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1-14 12:57:00

외젠 이오네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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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6년 루마니아 공영방송 TVR이 루마니아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를 바탕으로 '가장 위대한 루마니아인 100명'을 선정
TOP 10
1위2위3위4위5위
슈테판 3세 카롤 1세 미하이 에미네스쿠 미하이 2세 리하르트 부름브란트
6위7위8위9위10위
이온 안토네스쿠 미르체아 엘리아데 알렉산드루 이오안 쿠자 콘스탄틴 브랑쿠시 나디아 코마네치
11위~100위
11위12위13위14위15위
니콜라에 차우셰스쿠 블라드 3세 조지 비칼리 헨리 코안더 게오르게 하지
16위17위18위19위20위
이온 루카 카라지알레 니콜라에 이오르가 콘스탄틴 브랑코비아누 제오르제 에네스쿠 그레고리안 비볼라루
21위22위23위24위25위
미렐 러도이 코르넬리우 젤레아 코드레아누 니콜라에 티툴레스쿠 페르디난드 1세 미하이 1세
26위27위28위29위30위
데케발루스 트라이안 버세스쿠 게오르그 뮤레산 이온 I. C. 브라티아누 러즈반 루체스쿠
31위32위33위34위35위
니콜라에 파울레스쿠 이울리우 마니우 이울리우 호수 에밀 시오랑 아브람 이안쿠
36위37위38위39위40위
부레비스타 에든버러의 마리 공녀 페트레 투테아 코르넬리우 코포수 아우렐 블라이쿠
41위42위43위44위45위
이오시프 트리파 니키타 스터네스쿠 이온 크레안거 마델리나 마놀 코르넬리우 바딤 투도르
46위47위48위49위50위
트라이안 부이아 루치안 블라가 조지 에밀 퍼레이드 아나 아슬란 아드리안 무투
51위52위53위54위55위
플로린 피에르시크 미하일 코갈리차누 야노스 코뢰시 디미트리에 칸테미르 일리에 너스타세
56위57위58위59위60위
게오르그 잠피르 기카 페트레스쿠 엘리사베타 리제아 불라 암자 펠라
61위62위63위64위65위
마차시 1세 미르체아 1세 티투 마이오레스쿠 토마 카라지우 미하이 트라이스타리우
66위67위68위69위70위
안드레아 마린 에밀 라코비차 빅터 바베슈 니콜라에 발체스쿠 호리아로만 파타피에비치
71위72위73위74위75위
이온 일리에스쿠 마린 프레다 외젠 이오네스코 두미트루 스타닐로아 알렉산드루 토데아
76위77위78위79위80위
투도르 게오르게 이온 티리아크 일리에 클레오파 아르세니 보카 바넬 니콜리타
81위82위83위84위85위
두미트루 코르닐레스쿠 그리고레 모이실 클라우디우 니쿨레스 플로렌틴 페트레 마리우스 모가
86위87위88위89위90위
니콜라에 스타인하트 로라 스토이카 커털린 흘단 안겔 살리그니 이반 피차이진
91위92위93위94위95위
마리아 터나세 세르지우 니콜라에스쿠 옥타비안 팔러 무명용사 치프리안 포룸베스쿠
96위97위98위99위100위
니쿠 코바시 두미트루 프루나리우 후녀디 야노시 콘스탄틴 노이카 바데아 카르탕
출처
같이 보기: 위대한 인물 시리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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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생애

1. 개요

외젠 이오네스코 (Eugène Ionesco, 1909년 11월 26일~1994년 3월 28일)는 실존주의파에 속하는 프랑스의 시인·소설가·극작가이다. 루마니아계 프랑스 사람으로 루마니아의 스라티나(ro)에서 태어났다. 루마니아식 이름은 에우젠 이오네스쿠(Eugen Ionescu)이다.

2. 생애

유년시대는 프랑스에서, 청년시대는 루마니아에서 보냈고 1938년 이후 파리에 정주하였다. 1950년 <대머리 여가수>(부제 <반희곡>)가 상연된 이래 이른바 반연극파(反演劇派)의 선단에 섰다. 이후 <수업> <의자> 등의 뛰어난 단막물로 종래의 것과는 좀 다른 초현실주의적인 희곡을 차차 인식시키고, 그 후에는 <무소> <빈사(瀕死)의 왕> <갈증과 기아> 등의 장막물(長幕物)로 국립극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앙티테아트르 작가로서 베케트와 더불어 호칭되고 오늘날에 와서는 프랑스의 대표적 극작가로 확고한 명성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은 초기의 전위적 부조리극, 가령 <수업>(1951), 중기의 <무소(犀)>(1960) 등 사회풍자극과 <빈사(瀕死)의 왕>(1962) 등 내면적 작품의 3기로 나눌 수가 있다.

초기의 작품일수록 대담하며, 일상적인 회화(會話)를 해체하여 그 무의미성을 폭로하기도 하고, 의자를 무대 일면에 늘어놓음으로써 신이나 진실 또는 사상의 공허함을 표현하거나, 사람을 무소로 변신시킴으로써 현대 획일화(劃一化)의 공포를 우화화(寓話化)하기도 했는데, 항상 라틴적인 경쾌한 리듬을 잊지 않았다. 그는 연극의 줄거리·성격·언어를 해체하는 것으로 연극의 에센스를 뽑아내서 전 세대의 실험적 쉬르레알리즘 연극에 풍요한 넌센스 유머를 부여함으로써 대중화하는 일에 성공하였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이었으며 1977년에는 대한민국을 방문하기도 했다.