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iki style="padding: 5px 0 0; margin:-5px -10px; 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582d2d, #663334, #663334, #582d2d)" {{{#!wiki style="display: inline-table; min-width: 25%;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20세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 <rowcolor=#cd9f51> 1901 | 1902 | 1903 | 1904 |
| | | | | |
| 쉴리 프뤼돔 | 테오도르 몸젠 | 비에른스티에르네 비에른손 | 프레데리크 미스트랄 | |
| <rowcolor=#cd9f51> 1904 | 1905 | 1906 | 1907 | |
| | | | | |
| 호세 에체가라이 | 헨리크 시엔키에비치 | 조수에 카르두치 | 러디어드 키플링 | |
| <rowcolor=#cd9f51> 1908 | 1909 | 1910 | 1911 | |
| | | | | |
| 루돌프 오이켄 | 셀마 라겔뢰프 | 파울 폰 하이제 | 모리스 마테를링크 | |
| <rowcolor=#cd9f51> 1912 | 1913 | 1915 | 1916 | |
| | | | | |
| 게르하르트 하웁트만 | 라빈드라나트 타고르 | 로맹 롤랑 | 베르네르 폰 헤이덴스탐 | |
| <rowcolor=#cd9f51> 1917 | 1919 | 1920 | ||
| | | | | |
| 카를 기엘레루프 | 헨리크 폰토피단 | 카를 슈피텔러 | 크누트 함순 | |
| <rowcolor=#cd9f51> 1921 | 1922 | 1923 | 1924 | |
| | | | | |
| 아나톨 프랑스 | 하신토 베나벤테 |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 | 브와디스와프 레이몬트 | |
| <rowcolor=#cd9f51> 1925 | 1926 | 1927 | 1928 | |
| | | | | |
| 조지 버나드 쇼 | 그라치아 델레다 | 앙리 베르그송 | 시그리드 운세트 | |
| <rowcolor=#cd9f51> 1929 | 1930 | 1931 | 1932 | |
| | | | | |
| 토마스 만 | 싱클레어 루이스 | 에릭 악셀 카를펠트 | 존 골즈워디 | |
| <rowcolor=#cd9f51> 1933 | 1934 | 1936 | 1937 | |
| | | | | |
| 이반 부닌 | 루이지 피란델로 | 유진 오닐 | 로제 마르탱 뒤 가르 | |
| <rowcolor=#cd9f51> 1938 | 1939 | 1944 | 1945 | |
| | | | | |
| 펄 벅 | 프란스 에밀 실란패 | 요하네스 빌헬름 옌센 |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 |
| <rowcolor=#cd9f51> 1946 | 1947 | 1948 | 1949 | |
| | | | | |
| 헤르만 헤세 | 앙드레 지드 | 토머스 스턴스 엘리엇 | 윌리엄 포크너 | |
| <rowcolor=#cd9f51> 1950 | 1951 | 1952 | 1953 | |
| | | | | |
| 버트런드 러셀 | 페르 라게르크비스트 | 프랑수아 모리아크 | 윈스턴 처칠 | |
| <rowcolor=#cd9f51> 1954 | 1955 | 1956 | 1957 | |
| | | | | |
| 어니스트 헤밍웨이 | 할도르 락스네스 | 후안 라몬 히메네스 | 알베르 카뮈 | |
| <rowcolor=#cd9f51> 1958 | 1959 | 1960 | 1961 | |
| | | | | |
|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 살바토레 콰시모토 | 생존 페르스 | 이보 안드리치 | |
| <rowcolor=#cd9f51> 1962 | 1963 | 1964 | 1965 | |
| | | | | |
| 존 스타인벡 | 요르기우스 세페리스 | | 미하일 숄로호프 | |
| <rowcolor=#cd9f51> 1966 | 1967 | 1968 | ||
| | | | | |
| 슈무엘 요세프 아그논 | 넬리 작스 | 미겔 앙헬 아스투리아스 | 가와바타 야스나리 | |
| <rowcolor=#cd9f51> 1969 | 1970 | 1971 | 1972 | |
| | | | | |
| 사뮈엘 베케트 | 알렉산드르 솔제니친 | 파블로 네루다 | 하인리히 뵐 | |
| <rowcolor=#cd9f51> 1973 | 1974 | 1975 | ||
| | | | | |
| 패트릭 화이트 | 에위빈드 욘손 | 하뤼 마르틴손 | 에우제니오 몬탈레 | |
| <rowcolor=#cd9f51> 1976 | 1977 | 1978 | 1979 | |
| | | | | |
| 솔 벨로 | 비센테 알레익산드레 | 아이작 바셰비스 싱어 | 오디세우스 엘리티스 | |
| <rowcolor=#cd9f51> 1980 | 1981 | 1982 | 1983 | |
| | | | | |
| 체스와프 미워시 | 엘리아스 카네티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 윌리엄 골딩 | |
| <rowcolor=#cd9f51> 1984 | 1985 | 1986 | 1987 | |
| | | | | |
| 야로슬라프 사이페르트 | 클로드 시몽 | 월레 소잉카 | 조지프 브로드스키 | |
| <rowcolor=#cd9f51> 1988 | 1989 | 1990 | 1991 | |
| | | | | |
| 나기브 마흐푸즈 | 카밀로 호세 셀라 | 옥타비오 파스 | 나딘 고디머 | |
| <rowcolor=#cd9f51> 1992 | 1993 | 1994 | 1995 | |
| | | | | |
| 데릭 월컷 | 토니 모리슨 | 오에 겐자부로 | 셰이머스 히니 | |
| <rowcolor=#cd9f51> 1996 | 1997 | 1998 | 1999 | |
| | | | | |
| 비스와바 심보르스카 | 다리오 포 | 주제 사라마구 | 귄터 그라스 | |
| <rowcolor=#cd9f51> 2000 | ||||
| | ||||
| 가오싱젠 | ||||
}}}}}}}}}
- [ 21세기 ]
- ##
<rowcolor=#cd9f51> 2001 2002 2003 2004 V. S. 나이폴 케르테스 임레 존 맥스웰 쿳시 엘프리데 옐리니크 <rowcolor=#cd9f51> 2005 2006 2007 2008 해럴드 핀터 오르한 파묵 도리스 레싱 장 마리 귀스타브 르 클레지오 <rowcolor=#cd9f51> 2009 2010 2011 2012 헤르타 뮐러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토마스 트란스트뢰메르 모옌 <rowcolor=#cd9f51> 2013 2014 2015 2016 앨리스 먼로 파트리크 모디아노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 밥 딜런 <rowcolor=#cd9f51> 2017 2018 2019 2020 가즈오 이시구로 올가 토카르추크 페터 한트케 루이즈 글뤽 2021 2022 2023 2024 압둘라자크 구르나 아니 에르노 욘 포세 한강 2025 2026 2027 2028 크러스너호르커이 라슬로
| {{{#!wiki style="min-height: calc(1.5em + 5px); 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 2003년 11월 독일의 공영TV인 ZDF가 독일 국민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독일인 1백인을 발표한 명단이다. | ||||
| TOP 10 | |||||
| <rowcolor=#fff> 1위 | 2위 | 3위 | 4위 | 5위 | |
| 콘라트 아데나워 | 마르틴 루터 | 카를 마르크스 | 한스, 조피 숄 남매 | 빌리 브란트 | |
| <rowcolor=#fff> 6위 | 7위 | 8위 | 9위 | 10위 | |
|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 | 요한 볼프강 폰 괴테 | 요하네스 구텐베르크 | 오토 폰 비스마르크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 |
| 11위~100위 | |||||
| <rowcolor=#fff> 11위 | 12위 | 13위 | 14위 | 15위 | |
| 아돌프 콜핑 | 루트비히 판 베토벤 | 헬무트 콜 | 로베르트 보쉬 | 다니엘 퀴블뵈크 | |
| <rowcolor=#fff> 16위 | 17위 | 18위 | 19위 | 20위 | |
| 콘라트 추제 | 요제프 켄테니히 | 알베르트 슈바이처 | 카를하인츠 뵘 |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 |
| <rowcolor=#fff> 21위 | 22위 | 23위 | 24위 | 25위 | |
| 헬무트 슈미트 | 레진 힐데브란트 | 알리체 슈바르처 | 토마스 고트샤크 | 허버트 그로네메이어 | |
| <rowcolor=#fff> 26위 | 27위 | 28위 | 29위 | 30위 | |
| 미하엘 슈마허 | 루트비히 에르하르트 | 빌헬름 콘라트 뢴트겐 | 귄터 야우흐 | 디터 볼렌 | |
| <rowcolor=#fff> 31위 | 32위 | 33위 | 34위 | 35위 | |
| 얀 울리히 | 슈테피 그라프 | 사무엘 하네만 | 디트리히 본회퍼 | 보리스 베커 | |
| <rowcolor=#fff> 36위 | 37위 | 38위 | 39위 | 40위 | |
| 프란츠 베켄바워 | 오스카 쉰들러 | 네나 | 한스디트리히 겐셔 | 하인츠 뤼만 | |
| <rowcolor=#fff> 41위 | 42위 | 43위 | 44위 | 45위 | |
| 하랄트 슈미트 | 프리드리히 대왕 | 임마누엘 칸트 | 패트릭 린드너 | 하르트무트 엥겔 | |
| <rowcolor=#fff> 46위 | 47위 | 48위 | 49위 | 50위 | |
| 힐데가르트 폰 빙엔 | 하이노 |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 | 클라우스 폰 슈타우펜베르크 | 마를레네 디트리히 | |
| <rowcolor=#fff> 51위 | 52위 | 53위 | 54위 | 55위 | |
| 로베르트 코흐 | 요슈카 피셔 | 카를 마이 | 로리오 | 알베르투스 마그누스 | |
| <rowcolor=#fff> 56위 | 57위 | 58위 | 59위 | 60위 | |
| 루디 푈러 | 하인츠 에르하르트 | 로이 블랙 | 하인츠하랄트 프렌첸 | 볼프강 아펠 | |
| <rowcolor=#fff> 61위 | 62위 | 63위 | 64위 | 65위 | |
| 알렉산더 폰 훔볼트 | 피터 크라우스 | 베르너 폰 브라운 | 덕 노비츠키 | 캄피노 | |
| <rowcolor=#fff> 66위 | 67위 | 68위 | 69위 | 70위 | |
| 프란츠 요제프 슈트라우스 | 세바스티안 크나이프 | 프리드리히 실러 | 리하르트 바그너 | 카타리나 비트 | |
| <rowcolor=#fff> 71위 | 72위 | 73위 | 74위 | 75위 | |
| 프리츠 발터 | 니콜 | 프리드리히 폰 보델슈윙흐 | 오토 릴리엔탈 | 마리온 돈호프 | |
| <rowcolor=#fff> 76위 | 77위 | 78위 | 79위 | 80위 | |
| 토마스 만 | 헤르만 헤세 | 로미 슈나이더 | 스벤 하나발트 | 바이에른의 엘리자베트 여공작 | |
| <rowcolor=#fff> 81위 | 82위 | 83위 | 84위 | 85위 | |
| 빌리 밀로위치 | 게르하르트 슈뢰더 | 요제프 보이스 | 프리드리히 니체 | 루디 두치크 | |
| <rowcolor=#fff> 86위 | 87위 | 88위 | 89위 | 90위 | |
| 카를 레만 | 베아테 우제 | 트뤼머프라우 | 카를 프리드리히 가우스 | 헬무트 란 | |
| <rowcolor=#fff> 91위 | 92위 | 93위 | 94위 | 95위 | |
| 알브레히트 뒤러 | 막스 슈멜링 | 카를 벤츠 | 프리드리히 2세 | 라인하르트 메이 | |
| <rowcolor=#fff> 96위 | 97위 | 98위 | 99위 | 100위 | |
| 하인리히 하이네 | 게오르크 엘저 | 콘라드 두덴 | 제임스 라스트 | 우베 젤러 | |
| 출처 | |||||
|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 |||||
| 1929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 |
| <colbgcolor=#000><colcolor=#fff> 토마스 만 Thomas Mann | |
| | |
| 본명 | Paul Thomas Mann 파울 토마스 만 |
| 출생 | 1875년 6월 6일 |
뤼베크 | |
| 사망 | 1955년 8월 12일 (향년 80세) |
취리히 | |
| 국적 | ~1936[1] 1936~[복수국적] 1944~[복수국적] |
| 직업 | 소설가, 평론가 |
| 학력 | 뮌헨 대학교 뮌헨 공과대학교 |
| 수상 | 노벨문학상 (1929) 괴테상 (1949) |
| 가족 | 배우자 자녀 6명 |
| 종교 | 유니테리언 |
| 서명 | |
1. 개요
독일의 평론가, 소설가. 문장 표현력과 구성, 주제의식 등에서 이견없이 20세기 독일 문학의 대문호로 평가받고 있다.2. 생애
1875년 독일 북부의 뤼베크에서 토마스 요한 하인리히 만과 율리아 다 실바 브룬스 부부의 차남으로 태어난다. 만 부부의 장남이자 그의 형은 하인리히 만이다. 아버지는 전형적인 북부 독일인으로 엄격하고 강직한 사람이었으며,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브라질계였던 어머니는 낭만적이고 여유로운 성격의 소유자였다. 만은 훗날 어린 시절에 대해, "뤼벡에서 흑발에 흑안을 소유한 여성은 우리 어머니뿐이었다."라고 회고하고 있다.이러한 부모님의 기질 차이로 인해 성장 시절 그가 겪었던 고뇌와 방황은 후일 토니오 크뢰거(Tonio Kröger)라는 자전적 소설에서도 '시민 對 예술가'라는 안티테제로 차용되는데, 소설 속에는 아래와 같은 구절이 담겨 있다.
사려 깊고 철저하고 엄밀하셨던 아버지는 청교도 정신을 타고난 북부 기질의 소유자셨다. 불분명한 이국적 혈통의 어머니는 아름답고, 감정적이며, 소박하면서도 동시에 부주의했고 감정적이며 충동적인 자유분방함을 지니셨다. 의심의 여지없이 이것은 비범한 가능성과 위험의 결합이었다. 예술의 길에 잘못 발을 디딘 시민, 화목한 가정에 대해 향수를 지닌 뜨내기, 양심의 가책을 지닌 예술가가 그 산출물이었다.
Mein Vater war ein nordisches Temperament: betrachtsam, gründlich, korrekt aus Puritanismus; meine Mutter von unbestimmt exotischen Blut, schön, sinnlich, naiv, zugleich fahrlässig und leidenschaftlich und von einer impulsiven Liederlichkeit. Ganz ohne Zweifel war dies eine Mischung, die außerordentliche Möglichkeit und außerordentliche Gefahren in sich schloss. Was herauskam war dies: ein Bürger, der sich in die Kunst verirrte, ein Bohemien mit Heimweh nach der guten Kindernisstube, ein Künstler mit schlechten Gewissen.
Mein Vater war ein nordisches Temperament: betrachtsam, gründlich, korrekt aus Puritanismus; meine Mutter von unbestimmt exotischen Blut, schön, sinnlich, naiv, zugleich fahrlässig und leidenschaftlich und von einer impulsiven Liederlichkeit. Ganz ohne Zweifel war dies eine Mischung, die außerordentliche Möglichkeit und außerordentliche Gefahren in sich schloss. Was herauskam war dies: ein Bürger, der sich in die Kunst verirrte, ein Bohemien mit Heimweh nach der guten Kindernisstube, ein Künstler mit schlechten Gewissen.
본디 만 가문은 뤼벡에서 곡물상을 담당하면서 엄청난 부를 축적하여 19세기 초중반 무렵에는 지역 최대 부호 중 하나로도 꼽히기도 했으나, 상업가로의 기질이 없었던 아버지 대부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고, 1891년 그의 아버지가 사망하자 아예 가족들은 뮌헨으로 거처를 옮겨버린다. 정확히는 어머니가 먼저 이주했고, 토마스 만은 김나지움을 졸업한 이후에 이주했다. 이후 1933년 나치의 박해를 피해 망명하기까지 4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뮌헨은 그의 거처가 된다. 뮌헨에서 뮌헨 대학교에 청강생으로 진학한 만은 작가로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경제, 역사, 문학 등 다양한 학문을 두루 탐색한다.
이후 형인 하인리히[4]와 함께 보험회사에서 일하던 만은 꼬마 프리데만 씨(Der Kleine Herr Friedemann)를 1898년 발표하면서 작가로 첫 발을 내딛는다. 이후 1905년 부유한 유대계 언론가의 딸이었던 카티아 프링스하임과 결혼한다. 평생을 함께한 부부관계에서 만은 6명의 자식들을 얻는다. 그의 자녀들 중 장녀 에리카 만, 장남 클라우스 만, 차남 골로 만은 모두 나중에 독일 문학계의 신진 작가로 높은 평가를 받게 된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휴머니스트 성향의 만은 여러 정치적 논설을 발표하며 빌헬름 2세와 전쟁의 비참함을 고발한다. 물론 당시 독일 내의 분위기에서 이런 행동은 나쁜 반응을 불러왔다. 또한 12년이라는 엄청난 세월에 걸쳐 작성한 걸작인 마의 산을 1924년 발표하며 독일 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작가로 발돋움한다. 그리고 1901년 발표했던 장편소설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192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참고로 토마스 본인은 마의 산을 본인의 최고 걸작으로 생각했고, 마의 산을 발간하지 않았더라면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만으로는 결코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했을 거라고 주변에 이야기했다고 한다.
하지만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그는 더 이상 독일에 머무를 수 없게 되었고[5] 프랑스를 거쳐 1938년 미국으로 망명하여 프린스턴 대학교의 교수로 재임한다. 이후 1939년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자 만은 BBC의 반 나치 독일어 방송을 진행한다. 다만 영국으로 가는 건 위험하다고 생각했는지 미국에서 녹음을 해서 영국으로 보냈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토마스 만은 유럽으로 돌아와 스위스 취리히에서 생활한다. 독일 국적을 포기한 것도, 독일 방문을 거부한 것도 아니었지만[6] 독일에서 거주하지는 않으며 여생을 보내다 1955년 취리히에서 사망한다.
독일 식자층 사이에서는 문장을 늘여쓰는 것이 보편적인데, 토마스 만은 이 문장 늘려쓰기를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이로 평가받는다. 게다가 <마의 산> 같은 소설은 프랑스어까지 무지막지하게 튀어나와서 독문과생들을 충격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다.
3. 위상 및 영향력
20세기 독일 문학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의 작품들은 독일 문학이 세계문학사 속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새롭게 확립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부덴브로크가의 사람들》을 통해 독일 시민계급의 삶과 몰락을 정밀하게 묘사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고, 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대문호로 자리매김하였다. 그의 초기 성공은 독일 문학을 유럽 문학의 중심에 다시 부각시키는 계기가 되었으며, 사회적 현실을 문학적 형식으로 치밀하게 구현하는 능력은 동시대 작가들에게도 강한 인상을 남겼다.그의 위상은 단순히 문학적 성취에만 국한되지 않고, 독일 사회와 정치적 맥락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과 바이마르 공화국 시기를 거치며 작가로서 시대적 목소리를 내었으며, 나치의 집권 이후에는 망명 작가로서 독재와 전체주의에 저항하는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이로써 그는 문학인일 뿐 아니라, 시대적 양심의 상징적 존재로 간주되었고, 그의 정치적 발언은 유럽과 미국의 지식인 사회에도 깊은 파장을 일으켰다.
문학적 영향력 측면에서 그는 독일뿐 아니라 전 세계 작가들에게 큰 자극을 주었다. 《마의 산》과 같은 작품은 인간 존재의 심리적, 철학적 차원을 탐구하며 근대 소설의 지평을 확장시켰고, 이러한 시도는 유럽의 모더니즘 문학과 긴밀히 연결되었다. 또한 그는 음악, 철학, 정신분석학 등 여러 학문적 전통을 작품 속에 흡수하여 다성적이고 복합적인 문학 형식을 구축하였고, 이는 후대 작가들이 문학을 통해 사유의 장을 확장하는 데 중요한 토대가 되었다.
4. 주요 작품 목록
- 《꼬마 프리드만 씨》(Der kleine Herr Friedmann, 1898)
-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Buddenbrooks, 1901)
- 《토니오 크뢰거》(Tonio Kröger, 1903)
- 《대공전하》(Königliche Hoheit, 1909)
- 《베네치아에서의 죽음》(Der Tod in Venedig, 1912) - 구스타프 말러의 죽음에 영감을 받고 저술한 작품이며, 토마스 만 본인의 동성애적 성향이 드러나는지 여부를 놓고서 문학가 사이에서 아직까지도 키배가 오가는 작품이다. 루키노 비스콘티에 의해 영화화 되었다.
- 《마의 산》(Der Zauberberg, 1924) - 영화 더 큐어와, 러시아의 영화 엔지니어링 레드에 강한 영향을 주었다.
- 《자유의 문제》(Das Problem der Freiheit, 1937)
- 《바이마르의 로테》(Lotte in Weimar, 1939)
- 《뒤바뀐 머리들 - 인도의 전설》(Die vertauschten Köpfe - Eine indische Legende, 1940)
- 《요셉과 그의 형제들》(Joseph und seine Brüder, 1943)
-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us, 1947)
- 《거룩한 죄인》(Der Erwählte, 1951)
- 《사기꾼 펠릭스 크룰의 고백》(Bekenntnisse des Hochstaplers Felix Krull. Der Memoiren erster Teil, 1922년/1954년)
5. 평론
《바그너와 우리 시대 (Wagner und unsere Zeit》(S. Fischer Verlag, GmbH, Frankfurt am Main, 1963) (안인희 역, 포노, 2022)6. 둘러보기
| 서양 문학사의 주요 문호들 및 저작들 | ||||
| {{{#!wiki style="word-break: keep-all; margin: 0 -10px -5px; min-height: 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5px -1px -11px" | 고대 | 초기 희랍 문학 | <colbgcolor=#fff,#1c1d1f>호메로스 · 헤시오도스 · 아르킬로코스 · 알크만 · 핀다로스 · 사포 | |
| 희랍 희곡 | 소포클레스 · 아이스퀼로스 · 에우리피데스 · 아리스토파네스 · 메난드로스 | |||
| 헬레니즘 문학 | 칼리마코스 · 테오크리토스 · 이솝 · 루키아노스 | |||
| 로마 문학 | 리비우스 안드로니쿠스 · 플라우투스 · 베르길리우스 · 호라티우스 · 프로페르티우스 · 오비디우스 · 가이우스 루킬리우스 · 테렌티우스 · 티불루스 · 루크레티우스 · 카툴루스 · 루카누스 · 발레리우스 플라쿠스 · 스타티우스 · 실리우스 이탈리쿠스 · 아우소니우스 · 루틸리우스 나마티아누스 · 아풀레이우스 · 세네카 · 페르시우스 · 페트로니우스 | |||
| 중세 문학 | 영국 | 베오울프 · 아서왕 전설 · 마비노기온 · 제프리 초서 | ||
| 이탈리아 | 단테 · 아리오스토 · 보카치오 · 페트라르카 · 타소 · 보이아르도 · 스탐파 · 람베르티노 · 소르델 | |||
| 독일/게르만 | 니벨룽의 노래 · 에셴바흐 · 스튀르들뤼손 (에다) | |||
| 기타 | 크레티앵 드 트루아 · 엘 시드의 노래 · 롤랑의 노래 · 칼레발라 · 디에고 데 산 페드로 · 카몽이스 · 안토니오 페레이라 · 호르헤 만리케 · 페르난도 데 로하스 · 루이스 데 레온 · 윌리엄 던바 · 존 스켈턴 | |||
| 르네상스/바로크 문학 | 영국 | 셰익스피어 · 말로 · 벤 존슨 · 토머스 키드 · 에드먼드 스펜서 · 존 던 · 조지 허버트 · 필립 시드니 · 베이컨 · 존 밀턴 · 존 드라이든 · 존 버니언 · 토머스 와이엇 · 로버트 헤릭 · 토머스 캐류 · 리처드 러브레이스 · 앤드류 마벌 · 헨리 본 · 리처드 크래쇼 | ||
| 프랑스 | 몰리에르 · 장 라신 · 로베르 가르니에 · 코르네유 · 몽테뉴 · 프랑수아 라블레 · 라로슈푸코 · 라퐁텐 · 마리보 · 부알로 | |||
| 스페인 | 세르반테스 · 후안 데 메나 · 이니고 로페스 데 멘도사 · 로페 데 베가 · 티르소 데 몰리나 · 칼데론 · 공고라 | |||
| 고전주의 | 이탈리아 | 아포스톨로 체노 · 메타스타시오 · 골도니 · 주세페 파리니 · 비토리오 알피에리 · 빈첸초 몬티 · 포스콜로 | |
| 영국 | 새뮤얼 존슨 · 스위프트 · 애디슨 · 윌리엄 콩그리브 · 포프 · 리처드슨 · 토비아스 스몰렛 · 헨리 필딩 · 로렌스 스턴 · 리처드 스틸 · 조지 파쿼 | ||
| 독일 (바이마르 고전주의) | 괴테 · 실러 · 빌란트 · 헤르더 · 레싱 · 클로프슈토크 | ||
| 기타 | 볼테르 · 루소 · 가스파르 데 호벨라노스 | ||
| 낭만주의 | 독일 낭만주의 | 횔덜린 · 클라이스트 · 티크 · 에두아르트 뫼리케 · 노발리스 · E. T. A. 호프만 · 아르님 · 브렌타노 · 루트비히 울란트 · 아이헨도르프 · 그림 형제 · 장 파울 · 슐레겔 · 하이네 | |
| 영국 낭만주의 | 번스 · 월터 스콧 · 조지 메러디스 · 칼라일 · 드 퀸시 · 메리 셸리 · 존 클레어 · 오스틴 · 브론테 자매 · 폴리도리 · 맥퍼슨 · 브라우닝 부부 / 영국 6대 낭만주의 시인: 워즈워스 · 블레이크 · 콜리지 · 바이런 · 퍼시 비시 셸리 · 존 키츠 | ||
| 미국 낭만주의 | 호손 · 쿠퍼 · 멜빌 · 워싱턴 어빙 · 에밀리 디킨슨 | ||
| 프랑스 낭만주의 | 빅토르 위고 · 샤토브리앙 · 뒤마 · 메리메 · 라마르틴 · 드 비니 · 드 뮈세 · 네르발 · 고티에 | ||
| 기타 낭만주의 | 레오파르디 · 푸시킨 · 레르몬토프 · 미츠키에비치 · 율리우시 슬로바츠키 · 크라신스키 | ||
| 사실주의 | 발자크 · 스탕달 · 투르게네프 · 톨스토이 · 도스토옙스키 · 레스코프 · 디킨스 · 새커리 · 조지 엘리엇 · 트웨인 · 잭 런던 · 이디스 워튼 · 헨리 제임스 · 알렉시스 키비 · 폰타네 · 켈러 · 빌헬름 라베 · 테오도르 슈토름 · 고골 · 하디 · 오 헨리 | ||
| 자연주의 | 플로베르 · 졸라 · 도데 · 모파상 · 드라이저 · 조지 기싱 | ||
| 상징주의/유미주의 | 오스카 와일드 · 에드거 앨런 포 · 보들레르 · 랭보 · 베를렌 · 말라르메 · 발레리 · 니체 · 바그너 · 위스망스 · 게오르게 · 호프만슈탈 · 단눈치오 · 나보코프 · 캐럴 · 로세티 · 스윈번 | ||
| 근대극 | 입센 · 체호프 · 스트린드베리 · 버나드 쇼 · 게르하르트 하웁트만 · 뷔히너 · 밀러 · 오닐 | ||
| 근현대 문학 | 모더니즘 | 포크너 · 콘래드 · 제임스 조이스 · 버지니아 울프 · 앤더슨 · 토마스 만 · 지드 · 스베보 · 프루스트 · 슈니츨러 · 피란델로 · 츠바이크 · 롤랑 · 카프카 · 브로흐 · 캐더 · 무질 · 피츠제럴드 · 페소아 · 맨스필드 · 쇼팽 | |
| 표현주의 | 되블린 · 고트프리트 벤 · 로렌스 · 헤밍웨이 · 게오르크 카이저 | ||
| 신고전주의/신낭만주의 | 함순 · 카로사 · 예이츠 · 릴케 · 시엔키에비치 · 제러드 홉킨스 · 키플링 · 글뤽 | ||
| 사회주의 리얼리즘 | 고리키 · 스타인벡 · 싱클레어 · 오스트롭스키 · 브레히트 · 파베세 · 하인리히 만 | ||
| 신시(新詩) | T. S. 엘리엇 · 파운드 · 로르카 · 윌리엄 칼로스 윌리엄스 · 스티븐스 · 프로스트 · 토머스 · 오든 · 아폴리네르 · 차라 · 네루다 · 휘트먼 | ||
| 실존주의/부조리극 | 헤세 · 오웰 · 사르트르 · 카잔차키스 · 카뮈 · 헉슬리 · 베케트 · 뒤렌마트 · 이오네스코 · 말로 · 셀린 · 엘리슨 · 베르나노스 · 생텍쥐페리 · 필립 K. 딕 | ||
| 포스트모더니즘 | 코르타사르 · 칼비노 · 보르헤스 · 보니것 · 베른하르트 · 헬러 · 볼라뇨 · 핀천 · 드릴로 · 오스터 · D. F. 월리스 · 로스 · 스미스 · 팔라닉 · 게이먼 · 존 바스 · 에코 · 쿤데라 · 크러스너호르커이 / 비트 세대: 케루악 · 버로스 · 긴즈버그 · 밥 딜런 · 부코스키 | ||
| 사변소설 | 웰스 · 베른 · 브래드버리 · 이시구로 · 잭슨 · 애트우드 · 버틀러 · 허버트 · 하인라인 · 아시모프 · 아서 C. 클라크 · 톨킨 · 러브크래프트 · 렘 · 르 귄 · 깁슨 · 닐 스티븐슨 · 밸러드 | ||
| 마술적 사실주의 | 라틴아메리카: 가르시아 마르케스 · 아옌데 · 룰포 · 아스투리아스 · 푸엔테스 · 카르펜티에르 유럽: 그라스 · 루슈디 · 사라마구· 불가코프 | ||
| 누보로망 | 사로트 · 로브그리예 · 뷔토르 · 시몽 · 뒤라스 | ||
| 신저널리즘/곤조 저널리즘 | 카포티 · 메일러 · 디디온 · 톰슨 · 톰 울프 · 존 크라카우어 | ||
| 기타 근현대 문학 | 매카시 · 제발트 · 매큐언 · 모리슨 · 요사 · 치버 · 벨로 · 유르스나르 · 콕토 · 바타유 · 칼 오베 크나우스고르 | ||
| 세계의 문학사 둘러보기 동양문학( 한국문학(고전문학 · 현대문학 · 장르문학) | 중문학 | 일문학 ) 서양문학( 영문학 | 불문학 | 독문학 | 노문학 | 이문학 ) | |||
[1] 반나치 활동으로 국적 말소[복수국적] [복수국적] [4] 비록 동생인 토마스 만의 명성에 가려진 편이지만, 이 사람도 20세기 독일 문학에 발자취를 남긴 위대한 작가이다. 어린 시절부터 두 형제 사이가 썩 좋지는 않았고 훗날 정치적, 문학적 견해(형인 하인리히는 정치적으로는 젊은 시절부터 진보적이었고, 에밀 졸라 등의 영향을 받아 자연주의 성향의 문학을 주창했다. 반면 토마스 만의 경우에는 젊은 시절에는 외려 정치적으로 보수적이었고 19세기 중후반 러시아 대가들의 영향을 받아 유미주의적이고 관념적인 성향의 문학을 선호했다.)가 달라 갈라지면서 둘의 사이가 멀어졌다가 화해하길 반복했다. 하인리히는 초창기 한두 작품이 주목을 받았으나 이후 긴 슬럼프에 빠져 동생의 명성에 가려졌고, 동생과 대조적으로 여러번 결혼을 했다. 게다가 부친을 닮아 엄격하고 내성적인데다가 깐깐한 토마스 만과 달리 모친을 닮아 유쾌하고 활발한 성격에 사교계 인맥도 넓고, 조카들한테도 친절히 대했다. 그래서 엄격한 아버지에 싫증을 느낀 토마스 만의 자녀들은 사람좋고 인기많은 큰아버지를 엄청 잘 따랐다.[5] 괴벨스가 주도한 반독일적 서적 화형식에 만의 책은 1순위로 리스트에 올라갔을 정도이다. 재미있는 사실로 만의 아들들 중 한 명은 이 괴벨스의 화형식에 직접 참석했는데, 평소와 달리 괴벨스는 오히려 흥분한 군중을 진정시키려 했다고 한다. 나치의 거물이 되기 전 꿈도 돈도 없던 청년 시절의 괴벨스는 글을 써가며 생계를 유지했고, 유대인들과도 코드가 맞으면 교류했기 때문이다.[6] 1949년 괴테 탄생 200주년 행사때 프랑크푸르트 암 마인을 방문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