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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출생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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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정의
1.1. 기독교와의 관계
2. 논리3. 인물
3.1. 현실인물3.2. 가상인물
4. 단체5. 커뮤니티6. 관련 어록7. 관련 문서

1. 정의

그러므로 나는 아직까지 살아있는 이들보다 이미 죽은 이들이 더 복되다 하였으며, 그러나 그들 모두보다 태어난 적이 없는 이, 그리하여 태양 아래 범해진 사악한 일들을 보지 못한 이가 더 복되다 하였노라. - 전도서 4:2-3
내가 태어난 날이 저주받았더라면: 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이 축복받지 않았더라면. 그 사람이 저주받았더라면. 그는 내가 자궁에 있을 때 소멸시키지 않았으니 그래서 내 어머니가 나의 무덤이 되고 그녀의 자궁이 항상 훌륭할 수 있는 기회를 놓쳤으니. 왜 나는 자궁에서 나오게 되어 노고와 비애를 보았던가? - 예레미야 20:14-18
그리고 욥이 입을 열어 말했다. “오 내가 태어난 날이 그리고 아이를 임신시킨 남자가 있노라 라고 말한 그 밤이 사라졌더라면. 그날이 어둠이었다면. 그밤이 어둠에 사로잡혔더라면. 그 어둠은 내 어머니의 자궁의 문을 닫지는 않았으니. 왜 나는 자궁에서 죽지 않았나? 어찌하여 내가 어머니의 배에서 나올때 숨지지 않았던가? 내가 그렇게 때 이르게 태어나지 않았던들 나는 가만히 조용하게 숨은 채로 누워 있을텐데. 빛을 한번도 보지 않은 유아처럼.” -욥 3:2-4,6,10,11,13,16
"Sleep is good, death is better; but of course, the best thing would to have never been born at all.''
''잠은 좋다, 죽음은 더 좋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아예 태어나지 않는 것이다." - 하인리히 하이네

反出生主義 / Antinatalism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태어나는 존재에게 있어 해악이기 때문에, 자녀를 낳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윤리관이다.[1]

출생주의는 생물본능죽음에 대한 거부감, 에 대한 애착, 번식 욕구 등에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상이기에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어렵다. 아무래도 내수 증가로 인한 경제 활성화, 노동력 확보, '민족'의 보존 등을 이유로 출산을 장려하는 경향이 있다.[2] 때문에 근대까지만 해도 안락사를 포함한 자살, 독신[3], 딩크족, 동성애 등은 악랄하게 탄압당했고, 현재도 지역에 따라 탄압당하고 있다. 그리고 탄압까진 아닌 지역도 이러한 개인의 선택권을 무시하려는 분위기는 여전하다. 다만 개선이 이뤄지곤 있긴하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세상은 온갖 종류의 고통·불행·이 상존하는 곳이고 실제로 고아를 비롯하여 여러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는 아이들도 많다. 그리고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사는 사람이라 해도 불운하게 닥치는 각종 고통을 피할 수 없다. 또한 인구도 과밀하여 인간이 충분히 귀하게 여겨지지 못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끊임 없이, 동의 없이 부모에 의해 이 세상에 강제로 던져진다(하이데거의 '피투성(던져짐)')."는 것이다. [4] 물론 누군가는 관점이나 환경에 따라 세상에는 쾌락행복을 포함해서 좋은 것도 있다고 말하겠지만, 그것들이 개인의 고통과 불행이라는 부조리를 상쇄할 수는 없으며 이러한 부조리는 상존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5]

출생 반대는 종족적 자살로 해석될 수 있기에 자살에 대한 긍정론과도 일부 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하지만 반출생주의는 살기 힘드니 다같이 당장 죽자는 식의 극단적인 사상이 아니다. 이미 태어난 이상 진화한 생존 본능 때문에 죽고 싶어도 죽기가 쉽지 않고 시도 자체가 고통이니,[6] 이미 태어난 사람은 되도록이면 고통을 피해서 즐겁게 살고 대물림만이라도 하지 말자는 것이 사상의 핵심이다.

인간과 세상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염세주의와도 맥락을 같이 하는 부분이 있다.[7] 이런 사상들이 자연과학무신론적 사고를 포함해서 인간의 이성이 급격하게 발전하던 근대부터 확립되기 시작한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현대코펜하겐 해석 이후에도 여전히 거시계는 결정적이며, 뇌손상·뇌수술·호르몬 등으로 인해 성격이 바뀌기도 한다. 또한 최면 같은 자극은 물론이고 아무 이유 없이 시간만 지나도 쉽게 기억이 변조되곤 한다.[8] 영혼·자유의지·사후세계· 등은 존재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으나 존재 가정이 불필요하다.[9] 즉 과학적인 관점으로는 반출생주의를 배격하는 일반 종교의 교리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이 부분 또한 종교적, 신비주의적 사고를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이 반출생주의 사상에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사실 종교적·신비주의적 입장이라고 모두 반출생주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은 교이적 이유나 정치 기득권과 타협한 종교 기득권에 의해 이단, 사이비로 몰려 탄압돼왔다. 카타리파 문서 참고.

인도 계통의 종교[10]윤회 사상도 반출생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고통의 유전적 대물림을 은유한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불교에서는 세상을 고통으로 가득찬 곳으로, 인간을 윤회의 고통에 시달리는 존재로 인식하는데, 이는 반출생주의와 상통하는 면이 있다.[11] 마찬가지 관점에서, 해탈열반 개념 또한 깨달음을 통해 번식 욕구라는 번뇌를 극복하고 되풀이되는 삶과 고통의 굴레를 거부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1.1. 기독교와의 관계

기독교는 반출생주의(Antinatalism)가 배격하는 출생주의(Natalism)를 기본 이념으로 삼는다.[12] 어차피 정치 기득권이나 종교 기득권이나 부양받을 피지배 계층 인구가 많을 수록 좋은게 보통이고 이런 면에서는 서로 이해가 일치하는 편이다. 또, 실제로 인구가 너무 적으면 그 폐해가 생존하는 하위 계층에 까지 미치기도 한다. 따라서 출생주의는 순수한 종교적 목적이 아닌, 지배층과 종교가 유착[13]하여 상부상조한 결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어쨌든 반출생주의는 태생적으로 기독교와 상극에 가깝다. 인물 항목에서도 유추할 수 있듯, 기독교의 위세가 절정을 이루던 시대에는 반출생주의적인 화제를 꺼내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했다.

반출생주의 견해에서 볼때, 기독교는 그 신앙의 대상부터가 논란이 있는 종교이다. 그리고 기독교의 적잖은 사람들이 인류가 의 존재로 인해 고통받는 이유를 자유의지 탓으로 돌리는데[14], 성서비평학의 견해말고 전통적 성서무오설의 입장을 따르면 아담하와가 창조주에 의해 강제로 주입당한 자유의지로 인해 창조주의 맘에 안 드는 일을 하고 에덴에서 추방당했다는 이유로 인류 전체에게 연좌제원죄를 적용, 병 주고 약 주는 식의 '대속' 신앙을 요구하는 것이다. 사실 이것 또한 기독교 교리의 문제라기보다 교리를 인간이 해석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로 볼 수 있다. 결국 반출생주의는 현대의 기독교라는 것은 기독교 교리의 여러가지 해석을 가진 사람들 상호간의 힘의 대결이라는 상황에 의해 정리되고 쌓아올려진 특정한 한 형태에 불과하다고 해석하는 것.

위 신학적 문제와 비자발적 불신자의 처우 문제[15] 등 관련된 보다 자세한 사항은 지옥(기독교) 문서 참고.

2. 논리

일찍이 쇼펜하우어, 에밀 시오랑 등이 옹호하며 발전시켜왔고 여러 철학자들 사이에서 논의가 있어온 오래된 사상이다. 최근에 다시 각광받기 시작한 논리로는 남아공 출신의 철학자이자 작가이고 현재 케이프 타운 대학교의 철학 교수로 재직 중인 데이비드 베너타 David Benatar의 저서 Better never to have been (부제: the harm of coming into existence)에서 언급된 부분이 있다.한국어 번역본

이 책에 따르면,
  • the presence of pain is bad; 고통은 나쁘다.
  • the presence of pleasure is good; 기쁨은 좋다.
  • the absence of pain is good, even if that good is not enjoyed by anyone; 고통의 부재는 좋다.(좋음을 즐길 존재가 세상에 없더라도 그 존재의 잠재적인 이익을 기준으로 본다면)
  • the absence of pleasure is not bad unless there is somebody for whom this absence is a deprivation. 기쁨의 부재는 나쁘지 않다. (단 이 부재가 욕망의 억압과 같은 박탈이 아닌 경우 -> 박탈을 당할 존재가 처음부터 없다면 박탈이 일어날 수 없다)

태어나는 것은 고통과 기쁨 모두 있지만, 태어나지 않는 것은 좋은 고통의 부재와 나쁘지 않은 기쁨의 부재만 있으므로 후자가 더 낫다는 주장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상식적인 사실들로부터 뒷받침된다.
  • 행복한 사람을 새롭게 만들어야 할 도덕적 의무는 없지만, 불행한 사람을 새롭게 만들지 말아야 할 도덕적 의무는 있다.
  • 아이를 만들어야 할 이유로서 존재하지도 않는 아이의 이익을 드는 것은 이상하지만, 아이를 만들지 않아야 할 이유로서 그 아이가 피하게 될 고통을 제시하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
  • 우리는 우리의 결정으로 태어난 누군가가 고통을 느낌으로 인해 그런 결정을 후회할 수 있지만, 우리의 결정으로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가 기쁨을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인해 그 결정을 후회를 하진 않는다.
  • 우리는 누군가 태어나고 그가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끼지만, 누군가 태어나지 않음으로써 그가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에 슬픔을 느끼지 않는다. 즉 고통과 쾌락은 비대칭적이라는 것이 핵심이다.[16]

즉 기쁨은 있으면 좋지만 애초에 없어도 나쁜 것이 아닌 만큼, 삶에 얼마만큼의 양이 있건 반드시 아이를 낳도록 정당화할 근거는 되지 못하며 오직 고통의 양만이 문제가 된다. 그리고 엄밀히 말해 삶에 극심한 고통이 조금이라도 섞여있다면, 그것은 태어남으로써 손해를 본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 베너타의 생각이다(기쁨과 고통은 수익과 비용처럼 상쇄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삶이든 간에 그러한 고통을 완전히 피할 수 있을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며 실제로는 훨씬 더 많은 고통의 가능성이 만연해있다. 따라서 삶은 비존재에서 시작할만한 가치를 가지지 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태어나지 않는 것이 낫다는 주장에 직관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삶을 부여받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하지만, 베너타는 그것은 인간이 삶에 존재하는 고통을 직시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며 다음과 같은 비합리적인 심리적 기제에 의한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이 생활의 질(life's quality)에 대해 비이성적인 평가를 하는 이유
  • 긍정주의를 향한 편향: 우리는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를 긍정적 관점으로 왜곡시켜 보는 경향이 있다. (추억보정, 정신승리 등)
  • 적응: 우리는 우리의 주변상황에 적응을 해서, 상황이 더 나빠지면 행복의 기준을 그에 맞춰 낮추고 근거없이 미래는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한다.
  • 비교: 우리는 주변의 다른 이들과 비교하여 우리 삶을 판단하며, 대부분 자신보다 더 나쁜 것과 비교해서 우리 자신의 행복의 가치를 과대평가한다.보다 상세하게 정리한 리뷰

요컨대 우리가 우리의 직관에 반하는 사상에 거부감이 드는 것은 당연하지만, 인간의 직관은 생각보다 훨씬 비합리적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그 자체로 타당하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가령 과거의 노예제, 여성차별, 아동강제노동 등 오늘날 당연히 비합리적인 악습이라고 받아들여지는 것들 역시 당대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인간의 이성이 성장하면서 그러한 고통을 주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에 현재는 철폐된 것이다. 반출생주의자들은 (극단적으로 보이기는 하지만)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마찬가지로 새로운 생명을 세계에 던지는 것 역시 이성적으로 따지자면 잘못된 것이라 주장한다. 앞서 본 베너타의 논증처럼 이 주장은 인간 고통에 대한 염려와 이성적인 판단에 기초한 것이지, 이것을 세상에 아무 가치나 도덕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허무주의의 소산으로 보는 것은 사상의 겉면만 보고 오해하는 것에 불과하다.

3. 인물

3.1. 현실인물

  • 아르투르 쇼펜하우어
  • 에밀 시오랑: 루마니아계 프랑스인 시인, 철학자.
  • 소포클레스
  • 조지 산타야나
  • 아르튀르 랭보
  • 데이비드 베너타
  • 페테르 베셀 삽페: <마지막 메시아>라는 그의 책이 그의 반출생주의 사상을 뒷받침한다. 자신의 신념을 위해 두번 결혼하였으나 아이는 갖지 않았다. 그래도 이 항목에 있는 인물들 중에서는 온건파에 속한다.
  • Joe튜브: 과거 그의 영상을 보던 한 댓글러가 앞으로 노예생산(출산)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노예생산은 자신에게서 끝낸다고 하자 하트를 날리며 BINGO란 답글을 남긴 것으로 보아 확고한 반출생주의자다. 전형적인 현대형 반출생주의자.

3.2. 가상인물

4. 단체

  • 카타리파 - 카타리파는 결혼을 인정하지 않고, 생식을 목적으로 하는 성행위를 인정하지 않았다. 자손을 번식하는 것은 '육체의 노예'를 만들어내는 행위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가톨릭 측에서는 이들이 '생식에 연결되지 않는 성행위'는 장려하였다고 비난하였다.
  • 자발적 인류 멸종 운동 - Voluntary Human Extinction Movement, 줄여서 VHEMT(비어먼트). 미국의 환경운동가 레스 나이트(Les U. Knight)로부터 시작된 사회 운동으로, 출산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점에서 반출생주의와 공통점이 있다.[17] VHEMT 지지자들은 반출생주의가 인구과잉이나 기아 문제, 자원 고갈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도나 중국 등 몇몇 나라는 가정 내 아이 수를 줄이는 정책을 채용하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모든 출산을 부정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심각한 인구과잉 염려나 나라의 자원 소비 부담을 억제하는 데 도움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자살 혹은 살인을 권장하거나, 강제 불임수술을 통해 사람들이 출산을 못 하게 하자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이미 태어난 사람들은 어쩔 수 없으니 최대한 오래, 행복하게 살다 가자는 것(May we live long and die out)이 VHEMT의 모토다.
  • 디시인사이드 일부 갤러리와 디시위키 - 사이트가 사이트답게 반출생주의자들이 넘치며 디시위키의 반출생주의자 문서에서는 항목에 나온 인물들을 성인이라며 찬양하는 모습을 보인다.

5. 커뮤니티

6. 관련 어록

" “내가 스무 살도 되기 전에 알아 버렸다고 자부할 수 있는 것 하나는 아이를 낳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결혼, 가족, 더 나아가 모든 사회 규범에 대한 내 두려움은 거기서 온다. 자기 자신의 결함을 자식에게 전달하는 것, 그래서 자신이 겪었던 시련을, 어쩌면 더 지독한 시련을 자식에게 강요하는 것은 범죄 행위이다. 내 불행과 내 고통을 이어받을 사람을 낳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부모들이란 모두 무책임한 자들이거나 살인자들이다.” " - 에밀 시오랑
“내가 문필가의 길로 잘못 든 것은 살인이나 자살을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무능력, 이 비겁함이 나를 필경쟁이로 만들었다.” - 에밀 시오랑

7. 관련 문서



[1] 비동일성 문제의 해결방법 중 하나로 제시되기도 한다.[2] 물론 이에 반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례도 있다. 계획생육정책 등 여러 국가가 시행한 산아제한정책이 바로 그것. 그러나 이것은 당시 맬서스의 경고 등으로 제기된 인구 과다로 인한 사회 붕괴 우려 때문이었으므로 사회 유지를 추구하는 출산장려정책과 사실상 목적이 같으며 본질적으로는 다를 게 없다. 실제로 맬서스 트랩 이론이 무너지고 당장 더 문제가 되는 저출산 고령화가 진행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선 상태.[3] 가톨릭의 경우 성직자에 한해 독신을 요구하지만, 이는 세습을 막기 위한 수단에 가깝다.[4] 소위 '낳음당했다.', '낳은 죄' 등으로 표현되는 부모와 자식 간의 비대칭성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널 낳아줬으니 감사히 여기고 효도해라.'라는 적반하장(반출생주의이니 만큼 낳은 것이 나쁜 행동이 되기에)의 세뇌교육을 빙자해 이루어져온 게 현실이다. 이 정도는 아니더라도 자신이 욕구를 못 이겨 낳은 이상 당연한 양육 의무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키워줬다는 생색을 내는 경우가 있다.[5] 질서혼돈, 논리비논리는 공존하기에 구분될 수 있는 개념이다. 설령 다수의 쾌락과 행복이 존재한다고 가정하더라도 그것이 소수의 불행과 고통을 정당화할 순 없는데, 심지어 현실의 불행과 고통이 소수라고 볼 수도 없다.[6] 국익과 사회 유지를 위해 개인의 안락사는 매우 까다롭게 제약하는 게 현실이다. 그리고 개인이 알아서 안락한 수단으로 자살하더라도 양가감정을 느끼는 인간의 특성상 행동으로 옮기는 과정 자체가 정신적 고통이다.[7] 이전에는 허무주의와의 관련성을 서술했지만, 이것은 인생을 부정적으로 본다는 점만 보고 착각하는 것이다. 허무주의는 세상에 절대적인 가치나 도덕이 '없다고' 주장하는 반면, 반출생주의는 태어나지 않는 것이 더 낫다는 것을, 당위적으로 바른 선택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주장하기 때문에 상대주의나 허무주의와 양립할 수 없다.[8] 가짜 기억, 기억 조작, 세뇌 문서 참고.[9] 현상의 원인으로 가정한 존재가 있든 말든 동일하게 해당 현상이 설명 가능하다면 오컴의 면도날 원칙에 의거해서 생략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에테르 가설, 플로지스톤 가설, 날아다니는 스파게티 괴물 문서 참조.[10] 카르마힌두교카스트 제도는 수저계급론 문서에서도 언급된다.[11] 영문 위키의 반출생주의 문서에도 짤막하게 기재되어 있다.[12] 다만 기독교 내 근본주의 또는 교조주의적 입장을 제외하면 출생주의가 꼭 절대적인 교리라고 할 수는 없다. 그 신학적 근거인 '생육하고 번성하라' 구절에 대한 해석과 적용은 다양할 수 있기 때문. 출생주의 문서와 지옥(기독교) 문서의 비판 항목 참고. 물론 출생주의가 기독교 주류의 입장인 것은 분명하고, 굳이 나서서 대놓고 출생주의를 부정하는 종파도 딱히 보이지 않는 건 사실이다. 과거에 그런 종파가 있긴 했지만, 개요와 단체 항목에서 서술했듯이 진작 말살, 배격되었다.[13] 현대의 정경유착, 경언유착 등의 문제와 마찬가지로 정치 세력과 대형 교회의 유착 정황은 자주 목격된다. 미국의 초대형 교회는 대기업과도 맞먹는다. 물론 이는 개신교만의 문제는 아니고, 종교의 자유가 없는 공산국가나 일부 예외 사료를 제외하면 전세계 과거와 현재에서 찾아볼 수 있다.[14] 악의 문제 문서 참고[15] 개신교 주류 주장에 따르면, 신앙을 알고 선택할 기회 없이 사망한 아이 등의 경우 천국에 간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주장은 해석하기에 따라서는 영아 살해, 순교 강요, 종교의 자유 박탈과 전도 금지를 포함한 대대적인 종교 탄압 등 극단적이고 반사회적인 범죄 행위가 타인을 천국에 보내기 위한 수단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실제로 아메리카 원주민 영아를 세례해주고 바로 살해한 스페인인들의 사례도 있다. 물론 기독교에서는 이런 생각 자체가 신의 뜻에 반하고 용서받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므로 생각 자체를 하면 안 된다고 말한다.[16] 이 때문에 베나타는 자신의 주장이 인간뿐만 아니라 고통과 쾌락을 느낄 수 있는 모든 유정적 존재(sentient being)에 적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17] 다만 반출생주의는 출생이 태어나는 이에게 나쁘다는 사실에 초점을 두는 반면, 이들은 인간이 다른 생물과 자연에 미치는 해악에 집중하기 때문에 주장의 포인트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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