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0 22:01:14

페르난두 페소아

{{{#!wiki style="margin: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2007년 포르투갈의 공영방송국(RTP)이 포르투갈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포르투갈인 100명'을 선정. 단, 중복 투표가 포함됨.
TOP 10
1위 2위 3위 4위 5위
안토니우 드 올리베이라 살라자르 알바루 쿠냘 아리트리데스 드 수사 멘데스 아폰수 1세 루이스 드 카몽이스
6위 7위 8위 9위 10위
주앙 2세 인판트 동 엔히크 페르난두 페소아 세바스티앙 주제 드 카르발류 바스쿠 다 가마
11위~100위
11위12위13위14위15위
살게이우 마이아 마리우 소아르스 파도바의 안토니오 아말리아 호드리게스 에우제비우
16위17위18위19위20위
프란시스쿠 사 카르네이루 조르제 누누 핀투 다 코스타 누누 알바르스 페레이라 주앙 페레이라 드 알메이다 주제 무리뉴
21위22위23위24위25위
아고스티뉴 다 시우바 에사 드 케이로스 에가스 모니스 디니스 1세 페르난두 노브레
26위27위28위29위30위
주제 에르마누 사라이바 아니발 카바쿠 실바 움베르투 델가도 조제 아폰수 루이스 피구
31위32위33위34위35위
마르셀루 카에타누 페드루 누네스 안토니우 비에이라 플로르벨라 이스팡카 페르디난드 마젤란
36위37위38위39위40위
마리아 지 루르드 핀타실구 주앙 1세 소피아 드 멜로 브레이네르 안드레센 안토니아 페레이라 파더 아메리쿠
41위42위43위44위45위
안토니우 다마지우 아폰수 드 알부케르크 마누엘 1세 주제 사라마구 아라곤의 이사벨
46위47위48위49위50위
카타리나 에우페미아 카를루스 파레지스 주제 소크라트스 페드루 알바레스 카브랄 루이 드 카발로
51위52위53위54위55위
브리테스 지 알메이다 알베르투 주앙 자르딩 알마다 네그레이루스 바스쿠 곤살베스 알바루 시자 비에이라
56위57위58위59위60위
벨미로 데 아제비로 수사 마르틴스 마리아 두 카르모 세아브라 안토니우 안드라지 카를루스 1세
61위62위63위64위65위
마리자 비제우의 엘레노르 호자 모타 안토니우 테익세이라 레벨로 아폰수 3세
66위67위68위69위70위
비토르 바이아 바르톨로메우 디아스 오텔루 사라이바 드 카르발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허만 호세
71위72위73위74위75위
마리아 2세 카를루스 로페스 아폰수 코스타 폰테스 페레이라 드 멜루 가구 코티뉴
76위77위78위79위80위
히카르두 아라우주 페레이라 마누엘 소브리뉴 시몽이스 마누에우 마리아 바르보자 드 보카주 헬리오 페스타나 조르주 삼파이우
81위82위83위84위85위
안토니우 샹팔리모 안토니우 로부 안투느스 질 비센트 마리아 헬레나 비에이라 다 실바 미겔 토르가
86위87위88위89위90위
나탈리아 코레이아 에드가 카르도주 페르낭 멘데스 핀투 루시아 수녀 알프레도 다 실바
91위92위93위94위95위
요한 21세 다미앙 드 고이스 주앙 4세 조아킹 아고스티뉴 아델라이드 카베치
96위97위98위99위100위
알메이다 가헤트 안토니우 젠틸 마르틴스 안토니우 바리아슈에스 파울라 레고 마리아 조앙 피레스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
<colbgcolor=#000><colcolor=#fff> 페르난두 페소아
Fernando Pessoa
파일:Pessoa88_chapeu.jpg
본명 페르난두 안토니우 노게이라 페소아
Fernando António Nogueira Pessoa
국적
[[포르투갈|]][[틀:국기|]][[틀:국기|]]
출생 1888년 6월 13일
포르투갈 왕국 리스본
사망 1935년 11월 30일 (향년 47세)
포르투갈 리스본
직업 시인, 작가, 철학자, 번역가
서명
파일:페르난두 페소아 서명.svg
{{{#!wiki style="margin: 0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학력 <colbgcolor=#fff><colcolor=#000>리스본 대학교 (문학부 / 중퇴)
활동 기간 1912년 – 1935년
사조 모더니즘
언어 포르투갈어, 영어, 프랑스어
소속 장미십자회
종교 무종교 (불가지론)
신체 173cm
묘소 포르투갈 리스본 제로니무스 수도원
부모 아버지 조아킹 드 세아브라 페소아
어머니 마리아 마그달레나 피녜이루 노게이라
}}}}}}}}}

1. 개요2. 생애3. 이명
3.1. 알베르투 카에이루3.2. 알바루 드 캄푸스3.3. 히카르두 헤이스
4. 평가5. 어록6. 여담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포르투갈의 시인, 작가, 철학자.

생전에는 크게 인정받지 못했으나 현대에 이르러 모더니즘의 선구자, 20세기 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자 포르투갈어 최고의 시인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1]

시로도 유명하지만 에세이로도 유명한데 대표적으로 '불안의 책(불안의 서)'이라는 작품이 그의 대표 명작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2. 생애

누군가 내 삶으로 나를 때리고 있는 것 같다.
'불안의 책' 中
1888년 6월 13일 리스본에서 태어났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남동생을 잃었다. 어머니가 두번째로 결혼하고 난 후 어머니와 함께 남아공의 더반에서 살면서 그곳에서 교육을 받았다. 당시 남아공은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자연스레 페소아는 영어와 영문학에 접한다. 이것이 영향을 주어 이후 너새니얼 호손, 월트 휘트먼, 애드거 앨런 포 등 유명한 작가의 영어로 되어 있는 작품을 포르투갈어로 번역했으며, 본인이 직접 영어로 된 시집을 쓰기도 했다. 한편 1905년, 학업을 위해 리스본에 돌아오지만 개인적인 실패와 정치적 혼란을 겪으며 문학적 영감을 얻었고 포르투갈어로 창작을 시작한다. 1912년, 문학잡지 '아기아(A Águia)'에 기고문을 투고하며 작가가 아닌 비평가로서 문학계에 데뷔한다.

1915년에는 포르투갈의 모더니즘 운동인 '오르페우 운동'의 중심격으로 활동한다. 그는 '오르페우' 잡지를 출간하고 이명을 통해 작품을 발표하며 여러 작가들과 교류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인다. 이러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생전 그의 책들은 거의 출간되지 못했다. 1차 세계대전 동안 자신의 시집을 츨판할 출판업자를 찾았지만 빈번이 거절당했으며, 리스본에서 친구와 함께 출판업체를 세워 자신의 시집 두편을 출판하나 출판업체가 일종의 스캔들로 인해 망한다.

페소아는 사상적인 측면에서 공산주의, 사회주의, 파시즘을 비판했다. 또한 1933년에 세워진 살라자르 정권에 회의를 느껴 살라자르의 독재를 비판하기도 했다.

1935년 11월 30일에 4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3. 이명

어릴 적부터, 나는 내 주변에 가상의 세계를 창조하면서 존재하지 않았던 친구들과 지인들로 나를 둘러싸는 성향이 있었지(그들이 진짜 존재하지 않았던 건지, 아니면 존재하지 않았던 게 나였는지 그건 확실치 않네만. 이런 문제들에 있어서 우리는, 다른 모든 문제들처럼 독단적이면 안 된다네).

내가 "나"라고 부르는 그 사람이 된 걸 의식한 이후로, 내 머릿속에 구체적으로 기억나는데, 나는 다양한 가상 인물들의 형상, 움직임, 성격, 그리고 인생사를, 사람들이 어쩌면 부당하게 그렇게 부르는, 진짜 인생처럼 너무도 생생하게 그러고 나만의 것으로 본 거야.

이런 성향은, 내가 내가 된 때로 거슬러 올라가 그때부터 늘 나와 함께했고, 그것이 나를 매혹하는 음악의 종류가 살짝 바뀌었다면 모를까, 나를 매혹하는 방식은 조금도 바뀌지 않았어.
'이명의 기원', 아돌푸 카자이스 몬테이루에게 보내는 편지 中

작가가 제 이름 대신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예는 흔히 있으나, 페소아의 예는 이런 일반적 경우와 확연히 구별된다. 이름들 각각에 서로 구별되는 고유한 전기와 인격과 문체를 부여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그는 제 자신을 여러 개의 인격으로 분화시킨 셈이다.

그 이름들을 그는 ‘가명’(假名)이 아니라 ‘이명’(異名)이라 부른다. 가명(pseudonym)은 제 정체를 감추고 제 목소리를 낼 때에 사용하나, 자기의 이름들은 저마다 다른 인격을 갖고 있으므로 이명(heteronym)이라 불러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정체성의 추구와는 반대되는 충동을 본다. 정체성(identity)이 ‘A=A’의 동일률에 집착한다면, 이명(heteronym)은 한 인격 내에 잠자는 상이한 가능성들을 현실화한다. 그것의 격률은 A=B=C=D=E, 즉 ‘너는 지금의 네가 아닌 세상의 다른 모든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페소아가 사용한 이명은 확인된 것만 해도 75개를 넘는다. 그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세 개의 이름, 즉 알베르투 카에이루(Alberto Caeiro), 히카르두 헤이스(Ricardo Reis), 알바루 드 캄푸스(Álvaro de Campos)이다. 위에서 언급한 사라마구의 작품은 이 중 히카르두 헤이스의 삶을 다룬 것이다. 흥미롭게도 사라마구의 소설에서 헤이스는 페소아보다 1년 뒤에 죽는다. 자기가 자기보다 늦게 죽는 셈이다. 페소아의 사망 소식을 듣고 포르투갈로 건너간 헤이스는 1년 뒤 페소아의 유령을 따라 그의 무덤으로 따라 들어간다.

3.1. 알베르투 카에이루

Alberto Caeiro
1889 ~ 1915

리스본에서 태어나 대부분의 삶을 시골에서 보냈다. 본인은 예술과는 거리가 먼 목동이었으며 오르페우 활동이 시작된 해에 사망하며 실질적인 오르페우 활동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오르페우에 속한 많은 작가들이 그의 제자를 자처하며 오르페우 운동의 중심이자 정신적 지주로 평가받는다.

그의 시들은 전원과 양치기 같은 목가적인 분위기로 '자연의 시인'이라 불리기도 했다. 직관적인 성향을 보이며 대표작으로는 시집 <양치는 목동>, <사랑의 목동>이 있다.

페소아는 이명들의 스승이라 불렀으며 유일한 자연 시인이라는 칭호를 붙였다.

3.2. 알바루 드 캄푸스

아무도 나를 개인적으로 만난 적은 없다, 캄푸스를 제외하고는.
페르난두 페소아
Álvaro de Campos
1890 ~ 1935

타비라 출생. 글래스고에서 공부한 선박 엔지니어로 아일랜드와 아시아 항해를 걸쳐 리스본에 돌아와 시인이 된다. 세계를 돌아다닌 만큼 국제적이고 당대의 조류에 민감했으며 기술 예찬을 일삼는 모더니스트이자 미래주의자이다. 수많은 이명들 중에서도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였으며 다른 이명들이 일정 기간 활동하다 어느 순간부터 맥이 끊기는 것과 달리 페소아 본인이 죽을 때까지 함께한다.

캄푸스의 특징은 시간에 따른 주제와 문체의 변화로 페소아는 그가 스승인 카에이루를 만나기 전후로 다른 시를 쓰도록 주의를 기울이기도 했다. 초기 선동적인 미래주의자에서 후기로 갈수록 소네트와 같은 전통적인 형식들을 차용하며 '데카당 시인'기 - '감각주의자 엔지니어'기 - '형이상학적 엔지니어'기 - '은퇴한 엔지니어'기로 나뉜다.

대표작으로는 '승리의 송시'와 '해상 송시', 그리고 '담배 가게'가 있다.

3.3. 히카르두 헤이스

Ricardo Reis
1887 ~ 1919

포르투 출생으로 외과의사이자 포르투갈 왕정주의자였으며 왕정 폐지 이후 브라질로 떠나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다. 왕정주의자답게 보수적이고 고전적인 성향을 보인다. 주제 사라마구는 이를 모티브로 삼아 사라마구의 대표작 중 하나인 "히카르두 헤이스가 죽은 해"을 썼다.

4. 평가

만약 페소아가 시인이 아니라 화가였다면, 그는 어떤 자화상을 그렸을까?
주제 사라마구
철학은, 최소한 아직까지는 페소아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다. 그 사고방식은 아직도 페소아를 논할 자격이 없다.
알랭 바디우
나는 페소아에게 빚을 졌다. 페소아는 시를 통해 허구적인 우주를 만들어냈고, 나는 그 덕분에 허구의 세계를 믿을 수 있게 되었다.
안토니오 타부키
포르투갈의 놀라운 시인 페르난두 페소아. 그의 환상적인 창조는 보르헤스를 능가한다. 그는 다시 태어난 휘트먼이다.
해럴드 블룸
16세기 몽테뉴가 성취한 업적을 20세기에는 『불안의 책』이 이루어냈다. 명성과 성공, 무지와 편리함, 요란함을 우선시하는 시대에, 여기 완벽한 해독제가 있다. 어둠, 실패, 지성, 곤경, 침묵을 찬송하는 노래가 있다.
존 란체스터
『불안의 책』은 단순한 책이 아니라 혁명이며 부정이다. 문학 이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책은 정점을 찌르는 페소아의 최고작이다.
리처드 제니스
비현실적인 일상과 현실적인 허구 사이에 그의 이야기가 있다.
옥타비오 파스
『불안의 책』은 페소아의 리스본을 조이스의 더블린, 카프카의 프라하와 같은 곳으로 만들었다.
조지 스타이너

5. 어록

당신의 모든 것을 당신이 하는 가장 작은 일에 몰두하게 하라.
여행은 여행자이다. 보는 것은 보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자신이다.
내일도 할 수 없을 일을 오늘 하지 마라.
영은 가장 위대한 비유이다. 무한은 가장 위대한 비유이다. 존재는 가장 위대한 상징이다.

6. 여담

파일:attachment/포르투갈 에스쿠도/portugales201.jpg* 1986년부터 1994년까지 포르투갈 100에스쿠도 지폐의 인물이었다.* 한때 함께 살았던 이모 아니카(Anica)의 영향으로 점성술오컬트에 관심을 가지게 된 페소아는 해독 불가한 예언들을 자동 기술 방식으로, 단상과 기호로 남겼다. 장미십자회의 회원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불안의 서로 작가 배수아의 독일어 중역, 불안의 책으로 오진영의 포르투갈어 원전 번역으로 소개되었다. 2023년 연말 배우 한소희가 이 책을 좋아한다고 소개하여 품절대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7. 관련 문서



[1] 문학계에서 포르투갈어 최고의 작가를 논의할 때, 16세기 작가 루이스 드 카몽이스와 더불어 페르난두 페소아가 반드시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