 했을 정도였다. 엘자가 말리지 않았다면 이미 죽었고 기억을 모두 되찾은 지금도 죄책감에 시달리고 있다. 또한 자신이 살아있어도 되냐고 생각하고 있다.[33] 어릴 적에 심하다 싶을 정도로 학대를 받아서 자신에 대한 애정이 다 날아갔다. 이 덕에 동료 중에 악성향부류로 봐도 될 정도. 하지만 근본까지 삐뚤어지지 않은 모양인지 민간인 살해나 식인은 껄끄럽게 여기는 편.[34] 예전에 어느 집단을 맡았는데 그 집단이 하필이면 신스로 판단되는 자들을 고문 + 살해하는 것이라 죄책감을 느껴버렸다. 나중에 연인을 만나고 좋게 살고 있었으나 하필 이 여성도...[35] 3장에서 그 동안 쌓인 감정이 폭발할 때 자신이 나약하고 무력한 사람인데도 오만하게 굴었던 것 때문에 자신을 매우 싫어하게 되었다. 하지만 의 위로를 얻은 이후로 얼마 안가 자기혐오가 사라지게 되었다.[36]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본래 능력 있는 유능한 인물이나 김기태무능한 호박이라며 밑도 끝도 없이 갈궈 대서 자신을 무능하다 생각하는 인물로 변해버렸다.[37] 평소에는 자기혐오적인 모습을 보이진 않고 오히려 또라이(...)기질 때문에 묻히지만 사실 마이클 못지 않게 자기혐오가 강하다. 특히 약에 취했을때 내뱉는 대사가 자신은 못난 놈이라고 질책하는 대사를 무수히 내뱉는다.[38]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대모 라자갈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것에 대해서 죄책감과 자기혐오에 시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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