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22 21: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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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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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쿠로스
Έπίκουρος | Epicurus
출생 기원전 341년경
그리스 사모스 섬
사망 기원전 271년경 (향년 72세)
그리스 아테네
직업 철학자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창시)

1. 개요2. 생애3. 사상
3.1. 쾌락주의3.2. 죽음에 대하여3.3. 에피쿠로스의 신학
3.3.1. 단편 374, 에피쿠로스의 역설
4. 어록5. 평가6. 한국어 번역7. 여담

[clearfix]

1. 개요

헬레니즘 시대의 철학자, 에피쿠로스 학파의 창시자. 쾌락주의 철학을 펼쳤다.

2. 생애

에피쿠로스는 기원전 341년, 당시 아테네의 식민지였던 사모스 섬에서 태어나고 성장했다. 14세에 학교 선생들이 헤시오도스의 책에 나오는 혼돈 개념을 그에게 설명해 주지 못하자 선생을 얕잡아 보게 되어 철학을 접했다. 18세에 아테네로 넘어가 2년간 군복무를 했고, 학교 교사로 잠시 활동하다가 데모크리토스의 책을 만나고 본격적으로 철학을 하기 시작했다.[2]

32세에는 레스보스 섬의 뮈틸레네와 람사코스에서 학파를 세우고 5년을 지냈다. 그 후 다시 아테네로 돌아와서 철학 공동체인 '정원'을 세우고 35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쳤다. '정원'의 구성원에는 여자와 노예는 물론 심지어 창녀도 속해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에피쿠로스를 비웃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를 비웃던 사람들도 에피쿠로스와 제자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제자와 친구들과 우정을 나누며 72세까지 살다가 요로 결석과 이질로 14일간 앓다가 죽었다. 그때 그는 따뜻한 물로 데워진 청동 욕조에 들어가 물을 섞지 않은 포도주를 가져오게 해 한 번에 들이켰다고 한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자신의 가르침을 기억하라고 지시하고서 숨을 거두었다.

아테네 사람들은 동상을 세워 그의 명예를 기렸다. 그의 친구들은 하나의 도시 국가를 넘어설 정도로 그 수가 많았으며, 그의 모든 제자들은 그의 학문적인 매력에 단단히 붙들렸다. 평소에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인간애가 있어서 많은 사랑을 받았고, 친구들이 도처에서 그에게로 와서 그의 정원에서 그와 함께 살았던 덕분인지, 다른 학파들은 계보가 거의 끊어졌지만 그의 학파는 계보가 언제나 계속 이어지면서 무수히 많은 제자들을 차례로 배출하였다.

3. 사상

한국어 자막이 제공된다.
당대에 에피쿠로스가 남긴 저서는 300편이 넘으나[3] 지금까지 전해 내려오는 것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지은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 나오는 핵심 교설과 3편의 편지뿐이다.[4] 그 밖에는 파편들이거나 그가 살았던 때와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기에 에피쿠로스를 비판한 학자들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특히, 로마 시대의 철학자 키케로의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에서 에피쿠로스학파를 비판하면서 언급한 부분이 제일 많이 언급된다. 파편 중에는 18세기 베수비오산 근처의 헤르쿨라네움에서 발굴된 『자연에 관하여』의 파피루스 일부 단편들이 전해진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은 데모크리토스를 계승하여 이를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인식론에서의 감각과 자연학에서의 원자론적 관점이 유사하며, 윤리학적 면에 있어서도 데모크리토스의 '쾌활함'과 에피쿠로스의 '쾌락'이 정적으로 절제된 쾌락(쾌활함)이라는 점에서 유사하다.

3.1. 쾌락주의

쾌락이 인생의 목적이라고 우리가 말할 때, 무지하거나 우리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거나 오해하는 일부 사람들의 생각처럼 방탕한 자의 쾌락을 말한다거나 관능적인 향락에서 주어지는 쾌락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몸에 괴로움도 없고 영혼에 동요도 없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네. 유쾌한 삶을 낳는 것은 계속해서 술판을 벌이고 흥청거리는 데 있지 않으며, 소년이나 여인들과 성적 교제를 즐기는데 있는 것도 아니며, 생선이나 그 밖에 사치스러운 식탁의 진미를 즐기는 데 있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네. 오히려 모든 선택과 회피의 원인들을 찾아내거나 가장 큰 소동이 영혼을 장악하는 데 근거가 되는 의견들을 몰아내는 각성한 헤아림의 능력이 유쾌한 삶을 낳는 것이다.
―『메노케이우스에게 보낸 편지』 131[5]

우리는 쾌락을 선천적으로 좋은 것이라 인식하고, 쾌락을 기준으로 모든 선택과 기피를 행한다. 하지만, 모든 쾌락을 선택하지는 않는다. 어떤 쾌락은 종종 지나쳐서 불쾌감을 더 많이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반대로 어떤 괴로움은 참고 견딜 때 후에 더 큰 쾌락으로 돌아올 때도 있다. 에피쿠로스는 이러한 쾌락과 괴로움을 상호 비교 측정하여 무엇이 이익이고 무엇이 불이익인지를 판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술을 먹거나 성관계를 하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 방탕한 생활은 지나치면 불쾌감을 유발하기 때문에 우리의 삶에 불이익이다. 그리고 이렇게 방탕한 쾌락을 제거하다 보면 인간에게 이익이 되는 진정한 쾌락은, '몸의 건강과 영혼의 평정'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따라서 에피쿠로스는 '몸에 괴로움이 없고 영혼에 동요도 없는 상태'를 추구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살아가는데 있어서 고통이 제거될 만큼의 꼭 필요한 쾌락만 충족되면 되는 것이다.[6]

그 필요한 쾌락의 충족은, 몸에 필요한 쾌락과 영혼에 필요한 쾌락의 두 가지로 나누어서 설명할 수 있다. 몸에 대해서는 생존에 필요한 만큼의 욕망을 충족하여 몸에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될 것을 추구하는데, 이를 아포니아(ἀπονία)라고 부른다. 영혼에 대해서는 망상과 죽음에 대한 공포 등이 인간에게 정신적인 고통을 주기 때문에 우주와 죽음, 욕망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통해 영혼이 동요하지 않는 상태가 될 것을 추구하는데, 이를 아타락시아(ἀταραξία)라고 한다.[7] 그리고 이를 통해 '고통이 부재'하게 되면 인간은 행복한 삶을 즐기고 있는 것이라고 에피쿠로스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에피쿠로스가 말하는 쾌락은 최소한의 필요한 쾌락이 충족되는 것을 말한다. 단, 지속적으로 최소한의 필요한 쾌락이 충족되고 그 삶에 익숙해져서 그것에 만족할 수 있다면, 간혹 찾아오는 '사치스런 쾌락'을 즐기는 것을 에피쿠로스는 막지 않는다.[8] 따라서 쾌락에 절제를 요구하는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무조건적인 금욕주의를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없어도 행복하고 있으면 더 좋고!

3.2. 죽음에 대하여

죽음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습관을 들이도록 하게. 좋은 것과 나쁜 것은 모두 감각에 달려 있지만, 죽음은 감각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음이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올바른 인식은 우리로 하여금 죽게 되어 있는 삶을 즐길 수 있게 해준다. 그것은 삶에 무한한 시간을 부여함으로써가 아니라, 불사에 대한 동경을 제거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 따라서 죽음은 우리에게 나쁜 것들 중에서 가장 전율할 만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아 있을 때는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지 않고, 죽음이 우리 곁에 와 있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죽음은 살아 있는 자들과도 관계가 없고 죽은 자들과도 관계가 없다. 왜냐하면 살아 있는 자들에게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고, 죽은 자들은 그들 자신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메노케이우스에게 보낸 편지』 124[9]

에피쿠로스는 육신의 쾌락보다 사유의 쾌락을 더 높게 평가한다. 육신의 쾌락은 결핍에 따른 괴로움이 제거되면 증가하지 않고 단지 다양화될 따름이지만, 사유의 쾌락은 '사유에 가장 큰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에 대한 이성적인 헤아림에 의해 그 끝까지 달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유에 가장 큰 두려움을 갖게 하는 것'이 바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다. 따라서 사유를 통해 육신의 목적과 한계를 깊이 헤아려서 죽음의 공포를 극복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죽음이 우리 삶에 아무것도 아닌 이유는 무엇인가? 에피쿠로스의 논리에 따르면, 우리가 살아 있을 때는 살아 있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죽었을 때는 우리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우리의 삶을 굳이 괴로움에 빠뜨릴 필요는 없다. 물론 그렇다고 죽음을 두려할 필요가 없으니 '빨리 죽는 게 낫다'는 식의 비관론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에피쿠로스는 "삶을 회피하지도 않고 삶의 중단을 두려워하지도 않아야 한다"면서, "가장 나쁜 것은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태어난 이상 최대한 빨리 하데스의 문을 통과하도록 할 것."[10]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살아 있을 때 죽음의 공포 없이 삶을 누리라는 것이며, 죽음을 두려할 필요가 없다고 해서 빨리 죽어도 된다는 얘기는 아니다.

에피쿠로스는 죽음을 두려워하는 사람만큼이나 죽음을 갈구하는 사람들을 나무라며 이렇게 말하네.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삶의 방식을 그대가 만들어놓고, 삶에 지쳐서 죽음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터무니없는 짓이다.' 마찬가지로 그는 다른 곳에서 말하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삶을 불안하게 만들었으면서 죽음을 추구하는 것만큼 터무니없는 짓이 어디 있는가?'
― 단편 496. 세네카, 『루킬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24. 22-23 #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난 사람은 이제 자신의 한정된 삶을 나름대로 괴로움 없이 행복하게 살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에피쿠로스는, 우리의 한정된 삶의 행복[11]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바로 우정이라고 말한다.[12] 외부 상황들에서 주어지는 불안거리를 잘 다스리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은 자신과 친숙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은 그렇게 했고, 도저히 그렇게 할 수 없는 것들은 그것이 설사 득이 된다고 하더라도 피했다. 이렇게 우정을 쌓음으로써 불안에서 안전을 보장받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이들은 모두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이웃들이 서로 가장 즐거운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것이다.[13]

3.3. 에피쿠로스의 신학

고대 서양 무신론의 대표 주자인 양 알려져 있으나, 엄밀히 말해서 에피쿠로스는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신은 불멸하며 살아 있는 지복[14]의 존재이기에 행복하기 위해서 믿어야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 신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말하듯 나쁜 사람에게 벌을 주고 착한 사람에게 상을 주는 그런 신은 아니다. 그 신은 우주의 운행에 관여하지 않는다.[15] 그리고 에피쿠로스에 따르면 영혼은 원자로 구성되어 있어 죽은 이후에 영혼은 단지 흩어질 뿐 천국에 가는 것은 아니다.[16] 게다가 예언을 믿지 않았고, 설사 예언이 맞아떨어진다고 할지라도 예언에 따라 일어난 일에 아무런 신경을 쓰지 않았다.[17]

즉 에피쿠로스는 무신론자라기보다는 이신론자라고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따라서 에피쿠로스의 이러한 신 개념은, 세상을 주무르는 초월적인 인격신의 개념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에서는 에피쿠로스를 '유신론자를 가장한 무신론자'라고 보았고, 그 때문에 중세에 이르러선 그의 책들은 대부분 다 불에 태워졌다.

3.3.1. 단편 374, 에피쿠로스의 역설

신은 악을 없애기를 원하지만 그렇게 할 수 없다. 아니면 그는 악을 없앨 수 있지만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 아니면 그는 악을 없애기를 원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 아니면 악을 없애기를 원하고 그렇게 할 수도 있다.

만약 그가 악을 없애길 원하지만 그것을 할 수 없다면 그는 무력하다. 이것은 신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신이 악을 없앨 수 있지만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그는 악의적인 것이다. 이것도 똑같이 신에게 적절치 않다.
만일 신이 악을 없애길 원하지도 않고 할 수도 없다면 그는 악의적이고 무력하다. 그러므로 신이라고 할 수 없다.
신이 악을 없앨 수도 있고 그것을 원하기도 한다면, 이것이야말로 유일하게 신에 합당한 일이지만 왜 악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왜 신은 악을 없애지 않는가?
―단편 374. 락탄티우스, 『하나님의 분노에 대하여』 13 #

악의 문제 중 대표적인 예로 항상 언급되는 역설이다. 오로지 3세기 초의 그리스도교 신학자 락탄티우스의 저서에만 등장하며,[18] 그에 따르면 에피쿠로스가 말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학자들은 이 주장이 실제로 에피쿠로스가 한 말인지에 대해서는 의심하고 있다. 왜냐하면 에피쿠로스가 이해했던 신은 기독교 유일신이 아니라 그리스의 신들을 말하는 것이었고, 그리스의 신들은 '선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당시 3세기경에 에피쿠로스는 무신론자로 알려졌었고 위의 역설 역시 무신론자의 대표적인 논리로 알려져 있었다.

데이비드 흄은 '(성경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인격적인 신은 없다[19]고 보는 것이 더 개연성이 있다'는 논지의 주장을 하기 위해 위의 역설을 인용한다.

4. 어록

Μήτε νέος τις ὢν μελλέτω φιλοσοφεῖν, μήτε γέρων ὑπάρχων κοπιάτω φιλοσοφῶν· οὔτε γὰρ ἄωρος οὐδείς ἐστιν οὔτε πάρωρος πρὸς τὸ κατὰ ψυχὴν ὑγιαῖνον. ὁ δὲ λέγων ἢ μήπω τοῦ φιλοσοφεῖν ὑπάρχειν ὥραν ἢ παρεληλυθέναι τὴν ὥραν ὅμοιός ἐστι τῷ λέγοντι πρὸς εὐδαιμονίαν ἢ μὴ παρεῖναι τὴν ὥραν ἢ μηκέτι εἶναι.
젊다고 해서 철학하는 것을 미루어서도 안 되고 늙었다고 해서 철학하는 것을 피곤해해서도 안 된다. 영혼의 건강을 위해서는 너무 이른 나이도 없고 너무 늦은 나이도 없기 때문이다. 철학을 시작할 나이가 아직 되지 않았다거나 이미 지나갔다고 말하는 사람은 행복해지기에는 아직 나이가 안 됐다거나 더 이상 그럴 나이가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과 같다.
―『메노케이우스에게 보낸 편지』 122

τὸ εὔδαιμον καὶ μακάριον οὐ χρημάτων πλῆθος οὐδὲ πραγμάτων ὄγκος οὐδʼ ἀρχαί τινες ἔχουσιν οὐδὲ δυνάμεις, ἀλλʼ ἀλυπία καὶ πραότης παθῶν καὶ διάθεσις ψυχῆς τὸ κατὰ φύσιν ὁρίζουσα.
행복과 축복은 많은 돈에서도, 방대한 재산에서도, 고귀한 직업에서도, 권위 있는 직위에서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고통으로부터의 자유와 평온함, 그리고 자연에 따라 한계지어진 영혼의 상태에서 나온다.
―단편 548. 플루타르코스 『시를 공부하는 방법』 14

ἑτοίμως ἔχειν καὶ τῷ Διὶ ὑπὲρ εὐδαιμονίας διαγωνίζεσθαι, μάζαν ἔχων καὶ ὕδωρ.
빵과 물만으로 행복을 놓고 제우스와도 기꺼이 경쟁할 준비가 되어있다.
―단편 602. 아일리아누스 『여러가지 이야기들』 4.13


5. 평가

… 에피쿠로스는 이미 이런 종류의 선행 형식과 싸운 적이 있었다. 에피쿠로스가 무엇과 싸웠는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루크레티우스를 읽어보라. 그는 이교도와 싸우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그리스도교'에 맞서 싸웠다. 말하자면 죄 개념에 의한, 벌과 불멸 개념에 의한 영혼의 타락에 맞서 싸웠다. ㅡ 그는 지하적 제의들, 잠복하고 있던 그리스도교 전체와 맞서 싸웠다 ㅡ 불멸을 부정한다는 것은 당시에 이미 진정한 구원이었다. ㅡ 그리고 에피쿠로스가 이겼을 수도 있다. 로마 제국의 존경할 만한 사람은 전부 에피쿠로스주의자였기에
프리드리히 니체, 『안티크리스트』

6. 한국어 번역

현재까지 전해지는 에피쿠로스의 글은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책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 나오는 것이 전부다. 이 책은 학문적이나 철학적으로 엄밀한 책은 아니나,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를 언급한 부분에 한정해서는 학자들 사이에서 그 중요성이 인정되고 있다.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학파는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가 살았던 당 시대에도 성행했던 학파였기 때문에 그가 비교적 더 자세하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는 점과, 그 학파들에 관련해서 남아있는 온전한 자료가 이 책이 거의 유일한 것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핵심 텍스트로 취급된다. 이 책의 10편에서 에피쿠로스 얘기가 나오며, 그중 에피쿠로스가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는 3편의 편지는 그의 실제 생각과 문체를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다.

한국에서는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에서 제 10장, 에피쿠로스에 해당하는 부분만 따로 번역해 1998년에 문학과지성사에서 《쾌락》이라는 제목으로 번역서가 출간되었다. 현재는 절판 상태이지만 다행히 2021년에 정암학당에서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이라는 제목으로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을 출간했다.# 참고로 이와 똑같은 책이 2008년에 이미 동서문화사에서 일본어 번역본을 중역한 《그리스철학자열전》이라는 제목으로 먼저 나온 적이 있었는데, 악명높은 동서문화사 책답게 그냥 걸러주고 정암학당 번역본을 읽자.

2022년에는 현대지성 클래식에서 에피쿠로스의 편지들, 어록, 단편 등이 실려있는《에피쿠로스 쾌락》을 출간했다. 원전 번역을 표방하고 있지만, 번역자가 고대철학 전공이 아닌지라 의역이 많고 번역의 질은 나쁜 편이다.

7. 여담

  • 에피쿠로스와 그의 제자들은 평소에 매우 간소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다. "아무튼 포도주 약 4분의 1리터[20]로 그들은 만족했으며, 물이 음료의 전부였다"고 디오클레스는 말했다. 하지만 에피쿠로스는 "친구들의 것은 공동의 것"이라는 피타고라스의 말대로 재산을 공동의 것으로 삼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일은 서로 신뢰하지 않는 자들이 하는 것이며, 친구라면 굳이 그런 규칙을 만들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 카를 마르크스의 박사 학위 논문이 바로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 철학의 차이에 대한 것이다. 데모크리토스가 원자를 기계적 운동만 하는 것으로 본 반면 에피쿠로스는 원자가 우연적인 일탈 운동(편위, declination)을 할 수 있는 것으로 봄으로써 유물론적이면서도 자발적이고 다양한 운동이 가능할 수 있는 여지를 마련한 것을 높이 평가했다.
  • 에피쿠로스는 기독교에 의해 이단으로 간주되어 천 년간 잊혀졌었다. 그러다가 15세기 인문주의자 포조 브라촐리니가 남부 독일의 한 수도원의 서가에서 에피쿠로스주의 철학자이자 고대 로마의 시인인 루크레티우스의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발견함으로써, 유럽에 에피쿠로스가 다시 소개되었다. 이 책은 레오나르도 다 빈치, 마키아벨리, 몽테뉴 등에게 읽히면서 더 많은 학자들에게 영향력을 끼쳤다. 17세기에는 프랑스 철학자 피에르 가상디가 에피쿠로스를 다룬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10권을 번역하고 주석을 달면서, 에피쿠로스는 더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 로마 시대의 수집상들은 고대 그리스 조각상의 복제품을 가지길 원했는데, 그걸 로만 카피(Roman copy)라고 한다. 위 작품도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 있는 에피쿠로스 흉상으로서, 기원후 2세기경에 만들어진 로만 카피다.#[2]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데모크리토스와 많이 비슷하다. 원자론은 물론이거니와, 윤리학에서도 데모크리토스는 '쾌활함'을 강조했는데, 에피쿠로스도 쾌락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비슷한 면이 많이 있다. 그래서인지 동시대 작가 티몬도 에피쿠로스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또 여기 자연학자들 가운데 가장 나중이며 가장 염치없는 자, 사모스에서 온 학교 선생의 아들, 살아 있는 것들 중에 가장 못 배운 자가 있다."[3] 물론 종이도 존재하지 않아서 출판을 상상도 못하던 당시의 책이니만큼 양은 우리가 생각하는 정도까지는 아니겠지만[4] 그리스도교(동서 대분열 이전의 교회) 신도들에 의해 무신론으로 여겨졌던 에피쿠로스학파의 사상이 심한 공격을 받아 저서들이 대부분 사라졌다.[5]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391[6] 흔히들 그가 '쾌락주의'의 대표자였다는 것 때문에 방탕하고 문란한 사상가였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고 스토아학파에서도 이를 빌미로 에피쿠로스를 공격했지만 이는 전혀 잘못된 이해이다. 키레네 학파가 추구했던 방탕한 삶 등은 오히려 에피쿠로스가 비판했었던 것이었기 때문이다.[7] '평정심'을 요구한다는 측면에서 에피쿠로스의 아타락시아는 '무감정'을 뜻하는 스토아 학파의 아파테이아와 상당히 비슷하다.[8] "일단 결핍에 따른 괴로움이 제거될 경우에는 간소한 식사가 사치스러운 식사와 똑같은 쾌락을 가져다준다. (중략) 그러므로 단순하고 사치스럽지 않은 식사에 익숙해지는 것은 건강을 충분히 제공해 줄 수 있고, 사람으로 하여금 삶의 필수 요건에 주저 없이 대응할 수 있게 해주며, 우리가 오랜만에 사치스러운 성찬에 접했을 때 우리를 더 나은 상태에서 그것을 즐기게 하고, 운명에 대해서도 두려워하지 않는 자로 만들어 준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391)[9]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388[10] 자살을 뜻한다. 인용은, 테오그니스의 시, 427행.[11] 에피쿠로스에게 있어서 행복이란,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말한다. 우정은, 두려움과 불안이라는 괴로움을 극복하고 자신감을 갖게 해준다.[12] "전 생애에 걸친 지복을 위해 지혜가 요구하는 것들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우애의 획득이다. 어떤 두려움도 영구적이지 않으며 장시간 계속되지도 않는다는 사실에 자신감을 갖게 해주는 동일한 인식이, 한정된 삶의 조건들 속에서의 안전은 우애의 의해 가장 확실하게 형성된다는 것도 알게 해준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400)[13] "외부 상황들에서 주어지는 불안거리를 가장 잘 다스렸던 이 사람은 자신과 친숙하게 만들 수 있는 것들은 그렇게 했고, 친숙하게 할 수 없는 것들은 적어도 낯설게 만들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도 할 수 없었던 것들에 대해서는 어울리는 것을 피했고, 그렇게 하는 것이 득이 되는 것들은 모두 자신의 삶에서 몰아냈다. 이웃들로부터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는 힘을 가장 확실하게 가진 자들은 모두 그렇게 함으로써 가장 확고한 안전의 보증을 가지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서로 가장 즐거운 삶을 산다."(《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출판. p.402)[14] 더 이상 증가하지 않는 최상의 행복.[15] "더욱이, 천체들의 운행과 회귀, 식(蝕)과 뜨고 짐, 그리고 이런 것들에 이어지는 일련의 현상들이, 불멸과 동시에 만복을 누리는 어떤 존재가 그것들을 보살피고, 현재나 미래에 지시함으로써, 일어난다고 믿어서는 안 된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 p.364[16] "나아가, 집합체 전체가 와해되면 영혼은 흩어지며 더 이상 이전과 동일한 능력들을 갖지 못하고 움직이지도 않게 되어 결국에는 감각을 소유하지도 못하게 된다." 《유명한 철학자들의 생애와 사상 2》 2021. 나남. p.358[17] "예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예언이 존재하더라도, 예언에 따라 일어난 일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쾌락》 1998. 문학과지성사. p.37)[18] 대체로 락탄티우스가 에피쿠로스의 저작들을 직접 읽었다기보다는 지금은 사라진 마르쿠스 테렌티우스 바로 등의 라틴어 저서에서 재인용한 내용을 참고했다고 본다.[19] 사랑과 증오의 감정에 따라 움직이고 기도나 제물에 의해 마음을 바꾸는, 변덕스럽고 탐욕스러운, 마치 인간 같은 신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흄이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흄은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한 학문적인 논의는 불가능하다고 여겼고, 우리는 철학적으로는 이를 판단할 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여겼으며, 신에 대한 우리의 사고는 이성에 기반해서는 불가능하고 신앙적 태도 하에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신론 참조.[20] 당시 단위로 1 코튈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