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20 19:43:00

루크레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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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레티우스
Lucretius
파일:Lucretius1.jpg
본명 티투스 루크레티우스 카루스
Titus Lucretius Carus
출생 기원전 99년?
미확인
사망 기원전 55년? (향년 44세?)
미확인
직업 철학자, 시인
학파 에피쿠로스 학파

1. 개요2. 생애와 사상3. 평가4. 어록

[clearfix]

1. 개요

기원전 1세기에 활동한 로마 공화국시인, 철학자.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를 저술한 것으로 유명하며, 이는 현재까지 전승되는 몇 안 되는 에피쿠로스 학파 텍스트로 알려져 있다.[1] 그러나 세부적으로는 에피쿠로스와 구분되는 그만의 독자적인 사상을 남겼다.

2. 생애와 사상

기원전 99년에 태어나 기원전 55년 약 44세의 나이로 죽은 것으로 추정되는 것 빼고는, 루크레티우스의 생애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바가 거의 없다. 교부 히에로니무스에 따르면, 루크레티우스가 애인이 준 사랑의 묘약을 먹고 광기에 빠져서 제정신이 들 때마다 쓴 책이 바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이며 결국에 그는 자살했다고 하는데, 이는 루크레티우스의 유물론을 공격하기 위해 히에로니무스가 창작한 허구라는 게 최근 학자들의 견해이다.[2]

루크레티우스는 철저한 무신론유물론에 기반해 합리론쾌락주의 입장을 취했는데,[3] 이 같은 사상 때문에 5세기 이후 기독교 사회에 접어든 유럽에서 루크레티우스는 강력한 비난을 받고 사라지게 된다.

15세기 르네상스 시기에 이르러서야 루크레티우스는 지식인들에게 재발견되어, 후대 많은 사상가들에게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영향을 받은 유명인으론 대표적으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니콜로 마키아벨리, 미셸 드 몽테뉴, 조르다노 브루노, 토머스 제퍼슨, 퍼시 비시 셸리, 프리드리히 니체, 질 들뢰즈 등이 있다.

3. 평가

루크레티우스의 시는 네가 편지에서 언급한 것처럼 빛나는 천재성으로 가득하더구나. 그런데 매우 예술적이기도 하더군.[4]
키케로
사물의 원인을 밝히는 데에 성공한 자에게는 축복이 있을진저.[5]
베르길리우스
숭고한 루크레티우스의 시는 세계가 멸망하는 그날까지도 결코 사라지지 않을 운명이다.[6]
오비디우스
루크레티우스는 우주의 본연 그대로, 강렬함 속에 있는 그 위대한 힘으로 '신성한 즐거움'을 노래한다. 우주론적 자기 확신을 갖고 있는 루크레티우스는 우리에게 죽음의 공포를 무관심한 일로 돌리라고 권한다. … 베르길리우스의 시에 비해 그리 다양하지 않은 루크레티우스의 시가 내게 끼친 미학적 영향은 베르길리우스만큼 크지 않지만 읽는 보람은 훨씬 더 크다.[7]
해럴드 블룸

4. 어록

Tantum religio potuit suadere Malorum.
종교가 악행을 조장할 수 있음이 이토록 크다. [8]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1권 101행
nullam rem e nihilo gigni divinitus umquam.
어떤 것도 결코 신에 의해 무(無)로부터 태어나진 않았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1권 150행
corpus ubi interiit, periisse necessest confiteare animam distractam in corpore toto.
육체가 죽은 곳에서, 영혼도 몸 전체로 흩어져 소멸된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3권 799행

[1] 사실상 디오게네스 라에르티오스의 《철학자들의 생애와 그들의 주장》과 더불어, 현존하는 유이(唯二)한 에피쿠로스학파 자료이다.[2] 현대의 고전 연구자들은 루크레티우스에 대한 성 히에로니무스의 기술 내용을 매우 회의적인 시각으로 본다. 연대기는 루크레티우스가 죽은지 수백 년이 지난 후에 작성되었으며 어쩌면 사실을 기록했다기보다는 지어냈다는 표현이 옳을지도 모른다. 성 히에로니무스는 이교도 철학자들과 관련하여 경고가 될 만한 이야기를 전하는 데에 관심이 많았던 기독교 논객이었다. (스티븐 그린블랫 『1417년, 근대의 탄생』 이혜원 옮김, 까치글방, 서울, 2013, p.70)[3] 과격하게 요약하면, "이 세상에 추상적인 가치는 없다. 오직 물질 뿐이다. 그러니 즐기며 살아라!"라고 할 수 있다.[4] 기원전 54년 2월 11일에 키케로가 그의 동생 퀸투스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5] 스티븐 그린블랫 『1417년, 근대의 탄생』 이혜원 옮김, 까치글방, 서울, 2013, p.68 참조.[6] 스티븐 그린블랫 『1417년, 근대의 탄생』 이혜원 옮김, 까치글방, 서울, 2013, p.68 참조.[7]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세계문학의 천재들」, 손태수 역, 들녘, 2008, p.108[8] 직역하면 "종교가 (그들을) 악들로 설득시킬(권유할, 부추길, 조장할) 수 있는 것이 이만큼 크다." 루크레티우스는 이 문장의 바로 앞에서, 종교로 인해 죄없는 아가멤논의 딸이 제물로 바쳐졌다는 것을 상기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