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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비디우스 Ovidius[1] | |
| 파일:Latin_Poet_Ovid.jpg | |
| <colbgcolor=black><colcolor=white> 본명 | Publius Ovidius Naso 푸블리우스 오비디우스 나소 |
| 출생 | 기원전 43년 3월 20일 로마 공화국 술모나 |
| 사망 | 기원후 17년~18년 (향년 59~61세) 로마 제국 콘스탄차 |
1. 개요
고대 로마의 시인.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와 함께 로마의 3대 작가이자, 라틴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꼽힌다.
2. 작풍과 생애
서사시 <변신 이야기>(기원후 8)로 가장 유명하지만, 실제로 그가 남긴 시 중에는 사랑에 관한 저작이 압도적으로 많다. <여걸들의 서한(Heroides)>(기원전 19), <사랑의 노래(Amores)>(기원전 15), <사랑의 기술(Ars Amatoria)>(기원후 2) <사랑의 치유(Remedia Amoris)>(기원후 2) 등등. 이 중 <사랑의 기술>과 <사랑의 치유>는 묶어서 한 작품으로 취급되는데, <사랑의 기술>은 남자를 위한 여자 꼬시는 법, 여자를 위한 남자 꼬시는 법을 설명하고 <사랑의 치유>는 실연당했을 때 극복하는 법을 설명한다. 이외에도 <로마의 축제일(Fasti)>(기원후 8) 등의 시를 썼다.여러모로 심각하고 근엄한 베르길리우스에 비하면 다채롭고 자유분방한 시가 많다. 이러한 시의 분위기를 형성한 데에는 작가가 수십 년간 혼란기를 겪지 않은 채 아우구스투스 치하의 평화로운 시대적 분위기(소위 '팍스 로마나')를 당연한 것으로 누리며 살았던 덕인 듯하다.[2] 기원후 8년, 그가 쓴 <사랑의 기술>이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아우구스투스가 내린 칙령으로 흑해 서안의 토미스로 유배를 당했다. 그는 유배된 뒤에도 시를 썼으나 주로 유배된 처지를 한탄하거나 사면을 구하는 내용이고 더 이상 사랑 시는 쓰지 않았으나, 끝내 사면되지 못한 채 유배지에서 죽었다. 사랑의 기술이 나온 지 몇 년이 지나서야 유배형에 처하고 평생 사면되거나 조금이라도 로마에 가까운 곳으로 옮겨지지 않은 것은 그가 정치판에 줄을 잘못 댄 대가라는 관점이 있기도 하다.[3] 어쨌거나 작가가 추방되고 나서도 공권력이 작품에는 일절 손을 대지 않아서 중세 동로마 제국 멸망 때까지 계속 제국 내에서 출판되었다.
변신 이야기(Metamorphoses)는 천지창조부터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신이 되는 과정까지를 그린 시인데, 변신이라는 주제를 가진 수많은 이야기를 죽 써나간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보면 수많은 변신 이야기가 있어 그 양은 상상은 초월하는데, 일부는 변신과 별 상관이 없지만 마지막에 자그마한 변신이 있는 등, 이야기에 변신이라는 요소만 있으면 다 들어간다. 예를 들어 대 아이아스의 자살 이야기는 마지막에 가서야 아이아스가 죽고 그 피에서 히아신스 꽃이 피어나는 것으로 이야기에 변신이 들어간다. 물론 비유적인 의미의 변신이나, 언급만 되고 자세히 나오지 않은 변신도 포함하면 그 수는 엄청나게 많아진다.
신화의 다양한 부분을 다루고 있기 때문에 참고 자료로서도 가치가 있지만, 일부 이야기는 오비디우스가 이야기를 살짝 바꾸거나 후일담을 추가하기도 한다. 위에서 말한 아이아스의 자살 이야기도 원전 등에서는 밤중에 아이아스가 자살하지만, 변신 이야기에서는 말싸움에서 지자마자 검을 빼 들어 모두가 보는 앞에서 자살하며 오르페우스 전설의 경우는 오르페우스가 죽고 에우리디케와 재회하는 모습도 그렸다.
2017년 12월, 정확히 사후 2000년 만에 로마 시의회가 추방을 취소하였다.# 물론 별 의미는 없는 일이지만, 나름 사상의 자유를 위한 상징적인 조치라고 한다.
[1] 후대 언어인 프랑스어, 영어 등에선 오비드(영 Ovid, 프 Ovide)라 한다.[2] 베르길리우스는 성격도 많이 내성적이었다고 한다.[3] 사실 당대 로마인이 그렇게까지 성적으로 꽉 막히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비슷한 시기에 카툴루스 등의 시인은 대놓고 자기 작품에서 섹드립을 치기도 했으므로 오비디우스가 유배를 당한 데에는 단순히 작품이 외설스러운 것 이상의 모종의 이유가 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다. 그중 몇 가지 가설은, 자신의 저서에 따라(...) 아우구스투스의 딸한테 작업을 걸었다가 걸렸다던가,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딸 율리아는 당시 난잡한 사생활로 사람들 입방아에 올라 황실의 권위를 추락시켜 황제가 몹시 격노한 상태였는데, 이에 오비디우스가 기름 때려 붓는 풍자시를 만들어 세간에 뿌려서 그랬다던가, 아니면 아우구스투스의 친족 여자들이 아우구스투스와 모종의 관계였던 걸 오비디우스가 알아서 그 입막음용으로 깡촌으로 보내버렸다든지, 아니면 아예 이 유배되었다는 내용 자체가 거짓이었다고 보는 학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